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태어나는 순간 Essays On Design 9
후지모토 소우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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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태어나는 순간을 담담하게 적어나가는 후지모토 소우의 이야기들은 동업에 종사하는 저에게 오랜시간을 같에 페이지에 머물게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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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분교에 다니고 있는 딸아이는 시내에 나가는 일을 즐거워 합니다.

”아빠 나 문구점에 가야 하는데 언제 갈 수 있어?” 우리 가족이 시내에 살고 있다면 학교 앞에 문구점이 있을텐데, 딸아이의 분교 앞에는 문구점도, 떡복이를 사먹을 수 있는 분식집도 없습니다. 학교 앞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긴개울이 있고, 시간의 길이 만큼 크게 자란 은행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필요한 문구류는 학교에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문구점에 다녀올 일이 없었습니다. 최근에서야 딸아이와 함께 시내에 있는 문구점에 한달에 한 번 정도 다녀오고 있습니다. 주로 사는 품목은 제가 학교에 다닐 때와는 다른 품목들입니다. 예를 들자면 스티커, 다이어리 꾸미는 재료, 모형 만들 때 사용하는 우드락이나 하드보드지 같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수업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입니다. 옛날 일만 생각하자면 학교 앞에 문방구가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늘 인사를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문구점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문구점은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고 서울입니다. 대학로에 가야만 다이어리를 꾸미는데 쓸 재료들이 있다고, 그곳에 가자고 합니다. 

“뭐 서울에? 대학로까지? 그런데 거기에 있는 문구점은 어떻게 알았니?” 딸아이는 “유투브에 보면, 거기서 살 수 있다고 나와 있어”, 저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지만 아이에게 거절당했습니다.  

아내는 이왕 올라가는거 미술 전시회도 관람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야 일 때문에 자주 올라가는 편이지만 딸아이 입장에서, 서울은 색다른 장소로 보이는게 틀림 없습니다. 


몇 일 전에 딸아이는 “학교에서 삼각자를 가져오라고 하네” 

“그래 집에 삼각자가 하나 있어, 그걸 가져가면 되겠다.”

“아빠 두개가 필요하니까 회사에서 한개 가져다 줄래?”


제가 하는 일이 건축일이다 보니 사무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가 있습니다. 디자인 할 때 쓰는 각도자, 다양한 크기의 원을 그릴 수 있는 빵빵이, 몇 개의 각도가 있는 삼각자, 도면에서 치수를 그릴 때 사용하는 삼각 스케일 , 현장에 나갈 때 사용하는 줄자, 수십미터의 먼거리를 재야할 때 사용하는 디지털 측정기, 모형을 만들때 쓰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자까지 아이가 생각할 때 아빠 사무실에는 없는게 없는 곳 일 것 같습니다.


딸아이는 “아빠 내가 자를 하나 만들어 갈께 아빠가 가져다 준 각도자는 너무 좋은 것 같아서 내가 만들어 가져가는게 좋겠어” 두껍고 빨간 하드보드지로 삼각형 자를 만들더니 이만하면 되겠다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삼각자로 수업은 했니?”

“아빠 애들이 삼각자를 가져오지 않았어. 나랑 지민이랑 하율이만 가져오고 나머지 애들은 그냥 왔어. 선생님이 삼각자 수업은 다음에 하기로 했어”

몇 일 후에 딸아이는 같은 이야기를 하네요. 

“아빠 오늘도 삼각자 수업을 못했어, 내 생각에 아이들이 삼각자를 안가져 올 것 같아!”

학교 앞에 문구점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회사일과 농사일로 바쁜 엄마 아빠가 시내에 있는 문구점에 다녀오는 것도 큰 일 중에 하나 일 것 같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옮기자면 

“아마 새로오신 신임 선생님이셔서 상황 파악이 안되셨을 것 같아. 선생님이 금방 적응 하실거야” 대학을 막 졸업하고 지난 9월에 발령을 받은 신임 여선생님이 딸아이의 담임으로 오셨습니다. 작은 학교에는 교과 담당 선생님이  4분 계시고, 학교 시설을 관리해주시는 옛날 말로는 소사 선생님, 유치원 담당 선생님, 방과후 선생님까지 모두 7분이 계십니다. 


