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귀환

 

 

 

1

 

그가 돌아왔다. 영영 돌아왔다. 젠장.

 

 

 

2

 

애초에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과 서울에서 공무원하는 syo가 함께 살려고 성남에 집을 구했으나, 반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 이 집에는 서울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사라졌고(백수됨), 동시에 서울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사라졌다(오송 발령). 그래서 이 집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소기의 목적과 전혀 다른, 백수가 책 읽고 글 쓰고 밥 짓고 연애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으니, 이것은 운명의 장난질인가.

 

백수만 노났다. 둘은 부대껴도,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 집이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서울 본사 인사총무팀 직원 두 명이 동시에 이직과 사직을 감행하는 바람에 결원이 생겼고, 급하게 이 서울로 소환되었다. 엊그제까지 오송의 논밭을 소형차로 달리던 은 이제 대한민국의 심장, 강남역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 이직을 생각하고 있던 은 이번 발령이 만족스러운 모양. 여기 빈자리 생기면 메꾸러 투입되고, 또 저기 빈자리 생기면 그쪽으로 튕겨 나가는 입지에다가 심지어 자기 전공도 아니고 입사했던 부서도 아닌 곳을 빙빙 돌리는 회사에서 syo 같았으면 벌써 이직을 알아봤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천하태평이다.

 

 

 

3

 

1년 남짓 오송에 살았던 이 용달차에 싣고 올라온 짐은 양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 좁은 집에. 쓸 수 있는 모든 용을 다 보았지만 여전히 내 동선 위에 잡동사니들이 얹혀 발에 차인다. 20,000개쯤 되어 보이는 컵라면을 보면 그의 오송 식생활을 능히 짐작할 수 있고, 지나치게 많다 싶은 휴지와, 휴지보다 부피가 적은 책들을 보면 그의 취미생활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관인 것은 판촉물인 듯 보이는 곽티슈인데, 커다란 글씨로 여대생 다방’(?), ‘69다방’(!)이라고 쓰여 있다. 이 미친놈아 이런 걸 부끄러워서 어떻게 집에 두고 쓰냐- 따졌는데, 은 덤덤하게, 대구에서 엄마가 쓰라고 올려 보내주신 거다, 된장, 매실액, 고기 굽는 불판이랑 같이- 한다. 그러고 살펴보니 그 다방이라(고 주장하)는 곳 지역 번호가 053이긴 하다. 탈룰라.

 

, 누가 이 집에 들이닥치기 전에 저 민망한 것을 소진해야만 하는데…….

 

 

 

4

 

그래서 휴방 중이었던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다시 재개될 것 같다. 아 귀찮아.

 

 

 

5

 

, K씨와의 만남은 그녀의 사정으로 또 미루어졌다고 합니다.

 

 

 

 

--- 읽은 ---

 


329. 사랑이 아닌 것은 별 

사이하테 타히 지음 / 정수윤 옮김 / 마음산책 / 2020

 

  나의 가치가 너의 욕망으로 규정될 정도라면, 나는 그런 가치 필요 없어. 사랑과 희망이라는 언어의 보호도 필요 없다. 죽은 물고기가, 러브레터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교실. 다 함께, 라는 말에 섞여들지 못하면 죽을 거래. 무서워.

  외로움이, 나를, 너에게 팔고자 한다.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건 폭력이다. 그러니 꼭 끌어안고 싶다고 말해본다. 차라리 욕정으로 말하는 게 믿음이 간다고 했던 애가, 누구였더라.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냥 결혼해 아이를 낳고 죽는 인생은, 평온한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너보다 훨씬 더 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가 살아 있는 의미 같은 건 지워줄 듯한, 그런 살갗을 걸치고, 너는 살아 있다. 좋아해. 심장을 내민다는 각오로,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오늘도 우리 반 친구 하나가, 자기가 죽으면 여기저기 화제가 될 거라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다음엔 죽어도 좋은,

  폭력적인 감정 밤, 외롭니, 죽어도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람을 버려두고 떠나며,

  죽어보고 싶다 밤, , 아침,

_ 사이하테 타히, 교실전문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사실 모두 성욕이었다. 그러니 여러분 사랑에 목을 매는 일은 목을 매다는 일입니다. 멈추세요. 믿지 마세요. 그냥 죽자구요. 이 별을 좀 편하게 해주자구요-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좋은 사랑이라면 하고 싶은데 그 불가능성이 보여서 길고 느슨하게 좌절하고 환멸하다가 그것을 태도로 삼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환멸은 그냥 힙해 보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힙하게 환멸하려면 적절한 배치, 배합, 배려, 자신을 향한 끝없는 배신 같은 것들을 달성할 줄 알아야 하겠다는 걸 배웠다. 나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지니고 있는 편인데, 그동안 참 폼이 안 났겠구나 싶다.

 

 

 


330. 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

 

앞으로 험난하겠구나, 혹은, 이거 모터 달린 돛단배에 노 저은 듯 치고 나가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까지 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충분한 것은 뭐 모든 책이 비슷하겠지만, 추리 소설은 유독 그렇다. 내게(내가 추리 소설을 읽는 데에) 잘 맞는 문체와 아닌 문체가 있고, 잘 맞는 경우 트릭 이해, 심리 이해, 동기 이해, 줄거리 이해, 심지어 작품 의도 이해까지 도합 십해가 일사천리로 획득되는 반면, 아닌 경우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의욕도 없고 하여간 없는 것 투성이인 독서로 끝나는 것. 처음 읽은 노리즈키 린타로는 앗, 이거다! 할 정도로 syo같은 추리 소설 삐약이에게 걸맞았다. 줄줄이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런 기대를 한다고 해도, 제가 그 사람들 구미에 맞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애당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경시가 쌀쌀맞게 툭 내뱉었다. “필요한 건 네가 등장함으로써 사건에 뭔가 곡절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거지. 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을 정도야.”

  “그렇게 뜻대로 될까요?”

  “. 세상 사람들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이름에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으니까,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멋대로 사식을 곡해할 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생각하고는 새 불씨를 찾아 나서겠지. 그러는 사이 누군가 익명의 관계자라고 자칭하며 시답잖은 소문을 흘릴 테고. 사이메이 여학원을 망가뜨리려는 음모가 있다느니 뭐니 하는, 멍청한 놈들이 환호할 유언비어를 말이야. 네 이름이 등장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겠지. 진짜 불씨는 따로 있구나, 사이메이 여학원은 함정에 빠졌구나, 하면서. 스캔들이 무마되면서 학교 이미지도 지켜지는 거지. 그리고 네 사건 파일에는 미해결이라는 세 글자가 찍힐 테고. 이게 실제 시나리오야, 알겠어?”

  “한심하군요.”

  “그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나리오야. 하지만 두고 봐, 분명 내 말대로 될 테니까.”

  “그럼 제 입장은 뭐가 되죠?”

  “그렇긴 하지.” 진절머리 난다는 목소리로 경시가 말했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꾸며도, 너 같은 건 높으신 분들의 편리한 선전도구에 불과해.”

_ 노리즈키 린타로, 요리코를 위해

 

 

 


331. 천국보다 성스러운

김보영 지음 /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

 

영희의 아버지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그는 오십 세에 은퇴했고 일을 하지 않은 지 올해로 십 년이 되었다. 그는 소박한 사람이라 삶에 그다지 바라는 것이 없다. 부귀영화도 좋은 집도 세계 일주도 원치 않는다. 단지 삼시 세끼 따뜻한 밥과 된장국이 그의 방 앞에 놓이기를 바란다.

  그는 이처럼 소시민적이 꿈을 이루기가 왜 이토록 고단한지 매일 의문한다. 어쩌면 강성주의자들이 젊은이들을 홀렸을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자들이 뭔가 했거나 정부 차원에서 모종의 음모가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처럼 선량하고 무해한 사람이 이토록 구차하게 살 리가 있는가.

  그의 아내는 그 대단찮은 노동을 참 힘들어했다. 참 게을러빠진 사람이었지. 남들 다 하는 일인데 뭐 그리 힘들다고. 평생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먹고살았으면서 말이지.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밥하는 게 시원찮아졌다. 언제부터인가는 시들시들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제 누가 내 밥을 해주느냐고 육성으로 말하며 울었다. 딸애는 새벽녘에 나갔따가 저녁에야 돌아온다. 한동안은 여동생이 와서 밥을 해주었고 또 한동안은 조카애들이 왔다. 하지만 다들 슬슬 발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무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는 신세 한탄을 한다. 요새 세상이 어떻게 되어먹었기에 아내까지 잃은 불쌍한 늙은이 하나 돌볼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는 채널을 돌리며 구차함을 잊고자 한다. 그는 선한 사람이고 사는 게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다가도 고작 삼시 세끼 먹기가 왜 이리 서러운가 싶어 울화통이 터지곤 한다.

  그는 알지 못한다. 아주 간단히 그 구차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서 괄시 대신 사랑을, 멸시 대신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족의 화목과 삶의 풍요가 그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잃어버린 모든 품위와 권위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냄비에 국을 앉히기만 한다면.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만 한다면. 빗자루를 들어 집을 쓸고 걸레질을 한다면.

