4월이라고,
차마 하드에서 지우지 못한 영화 중 하나인 4월이야기를 꺼내어 봤다
이건 분명 언제고 다시 보고싶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늘이었나보다

4월이라고,
4월이야기를 꺼내어 보는 1차원적인 행동은 적잖이 유치해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원래 좀 유치가 찬란하게 넘쳐나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유치하다며 보고싶어진 영화를 안보는 건 더 유치하기 때문에
나는 마음가는대로 하기로 했다 


누군가 내게 5월같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게 나에게 참 고맙고 과분한 이야기라 심히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지만
실은 나는 4월을 좋아한다
4월은 5월처럼 꽉 차거나, 화려하거나 충만하지 않은,
어떤 여백같은 게 느껴지는 달이다
그런 4월의 모습이 내게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그건 어쩌면 정말 내가 5월같은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워낙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에 더 끌리게 디자인돼있으니

그래서 난 4월같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4월이야기는
4월처럼, 여백이 많은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건,
이 영화는 자신이 가진 그 여백을 나의 자리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십대의 첫봄을 맞이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연히 그 때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속 주인공처럼 나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20대의 첫봄을 맞이했다
기차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와,
금세 새로운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던 기억

실은 봄이라기보다는 새학기,였다는 기억밖에 없을 정도로
봄을 둘러볼 여유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달리고 달렸다

4월 이야기는
무작정 누군가 좋았고,
무작정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렇게 무작정 해맑게 다가갔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자꾸만 생각나게 하고,
영화 내내 이어지는 여백들은,
이런 나의 생각을 자꾸 격려하는 것만 같다

어쩌면 나는 영화가 아닌,
그 때의 내가 보고 싶어
이 영화를 보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리고 어느덧 이십대의 마지막 봄, 마지막 4월
이십대의 첫봄과 같은 큰 변화는 없이
지난 겨울의 내가 올 봄의 나이고,
작년 봄의 내가, 또 올 봄의 나이지만

지금의 내가 또 그 때의 내가 아님은
20대의 마지막 봄을 보내는 나는
지금이 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느끼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난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며 맞이하고 있는 4월을 
매우 열심히, 4월처럼 보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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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4-01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한편의 시같아요, 웬디양님.
아주 느낌이 좋은 시요.



웽스북스 2008-04-01 18:31   좋아요 0 | URL
역시 다락방님은 저를 너무 짱좋아하시는거 아니에요? ㅎㅎ
다락방님은 시같은게 아니라, 시를 쓰시잖아요 ^_^

L.SHIN 2008-04-01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난 4월같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흐응~ 그래서 웬디님이 날 좋아하는구나~ 내가 또 4월 태생이잖아요.ㅎㅎㅎ

봄이라, 수십번 나를 지나간 나의 4월은 어땠나...하고 정리하는 글을 써볼까.(웃음)

이매지 2008-04-01 01:33   좋아요 0 | URL
으흥으흥. 저도 4월생 ㅎㅎㅎ

웽스북스 2008-04-01 18:32   좋아요 0 | URL
흐흐 어떻게 알았어요 에쓰님
에쓰님은 4월 태생이 아니어도, 좀 4월같아요
그런데 11월같기도 해요

저는 11월도 좋아한답니다. ㅎㅎ

이매지님도 4월생이었군요, 이매지님은 꼭 겨울에 태어난 아이 같아요
흐흐흐 ^_^ (눈처럼 하얘서 그런가봐요)

L.SHIN 2008-04-02 13:26   좋아요 0 | URL
이런, 나를 너무 잘 보신거 아냐, 4월과 11월의 사람이라니.ㅎㅎ
그 갭을 같이 알아보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말이죠.(웃음)

웽스북스 2008-04-03 01:09   좋아요 0 | URL
후훗 제가 좀 ㅋㅋㅋ
그나저나 우리 에스님 생일은 언제이려나? 후훗

순오기 2008-04-0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 이야기, 참 좋았어요. 지나간 내 봄, 다가올 우리 아이들의 봄이 저렇겠구나 생각하며...이렇게 충실한 엄마의 감정이라니! ㅎㅎㅎ

웽스북스 2008-04-01 18:32   좋아요 0 | URL
그죠, 이번에 인천으로 휙~ 가버린 큰따님의 봄은
지금 어떨까, 저도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무스탕 2008-04-0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불순한 의도(?)로 4월 이야기 영화를 좋아했었어요.
여주인공이 좋아한 선배로 나온 배우가 타나베 세이이치인데 그 배우가 좋아서 영화를 좋아했었지요.. ^^
4월의 따불, 8월에 태어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웬디양님? :)
- 8월에 태어난 무스탕이가.. -

다락방 2008-04-01 18:06   좋아요 0 | URL
악, 무스탕님~
저도 8월이요. 0/

웽스북스 2008-04-01 18:33   좋아요 0 | URL
어머 그게 왜 불순하다는 거에요?
감우성 때문에 간큰가족도 재밌게 본 사람도 있습니다.