“아빠가 선생님한테 이야기 좀 해줄래?, 애들이 삼각자 안가져오면 수업을 못하잖아” 딸아이는 학부모 회장을 맡고 있는 저에게 종종 이런 청탁 비슷한 것을 부탁합니다. 저는  “그건 학부모가 시시콜콜 이야기 할 거리는 아닌 것 같아. 니가 선생님께 말씀드려보면 어때? 삼각자를 학교에서 준비해 달라고 해봐”

아내도 저도, 선생님이 시골 분위기를 아실 때 까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한 번은 학교에 다녀오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교라고 해봐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잠시 다녀오면 됩니다. 

그렇다고 삼각자 때문에 왔다고 할 수는 없겠고, 겸사 겸사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삼각자 수업을 유도하다 보면 틈이 좀 보일 것 같기는 합니다.

”아 맞아요 선생님. 지원이가 삼각자를 가져다 달라고 해서 가져다 주었는데 수업은 어떠셨어요?” 요렇게 틈이 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삼각자를 가져오지 않아서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시면, 그 때 슬쩍 시골 동네 상황을 귀뜸해 드려야겠습니다. 잘 되어야 할텐데 벌써부터 웃음이 납니다. <츠바키 문구점>이란 소설을 읽다가 삼각자 이야기까지 연결이 되는군요.


제 기억속에 있는 문방구는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건너편 좌측에 있는 문방구였어요. 빨간 벽돌 2층 건물의 1층에는 파란 배경에 흰색 글자로 ‘제일문방구’라고 써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는 눈이 크고 살이 통통하시고 웃음이 많은 분으로 기억이 납니다. 벌써 40년 전이네요. 없는게 없는 만물상 같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딸아이 덕분에 아주 오래전 기억을 살려봅니다. 



<나는 새삼 우리집을 바라보았다. 위쪽은 유리인 오래된 쌍바라지 문에는 왼쪽에 ‘츠바키’(동백나무), 오른쪽에 ’문구점’이라고 쓰여있다. 이름 그대로 집을 지키듯이 입구에 커다란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_ 오가와 이토 ‘츠바키 문구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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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맞이 채비를 해야 합니다. 남쪽 마당 야외 수전 (정원에 물 주는 수도)을 보온재로 감싸주어야 하고, 다용도실에 있는 환기용 바람구멍은 비닐로 닫아 주어야 합니다.

정원에 놓인 수전은 ‘부동급수전’이라고도 불리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는 수도를 이야기 합니다. 얼지 않는 다는 말을 신뢰하기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웃동네 어르신들이 안입는 옷가지와 비닐을 이용해 감싸주는 것을 보고, 따라하고 있습니다.

야외 수전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텃밭에서 거두는 채소와 나무에서 거두는 (모양은 없지만) 과일들을 씻을 때 사용하거나, 흙이 묻은 채소들을 주방으로 들여오기 전에  흙을 털어내고 채소를 다듬는 용도나, 장화에 묻은 흙을 털어낼 때, 고양이에게 물을 주거나, 가뭄 때 텃밭에 물을 뿌릴 때도 사용합니다. 여름에는 아이들 물총에 물을 넣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다용도실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환기 구멍이 있습니다. 가스보일러의 공기 구멍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구멍으로 겨울철 찬기운이 들어와서 최소한의 구멍만 남기고 비닐로 닫아 주어야 합니다. 두 해전에는 환기구멍을 막지 않아 수도가 동파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골살림에서 수도가 얼거나 보일러가 고장이 나면, 일차적으로 집주인이 사태를 파악하고 가능하면 수습을 해야 합니다.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은 추운 계절이 돌아오기 전에 예방을 충분히 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동파로 인해 얼어버린 파이프를 세번 녹인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영하 25도가 된 정말 추운 겨울아침에 북쪽 외벽에 면한 화장실의 변기 파이프가 두 번 얼었었고, 다용도실 수도 압력계가 얼은 적이 있습니다. 세번 모두 제손으로 직접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해 녹이는데,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도 필요하고, 쉬운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부르기에는 시내에서 우리집까지 오는 출장비도 만만치 않지만, 직접 손을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동파가 되지 않도록 준비를 많이 해 놓고 있습니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 일어나는 문제점을 배워서, 건축 계획을 세우고, 신축 공사를 할 때 북쪽에는 위생기구나 물이 지나가는 파이프가 위치하지 않도록, 지나가더라도 보온이 가능하도록 설계와 시공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공사한 집에 동파가 나는 일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시골에 달력이 필요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달력 중에서도 농사를 중심으로 표현된 달력이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에서는 한 눈에 볼 수 없는 12달의 24절기가 잘 나타나 있고, 아랫단에는 매 절기마다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어, 농사를 주업으로 하지 않아도 24절기가 표현된 달력이 시골살이에 도움이 됩니다. 

