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비상식적인 것들이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존재해온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은 크기를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비상식적인 상식이 상식을 비상식적인 것으로 만들고, 지극히 정상적인 한 사람을 미치광이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누군가를 사회에서 성공한 누군가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이 모순들.

이 영화에서 보여준 예들을 극단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 우리 옆에서도 버젓이 이러한 것들이 여전히 권력을 등에 업은 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답답해서 여러 번 가슴을 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후진 안양 CGV가 영화관 실내 공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안양 CGV는 극장 내 공기를 개선하라!) 경찰에 반항한다고 정신병동에 보내는 것이나, 유모차로 물대포를 막아섰다고 구속하는 것이나. 비상식적이긴 마찬가지. 다만 그것을 둘러싼 합리라는 허울이 좀 더 교묘해지고 있으니,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면에서 해피엔딩으로 보는 사람도 있건만, 나에게는 결코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평생 아들을 찾아 헤맬 수 밖에 없는 엄마에게는 그가 쟁취한 정의가 가져다주는 기쁨보다는 잃어버린 생명이 주는 안타까움이 더 클 수 밖에 없음을 알기에. 정신병동에서 나오자마자 자식의 사망 추정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은 정신병원 안에서보다 더욱 처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참, 체인지링이라는, 동일 제목의 책이 있다. 오에겐자부로 작품인데, 처음에는 이 영화가 이 책을 작품화한건가 했었다는. (음, 영화화하기엔 좀 적절치 않을텐데. 하기도 했었지만) changeling이라는, '뒤바뀐 아이'라는 개념의 단어에서 착안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두 작품이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영화 체인질링은 죽은 아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평생 그 아이를 찾아다님으로서, 소설 체인지링은 새로 태어날 아이가 죽은 오빠가 뒤바뀌어서 다시 우리 앞에 올 선물같은 아이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죽은 자는 잊고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산자를 향해주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전자는 너무 처연해서, 후자는 너무 씩씩해서 슬픈 이야기. 망각의 은사가 절대 미칠 수 없는 우리 삶의 크디큰 상실들은 결국 이렇게 어떤 방식으로도 극복되기는 어려운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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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체인질링>공권력 vs 엄마
    from 남은 건 책 밖에 없다 2009-02-08 20:59 
    유괴를 다룬 영화, 싫다.  내키지 않았던 영화다. 실제 계속 도망치고 싶고, 눈가리고 싶었다. 아이에 대한 범죄는 보는 것만으로 섬뜩하다. 그런데 이 영화, 유괴를 소재로 하였으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영화 보는 내내 초조함에 떨었으나, 한순간도 관심을 돌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피곤한 날, 심야에 보는 영화는 자칫 졸기 쉬운데 정신을 놓을 수 없다.  (이하, 구체적이지 않은, 그러나 영화 골
 
 
Mephistopheles 2009-02-0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우리가 불합리,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버젓히 그것도 뻔뻔하게 합리라는 허물을 뒤집어 쓰고 통용되고 있다죠.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것들이 지나치리만큼 많아 보입니다.

웽스북스 2009-02-03 01:2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렇죠. 정말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또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깐따삐야 2009-02-0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도 봤군요! 처음엔 진실을 외면하더니 나중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들이대는 경찰. 하여간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영화였어요. 잠잠해졌었는데 이 리뷰를 보니 다시 또 승질이 불끈.-_-

웽스북스 2009-02-03 01:25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으흑. 저도 이 영화 보느라 너무 힘들었거든요. 제가 막 힘들었다고 하니까, 지루했다는 말인줄로 알아듣더라고요 사람들이..ㅋ 전 막 열받아서 가슴 치면서 봤는데 말이죠. 으. 이 다혈질 ㅋ

프레이야 2009-02-0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각의 은사가 절대 미칠 수 없는 우리 삶의 크디큰 상실들..
이 글귀를 붙들고 갑니다~ 아직 안 봤어요.^^ 꾸욱^^

웽스북스 2009-02-03 01:25   좋아요 0 | URL
아 혜경님 ^_^
혜경님의 리뷰도 기대!

