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에 드러난 모양 이전에 바탕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건축가와 건축주들이 있어 더딜 때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



우리들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집을 짓는 동안 우리들은 내 마음을 상대에게 보여준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오해를 만든 일은 없었을까?


성사동 세가족 중에 한 집인 포비네는 제딸아이와 동갑네기 초등생을 둔 가족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지향이 저와 비슷한 면도 많고, 포비네 집 책장을 보면 읽고 싶은 욕심이 나는 책이 많은 책부자입니다. 알고 보니 제 지인들과도 인연이 있어 멀지 않게 느껴지는 건축주입니다. ‘포비’님이 3일 전에 문자를 주었습니다.


“소장님 못 뵌지가 꽤 되어서 메시지 남겨요 ~잘 지내시죠? 날씨가 어쩜 이래요. 거긴 더 좋겠지만 여기 좋은 공기 전해 드려요”


어제는 포비님의 남편 ‘스머프’가 전화를 주었습니다. 직접 만든 반찬을 봉투에 담아 몇 차례 나누어 준 자상한 건축주 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그 마음씀에 감사의 마음을 내어주는 건축주 입니다. 

“소장님 저녁 시간인데 전화 괜찮으세요? 못본지 오래 되었어요. 집을 짓다보니 현장 소장과 감정이 생기고 잘 풀리지 않고 힘이 좀 들어요. 수고가 많은 소장인데, 처음 짓다 보니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네요 ^^ 이번주에 진입로 정리하는 것을 가지고 모이자고 하는데 혹시 저에게 도움이 될 의견이 있으신가요?”


조금 지나서는 현장 소장이 전화를 주었습니다. 현장 소장은 저와는 10년이 넘은 인연이고,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가득한 건축가 입니다. 지금은 성사동 세가족 중에 가운데 집 ‘꽃잔디’의 남편이고 저에게는 건축주이자 세가족의 건축소장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이렇게 되어버려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할 허소장을 생각하면 재미나기도 하고 살면서 표정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도 앞서게 됩니다.

 

“소장님 퇴근 하다가 목소리 들고 싶어서 그냥 전화 드렸어요. 지지난 현장에서 쓰고 남은 나무 자재가 조금 있는데 용달편으로 보내드릴께요. 필요한데 있으면 쓰세요. 인연이 있는 분들 집을 짓다보니,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제 욕심을 내려놓기는 정말 쉽지 않네요”


좁은 땅에서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간격이 존재하기에 우리들은 각자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을 하는 수많은 손맛 있는 장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집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저녁 9시30분이 넘어 

성사동 세가족 ‘바람개비’님이 연락을 주었습니다. 바람개비는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 제가 정말 좋아하는 색인 Olivegreen 집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풀기 위해 애쓰고 주변을 살피면서 의견을 나누는 사이가 된 건축주 입니다. 


“소장님 늦은 시간인데 통화 괜찮을까요? 우리집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가운데에 자리한 계단도 보면 볼수록 쓰임이 좋구요. 일하시는 분들도 좋은 분들이 오셔서 잘 지어 주시고요. 주변 지인들 중에 건축하시는 분들도 와서 구경하고는 시샘하면서도 부러워하네요. 외벽 색깔도 정말 좋구요. 친정 어머니도 좋아하세요. 그런데 소장님 이번주에 ‘베짱이’(현장 소장)가 동네 입구 계단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함께 고민을 해야 하는데 소장에게 부담만 주는 것 같고, 잘 모르겠어서 의견 듣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집을 짓는 일이 쉬운일이 아니네요”


건축가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지난해 이맘 때 성사동 현장소장 ‘베짱이’가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역시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말 한마디에 풀리기도 하고 쌓이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드니,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관계가 만들어지는 일이 집짓는 일일것입니다. 지어진 집에 이사해서 몇 달 살아보면 집 짓는 중에 그렇게 고집하던 일들도 “피식”하고 웃을 때가 옵니다.    


