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1

 

지난주 금요일(3) 늦은 밤에 성남집에 처음 입성했는데 그땐 아직 인터넷 설비가 갖춰지지 않았었다.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는 우리 집엔 인터넷도 되지 않는 노트북 두 대를 품에 안은 남자 둘만 있었다. 사야 할 가전과 가구의 목록을 만들면서 치킨을 뜯었다. 방은 벌판처럼 허허롭고 말을 하면 텅텅 울렸다. 심지어 syo에겐 이불만 있지 베개니 자리니 하등 없어서 그날 밤의 안위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참 암담하다, 말이 절로 나왔다. 암담하다아다아다아다아- 까지는 솔직히 오버지만 다아아아- 정도로는 확실히 울렸다…….

 

짐 정리하고 주변 탐방하고 간단한 물품 몇 개 구매했더니 주말이 깨끗하게 날아갔고, 월요일(6)은 연수원에 다녀왔다가 318명 연수참가자 가운데 syo의 헤어가 일등 노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급하게 옆머리를 눌렀다. 인도사람이 만들고 서빙하는 카레 가게에서 행복한 시간도 보냈다. 그러고는 비 오는 등산길을 밟아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미 늦은 밤. 허허허.

 

화요일(7)부터 서천에 있는 연수원에서 컵도 쌓고 도미노도 쌓고 춤도 추고 합창도 하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 오면 비에 젖어 그냥 막 정신없이 으아아아아 하다가 어떻게 겨우 정신줄을 잡아보니 금요일(10)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털코트를 이불처럼 덮고 뻗어 있는 syo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스토리…….

 

그리고 토요일인 어제는 재활. 이제 겨우 사람다운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싶었더니 제길, 창밖에 휴일의 꼬랑지가 내리는 어둠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뭐 이런 식으로 1월의 거의 절반을 뭐 달리 읽은 것도 없이 소진하였습니다. 으하하하하.

 

 

 

2

 

오늘 냉장고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240L짜리 작은 걸 사려고 했는데, 하이마트에서 실물을 접하고 마음이 바뀌어 418L짜리를 입양했다. 얘는 적어도 두 번은 더 같이 이사를 다닐 녀석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데, 남자 둘이 사는 경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첫 번째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났다. 바로 다수결이 안 된다는 것. 거실 벽에 붙여놓은 접착식 화이트보드에, 지금 이런 글이 적혀 있다.

 

< 냉장고 이름 투표 >

1. 하이드레이트일렉트릭울트라파워쿨링프레셔브라보롱리브더킹 :

2. 냉장이 :

 

그야말로 교착상태에 이르렀다. syo양쪽 모두 양보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하이드레…… ? 부를 수나 있냐? 왜 못 부르냐. 줄여서 부르면 되지. , 그러니까. 그러니까 깔끔하게 냉장이로 줄이자고. . 누가 너 인간이라고 인간이- 인간아- 이렇게 부르면 좋냐고. 냉장고는 인권도 없냐.

 

잠깐의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한발씩 물러나 418L니까 성 떼고 18이로 확정 타결.

 

반갑다, 18. 잘 지내보자. 뽀득뽀득 아껴줄게.

 

 

 

3

 

180x80의 긴 탁자를 주문해 조립했는데, 이놈의 다리 나사 구멍이 불량인지 아무리 정성껏 맞춰봐도 흐느적거리기만 한다. 강철로 된 오징어다리라는 느낌인데, 이것도 뭐 신박해서 나쁘지 않지만 키보드를 세게 치면 모니터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멀미를 유발한다. 저는 지금 구토를 이겨가며 이렇게 알라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전동드릴과 경첩을 사서 다리와 상판 프레임을 고정시킬 생각이다.

 

 

 

4

 

어쨌든 오늘은 여유가 나서 가장 가까운 시립 도서관에 다녀왔다. 성남수정도서관. 오르막 코스라서 그렇지 어쨌든 도보로 2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대구에 살 때보다 훨씬 나은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때마침 1, 2월에는 방학 기간이라는 명목으로 10권까지 대출이 된다고 해서, 이래저래 골라 담아봤더니 금세 대출한도. 어르신복지과에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므로 관련 도서, 그리고 보고서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 공무원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겠다는 책, 커피 책, 뭐 이런 실용적인 책들 위주로 골라 보았다. 철학책과 문학책을 한 권도 꺼내지 않고 10권을 만든 건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군.

 

 

 

5

 

이게 분명히 오만과 편견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은근히 이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매달 페이퍼 당선작 하나 정도는 되지 않을까? 리뷰는 원체 쓰지 않으니 언감생심이지만, 에이, 그래도 페이퍼잖아. 매달 2만 원 정도의 적립금은 어떻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헤헤헤…….

 

그러나 11, 12월 연속으로 페이퍼고 리뷰고 뭐 하나 당선되지 못하면서, , 이제 오만과 자만의 시대도 막을 내렸구나, 하는 좌절감에 빠졌다. 매달 4만 원씩 꼬박꼬박 챙기던 황금기도 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너무 잘 쓰시니까. 좋아요 70개를 받아도 어림없다니, 허허허. syo 같은 건 이제 열심히 노인복지론이나 공부해야지. 초과 근무 두 시간 더 찍으면 2만 원 금방이야. 힘내자!

 

근데 이 와중에 마늘 바게트 맛있다.

 

 

 

6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뭐가 뜻대로 잘 안 되는군요. 얼른 회복해야 할 텐데요.

 

 

 

--- 읽은 ---

004.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 209 ~ 326

: 닿지 않음과 닿을 수 없음과 어긋남은 분명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다르다. 우리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놓은 것인지, 놓친 것인지, 애당초 손에 쥔 적이 없었던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알게 되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더라도, 조심스럽게 만져야만 하는 마음이 있다. 손 닿지 않는 곳에 영영 두고 온 마음들. 영원히 돌아오지 않지만 끝없이 돌아오는 마음들. 그런 마음들을 똑바로, 그러나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무해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어볼 수 있다.

 

 

005. 시민의 교양 과학 / 홍성욱 외 : 201 ~ 287

: 늘 문제는 어디까지가 '교양'인 것인지 정하는 데 있다. 교양 없는 인간이 되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교양과 당신의 교양이 합치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일진대 실제로 그런 건 불가능하고, 스스로의 교양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늘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교양'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늘, 아,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 정도 내용을 교양으로 여기는 시기가 얼른 오면 좋겠구나, 근데 일단 나부터…. 이런 기분이 들게 한다. 

: 그냥 그렇다구요. 책 자체로 좋은 책입니다.  