4월에 태어났든, 8월에 태어났든
무스탕님은 무스탕님이니까 좋지요 흐흐


다락방님도 8월생이시군요
다락방님은 9월초의 여인같아요
 


1. 식객

나는 맛있는 음식만 잔뜩 소개할 줄 알았지, 기대치 않았던 민족주의적 색채를 그리 강하게 대놓고 표출할 줄이야. 살짝 거북했더라는. 김강우의 매력은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봐도 내겐 드러나 보이지 않고, 이하나의 그 색깔 없는 연기라니, 다소 실망. 임원희는 또 어찌나 전형적여 주시던지.

2. 추격자

H가 영화 개봉전에 예전에 인터뷰했던 감독인데 이 감독 뜨면 본인은 엄청 신기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웃긴 컨셉으로 찍었다기에, 너 이거 그 감독의 암울했던 시절의 자료사진으로 쓰이면 어쩔래, 하며 웃었는데, 정말 감독은 장난 아니게 떴겠다. 연기도 스토리도 만듦새도, 모두 평균 이상이라는 느낌을 주던 웰메이드 작품. C가 너무 잔인해서 보기 힘들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래도 씩씩하게 봤다. ^^v 김윤석은 배우로 이제 일정 레벨 이상에 올라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힌 듯 보였고 하정우는 얼굴 멍들고 눈 팅팅 부어서 선글라스를 써도, 우와! 멋지더라.

3. 궁녀

그러고보니 오늘 본 영화 두편 모두 우연히도 서영희가 출연한다. 그것도 비슷한 느낌으로. 예쁘장하면서도 주연스럽지는 않지만, 뭔지 모르게 묘한 매력이 있어 자꾸만 눈길이 가는 배우랄까. 나름 흥미진진하게 봤으나, 뭔가 아쉬운 이 느낌은....



추격자 > 궁녀 >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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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3-10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오늘 길에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제작한 가슴 아픈 영화 한 편 봤시요.

웽스북스 2008-03-10 02:10   좋아요 0 | URL
무슨 영화였시요? 메피님의 가심을 아프게 한 영화는...

Mephistopheles 2008-03-10 02:39   좋아요 0 | URL
웅..미혼인 웬디양님은 공감하기 좀 어려운 영화였어용..

웽스북스 2008-03-10 10:03   좋아요 0 | URL
앗, 미혼이라고 너무 무시하신다 ㅋㅋ

Mephistopheles 2008-03-10 16:18   좋아요 0 | URL
음..정확히 말하면 미혼이라서가 아니라.애엄마가 아니라서에용..그리고 무시 아니어용..호호호

웽스북스 2008-03-11 00:33   좋아요 0 | URL
흐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다락방 2008-03-1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격자 최고!!!!
하정우 최고!!!!

웽스북스 2008-03-10 10:14   좋아요 0 | URL
흐흐흐 ^-^
어찌나 간지가 흘러주시던지요 ㅎㅎ

이게다예요 2008-03-1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세 영화를 다 봤는데, 식객은 너무 의외였어요. 어쩜 영화를 저따구로 만들었을까, 하는 막말이 나오더라구요.ㅋ 추격자와 궁녀는 둘 다 나름 재밌게 봤구요. 평소에도 잘 놀라는 편이라, 배를 좀 움켜쥐고 봤지만. ㅋㅋ

웽스북스 2008-03-10 13:06   좋아요 0 | URL
네, 좀 그렇더라고요, 좀더 재밌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분명한 소재라서 더 안타까웠어요

순오기 2008-03-1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나는 궁녀만 안 봤군요. 추격자는 두번이나 보고... 두번째 보니, 복선이 좌악~ 보이더만요!^^

웽스북스 2008-03-10 22:02   좋아요 0 | URL
우오! 추격자를 두번이나 보셨어요?
흠, 그런데 딱히 복선이랄만한 게 있었나요?
범인이 너무 금방 밝혀져서 ㅎㅎ
그러면서도 시종 스릴을 유지하는 것도 참 능력이에요

순오기 2008-03-11 01:37   좋아요 0 | URL
복선이 있었냐구요? 뭐 범인이야 처음부터 밝혀놓고 오로지 추격하는 거였지만, 영상으로 보여주는 복선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처음엔 무심히 봤던 장면들이...

웽스북스 2008-03-11 01:4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헐렁헐렁하게 영화를 봤나봐요
다시봐야하나....? 흠....ㅋㅋ

프레이야 2008-03-1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셋다 봤지요. 전 '궁녀'가 젤 무서웠어요. 바늘땀으로 허벅지를...헉..
서영희, 저도 눈에 자꾸 들더이다.
하정우 팬은 어찌 많은지요, 전 좀 빠져볼까나요..ㅎㅎ

웽스북스 2008-03-10 22:03   좋아요 0 | URL
아 그 장면 정말 끔찍했어요
혜경님은 희소가치 있는 배우들을 노리시는군요 ㅎㅎ

프레이야 2008-03-10 22:10   좋아요 0 | URL
들켰당.. '발레교습소'의 온주완!

