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 박찬일 셰프 음식 에세이
박찬일 지음 / 푸른숲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력이 남다른 저자들이 많은데 박찬일도 이력이 남다르다. 기자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이 치고 나가는 문장이 힘있고 맛깔져 읽는 재미가 있다. 인간관계도 전방위 같은데 김중혁 등 문학계 사람들은 물론 기자 시절 이탈리아 영화에 매료되어 이탈리아로 음식 유학을 갔을 정도이니 셰프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달걀을 몸서리치게 좋아하고 술 잘 마시고 새로운 음식 먹는 것도 좋아하고 두루 호쾌한 사람 같다. 특히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미각만이 아니라 상당히 예민한 감각을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저자가 그런 느낌을 준다.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에세이는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가 보여서 읽는 이와 쓴 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글쓰기 방식이라 좋다.

 

'맛'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 앞에 놓인 수많은 맛의 강물을 건너는 당신에게'라는 헌사로 서문을 시작한다. 음식의 맛에 대한 이야기이고 추억의 맛에 대한 이야기다. 글쓴이의 맛의 추억이 읽는 이에게도 위로의 맛이 될 수 있다니, 맛난 책이다. 단순히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에서 그친다면 부족하겠다. 언급된 어떤 재료든 맛나게 조리할 수 있는 '비법'이라든지 쉽고도 자신있게 해볼 수 있는 자신만의 조리법도 제공하고 있다. 유머와 농담을 섞어가며 엽기적인 먹을거리 후일담을 늘어놓고 잠시 사색에 빠지고 철학하다가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참새머리 오도독 씹기나 죽어도 다리에 남아있는 신경의 꿈틀거림으로 생존을 항변하는 블랙유머의 주인공 산낙지 아니 죽은 낙지의 추억 같은 것.

 

저자에 의하면 음식의 맛이란 지구시계의 1년을 기준으로 12월 31일 오후 다섯 시의 존재, 그 인간시계의 오후 다섯 시에 나타났다. 오후 다섯 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해거름을 준비하는 시간이잖은가. 음식의 맛을 위해 공을 들이는 일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란 얘기인데 나로서는 쓸쓸하고도 충만하게 지는 해를 가슴으로 맞을 준비를 하는 시간과 그 이전 시간의 추억을 곱씹는 재미도 더했다. 돌이켜보면, 음식을 만드는 일도 먹는 일도 그렇게 거룩했다.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1부는 우리 땅에서 몸에 지문처럼 새겨진 맛의 추억, 2부는 외국 땅의 낯선 맛의 추억, 3부는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맛의 추억이다.

 

1부에서는 21가지 우리 음식이 불러오는 추억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수박 화채 속에 둥둥 떠 있던 송곳으로 깬 날카로운 예각의 얼음맛, 스러져간 가부장의 권위가 서글픈 닭백숙의 기억, 각자의 입안에서 이질적인 맛의 창조를 찾아내는 아름다운 공간 배열의 남도 한상 차림, 어머니가 쌓은 찬합의 높이로 추억하는 운동회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전은 지구전(持久戰)이다,에서는 전을 대표 슬로 쿠킹으로 부르며 명절이면 소쿠리 가득 하루 종일 전을 부쳐야하는 여자들의 힘든 노동을 알아주는 대목이 나온다. 명절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데 그걸 알아주는 남자가 여기 있다.

 

경북 내륙지방의 배추전에 대한 추억이다.

 

전은 기름막이 있는 듯 없는 듯 바른 팬에서 천천히 요리해야 하는 음식이다. 손님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후딱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다. 그래서 전은 지구전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학대하면서 만드는 음식이다. 그걸 아는 집을 여간해서는 찾기 어렵다. 역시 늙으신 어머니를 다시 졸라야 하나.   - p83

 

 

2부에서는 15가지 외국음식의 추억을 불러온다. 나는 이 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치즈, 랍스터, 소 내장 요리, 라멘, 바칼라, 딤섬, 이슬람의 할랄푸드 등 다른 문화를 맛과 함께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흥미롭고 유익하다. 이탈리아적인 서사로 기억한다는 '대부'에 매료되어 시칠리아 섬으로 간 저자가 카놀리와 토마토소스를 첫 순서로 말하는 건 당연한 일.

 

시칠리아 유학 당시 스승, 주세페가 전하는 초콜릿 소스 토끼요리는 특별하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카카오 초콜릿으로 '가장 순수하고 가장 품질 좋은' 초콜릿을 만든 그의 초콜릿 소스에는 마성이 깃들어 있다고 느낀다니. 주세페는 말한다.

