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현장은 김포현장보다 한 달 늦게 시작해서 세동의 건물이 나란하게 벽과 바닥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날씨 핑계를 대고 쉬지 않고 힘껏 밀어부쳐 성과를 내고보니 그럴까요? 현장소장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낀 여유가 보입니다. 설 명절 전에 하나라도 더 많이 진도를 나가고 싶어하는 눈치가 가득하지만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선생님 현장에 왔는데 같이 점심하실래요?” 느닷없는 점심제안에 

“소장님 일찍 연락을 좀 주시지. 얼굴보고 밥 같이 먹고 싶은데 설 전이라 너무 바쁘네요” 차례대로 세분의 건축주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3호집 바람개비만 “네 지금 바로 달려갑니다”하고는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밥 한끼가 뭐 대수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밥 먹으면서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에 정이 쌓이다 보면 괜한 오해도 없어지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일이라 특별히 시간을 잡지 않은 ‘번개모임’을 제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이들이 협동조합 건축가들을 너무 보고 싶어하는데 다음번에는 주말에 오세요” 어린 친구들이 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습니다. 공사를 시작한 이후로 못본지도 두 달이 되어가고 있네요. 집을 짓는 일은 정말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다 싶습니다. 

“소장님 우리 큰 아이가 건축을 하고 싶어해요, 저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고요, 대학을 꼭 가야하나요?” 밥을 먹다 말고 난데 없이 던지는 바람개비의 질문에 현장소장은 특유의 곁눈질로 저를 보며 그냥 웃기만 합니다. 저에게 대답을 하라는 뜻이겠죠.

“대학을 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안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라는 동문서답 같은 저의 이야기에 다들 피식 웃고 황태구이와 낙지볶음을 다 먹고 나왔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현장 소장이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3호 포비가 남몰래 집짓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이 재밌어요. 왠지 제가 더 부끄럽고 잘 지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엊그제 바람개비한테 부린 심술이 더 창피하고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아무튼 더욱 힘내고 잘 지어야겠습니다..^^


‘밥해주는 건축주’ 리스트에 올라간 포비님이 집짓는 과정을 글로 쓰고 있다는 소식에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편하고 조근조근하게 가볍게 읽히고 그중에 정말 제 마음을 사로 잡는 대목이 있더군요. 그 글 중에 일부를 옮겨볼까해요.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소장님이 현장을 보러 오셨다가 전화하신 것이다. 못 뵌지 한참 되어 버선발로 뛰어 나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난 너무 멀리 있었다. 난 사람을 쉽게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건축팀을 만났을 때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소장님이 입고 있었던 초록색 바지가 마음에 들었고, 진심이 느껴졌다. 말도 잘 통해서 대화가 즐거웠다. (.....) 우리집을 지어준 건축가들은 우리에게 ‘백년손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 , 비록 우리가 비용을 내지만 그것이 내 마음의 고마움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나의 마음도 이미 사무적이고 의례적인 관계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지어진 집에서 잘 살고, 우리집에 오실 때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마침 설 명절 전에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게 되었다.”  


제가 좋아하는 초록색 바지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다 싶습니다. 진한 초록색 바지에 별난 사람을 다 보겠다는 표현도 있을텐데 말이죠. 거기다 ‘백년손님’이라는 표현이 제 마음에 쏙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밥해주는 건축주’ 포비님의 표현처럼 저역시 성사동 식구들은 긴인연일거라 생각 하고 있었으니 서로 ‘통’하고 있었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때가 참 좋습니다. 

벽체를 세우기 위해 창틀을 만들고 지붕의 각을 잡으면 하늘이 열리고

사람으로 치자면 눈썹과 머리 스타일이 생기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과 벽을 만들기 위해 틀을 짜고, 재료들의 배치는 모두 현장에 계신 목수님들의 작품입니다. 

회화적인 구성이 참 좋습니다. 



집을 짓게되면 집이 전부다인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두고 우기고, 고집피우고, 오해하고, 싸우는 일이 많은데 돌아보면 집을 짓는일을 멈추지 않으면 지어지는 것이고, 결국 남는 것은 집짓는 기간 동안 만난 ‘사람’(마음, 바램, 웃음)밖에 없음을 경험해왔습니다. 제 마음의 건축주들을 꼽아 보자면 숫자가 제법 되는데 성사동 식구들도 그렇게 되어가니 고맙기만 합니다. 유명 브랜드인 '샤넬'을 설립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1957년 라이프(LIFE)지에 이런말을 남겼다고합니다. "유행은 퇴색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 우리들은 지금 어떤 스타일을 남기고 있을까요?