006.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요조, 임경선 : 143 ~ 283

: syo는 요조 선생님은 좋아하고 임경선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상 어디다 밑줄을 그었나 살펴보니 임경선 선생님이 쓰신 대목이 더 많았다. 희한한 일이다. 

: 소소하고, 소소해서 좋은 책이다. 요조의 책이고 임경선의 책이고. 그 이상의 뭔가는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syo의 책은.   

 

 

--- 읽는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한상원 : ~ 97

스피노자 매뉴얼 /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 ~ 131

세상을 알라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167 ~ 331

사랑을 위한 되풀이 / 황인찬 :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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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1-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2시간 근무하면 초과근무 시간 4시간입니다. 4만원보단 훨 많으실 겁니다. ㅎㅎ

syo 2020-01-12 20:5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런 것인가요? ㅎㅎ
어찌되었든 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네요.

2020-01-12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1-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인터넷 개통을 축하드립니다. (이거 뭔가 놀릴 때 쓰던 밈 같은데...)
인터넷도 깔리고 도서관도 찾으셨으니 목 빼고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종종 재미있고 예쁜 글들 남겨주세요.
성남과 서울에서의 행복한 시간도 듬뿍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syo 2020-01-12 20:55   좋아요 1 | URL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렸더니 반님의 응원도 너무 오랜만에 듣게 되는군요.
반님 댓글을 위해서라도 종종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시간은 저만 누리기 뭣하니, 나눠서 누려요 우리 ㅎㅎ

무식쟁이 2020-01-12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나오나요. 아무튼 공무원.
발동동눈반짝 하며 기다립니다...

syo 2020-01-12 20:5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직장에 관해서는 함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

무식쟁이 2020-01-16 02:00   좋아요 0 | URL
과연.... 손가락이 근질근질 하실텐데요..😈

syo 2020-01-16 20:1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참을 만큼 참아 보겠습니다

2020-01-12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1-1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드디어 서울 생활 정착 이네요. 기대됩니다~

syo 2020-01-12 21:01   좋아요 0 | URL
갑자기 그런 노래가 떠오르네요.
서울이란 낯선 곳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ㅎㅎㅎㅎㅎ

2020-01-13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4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1-13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직도 했겠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데 이제 알라딘 당선작은
가끔 양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난 알라딘 한 사람이 리뷰와 페이퍼 2관왕하는 거 별로라고 생각해요.
뭐 줄만하니까 주는 것일테지만 그래도 더 알아보고 찾아보고 해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당선의 기쁨을 누려야지. 쏠려있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알라디너의 부지런함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만.
근데 스요님이 11월과 12월에 당선작 없었나요? 그럴 리가...

스요님 글 읽으니 김현경의 <세월>이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소설에서 서울살이 시작을 그리고 있는데 어찌나 처연하던지...
그래도 스요님의 시작이 훨 나아보입니다.
살림살이 늘려가는 기쁨도 맛 봐야죠. 또 누가 압니까? 거기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ㅋㅋ

syo 2020-01-14 19:49   좋아요 0 | URL
양보라니요 ㅋㅋㅋㅋㅋ 그냥 되실 만한 분들이 되신 거죠. 전 이제 따박따박 나올 월급으로 책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이 행복합니다 ㅋㅋㅋㅋ

한동안은 일 열심히 하고, 새로운 인연보다 지금 있는 인연에 집중하고 살랍니다^-^

나와같다면 2020-01-1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취업 준비하시느라 힘드셨던거 기억하는데 취업 하신거 축하드립니다. 저도 괜히 기쁘네요. 수고하셨어요. 앞으로의 길도 응원합니다

syo 2020-01-14 19:50   좋아요 0 | URL
응원말씀 감사해요!! 아직 제대로 일 시작도 안한 마당이라 뭐하지만, 으쌰으쌰 하려구요^-^

북다이제스터 2020-01-14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출근은 언제세요?^^ 이미 하셨어요?

syo 2020-01-15 22:16   좋아요 1 | URL
2월의 첫번째 월요일이 될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 어벙하게 굴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2020-01-17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7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사한 집에, 사람은 들어왔는데 인터넷이 안 들어와서, 이거 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슬픈 소식(나 혼자 슬플지도)을 전합니다.....

세간 마련하고,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러 다니고, 여하간 바쁘고 정신없는 연초네요.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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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굽는건축가 2020-01-0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받아서 다시 오픈 하는 날 기다리면 되겠어요. ^^

syo 2020-01-12 17: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늦었지만 다시 오픈 했습니다. 건축가님 반갑습니다^-^

scott 2020-01-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새해 이사에 분주하시게 바쁘실텐데 건강 잘챙기세요. ^.^

syo 2020-01-12 17:32   좋아요 1 | URL
이 좋은 말씀에 일주일이나 늦게 댓글을 달았네요.
scott님 감사합니다. 독감 유행한다던데, 조심하세요^-^
 

 

몸이냐

 


1

 

더덕단 멤버 한 분이, 근래 syo의 행태는 일종의 욕구불만 상태를 지시하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요즘 그렇게 야한 글을 써대는구만! 막 이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예리하다. 혹은 syo가 티 나게 멍청하다…….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이 몸을 섞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거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어어찌 보면 그런 욕망을 가지면서도 그걸 꾹 누르고 '플라토닉'을 고수하려는 태도야말로 불순해그게 말은 제법 그럴싸해도결국은 '사랑의 좋은 부분만을 오래 맛보고 싶다'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다'라는 응석을 돌려 말하는 것이거든.

  인생의 어떤 국면에 고통이 찾아온다고 해서 미리부터 체념하거나 지고 들어가기엔 우리의 젊음이인생이너무 아까운 것 같아고통이 동반되지 않는 기쁨에 깨작대느니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끝내 원하는 걸 가지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

요조임경선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섹스란 참, 좋은 것이지요? 그렇지요? 헤헤헤?

 


 

들뢰즈에게 '욕망'은 '생산또는 '구성'과 같은 뜻이라고 보셔야 합니다엄밀히 말하면 욕망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욕망한다'고 해야지, '나의 욕망'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볼 수 있다면 들뢰즈의 욕망 이론은 거의 이해됩니다. '욕망한다'는 말을 쓰지 않고, '생산한다', '구성한다', '조립한다', '배치한다같은 말을 쓸 수 있기 때문에오히려 나중에는 '욕망한다'는 말을 많이 쓰지 않는 거죠.

김재인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욕망이란, ‘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헤헤헤?