지금 저의 역할도 그 때를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감자리를 잡을 때 먹통에서 빼낸 먹줄을 팽팽하게 '탱'하고 당겨야 먹선이 살아 끝까지 마감선이 이어집니다. 우리들 집짓는 일들도 먹줄을 긋는 것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건축주인 성사동 식구들과 건축가인 저의 관계를 위치로 풀어보자면, 제가 원의 중앙에 있고 원둘레에 자리한 현장소장과 건축주들이 가운데 있는 저에게 각자의 마음 이야기를 전하는 듯 합니다. 원의 지름은 느낌상 2미터가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어 어느새 저도 내공이 생긴것인가 싶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우선해서 사람의 마음을 챙기는 일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겉소리 대신 마음자리에 있는 울림을 상대에게 잘 전하는 일이 저의 일이니 건축가는 일종의 통역관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성사동 식구들은 가족이 되어 가고 있어 따뜻한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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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둘러쌓인 이곳에서의 삶은 나무와 풀, 새들의 소리로 가득한 봄사이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정원을 만지는 건축가, 시골에 사는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도시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발을 딛고 있는 가까운 장소와 공간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기에 싫지 않은 소리입니다. 도시에서야 길과 건물, 사람들의 모습이 풍경이라면, 이곳에서는 자연과 화합하지 않으면 안되는 생활이 있습니다. 손과 발, 몸의 크기에 어울리는 정도의 호미, 모종삽, 한사람 정도 걸을 수 있는 작은 길, 모내기를 앞두고 물을 가둔 논, 사람들의 손길과 자연의 따뜻한 기운이 더해지면서 풍성해지는 고추와 가지, 호박, 참외를 심은 밭,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 그 자체로의 자연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단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순간 순간의 변화와 질서, 소리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시골사는 건축가의 삶이 풍성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시골에 살아야만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이야기처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들길에 핀 작은 꽃 한송이에도 수다스럽게 많은 이야기들을 숨겨놓은 듯한 모양새가 담겨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꼼꼼히 보려 하면 무릎을 굽혀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아야 볼 수 있는 꽃들이 가득한 계절입니다. 씨가 열매 표면에 가득박힌 견과류에 속하는 딸기는 하얀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우리집 딸기는 첫해에 모종을 다섯포기 사다 심은 후로 매년 딸기밭의 크기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조금더 이야기 하자면  딸기가 스스로 성장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딸기는 가을에 포기 나누기를 하는데, 집에 찾아온 지인들에게도 딸기 모종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흔한 표현처럼 지천에 딸기가 피고 있기 때문에 마음가는 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딸기꽃이 피면 벌들이 찾아들고, 새들이 날아듭니다. 벌들과 새들도 제가 모르는 뭔가를 우리밭에 잔뜩 주고 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 가을 열무순을 먹기 위해 뿌린 씨앗이 겨울을 견디고, 텃밭을 갈고 모종을 옮겨 심는 사이계절에 꽃을 한 가득 피웠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초봄부터 노란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청보리와 댓구를 이루며 노란꽃을 한다름 올리고 있습니다. 샛노란 배추꽃와 유채꽃은 지고 있는데 열무순 옅은 노랑은 아직 한창입니다. 

 

지난주에 차한잔 하러 온 이정원사는 처음 보는 꽃이라면서 이계절에 이렇게 화사하고 풍성하게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며, 씨를 받아서 꼭 달라고 약속을 받아낼 만큼 정원사에게도 선택받은 노란꽃입니다. 병아리색은 아니고 옅은 겨자색에 갈색 꽃화분의 열무순꽃에도 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꽃을 따서 먹어보니 꿀맛보다는 열무향이 더 가득합니다. 


이제 곧 고추, 토마토, 가지, 상추 모종을 옮겨 심어야 하는데 열무순꽃을 베어내기가 망설여집니다. 이정원사에게 열무순씨를 주려면 꽃이 지고, 씨앗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씨를 받을 정도만 남기고, 일주일이 더 가기전에 낫으로 베어 온실 화병에 담아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는 “~할 것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되더군요. 몇시부터 몇시까지 뭐하고 그 다음은 어떤 일정이고 이렇게 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마당에 핀 풀을 뽑다가도 눈을 돌리면 금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서 그일에 빠지고 마니 땅을 밟고 산다는 일은 예상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사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풀을 베다가는 말고, 저녁에 지필 모닥불 준비를 하고 말았습니다. 새로 구입한 손에 들어오는 손도끼로 작은 나무들을 잘라 놓으면 불을 지필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땅바닥에 나무를 세워놓고, 장작을 준비하다 보니 또 금새 다른 생각이 떠올라서 그리로 일을 옮깁니다. 마치 한발짝 움직일 때 마다 색깔이 다른 생각과 몸짓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요? 작은 목각 인형을 거칠게 만들어 봅니다.