새해에 새집에서 소란스럽고 수다스럽게 서로를 아끼며 살아갈 성사동 식구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성사동 식구들의 수다에 제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남은 기간 동안 입심을 좀 더 길러야겠습니다. 한 번 모이면 아이들이 다섯에 동네 친구들이 네다섯, 어른들이 여섯명, 모두 열대여섯명은 되니 제 소리가 가려질 때가 생길 수 있거든요. 그나저나 어서 시끌한 새집을 보고 싶어집니다. 

“유행은 퇴색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Fashion fades, only style remains the same)”가브리엘 코코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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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을 앞두고 김포 풍곡리와 고양 성사동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명절은 설선물을 보내지 못해 마음 한켠이 아쉽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명절인데 정성이 들어간 특별한 선물을 고집하다 그만 시간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손으로 만든 한과를 과자점에서 직접 확인하고, 포장지에 편지를 넣어, 때에 맞추어 택배로 몇 년간 보내온 동네 과자점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나니, 어떤 것을 할까 망설이다 시간만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익숙한 얼굴의 현장 식구들이 창과 벽체, 바닥 난방을 위한 바탕공사 마무리를 하고 있는 김포 현장은 그렸던 이미지와 이야기보다 더 듬직하고 단정한 집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나지막한 동산의 나무들이 한강과 나란하게 실내에 이어지도록 설치한 가로로 긴창들과 나무보, 나무기둥 덕분에 그럴까요? 햇볕에 비추일 때마다 강물의 윤슬처럼 느낌있는 장소들이 제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 남은 공사들이 기다려지게 됩니다. 


“윤달이 낀 겨울이라 2월 달에 추위가 몰려올까 겁이 나네요”라는 현장소장의 걱정에 저 역시 “아차 윤달에 낀 음력달이지”라며 대꾸를 하고는 혹시라도 추위가 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외부 벽돌 공사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저역시 염려가 앞서게 되네요. 벽돌을 쌓는 동안 영하의 날씨로 내려가면 벽돌과 벽돌의 이음부분에 문제가 생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얗게 변색이 되니 걱정을 안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지난 두 달간 따뜻한 날씨 덕분에 여기까지 무리없이 진행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이 더 큽니다.


“주방 높은 벽에 아래로 각도를 두어서 빛이 내려오도록 가로로 긴 창을 하나 더 낼 것을 그랬어요”라며 손짓으로 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그려보는 현장 소장의 손짓에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주방벽으로만 생각하고 빛이 드는 좋은 장소를 하나 놓치고 말았네요” 도면에서는 찾아내지 못한 빛의 이동을 창을 설치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으니 이미 한 발 늦고 말았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생각으로만 짓는 것보다는 역시 1:1의 현장에 나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한사람만 잘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열사람이 잘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마음이 모아져야 되는 일이 집짓는 일입니다.


추운 겨울 한강의 칼바람을 맞으며

겨울 공사를 하고 있는 식구들이

아늑하고 단정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나는 닫혀있는 응접실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예술 활동을 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알폰스 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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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1-25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빵굽는건축가 2020-01-26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즐겁고 유익한 한 해 되세요. ^^
 

지금까지의 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일이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던 일과는 무관하지 않지만 의미와 내용이 달라지면 건축의 형식도 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에 경험이나 한 두권의 책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앞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을 찾아 답사하고 그곳에 담고자 했던 의미를 음미하는 편이 이야기로 전해 듣거나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 보다 큰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 수목장과 관련한 건축물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일이 설계와 시공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낮선 일을 의뢰 받는 것 만으로도 설레이는 일이기는 합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수목장 설계와 공사를 했던 정원사와 함께 이천에 소재한 공원묘지(봉안담)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봉안담은 한눈에 보아도 아담한 숲속에 작은 예배당을 짓고 그 지하에는,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곳’이라는 시각에서 디자인 된 장례시설 입니다. ‘죽음은 어두운 곳이다’ 라는 인식이 지배했다면 이곳은 죽은자를 위한 장소도, 산자가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시작한 곳입니다.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따뜻한 분위기의 봉안시설은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Sunken을 도입하여 내용적으로 나마 죽음은 끝이 아닌 ‘영생의 의미’를 건축적으로 해석한 곳이었습니다.  