 

어쨌거나, 철학 개론서 이런식으로 사용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어느 날 그녀를 막 재우고 난 직후그녀가 선잠이 들기 직전이라 말대꾸 정도는 할 수 있는 때에 토마시가 "이제 나가 볼게."라고 한 적이 있었다. "어디?" 하고 그녀는 물었다. "나가야 돼."라고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같이 갈래."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싫어난 영원히 떠나는 거야." 그는 방을 나와 현관으로 갔다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눈만 껌벅거리며 따라 나왔다알몸에 짧은 셔츠만 걸친 차림이었다얼굴은 표정 없이 굳어 있었지만 행동은 단호했다그는 현관문을 열고 복도(건물 내 공용 통로다.)로 나가 문을 닫았다그녀는 거칠게 문을 밀치고 나와 그가 영원히 떠나려 하니 붙잡아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반쯤 자는 상태에서도 그를 쫓아왔다그는 한 층을 내려와 계단참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그녀가 따라와 그의 손목을 잡고 침대 속그녀 곁으로 데려갔다.

  토마시는 생각했다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거의 상충되는 두 가지 열정이라고사랑은 정사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이 욕망은 수많은 여자에게 적용된다.) 동반 수면의 욕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이 욕망은 오로지 한 여자에게만 관련된다.)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테레자 되게 귀엽지만 토마시 저거 생양아치네요. 욕망욕망거리긴 했어도 저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군요.

 

 

 

2

 

새해 제일 거시적인 목표는 체력인 것으로.

 

요즘은 공무원들도 칼퇴 잘 없다는데. 늦게까지 일한 몸을 질질 끌고 돌아와 책상에 앉았을 때, 열린 마음으로 심도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퇴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요는 체력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철 내려서 15분 동안 연속 오르막 코스를 거침없이 등반하면 우리 집이 있다. 만약, 백팩에서 운동화를 꺼내 갈아신은 다음, 출구에서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려 올라 간다면? 죽겠죠. 그렇지만 만약, 죽지 않는다면? 19세기 최후의 크게 미친 자, 니체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유산소는 그런 것이에요.

 

남은 건 근력 운동뿐이라서,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턱걸이 기구를 구매하기로 하였다. 걔도 한 15만원 줘야 쓸만한 거 온다고 하는데, 15만원이면 강신준 쌤 번역 마르크스 자본 전 5권 세트를 구매할 수 있는 돈이라서 syo는 운다. 몸이냐 자본이냐. 눈앞에 마르크스가 나타난다. 대답해, 몸이야 자본이야? syo는 입을 꼭 다문다. 대답 안 해? 마르크스는 syo의 목을 조른다.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썼는데! 엉덩이에 종기가 잔뜩 나서 막 투명의자 자세로 썼구만! 차돌같은 내 허벅지를 좀 보라지! 그런데 니가 뭐? 턱걸이 기구를 사겠다고?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니가! 컥컥, syo는 숨이 막힌다. , 산소, 산소가 부족해…….

 

무산소는 그런 것이에요.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의견충동욕망반감 등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며우리 몸의 상태소유물우리의 평판과 공직 등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고 목록을 제시한다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그에게 말했다한편으로 나의 의견은 내가 읽거나 듣거나 토론한 것을 통해 타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나의 충동욕망반감에 관해서 말하자면그런 것들 중 다수는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내게서 휙 생겨나는 것 같고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정도가 전부다. (이렇게 내 생각을 굳혀 가던 바로 그 순간 끝내주게 맛있어 보이는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보고 마음이 흐트러졌다하지만 나는 그것이 필요치 않았고 내 허리둘레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그래서 나는 사 먹는 일을 삼갔다.) 다른 한편으로나는 확실히 내 몸을 챙길 수 있다이를테면 체육관에 가고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나는 내 재력의 한도 내에서 무엇을 취득할지 결정할 수 있다그리고 나의 평판 또한 내가 동료들학생들친구들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더군다나 내가 비록 공직에 있지는 않지만만일 공직을 추구했다면 그 결정은 확실히 내 것이었을 것이다.

마시모 피글리우치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읽은 ---



001.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209 ~ 313


: 나는 혼자가 되었으니 이제 이걸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첨부터 뭔가 매끄럽지만은 않다. 혼자가 혼자 보낸 이야기가 혼자한테 왜 이래? 아직 내가 마음속 깊이 혼자가 아니거나, 혹은 이병률 선생님이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거나 막 그런 것은 아닐까…….


: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읽다 보니까 아무래도 혼자에도 다 레벨이란 게 있어서 그런 건가 싶다. 고렙혼자의 아름다운 말씀은 쪼렙혼자에겐 마치 혼잣말 같다. 멋있어. 근데 내가 저런 멋진 혼자가 될 수 있을까? 그냥 혼자 하지 말까…….




002.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 161 ~ 264


: 2017년에 1독 하고나서, 김재인 선생님이 무슨 이리 승냥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해놓은 syo. 제놈이 읽어도 못 알아 처먹은 걸 저자 탓이나 하고, 2년 반만 거슬러 올라가도 syo는 참 안될 놈이었다. 아니, 멍청할 거면 착하게나 멍청하든가, 못됐게 굴 거면 똑똑하면서 못됐든가……. 다시 본 이 책은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요, 선생님. , 입문서가 이래야죠. 아흑 사랑합니다ㅠㅠ



 

003. 소문들 / 권혁웅 : 92 ~ 183


: 결국 시를 만들어내므로 시인이라면, 누가 권혁웅보다 더 시인일 수 있을까.


 

--- 읽는 ---

세상을 알라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 167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 102 ~ 20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 138

시민의 교양과학 / 홍성욱 외 : 93 ~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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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0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페이퍼는 어쩐지 욕망이 드글드글 끓어 보입니다. 저는 사실 아직도 몸을 만든다는 말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살 안 찌고 안 아프고 적당히 살면 건강 아닌가 하는 안일함. 아직 젊나 봅니다.

syo 2020-01-02 08:08   좋아요 1 | URL
드글드글 끓어올랐다가 슬쩍 가라앉았다가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가 봐요. 참 알 수 없지요?
건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오래 함께할래도, 건강 그거 꼭 챙겨야겠어요.

하이드 2020-01-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에 돈을 써줘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근력운동,유산소운동. 나쁜거 먹지 말고, 좋은거만 먹어요.

그래야 일도 더 잘 견디고, 책도 더 오래 읽습니다!

syo 2020-01-02 08:09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 고민 없이 지르기로 하였습니다.
책 뽐뿌 커뮤니티에서 몸 뽐뿌에 성공하셨어요!

2020-01-01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2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1-01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올해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하시는 건가요? 일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를 병행하는 하루를 보내는 게 처음에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한동안 백수 생활을 하다가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땐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어요. syo님이라면 빨리 적응하실 거라 믿습니다. 너무나도 뻔한 말이지만 건강하세요. 부와 명예도 좋지만, 덜 아프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우리 인생 최고의 복이라고 생각해요.

syo 2020-01-02 08:11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 한동안 뜸했네요. 상경하기 전에 한 번 보고 가야 하는 건데, 일정이 타이트하게 잡히기도 했고 요즘 정신머리가 없어놔서 타이밍을 놓쳤군요. 기회가 있겠지요.