언젠가 책에서 본 여우 인형인데, 낫과 톱, 작은 끌, 손망치를 이용해서 지름 10센티 정도의 장작을 8등분 내어 만들 수 있는 나무 인형입니다. 만들어 보고 싶다는 기억에 이끌려 인형을 깍기 시작해 한시간 정도 다듬었는데 여우가 만들어졌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 우체통에 올려놓고 여우의 인사를 듣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체부 아저씨 여기에 편지를 올려놓으세요”라고 하네요. 조만간 동네사람들도 즐거워 할 것 같습니다. “지원이 아빠 이건 언제 만든거래요?” 8조각 중 만들고 남은 7조각을 여우로 변신시키는 작업도 남아 있기는 합니다. 언제 8마리의 여우가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계절에는 정말 할 일이 많아서 지루하거나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벽과 지붕으로 둘러쌓인 곳만 집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의견이기는 합니다. 이정원사가 즐겨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붕없는 방’ 정원을 두고 하는 말인데 저는 이말에 열렬히 동의 하는 편입니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주변에 핀 풀들을 보고 있으면 여러권의 책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벽과 창, 유리, 지붕 대신 나무와 풀, 함께 사는 고양이, 나무 의자, 모닥불을 필 수 있는 곳들이 또 하나의 방이고 나만의 장소 우리 가족의 장소, 이웃들의 자리라고 시골에 사는 건축가는 이야기 하게 되는군요. 비싼 제품의 건축재료와 소품들 자리를 대신 할 수 있는 ‘지붕없는 방’에서 오늘도 깜선생은 나무둥치에 발톱을 갈고 있군요.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쓴 윌리엄 코퍼스웨이트는 ‘손으로 만든 장난감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비인간적인 대량 생산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보살핌과 애정에서 나오는,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특성이라고나 할까.’ 


저도 윌리엄씨의 이말에 공감합니다. 우리 삶의 특별한 매력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장소에서 나타나는 일이겠지요. 이 계절 지붕없는 방에서 한동안 살것 같습니다. 



‘손으로 만든 장난감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비인간적인 대량 생산품에서 찾아보기 힘든, 보살핌과 애정에서 나오는,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특성이라고나 할까.’

윌리엄 코퍼스웨이트, <핸드메이드 라이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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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코로나19’도 그렇고해서 일회용을 줄이자는 마음으로 면마스크 만들었어요. ^^;

내놓긴 부끄러운 솜씨지만 안성으로 보내드릴께요.^^


따님것도 만들었는데 맞을지 모르겠어요.~

어른용 마스크 안감이 광목이라서 처음 세탁시 물이 빠질 수 있어요.

참고하셔서 손 세탁후 사용하세요.^^♡”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몇 해 전 건축안내를 드리면서 인연을 맺은 비구니 스님께서 손수 만드신 마스크를 보내주셨습니다. 지난해 계신곳으로 발효빵을 보내드리고, 올해는 제가 좋아하는 커피원두를 보내드렸는데, 그 마음이 끈으로 이어졌는지 스님께서 손수 광목천을 준비하고 마스크를 만들어 보내주셨네요. 제가 빵을 배우고 있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난 후 “그 빵 참 맛있겠어요, 기회가 되면 빵맛을 보여주시겠어요?’라며 댓글을 남기셨지만, 초보의 향이 심한 발효가 덜된 신맛과 모양만 있는 빵을 보내드릴 수는 없어서 빵을 전수해주신 선생님께 부탁드려, 여러 종류의 천연발효빵을 선원에서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과 맛있게 드시라고 보내드렸었습니다. 인연의 고마움을 빵으로 표현한 셈이죠. 


몇 해 전 처음 뵈었을 때 스님께서 직접 만드신 정갈한 음식을 받아들고, 마음 한 켠에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음식을 정성으로 대접 받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 뭐랄까요?, 색으로 치자면 연녹색의 밝고 푸른 기운이 감도는 음식이라고 할까요?

바쁘게 한끼를 해치우듯 먹던 저에게 잠시 쉬어가도 좋다는 메시지 같다고 할까요? 음식에서 ‘마음’을 느낄 수 있음을 경험하도록 이끌어 주신 분이십니다. 