추모객을 위한 리조트와 레스토랑, 카페도 멀지 않은 공간에 있어서, 사진으로만 본다면 이곳이 장례시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방문객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이러한 장소들은 설령 상업적 의도를 갖고 있다해도 쾌적한 장소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죽음의 장소를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소로 연결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 차분하게 안내하는 책으로 최준식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죽음학 강의』가 있습니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죽음이란 단지 이 거친 몸을 벗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흡사 애벌레가 어느 시기가 되면 나비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 영혼이 머무는 곳은 물질을 벗고 에너지만 있는 세계입니다. 색이 아니라 빛이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빛나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물질이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꼽자면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사그라다파밀리에 성당을 들 수 있습니다. 가우디 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2017년 겨울에 찾은 파밀리에 성당은 빛으로 충만한 성당입니다. 바로셀로나에 숙소를 얻을 때 기준이 가우디 성당과 가깝고 성당이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할 만큼 저에게는 가우디 성당에 대한 경외감이 컷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정말 성당의 높은 첨탑이 잘 보이는 곳에 숙소를 얻고 체류하는 일정 내내 아침 저녁으로 성당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첫날 찾은 성당의 빛은 지금껏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천상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곳 일거야” 라며 확신을 했으니 말입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 새벽 같이 짐을 정리하고, 일행들이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는 동안 혼자서 바쁜 걸음으로 다시 한 번 찾아간 성당은 물질이 빛으로 변하는 시시각각의 흐름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우디 성당의 지하에도 묘지가 있었습니다. 죽음은 빛과 함께 하는 종교적인 상징이기도 하군요.


오후에는 석양의 빛이 오전에는 아침의 빛이 가우디 성당의 내부에 아름다운 곳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영혼은 물질을 벗고 에너지만 존재하는 세계라고 합니다. 제안하게 될 봉안담의 모든 것이 ‘빛의 세상’이면 어떨까라는 키워드를 정리하면서 답사를 마치고, 정원사님의 마음씀을 볼 수 있는 춘천 수목장을 돌아본 후 수목장의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몇 주 후에 건축 개념안을 제안하기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제안하게 될 실내 봉안담에 물질이 없는 영혼의 세계를 빛으로 담고 싶어집니다. 정원사와 함께 하는 제안 이니 꽃과 나무, 바람과 물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계획안을 가지고 갈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동안 가우디 성당을 답사 할 때 찍었던 사진과 스웨덴의 건축가 '아스풀른드'의 <숲의 화장터>를 한참동안 지켜볼 것 같기는 합니다. 정원사님도 수목장 관계자들도 기대를 하고 있을텐데 제가 너무 앞서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최준식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죽음학 강의』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죽음이란 단지 이 거친 몸을 벗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흡사 애벌레가 어느 시기가 되면 나비로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 영혼이 머무는 곳은 물질을 벗고 에너지만 있는 세계입니다. 색이 아니라 빛이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이 빛나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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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굽는건축가 2020-01-2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유레카님 반가습니다. 유레카님도 새해 간강하시고 즐겁고 유익한 한 해 되세요. ^^ 글을 이해해주시니 넘 감사합니다^^ 힘이 쑥쑥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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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 시작하면 10년은 늙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10년을 늙는다는 표현을 돌려서 제 나름대로 해보자면 “늘어나는 욕심과 늙는 세월은 비례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리 겁을 먹는 분들도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제가 추측 하자면 성사동 세가족은 3개월 정도는 확실히 늙고, 살면서 3년은 더 젊어 질 것이니 남는 장사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듯이 글을 써내려간 ‘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에 나오는 대목을 나누면 집짓는 걱정이 웃음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아내와 나는 찰리(시공소장)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작은 오두막이 번듯한 집으로 탈바꿈했고, 크기며 구조도 딱 우리가 원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면 나는 혹시 이놈이 마냥 자기만의 이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파멸로 몰아넣는 ‘건축가의 탈을 쓴 아합(Ahab. 성경에 등장하는 부패한 폭군 왕)’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지난 목요일 아침에 현장에 도착한 저에게 시공 소장도 심정을 이야기 해주더군요. 