저만해도 스마트폰에 일정표가 있고, 보험사, 건축관련회사, 세무사에서 보내주는 달력들이 몇 개 있지만,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것은 농협에서 주는 방석만하게 큼지막한 달력입니다. 농사는 주말과 휴일이 중심이 아닙니다.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서 보름 단위로 절기를 표현해 놓아, 계절의 변화를 편하게 볼 수 있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일은 절기상으로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어는 소설(小雪)이고 한달 후면 동지(冬至)가 됩니다. 이번 주말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와야해서 오늘 내일에 걸쳐 겨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요청으로 어제 동쪽 마당에 장독대를 묻는 일을 시작으로 겨울 채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부터는 장독을 땅에다 묻고 김장 김치를 먹어보자고 합니다. 살림이 단출해서 김장이라고 해봐야 몇 포기 되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1년 중에 큰 행사입니다. 해마다 어머니가 두 통을 담아 보내주시고, 부산에 사는 친구 어머니도 한통을 꼭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아내와 제가 두통을 담으면 봄까지 김치 걱정은 없습니다. 땅에 독을 묻고 김치를 보관하자고 하니, 어릴적에 어머니가 뒷마당 독에서 꺼내어 냉면에 말아주시던 얼음낀 동치미 맛이 입안에서 돌고, 차가운 김장김치 생각에 침이 고이게 되네요. 

이럴 때 아내에게 점수를 따 놓는 일은 중요합니다. 아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과 참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년 결혼 생활에서 얻은 비결이기도 하고 아내가 삽질을 하면서, 장독을 묻으며 혹시라도 독기를 품는 것보다는 그래도 제가 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오두막에 들여놓은 열대성 화분들도 온실로 옮겨야 합니다. 가을들어 갑자기 내리는 서리를 피해 서쪽 마당에 두었던 화분들을 들여다 놓은지도 한달 정도 되었습니다. 화분, 고양이 집, 나무의자, 차마시는 탁자, 고구마 박스 같은 것들이 온실 안에 들어오면 겨울 온실은 계절 살림살이들로 북적입니다. 

온실은 말 그대로 Sun room 이기 때문에 창이 큽니다. 그 창을 통해 낮이 가장 짧아지는 동지에도 햇살이 가득 들어옵니다. 동지 때 외부 온도가 영하 15도에서 20도까지 내려가도 온실의 한 낮 온도는 영상 15도에서 23도 정도를 유지 하니 한겨울에 햇살 샤워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소개 하라면 온실을 추천합니다. 우리집 온실은 기초공사를 할 때, 바닥에 40센티 두께의 자갈을 채워서 두껍게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로 마무리했습니다. 일명 열을 저장하는 장치 인데요. 그 효과가 쏠쏠합니다. 겨울철 햇볕에서 오는 열기를 자갈층에서 머금고 있다가 저녁에 내보내주는 일종의 '축열장치' 입니다. 한달전에 온실로 옮겨진 피망과 고추 화분에는 파란피망과 고추가 아직까지 달려있고, 다음 열매를 위한 꽃도 피고 있습니다. 추운 곳 보다는 따뜻한 곳이 좋고, 냉랭한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저도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가끔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항아리에서 꺼낸 시원한 김치에 군고구마를 먹으며, 온실에서 맛있는 커피도 한잔하겠지요. 아마도 온실에 앉아 있으면 햇살에 몸이 녹으면서 졸음이 찾아올거에요. 그럴 때는 거부하지 않고 졸음을 맞이해야겠어요. 졸다가 침을 좀 흘리거나 목이 아프면 일어나겠지요.


아침에 덩어리(levain loaf) 발효빵을 구웠습니다. 