스님께서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제가 건축을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곰곰히 살피던 몇 해 전 기억들이 있습니다. 건축가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보내주신 마스크를 챙겨 성사동 세가족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이제 지붕까지 마무리가 다 된 성사동 가족의 집들은 처음 구성한 방향보다도 더 깊고 든든한 장소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현장에서 일하는 건축가들의 두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뭔가가 있기에 그렇겠지요? 


현장에서 점심을 먹고 디자이너, 현장소장, 목수님들과 함께 지붕 형태와 공사중 예상되는 어려움들, 각집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고백하자면 설계에서 찾아내지 못한 곳까지 살피는 현장의 이야기들은 그림이 아니라 1:1 현실입니다. 손맛이 좋고 느낌있는 집을 만들기로 소문난 정목수님이 안경 너머로 웃음을 보이며 응원의 이야기를 전해주십니다. “집마다 개성이 있고, 가족들의 생활을 담아내고 있어서 작업이 재미납니다. 즐겁고 유쾌한 집과 작은 동네가 만들어질 것 같아요.” 

건축을 통해 ‘마을과 이웃’이라는 플랫폼을 만드는 저로서는 이런 표현들이 좋습니다. 집과 이웃이라는 그릇에 색다른 음식같은 맛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해가 갈수록 생활하는 장소로서의 색을 더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WTC(쌍둥이빌딩)를 재설계한 미국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건물은 콘크리트와 철, 유리로 지어지나 실제로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으로 지어진다.”는 표현처럼 재료를 만지고 다듬는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으로 건물이 지어지는 것임에 동의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집을 짓는 일은 건축가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톤을 이어받을 집주인에게도 역할이 있습니다. 예로 들자면 장소와 공간에 대한 나의 바램은 무엇인지, 새로운 집에서 가족들은 3년, 5년, 10년 후 어떻게 지낼지 생활의 그림을 그려보는 일입니다. 일종의 예습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흔한 표현처럼 “난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고 건축가들이 다 알아서 다 해줄거야”라는 표현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 건축가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정도라면 과한 표현일까요? ‘살집’에 대해서 만큼은 참여형 건축을 추구하는 저로서는 집주인도 건축가의 한명이니 자신과 가족의 의견을 충분히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집을 향해 가슴을 열고 영혼으로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곳인가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을 믿으면 그 방향으로 향해가는 원리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요즘 성사동 식구들은 건축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일로도 전화를 합니다. 아마도 건축가들이 좋은가 봅니다. “무슨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요 집이 넘 좋아지고 있어서요, 그런데 우리집 벽색으로 올리브 그린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미 마무리 된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놓는 것을 보니 정말, 그냥 안부 전화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현장에 가는 시간은 주로 점심시간이고, 건축주들이 현장에 오는 시간은 퇴근 후이니 현장이라는 오작교를 두고 서로 그리워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코로나 19로 인해 반갑게 인사를 한다고 해도 눈인사가 전부지만 마스크 넘어 함지박만한 입가의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보내주신 마스크는 두고 두고 사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성사동 세가족의 집도 오랜 세월 살 집이니 ‘마음’이 빠지면 우리들의 가슴과 영혼도 빈 집이 되겠지요. 생활을 가득 담을 집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가는 길에 서로 의견이 다르고 표현이 다를 지라도 우린 모두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 의견이 다르다고 힘들어 하기보다는, 곁에 있어 힘이 된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성사동 세가족도 오랜 인연이 될 분들이니 두고 두고 생활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보너스 같은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마음으로 만들어진 마스크와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성사동 세가족의 집입니다. 닮아 보이지 않나요?

"건물은 콘크리트와 철, 유리로 지어지나 실제로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으로 지어진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낙천주의 예술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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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0-04-01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며 살아가는 인연의 정을 떠올립니다. 비구님 스님 솜씨도 좋으세요.

빵굽는건축가 2020-04-01 10:43   좋아요 0 | URL
^^ 자성지님 가슴 뭉클하단 말씀에 제가 찡해지네요 ^^
손으로 만든 마스크 안에는 속지를 갈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서 마음에 쏙 들어요. 실은 제가 얼굴이 조금 작아서 조금 큰 감은 있지만 너무 감사한 마음에 글을 써서 기억하고 싶었어요.
 

