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다. 뭐, 바쁘기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조금 여유를 내어 몇편의 영화를 봤고, 본 영화들이 또 다들 괜찮았다 ^_^
'리뷰'라 할 수 있는 수준의 후기를 쓰지는 못한 관계로 몰아서, 약간의 기록을 남긴다. ㅎㅎ (앞으로도 이럴 셈이다. 하하.)
WALL-E
가끔 그런 상상은 누구나 하잖아. 아 내가 귀찮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좀 편하게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 먹지 않아도 힘이 나는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삶이 편리하면 편리해질 수록, 불편함에서 오는 소소한 매력 같은 것이 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이 극대화된, 멀지만은 않은 미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현실을 단순히 로봇 공상만화라고 무시해버릴 것인가. 그러기엔, 이것이 그리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개연성이 넘쳐나지 않는가.
그럼에도 손과 손을 마주 잡는 것, 소통하는 것, 작고 푸른 것이 주는 묘한 마음의 움직임은 여전한 곳이어서 다행이다. 그 작은 것들의 힘을 믿으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부터 조금씩 바꾸어 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만화가 공상과학만화였다고, 먼훗날 여유롭게 웃으며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엔, 위기는 너무나 깊지만)
- 이브, 웃는 모습 너무 사랑스럽다 ^_^
다찌마와리
요즘들어 말장난에 부쩍 재미를 붙여서인가, 이 영화의 말장난들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내 마음의 재건축이 이루어져, 겨우 당신을 위한 셋방을 마련했는데, 라니. 하하.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할 뿐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가 매니아 층에서 꽤 사랑 받고 있는 거, 이거 한국 영화계의 재건축 아닌가
내용,이야 뭐 기대했던 것보다는 좀 나았던 것 같고. ㅎㅎㅎ (우와, 실은 기대를 별로 안했었다고는 하지만) 같이 본 사람들끼리 모여서 크득크득 거리며, "어머, 미운말!", "깍쟁이" 하면서 노는, 영화 후 재미가 더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못본 사람들이 뭥미! 하더라도 그냥, 같이 본 사람들끼리 느끼는 어떤 유대감을 만끽하하면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같은 거. 기억력이 더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말이지.
- 두번째 쓰는 글이라 잘 쓸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쓰는 리뷰라서 허접해요. 불펌 하시면 미워하실 거에염. 이 리뷰를 사랑하는 엄니에게 바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오타 신고는 wendy99@.....
롤라런
이런 류의 구성이야 뭐 그렇게 새롭거나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건 어떤 중대한 선택이 삶에 가져오는 변화라기보다는 사소한 시간차에 의해서도 휙휙 달라질 수 있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더 흥미로웠달까. 똑같은 상황이 세번이나 반복됨에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장면마다 또한 디테일한 재미요소들을 숨겨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도 그렇고, 지나치는 사람의 미래 모습들을 스틸컷으로 처리한 장면들도 나름 신선했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를 보고 나면 반사적으로 나의 삶을 돌아볼 수 밖에 없다. 그 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 그 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누군갈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또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용이의 입을 빌어 말한 박경리쌤 말처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내 앞의 한 순간 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장땡,이라는 안일한 결론에 도달해보기엔, 또 그건 너무 맘대로 안되는 일 아니더냐.
카라멜
제목에서 주는 느낌은 한 남녀의 끈적끈적하면서도 달달한 카라멜같은 연애사 정도가 아닌가 싶지만, (이 빈약한 상상력이라니) 사실 이 영화, 언니들 중심의 영화다.
유부남을 사랑하느라 정작 자신을 찾아온 사랑은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여자,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땅이 꺼질 듯 고민을 하는 여자, 그런 젊은 여인들 틈바구니에서, 도저히 자신에게 흐른 세월의 흔적을 인정할 수 없는 중년의 여자.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곤 지난 청춘 사랑받고 사랑하던 기억 뿐인, 반쯤 정신이 나간 치매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돌보는, 그러한 이유로 찾아온 사랑 앞에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또 다른 할머니, 아니, 여자.
함께 모여 울고 웃고 이야기하며 찐덕찐덕한 고민들을 나누지만, 그들의 걱정과 고민은 늘 남성이라는 존재의 시선 안에 갇혀 있고, 그것으로부터 평생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참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고, 보이는 현상만 다를 뿐, 레바논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일면 그런 부분들을 모두 가지고 있을테니.
개인적으로는, 현실의 제약을 결국 넘어서지 못한 할머니, 얘기가 가장 와닿는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화장을 하고, 예쁜 옷도 입고, 머리도 손질하는 그 설렘을 붙드는 건 지독한 현실. 나는 자꾸만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의 한 장면,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면 지극히 현실적인 그림과 마주쳐야 했던, 마당에서 맴을 돌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엄마의 모습과 딸의 마음이, 그녀의 모습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