두덩이 중에 한 덩이는 종이봉투에 담아 친구에게 보냅니다. 비닐 봉투 대신에 종이봉투에 담으니 제법 모양이 좀 납니다. 

일전에 발효빵집에 들렸다가, 봉투를 몇 개 얻어왔습니다. 종이 한장이지만 쓰임에 맞으니 보기 좋고 빵도 모양이 납니다. 

아내는 내일 작은 항아리에 담긴 매실과 포도 효소를 걸러내고, 김장항아리에 담긴 소금도 다른 통에 옮기자고 하네요. 이럴 때 ‘가볍게 예’하고 합니다. 





<하루 세끼 밥을 해먹는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다._ 고은정 선생님의 ‘장나와라 뚝딱‘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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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가 짙게 내리고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서, 텃밭에 자라는 보리싹이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파란싹이 추워보이기 보다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마을톡에서는 장례식에 언제 다녀올지 각집에서 시간들을 알리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점심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고는 해도, 왕래가 많은 어른신은 아니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시긴 했지만 늘 운동을 다니시고, 할머니와 함께 밭을 일구던 어르신입니다. 1년 전에 몸이 안좋으시다며, 시내로 집을 옮기셨습니다.어르신이 남긴 흔적들은 고스란히 집에 남아있습니다. 디딤돌이 놓인 마당, 길 옆에 심어 놓은 꽃과 나무들입니다. 봄이면 연분홍 찔레꽃 향이 가득합니다. 제 계절이 오면, 다시 찔레향이 오를 것입니다. 일 마치고 늦은밤에 들어올 때 향이 짙게 퍼집니다.


새집이라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 흔적이 남기 시작합니다. 생활의 흔적이라고 할까요? 해를 더해가면서 집도, 사람도 장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익숙함이 찾아오면서 편안한 곳이 되고, 목재는 칠이 벗겨지고, 문 손잡이는 한 번 정도 새것으로 교체를 하게 됩니다. 몸을 푹 담고 앉아 있을 만한 1인용 쇼파도 들여놓고, 겨울을 즐길 온실도 새로 만들고, 비가 많이 오는날 생긴 물 웅덩이 자리는 그대로 작은 연못이 되도록 놓아둡니다. 웅덩이 자리에는  빗물정원을 만들니다. 새들이 날아오고 동네 고양이들이 물을 먹으러 오는 곳이 됩니다. 물가 주변에 심긴 찔레와 장미는 더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땅 덕분에 꽃을 많이 피웁니다. 장미와 찔레꽃이 버드나무나, 앵두나무 처럼 물을 좋아하는 것을 세월이 알려줍니다. 집은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그대로 남고, 그것은 집의 일부가 되고, 사는 사람의 습관을 그대로 드러내 줍니다. 


건축을 의뢰 받을 때는 ‘앞으로 살 집’을 의뢰받지만, 종종 라스트하우스가 되는 분들도 여럿 계십니다. 

“선생님 이집이 마지막 집이 될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계획이 없으시겠지요?” 이렇게 묻는 이유는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이 집이 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집이라는 것을, 가볍게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방과 화장실이 몇 개 필요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됩니다. 기억에 남는 건축주분의 바램을 옮겨보자면, “집 전체에 턱이 없어야하고, 복도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도 있어요, 지팡이를 짚고 화장실에 들어가야 할 수도 있겠고요. 여름을 제외하고는 거실에 앉아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싶네요. 마당으로 나갈 때는 쉽게 나가면 좋겠어요. 마당은 앞 마당만 있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뒷마당도 있어야겠어요. 어릴적에도 후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집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집이 지어지면 이곳에서 지내게 되네요. 어떤 집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참 빨래는 볕이 잘드는 마당에서 말리고 싶은데 빨래줄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 


 젊은 부부들이라면 나누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저도 라스트하우스를 생각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그럴지, 아니면 다른 곳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건축의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일본인 노교수님이 계십니다. 칠순이 넘은 교수님은 자주 ‘라스트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린 늘 살집만 생각하잖습니까?, 건축가는 ‘마지막 집’에 대한 안내도 해야합니다. 그러려면 건축가 자신이 마지막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잖아요? 제가 마지막 살집을 일본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같이 가보면 좋겠습니다.” 생의 마지막 집을 생각해 본적이 없던 저는 노교수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꼬르뷔제(Le Corbusier)는 1922년 그가 그린 주택도면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땅도 구하기 전에, 그에게는 집의 밑그림이 먼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집이 앉을 대지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태양이 남쪽에 있을 것, 남쪽에는 호수가 있을 것, 집은 폭 4미터, 길이 16미터의 긴 주택이기 때문에 길다란 대지여야 할 것, 1923년 주머니속의 주택이 기다리던 땅을 찾아 냈습니다. 그 곳은 스위스 레만 호수에 면한 땅이었습니다. 