제 건강도 제 건강이지만, 사이러스님도 이제 건강 챙기시자구요.....

이젠 정말 운동뿐이야.

라로 2020-01-02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혼자 하지 말아요!!! 헤헤헤헤헤헤헤 (헤헤헤는 토비 님께 잘 어울리지만 저에게 안 어울려서)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0-01-02 08:1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네, 아무래도 혼자는 저하고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헤헤헤^-^

비연 2020-01-02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망소(쇼가 아니라 소)님.ㅎㅎ 오늘 페이퍼 뭔가 사무치는데요?
매년 체력을 키우자 하면서도 연말되면 아구아구 이거 체력이 더 떨어졌어 하는 비연이긴 하지만,
올해는 저도 꼭! 체력을 키우려고 합니다. 운동도 할 거고.. 술도 안 먹.. 아니 적게 먹.. 아니 가끔 먹... (ㅜ)...

syo 2020-01-02 08:1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운동은 몰라도 술에 관해서라면 비연님의 말씀을 어쩐지 믿기 어렵.....
저는 이웃님들께 질러놨으니 눈치보여서라도 열심히 운동할래요. 2020 혁신의 해....

비연 2020-01-02 10:44   좋아요 1 | URL
믿어주소서....ㅡㅡ;;
.... 오늘 회사에서도 절주선언 했더니 무슨 반복 루프 같다면서 다들 외면..;;;
2020. 비연 절주의 해 선언. 킁.

2020-01-02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1-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갱년기가 아직 안 끝난, 제 나이쯤 되면 말이죠. 나쁜 일이 일어나서 제 인생이 엎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갖게 됩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큰 행복을 바라는 게 얼마나 사치스런 소원인가를 알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는 거죠. 제 인생이 엎어지지 않는 2020년이 되기를 소망하며...
syo 님에겐 웃을 일이 가득한 2020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기대하며...

syo 2020-01-05 08:00   좋아요 0 | URL
페크님 말씀 새기고 2020년 잘 헤쳐나가겠습니다. 힘이 되는 좋을 꾸준히 만들어주세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풍오장원 2020-01-04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앙부처나 기획부서 말고 일선 기관은 정시퇴근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칼퇴와 좋은 글들 기대합니다^^

syo 2020-01-05 08: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말씀대로 되면 참 좋겠어요. 올해도 Comandante님, 지금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무식쟁이 2020-01-16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윗분 말씀대로 꼭 칼퇴하는 곳으로 발령받으시길. 그리고 15만원 짜리 빨래건조대로 전락하지 않기를 두손모아 기도 드려요. (앗, 저 무교)
그래야 좋은 글 계속 읽을수 있을테니까요.

syo 2020-01-16 20:1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어깨 떡 벌어진 공무원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중입니다. 광활한 어깨로 등본을 떼 드린다...
 

 

결산을 때리는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올해는 참 많은 일이 있었(그래서 예년보다 적게 읽었), 내년에는 많은 일을 해야 하(그래서 내년에는 더 적게 읽어야 하)기 때문이겠습니다.

 

맨날 우려먹는 이야기들이라 또 하기가 뭣합니다만,

 

일단 취업을 했습니다. 공무원이란 것은 인생관에 따라서 누구는 굉장히 박하게, 또 누구는 굉장히 후하게 쳐주는 직업이지요. 최고 말단 그지 호봉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출퇴근과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은 평생 처음 겪는 사건이네요. 지금 겪고 있는 것은 아니고, 새해 벽두부터 벌어질 일들입니다.

 

엄마가 방광암에 걸렸습니다. 검사해보니 신장에도 문제가 있어서 방광암 수술과 동시에 신장 한쪽을 절제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기간이 있었고, 집에 돌아와 지낸 지도 두 달이 넘었군요. 신장이 하나뿐인데 암 수술로 인한 충격 때문에 걔도 제 기능을 못 한다고 해서 투석을 받으러 다니는 중입니다. 내년부터는 재발 방지를 위한 항암 요법도 들어갈 모양이네요.

 

10년의 백수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10년의 긴 연애가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나는 한 거고 하나는 된 거네요. 그렇게 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할 일은 하고 될 일은 되도록 두는 거죠. 도리 없는 인생입니다. 생각만큼 쓰라리지 않았고, 저는 생각보다 잘 삽니다. 만약에 이 사람하고 헤어지면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띵까띵까 내 맘대로 살 거지롱- 했던 술자리의 반진담-반농담이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돌아왔습니다. 안온하게, 내 한 몸만 잘 건사하면서, 욕심내지 말고 딱 120살만 찍고 갈까 싶습니다. 복상사는 오랜 꿈이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꿈은 꿈이겠지요.

 

거주지를 옮깁니다. 일터는 서울 강동구의 어디겠지만 가난한 청년들이 아무리 대출을 껴도 서울에서 방 하나 구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성남시의 어느 산간지방(?)에 방 두 칸 작은 전세를 얻었습니다. 아직 입주 전이고, 은행에서 변덕 부리면 싹 나가리 되는 거니까 아직 확실하게 얻었습니다라고 할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대충 잘 될 거라 예상 중입니다만. 어쨌든 제가 한 건 없고, 같이 살 친구가 은행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죠. 2020에는 아무래도 정황상 많이 읽기는 어렵고 대신 많이 부대끼며 살 것 같으니까,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느낌의 잡글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syo의 서재가 되지 않을까요.

 

더덕단이라는 재미난 모임이 발족했습니다. ㄷㄷㄷ 혹은 DDD라고도 부릅니다. the, more이런 거 아니고 그냥 더덕입니다. . 먹는 거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본질은 여성주의 독서모임인데 대체로 의식의 흐름 잡담모임같은 유쾌한 느낌입니다. ‘월남에서 돌아온 복상사실주의자라는 알 수 없는 깃발 제작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현란한 대화의 꽃들이 피었을까요. 말의 물길이 어디서 솟아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즐겁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북플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올해는 이렇습니다.

 


01: 42

02: 35

03: 20

04: 24

05: 40

06: 35

07: 38

08: 27

09: 37

10: 53

11: 33

12: 27

---------

2019 : 411

---------

2018 : 500

2017 : 689

 

매년 꾸준히 영락하고 있군요. 이런 추세는 내년에도 계속되겠지요. 그래도 하루에 한 권은 더 읽었으니, 일단은 칭찬을 해 주고 다음 해로 넘어가겠습니다. 참 잘했어요, syo.

