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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 Christmass in Augu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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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의 크리스마스. 이젠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해진 제목이지만, 여전히 이 영화의 제목은 너무나 서정적인 울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한 번 마음에 든 영화는 몇 번씩이고 다시 돌려보는 나의 특성상 이 영화도 처음 본 후로 몇 번이고 다시 봤지만, 처음 봤던 그 때 느꼈던 그 아련함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 그 묘한 어감에서 배어나오는 아름다움이란.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이고,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이라는 거창한 이름들 아래 놓여있는 이 영화는 그러나 그 자체로는 참 잔잔하고 소박하다. 멜로영화라지만 그 흔한 키스신 한 번 나오지 않고, 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이라는 통속적인 설정을 갖고 있지만 억지로 눈물을 강요하는 장면도 찾아볼 수 없다. 자극적으로 관객의 감정을 건드려대는 영화들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한없이 지루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강렬한 팝아트보다는 잔잔한 수채화, 그것도 풍경화에 가까운 느낌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지만, 내겐 참 좋은 영화였다.

'정원'은 동네의 사진사다. 작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그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삶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다. 그는 더 이상 억울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다는 듯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그의 앞에 '다림'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주차 단속 요원인 그녀는 불법 주차를 한 차를 찍은 사진을 맡기기 위해 정원의 사진관을 찾는다. 그렇게 그의 일상과 그녀의 일상이 만난다. 아주 미묘하게 사랑의 감정이 자라나는 가운데로, 두 사람의 일상은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흘러간다. 다만 함께 있는 시간의 밖에서 그의 일상에는 그녀를 생각하는 시간이, 그녀의 일상에는 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갈 뿐.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소심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라간다. 그래서 더욱 아련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한석규의 연기는 참 담백하게 '정원'이라는 인물을 그려낸다. 그의 편안한 인상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역할과 아주 잘 어울려서인지, 그의 연기에서는 어떤 가공된 면이나 인위적인 부분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엷어진 슬픔에도, 소소한 즐거움에도 웃음짓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의 흐름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영화를 보며 잘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편인 내가 영화 속 그의 모습을 보며 때론 가슴아파하기도 하고 때론 미소짓기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한석규의 그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심은하의 '다림'은 청순하면서도 도도한, 때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은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녀의 연기 또한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서 사랑에 빠진 그 미묘한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좋은 영화와 좋은 연기들이 있지만, 나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의 영화와 그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연기가 좋다. 허진호 감독은 배우의 모습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여내는 방법을 아주 잘 아는 사람 같다. 그래서 내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가보다.

소박하고 단정한 영상과, 그에 어울리는 음악들도 좋았다. 반복되는 메인 테마도 좋았고, 정원의 나레이션과 함께 흐르는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그리고 한석규의 목소리로 듣는 김광석의 '거리에서'도 좋았다. 이 영화에선 한석규의 나레이션이 많이 나오는데, 내용의 전달 효과도 있지만 그 감미로운 목소리 자체가 영화의 흐름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느낌도 컸다. 역시 배우의 목소리란 중요하구나, 를 다시 한번 느꼈던. 

오랜만에 다시 보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화 속에서 정원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는다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이 세상에는 있으리라. 이 영화도, 이 영화가 내게 주는 감정도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아니, 믿는다. 정원에게 다림이 추억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영화도 내게 추억이 되지 않고 영원히 아련한 그 감정 그대로 남아 있기를. 그래서 때로 이토록 가슴이 허할 때 따스하게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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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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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레볼루셔너리 로드. 주연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것과 감독이 샘 멘데스라는 것, 그리고 저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이런 영화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는 표현은 좀 과한 것 같지만, 어쨌든 미처 짐작하지 못했었다. 한국어가 모국어 아니랄까봐 머릿속에선 어설픈 직역으로 음... 혁명의 길? 따위의 뜻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혁명 내지는 전쟁을 겪어내는 두 남녀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아무튼 기획 단계일 때 듣고 뭐 그냥저냥 싶어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중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들려오는 호평에 궁금해져 보게 되었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인데,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이렇게나 촘촘하게 그 영화가 들어차있어 마침내 그에 관한 글을 쓰게 한다는 건... 그만큼이나 그 영화가 강렬했다는 뜻이겠지.
 