“민들레 캐러와요, 지금이 제일 좋아, 4월이면 꽃이 피어서 억세고 지금은 꽃이 오르기 전이라 순하고 캐기 좋아요. 어서들 와요. 우리는 하루 종일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시간 될 때 와요”


도농지역인 이곳 안성과 큰도시에 사는 차이점을 이야기 하자면 제가 인식할 수 있는 관계의 수에 있습니다. 여기서 ‘관계의 수’라는 의미는 인사를 주고 받는 예의에 머무르지 않고, 거리적으로는 먼친척보다는 가까운 ‘이웃’들을 이야기 합니다. 집을 나서면 만나는 우리동네 사람들, 그 옆에 장미마을식구들, 동네 이장님댁, 5분 거리에 사는 도예가 형님, 시내로 나가면 백성교회, 시민모임, 의료생협처럼 얼굴을 보며 반갑게 가족들의 근황을 물을 수 있는 친밀함의 거리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지역의 친밀도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이나 밴드에서 비대면으로 만나는 분들 중에도 고맙고 감사한 인연들이 많지만 수백명이 넘는 거의 대부분은 저와 인사한 번 나누어본 적이 없는 모르는 분들입니다. 관계의 메커니즘을 진화심리학으로 풀어내는 ‘로빈 던바’는 <던바의 수>에서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의 수는 150여명 정도라고 합니다. ‘수’ 보다는 ‘질’이 더 중요한 것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요. 


지역에서 맺은 인연 가운데 한 집을 더 꼽으라고 한다면 포도농사를 짓는 사장님댁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기운으로 포도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소개되기도 하는,  다른 표현이 부족하고 보석같은 포도를 키워내시는 분들입니다. 포도가 열리는 늦여름과 가을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새순이 올라오는 봄에도 농장에 찾아갈 일이 있습니다. 냉이와 민들레를 캐는 계절이기 때문인데요. 올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올해도 우리가족은 봄소풍 삼아 집에서 20분거리에 있는 포도농장으로 나물을 캐러 다녀왔습니다. 딸아이도 함께 가겠다고 하니 일손이 한 명 더 늘은 셈입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구입해둔 체코 출신의 화가 ‘알폰소 무하’ 전시회 티켓도 쓸모없게 되버리고 서울 나들이도 기약이 없던차에 햇살을 찾아 올라온 민들레와 냉이 새순을 따러 오라는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봄 햇살처럼 환해지는 마음으로 흙냄새를 맡고 왔습니다. 


딸아이는 민들레 뿌리 냄새를 코로 맡으며 “아 이 냄새 살아나는 것 같아, 좋다”

민들레를 다듬을 때 나오는 하얀 진액으로 새까맣게 변한 손가락을 만지며 “아빠 손가락 색깔이 괜찮은데 촉감도 좋아, 왠지 치유되는 것 같아” 

“여보 내일 아침에는 민들레 무침 해서 먹게, 김치를 다 담그기에는 양이 많아서 식초에 매콤하게 무쳐 먹으면 좋겠어”

아내도 나물 무침에 나름 내공이 있으면서도 종종 저에게 반찬 주문을 합니다. 

30대 중반 시절에 사찰공사를 위해 절에 거주할 때 그곳에 계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 때 익힌 생활의기술 중에 하나가 나물 반찬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고사리, 화살나무, 두릅, 취나물까지 고루고루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 경험으로는 남편들도 반찬하는 법을 배워두면 쓸일이 많아집니다. 이유를 들자면 손수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대접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이 있습니다. 잘 차려진 식당에서 맛있고 좋은 것을 돈을 주고 대접할 수도 있겠지만 나만의 손맛으로 가깝게는 가족들에게,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에게 ‘찬’을 대접할 수 있는 생활이 하루 하루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만듭니다. 실은 반찬 한가지를 만들기 시작하면 아내와 이웃들의 칭찬에 다른것도 연구하고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대표 음식으로는 나물반찬과 카레, 죽 종류를 들 수 있고 발효빵을 굽는 일도 연장선상에 있는 셈입니다. 요즘 저의 발효빵은 녹차와 보리싹 가루가 들어간 녹차보리빵입니다. 제과점에서 먹는 빵의 식감은 아니지만 올리브오일이나 야채와 곁들여 먹기에 알맞은 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빵 맛보다는 빵을 만드는 아빠의 모습을 더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내는 맛도 좋다고 합니다. 


왼쪽 아래 요즘 만들고 있는 녹차보리싹빵, 커피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우리 부부의 커피뿐 아니라 초등5학년 딸아이의 커피도 없으면 안됩니다. 애가 커피맛을 알아버렸어요. 가운데는 봄맞이 아빠의 샐러드입니다. 무엇을 만들어 대접한다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에게 대접한다는 의미를 알게 되는 계절입니다.