 

  

올해의 소설가 : 옌롄커


전작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러려고 마음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syo는 올해 옌롄커를 맨 앞줄에 놓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 같기만 하다 싶으면 별 매력 없는 작가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 할 거 다 하는 우리 인간들 눈물나게 멋지다 파이팅이런 느낌으로 읽었드랬습니다.

 

 

올해의 철학자 : 헤겔

 

올해는 어떻게 한번 자빠뜨려보자고 덤벼들었으나 역시 실패했네요. 이렇게 덤볐다가 지고 덤볐다가 지고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게 syo의 스타일입니다. 마르크스도 프로이트도 그런 식으로 겨우 입문적 지식을 획득했지요. 지금은 또 들뢰즈에 꽂혀서 스피노자를 뒤적거리고 있지만, 헤겔의 이름은 피해갈 수 없으니까요. 내년 여름쯤 다시 또 헤겔 책들을 긁어모으지 않을까 합니다.

 

 

그 외에 올해 인상깊게 읽었던 책들은 대충 이렇습니다.

 

< 에세이 >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아무튼술 김혼비

희망 대신 욕망 김원영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 위근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 악셀 린덴

 

 

< 소설 >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낭만주의 / 박형서


어제는 봄 / 최은미

나의 사랑 매기 / 김금희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박상영

 

 

< 외국 소설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전락 / 알베르 카뮈

키 재기 외 / 히구치 이치요

프랑스어의 실종 / 아시아 제바르

 

 

< 과학 수학 공학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 안드레스 곰베로프

이토록 쉬운 통계 & R / 임경덕

모스에서 잡스까지 / 신동흔

 

 

< 인문학?? 에세이?? >

마취의 시대 / 로랑 드 쉬테르

권력 / 스기타 아쓰시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낙

진심의 공간 / 김현진

 

 

< >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 / 오규원

저녁의 연인들 / 황학주

Lo-fi / 강성은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 홍일표

 

 

< 철학 >

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 서한겸

왜 칸트인가 김상환

슬픈 열대를 읽다 양자오

중국사상사 모리 미키사부로


무신론자와 교수 / 데니스 C. 라스무센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 / 브누아 페터스

2의 성 / 시몬 드 보부아르

 

 

syo가 스스로 나는 알라디너야, 하고 다니기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활동하기 시작한 게 20175월이었으니, 2년 반을 좀 넘긴 셈이네요. 20년쯤 찌끄리고 다닌 것 같은데 또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서재이웃님들 좋은 글 잔뜩 읽으며 늘 즐거운 알라딘 생활입니다. 시간을 돈이랑 바꿔먹어야 하는 내년에는 더욱 이 공간이 소중해지겠군요. 많이 벌고 적게 쓰는 것도 좋지만, 적게 읽고 많이 쓰는 syo가 되고 싶면 더 좋겠네요.

 

힘든 일 있을 때마다 많은 분들이 진심 어린 댓글로 위로하고 북돋아 주셨어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올 한해도 역시 참 감사했습니다. 2020년 새해에도 웃으며 읽고 쓰자구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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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1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12-31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 이렇게 많이 읽고 연말 결산에도 이렇게나 책이 잔뜩 들어있는데 겹치는 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 매우 놀랍습니다. 우리는.. 정말 많이 다른사람인가봐요!!
내년에는 저처럼(?!) 직장 다니면서 읽고 쓰는 쇼님 되시겠네요. 직딩 뽜이팅!!

syo 2019-12-31 15:1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많은 결산들을 보고 있지만 이상하게 겹치는 게 많은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은 제 별에 있는 것으로....

직딩 뽜이팅입니다! 100권은 보겠죠..?

반유행열반인 2019-12-31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책 몇 개 보고 괜히 흐뭇. 독서 그래프 왠지 인생 굴곡 곡선 같이 느껴지지. 저런 기능이 북플에 있군요.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syo 2019-12-31 15:15   좋아요 1 | URL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급한 성격에 내후년이랑 그 후년이랑, 그 후후후후후후후후후년도 다 미리 잘 부탁드립니다.

후후후후후후후후후

반유행열반인 2019-12-31 16:38   좋아요 0 | URL
뭔가 120살치 잘 부탁-을 받은 것 같이 막중한 기분이네요. ㅎㅎㅎ

비연 2019-12-3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내년엔 제가 쇼님의 댓글천사가 되어드릴게요, 글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 ㅎㅎ
그나저나 저랑도 많이 안 겹치시네요. 그래도 <제2의성>이 겹치니까 괜챦습니다, 정말 제일입니다~
갈수록 책을 적게 읽게 되는 세월이지만 내년에도 역시나 열심히 한번 책을 좇아 다녀보도록 하여요.

syo 2019-12-31 15:17   좋아요 1 | URL
비연님 ㅠㅠ 비연님은 일부러(?) 18댓글 남기는 어떤 모진 남자랑 다르실거야....
직종이 직종인지라 비연님처럼 정신없이 바쁘기야 할까 싶습니다. 그래도 적게 읽게 되는 건 어쩔 수 없겠지ㅛ?
그래도 열심히 읽어보자구요, 우리. 화이팅.

잠자냥 2019-12-31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도 어머님 건강 쾌차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syo 2019-12-31 15:18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감사합니다. 어흑ㅜㅜ
엄마의 일은 엄마의 일이라, 아들은 아들의 일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두고 서울로 올라갑니다....

stella.K 2019-12-3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 더덕단이라.
뭔가 재밌을 것 같군요. 기대하겠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요.^^

syo 2019-12-31 15: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마냥 똑같지요 뭐. syo가 syo지 남자 둘이 살고 더덕 먹는다고 뭐 SYO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열심히 들락날락거릴게요 ㅎ
스텔라님도 새해 복 진짜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19-12-3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찾고 찾아 3권을 찾았네요. 그 3권 빼고 읽어봐야겠어요. 결심부자 ㅋㅋㅋㅋㅋㅋㅋㅋ 옌롄커...도 찾아보고요.
2020년 직딩 독서 일기 기대됩니다^^

syo 2019-12-31 21: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남부끄럽지 않은 직딩생활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ㅎㅎㅎ
결심부자 화이팅!