다락방 2009-02-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어쩐지 이 영화가 모두가 봐야할 영화처럼 느껴지는거예요. 그래서 동생에게 꼭 봐라, 고 권한뒤 본다기에 예매해줬어요. 할 수만 있다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영화였어요.

웽스북스 2009-02-04 01:0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다락방님 동생분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합니다. 알라딘에 새벽세시 바람을 일으키신 다락방님이시니, 체인질링 바람 쯤이야 휙휙 손 몇번 까딱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_^ (그런데 체인질링 리뷰는 안써주실거에요?)

다락방 2009-02-04 08:10   좋아요 0 | URL
체인질링 리뷰, 못쓰겠어요, 웬디양님. ㅜㅡ
 



오펄드림

포비와 딩언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동생이 있다면 어떨까. 세간의 평가에 따른다면,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겠지만, 영화속 오빠, 애쉬몰은 동생의 보이지 않는 그 세계를 인정하고, 함께 그 아픔에 동참함으로 동생을 치유해낸다. 캘리엔(동생)의 상상 속에 살고 있던 포비와 딩언의 장례식을 치르던 날, 결국 마을엔 다시 평화가 찾아오니 그들이 평화주의자였는 켈리엔의 말은 틀리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사실 스토리라인만 따지자면 뻔하디 뻔한 스토리. 그렇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이야기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보이지 않는 것, 설령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한 것이라 해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일의 놀라운 힘.

실존하지 않는 존재이긴 하나, 켈리엔은 그들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야했으니, 장례식이라는 절차는 매우 온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함께 해준 수많은 사람들. 상상 속 존재의 장례식이라는 매우 비이성적인 행위에 동참한 그들이 보여준 것은 사랑이고, 화해였다. 여기서 우리는 화요일마다 함께해 주시던 모리 아저씨의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평화주의자 포비와, 아주 예쁜 딩언!


금발의 초원

(이건 쫌 스포일러)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내 친구들이 모두 죽었다면? 친구라고 나를 찾아온 녀석은 호호할아버지가 됐고, 그 할아버지 옆에 있는 이쁘장한 할머니가, 지금 내가 사랑하는 그녀, 마돈나라고? 그러니까 나는 여기 그대로 있는데, 나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그 어떤 곳에서 나의 미래를 만나고 있다. 그것도 내가 원하지 않는 미래를. 어떤 기분이 들까?

이누도잇신 감독은 치매 이야기마저 노인의 시선으로, 혹은 노인들의 문제로 풀어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여기, 내가,어느 날 갑자기 저런 당혹스러움을 맞이한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 현실감을 위해서인지, 감독은 남자 배우, 그러니까 팔십이 넘은 호호할아버지 역에 과감히 젊은 배우를 기용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스무살의 할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저 스무살의 할아버지는 서른살의 내가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것을 나의 미래가 아닌, 나의 현재로 가정하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영화속 주인공은 자신의 현실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다. 스무살의 나는 꿈이고, 여든살의 내가 현실인데, 꿈속의 스무살 내가 여든살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죽음을 택한다. 지붕에서 떨어지면서 이게 꿈이면 살겠고, 현실이면 죽겠지,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자신은 여든살의 자신을 받아들일 의지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의 몸이 아닌 마음의 자아인 스무살 자신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이 꿈이고, 또 무엇이 현실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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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1-1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지금 씨네큐브에서 『버터플라이』상영중인데요, 으윽, 여자주인공인 아이, 완전 예뻐요. 눈동자가 예술이에요. 솔직히 난, 『오펄드림』도 괜찮았지만 『버터플라이』 이게 조금 더 좋았어요. ㅎㅎ

웽스북스 2009-01-20 01:01   좋아요 0 | URL
오홋 정말요? 다락방님 추천작이라면 일단 저는 무조건 찜이잖아요 ㅋㅋ

프레이야 2009-01-2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발의 초원, 보고싶네요. ^^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한마디로 말한 것 같은 문장이에요.