웽스북스 2008-03-11 00:35   좋아요 0 | URL
오오, 온주완 ㅎㅎ
온주완도 자꾸만 눈이 가게 되는 배우죠
아니 정확히는 몸이죠, 막이러고 ㅋㅋ

무스탕 2008-03-1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격자만 봤는데 아직도 눈에 선해요.
서영희 머리에 정 들이대던 장면, 그러면서 하정우가 내뱉던 대사의 색깔,감정, 배우의 표정들..
이런것 때문에 잔인한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보기가 싫어요.
그래도 추격자는 재미있었어요 :)

웽스북스 2008-03-10 22: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잔인한 장면 들어간 영화 보기 싫으면서도
자꾸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추격자 재밌었어요 ^_^

마늘빵 2008-03-1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격자를 봐야해.

웽스북스 2008-03-10 22:03   좋아요 0 | URL
요즘 재밌어 보이는 영화 너무너무 많아요 윽 ㅜㅜ

하루(春) 2008-03-1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가 누군가요?

웽스북스 2008-03-11 00:35   좋아요 0 | URL
아, H는 친구에요 ㅎㅎ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바쁘고 각박하다보니, 책을 보고 영화를 봐도 리뷰 한편 남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영화를 보면 한마디쯤은 더하고 싶다는 마음이 뭉글뭉글 올라오는데 역시나 생각을 정리하려니 머리가 아파와 -_-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버리기 전에, 좋은 영화 몇편 정도는 간단하게라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써보려 합니다. 실은 오늘 좀 한가해서 이런 게 가능했다죠. 매일매일 한가하면 참 좋으련만 말입니다 ^_^

올해 들어서 본 영화는 꼭 5편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 팀버튼 감독의 스위니토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코르넬리우포름보이우 감독의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 그리고 오늘 본 남선우 감독의 모두들 괜찮아요?. 영화는 전부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은 좋은 영화들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시간이 났을 때, 가능하면 좋은 영화들을 보려고 많이 고심하는 편이지요. 스위니토드와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테고 여기저기서 많은 평들을 접했을테니 굳이 제 소개까지 더하지 않을 생각이구요, 나머지 3편의 영화에 작년 말 봤던 오기가와 나오코 감독의 안경까지 4편의 영화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안경 (오기가와나오코, 2006)

오기가와 나오코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을 워낙 즐겁게 봤던 터라, 이 영화도 매우 큰 기대를 갖고 봤고, 또한 재밌게 봤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카모메 식당보다는 영화적 재미가 좀 덜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또 왜 저 역시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바이나, 그래도 저는 이 영화도 꽤나 재밌게 봤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기가와 나오코 감독의 유머가 저와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영화는 슬로우라이프에 대한 동경 내지는 더 나아가 예찬,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동경이나 예찬이 좀 많이 갔구나, 싶긴 하지만요 ^^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어 찾아간 한 마을의 민박집에서 '관광'할 만한 곳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 여주인공은 그만 당황하고 맙니다. 여기는 관광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죠. 그럼 여기에 여행온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요? 라는 여주인공의 물음에 민박집 주인은 다시 이렇게 말하지요. 음...사색?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저도, 하던 일 때려치고 핀란드에서 식당을 하면서 살았음 좋겠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삶. 하지만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계란후라이와 라면 밖에 없어서 참았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도 저 마을로 달려가 아침에는 함께 체조를 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팥빙수를 먹고, 신선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답니다.
하지만 슬로우라이프에 대한 로망은 역시나 로망일 때 가장 아름답게 여겨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니, 전 그 마을에 머무를 자격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감독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외로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은 여지 없이 드러났습니다. "비법은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아, 우리 정말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니까요. 아무래도 감독은 관객의 이해도에 대한 신뢰가 좀 부족한가봐요. 그렇지만 전 오기가와 나오코 감독의 다른 영화가 나와도 또 보러 가게 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스폰지하우스에서 아직 상영중이랍니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길어지다니, 다음 것부터는 짧게)


오래된 정원 (임상수, 2007)