제 손가락 끝은 하룻밤이 지났어도 여전히 까맣게 물이 들어 있습니다. 민들레 잎은 김치와 나물을 준비하기 위해 뿌리와 분리해서 다듬고 뿌리는 흙을 털어내고 잘 씻어서 물기를 빼고 난 후에 젓가락 굵기 정도로 떡을 썰듯이 잘게 잘라 햇살에 말리고, 바짝 마른 후에는 3번 정도 중불과 약불을 이용해 가며 덖어 놓으면 일년 내내 봄향이 가득한 민들레차가 만들어집니다. 민들레차는 우리가족이 여행을 할 때도 먹고, 커피 대신에 애용하는 수제차라고 할 수 있어요.


바쁜 세상에 뭘 그렇게 조물딱 거리며 사냐고 하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지만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이 맛은 돈으로는 느낄 수 없는 수많은 관계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도 매년 민들레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민들레 뿌리는 예로부터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했으니, 사람들과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민초 중에 민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 담구어 놓은 민들레뿌리 된장은 식탁에서 쌉쌉하게 절묘한 맛을 내고 있습니다. 민들레 된장 한 수저에, 냉이와 파를 송송 썰고, 다시마 우린물에 두부를 썰어 한 냄비 끓이면 된장찌개 맛이 정말 좋습니다. 


‘로빈 던바’씨도 된장국 맛을 알고 있을까요? 된장국 맛은 모르겠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관계의 메커니즘은 이 봄 우리집 된장국으로 풀어지고 있습니다.

"던바는 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 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이를 ‘던바의 수‘라고 부른다." ‘로빈 던바‘의 <던바의 수>중 해제를 맡은 최재천 선생님의 글에서 발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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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친구-이오 2020-03-30 0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의 일상이 저절로 그려지는 글이네요..

멋진 하루 보내세요~~

춘천에서 이오.

빵굽는건축가 2020-03-30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원사님의 즐거운 춘천여행 기대되네요. ^^
 

스테비아, 오레가노, 땅두릅, 검은토마토, 두메부추...더 늦기전에 모종용 비닐 하우스를 다시 만들고, 모종판에 흙을 담고, 구입한 모종 씨앗을 심었습니다. 마음이 급할 때는 저 혼자 해치우듯이 할 때도 있었지만 그리 일을 하면 재미나지 않습니다. 해마다 정원의 모양도, 심고 가꾸는 종자의 종류도 바뀌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봄날 장에가서 고추, 파프리카, 가지, 피망 모종을 사다가 심으면 아주 간편하고, 튼튼하게 자라기는 하지만 몇 해를 이렇게 해보니 다른 욕심이 생깁니다. 씨앗을 심고 설레임으로 기다리면서 모판에 물을 주고 모종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보람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씨앗을 심어 풍작을 거둔 ‘파프리카’의 추억을 되살리며 올해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씨앗들을 준비했습니다.


설탕을 대체 할 수 있는 천연감미료라고 하는 스테비아도 그렇고 허브중에 새롭게 발굴한 오레가노는 새로 준비한 씨앗입니다. 토마토는 모종으로 구입하면 한포트에 오백원에서 천원 가까이 되다보니 몇 포트 구입하고 나면 토마토에만 만원돈이 훌쩍 지출되고 맙니다. 토마토는 모종도 비싸지만 씨앗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검정토마토 씨앗 10알에 삼천원입니다. 현금만 구매가 가능한 시장에서 모종으로 사면 만원돈이지만 이른 봄에 부지런을 떨며 심으면 7천원을 절약할 수 있고, 10알의 씨앗에서 토마토가 몇 상자는 나올 것이니 아깝지 않습니다. 수익율이 몇십배 되는 장사는 농사밖에 없는듯 합니다. 다만 상품성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니 마트에서 사먹는 토마토의 모양과 비교한다면 한참을 뒤쳐지기는 합니다. 벌레먹은 토마토를 비롯해 제 멋대로 생긴 것 같은 토마토도 모두 먹을 수 있으니, 먹는 양으로 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분들을 추월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산에 피는 산두릅 계절이 됩니다. 산두릅은 두릅나무의 새순인데 봄비가 몇 번 오고 나면 훌쩍 자랍니다. 문제는 모두가 이 ‘때’ 기다린다는 점입니다. 하루만 한 눈을 팔거나 시간을 놓치면 첫째는 이웃동네 할머니들이 모두 따가고, 둘째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시가 생겨서 먹기 힘들기 때문에 산두릅은 저처럼 주중 일정이 일정치 않은, 건축가들이 야생에서 채취한다는 것이 사실상 무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산두릅을 놓고 감히 동네 할머니들을 저의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네요.  