  하지만 그는 영영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의 비천함은 오직 그가 하루를 온전히 홀로 생존하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는 것을. 그의 구차함은 오로지 남이 지은 밥을 대가 없이 제 입에 쑤셔 넣는 데에서 온다는 것을.

_ 김보영, 천국보다 성스러운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내게는 신앙이 있는데 내 생각에 신은 여혐을 한다. 신앙인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김보영 선생님은 다섯 개의 짧은 이야기를 엮어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야기들은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습니다. 그 신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라는 세 문장을 등장시키며 전개된다.

 

무리가 없다. 인격신이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 개개인의 머릿속에 구현되는 이미지들을 특성별로 분해해서 집계한다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특성들이 곧 현실에서 그 특성을 지닌 인간들이 권력 또한 지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그 신은 백인이고, 남성이고,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고……. 이건 당연하다. 내가 권력자고 비장애인인데, 이 세계를 창조하고 세계의 운영 원리를 세웠으며 매주 주말마다 꼬박꼬박 내 기도와 찬양의 대상이 되는 신이 장애가 있는 모습이라고 상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뜻밖에 단순해서, 거두절미하고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순환 명제에서 근거와 의지를 길어내며 살아가기도 한다. 신은 나와 닮았다. 그래서 나는 신과 닮았다.

 

SF는 그냥 자체적으로 목적이다. 어떤 수단으로서 굳이 현실의 뭔가를 빗대고 비틀며 지금 이곳과의 접점을 구성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성공적으로 그렇게 할 때, 문장과 서사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장르적 아름다움이 분명 있다. SF라서 할 수 있고 SF라서 얻을 수 있는 추가 점수 같은 것.

 

 


332.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김수정 지음 / 마인드빌딩 / 2021

 

남편의 목덜미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를 사랑한다. 피곤할 때마다 뿜어내는 텁텁한 냄새마저도 귀엽다. 정수리의 쿰쿰한 냄새, 땀내 전 발냄새에서도 포근함을 느낀다. 그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품에 안겨 냄새부터 킁킁 맡는다. 일터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간식으로는 무얼 먹었는지 냄새에서 단번에 읽힌다. 내가 없는 곳에서 보낸 그만의 시간을 냄새로 가늠한다. 냄새를 몰고 우리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남편이 더없이 반갑고 사랑스럽다.

  결혼생활은 서로의 체취를 감당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피로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할 때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데이트 말고, 피로의 냄새와 함께 우리 집으로 향하는 일. 밤사이 수북이 쌓인 침 냄새와 머리 냄새를 맡는 바쁜 평일의 아침. 공중화장실 말고, 서로의 냄새가 밴 우리 집 화장실. 너와 나만이 아는 체취가 곳곳에 짙게 깃든 신혼집. 내가 나일 수 있고, 네가 너일 수 있는 곳. 부끄럽지만 솔직한 단상이다.

_ 김수정,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더니 라는 접미사가 붙어서 이놈의 결혼- 뭐 그런 이야기일 줄 알았더니.

 

내 연인에게서는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데, 그래서 자꾸만 냄새를 찾아서 파고들고 파고들게 된다. 냄새라는 것이 어감이 좀 그래서 그런데, 확실히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나는 냄새는 사랑스럽긴 하다. 그렇지만 뭐랄까, 내 감각은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는 퀴퀴하지 않고 텁텁하지 않고 쿰쿰하지 않고 쩔지 않는다는 식인데, 일단 퀴퀴텁텁쿰쿰쩖을 모두 인정하고 거기서 포근함을 느끼다니, 저건 정말 대단하다! 결혼은 저 정도의 무시무시한 결의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

 

 

 


333.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1

 

쇼펜하우어는 처음에 이 개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헤겔은 당시 독일 철학계를 석권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을 절대정신이라는 허구를 가지고 세계와 역사에 대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야바위꾼이라며 경멸했다. 헤겔에 대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하고는 헤겔의 강의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이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거의 다 헤겔의 강의실로 몰려갔고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의 기대가 무참하게 깨지자 헤겔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적개심은 더욱 심해졌다. 쇼펜하우어가 게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화가 날 때마다 개에게 이놈의 헤겔이라고 욕을 퍼부으면서 화풀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개와 함께 살면서 개의 충직함에 감동하여 개가 인간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쇼펜하우어는 개 이름도 헤겔에서 아트만으로 바꾸게 된다. 아트만은 인도의 성전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용어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진아眞我, 즉 참된 자아를 가리킨다. []

  이렇게 개를 높이 평가했던 그에게 사람들이 그러면 당신을 개라고 불러도 좋으냐고 물었을 때 쇼펜하우어는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다. 거꾸로 함께 살던 개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할 때 쇼펜하우어는 개를 이 사람아라고 불렀다.

_ 박찬국,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데칸쇼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랬나, 널리 알려진 철학자랬나, 하여튼 뭐 그런 사람들로 데카르트-칸트-쇼펜하우어를 들며 줄인 말이라고 한다. 몰라, 그 말이 나온 시절에는 그랬는지, 혹은 그 말을 만든 사람과 동료계층에서는 그런지 모르겠지만, 개론서나 2차저작의 비중으로 보면 데칸쇼는 무슨, 단연 마니프다. 데칸쇼 읽은 사람? 그런데 저런 식의 인간이라면 쇼펜하우어는 좀 읽어보고 싶긴 하다.

 

물론 쇼펜하우어가 개 이름을 헤겔로 지은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동네 사람들이 그가 산책하는 시간을 보며 시계를 맞추었다는 칸트의 에피소드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스웨덴 여왕 과외하러 갔다가 2주만에 감기걸려 죽은 데카르트의 에피소드보다는 더 유명하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데칸쇼를 그들의 에피소드나, 그들 작품 속 한 구절 정도로 기억하는 것이다.

 

 

 


334.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김창규, 박상준 지음 / 에디토리얼 / 2020

 

워낙 SF시대니까.

 

SF에 등장하는 미래란 무엇일까. 우선 낯선 상황이 주는 흥미로움의 무대로 의미가 있다. 그와 동시에 실제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변형시켜 투영하는 영사막으로 작동한다. SF는 앞으로 다가올 모월 모시에 어떤 사건이 터질지 얘기하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가 과거에 저질렀고 지금도 지속하는 어리석음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반복될 거라는 이야기는 들려줄 수 있다. 12년 뒤에 발생할 대규모 자연재해로부터 어떤 직업인들이 우리를 구해줄지 점찍을 수는 없지만 묵묵히 제 일을 수행하는 성실한 사람들이 앞으로 닥쳐올지 모르는 위기에서 세상을 유지해 나갈 거라는 공감대는 이끌어낼 수 있다. SF 작가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서 미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다. 과거와 현재와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알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일도 그만큼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다.

_ 김창규, 박상준,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해설 한 꼭지, 짧은 이야기 한 꼭지를 번갈아 가며 SF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특별한 깨달음이나 감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SF를 더 많이 읽어보지 뭐, 하는 수준의 뽐뿌가 이루어졌다.

 

 

 


335. 소소하게 독서중독

김우태 지음 / 더블:/ 2016

 

크게 재미가 있지도 않고, 크게 교훈이 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소소했다. 김우태 선생님의 글에 중독될 일은 없을 것 같다.

 

 

 


336. 소오강호 1

김용 지음 / 전정은 옮김 / 김영사 / 2018

 

소설에 관해서는, 단순하게 좋은지 싫은지, 감동적인지 지루한지만 이야기했으면 한다. 나는 독자들이 내 소설 속 어떤 인물을 좋아하거나 미워할 때 가장 기쁘다. 그런 감정이 든다는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이 독자들 마음에 가닿았다는 뜻이다. 소설 작가의 가장 큰 바람은, 작가가 빚어낸 인물이 독자들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피와 살이 있는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술은 창조다. 음악은 소리를 창조하고, 그림은 시각적 이미지를 창조하고, 소설은 인물과 이야기, 그리고 그 내면 세계를 창조한다. 세상을 사실대로 반영하기만을 원한다면, 녹음기나 카메라가 있는 요즘, 음악과 그림이 왜 필요한가? 신문이 있고, 역사서가 있고, TV 다큐멘터리와 사회 통계, 병력 기록, 정부와 경찰의 인사 정보가 있는데 소설이 왜 필요한가?