그랬다. 영화는 제법 오랜만에 만나는 강렬함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기꺼이 그 매력 안으로 빠져들었다. 혼란, 증오, 무기력, 권태, 도피에의 갈망, 환상, 희망과 절망... 그 모든 인간의 것들이 혼재되어있는 영화. 영화는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모두가 갈망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희망도 꿈도 없이 불화만이 존재하는 윌러 가족을 (영화에서 집중하는 것은 가족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부에 치중되어 있긴 하지만) 조명한다. 가장인 프랭크 윌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는 그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높은 수입의 수단일뿐인 회사에 다닌다. 거의 비슷비슷한 수트 차림의 남자들이 가득한 출, 퇴근 길에서 볼 수 있는 프랭크의 얼굴엔 기계적인 생활에 지치고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가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생각해내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여사원과의 가벼운 외도 정도. 그에 반해 부인인 에이프릴 윌러 (케이트 윈슬렛) 는 보다 적극적이다. 누적된 권태에 짓눌려있던 그녀는 '이것은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다'라는 반복된 깨달음 끝에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 바로 "파리로 떠나자!"는 것. 처음에는 비현실적이라며 내켜하지 않던 프랭크도 에이프릴의 강렬한 설득에 결국 넘어가고, 그들은 파리로 떠날 꿈에 부풀지만...... 꿈을 꾼다고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게 어디 꿈이겠는가. 그들 부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각각 직면하게 되고 그들 사이의 갈등은 점차 격렬해진다.

 
영화는 50년대 미국 가정의 꿈과 좌절을 보여주지만,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은 50년이 지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이상과 너무나 다른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 멀쩡한 직장을 내팽개치고 파리로 떠난다는 그들을 주위 사람들은 뜨악하게 바라본다. 오직 제정신이 아니라는 존만이 그들의 꿈을 지지할 뿐이다. 정신 이상이 있다지만, 존은 핵심을 파악하고 정곡을 찌르며, 구구절절이 맞는 말만 늘어놓는다. 미친 세상에서는 미친 사람만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어째 씁쓸해지는 대목이었다. 존이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 그건 내가 바로 그 아기 (에이프릴이 임신한) 가 아니라는 거야!"라는 대사를 할 때는 정말 소름이 다 끼쳤다. 어쩌면 저렇게 정곡을 찌를 수 있는건지. 솔직히 존이라는 캐릭터의 대사들로 인해 영화가 너무 직접적으로 설명된 듯한 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는 불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주어 영화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깊게 뿌리내린 권태로 지탱되던 윌러 가정은 한때의 환상과도 같은 꿈과 충돌하여 활활 타오르다가 그 불꽃이 사그러짐과 동시에 무참히 산산조각나고 만다. 영화는 그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충분히 드라마틱하게 담아낸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도피를 꿈꾸며 오랜만에 행복을 찾은 윌러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들은 행복한데, 그것을 보는 관객의 마음은 어쩐지 편하지만은 않은, 아니 오히려 너무나 불안한 것이다. 그들이 찾아낸 행복에의 길이 견고한 벽돌길 같은 것이 아니라 여차하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수도 있는 위태로운 것이라는 걸, 영화의 탁월한 흐름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꿈, 그것은 얼마나 달콤하며, 그만큼 위험한가. 