우리집 정원에 두릅나무를 심고 싶은데, 두릅나무의 장점이라고 하면 번식율이 엄청나고 단점이라면 나무에 달린 날카롭고 긴 가시 때문에 찔리기가 쉬워서 정원수로 사용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봄 한철 나물을 먹기위해 마당에 심기에는 부족한감이 있습니다. 할머니들과 경쟁에서 이기든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세월이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꽃이 이쁜 부추가 지천인 우리집 ‘키친가든’에 새로운 부추종자를 들여놓았습니다. 종자수로는 세번째 입니다. 두메부추, 새롬부추, 중국부추까지 같은 부추인데 종자회사에서 이름을 붙인것도 있고, 원산지명을 쓰는 부추도 있습니다. 어제 씨앗을 뿌렸으니 한참 지나 새순이 오르기는 하겠지만 부추는 여러해살이라서 한번  뿌려두면 두고 두고 먹을 수 있는 다년생 나물입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심어도 손색이 없어 종종 추천을 하기도 합니다. 봄부터 꽃이피기 전까지 새순을 먹을 수 있고, 씨앗은 받아두었다가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어도 좋을 만큼 잘 자라고, 꽃도 먹고, 매콤한 매력이 있는 작물입니다. 


봄이 되면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산에가서 나무도 해야 구들에 불도 넣을 수 있는데 벌써 한달째 산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에 사둔 ‘지게’가 저에게 “이럴꺼면 뭐하러 저를 사두었습니까? 저도 산에 좀 가봅시다, 제가 얼마나 유용한 물건인지 아직도 모르시는거죠?” 

마당 정리도 해야하고, 정원도 가꾸어야 하고, 산에서 나무도 해와야 하고, 집안 곳곳 손볼 곳도 있고 마음이 바쁜 계절입니다. 그래도 정말 때를 놓치면 안되는 일이 모종을 준비하는 일인데 1차 모종 심기는 해결했고 남은 씨앗은 작은 화분들에 나누어 심는 일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물도 주어야 합니다. 딸아이가 모종에 그림을 그려서 무엇을 심었는지 알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럴 때 아빠는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 목적이고 딸아이는 일을 즐기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보다 한 수 위의 딸아이에게서 시간 사용법을 배웁니다. 


잔디도 걷어내고 있습니다. 잔디는 ‘저푸른 초원’이라서 좋기는 한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구석 때문에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무한번식을 하면서 텃밭과 나무아래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텃밭도 잔디밭, 나무아래 꽃밭도 잔디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조리 걷어내려고 합니다. 

작년에 다녀왔던 일본의 ‘오부세 정원’처럼 잔디 없는 정원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일본정원 답사를 다녀온지 1년 만에 시작한 잔디 제거 프로젝트입니다. 잔디를 모두 제거하기까지 이 속도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잔디없는 정원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자연농법을 펼치고 있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의 말씀처럼

"자연농의 스승은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도 푸르게 우거지는 자연의 숲과 초원이다."를 우리집 마당에 실천하기 위해 이 봄을 가족들과 즐기고 있습니다. 방임이 아니라 최소한의 농작업과 자연의 조화를 깨지 않아야 한다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알아차리는 시절로 가고 있겠지요?


땅을 밟고 살면서 알게 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구분지은 계절일 뿐이고 그 사이에 있는 간절기가 정말 소중한 시간입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는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찬스타임’이라고 할까요? 비도 자주 오고, 풀도 더 많이 오르기 전에 오늘은 배수로 청소도 하고 지난 가을부터 쌓인 낙엽도 청소하려 합니다. 


그나저나 산두릅 타임을 놓치면 안되는데 할머니들을 도통 당해낼 수가 없단 말입니다. ^^

"자연농의 스승은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도 푸르게 우거지는 자연의 숲과 초원이다."
가와구치 요시카즈의 <자연농 교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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