_ 김용, 소오강호 1

 

 

 

 

--- 읽는 ---

관자 / 신창호

벽화 / 김영산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 윤성근

페미니즘의 투쟁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약속의 땅 / 버락 오바마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 오치 도시유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미아로 산다는 것 / 박노자

재즈 가이드 / 세실리아

보통의 우리가 알아야 할 과학 / 윤석만

예술 수업 / 오종우

가까운 날들의 사회학 / 정인호

니체 / 정동호

모더니즘 / 피터 게이

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 강병욱

넛지 / 리처드 H. 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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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9-04 1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댓글의 1등이 될까요?

syo 2021-09-04 16:13   좋아요 5 | URL
되셨네요? ㅎㅎㅎㅎ

scott 2021-09-04 16: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三님 북플에서 셀럽인거 알고 계신가여 ? ㅎㅎ

syo 2021-09-04 17:58   좋아요 3 | URL
제가 지겹도록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1-09-04 17:0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누가 집에 온다고 하면 귀찮고 막상 간다고 하면 서운하고 허전하고... 저는 그렇습니다. ^^
syo 님은 어떠하신지요?

syo 2021-09-04 17:59   좋아요 5 | URL
이제껏 이 집에 저와 三 이외의 사람이 방문한 것은 에어컨 설치 아저씨, 인터넷 설치 아저씨, 냉장고 배달 아저씨 등 각종 아저씨들을 제외하면 제 여친 한 사람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귀찮음은 모르고 서운함만 압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1-09-04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곽티슈의 빠른 소진 응원합니다^^ 三님과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 연재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syo 2021-09-04 17:59   좋아요 4 | URL
한장으로 풀 수 있는 코를 두세 장으로 푸는 호사를 누리고 있씁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9-04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냄새가 사랑스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결의!
재미있네요^^
sf가 세계를 읽는 법, 오히려 더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syo 2021-09-04 18:00   좋아요 4 | URL
냄새며 SF며..... 하여튼 많이 배웁니다.
다 까먹겠지만요 🙄

잠자냥 2021-09-04 17: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취미생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syo 2021-09-04 18:01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ㅋ 그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휴지를 작은 방 한 구석에 쌓아올리며 한숨을 내쉬는 저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9-04 18:15   좋아요 5 | URL
이거 휴지곽(혹은 두루마리 화장지)이라고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으시면 오해를 낳을 수도…(다 쓴)휴지를 작은 방 한 구석에 쌓아올리며 한숨(?)을 내쉬는 저를 보면서…무서운 장면이다…

페넬로페 2021-09-04 17:4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책얘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계속 남자 둘의 삶을 연재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생활에 단비같은 존재이신 삼님의 서울귀환을 축하드려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ㅋㅋ

syo 2021-09-04 18:02   좋아요 8 | URL
ㅋㅋㅋㅋㅋㅋ 집콕생활에 단비 같은 존재는 아니고 입에 단내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남자 둘의 삶이란, 아마 투정과 빡침과 치킨으로 얼룩진 이야기가 되겠으나...

오늘도 맑음 2021-09-04 18: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깜찍함입니다~!! 졸려서 커피 한 잔 마셨는데 웃느라 잠이 다 깨네요^^ 저도 페넬로페님 의견에 한표 던져봅니다~!!!

syo 2021-09-09 20:36   좋아요 1 | URL
답댓글이 늦었습니다 ㅎㅎㅎㅎㅎ
들러 주셔서 감사해요 맑음님^-^

bookholic 2021-09-04 19: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기대됩니다~~^^

syo 2021-09-09 20:37   좋아요 1 | URL
답이 늦었네요.
이웃님들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제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이니, 제가 저를 불태워서 여러분의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1-09-04 19: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날카로우시다면 3님은 유쾌하실듯 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두 남자 이야기가 기대가 되네요. 연애 이안기는 다음편에? 😆 언제봐도 깜놀하는 책 리스트네요 ~!!

syo 2021-09-09 20:38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제가 날카롭다면 제가 유쾌합니다. 쟤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ㅎㅎㅎㅎㅎㅎㅎ

붕붕툐툐 2021-09-04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삼님의 귀환은 쇼님의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해질 거라는 신호탄 아니겠습니까? 저는 찬성입니다~ㅎㅎ 그리고, 삼님이 잘 안될 거 같은 삘이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ㅎㅎㅎㅎ

syo 2021-09-09 20:38   좋아요 0 | URL
이야깃거리는 늘어나는만큼 저의 주름과 흰머리도 함께 늘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잘 안 된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면 을 위한 나라는 있었는데 없었던 건 그저 三의 용기

 

 

 

1

 

다음은 알라디너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시는 의 고백 관련 소식이다. ‘고백관련 소식이라고 적은 데서 벌써 짐작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아직 고백상태입니다.

 

 

 

2

 

previously on Three.

 

을 회사에 꽂아줬던 전 이사님이 그를 연애에도 꽂아주겠다는 생각에 소개팅을 주선해주셨으니 이사님이 첫 번째 보살님이시다. 그리고 저 말 없고 재미없고 눈치 없고 배려도 없으며 소개팅하고 들어온 날 잘 들어가셨느냐, 즐거웠다, 잘 주무시라,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다음에 또 만나자, 이런 정리 카톡을 보내는 게 당연하다는 것조차 syo가 알려주기 전까지 몰랐던 소개팅 오랑캐 과 무려 여섯 번이나 만나주신 K씨가 두 번째 보살님이시다. 그리고 그 무지렁이를 그래도 사람처럼 입히고 말을 가르치고 인의도덕을 주입하여 여섯 번이나 그 자리에 내보낸 syo님이 바로 마지막 보살님이시다…….

 

보살님s의 무한한 노력에도 멍청하게 그냥 주말마다 출근하듯 만나러 가기만 하지 도통 다음 스텝을 밟지 않던 . 이러면 이거 사람 아니라는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다섯 번째 만남에 드디어 고백을 준비했는데, 이게 우물쭈물 타이밍 놓치고 준비해 간 멘트 놓치고 정신줄도 놓치고 하여튼 놓칠 수 있는 건 다 놓치는 바람에 고백 멘트는 뭔가 고백이 아닌 것처럼 두루뭉수리하게 되어 버렸고, 결론적으로 K씨가 그걸 고백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고백은 망했고 바로 그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의 욕망도 함께 망함.

 

그래서 여섯 번째 만남에는 그냥 다이렉트로 좋아한다 만나자를 꽂아넣기로 하고 나갔는데, 이 빙구는 또 언제 말하지 언제 말하지 언제 말하지 하면서 그날의 데이트 7시간을 통째로 날렸고, 결국은 9시 반, 헤어지는 지하철역에서, K씨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인가 다녀오고 나서인가 하여튼 이거나 저거나 망했기는 매한가지인 그 두 타이밍 가운데 하나에 좋아한다 만나자를 투척함. 대답 : 생각해 볼게요. 그게 지지난 토요일.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까지입니다.

 


 

3

 

그리하여 일월화, 그때 우린 대구에 있었고 은 그냥 아주 카톡만 기다렸다. 핸드폰에 진동만 오면 2초 만에 들여다봤고, 엄마면 실망했고 스팸이면 분노했다. 저게 저렇게 감정이 많은 인간이었다니. 화요일, K씨 성격에 대뜸 먼저 생각해봤는데요하면서 말을 거는 건 생각하기 어려우니, 니가 먼저 간단한 말을 붙여서 판을 깔아보라고 조언했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지금 태풍 때문에 난리니까 거기서 시작해보라고, 어차피 무슨 말을 걸어도 걸기만 하면 니가 왜 그 말을 걸었는지 저쪽에서 얼추 알아챌 거라고 이야기했다. 은 대답이 없었다. 그날 저녁, syo가 물었다. 야 그래서 뭐라고 하디? 까였냐? 이 대답했다. 말 안 걸었는데……. 이런 식이니 여러분은 이제 K씨와 syo가 보살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 못하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수요일에는 성남에 있었다. 아직 말도 못 걸어본 상황. 은 초조했다.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싫었으면 여섯 번이나 만났겠어? 이러면서 희망회로를 돌린다 싶으면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우린 아닌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주었다. , 근데 이렇게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진짜 아닌가보다 이러면서 머리를 쥐어 뜯을 때는 야 그래도 싫었으면 왜 여섯 번이나 만났겠냐. 그리고 하루나 이틀 지나면 말했겠지. 안녕히 계시라고.” 이렇게 위로해주었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쏠쏠했다. 건 뭐 처음에 고백 종용할 때는 내가 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쎈척하더니, 이제는 완전 그냥 반쯤 사람꼴이 아니었다. 이것이 진정한 밀땅이로구나.

 

하여튼, 또 그놈의 회사에서 유해한 과장인지 부장인지로부터 전화가 왔고, 방에 들어가서 한 20분 동안 통화하고 나온 은 의자에 앉으면서 뻘소리를 시작했다. 주된 맥락은 이럴 거면 손이라도 잡아 볼걸- 뭐 그런 거였는데, 듣는 순간 나는 빡쳤다. 그거 아니라고 내가 이야기했잖아. 그랬더니 三曰, 아니, 다들 내가 손도 하나 못 잡고 등신 같다고 말하니까 내가 진짜 뭔가를 잘못하고 있나 싶어서 그렇잖아.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할 걸 그랬나?

 

- 하고 머릿속에서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는 식의 표현을 읽을 때마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툭- 하고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이건 뭐랄까, 분노와 서운함과 한심함이 어우러져 한탕 걸쭉한 춤을 추는데……. 나는, 정말이지 네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했다. 내 경험만으로는 안 될까 봐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다. 남자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이 비슷할 것 같아서 여자 인맥을 총동원했다. 여친, 여사친, 여동생은 물론이고 하여튼 자만 들어가면 여의봉(?) 여의주(??) 여진구의 여드름(???)한테도 물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고, 취합해서 너한테 알려줬다. 그런데 너는 9시 반의 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고백하는 븅신이었고, 지금 니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니가 그런 븅신이어서인데, 이제 네가 이렇게 나오겠다면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뗀다. 아디오스 친구여.

