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집에 오니 방이 거의 노다메가 와서 친구하자고 할 수준이다. 같이 치워줄 치아키센빠이가 없으니, 나는 홀로 방을 치우는데, 이 방에서 지난 2주간 살았던 게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옷과책과잡지가적절히조화롭게섞여있는 침대와 바닥 ㅠㅠ 하하하! 지난 2주간 너무 바빠서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청소엔 한국영화. 오늘도 여전히 청소를 하며, 나는 곰티비 무료영화 중 볼만한 한국 영화를 찾았으나, 그다지 볼만한 영화가 없어, 작년에 봤던 청연을 한번 더 보기로 했다. 아뿔싸, 이 영화는 청소용 영화로는 70%만 합격점인데, 왜냐하면 대사의 나머지 30%가 일본어이기 때문에, 화면을 응시하지 않고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청소용 영화의 제 1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셈.
작년 초 청연을 보며, 난 이 영화가 참 좋았었다. 나 역시 이 영화는 괜한 '친일 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일단 내가 장진영을 좀 좋아한다. 나는 여배우가 예뻐보이기를 포기한 순간에, 가장 예뻐 보인다. 윤종찬의 소름,에서도 그렇더니- 이 영화에서도 장진영은 참 빛나고 예쁘다.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노희경의 '굿바이 솔로'를 보며, 김민희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쓰지 않고 엉엉 울 때, 가장 예쁘더라-) 김주혁은 분위기 잡고 나올 땐 그냥 그랬는데, 껄렁껄렁하게, 같이 크득크득거릴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나올 땐 어쩐지 정감이 간다.
얼마 전 토끼언니가 친일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며, 이런 단체에서 조용히 거액을 투자해 만들었던 영화가 청연이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러고보니 청연의 제작비가 꽤 거액이긴 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뭐 별로 납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난 청연이 괜찮은 영화로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다시 청연을 보는 마음이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치만 나 또 청소하다말고 강세기 추락할 때 같이 소리 한 번 질러주시고, 입 헤 벌리고, 고공 경주 장면 쳐다보고! 한다. (한 번 봤으면서도 다시 또 긴장하게 되는 건 망각이 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그래, 친일 미화는 아니야, 오히려 저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루어나가고 싶었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잖아, 라고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드는 생각이 아, 하고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그래, 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잖아. 저 사람 저렇게 치열했고, 저렇게 열정적이고, 또 저렇게 좋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잖아.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거였잖아. 그래도 저렇게 추구하고자 하는 꿈은 아름다운 거잖아, 저건 친일이 아니지, 친일 영화 아니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함으로, 사람들의 친일에 대한 증오의 범주를 좁히고, 이해와 용서의 폭이 넓어지도록 하는 게, 이 영화가 진정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행적에 대한 '명백한 사실'로 존재하고 있는 부분은 있으니까. 그 시절 박경원이 어쩔 수 없었듯, 많은 사람들 역시, 나도 나의 꿈을 위해,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박경원의 몸을 빌어 외치고 싶었던 건지도. 그러므로 권기옥이 아닌 박경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건지도.
내가 윤종찬이 아니므로, 그가 정말 순수하게 꿈을 이뤄가는 누군가를 그리고 싶었는지, 혹은 정말 그런 정치적 배경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토끼언니가 허황된 정보를 가져와서 내게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일단 인터넷 등으로 좀 사실 여부를 더 알아보기 위해 검색해봐도, 그런 사실에 대한 확인은 어렵기에, 함부로 단정짓거나 규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실은 그런 식의 문화적 수단을 통해 녹아들게 하는 그 무엇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연은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이긴 하다. 청연을 두고 하는 논란이 디워를 두고 하는 논란보다 훨씬 가치있을 것이다.
ps
청연 친일후원조직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재밌는 리스트를 찾았다.
역대 흥행작 리스트와 저주받은 걸작 리스트

어이없게도 저주받은 걸작과 더 친한 사건, 왼쪽 리스트에 본 영화들이 더 많다
저주받은 걸작들 중 아직 못본 사랑니와 귀여워도 내 하드에 곱게 저장돼있는걸 보니
난 저주받은 걸작들의 친구? ㅎㅎ
근데 웬지 많은 알라디너분들도 그럴 것만 같은 느낌이 ^^
역대 흥행작 중에서는 친구, 투사부일체, 가문의 위기를 못봤다
향후에도 그닥 볼 의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