웽스북스 2009-01-21 01:23   좋아요 0 | URL
하하 모리선생님은 보통보다는 좀 더 뜨겁게 말했을 것 같아요.
금발의 초원 보세요 혜경님 ^_^
 



작년 마지막 날에는 오기가와 나오코 감독의 <안경>을 중앙시네마에서 봤었다. 그러고보니 난 정말이지, 꼭 안경에 나오는 민박집 같은 카페 '불라'를 만나 한 해를 조금은 세상과 동떨어진듯한 기분으로 슬로우 슬로우하게 살았던 것 같다. 하여튼, 마지막날 볼 영화 하나는 기절하게 잘 고르는 것 같아.

올해는 렛미인이었다. 여전히 중앙시네마. 강남역 15분 거리 이내,라는 카피를 써붙여도 좋을 것 같은 (명동 한복판에서 도대체 왜? ㅋㅋ) 중앙 시네마에서 올해 좋은 영화를 참 많이 만났던 것 같아 좋다. 하하. 그러면, 내년에는 뱀파이어를 만나게 되는건가? 하하하.


렛미인

초대받지 않은 마음으로의 진입은 우리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한다. 이엘리처럼 눈으로, 얼굴로, 온몸으로 피를 흘리지 않았다 해도, 우리가 살아왔던, 무수한 시행착오의 역사들은 어쩌면, 닦아낼 수 없기에 이엘리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보다 더욱 깊은 상처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잠시만 내가 되어봐. 나는 살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거야. 필연적으로 타인을 희생시킴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선악의 눈이 아닌 공감과 슬픔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내가 당신이 될 수 있다면 또한 당신이 내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수많은 피흘림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진정한 소통이, 그리고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 태생부터 슬플 수 밖에 없는 그 무엇. 아마 열두살즈음 이엘리를 만나 아버지로 보이는 나이가 될 때까지 그녀를 사랑했던, 그래서 평생을 희생하며 살고, 결국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목을 물린 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모습은 오스칼의 전신이겠지. 그리고, 그 전에도 여러 번 그런 모습의 사랑이 존재해왔겠지. 하염없이 눈이 내리던 길을 달리던 기차 속, 둘만의 언어로 소통하며, 다시 그 춥고 외로운 길로의 첫발을 내딛던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008년
그리 많은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자주 극장에 가지 못했던 만큼
한편 한편을 신중히 골라서인지,
대부분의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42편의 영화
28번의 극장 방문
22명의 사람들
8편의 별다섯 영화


special thanks to 중앙극장 & 곰 TV

>> 접힌 부분 펼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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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국만 골라 보셨군요..^^

웽스북스 2009-01-02 12:37   좋아요 0 | URL
어흐흐 설렁탕 같은 한해였나? ㅋㅋ

마노아 2009-01-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바시르와 왈츠를 예매하고 오는 길이에요~ ㅎㅎㅎ

웽스북스 2009-01-02 12:37   좋아요 0 | URL
언제보세요? 흐흐 재밌게 보세요 ^_^

마늘빵 2009-01-0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경향신문에 보니, 신춘문예에서 <렛미인>으로 대중문화비평 상을 받았더라고요. 어떤 분이. 그래서 내용을 보려고 했는데, 아마도 금요일에 실리는 듯 해요. 오늘은 소설하고 시였나 두 개 실렸고. 영화도 꼭 봐야겠어요. 곰티비, 클럽박스는... ㅋㅋ

웽스북스 2009-01-02 12:38   좋아요 0 | URL
네네, 확인해보니 내일 실리더라고요. ㅎㅎ
곰티비 클럽박스, 얼마나 유용한데요, 특히 곰티비 무료영화는 좀 짱!