 

은 거의 조아리면서 용서를 빌었고, 나는 그 허망한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은 핸드폰을 들었다. 40분 후 호랑이치킨이 배달되었다. 우리 집에는 다시 웃음과 평화가 깃들었다.

 

 

 

4

 

그러고 나서 K씨에게 카톡을 보냈다. 별말 안 하고 그냥 평소처럼 주말에 만나자고 했고, 토요일에 식물원 가자고 했는데 OK 사인이 떨어졌다. , 이런 말씀은 얼굴 보고 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어요. 우린 아닌 것 같아요. 사요나라- 이럴 것 같았으면 식물원 앞에서 만나자 할 때 그러자 했겠어? 그냥 카페 같은데서 잠깐 이야기하자 했겠지. 아무래도 이건 오케이 각인데? 이랬더니 신나서 대답하는 . , 가자, 대부도 가자!

 

……?

 

대구에 내려가기 전, 갑자기 바지락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서, 대구 갔다 오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 대부도 가서 바지락칼국수나 먹고 오자고 지나가듯 말한 것인데, 화요일 저녁 대구에서 바지락칼국수 맛집에 다녀오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말을, 심지어 지가 카톡 기다리며 일희일비할 때는 지도 모른 척하던 그 약속을 갑자기 꺼낸다고?

 

오케이 각 잡히자마자 데이트코스를 물색하는 이었다. 언젠가는 K씨와 갈 거라며 그 전에 미리 답사하자는 것. 하여튼 이놈은 이게 문제다. 고백도 화장실 앞에서 겨우 말 꺼낸 놈이 대부도 생각부터 하는. 손을 잡니 허리를 감니 뭐 이런 소리에 팔랑거리는 게 다 이새끼 천성이다.

 

 

 

5

 

그래서 남자 둘이 대부도를 갔다고 합니다. 시화나래 전망대도 올라가고, 메타세쿼이아 길도 걷고…….

 

 

 

6

 

근데 막상 약속 날 K씨 바빠서 약속 한 주 밀림. 이번 주 토요일이 D-Day네요. 그때는 과연 고백관련 소식이 아닌 연애관련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읽은 ---

하도 오랜만에 쓰는 페이퍼라, 오늘은 읽은 책이 좀 많다.

 



310.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_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311. 나를 뺀 세상의 전부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

 

syo는 시인이 쓴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에세이 속에서도 그들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라는 자각을 남기려는 에세이는 물론, 시인이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 써야지 하는 느낌이 나는 글에서도 시인이 아니라하는 순간 이미 시인의 에세이가 되는, 이 기묘한 마법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대체 시인이 뭐길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시인의 산문은 대부분 아름답고 그 시인이 김소연 시인이라면 아름다움은 당연의 영역이다. 40문단 정도를 훔쳤는데, 대체 하나같이 아름다운 이놈들 중에서 뭘 여기에 옮겨놔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기왕이면 시에 대한 고민이 담긴 대목을,

 

어째서 다시 시집이 읽히고 시집을 선물하는 시대가 돌아오게 된 걸까. 사람을 만나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어서일까. 진지한 얘기를 꺼내면 놀림받는 분위기 때문에 진지함은 혼자만의 시간에서나 누려야 할 은밀한 영역이 되어버린 탓일까. 매정한 시대에 건조한 표정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감성의 영역이 복용해야 마땅할 영양제가 된 탓일까. 인간의 얼굴이 도무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실제로 만나는 얼굴들로부터는 확인받을 길이 없어서 가장 내면의 얼굴을 엿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일까. 시는 잠깐잠깐 한 편씩 읽을 수 있는 것이어서 늘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용이하게 읽히는 걸까. 말에 대한 피로함과 침묵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동시에 해갈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일까. 어제를 복제한 듯한 오늘을 사는 일이 파리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목소리 한 자락을 듣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까. 아니면, 출구가 모두 봉쇄된 듯한 시스템 안에서 지리멸렬함을 견디다 견디다 자유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시를 통해서라도 인공호흡을 해보려는 마지막 도전 같은 것일까.

  독자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적혀 있는 시집을 찾아 헤맨다. 꼭 듣고 싶은 한마디가 시에 적혀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도, 희망이 있다는 말도, 인간을 믿어보자는 말도,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도 뻔히 거짓말인 줄 다 아는 시대다. 어쩌면 뻔한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한번 고려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시가 다시 읽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사람을 믿어보겠다며 다른 방식으로 고백해보고 싶어서 시집을 선물하게 되는 건 아닐까.

_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인류애가 생겨나는 기분이다.

 

 

 


312.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박인철 지음/ 살림 / 2013

 

- 일독(1712xx)

- 재독(210823)

 

이 책은 진짜 기가 막힌다. 후설의 주요 개념을 연결해서 물 흐르듯 좔좔 설명하는데, 읽다가 근데 이게 된다고?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면 어찌 알았는지 바로 다음 문단에 "그런데 이게 된다고? 싶을 것이다. 후설은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는데" 하고 대답하는 점쟁이식 구성이다. 처음 읽기는 이걸로. 다음은 조광제 선생님의 <의식의 85가지 얼굴>이라든가, 이남인 선생님의 <현상학과 해석학> 정도가 좋겠다. 박이문 선생님 전집 중에도 현상학에 대해 할애된 부분이 있다.

 

물론 지평은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무수히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지평의 범위와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자연과학자들이 보는 세계도 그 나름의 특수한 지평적 세계다. 그런데 지평은 의미의 연관성만 있다면, 기본적으로 부단히 확장 가능하다. 이때 모든 가능한 개별 지평들을 포괄하는 궁극적 보편적 지평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보편적 지평으로서의 세계’, 곧 후설적 의미에서의 생활세계. “모든 이 세계의 주어짐은 지평의 방식 하에서의 주어짐이다. 지평들 속에 그 이상의 또 다른 지평들이 함축되어 있으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모든 세계적으로 주어진 것은 세계지평을 지니게 되고, 단지 이를 통해 세계적인 것으로 의식된다(위기, p.146).”

_ 박인철,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313.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지음 /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

 

이것저것 뒤지고 찾아내서 엄청 준비를 많이 해온 인터뷰어와 그냥 평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질문에 유연하고도 유려하게 대답하는 인터뷰이. 손택 멋있쪙.

 

,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 저는 머릿속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유아론적인 관념에 반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그 속에 있든 없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내게는 글쓰기를 지금 현재 내게 벌어지는 일과 연결하는 쪽이 그 경험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안 그러면 그냥 자기 자신을 두쪽으로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_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

 

 

 


314. 내 마음과 거리 두기

설기문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

 

당신은 감정체가 아니며 감정 또한 당신이 아니다. 감정은 그냥 당신이 경험하는 것일 뿌니다. “나는 우울하다고 할 때 나는 우울이다의 뜻이 아니라 나는 우울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슬프다나는 슬픔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슬픔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느 그 에너지가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좀더 쉽게 털어낼 수 있다.

_ 설기문, 내 마음과 거리 두기

 

그냥 저게 핵심이다. 감정에서 나를, 아니, 나에게서 감정을, 아닌가? 감정에서 나를-인가? 모르겠다, 하여튼 감정 그것과 나를 분리하는 것. 그러라고 이런저런 방법들을 제시하는데, 그게 어떤 것들인지는 목차에 짜르르 나온다. “잠재의식 속 진짜 원인 찾기처럼 딱 듣는 순간 그렇게 해야겠다는 건 알겠지만 뭐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 기술부터 드론이 되는 상상해보기같은 초보적인 것도 있다. “죔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기이런 것도 있다. 허허.

 

 

 


315.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서 / 2012

 

  바람이 지나가고

  벚꽃잎이 떨어진다

  이 기차는 나를 어디엔가는

  데려다줄 것이다

 

  떨어진 벚꽃 위로

  떨어지는 벚꽃의 얼굴이 한순간 반짝인다

  나는 올려다본다

  스카 라스카 알라스카

 

  단단하고 하얀 이름이 입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릴 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또렷한 목소리로

  너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한 꽃송이였다가 흩어지는 벚꽃잎들

 

  이 기차는 나를 언제인가는

  데려다줄 것이다

  어떤 약속도 없이 매달려 있는 벚꽃잎의

  무성한 색깔

 

  스카 라스카 알라스카

  바람이 지나가지 않아도

  벚꽃잎이 떨어진다

 

  반짝임이 사라지고

  기차는 종착역에 닿는다

 

  내가 불렀던 너의 이름이

  벚꽃잎의 색깔과 함께 흩어지듯이

  우리가 만났던 도시가 녹아내려

  지구의 물이 되듯이

_ 하재연, 언제인가 어느 곳이나

 

그러니까 얘네는 헤어진 모양이고,

 

 

  이곳은 플라나리아의 나라

  너와 나의 무성생식은 평화롭고 순조롭게

  명료한 얼굴과 침착한 미소로

  우리들은 밤의 튜닝을 시작한다

 

  노이즈는 제멋대로 흘러들게 내버려두고

  우리들은 천을 짜기 시작한다

 

  아홉 가지 색깔의 실을 걸고

  열두 가지 향기의 실을 짜 넣으면

 

  이 밤의 퀼트는 완벽해진다

  이곳은 플라나리아의 나라

 

  우리들은 밤의 숨결에

  땀과 설탕을 흘려 넣는다

 

  불안정한 빛의 색깔들에 의해

  나는 반죽되고 몸뚱아리는 늘어난다

 

  아름다운 인형들의 눈에 눈동자를 붙이는

  밤의 작업과도 같이

 _ 하재연, 고요한 밤의 증식

 

얘네는 한 모양이다.