이 집에서 그의 아버님이 1년을 사시다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1960년 백세의 나이로 돌아가시기까지 36년간 이 집에 거주 하셨다고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집’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입니다. 전체 54m²의 작은집은 어머니의 ‘마지막 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작은집은 1973년까지 건축가의 형인 알베르 장느레(Albert Jeanneret)가 생을 마감한 집이기도 합니다. 건축가 자신도 레만 호숫가에 통나무로 지은 작은 오두막에서 1965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지막 장소는 어디가 될지 서리가 내린 하얀 아침에 생각해봅니다. 




<오래된 집은 일상의 드라마와 환희를 목격했고 변덕스런 인테리어의 유행을 감내했으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아마 사람이 죽는 것도 지켜봤으리라), 이러한 집은 앞으로도 잊기 힘든 온갖 기억과 성장의 순간을 보존 해주는 공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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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위에 있는 <화요일의 두꺼비> 읽어 봤어?"
딸아이도 좋다고 하고, 아내도 읽을 만한 책이라고 합니다. 
한 집에 사는 세 사람 중에 저만 안 읽을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고, 동화책은 제가 즐겨 읽는 책이기도 해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일어나면서 "책 좋다. 한겨울 두꺼비 이야기도 재미나지만 외로운 올빼미 이야기도 구성진데" 아내와 딸아이에게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그것봐 내가 괜찮다고 했지", 딸아이는 다른 책을 보느라 아빠의 책 소감 나누기를 모른척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아빠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니 만족합니다. 

책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면 
한겨울에 고모에게 딱정벌레 스낵을 가져다 주기 위해 스키를 만들어 타고, 눈쌓인 숲속을 달리던 다정다감한 두꺼비가, 치사하게 한 낮에 활동하는 올빼미한테 잡히게 됩니다. 올빼미는 다음주 화요일 13일, 자기 생일날 두꺼비를 먹겠다고 하면서, 올빼미의 참나무 집에 두꺼비를 가두어 놓습니다. 
감옥같은 참나무 집에서 일주일 동안 두꺼비는 올빼미가 돌아올 때 까지 자진해서, 집을 청소하고 맛있는 차도 만들며, 올빼미의 단 하나밖에 없는 말상대가 되어 줍니다. 다음주 화요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두꺼비를 대하는 올빼미의 마음은 봄을 맞이하게 됩니다. 먹잇감에서 친구로 서서히 변하는 과정을 그린 동화책입니다.
수많은 동화책이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화요일의 두꺼비'도 두꺼비의 집, 올빼미의 집으로 장소가 바뀌고 그 사이에 숲이 등장하고 숲에 사는 동물들(사슴쥐)이 등장을 합니다. 

두꺼비의 집은 따뜻한 땅속으로 묘사되고, 올빼미의 집은 굵고, 하늘 높이 올라간 참나무에 굴을 판 나무집 입니다. 동화책 속에 등장하는 집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림책 작가들의 집에 대한 묘사는, 집에 대한 애정에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놀드 로벨'의 'Frog and Toad'시리즈에 나오는 두꺼비의 집은 숲속에 아담한 작은 집 입니다. 개구리 친구가 늦게까지 겨울잠을 자고 있는 두꺼비를 깨우는 데서 시작하는 동화속 집은, 경사지붕에 벽난로도 있고, 현관에 달아놓은 제법 괜찮은 비를 피하는 포치(Porch)도 있습니다. 아마도 작가 자신의 집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집입니다. 'Frog and Toad'의 집에는 '화요일의 두꺼비'네 집처럼 달력이 등장합니다. 달력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는 스마트한 디지털이 발달하기전 시대의 동화책이라는 증거 같기도 합니다.