라로 2009-01-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셀마의 단백질커피--재목도 들어보지 못하고 넘어간 영화네요~.
어떤 영화일까 궁금궁금,,,그러면서 검색하지 않는 이 아줌마,,,넘 게을르죵!ㅋ
새해에요, 복 많이 받으세요.

웽스북스 2009-01-02 12:39   좋아요 0 | URL
아, 영화는 아니고요, 애니메이션이에요.
여러 작품들이 들어있는 건데, 은근 재밌었어요.

나비님, 정말 오래간만이에요~

사과나무 2009-01-0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 인생이? 으음..

버스, 정류장은 영어 제목이 무려 "L'Abri"

웽스북스 2009-01-02 12:41   좋아요 0 | URL
어헛, 이 L'Abri가 무려 그 L'Abri인건가요? 으흠. 그랬군요.

사실 달콤한 인생은, 사실 별점 예전에 줬던거 옮기면서
오홋, 내가 이렇게 많이 줬었군, 했어요. 그때의 마음이었달까. ^_^

2009-01-0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2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1-0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경> 참 좋았어요. <카라멜>도요. ^^

웽스북스 2009-01-05 02:04   좋아요 0 | URL
아, 혜경님도 두 영화 보셨군요 ^^
공교롭게도 둘다 여성감독? ㅎㅎ
 



12월 들어 두 번 극장에 갔고,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참 좋았다.
추천 숑숑 날리며


바시르와 왈츠를

이 영화는 레바논에서 있었던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의 현장에 있었던 감독이, 본인은 스스로 그 때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걸 일깨워준 친구는 전쟁 당시 개를 죽였던 기억들 때문에 밤마다 괴로워하던 친구였는데, 이를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마치 개였기에 대놓고 '사랑해'라는 가사를 쓸 수 있었던 루시드폴처럼 그 역시 자기가 죽인 존재가 개였기 때문에 맘놓고 괴로워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암튼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 때 있었던 사람들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면서 퍼즐 맞추듯, 자신의 조각난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가 수작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영화였다면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았을 독특한 섬세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특히 쇼팽의 왈츠곡에 맞춰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을 역설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미학적으로 꽤 훌륭하기까지 하다. 아마 그 장면은 두고 두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로 영화의 진행이 이어져왔기에, 마지막 실사가 주는 임팩트 역시 최대화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이기적 기억력 조작조차 없다면 나는 나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견딜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존재는 아닐까. 그게 꼭 사실일 수는 없더라도. 그저 좀 살기 위해서, 스스로를 속인다는 자각조차 없이 속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 그렇지 않을까.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음에도, 자신의 아픔을 마주볼 수 있는 편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도대체 '좀 살아보려고'의 노력은 언제까지 지속돼야만 살아볼 수 있게 되는걸까.

* 이 영화 메피님이 추천 여기저기 날리시는 걸 봤다. 메피님 말 들어 망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하하하.

벼랑위의 포뇨

포뇨 소스케 좋아~

아, 너무 귀엽잖아. 사실 미야자키하야오의 전작들에 비해 가볍다는 평이 많아 보러 가면서도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이렇게 사랑스럽다면야, 깃털처럼 푱푱 날아다녀도 용서할 수 있겠다. 하하.

보고 나오는 사람의 마음을 무한정 업! 되게 만들어주는 만화다. 게다가 나오는 길에는 눈까지 내리고, 길가에 나무는 반짝거려주니 나는 그만 버스 정류장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기쁜 상태로 전화기를 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환호성을 내지르며(미안ㅋㅋ) 강변역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좀 미친 것 같긴 했지만. 하하.