 

같은 애들일까?

 

쉽고 예뻤다. 아름답고 잘 읽혀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시집 독서라는 것은 뭔 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멋있는 말을 만났을 때도 즐겁지만, 지금 내 역량으로 이게 대충 어떤 상황이고 무슨 말이고 마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몇 편 연속으로 읽었을 때도 뿌듯한 즐거움을 준다. 오늘의 나는 2012년의 하재연 선생님이구나.

 

 

 


316.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7

 

원문을 본 건 아니지만 울프의 문장이 실은 읽기에 만만치는 않다. 다른 책들도 좀 그랬던 걸 보면 원래 좀 길고 빡빡한 문장을 구사했었나 보다. 워낙 늘어지는 만연체를 즐기는 syo인지라, 이런 문장들을 수월치 않게 읽을 때면 두 가지 방향으로 죄책감이 든다. 1. 무려 울프가 써도 읽어내기 만만찮은 게 긴 문장인데, 한낱 syo나부랭이가 그런 걸 써도 되는 걸까? 2. 혹시 남들은 좔좔좔 읽어내는데 나만 저는 거 아냐? , 아직도 독서가 부족하구나…….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 쓰는 사람의 눈으로 읽는 게 습관이 되버린 syo에게 울프의 에세이가 던져주는 교훈은 크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이 글이 된다. 그건 포착, 섭취, 소화, 배출의 4행정 엔진이 완벽하게 맞물려 동작할 때 겨우 달성할 수 있는 경지다. 그리고 어떤 필사적인 마음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습관이다. 멋있다.

 

그런즉 런던을 단순히 멋진 구경거리로, 시장과 궁과 산업의 중심지로 알지 않고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 결혼과 죽음, 글과 그림과 공연, 통치와 입법이 이뤄지는 장소로 이해하려면 꼭 크로 부인을 알고 지내야 했다. 부인의 응접실에서라면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무수한 파편들이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납득이 되고 호감이 가는 생생한 유기체로 거듭나는 듯했다. 여러 해 동안 떠나 있던 여행자들, 인도나 아프리카 혹은 맹수와 야만이 득실대는 외딴 모험지에서 방금 돌아온 형편없는 몰골의 사내들이 다시 문명의 품으로 성큼 들어서기 위해 이 조용한 거리의 소박한 집으로 직행한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런던이라고 해도 크로 부인을 영원히 살게 할 힘은 없었다. 결국 시계가 다섯 시를 울려도 크로 부인이 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지 않고 마리아가 문을 열지 않으며 미스터 그레이엄이 장식장 옆을 지키지 않게 되는 날이 왔다. 크로 부인은 세상을 떠났고 런던은, 아니 비록 런던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도시가 아닐 것이다.

_ 버지니아 울프, 어느 런던 사람의 초상

 

 

 


317.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민이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해야 하는 '미약'이다. 그럭저럭 여건을 다 갖춘 '나중'은 오지 않는다. 언제나 저 자신의 시점을 굳건히 지키면서 늘 '저기'에 자리할 뿐이다. 제대로 할 겨를이 없기에 아예 하지 않는다는 변명은 걷어치우자!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지금이 미약의 적기인지도 모르며, 당신이 버린 '짬짬이''틈틈이'로 이루어낸 자들이 '천지빼까리'.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아직 '나중'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할 일을 지금 하지 않는 것뿐이다. 지금 뭐라도 해야,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중'도 도래하는 것 아니겠는가? 농사는 파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뿌리기 이전부터 미리미리 지력地力을 걱정해야 한다.

  미래는 현재 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의 시간을 짓이겨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그 또한 현재다.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은 당신이 딛고 있는 순간의 성질을 묻는 것이다. 이 삶이 다시 반복되어도 기꺼이 다시 살아줄 수 있는 가치관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어느 시제를 살아가던, 당신은 지금을 반복할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오늘 지고 있는 태양도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내일의 태양은, 내일 이 무렵에 세상 끝으로 사그라질 오늘의 하늘일 뿐이다.

_ 민이언,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철학을 꼼꼼히 공부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는구나. 입을 헤 벌리고 무릎을 탁 치면서 보느라 윗도리는 침에 젖고 아랫도리는 무릎이 해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뼈를 때려서 깁스를 했다. 소심하다 그래놓고 장쾌하게 공격한다. 훌륭하다. 얼마 전에 여자친구도 비슷한 말을 해줬다. 철학책 한 권 안보는 그녀가. 훌륭하다. 훌륭하다.

 

 

 


318.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임혁백 지음 / 김영사 / 2021

 

헤테라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보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누구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것을 장려한다. 또한 시민이 생산한 정보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만일 재산권을 통제할 수밖에 없을 때는 적절하게 보상해주어야 하나.

  정보 민주화를 위해서는 소수의 정보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에서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공유되거나 확산하지 못하는 정보 봉건제를 타파해야 한다. 정보를 독점한 특정세력은 시민들의 성적, 종교적, 정치적 성향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을 감시, 통제하는 데이터 감시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_ 임혁백,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요 대목만 보면 어쩐지 뜬구름 잡는 말을 하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귀족’, ‘영지’, ‘봉건제같은 단순한 동시에 매콤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귀여운 청소년 도서 같아 보이지만, 짧은 분량에도 민주주의의 발전위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발전상과 위기상을 깨알같이 설명해두었다. 휙휙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좋다.

 

 

 


319.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이낙원 지음 / 들녘 / 2017

 

엄마의 병을 다루던 병원에 친구가 일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와서, 함께 재수를 했고, 같은 대학에 들어가 같은 하숙방에서 2년을 산 친구다. syo가 진로를 따라 멍청한 syo가 되는 동안 친구는 항로를 수정하여 의사가 되었다. 친구는 신장내과도 혈액종양내과도 아니었지만 병실 문턱(병실에는 문턱이 없다)이 닳도록 드나들며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고, 안심시키고, 나를 위로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국면에서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전화를 했던 것도 그 친구였다. 친구는 급한 수술에 들어가는 길이어서 내려와 보지 못했고, 그 사이 엄마는 돌아가셨다. 다음 날 누구보다 먼저 분향소를 찾아온 친구는 조용히 울다 갔다. 이후 대구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을 더 찾아와줬고, 그때마다 그날 응급실에 혼자 서서 멍하니 엄마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내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을 미안해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너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했다. 아들보다 더 나은 아들친구였다. 엄마는 아들이 병실에 들어올 때보다 박선생이 병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더 크게 웃으며 반기기도 했다.

 

많은 죽음이 그의 뒤에 있었고 앞에 있을 것이다. 슬프고 안타깝지 않은 것이 하나 없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듯, 그가 배운 것이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앞으로도 끝없이 슬프고 안타까울 그에게 감사와 경의 말고도 더 표현할 게 있을지 찾는 중이다. 엄마가 넥타이를 하나 사주라고 했는데 그게 일종의 유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이 전문화, 의료화된 것도 문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어가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임종을 병원의 업무로 이해하지 않는다. 의학은 아프기 이전의 삶을 회복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학문이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 난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임종하는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란 말은 말기 질환으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유 할머니의 아드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 외에는 어떤 것도 건넬 것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지만 의학은 또는 의사는 여전히 삶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죽음이 일상화된 병원이지만, 아직도 병원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

_ 이낙원,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320.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

 

이제 더는 박지운을 찾아가지 않으리라. 이제는 내가 정리한 이야기 속의 박지운을 들여다보리라. 그런 방식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쌓고 쌓고 또 쌓다보면, 진짜 마음을 알 수 있겠지. 왜 그렇게 알고 싶어하느냐고? 왜 계속 쓰고 싶어하느냐고? 왜냐하면 그 마음이 결국은 나의 마음이니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나의 이야기니까. 그리하여 나는 나의 이야기를 또 상상한다.

_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

 

사랑이라고 써도 되겠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맥락의 리뷰를 쓰긴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은 쓰기에 관한 책이라고 느꼈다. 천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의 삶에는 좌절과 방황, 환멸, 질투, 자기비하 같은 감정들이 사막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처럼 점멸한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 책은 쓰는 일에 실패하였다가 쓰는 일에 달리 성공하는 책이다. 안에서 벌어지는 서사는 그 서사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읽기에 따라서는 저 문단이 설명하는 내용에 그대로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자가 페이크 저자라는 이중 구조 내부에 액자식의 또다른 중첩 구조가 있는 책답게, 독서하는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관점을 통해 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듯하다.