차분하지만 우울하지 않고, 담담해서 그만큼 절망적인 느낌까지 자아내는 스코어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더 효과적으로 살렸다. 고전적인 느낌의 깔끔한 영상도 취향 탓인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빛났던 것은 감정에 충실한 캐릭터들과 그를 연기한 배우들. 특히 두 주연 배우들의 풍부한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다혈질 마초 연기는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런 종류의 연기는 흔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껏 흥분한 뒤에 한풀 꺾여 불안정해진, 어딘가 유아적인 느낌까지도 주는 그 불안한 표정과 눈빛 연기가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뭔가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이해심과 동정심을 유발하고, 그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때문에.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 또한 절정이었다. 나는 그녀가 흥분했을 때보다도 싸늘하게 가라앉아 담배를 피울 때, 딱딱한 표정으로 평범한 동작들을 할 때 그녀의 연기에 매료되었다. 그녀가 완벽히 역할에 몰입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서지기 직전의 여인, 에이프릴을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말해서 지겨울 법도 하지만, 나 역시도 케이트 윈슬렛이 '더 리더'가 아닌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오스카를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그들을 파멸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일까. 지독히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권태인가, 아니면 안일하나마 잔잔했던 일상을 뒤흔들어놓은 꿈인가. 수많은 대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어느 것 하나에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가닥가닥 엉켜 있는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들 중에서 어떤 것을 결론삼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아무도 진실을 잊어버리진 않아. 다만 거짓말에 능숙해질 뿐이지." 라던 에이프릴의 대사만이 이 모든 생각들 속에서 홀로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라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이 영화가 내게 던진 가장 큰 질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나는 맹렬히 생각을 더듬다가 결국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해버리고 만다. 모르겠어요. 그리고 침묵한다. 영화의 마지막처럼, 나도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스스로 차단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인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역시,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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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 Good Will Hunt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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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다. 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적 외모라고도 할 수 있을, 아무튼 제법 수려한 외모에 평범한 키와 몸매를 가진 청년. 대학에서 청소부를 하고 공사장에서 노가다를 뛰며 한심해 보이는 친구 녀석들과 어울려 놀지만 윌의 눈빛에는 그런 것들로 가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반짝이는 천재성. 그는 청소부로 일하는 MIT공대에서 학생들을 위해 걸어놓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하루만에 풀어내는, 그래서 결국 교수의 눈에 띄고야 마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천재'다. 그러나 그는 삐딱하기 그지없는 성격의 소유자에다, 이따금씩 폭력을 행사해 법원에 드나드는 문제아이기도 하다. 결국 구속되기에 이른 윌을 찾아온 것은 MIT의  램보 교수. 그는 윌에게 함께 수학을 할 것과 또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구치소에서 나올 것을 권한다. 윌은 비웃으며 말한다. I'll do math, but I'm not gonna do any fucking theraphy. 그러나 결국 윌은 그 두 조건을 받아들이고 나오기로 한다. 그리고 몇 번이나 테라피스트들을 욕보인 윌은 마침내 심리학 교수 션을 만나게 된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줄거리는 대략 저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차마 문장 몇 줄로 요약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그건 꼭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 글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녹아들어있는 그런 영화, 굿 윌 헌팅.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사실 맷 데이먼의 매력에 푹 빠져 다른 걸 볼 겨를이 없었다.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었고, 그 자체도 너무나 매력적이었기에 그의 열렬한 팬인 내겐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비단 맷의 매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윌이라는 캐릭터의 천재성과 그 삐딱함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의 판타지 때문이었다. 진정한 인간 관계와 그로 인한 상처의 치유.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고 감싸줄 수 있고 내가 그 어떤 부족한 짓을 하더라도 그 아래 숨은 진심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 로빈 윌리암스가 연기한 션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윌은 그런 션을 처음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삐딱하게만 대하지만, 점점 그의 진심에 무장해제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얘기지만 이 영화는 그것을 그렇게까지 진부하지는 않게 풀어내면서도 제법 짙은 감동을 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판타지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션같은 사람이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영화의 결말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데, 여느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의 끝은 억지스러운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보통 영화 같으면 윌이 결국 성공을 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보여준다거나 혹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 정도는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 텐데, 이 영화의 끝은 물론 (열린 형식의) 해피엔딩이긴 하나 그런 식의 구태의연한 해피엔딩과는 좀 궤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이것 또한 영화를 봐야만 느낄 수 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영화 속에 흘러나오는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 또한 이 영화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동안 Miss Misery를 많이도 들었었지. 명장면은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션이 "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해서 윌에게 말해주는 장면. 정말 감동적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아주 감정 이입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저 장면에서만큼은 정말 내가 위로를 받는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게도 저런 사람이 있다면, 싶은 판타지의 절정. 동시에, 타인에게서 나의 치유를 구하고 싶다는 판타지이기도.
 