하야오식 인어공주 이야기, 자연과 문명의 화해,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지만, 사실 나는 그보다는 소통에 집중하게 된다.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바닷가에 있는 소스케의 아버지와 소스케가 모스부호로 대화하던 장면. 깜빡. 깜빡 깜빡.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줘. 깜빡 깜빡. 깜빡. 사랑해요. 조심하세요. 그 장면에서는 정말 뭉클해질 수 밖에 없다. 아, 거기에 비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편리한 커뮤니케이션들은 얼마나 매력이 없는지.

'사람이 될거야'라는 포뇨의 외침, 그 어리석은 존재가 왜 되고 싶은지 묻는 포뇨아빠의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포뇨의 항변은, 어리석게 그리워하고, 어리석게 사랑하고, 어리석게 어려운 길을 걷는, 바로 거기에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녹아 있음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하야오가 하고 싶었던 얘긴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또 혼자 이렇게 결론 내린다. 역시 사람이 물고기보다 아름다워. 아무리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해도 말이야. 하하. 그래도 포뇨는 너무 좋아! (이런 7세버전 리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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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12-3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뇨는 그저 맘 비우고 그냥 그 순간 즐거우면 장땡이고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봤어요.
성공이었죠. 참 좋은 영화였어요.
전 모스기호로 통신하던 부자도 좋았고 난폭한 운전하는 엄마도 좋았어요 ^^

웽스북스 2008-12-30 17:22   좋아요 0 | URL
엄마의 난폭운전. ㅋㅋ
여성 캐릭터들이 참 강한 것 같더라고요. 포뇨가 소스케의 뽀뽀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마지막에 통~ 튀어서 쪽! 하는 장면도 좋았어요~

리지 2008-12-30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뇨 ~ 스키~ 해무~ 스키~ 소스케 스키~ 으흥 으흥
난 파도의 목소리를 고대로 성대모사 할 수 있단다~ 으흥 으흥~

쓰나미를 타고 소스케만 바라보며 질주하던 포뇨는
영화관에서 봐야 제맛!

웽스북스 2008-12-30 17:23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그죠그죠, 역시 보길 잘한 것 같아요
으흥~으흥~ 파도소리 오늘 흉내내주시기로하셨잖아요 ㅋㅋ

Mephistopheles 2008-12-3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맹폭을 하여 수만은 민간인을 학살했다죠..에휴.. (이참에 주식분석가로 확 전업을..?? ㅋㅋ)

웽스북스 2008-12-30 17:3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메피님 주식은 밥 아닌가요?

순오기 2008-12-3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런 포뇨~ 주제가도 재미있었죠.^^

웽스북스 2008-12-30 17:33   좋아요 0 | URL
포~뇨포뇨포뇨~ 너무 좋아요 ^_^

마노아 2008-12-30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시르와 왈츠를-은 뜻밖의 선물이군요. 저도 꼭 챙겨봐야겠습니다. 익숙한 제목이 아닌데 여러 곳에서 상영하진 않나봐요. 그럴수록 더 챙겨야지요. 금방 내려가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웽스북스 2008-12-30 18:35   좋아요 0 | URL
네 몇군데 안돼요.
전 본지가 꽤 되서.. ㅎ 그래도 아직 하는 데가 있을 거에요 ^_^
꼭 보세요 마노아님~

Mephistopheles 2008-12-31 17:05   좋아요 0 | URL
중앙 시네마(을지로 입구)에서 1월 4일까지 합니다.
하루에 3회만 상영하더군요.^^

2008-12-30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1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12-3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웬디양님 새해맞이로 서재 이름 바꾼거예요?
지극히 개인적인 걸 벗어나겠다는 건가요?ㅎㅎㅎ

웽스북스 2009-01-02 12:42   좋아요 0 | URL
내가 된다니까,
더 개인적인? 흐흐흐.