 

 



321. 딱 이만큼의 경제학

강준형 지음 / 다온북스 / 2018

 

 

322. 사조영웅전 6

323. 사조영웅전 7

324. 사조영웅전 8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325.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326.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5

327.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6

328.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7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2021

 

 

 

--- 읽는 ---

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박찬국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 김창규, 박상준

소소하게, 독서중독 / 김우재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 임건순

마키아벨리 / 퀜틴 스키너

불평꾼들 / 제프리 유제니디스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소오강호 1 / 김용

구의 증명 / 최진영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 김수정

천국보다 성스러운 / 김보영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이라영

모더니즘 / 피터 게이

사랑이 아닌 것은 별 / 사이하테 타히

예술 수업 / 오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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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1 13: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흥미진진 쫄깃쫄깃합니다ㅋㅋㅋㅋ K님이 숨은 고수는 아닐까 생각도 살짝 드네요ㅋ제발 좋은 소식 있기를..근데 잘되도 syo님 더 일이 많아지시는 것은 아닐까요?😆 (기다리는 연락 있을때 스펨와서 그 회사 홍보부에 전화해 따진적 있는1인;;)

syo 2021-09-01 14:43   좋아요 4 | URL
저희도 혹시 K님이 조련하는 게 아닐까 의심은 해보았지만, 지금은 그냥 K님 역시 三처럼 지나치게 무덤덤한 캐릭터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9-01 14: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떡하지? 그 과장인지 부장인지 하는 사람 말예요. 어떡해? 그 사람을 일주일에 닷새 보는거 아녀.. 그걸 어떡하죠 대체? 떼어놓아야 한다...닷새간 세뇌당하다가 주말동안 쇼님 만나는 거면, 이쪽이 너무 약해.. 저 닷새로부터 빼내야 하는데.. 게다가 그사람 옆에는 그 사람말 옳소 옳소 하는 사람들도 있을거 아녜요. 답답하기 짝이없네. 이 모든 것은 운명인가.....Orz

syo 2021-09-01 14:47   좋아요 4 | URL
참 뭐랄까, 지금은 그래도 지가 아는 거 없다는 인식이 있어서 말을 들어 먹는데, 나중에 좀 해보고 하면 지 쪼대로 할거잖아요. 그 쪼가 좋은 쪼였으면 하는 바람만 가질 뿐이지요 뭐..... 나이 40먹은 애를 기저귀 채워서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페넬로페 2021-09-01 14: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을 계속 읽어나가며 제가 마치 연애 분석가라도 된 것 처럼 상황을 이미지로 정리하고 있었어요 ㅎㅎ
어쨌거나 삼님의 연애는 알라딘에서도 폭발적인 관심이 있지만 삼님 회사에서도 그런가봐요~~이래저래 보살 3 syo님께서 중간에서 힘들겠어요
삼님의 연애가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syo 2021-09-01 14:50   좋아요 4 | URL
그렇지요? ㅎㅎㅎㅎ
시작하면 뭐하겠어요, 그때부터 고난과 역경 시작인데 ㅎㅗㅎ

연애하고 나면 알라딘에 폭로하는 일도 어렵겠지요.... 三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K씨도 걸려 있으니까....
마지막 뽕을 뽑아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9-01 14: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토요일이 기대가 되네요. syo님의 마지막 조언이 성공을 결정하겠군요 😆 엄청난 책 리뷰들~! 하재연님 시집을 읽어보고 싶은데 이번 주문에서 빠뜨렸네요ㅜㅜ 역시 대부도는 남자 둘이 가야 제맛~!!

syo 2021-09-04 16:10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 제맛!

그치만 그 제맛 다시 한번 느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ㅋㅋㅋㅋ 역시 바다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책읽는나무 2021-09-01 14: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님 멍충이!!!!!
화장실 앞에서 급하게 고백을!!!ㅜㅜ
거기다 팔랑귀까지~~팔랑귀 멍충이세요.ㅜㅜ
여섯 번 만남을 모두 오케이 했다면 지금 k님은 고백을 기다리고 있을 듯 한데 말이죠?
제 느낌도 그러한데 말입니다.
근데 어떤 생각이실지 저도 같은 여자라도 좀 헷갈리긴 하네요?

3님이 데이트할때 분명 어떤 숨은 매력을 뿜으셨나 봅니다...k님은 알쏭달쏭해서 더 만나 보고자 결정을 내리신 듯 한데...어설픈 스킨십 떼찌!!하시고 진중하게 다시 고백하셔야 합니다.
엄마 문자에 실망하시고 스팸 문자에 분노하신다면 3님도 여자분이 엄청 마음에 들어 애를 태우시는 듯 하신데....저도 토요일 응원하겠습니다.
멍충이로 돌아오시면 안됩니다!!!!
남의 연애사는 나이 먹어도 심장이 쫄깃하네요^^

syo 2021-09-04 16:11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그의 만남은 또 한 주 밀렸다고 합니다. 참, 점점 더 종잡을 수가 없네요.
화장실에서 급하게 고백하는 멍충한 친구의 친구라서 송구스러울 지경입니다.....

막시무스 2021-09-01 15: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백이 아닌 연애소식을 기다려 보겠습니다!ㅎ 덕분에 후설 입문책 시도하는 용기도 가져봅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리고 9월도 즐겁고 건강한 독서하시길요!ㅎ

syo 2021-09-04 16:11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오랜만에 뵙네요 ㅎㅎㅎㅎ 잘 지내셨죠?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즐독하세요!

Falstaff 2021-09-01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흠. 왜 저는 호랑이 치킨 일화가 젤 눈에 확 들어올까요. 三 선생, 우와 천연기념물 아녀요?

syo 2021-09-04 16:11   좋아요 1 | URL
천연이긴 한 모양인데, 저런 걸 기념하는 것은 오염입니다.....

붕붕툐툐 2021-09-01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킨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쓰고 싶네요. 삼님과 k님도 식물원 구경 후 치킨을 먹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 진짜 연애 얘기가 세상에서 젤 재밌어요! syo님의 중계에 감사드립니다!ㅎㅎ

syo 2021-09-04 16: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아직 연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연애이야기가 될지, 그냥 산처럼 쌓인 븅신같은 에피소드의 한 조각 구성물로 그치고 말지, 그게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
 
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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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 카뮈가 이와 비슷한 문장을 남긴 이후로, 다른 누구도 이런 문장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된 것 같다. 일생에 오직 한 번, 실제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를 빼면.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러나 이 말들을 내뱉기 어려운 것이 사실 카뮈 탓은 아니다. 나는 입으로, 손가락으로, 심지어는 침묵으로 저 문장을 수십 번 이상 뱉어내면서, 그때마다 아프고 슬프면서, 많이 생각했다.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가장 멀리 밀어내는 단어가 엄마라서, 그 엄청난 척력을 찍어누르고 한 문장으로 묶기 위해서 마음의 힘을 많이 소모하는 것은 아닌지를.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53)

_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2

 

엄마는 길지 않은 생의 아래쪽 절반을 암과 이런저런 방식으로 싸우다 갔다. 지금의 나보다 고작 몇 살이 더 많았던 나이에 첫 암을 만났다. 그놈은 골수에 생겼다. 골수 이식을 두 번 받았고, 오랜 시간을 무균실에서 지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나 모르게 넘겼다고 나중에 들었다. 몇 개의 천운이 있었고, 천운과 천운 사이를 의지로 이어붙이며 엄마는 암과 싸웠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암이 끝나고 새로 나는 머리와 눈썹은 이전의 것들보다 굵고 진해서 좋다고, 엄마는 말하며 웃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는 그 후로도 10년은 날것을 먹지 않았다. 과일도 익혀 먹었다. 주기적으로 내원했고, 엄마의 이런저런 혈액 수치는 우리 가족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가 낭보가 되었다가 했다. 일희일비했지만 며칠이면 잊고 우리는 살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아버지가 암에 걸렸고, 동생이 대학에 입학했고, 나는 군대를 갔고, 아버지가 죽었고, 내가 전역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는 꾸준히 엄마였다. 10년이나 무사했으니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모두들 말했지만 그건 엄마에게 그저 말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 공포, 절망, 그리고 외로움. 정말로 그 모든 걸 다 겪은 사람은 말을 하는 우리가 아니라 말을 듣는 엄마였다. 암은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엄마에겐 그랬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렇지 않았고, 우리는 안일했으며, 결과는 처참했다.