아무튼 그래서 내겐 소중한 영화 중 하나다. 별이 다섯개 씩이나, 싶기도 하지만 역시 네 개만 줄 수는 없는 영화이므로, 과감히 다섯개. 때로 위로를 받고 싶어질 때,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어서 차마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러이러하니 위로해줘, 라고 할 구실이 없을 때, 꺼내 보게 되는 영화. 시간이 지나면 나는 지금보다 좀 더 견고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이 영화의 위로가 절실해지는 순간이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건 분명 좋은 일일 텐데, 내가 그만큼 더 성숙했다는 뜻이 될 텐데,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왠지 쓸쓸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최대한 천천히 오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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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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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총체적으로 리뷰한 글을 원하신다면, 가볍게 패스해주시길*)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엔 이상하게도 손이 가질 않았다. 아니, 사실 '이상하게도'라는 수식어는 가증스럽다. 이상문학상이라면 일단 나오자마자 읽고야 마는 내가, 연초에 나온 작품집을 올해의 중간이나 가도록 읽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었던 것은 바로 대상 수상자가 권여선 작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권여선 작가는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어서. 게다가 우수상 수상자들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천운영 작가 하나 뿐이었고,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던 하성란 작가와 또한 영 내 취향이 아니었던 윤성희 작가, 기대를 지나치게 했다가 실망했던 전적이 있는 박형서 작가, 몇몇 단편을 제외하면 도무지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던 박민규 작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몰랐던 정영문 작가와 김종광 작가. 이런 식의 구성이었기 때문에 선뜻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읽은 것만도 기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아무튼 읽고 난 지금,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 작가의 '사랑을 믿다'는 생각만큼 끔찍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이게 왜 대상을 수상했는지 모르겠다는 의아함이고, 윤성희 작가의 '어쩌면'은 생각보단 재밌었지만 대상을 받지 못한 게 의문스러울 정도는 아닌 정도였고, 천운영 작가의 '내가 데려다줄게'는 작가의 비범함을 새삼 느끼게 해준 수작이었다, 는 정도의 소감이다. 나머지 작가들의 소설은 별로 끌리지가 않아서 아직 안 읽어봤다. 그리고 제목에서 밝혔듯 이 리뷰의 메인이 될 박민규 작가의 '낮잠', 이 소설은 박민규 작가에 대한 나의 견해를 통째로 뒤흔들어버릴 정도로 막강했다. 읽으면서 내내, 이걸 정말 박민규가 썼다고?! 정말?!?!?! 이런 놀람과 감탄과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자 오랜만에, 리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꽤 오랜만에.
 