소설 오래된 정원을 워낙 좋아했던터라, 이 영화는 촬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하며 기다렸었지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는 순간 저는 약간 실망을 했었답니다. 염정아가 연기하는 한윤희가 어쩐지 책에서 제가 만났던 느낌과 달랐거든요- 그래서 실은, 실망할까봐 보지 않았었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종종 애용하는 곰티비 무료영화로 우연히 보게 됐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참 뜨겁고도 촉촉해지는 자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원작의 내용과 감수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변형을 가미하는 임상수 감독의 센스 역시 나쁘지 않았고, 그런 의미에서 염정아가 연기하던 한윤희의 모습 역시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음.. 저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지진희의 멋진 목소리도 영화의 감동을 더하지요 (편파적이다)
행복? 아닌 것 같아. 나만 행복하면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은 시대였거든. (대사는 확실치 않으나) 딸과 통화하던 장면에서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실은 그 전부터) 단언컨대, 지진희의 목소리가 한치만 울림이 덜했다면 주책맞게 울지는 않았을 거에요. (생각해보니 단언,까지는 어렵겠군요-)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 (코르넬리우 포름보이우, 2006)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 는 루마니아 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1989년 12월 19일 12시 8분에 있었던 루마니아 혁명 (영화를 보면 제가 왜 이렇게 날짜와 시간을 욀 수 밖에 없는 지를 아실 겁니다)이 과연 우리 마을에서도 있었는가, 를 조망해 본다는 한 지역 방송국 사장의 야심(?)에서 영화는 출발합니다. 그 순간 거기 있었던(혹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불러 놓고 진행한 토크쇼는 이내 엉망이 되고, 당신이 12시 8분 이전에 거기 있었다면 우리 마을엔 혁명이 있었던 것이고, 없었다면 혁명이 없었던 것이다, 라는 이상한 논리로 치닫다가 결국엔 방송사고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그만 박장대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5명 밖에 없는 극장에서 친구와 깔깔대며 웃다가 이내 민망해지곤 했지요. 방송 중에 종이 찢는 소리가 북북 들리고 심지어 옆에서는 종이배를 접고 있다면 말 다했지요.
혁명에 대한 터치는 가볍지만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혁명의 순간,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고 생각했겠지만, 혁명은 그야말로 순간이었고, 그들의 삶은 그다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로등이 켜지면 하루가 시작되고, 가로등이 꺼지면 하루가 끝나는, 반복적 삶을 살고 있지요. 혁명, 그리고 변화라는 건 한 순간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는 뼈있는 이야기를 제법 잘 담아놓은 감독의 내공을 느끼게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30대 중반의 젊은 루마니아 감독에게, 칸의 신인감독 상인 황금 촬영상을 안겨줬다고 합니다.
영화 마지막 즈음, 혁명을 통해 아들을 잃었다는 한 여자의 전화가 결국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냅니다. "저는 혁명으로 아들을 잃었어요. 그런데, 그 얘기를 하려고 전화를 건 건 아니구요, 밖에 눈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어요. 지금 나가서 즐기세요, 어차피 내일이면 진창이 될 테니" 
꼭 가서 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지만 상영관은 아쉽게도 필름포럼 한군데입니다.


모두들 괜찮아요? (남선우, 2006)

김호정이라는 배우는 참 눈이 가는 배우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김호정씨의 굵직하게 보이면서도 선이 고운, 강단 있는 외모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살짝 중성적이면서도 여성스러운 목소리까지요. (이게 도통 무슨 말인지 ㅋㅋ) 그래서 자꾸만 그녀에게 이런 역할이 주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른 바 한량 남편 뒷바라지 하는 강한 여성 역할이죠.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에서 보여줬던 생활력 강한, 차가워보이면서 따뜻한 이미지의 여성 역할에 저 역시 어느 덧 그녀보다 더 잘 어울릴만한 누군가를 선뜻 떠올려내기가 힘듭니다.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에서도 역시 그녀는 7년째 감독 데뷔를 준비하는 남편을 위해 무용을 그만두고 학원을 차려 뒷바라지를 하는 생활력 강한 여성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영화 한편 못찍은 영화 감독인 셈이지요. 영화 한편 못찍은 감독이 무슨 감독이냐는 반문에는 그의 아들이 대신 항변해 줍니다. "그럼 수박 장수가 수박 한통 못팔면 수박 장수가 아니냐?" 아들 하나는 정말 똑부러지게 키워놓았지요? ^^
남편 하나도 버거운데, 치매 걸린 친정 아버지는 막내딸이 제일 좋다며, 막내딸인 그녀 집에 얹혀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 사고뭉치들을 데리고 사는 그녀의 마음에는 바람 잘 날 없지요. 특별한 스토리도, 이렇다 할 에피소드도 없는 잔잔한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영화 내에서의 갈등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걸 없앰으로써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끌어안음으로써 해결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 결혼은 나의 문제로부터 도망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있는 나의 문제들에 더해진 또 한사람의 문제들의 결합,이라는 이야기를 제게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일이긴 하지만, 저도 언젠가 그런 세상에 몸을 담그는 날이 오겠지요. 그 날이 오면 나 역시 끌어안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실은 자기 앞가림 잘하고 생활력 강한 사람보다는 영화 속 김유석 같은, 젊은 시절에 한껏 가오 잡았을 것 같은 저런 한량이 이상형에 더 가까운지라 앞으로의 저의 삶이 매우 걱정입니다, 하하) 2월 21일까지, 곰티비 무료 영화로 보실 수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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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녹차의 맛 이라는 영화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2. 그래도 미스코리아 출신 중 유일무일한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아무리 소극장이며 관객수가 적다 하더라도 지켜야 할 예의는 있는 법인디....
4. 2월 21일...음 아직 시간은 좀 남았군요..그동안 밀린 영화를 먼저 처치해야..으흑..

오늘밤 11시쯤 EBS에서 짐 자무쉬의 영화가 합니다. 다운 바이 로...
감독도 감독이지만 배우들이 참 좋습니다.^^

웽스북스 2008-02-02 22:55   좋아요 0 | URL
1. 아이쿠 녹차의 맛을 내가 못봐서 ;; ㅎㅎㅎ 녹차맛은 좀 아는데 말이죠 (죄송 꾸벅)
2. 그러게요,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죠 참.
3. 아 그니까 종이찢고 종이배 접던 건 상영중이 아니라, 영화 안에서 생방송 중에 일어난 상황 (다시 읽어보니 헷갈릴 수 있겠네요 ㅎㅎ)
4. 생각해보니 11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ㅎㅎ
5. 영화를 TV로 보는 걸 별로 안좋아라해요, 그래서 지금 고민 때리는 중 ㅋㅋ