또 한권의 책은 '핀두스'라는 고양이가 시골 농장에서 집주인 아저씨와 사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핀두스의 작가는 스웨덴 출신의 건축가 입니다. 건축가인 그가 직접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간 <핀두스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집의 묘사는, 정말 디테일하다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재미난 장치들이 숨어 있습니다. 핀두스의 책을 볼 때는 글보다 그림에서, 마치 숨은 그림이라도 찾는 것처럼, 배경이 되는 그림을 보고 또 봅니다. 문고리의 모양, 창에 새겨진 그림, 지붕의 각도, 굴뚝의 생김새, 벽에 걸린 액자들과 선반에 놓인 소품, 가구의 형태를 보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는 책 입니다. 물론 고양이 핀두스에 대한 작가의 즐거운 해석이 가득하기 때문에, 건축가의 동화책을 다른 책들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두꺼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라고 아내에게 말을 건넵니다.
"음 적어도 올빼미 같이 친구가 없지는 않잖아. 두꺼비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아내는 올빼미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고 합니다. "친구도 없고, 대화도 없는 많은 현대인들을, 동화책에서 표현 하고 있지. 올빼미도 실은 친구를 그리워 하고 있었던 거잖아.  따뜻한 차를 같이 마실 친구들이 필요한거지"

'화요일의 두꺼비' 집은 나무천정이고, 형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 차를 마시는 넉넉한 식탁이 등장합니다. 이와는 다르게 쓸쓸하게 묘사된 올빼미의 집은 어둑하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가득한 장소입니다. 올빼미는 특별한 뭔가를 잡아먹는 생일날만 기다리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에드윈 헤스코트'가 지은 <집을 철학하다>에서는 TV가 등장하기 이전의 거실(Living Rooms)에는 세가지 주된 요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글을 읽기 위해,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창문이 있었고, 둘째는 온기를 공급하는 벽난로가 있었고, 셋째는 피아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세가지의 요소가 완전히 TV로 대체 되면서 '살아있는 방'이 더이상 온기가 가득한 장소가 아닌 곳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건축주들의 성향이 주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실에 TV를 놓지 않는 집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TV가 필요 없는 집은 쇼파의 배치도 자유롭고 거실과 주방이 만나는 경계지점인 식탁과 가구의 배치에서도 자유로운 구성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집 전체에서 거실은 보통 집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는데 TV와 쇼파가 가장 좋은 장소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화요일의 두꺼비' 집에는 TV대신에 화목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맛있는 부엌이 있습니다. 올빼미의 집에는 오래 되었지만 낡은 식탁이 있었고, 올빼미와 두꺼비는 식탁에서 일주일간, 매일 밤 따뜻한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핀두스의 집에도, 토드의 집에도 따뜻한 식탁이 등장합니다. 우리집에는 TV가 있지 않냐고요? 실은 우리집에도 TV는 없습니다. TV 없이 산지 15년이 넘었으니까, 우리 어린이가 오기 몇년전입니다. TV가 없어지고 난 후, 우리 부부는 도서관에 자주 다니고, 아내는 재봉을 배워서 자기옷과 제옷을 만들기 시작하고, 저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옷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말입니다. 우리 딸아이도 TV를 보고 싶어하지 않느냐고요? 아이는 보고 싶은 방송이 있으면 유투브로 엄마 아빠와 함께 보거나 마을회관에 있는 공용TV를 보러 다녀옵니다. 

건축가로서 살짝 귀뜸을 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집에서 TV를 치워 보세요. 아주 과감하게요. 그럼 못산다고요? 아니에요. 생각만 그렇지 실제는, 그렇지 않을겁니다. 자기만의 시간도 생길 뿐 아니라, 거실의 중심과 생활의 중심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괜하게 다른집 살림에 참견을 한다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건축가이니 이정도의 간섭은 너그러이 용서를 구하고 싶네요. 


<거실은 어떤 말의 반대 개념으로 나온 것일까?.....그것이 생활하는 방을 뜻한다면 반대말은 ‘생활하지 않는 방‘이다......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방‘(Living Rooms)이라는 이름과 달리 거실은 가장 ‘활기 없는 방‘이기도 하다.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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