이쯤에서 말해둬야 할 것은 단연, 박민규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 (물론 '낮잠'을 읽기 전에 한한) 일 것이다.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이 아마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였던가. 당시 꽤 신선한 소설이었다. 재미도 있고, 독특하고, 내용도 있는.  그 다음으로 읽은 것은 '갑을고시원 체류기'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서 한국 소설판에 제대로 된 구원투수가 하나 나타난건가, 했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단편집 카스테라를 읽고서는 그런데 좀,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이었다. 앞선 두 단편에서 적당히 표출되었던 독특함은 단편집 전반에 걸쳐 주체할 수 없이 만연되어 있어, 읽는 내내 이거 분명 유머러스한 부분인데 왜 나 웃을수가 없지, 이런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리송해진 기분으로 지구영웅전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같은 장편들을 읽고 나자 의아함이 거의 한계치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이후 핑퐁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박민규는 외계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다, 실제 그 외모도 다소 외계인스러웠다는 점도 한몫 한 결론이었다. 
그  이후 읽은 '비치 보이스'또한 여전히 그 다웠지만 그래도 지구인인 내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유머감각이어서 재밌게 읽었다. 결말은 역시나 당황스러웠지만. 아무튼 그래서, 참 유니크한 작가로군 (비록 나와는 잘 안 맞지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리뷰들을 보니 박민규 작가에 대한 칭찬이 더러 눈에 띄는 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낮잠'이 대상을 수상했어야 한다는 의견까지도. 기존의 박민규와 다르다는 소리에 도대체 어떻기에, 궁금해졌다. 일단 노년을 다뤘다는 것부터가 조금 의외였기도 하고.  

그리고 읽고 난 지금, 나는 박민규라는 작가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백만배쯤은 더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난 솔직히 박민규 작가가 장난질밖에 칠 줄 모르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장난질이 꽤나 수준있는 것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장난질이기 때문에 뭔가 깊이있는 울림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낮잠'에서의 그는, 정말이지 바뀌었다. 예전같은 황당무계함은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워지기만 했는가,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박민규만의 통통 튀는 위트는 살아있고, 독특한 수사도 볼 수 있다. 다만 그가 이렇게나 능란한 작가였던가, 하는 생각. 문득문득 느껴지는 삶의 무게감과 깊이, 웃음지으며 읽다가도 문득 짠해지는 것. 그리고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그가 인생을 이렇게나 제대로 다뤄내다니, 하는 감탄어린 감상이 절로 들었다. 실로 놀라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낮잠'에 별점을 매기자면 네 개에서 네 개 반 정도다. 이렇게 극찬을 해놓고 다섯 개를 주지 않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섯 개 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의외성에서 비롯된 호들갑도 한몫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권여선 작가의 '사랑을 믿다'는 별점 두 개 반에서 세 개 정도라고 생각하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높은거다. 나 또한 그가 대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어쨌든 제대로 업그레이드된 박민규 작가, 그라면 곧 별 다섯 개로도 모자랄 정도의 수작을 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머지않아 이상문학상 작품집 표지에서 대상 수상자로 커다랗게 박혀있을 그의 이름을 보게되길 기대하면서.

+) 이번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그러니까, '낮잠'을 제외하면 그다지 인상적인 편은 못 되었다. 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약해지고 있다는 전반적 의견에도 나는 아니라고 우기고 있었는데, 작년도 그랬지만 올해는 특히나 더 절감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내년에는 더 나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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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 (토이) 6집 - Thank You
토이 (Toy)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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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토이 6집이 나오기까지 목이 빠지도록, 눈이 튀어나오도록 기다렸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왠만큼은 기다렸다. 발매일이 되자마자 음반 매장으로 달려가 그의 음반을 집어든..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 상황도 아니지만, 한국에 있었다 해도 그의 음반을 발매와 동시에 구입했을지는 미지수다. 음반 구매에 있어 신중파라 자부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구매해온 음반들을 보면 이걸 살 땐 정말 미쳤었다- 싶은 것들이 종종 눈에 띈다. 어쨌거나, 그래도 발매일이 되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전곡을 들어보는 정도의 열의는 가지고 있었고, 듣자마자 정식 리뷰는 아니더라도 브레인스토밍 식의 러프 드래프트는 끄적였었다. 나의 태도는 그 정도.