페넬로페 2019-12-3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올려주시는 글 덕분에 많이 즐거웠어요~~
내년에도 열심히 써주실거죠?
책읽기는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내년에 syo님 건강하시고
어머니도 빨리 쾌차하시기를^^

syo 2019-12-31 21: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ㅎㅎㅎㅎ
몇 시간 안 남은 2019년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는 만사형통하소서^-^

2019-12-3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12-31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 한해 감사합니다. 좋은 글 덕분에 즐거운 한해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시니 구매 의욕 상승입니다. ㅋ
새해 새출발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

syo 2019-12-31 21:23   좋아요 1 | URL
북다님께 늘 신세가 많습니다.
말씀 안 드려도 내년 역시 꾸준한 독서활동을 보여주시겠지요?
얹혀서 가겠습니다 ㅎ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넷 2019-12-3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도 새해 건강하고, 어머니도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syo 2020-01-01 13:40   좋아요 0 | URL
가넷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블랙겟타 2020-01-01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결산의 왕이 나타났다. ㅋㅋㅋ
결산할거 덩어리구만유..
다사다난했던 19년은 뒤로 한채 20년엔 syo님께 웃을일이 더 많은 한해가 되시길 빕니다. ^^
그리구.. 내년엔 댓글도 더 열씨미 달께요.. ㅋㅋㅋㅋ
마지막날 잘 마무리하세요~ syo님

syo 2020-01-01 13:41   좋아요 1 | URL
진짜 달았네요 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19년 19댓글 ㅋㅋㅋㅋ 등차수열의 힘을 보여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자구요 우리 모두 ㅎ

공쟝쟝 2019-12-3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0 한시간 전! 생활이 진득하게 묻어날 내년의 쇼님 글을 기대합니다. 행복하십시다!

syo 2020-01-01 13:43   좋아요 1 | URL
그리고 그렇게 2020이 오고 말았군요. 올해는 쟝쟝님의 위트 있는 글을 더 많이 만나면 좋겠습니다.
퐈이팅!

초딩 2019-12-3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0-01-01 13:44   좋아요 0 | URL
새해가 밝았네요. 초딩님도 끝내주는 한해 되세요^-^

Angela 2019-12-3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9가 한 눈에 딱! 역시 syo님!
2020도 화이팅입니다!!

syo 2020-01-01 13:45   좋아요 0 | URL
안젤라님도 2020 희망차게 열여가시구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oren 2020-01-0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부신 한 해를 만드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눈으로 시작하는 댓글을 끄적거리다 보니, 불현듯 『설국』이 떠오르네요.
syo 님께서도 『설국』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눈에 띄네요.
눈이 부신 눈 세계에서 헤매다 나온 시간들도 떠오르고요.^^
https://youtu.be/3KW3h40c7tQ

syo 2020-01-01 20:09   좋아요 1 | URL
oren님 요즘 영상 만드시는 줄은 알았지만, 이번에 처음 들어봅니다 ㅎㅎㅎ 이런 목소리시군요!
oren님의 내공은 영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네요 ㅎ
늦었지만 2019년 한 해도 oren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20-01-03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의 완쾌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님의 변치않는 알라디너로서의 삶을 응원합니다!!!

syo 2020-01-20 22:05   좋아요 0 | URL
이걸 이제야 봤네요 ㅠㅠ 죄송합니다.
늦게 발견했지만 페크님의 마음, 고맙게 받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붕붕툐툐 2020-01-1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정말 딱 맞네요.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얽혀 있는게 우리네 인생이겠지요. 몇몇 일들에 축하를 몇몇 일들에 애도를 뒤늦게 보냅니다.

syo 2020-01-20 22:05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ㅎ 인생사 뭘까요 ㅎㅎ
열심히 또는 꿋꿋이 살아볼게요. 툐툐님 감사합니다.

2020-08-30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책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 제인 오스틴부터 프로이트까지 책으로 위로받는 사람들
안드레아 게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책 읽는 사람 syo의 솔직한 탄생 설화

 

syo는 연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능 본 지 한 달이 더 지났지만 syo가 갈 곳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사가 죄 의미 없었다. 수능 다음 날부터 수능 공부를 시작했더니 어느덧 <수학의 정석 실력편> 안에 못 푸는 문제가 없어진 시점이기도 했다. 뭔가 사건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일탈! 일탈이다! 하지만 일탈이란? 그건 뭐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다시 말해, 내가 이제부터 그걸 할 거라고 공지하면 온누리가 , 네가 그걸 한다고? syo 네가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다른 무엇도 아닌 그것을?” 이라며 화들짝 놀랄 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정석을 탁 덮고 syo는 곰곰 생각했다. 기왕이면 공부에 엄청 방해되는 걸 하는 게 좋겠어. 뭐가 있을까. 게임? 질렸어. 만화? 질렸어. ? 맛없어. 담배? 맛없어. 운동? , 생각만 해도 입에서 쇠맛 난다. 연애? 맛없……?

 

연애는 도대체 무슨 맛일까?

 

호밀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는 연애는 잘 모르겠고, 섹스는 해봤거든? 좌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 syo : 뭐 이 새끼야? 니가 뭘 해봤다고?

- : 지금 니 입에서 나온 그 ㅅ…… ㅅ 그거 우리가 아는 그 ㅅ…… ㅅ 그거 맞냐?

- 박곰돌 : 취소해. 취소하라고! 내 나이 스물하나, 나도 아직 못 해봤는데……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해 임마, 제발…….

- 호밀 : , 왜 재작년까지 우리 윗집에 XX여고 다니는 누나 혼자 살았잖아. 가족들 다 이사 가고.

- 좌중 : 그래, 그 누나! 돈가스 잘 튀겨주는 그 누나!

- 호밀 : 그 누나가 충남댄가 충북댄가 거기 갔댔잖아.

- 좌중 : 그래, 그 누나! 충남댄가 충북댄가 거기 간 그 누나!

- 호밀 : 그때, 대학 붙어서 충청도로 간다면서 그 누나가, 우리 집에 와서 마지막 돈가스 튀겨줬거든? 근데, 그때…….

- 좌중 : 근데! 근데, 그때! 근데, 그때?

- 호밀 : (말없이 얼굴을 붉히더니 엄지 손가락을 세운다.)

- 좌중 : (말없이 얼굴을 붉히더니 일어나서 호밀을 밟는다.)

- 호밀 : (실컷 밟혔으나 하나도 아파 보이지 않는다. 계속 웃는다.) 하여튼, 나는 그래서 연애는 잘 모르겠다 무슨 맛인지. 내가 아는 맛은 ㅅ……

- 좌중 : (지극히 분개하며 다시 일어나서 호밀을 밟는다.) , 터뜨려! 터뜨려 버려! 어차피 이 새끼는 맛을 봤다니까 미련이 없겠지. 이 배신자 놈아, 플리즈 고 투 헬…….

 

syo에게는 돈가스 잘 튀겨주는 윗집 누나 같은 게 없었고, 호밀의 말에 따르면 그런 누나가 있어도 연애의 맛을 알 수 있는 건 또 아닌 듯했다. 그러나 때마침 박곰돌 또한 연애중이었다.