웽스북스 2008-02-02 23:19   좋아요 0 | URL
영화보러 갔다가, 엄마가 너 시간 많구나, 엄마랑 훌라 하자- 라고 해서 도망왔어요 ㅠㅠ (우리집 TV는 안방에 있어요 흑흑)

Jade 2008-02-0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때 거기 있었습니까 보러가야겠어요 시간도 많은데 ㅎㅎ

웽스북스 2008-02-03 00:39   좋아요 0 | URL
후후후 일단 소기의 목적 달성~ ^_^

바람돌이 2008-02-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보고싶은데 너무 멀어요. 게다가 저거 dvd로 나올까요? 나와도 대여점에는 없을듯싶은데요. ㅠ.ㅠ

웽스북스 2008-02-03 01:04   좋아요 0 | URL
아마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DVD 대여점에는 잘 안가서 어느 정도의 작품들을 갖다놓는지 제가 잘 모르겠네요 ㅜㅜ

깐따삐야 2008-02-03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한 편도 못 봤어요! 그나저나 웬디양님의 이상형은 나도 참 걱정이 되긴 하네요. -_-

웽스북스 2008-02-03 02:14   좋아요 0 | URL
아 이건 많은 사람들이 못봤을 것 같은 것만 골라서 부러 리뷰가 아니라 소개를 한 거니까요 ㅎㅎ
이상형에 대해서는 사실 영화를 보면서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ㅋㅋ 초반 고생내가 하고 말년고생 남편이하고 이러면 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까지 막 했다는거 -_- ㅋㅋ 암튼 어째 남일 같아보이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더 감정이입이 잘됐는지도 ㅋ)

비로그인 2008-02-0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정원빼고는 다 첨보는 영화! 웬디양님의 수비범위에 고개를 절래절래합니다.
제가 일본영화를 즐겨보는 편이니 <안경>을 먼저 보고 싶어요

웽스북스 2008-02-03 13:51   좋아요 0 | URL
흐흐, 단테님, 제가 남들 한참 영화보던 시기에 영화를 안봐서 (집에 비디오가 고장이 났는데 그 상태로 오랫동안 안고쳤었거든요) 남들 다본 거 못본 것들이 굉장히 굉장히 많아요- 수비 범위는 매우 허술, 이지요 ^_^;;
 



오후에 집에 오니 방이 거의 노다메가 와서 친구하자고 할 수준이다. 같이 치워줄 치아키센빠이가 없으니, 나는 홀로 방을 치우는데, 이 방에서 지난 2주간 살았던 게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옷과책과잡지가적절히조화롭게섞여있는 침대와 바닥 ㅠㅠ 하하하! 지난 2주간 너무 바빠서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청소엔 한국영화. 오늘도 여전히 청소를 하며, 나는 곰티비 무료영화 중 볼만한 한국 영화를 찾았으나, 그다지 볼만한 영화가 없어, 작년에 봤던 청연을 한번 더 보기로 했다. 아뿔싸, 이 영화는 청소용 영화로는 70%만 합격점인데, 왜냐하면 대사의 나머지 30%가 일본어이기 때문에, 화면을 응시하지 않고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청소용 영화의 제 1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셈.

작년 초 청연을 보며, 난 이 영화가 참 좋았었다. 나 역시 이 영화는 괜한 '친일 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일단 내가 장진영을 좀 좋아한다. 나는 여배우가 예뻐보이기를 포기한 순간에, 가장 예뻐 보인다. 윤종찬의 소름,에서도 그렇더니- 이 영화에서도 장진영은 참 빛나고 예쁘다.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노희경의 '굿바이 솔로'를 보며, 김민희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쓰지 않고 엉엉 울 때, 가장 예쁘더라-) 김주혁은 분위기 잡고 나올 땐 그냥 그랬는데, 껄렁껄렁하게, 같이 크득크득거릴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나올 땐 어쩐지 정감이 간다.

얼마 전 토끼언니가 친일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며, 이런 단체에서 조용히 거액을 투자해 만들었던 영화가 청연이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러고보니 청연의 제작비가 꽤 거액이긴 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뭐 별로 납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난 청연이 괜찮은 영화로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다시 청연을 보는 마음이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치만 나 또 청소하다말고 강세기 추락할 때 같이 소리 한 번 질러주시고, 입 헤 벌리고, 고공 경주 장면 쳐다보고! 한다. (한 번 봤으면서도 다시 또 긴장하게 되는 건 망각이 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그래, 친일 미화는 아니야, 오히려 저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루어나가고 싶었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잖아, 라고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드는 생각이 아, 하고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그래, 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잖아. 저 사람 저렇게 치열했고, 저렇게 열정적이고, 또 저렇게 좋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잖아.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거였잖아. 그래도 저렇게 추구하고자 하는 꿈은 아름다운 거잖아, 저건 친일이 아니지, 친일 영화 아니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함으로, 사람들의 친일에 대한 증오의 범주를 좁히고, 이해와 용서의 폭이 넓어지도록 하는 게, 이 영화가 진정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행적에 대한 '명백한 사실'로 존재하고 있는 부분은 있으니까. 그 시절 박경원이 어쩔 수 없었듯, 많은 사람들 역시, 나도 나의 꿈을 위해,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박경원의 몸을 빌어 외치고 싶었던 건지도. 그러므로 권기옥이 아닌 박경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건지도.