“소장님 저 정말 책 한 권 쓰고 싶습니다. 절친한 지인의 집을 짓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졸이는 일인지 몰랐습니다. 저를 믿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공사비 요청을 할 때는 눈치가 보여질 때가 있다니까요. 정말이지 망설여 질 때가 많아요. 돈도 절약 해야하고 살면서 잔소리도 듣지 않으려고해서 그런지 갈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입이 타네요.”


잘 못하는 술이지만 편안하게 한 잔 따라주며 속이야기를 나누며 지내온 세월이 있어서 그럴까요? 현장소장의 몇 마디 말속에서 들려오는 그 사람만의 진솔함이 따뜻하게 묻어나옵니다. 이럴 때는 잘 들어주고 처지와 놓인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공사도 공사지만 돈은 아끼면서 공사의 품질은 높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잘 해왔잖아요. 그 많던 주변 민원도 다독이면서 오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 천천히 갑시다. 날씨가 추워지니 현장 관리 조금 더 하고, 안전모 쓰는 것 잊지 말고요. 다치는 작업자 없도록 합시다.”라는 말로 건축주이자 지인들의 공사까지 하느라 마음 고생하는 허소장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늦은시간 통화를 마칠 때가 되니 바람개비의 마음이 풀린, 웃음진 목소리로  

“참! 소장님 우리 아이들이 협동조합 소장님들은 이제 안오시냐고 하네요. 정이 들었는지 보고 싶다고 언제 오냐고 해요. 조만간에 맛있는 저녁 모임 같이 하도록 해요.”


지금 바람개비와 스머프에게는 현장소장이 ‘Ahab’ 같은 폭군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실은 허소장도 바람개비와 스머프가 최선을 다하는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건축주의 탈을 쓴 Ahab’이라고 느낄것이고요. 그렇지만 조금 더 지나면 모두가 온화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것이니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묘미가 있는 것이 건축이기도 합니다.


소한(小寒)을 맞이하고도 비를 뿌리던 겨울이 드디어 쌀쌀한 추위를 데려왔습니다. 추위가 반갑기도 하지만 속도를 더 내고 싶은 현장 식구들을 생각할 때면 염려되는 마음이 반은 됩니다. 딸아이는 “아빠 이번 겨울에 눈은 안오려나봐”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겨울 털부츠를 선물했는데 언제 신을 지 모르겠다며 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잿빛 하늘에서는 살짝 살짝 비가 내리기도 하고 눈발이 날리기도 하네요. 두꺼운 외투를 입었다가 벗어도, 오래 사용해서 실올이 많이 풀린 스카프 덕분에 몸은 따뜻합니다.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속담은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욕심을 내는 만큼 늙는 이치가 있으니 저도 제 역할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습니다. 

제가 욕심을 내는 만큼 건축주와 디자이너, 시공소장도 자기 욕심에 제 욕심까지 더해서 더 늙을 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딸아이가 부츠를 신고 눈길을 다닐 수 있도록 눈발 날리고, 엄청 추운 날도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겨울이니 이것은 욕심이 아니겠지요?


작은 땅에 세가족의 집을 짓는 일은 고단한 일입니다. 주변에 민원도 작지 않고, 대지의 경계를 나누는 땅의 경계선도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지적도입니다. 이웃집의 벽이 내집 땅에 들어와 있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공사차량이 들어오고, 공사현장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면 민원도 작지 않습니다. '건축가의 탈을 쓴 허소장'은 주변이웃들에게 매일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라며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인사를 드리고도 부족한지 한숨과 주름이 늘었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면 아내와 나는 찰리(시공소장)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작은 오두막이 번듯한 집으로 탈바꿈했고, 크기며 구조도 딱 우리가 원하던 대로였다. 하지만 일이 잘 안풀릴 때면 나는 혹시 이놈이 마냥 자기만의 이상에 빠져서 다른 사람들은 죄다 파멸로 몰아넣는 ‘건축가의 탈을 쓴 아합(Ahab. 성경에 등장하는 부패한 폭군 왕)’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마이클 폴란‘『주말 집짓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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