 

- 호밀 : 아 근데, 형은 랭이누나도 있으면서 왜 아직 못해봤냐 ㅅ…….

- 三 : , 둘이 있겠다고 날 그렇게 집에서 내쫓드만. 내실 없다 내실 없어 우리 형.

- 박곰돌 : 야 씨, 아픈 데 찌르지 마라…….

- syo : 그러니까, 연애의 맛이 어떤 맛이냐고. 그건 말해줄 수 있을 거 아니냐.

- 박곰돌 : 그건 말해줄 수 없다.

- syo : 밟아라. (좌중 일어선다. 호밀의 눈에는 복수의 핏발이 섰다.)

- 박곰돌 : (손사래를 치며) 아니아니. 말을 안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말로 못 하는 거라니까? 해 봐야 알지 그게 말로 되는 게 아니라고.

- syo : 형은 랭이누나 어떻게 만난 건데?

- 박곰돌 : 나야 대학 가서 만난 거지. 그러니까……(사랑에 빠진 과정과 서투른 고백과 얼떨결에 사귀게 된 정황들을 신나서 이야기해주었는데 재미가 없었고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연애의 맛이란 대학생이 되어 줘야 알 수 있는 듯한데, syo는 대학생이 아니었고 비참하게도 다음 해 역시 대학생이 아닐 예정이었다. 방법이 없는 것일까? 연애, 너란 대체 무엇이건대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하느뇨…… 하던 찰나 이 입을 열었다.

 

- 三 : 내가 형한테 쫓겨나서 갈 데가 없어 가지고 도서관 가잖아. 거기 가면, 책 많다? 연애 책.

- syo : 진짜?

- 三 : , 특히 일본 소설들. 걔넨 겁나 연애만 해!

- syo : 혼또니?

- 三 : , 스고이데스…….

 

우리는 크게 혹은 작게 망할 때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연애를 글로 배워서……. 그건 망할지언정 연애를 글로 배울 수는 있다는 말이렸다. 그래서 윗집 누나도 없고 대학생도 아닌 syo는 정석을 책상 서랍 속 깊은 곳에 봉인하고 과 함께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 소설 서가를 닳도록 드나드는데……. 오늘날 알라딘에서 철학 개론서에 미친 자로 활동하는 syo의 본령은 바로 일본 연애소설이었다는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요시다 슈이치,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독서의 기원이 불온합니까? 사실, 하기 전이건 하는 중이건 혹은 하고 난 후이건, 연애는 독서의 시발점으로 너무도 절실하고 효과적입니다.

 

그렇다면 독서의 쾌락적 요소가 독서의 진짜 핵심이자 원동력이 아닐까신경생물학자 게랄트 휘터는 기쁘게 배운 것(읽은 것)만이 정말로 주입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휘터는 베를린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중국 여자를 사랑하게 된 80세의 남자는 비교적 쉽게 중국어 기본 단어들을 배운다고 발표했다. "감탄은 쉽게 말해서 뇌에 거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언제나 감탄이 필요하다.“ (155) 

 

 


책 읽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이유

 

진정 연애를 글로 배울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소설로 배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특히 무라카미 류가 그랬다. 이젠 이 바닥을 떠나야 할 땐가 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대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독서의 물길이 나쓰메 소세키에 1차 종착점을 찍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는 중이었으므로, 책은 연애의 지침으로써 효능을 잃었다.

 

그럼에도 책이 연애에 하등 쓸모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책을 읽는공대남이라는 특성(‘많이 읽는아니고 그냥 읽는입니다)은 적용 범위가 마이너하긴 하지만 일단 먹히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매력 포인트였음이 밝혀졌고, 대충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쯤은 그런 남자에 취향이 있는 듯했다. 5:5 미팅을 나갔고, 당연하게도 다섯 명 중 한 명이 걸려들었다. , 이건 싸이언스야. syo는 생각했다. 그때는 브라이언 그린과 리처드 파인만을 읽는 시기였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저는 책을 읽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보다는 높은 기본점수를 깔고 시작한다. 그 이유가 오래 궁금했다. 책 읽는 사람들은 책 읽는 사람을 아낀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생각을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대목에 밑줄을 그은 사람은 사랑할 수조차 있다. 그것은 일종의 동류의식일까?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는 말을 부끄러이 하는 사람들 역시 책 읽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호감을 장착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읽지 않은 책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해 책 많이 읽는 이가 좋은 평을 하면 신나 한다. 다음에 읽을 좋은 책을 소개받으면 저 말씀하신 책 지금 바로 사려구요,’ 하면서 즉시 주문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사람의 감정이나 지갑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어지간한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책 많이 읽는 이들이 지닌 아우라가 일종의 수동적 호감으로 작용하는 걸까?

 

반면에 이런 사건도 있다. 우리는 책을 많이 읽은 이에게 어느 정도의 도덕성, 편협하지 않은 마음,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을 기대한다. 책이 그저 지식의 뭉텅이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의지를 가지고 읽든 그렇지 않든, 읽다 보면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책의 효용을 어느 정도씩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 훨씬 더 큰 폭으로 실망하게 되기도 한다. 헤어져 돌아오는 발걸음에, 역시 책 많이 읽는다고 다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런 판단 자체가 나의 오만이거나 내 좁은 소견으로 인한 오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마음이 낙차를 실감하는 것이다.

 

책 읽는 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호감과 기대감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솔직함일지도

 

무슈크의 친구가 홍콩에서 중국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데이상하게도 의사는 친구의 병에 관해 묻지 않고 대신 직업이루지 못한 옛사랑습관 등을 물었다그리고 끝으로 친구에게 차를 한 잔 주고 조용히 창밖을 내다봤다친구가 진료는 언제 할 거냐고 묻자 의사는 찻잔을 넌지시 가리키며 아까부터 진료 중이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겸허히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걸음걸이를 살피고 앉은 자세동작손톱을 관찰했노라 말했습니다그런 다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친구의 등 두 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물었습니다여기와 여기가 아프지 않나요?" (30)

 

이 책의 원제는 독일어 ”Lesen als Medizin“. 모르긴 몰라도 치유로서의 읽기’, ‘나으려면 읽어요뭐 이런 느낌인 듯하다. 한국어 제목인 우리는 책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는 원제로부터 멀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정도의 거리감이 있음에도 확실히 매혹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솔직함에 대해 생각하게 할 만큼 막강하다.