내가 윤종찬이 아니므로, 그가 정말 순수하게 꿈을 이뤄가는 누군가를 그리고 싶었는지, 혹은 정말 그런 정치적 배경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토끼언니가 허황된 정보를 가져와서 내게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일단 인터넷 등으로 좀 사실 여부를 더 알아보기 위해 검색해봐도, 그런 사실에 대한 확인은 어렵기에, 함부로 단정짓거나 규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실은 그런 식의 문화적 수단을 통해 녹아들게 하는 그 무엇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연은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이긴 하다. 청연을 두고 하는 논란이 디워를 두고 하는 논란보다 훨씬 가치있을 것이다.




ps

청연 친일후원조직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재밌는 리스트를 찾았다.
역대 흥행작 리스트와 저주받은 걸작 리스트




어이없게도 저주받은 걸작과 더 친한 사건, 왼쪽 리스트에 본 영화들이 더 많다
저주받은 걸작들 중 아직 못본 사랑니와 귀여워도 내 하드에 곱게 저장돼있는걸 보니
난 저주받은 걸작들의 친구? ㅎㅎ

근데 웬지 많은 알라디너분들도 그럴 것만 같은 느낌이 ^^

역대 흥행작 중에서는 친구, 투사부일체, 가문의 위기를 못봤다
향후에도 그닥 볼 의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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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11-2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영화를 뜸하게 보는 편인데, 그래도 왼쪽에서 10편(<청연>을 못 봤고), 오른쪽에서 8편을 봤네요(<투사부일체>와 <가문의 위기>를 안 봤습니다. TV에서 스쳐가긴 했지만). 아, <친구>도 <실미도>도 끝까지 본 적은 없네요!..

웽스북스 2007-11-26 01:38   좋아요 0 | URL
흐흐흐 역시 알라딘 분들은 마이너 기질이 강해요 ㅋㅋ

Mephistopheles 2007-11-2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를 지켜라..와 고양이를 부탁해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에요..^^ 보는 관점에 따라. 허나 조폭미화 영화는 언급회피고 태극기 휘날리면 같은 영화는 글쎄요 감독의 역량이기 앞서 돈의 역량이라고 보고 싶네요..청연같은 경우 저는 안봤습니다만 실존인물의 미화가 내심 걸렸습니다. 특히 평가가 분분한 인물에 대해서요..^^

웽스북스 2007-11-26 01:3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좋아한답니다. 그러고보니 장준환감독은 차기작을 안찍은지 꽤 됐네요- 태극기 휘날리며,는 보다가 좀 화났죠-

마늘빵 2007-11-2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님과 같이 <투사부일체>와 <가문의 위기>를 안봤는데 이건 계속 볼 일 없을거 같고, <귀여워> <빈집> <지구를 지켜라>를 못봤고, <청연>은 보다 말았군요. :) 비슷비슷.

근데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하지 못했다는게 좀 의외.

Mephistopheles 2007-11-26 09:59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박찬욱감독의 복수 삼부작은 결코 대중적인 영화라고 보긴 힘들어요. 아마도 박찬욱감독의 칸영화제 수상 이후 올드보이부터 언론매체에 집중 보도를 받으면서 관객들이 벌떼처럼 모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duelist 2007-11-26 16:03   좋아요 0 | URL
음.. 정확히는 Mephistopheles님 댓글에 댓글을 달고 싶은데...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은 대중적인 영화들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일단 소재 때문에라도 B급 영화로 분류되죠.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하지 못한 것은 한국 관객 정서상 그리 이상할 건 없죠..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도 만약 <올드보이>직후가 아니었다면 그정도로 관객몰이를 하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올드보이>는 18세 관람가라는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300만 (확실하진 않을지도..)정도의 관객몰이를 했고, 그건 칸 그랑프리 수상 전이었죠. <올드보이>는 상업영화와 소위 작품영화(예술영화..라기엔 좀 그렇고)의 경계선에 있는 영화로, 어느 정도의 흥행 코드를 갖추고 있다라고 보여집니다. 여느 작품영화처럼 불가해한 게 아니라,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며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중들도 '아, 이건 잘 만들어진 영화구나'라고 납득하게끔 만드는 요소들이 있죠. 음악과 스타일리쉬함 등등. 으.. 말이 길어졌네요. 하여튼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올드보이>는 칸 수상 전에 이미 흥행에 어느정도 성공했으며, <복수는 나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복수 시리즈는 나름 흥행 코드들을 갖추고 있지 않았나 싶다는 겁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명백히 칸 수상 효과를 봤지만 그렇다 해도 영화가 정말 대중적이지 않았다면 300만이 넘게까지는 안 들어왔을 거란 말이죠, 더구나 18세였고. 가까운 사례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상영 중 칸 여우주연상 수상에도 불구,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죠. 어쨌든 박찬욱 감독은 확실히 대중적 코드를 파악하고 있지만 이젠 위치가 있으니만큼 약간은 무시하고 부러 마이페이스를 고집하는 경향도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같은 경우). 하지만 차기작 쯤에선 어느 정도 대중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가네요. 여튼 뭐, 쓸데없는 헛소리였습니다.