순오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Jade 2008-12-3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

우리 2009년에도 웃으면서, 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요 ^^

웽스북스 2009-01-02 12:42   좋아요 0 | URL
제이드님. 올해는 예쁜 얼굴 더 보여주세요 ^_^
 






(조악한 캡처실력 -_-)

아마도 나는 가끔씩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될 것 같은데,
그건 바로 이 장면 때문이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세상에 덩그라니 놓여진 오누이.
어린 동생은 엄마 옷에 코를 묻고 엄마 냄새를 맡으며 울고
엄마가 가르쳐준대로 밥을 짓던 오빠는
쌀을 가져다준 동생이 옆에 앉아 '오빠 사랑해' 라고 이야기하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밥물을 맞추다 눈물을 흘리는 오빠를 보고,  
동생은 손으로 찰랑거리는 물에 살짝 있는 오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지긋이 포개며
꾹꾹, 위로를 전한다
아, 저렇게 예쁜 위로의 장면이라니


아픔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
그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저 두 남매는
앞으로 저렇게, 찰랑찰랑 잠길듯 말듯한 슬픔 속에서,
녹록지 않은 세상 속에서
저렇게 둘만이, 서로의 손을 잡고 살아가야되는구나. 

그래도, 위로의 방법을 배워가는,
손을 잡고 함께 나가는 방법을 깨우쳐가는,
가장 행복한 때는 가장 평범했던 한 때였음을 깨닫지만,
과거의 추억에 머무르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가는,
'이제 3학년이에요, 보고 계시죠?'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그렇지만, 그렇게 어리광을 잃어갈 게 안쓰러워
괜히 마음이 짠한 오늘


이 짠함의 여파로
베토벤바이러스 초기 시놉이라 돌고 있는,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있는 글을 읽으며
혼자 감동받고 울고있는건 또 뭥미 -_-

(대화가 깔때기야 어떻게 시작해도 끝은 강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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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8-11-0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화가 깔때기..하하하하...말이 되네요. 이런 표현 정말 즐거워요.^^
저는 저 여자아이가 나온 무슨1번지던가 하는 영화가 떠오르네요.
임창정 하지원 주연이었는데 전 저 아이가 나오는 장면에서 엄청 울었거덩요.^^
사랑해요 말순씨는 못봐서 말이죠...

웽스북스 2008-11-03 17:2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래 마노아님이 1번가의 기적, 이라고 얘기해줬어요
(1번가의 기절이라고 쓸뻔한 사건 ^_^)

블리 2008-11-02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도 '깔대기'니 그나마 다행이잖아? '빨대'보단 아직 중증이 아닌게야. ㅋㅋ

웽스북스 2008-11-03 17:2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오늘 '빨대' 할 수 있는 친구 만나러 가요

순오기 2008-11-02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 말순씨~~~~ 하고 싶은 말을 영화가 미처 못 따라갔던 영화로 기억해요.
감독의 의도를 관객이 간파하기엔 너무 어렵던지 헐렁했던지~~ 그런 느낌.
저 장면에서 나도 눈물을 흘렸었죠.ㅜㅜ
찰랑찰랑 쌀바가지에 담긴 오뉘의 손~~~ 저 꼬마가 넘 깜찍했어요.^^

웽스북스 2008-11-03 17:26   좋아요 0 | URL
네 저 장면
사실 다른 장면들은 건성건성 보긴 했었어요

그래도 저 장면....으흑!

마노아 2008-11-02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꼬맹이는 1번가의 기적에 나온 녀석이군요. 아, 일지매에도 나왔다!
그나저나 무엇에 감동겨워하셨나요? 초기 시놉의 어떤 부분???

웽스북스 2008-11-03 17:28   좋아요 0 | URL
강마에가 '꿈을 꾸기라도 해보란 말이야' 라는 대사를 하는 부분이 나왔었잖아요. 초기시놉대로라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장면은 '꿈을 꾸고 있는' 부분이고, 그걸 굳이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빛날 수 있는 한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구나. 싶어서요.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는거니까요.

곰탱이 2008-11-05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코끝이 아릿하네요. 저도 밥물 맞추다가 잠시 엄마를 떠올린 적이 있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