 

 

 

3

 

배변이 원활하지 않고 소변에 살짝 핏기가 비친다고 엄마가 처음 말했을 때, 우리가 한 것은 병원에 가보라는 말이 다였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암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만했고, 엄마는 혹시나 암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회피했다. 암 환자 가족들은 안다. TV에서 의사들이 불러주는 발암 물질을 외우고, 암에 좋다는 각종 먹거리들과 조리법을 노트에 꼼꼼하게 적어가며 암의 가능성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사람이, 정작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 가기를 피하는 일은 하나도 모순적이지 않다. 암을 통과해온 사람에게,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훨씬 무서운 것은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하여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다


뒤이어 우리가 한 것은 병원에 가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도 엄마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까지 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과에서는 CT촬영을 권했고, 방사선과에서는 이 CT를 들고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아닐 거라고 말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었고, 맞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엄마의 마음속에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예감이 이기고 희망은 졌다. 엄마의 생은 엄마에게 두 번째 암을 선고했다. 요관암 3. 예후가 나쁘기로 유명한 암이었다. 이미 방광과 신장에 전이가 있었다. 수술했고, 신장 하나와 방광의 일부를 떼어냈다. 2019년이었다. 림프 전이를 막지 못했고, 2020년부터 항암에 들어갔다.

 

 

 

4

 

당신은 죽을 거라고 끝내 알리지 못했다. 엄마에게 당신의 죽음에 대해 알려준 것은 죽음이었다.

 

 

 

5

 

  "미뤄야…… 만해…… 조금."

  "지금 미뤄야 한다고요?"

  "아니, 죽음을."

  엄마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매우 강하게 강조해서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죽고 싶지 않구나."

  "그럼요, 엄마는 다 나으신걸요!"

  그러고 나서 엄마는 조금은 헛소리를 했다.

  "내 책을 발표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여자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젖을 물려야 해."

  동생은 옷을 입었다. 엄마가 의식을 거의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외쳤다.

  "숨이 막혀."

  입이 벌어지고, 살이 쏙 빠진 얼굴에서 유난히 커 보였던 두 눈이 부풀어 오르듯이 확장됐다. 경련을 일으키면서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쿠르노 씨가 "언니분께 전화 드리세요"라고 말했다. 푸페트가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교환원이 30분이나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나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사이 푸페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엄마 곁을 지켰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흐릿한 눈을 하고는 주저앉은 채 숨만 겨우 쉬면서 말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의사들 말로는 촛불이 꺼지듯이 돌아가셨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동생은 흐느끼며 말했다. 간병인이 답했다.

  "하지만 보호자분, 제가 보증하건대 어머니께서는 아주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어요." (126-127)

 

그래도 고생 덜하고, 일찍 가신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남겨진 사람을 위한 말이었고,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최선을 다해 조심스러워하는 기미가 보였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그 말을 하게 되기도 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요. 길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보았다. 죽음이 엄마에게 들이닥치는 모든 순간을 세세히 보았다. 그걸 모두 본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다. 엄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100km를 달리고 있는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몸이 떨리고 눈이 자꾸 뒤집어졌다. 내 손을 힘있게 맞잡지 못했다. 내 말을 듣고 있었겠으나, 숨을 쉬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파, 아들, 나 너무 무서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인데 말할 수 없어서 더욱 아프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 고통과 공포 속에서 마지막 남은 몸부림을 치는 엄마를, 나는 보았다. 나만이 보았다.

 

당신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고생 덜하고 일찍 가신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위로의 말을 어렵게 건네는 그 따뜻한 마음 뒤에 눌러두었을 슬픔을 나도 위로하고 싶어서, 길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편히 가셨을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같은 죽음 뒤에, 남은 이들이 주고받은 거짓말들만 남았다. 죽음은 그렇게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다. 자기도 채 온전히 믿지 않는 말을 던져 믿음을 주고, 돌아오는 말을 들으며 믿음을 더하고. 끝내 모두가 그렇게 믿거나 믿기로 결정했을 때, 죽음은 1차적으로 완성된다. 그 누빔점으로부터 시작해 죽음은 완전한 완성을 향해 가고, 그 길 위에서 남은 이들의 슬픔은 시간에 풍화된다.

 

 

 

6

 

영성체를 위한 기도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했다. 신부는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설교했다. 그의 입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이 불려 나왔을 때 나와 동생은 둘 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이름은 엄마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 이름은 엄마의 생애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을 비롯해 과부였던 시절과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마지막 시기마저도 포함하는 생애 전체 말이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145-146)

 

막내삼촌이 엄마의 추도 예배를 집전했다. 삼촌의 추도사는 남은 이들의 엄마, , 누나, 동생, 고모였던 사람을 단지 그렇게 호칭하다가 끝났다. 이름은 말해지지 않았다. 그 이름은 분향소의 입구 모니터에 쓰여 있었고, 상주가 서명해야 했던 몇몇 서류에 적혀 있었으며, 비석에 새겨져 그 이름 주인의 뼛가루 위를 덮었다. 그러나 말해지지는 않았다. 행정과 자본의 영역에서 엄마의 이름을 삭제하기 위해 나는 몇 번 그 이름을 입에 올려야 했다. 삭제되기 위해 호명되는 이름. 그런 이유로 불리는 것이 그 예쁜 이름의 마지막이라면 너무 슬플 것이어서, 다가오는 명절에 나는 엄마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껏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청할 작정이다.

 


엄마는 이름으로 있을 재 자와 향기 향 자를 썼다정말이지 이름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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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21-08-31 1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을 닮으셔서 syo님이 멋지시군요~!
어머님 처럼 아름다운 글입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서 감당하기 힘이 드네요ㅠㅠ 재향님은 분명 행복 하실 꺼에요..
이렇듯 아드님의 사랑이 애틋 하니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이 제게도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syo 2021-09-01 13:28   좋아요 4 | URL
보잘 것 없는 글에 대한 칭찬, 좋은 말씀, 위로, 명복을 빌어주신 것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맑음 님께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좋네요. ㅎㅎㅎ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mini74 2021-08-31 14: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명절이 되면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시던 프로를 좋아하시던 색과 꽃과 산을. 좋아하시던 영화와 책을 볼때마다 슬프고 그리워요. 어쩌다 마주치는 흔적들엔 그리워서 울게 되고요. 자연스러운 일인걸요. 그렇게 그렇게 지나도 보면 그립고 슬픈데 너무 보고싶은데 그런 말들 그런 기억들을 눈물대신 웃으며 할 수 있을거예요. 저도 아직은 힘들지만요. 마음으로 한 번 안아드리고 갑니다.

syo 2021-09-01 13:29   좋아요 4 | URL
어, 안아주시고 가셨네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조금씩 잊고 조금씩 기억하고 그렇게 분류하면서 사는 게 남은 사람들 일이겠지요.

감기 조심하세요. 날이 춤습니다.

2021-08-3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8-31 23: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쇼님이 한 페이퍼에 한 권의 책을 쓴 거 처음 본 거 같아요. 그만큼 쇼님의 삶과 공명하는 부분이 큰거겠죠? 이렇게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거 보면 쇼님 애도의 기간을 너무나 잘 보내고 계신 거 같아요. 페이퍼에서도 향기가 나네요.

syo 2021-09-01 13:31   좋아요 3 | URL
네 ㅎㅎㅎㅎ 저는 무척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울컥울컥 하는 건 있지만 그것조차 그정도면 양호할 정도입니다.

툐툐님 감사합니당

봄밤 2021-09-01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어머님 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답네요. 어머님 글 많이 많이 적어주세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쓰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애도의 방법인 것 같아요. 더 이상의 추억을 만들 수 없는 건 아픔이지만 그간의 시간들을 아로새길 수 있는 건 축복이니까요. 늘 syo님의 글에 묘한 위안과 위로를 얻어요.

syo 2021-09-01 13:32   좋아요 3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요즘 봄밤님 글 읽으면서 문장 많이 다듬습니다. 아직 멀었지만.
비도 오고 날도 추워지니까,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1-09-01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 님,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말밖에 못하겠네요 이런 책 보면 더 어머님이 생각나겠습니다 저세상에서는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그러실 거예요 어머님이 저 위에서 syo 님하고 동생분 지켜보실 거예요


희선

syo 2021-09-01 13:33   좋아요 4 | URL
때마침 이 책이 책상 위에 놓여서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펼쳐보기 전까지 무슨 내용인지 몰랐거든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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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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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랬다

 

 

1

 

어떤 원한은 원하는 마음이 짓는 무서운 표정이다. 어떤 악의는 아끼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뱉는 잔인한 말실수다. 그것들이 그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 이유는 원한과 악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고 아끼는 그 마음 때문이다. 사랑의 뒷면에, 그것들은 있다. 사랑이 끝나지 않으면 그것들도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이 끝나지 않으면 사랑도 끝나지 않는다. 그때는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의 뒷면에, 사랑은 있다. 이것은 수사적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서사적으로는 반대말이다. 서사에서, 사랑의 이면에서 원한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시작되고, 원한의 이면에서 사랑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종료된다. 그렇다면 뒷이야기는 누가 굴리는가.

 

내가 굴릴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관념으로, 감각으로.

 

 

 

2

 

그러면 이야기는 과연 끝이 나는가? 사랑이 끝나지 않으면 이야기도 끝나지 않는다. 줄여 쓰면 더 좋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마주/기대서서, 이 책 대불호텔의 유령은 왜 있는가/읽는가?