처음에는 무조건 "고맙습니다, 유희열씨!" 이거였다. 김형중 보컬의 '크리스마스 카드'가 너무 좋았고, 전반적으로 변하지 않아준 것이 고마웠다. 사실 올해들어 지나치게 변해버린, 그로 실망스러운 가수들의 음반을 많이 접했고 그게 너무 실망스러워서 토이의 귀환에도 약간의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도 여전했고, 특유의 가사도 여전했고. 그러나 보컬 위주로 곡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는 나였으므로 전체적인 감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었다, 한동안. 허술하기 그지없는 브레인스토밍 식의 러프를 들여다보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고민했으나 결국은 때려치웠다. 전체적인 감상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지금의 느낌과 처음의 대략적인 느낌이 퍽이나 상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음, 뭐라고 해야할까. 이건 어렵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음반에 대한 감상이라는 게 순수하게 그 음반에 실린 음악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그 가수의 전적 등 외적인 요소가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이라는 가수가, 무려 6년이라는 공백 후에, 6번째 음반을 들고 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솔직히 이번 음반이 기대만큼은 좋지만 기대보다 완벽에 가깝지는 않다는 데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지난 5집이 상당한 명반이었기 때문에, 그만큼만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데도 불구, 왠만하면 평가절하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음반이 평작이라는 평가까지 하더라.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 음반은 평작까진 아니고, 수작이다. 명작, 걸작까진 무리라도. 지난 5집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아주 살짝 떨어진다. 물론, 다른 누군가가 만들었다면 걸작으로 평가되었을 수도 있겠다. 쌓아둔 명성과 타이틀이라는 게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그 위치에 올라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달콤한 딜레마일 것이다.

그러저러해서 나는 결국, 이 음반에 별 5개를 주지는 못하겠다. 정확히 따지고 들자면 평점 3.8~3.9점 정도가 괜찮을 것 같다. 참고로, 지난 5집은 4.4~4.5점 정도.

음악에 있어서 (특히 대중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는 곡들에 있어서), 관건은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꽂히는가' 라고 생각한다. 물론 들을수록 좋은 곡들도 좋지만, 그건 사실 거의 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곡이 생각보다 별로라면 '들을수록 중독될지도 모르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여러번 들어보는 노력을 하지만, 만약 내 관심 밖의 아티스트의 곡을 처음 들었을 경우, 그 곡이 그다지 귀에 확 박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 취향도 아니라면 나는 그 곡을 굳이 여러번 들어가며 '그래도 들을수록 좋을지도 모르잖아' 라고 생각하는 수고를 하진 않는다. 성급하게 일반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있어 나와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음반이 저번 음반보다 못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5집을 처음 들었을 땐 단번에 꽂힌 곡이 무려 7~8곡에 이르렀던 것에 비해 이번 6집에선 겨우 2~3곡 정도뿐이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포스가 약해졌다는 건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인 듯 하다.

처음 들었을 때 제일 꽂혔던 곡은 김형중 보컬의 '크리스마스 카드'. 그냥, 들었을 때 너무 좋았다. '좋은 사람'하고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됐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새로운 시도를 가장 덜한 곡이라 편안해서였을지도. 어쨌거나, 좋았다. 그리고 조원선 보컬의 'Bon Voyage'도 좋았고. 일렉트로니카가 토이 풍으로 잘 해석됐고, 조원선 보컬도 나무랄 데 없이 잘 어울렸다. 토이 곡들의 묘미에, 적확한 보컬의 기용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할 정도로 제대로 된 보컬 선정이었던.