 

위에 늘어놓은 다양하고도 비슷한 질문들을 관통하는 원리가 어쩌면 이 한국어 제목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맞다. 나는 책 앞에서 늘 솔직해진다. 솔직한 나는 아무런 가식도 없이 오직 나로서 책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눈다.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말이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내 안에 들어 있는 선입견, 온갖 잡스러운 감정, 이상적 자아상, 가끔은 나조차 이해할 수가 없는 주관적인 호오의 기준 같은 것들을 오롯이 품고 책과 맞부딪힌다는 뜻 이다. 그렇게 어떤 책은 삼키고 어떤 책은 뱉는다. 그렇게 독서를 마치면 다시 또 어떤 내가 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책을 솔직하게 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르고 읽은 책은 피부가 아니라 그런 외피들에 붙는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거울을 보면, 그 안에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얼굴의 내가 들어있다. 그렇게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책으로 자기를 빚어 여기에 왔다면 그는 최소한 책 앞에서만큼은 충분히 솔직한 사람인 셈이다. 책 앞에서 나를 나로서 있게 하는 사람들. 우리는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이 그런 이들이기를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앞에 앉은 독서가들이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운 대로, 실망스러우면 실망스러운 대로, 그것이 그들이 가진 그들로서의 모습임을 더 선명하게 직감하게 된다.

 

솔직함, 그리고 솔직함을 향한 기대. 읽는 사람이 겪고 겪어내야 할 이런 감정들은 어쩌면 치유로서의 읽기에도 전제조건은 아닐까. 중국 의사가 등을 눌러 아픈 곳을 짚어낼 수 있도록, 우리는 더함도 뺌도 없는 우리로서 책 앞에(그리고 가끔은 사람 앞에도) 나서야 한다.

 



하여 결국 우리는

  

어떤 책은 사람을 다정하게 만든다. 또 어떤 책은 사람을 선명하게 만든다. 또 어떤 책은…… 이 모든 게 책이 혼자 하는 일이라면 책만큼 위대한 것이 없었을 텐데. 그러나 책은 사실 우리 앞에서 우리를 솔직하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솔직하게 다정해지고 선명해지고 그런다. 같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책도 우리도 완벽하게 위대하지 않다.

 

뻔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에겐 항상 울림을 주는 두 개의 구절로 마무리하자.

 


제인 데이비스가 내게 설명한 것처럼 문학에는 실질적인 효용이 있다모든 사람이 책을 읽는다면 세계가 더 나은 곳이 되리라고그녀는 확고하게 믿는다책을 읽는 사람은 상호 간에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고 더 공감하는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92)

 

그러나 문학의 세계는 작가의 창의성과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다음 단계로서 독자의 내면에서 재생될 때 마침내 완성된다. "잘 읽으려면 잘 지어낼 줄 알아야 한다."라고 미국 철학자 랄프 월도 에머슨이 말한다그러므로 작가와 독자 모두 창의적이어야 한다작가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독자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그러니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거나 더 생생하게 재생하기 위해.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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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12-29 1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글도 책도 찐이다... ㄷ ㄷ .....

syo 2019-12-31 08:4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언제나 먹히는 친구팔이

반유행열반인 2019-12-29 1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거 이달의 우수 리뷰 당선입니다. 내 마음대로ㅎㅎㅎ. 책 읽는 사람도 그 사람의 솔직함도 이 책도 참 좋은 것 같아요.

syo 2019-12-31 08:47   좋아요 1 | URL
반님 시상 이달의 우수리뷰, 배부릅니다 제맘대로요 ㅎㅎㅎ

stella.K 2019-12-29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갠적으로 책 제목이 좋긴한데 딱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책을 너무 믿도록 만드는 것 같아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고나 할까?
독서 에세이는 이제 너무 많이 나왔고.
물론 또 이렇게 말은 하지만 누가 이 책을 선물해 주거나 중고샵에서 싸게 살 수 있다면 분명 혹하간 하겠죠.
책 읽는 사람이 호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그런가 보다해요.
말처럼 책 많이 읽는다고 인격이 좋은 건 아니니까.

앜, 뭐야? 내가 왜 이러지...? 막 삐대고 있잖아요.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스요님 리뷰를 넘 잘 써서 질투하고 있나 봐요. 내가.ㅎㅎㅎㅎ

syo 2019-12-31 08:52   좋아요 0 | URL
세상엔 읽을 책이 잔뜩잔뜩 있으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만 읽어도 어쩜 충분할지도 모르겠어요.
스텔라님은 늘 스텔라님께 맞는 책을 잘 찾고 잘 읽으시니까 ㅎㅎㅎㅎ
칭찬 말씀만 접수하는 것으로. 으하하하

붕붕툐툐 2019-12-30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 보는 책인데 리뷰를 읽고 책이 읽어지고 싶다니..글의 힘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syo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리뷰 많이 많이 써주세요!!:)

syo 2019-12-31 08:52   좋아요 0 | URL
붕붕툐툐님 올해도 이래저래 감사했습니다. 남은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비종 2019-12-31 0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력적인 리뷰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편안한 몰입감으로 정독했습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사설같은 느낌도 들구요. syo님의 글은 읽는 이를 기분좋게 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찾고 댓글을 남기게 되나 봅니다. 울적했는데 한결 나아졌습니다. 솔직한 글 앞이라 솔직해지나 봅니다. .

syo 2019-12-31 08:54   좋아요 0 | URL
나비종님이 달아주시는 찌이인한 댓글을 앞에 두면 몸둘 바를 모르겠고 그렇습니다 ㅎㅎㅎㅎ 올 한해 고생많으셨습니다. 모쪼록 내년에도 좋은 시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나무처럼 2019-12-3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쇼님 때문에(덕분에) 산 책이 몇 권이더라?
쇼님 정말 나빠요.ㅋ

syo 2019-12-31 12:0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유 참, 장바구니에 담으시는 분들께 죄송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하게 읽었단 말씀까지만 드리고 싶습니다. 책 자체가 엄청 훌륭하다, 후회 없으실 거다, 이런 말씀을 드릴 만한 정도는 또 아니지 않을까 해요 ㅎㅎㅎ

monicalim75 2020-01-0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력적인 후기네요. 책도 궁금하지만 후기를 쓰신 분이 더 궁금해지는 솔직하고 멋진 후기에요. ^^

syo 2020-01-06 22:57   좋아요 0 | URL
과찬이세요. 책에 대한 정보보다 개인정보를 더 많이 실어야 겨우 한 바닥의 글을 쓰는 정도입니다. 읽는 분들이 좋게 봐 주시는 거지요^-^ 감사합니다, monicalim75님.

2020-01-08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intin2506 2020-01-0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공대생 출신이셨어요? 인문대생 출신은 막연히 부럽네요 가보지 못한 길 ㅋㅋ

syo 2020-01-12 17:3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가봤으나 이미 다 잊어버린 길이랍니다. 뭐 하나 기억이 안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