 

이 소설을 간과하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는(신형철) 이유는 사랑을 그만두려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애-관계가 아니라 사랑-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단언컨대, 절대로 사랑하지 않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사랑한다. 5cm 거리에서 바라보면 눈동자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호수가 되는 사람을, 병석에 누워 갈아 만든 과일 주스를 삼키는 엄마를, 외로울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몸을 비벼오는 고양이를, 주로 멍청하고 가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만 그래도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그래서 우리에겐 그 모든 사랑의 뒷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나 혼자 두는 체스가 아니어서, 우리가 내 머릿속 가장 완전한 사랑의 조각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현실의 사랑은 반드시 침식된다. 그 상처의 틈바구니를 악의는 가장 좋아한다. 달콤한 케이크에 먼저 앉는 곰팡이처럼. 그럴 때 내가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듣는 것은 들리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왜곡된다. 5초 전의 기억조차. 나는 종종 내가 아니다. 나는 절대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뭐지? 유령인가?

 

에밀리 브론테일지도 모르지.

 

그게 무엇이건, 내가 무엇이기만 하다면.

 

 

 

3

 

이해의 범주는 늘 포근하다. 그렇게 느낄수록 침입은 더욱 불쾌하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웅성대는 소리를 듣는 일은 괴로워도 도망칠 수 없는 과업이다. 최소한 쓰는 사람에게는.

 

사랑과 원한이 공유하는 특성 가운데 하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 혼자 이해하게 되거나, 남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나 혼자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 바깥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가끔 내 바깥에 내가 있다.

 

영현아,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161)


이 말을 하는 이의 마음과 듣는이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어서, 오래 머물러 생각했다. 이해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1'

 

사랑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syo가 환장했으니 틀림없다. 이 소설은 원한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소설이 전혀 아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걱정은 넣어두셔도 좋겠습니다.

 

이건 그냥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다른 많은 이야기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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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8-28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도 리뷰도 수미쌍관 ㅎㅎㅎㅎㅎ알라딘 한가운데에서 사랑 외치는 syo님 리뷰 답습니다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8-28 17:04   좋아요 4 | URL
우왕 각 잡고 다시 읽으니 원한, 원하는, 악의, 아끼는, 이 라임만으로도 다했다! 언어의 요정ㅋㅋㅋㅋ

syo 2021-08-28 21:13   좋아요 3 | URL
ㅎㅎㅎ 반님비행기는 여전하군요. 알면서도 으쓱으쓱 하게 됩니다!

scott 2021-08-28 16: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사랑꾼 ㅎㅎ

syo 2021-08-28 21:14   좋아요 2 | URL
정답 😍

독서괭 2021-08-28 17: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ㅎㅎ사랑쟁이 syo님~~^^

syo 2021-08-28 21:14   좋아요 3 | URL
괭님도 정답 😍

새파랑 2021-08-28 18: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랑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syo‘님이 환장한 사랑이야기라니, 흥미로을거 같아요~!!

syo 2021-08-28 21:14   좋아요 3 | URL
음, 환장할만한 사랑이야기라는 것은 아니었고,
사랑이야기면 환장하는 제가 환장한 거 보니 사랑이야기구나- 정도입니다 ㅎㅎㅎㅎ

붕붕툐툐 2021-08-28 1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것으로서 내 플친님들의 <대불호텔의 유령>의 평가는 부정 3, 긍정 2가 되었다.

syo 2021-08-28 21:1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ㅎ 호불호가 쎄네요, 이 책 ㅎㅎ

다락방 2021-08-28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덧붙인 문장은 되게 저격으로 읽혀요. syo 님 글솜씨라면 저렇게 덧붙이지 않아도 이 책 좋다고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텐데 굳이 남의 감상을 가져와 부정할 필요는 없지않나요.

syo 2021-08-28 21:32   좋아요 4 | URL
에, 저한테 저격의 의도 같은 게 없었을 거라는 건 다락방님도 아실거라 생각해요. 진의에 대해서 더 설명할 이유는 없을 것 같고, 저격으로 읽혔다는 말씀은,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사과할게요.

이 책은 제가 읽기에 막 꼭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거를 정도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미 작성된 많은 평들이 이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정보로 주어질 때, 아, 이 책은 걸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다른 분들이 그런 평을 남기는 게 온당치 않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평이 혹시 저처럼 이 책을 좋게 읽을 수도 있었을 누군가의 독서 의지를 꺾는 일이 될까 걱정했던 거고, 그래서 저는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다른 분들의 감상과 제 감상이 정반대되는 상황이라, 어느 정도 충돌 없이는 그런 설명은 불가능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저건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지만 사실은 제가 이 리뷰를 쓸 때 가장 먼저 써넣은 문장이었어요. 덧붙인 것이 아니었고, 다른 모든 글들이 저 문장에 덧붙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분의 감상을 부정한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일이지요. 반대되는 감상도 있다는 말, 딱 그 정도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리고 지금 이 댓글을 달면서 다락방님 서재에 다시 갔다오고 나서야, 다락방님이 쓰신 마지막 문단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그냥 다른 분들의 비슷한 평을 여러 개 읽고 뭉쳐서 두루뭉술한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 느낌과 다른 제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썼던 건데, 이게 이렇게 대놓고 때리는 것처럼 보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초딩 2021-09-0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주의 북플 뉴스레터 선정 축하드려요~

syo 2021-09-04 16: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한테는 메일이 안 와서 몰랐네요.
아직도 모릅니다 ㅎㅎ

초딩 2021-09-04 17:0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자기 정보에 그런 메일 안 받는 설정이 있데요 ㅎㅎㅎ 혹시 모르니 한 번 획인 해보세요

thkang1001 2021-09-04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금주의 뉴스레터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syo 2021-09-04 16: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축하받을 일인줄도 몰랐어요. 메일도 아직 안 와서 ㅎㅎㅎ
그러나 감사합니다^-^

scott 2021-09-10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이달의 당선 2관왕 추카~
주말 三님과 행복하게 ~

syo 2021-09-10 21:25   좋아요 1 | URL
지금 三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편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1-09-10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syo 2021-09-10 21: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독서괭 2021-09-10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축하드려요^^

syo 2021-09-10 21:25   좋아요 0 | URL
괭님도 축하드려요 ㅎㅎㅎㅎ

새파랑 2021-09-10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Syo님은 최고~!! 축하드려요~!!

syo 2021-09-10 21:26   좋아요 1 | URL
또 이러신다.
최고라시길래 살펴 보니 새파랑님도 2관왕,
˝내가 최고다˝라는 주장을 쓰리쿠션으로 하십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9-10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삼님께 안부를...^^
참! 모르시겠죠?

syo 2021-09-10 21:27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ㅎ
그는 지금 제 눈앞에 썩은 표정으로 앉아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1-09-11 00:25   좋아요 0 | URL
ㅎㅎ

서니데이 2021-09-10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syo 2021-09-10 21:2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ㅎㅎ

bookholic 2021-09-10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syo 2021-09-10 21:27   좋아요 2 | URL
요즘 갑자기 이달의 당선작 축하 분위기네요 ㅎㅎㅎㅎ 어색하면서 감사합니다 ㅎ

초딩 2021-09-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syo 2021-09-13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다음은 알라디너들이 몹시도 애정하는 의 고백 관련 소식이다. 어제였다. 이런저런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고백을 실패하고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 만남. 만약 여기서도 실패한다면 귀가 시 펑펑 울면서 현관문을 열기로 약속을 굳게 약속하고 그는 고백을 하러 출정했다. 바깥에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이것은 복선인가? 폭풍우는 펑펑 눈물의 은유인가? 슬픈 마음의 객관적 상관물인가?

 

 

 

2

 

서울 아가씨와 썸타기 전에는 두세 주 가야 한 번쯤 올라오던 (그때 참 편했는데) 요즘 주말마다 개근 중이시다(이거 밥 해먹이는 것도 일이다). 보통 토요일에 약속이 잡히므로 금요일 늦은 밤에 도어락 해제하는 소리와 함께 은 등장한다. 내일 만나는갑네? , 보기로 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정신교육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한 주 동안 이 회사에서 크게 오염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유독물질이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회사 남자들이 유해하다. 네 회사에는 처음 만나는 날부터 점심 먹고 까페 갔다가 저녁 먹으면서 술 마시고 바로 자빠뜨려라든가, “스킨십 천천히 빼다가 차이는 놈 많다. 손잡기 그런 거 다 필요 없으니까 스킵하고 이번 주에 고백하면 고백하고 까페 나가면서 바로 허리 감아라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유부남자들밖에 없다. 그러면 syo는 이제 저 똥멍충이가 내일 아무 생각 없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쩔어 있는 그의 뇌를 꺼내 박박 빨아서 다시 집어넣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3

 

돌아온 은 나는 왜 이런 인간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백을 하긴 했으나 그것조차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마지막 순간에까지 가서야 던지듯 급박하게 하고 만 것.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하며 고뇌에 찬 모습을 연출하는 에게, syo는 삼만 가지 정도의 문제점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중 이만 구천구백구십구 가지는 각각 삼만 번쯤 지적한 역사가 있는 것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녀석은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지만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하는 표정으로 s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