그리고 처음엔 별로였으나 들을수록 좋아진 곡에는, 먼저 타이틀곡인 이지형 보컬의 '뜨거운 안녕'. 개인적으론 복고풍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곡을 들었을 때 '이거 뭐야, 너무 촌스럽.. 무슨 에어로빅 내지는 단체 체조 배경 음악같...' 이랬었는데, 그래도 난 토이의 팬이기 때문에 (정말?) 유희열씨가 타이틀로 선정한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여러 번 들었다. 그랬더니 과연, 중독됐다. 소중했던 내 사랑아 이젠 안녕- 하는 부분이라던가,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뜨겁게 안녕- 하는 부분이라던가. 은근히 중독. 다만, 보컬을 이지형으로 기용한 것은 무난하긴 했으나 탁월함까지는 아니지 않았나 싶다. 만들어진 곡 자체에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고, 그냥 무난했다는 느낌.  

그리고 또, 김민규 보컬의 '안녕 스무살'도 들을수록 좋아진 곡 중 하나. 묘하게, 토이 노래인 듯 아닌 듯한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곡 자체가 좋다. 가사도 마음에 와닿고. 무엇보다 보컬 선택을 잘 했다. 정말 잘 소화해냈다는 느낌. 뒷부분 가성 처리도 좋았고. 김연우 보컬의 '인사'도 들을수록 괜찮다. 다만, 이 곡은 처음 들었을 때 실망이 매우 컸던 곡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듯. 사실 김연우 보컬 라인의 발라드들이 굉장히 좋았었기 때문에 이번 음반 중 기대가 가장 컸던 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번 곡은 전작들에 비해 포스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포인트가 약해서 귀에 잘 익지가 않는다는 게 흠이고, 멜로디의 중독성이 약해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히 나처럼 가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멜로디의 약세는.

 기대 이하였고, 여전히 그저 그런 곡들은.. 먼저 성시경 보컬의 '딸에게 보내는 노래'. 제목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 아니 딸은 고사하고 결혼도 안 한 사람한테 왜 저런 곡의 보컬을? 하는 생각. 성시경은 감정 이입이 잘 됐을지 몰라도, 듣는 내가 이상했다. 유희열 본인이 부르기엔 쑥스러웠다니 그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결혼을 해서 딸이 있는 사람으로) 보컬을 썼으면 낫지 않았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그리고 더욱이, 곡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사실 난 '소박했던, 행복했던' 같은 풍의 쓸쓸한 발라드를 기대했는데.. 그리고 루시드 폴 보컬의 '투명인간'. 이 또한.. 내 기대와 심히 어긋났던 곡.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 장르 자체는 좋다. 컨셉과 가사도 신선했다. 그러나.. 나는 루시드 폴과 토이가 만났을 때 보여줄 수 있을,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잔잔한 발라드를 기대했기에. 둘 다 서정성으로 유명하잖은가 말이다. 그런 둘이 함께 작업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대가 컸었는데..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그야말로 '이건 뭐야' 했었다. 물론 듣다보니 처음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이건 새로운 시도에의,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로는 쳐줄 수 있어도 명곡까진 아닌거다. 안타까워라.

뭐.. 여기까지, 감히 토이의 이번 6집을 논해보았다. 전반적으론, 어쨌거나 일단은 고맙습니다, 라고 할 만하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내가 정말 오랜만에 무한반복해서 들은, 푹 빠진 곡이었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전히 다른 왠만한 음반들에 비해선 좋은 음악들이 많은 음반이 바로 이번 토이 6집이니까. 그러니 사실 불평 불만도, 다 애정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어쨌거나, 이렇게 툴툴거려도 또 새 음반 나온다 하면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고 기다릴 팬들이 은근히 많으니까 (이젠 은근히가 아닌가? 윤하 사건을 보면...), 부담 팍팍 갖고 앞으로도 좋은 곡들 많이 만드셔야 합니다! (절대로 협박이라구요, 하하)  앞으로 또 7년이 걸릴지 8년이 걸릴지, 아니면 10년 이상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희열씨 당신은 언제나 토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 당신만이 만들 수 있는 그런 멋진 곡들을 들려줄거라는 믿음 하게, 언제까지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눈이 튀어나오고, 목도 빠질 정도로 열렬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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