웽스북스 2007-11-26 19:13   좋아요 0 | URL
아프님 // 귀여워,는 저도 모르겠고- 빈집과 지구를 지켜라는 한 번 볼만한 영화지요 ^^ 저는 빈집 이후로 김기덕 감독을 좋아했더랍니다
메피님 // 그죠, 그래도 박찬욱은 JSA때부터 집중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그 반사효과를 못봤다는 면에서는 좀 의외일 수 있겠죠- 영화도 괜찮았는데
듀얼님 // 크크 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좋아했답니다 ㅋㅋ 조목조목, 헛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

Mephistopheles 2007-11-28 12:18   좋아요 0 | URL
어엇 듀얼리스트님 댓글은 결코 쓸데없는 헛소리가 아닌걸요..^^ 덕분에 즐거운 사실 하나 알고 갑니다.^^

시비돌이 2007-11-2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쪽 다 아홉편씩 봤네요. 이건 메이저도 아니고, 마이너도 아녀...

웽스북스 2007-11-26 19:13   좋아요 0 | URL
메이저도 아니고 마이너도 아니고, 마니아입니다 ㅋ

마노아 2007-11-2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른쪽은 다 보았는데, 왼쪽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복수는 나의 것, 청연을 보았네요.
청연은 시사회 당첨되어서 극장에서 보았는데 숨막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름답고, 안타깝고,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기분이었죠.
저 시대에 내가 살았더라면 얼마만큼 꿈 꾸고 또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지...결코 장담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전 고양이를 부탁해와 플란더스의 개가 보고 싶어요. ^^

웽스북스 2007-11-27 00: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청연은 극장에서 봤었어요 ^^
저도 마노아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또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봤었고,
다시 보면서 또 그 부분 때문에, 청연이 참 오묘한 지점을 건드리면서 이해받고 싶었던 그 누군가의 마음들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했고, 그래서 참 뭐라고 딱, 말하기가 어려운 영화에요

고양이를 부탁해,와 플란더스의 개,는 둘다 좋아요
플란더스의 개는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아서 봤어요 ㅋㅋ
(아직도 하드에 있는데~ ㅋㅋㅋ)

이매지 2007-11-2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4편, 오른쪽 5편이군요 ㅎ
청연은 아직 못 봤는데 궁금하군요 :)
지구를 지켜라는 정말 쵝오!

웽스북스 2007-11-27 23:58   좋아요 0 | URL
흐흐흐 지구를 지켜라 인기짱!!!

잉크냄새 2007-11-2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편의 영화중 개인적으로 최고였던 것은 <지구를 지켜라>군요. <살인의 추억>이 한국영화중 최고라 생각하는데 관중몰이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나보군요.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중 전 <복수는 나의 것>이 제일 재미있었고요.

웽스북스 2007-11-27 23:59   좋아요 0 | URL
살인의 추억은 저주를 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매우 심히 흥행을 하지도 않았나봐요-저도 좋아하는 작품이고 ^^ 봉준호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좋아요

2007-12-01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7-12-01 23:30   좋아요 0 | URL
뭐 싫을 건 없지만, 저는 볼 수 없도록 돼 있는 포스트인가보네요
출처 밝히고 내용만 가져가신 거라면 오케이입니다
 


추석에 만난 영화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역시나 이렇게 추석이 지나버린 관계로 간단히 메모만 남긴다, 그렇지 않으면 쓰지 못할 것을 이제 너무도 잘 알기에 ㅠ (스스로의 게으름을 인정해 버린 지경) 

추석에 만난 영화는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 보고 싶어서 극장에서 본 영화 : 원스, 즐거운 인생 (공교롭게도 둘 다 음악 영화다)
- 보고 싶지 않았으나 극장에서 본 영화 (권순분여사납치사건)
- 기나긴 청소와 함께한 곰티비 무료영화 : 잔혹한 출근, 각설탕, 아는여자 (또봤다, 하도볼게 없어서- 곰TV여 무료 영화 인프라를 좀 확장해 주세요)
(청소용 영화의 조건은 집중하지 않아도 내용 파악에 전혀 무리가 없는, 자막 볼 필요 없는 한국 영화)

위 영화들에 대해, 관람 순서대로 살짝 살짝 얘기해 보자면


원스

올가을 딱 한편만 영화를 본다면 난 이 영화를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포스터에서 남녀주인공의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제작비 총 9000만원으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영화는 꼭 돈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님을 반증한다.
영화는 사랑, 그리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악을 앞에 놓아야 할지, 사랑을 앞에 놓아야 할지 살짝 고민했다. 음악을 앞에 놓은 이유는 이들의 사랑이 빛나는 이유가 음악 때문이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또 이들의 음악이 빛나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결국 이 두가지가 서로를 빛나게 만들고, 영화를 빛나게 만들었다. (결국 사랑과 음악의 순서는 이름순으로 넣었다, 가나다든, abc든 ㅋㅋ)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면 특별할 것도 없는 스토리라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여운이 긴 이유는, 이들이 음악을 아끼듯, 가만가만 서로를 아끼며 배려하는 모습이 그대로 마음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이 두 배우가 실제로도 연인 사이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걸까?
그리고 음악은 매우 훌륭하다. 남자 주인공인 글렌 한사드가 거의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했고, 여주인공은 그의 밴드에 객원 보컬로 참여한 실력파다. 88년생이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여주인공의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이다.

잔혹한 출근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만인의 연인 균,이 등장하는 영화,인 지 몰랐다. 진부한 설정, 떨어지는 개연성- 나는 정말이지 직장인들의 삶과 애환을 닮은 영화인 줄 알고 이 영화를 봤단 말이다, 그러니까 난 이 영화를 보며 엄청 공감할 줄 알았다, 유괴범에 대한 코미디 영화일 줄이야, 도무지, 유괴가 어떻게 코미디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는 여자

2004년 정도에 봤으나, 워낙 볼 무료영화가 없어 한 번 더 보게 됐다. 두번째임에도 불구하고 곰티비 무료영화들 중 제일 잘봤다 싶은 영화. 

각설탕

얼마 전 매우 재미없게 읽었던 소설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끼리 모독, 그리고 영화 드리머와 딱 빼닮은 영화이다. 굳이 우리나라 버전으로 이런 영화가 또 하나 필요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하나 더 갖다 붙이자면 '여성'이라는 코드가 하나 더 추가된 정도랄까? 하지만 이 역시 진부하다. 각설탕은 영화 내 주요 소재로서의 모티브가 부족했고, 과천 경마장은 기껏 장소 대여를 해줬으나 오히려 이미지는 더 안좋아진듯- 누구를 위한 영화였을까, 결국 임수정?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김상진의 코미디를 워낙 안좋아라하는 터라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으나, 엄마가 추석 전부터 함께 보자고 예약해 놓은 영화이기에- 머리도 식힐겸, 하는 생각으로 가서 봤다. 정말 머리가 식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영화의 해악성, 즉 납치범은 선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며, 정작 납치를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은 매우 못되고, 되바라진 것들-이라는 설정이 주는 해악성은, 자신도 모르게 납치,라는 엄연한 범죄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며, 그들의 승리를 응원하게 되는 데 있다. 나는 야한 영화보다는 이런 영화가 20세 이상 관람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는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영화가 가족 영화라는 이름으로 추석 시장에 나와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나름 '교훈'이라는 걸 주겠다며 끝낸 듯 하지만 이런 식의 억지 교훈은 역시나 노땡큐다.
2미터를 훌쩍 넘는 키를 가진 여성의 비현실성, 그리고 그녀에 대한 희화화도 화가 났지만, 장면 장면마다 제대로 맞추지 못한 화면 비율 역시 눈에 거슬린다. 

즐거운 인생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박민규는 작품집 뒤 소감에 이 책을 댄디보이였던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글을 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알게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음악을 좋아하고 춤도 잘추던 아버지는 댄디보이였으며, 그런 아버지가 '나같은 것'을 키우느라 그런 삶을 포기하게 된 게 자신은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단편 누런강, 배한척을 읽는 마음은 내내 편치 않았다. 그의 작품이 한층 무게를 덧입은 느낌이랄까.
즐거운 인생은 그런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박민규의 아버지가 떠올랐고, 또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는 나를 위해, 또 어떤 '즐거운 인생'을 포기했어야만 했던 걸까.
악기를 처음 잡던 그들의 얼굴에, 그 어린아이 같은 표정에 나도 함께 설렜다. 동시에 그 표정, 그 천진함을 빼앗아 간 그들의 삶의 무게가 또한 슬프게 다가온다. 중년배우 셋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고, 애 티를 벗은 장근석은 중년배우 셋 틈에서의 반사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을 통해 보는 여성은 불편하다. 라디오스타에서도 살짝 보였지만 여성들은 항상 그들에게 비루한 현실을 깨닫게 하는 존재에 그친다는 점은 좋은 영화를 삼키다 만 느낌을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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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vie]음악으로 만난 단 한번의 순간! once
    from Energizer Jinmi's Blog! 2007-09-27 11:03 
    오랜만에 꾸밈없는 영화한편을 봤다. 옛사랑의 상처를 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자 길가에서 꽃을 팔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순수한 한 여자 영화를 본 뒤에도 한참동안 그들의 음악과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자의 노래속 사랑의 상처를 그녀는 단번에 알아본다. 그들은 음악으로 교감하며 점점 서로에게... 삽입 곡들을 다 좋았지만 그 중 가장 맘에 들었던 곡은 직접 작곡한 곡에 가사를 넣어달라는 남자의 말에 집에 오는 길, 여자 혼..
  2. 불편함의 정체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10-03 12:45 
      영화 즐거운 인생은 즐겁게 보면서도 묘한 찝찝함을 남겨준 영화다 남성들의 공동체, 주변인으로서의 여성 물론 여성들의 자매애를 그린 영화들도 많고 여기 비친 남성들의 모습에 동의 못할 남성들도 많겠지만 이준익 감독 영화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여성에 대한 시선은 그가 감독으로써, 어느 정도는 극복해야 할 옥의 티처럼 여겨진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서걱 서걱 걸리는 불편함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