"대지의 기운, 흙냄새, 먼지바람, 새벽이슬 같은 게 카카오의 본래의 맛과 냄새야. 잘 맡아봐. 아프리카의 카카오는 무언가 건조하고 대륙적이고, 아메리카의 카카오는 습하고 진하며 나무냄새가 많이 나. 둘 다 태양을 닮은 맛이라는 건 공통점이지." (p194) 

 

저자가 마음에 새긴 주세페의 말은 삶을 살만 한 것으로 만든다.

 

"초콜릿소스의 토끼 고기 같은 건 이제 먹지 않을 줄 알았어. 이탈리아에 맥도널드가 들어오고 나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지.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걸 만들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낙관하는 거야.

희망이 없으면 삶이 무슨 소용이지? "   - p195

 

 

이슬람의 할랄(허용,이란 뜻) 푸드에 대한 구절은 새삼 놀라운 각성이다.

 

 

할랄 푸드와 수식(手食)은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교차점을 맞붙이고 있는 것 같다. 오직 오른손을 써서, 살과 소스를, 할랄의 고기를 꾹꾹 뭉쳐 먹는 온전한 手食은 지상에서 가장 경건한 식사법이다. 신이 주신 모든 먹을거리는 손을 통해 그 존재의 각성을 불러온다. 따뜻한 음식을 체온으로 집을 때 그것은 비로소 내 몸이 될 것이란 확신을 얻곤 한다. (중략)

"손 있는 자, 그대 손으로 음식을 집으라. 신이 거기 있으리라."   - p229

 

 

 

3부에서는 황새치가 나오는 <노인과 바다> 등 9편의 작품을 통해, 한때 이러저러한 소재로 소설쓰기에 도전해봤던 고백도 있고 문학에 대한 그의 끊이지 않는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문학작품 속에서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끌어온다. 백영옥의 '스타일'을 들어 쓴 '고기 권하는 사회'에서도 아버지가 생각났지만, 박완서 '그 남자네 집'에서 저자가 길어올린 민어의 추억이 맛나다. 여기서 '포만감'에 덜커덕 걸려든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먹는 행위를 통해 얻는 만족감은 혀에서 두루 느껴지는 화학적 반응에만 기대는 게 아니란 걸 집어낸다. 포식가들의 손을 들어주는 그는 진정한 미식가이지 않은가. 미식가들이야 여러가지 음식을 소량 맛보며 맛에 대한 평론까지 해야할지 모르지만 대개의 우리는 음식이 내 손을 거쳐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을 부풀려주는 그 포만감에 흡족해 한다. 재료는 두툼해야 하고 양도 적어서는 안 된다. 혀의 오르가슴을 더해주면 금상첨화지만 절정의 감각은 일순간의 것, 그 순간이 지나면 체감되고 망각된다. 그에 비해 포만감은 상대적으로 좀더 오래간다.

 

민어는 식도를 자극하는 통쾌한 맛이 있었다. 두껍게 썰어 질감을 살린 횟점이 식도를 넘어가며 위에 포만의 자극을

시작한 셈이었다. 미각이란 때론 화학적 반응을 넘어 물리적 현상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일까.   - p272

 

 

내 아버지는 고기대왕이다. 생선보다 육류의 살점을 즐기는 당신은 여든이 넘은 생, 평생 몸을 키우고 만들고 그 몸으로 일하고 늙어가는 생명의 재료로 고기를 드셨다. 우리 삼남매는 당신 몸의 등골을 빼먹고 자랐다. 아버지가 먹은 소를 일렬로 세운다면 그 길이가 얼마일지 가늠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 얘길 하며 웃곤 하시는데 지금은 드시는 양 자체가 줄었다. 어린 시절 기억에도 고기가 오르지 않은 밥상은 한번도 없었다. 채식을 하면 소화가 안 되니 상추 같은 채소가 곁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생마늘이나 생양파가 채소를 대신한다. 고기는 무한정 소화가 되니 특이체질도 그런 체질이 없다. 그래도 혈압도 정상이고 성인병이라곤 없다. 아버지는 고기를 얇고 잘게 썰면 싫어하신다. 두툼한 고기살의 붉은 기운이 가시기 전에 지글지글 매 끼니 드시니 주방엔 늘 기름기가 배어있었다. 식탁도 바닥도 주방 벽지도 누렇고 찐득거려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는 힘드실 수밖에. 그래도 밑반찬 요것조것 해야하는 상차림보다 수월하다고 하신다.

 

낚시에 걸린 민어를 바라보며 저자는 요리와 생명과 먹는 일의 숙명적 관계를 이렇게 쓴다.

 

 

고기가 사후 경직이 일어나듯 생선도 그렇다. 붉거나 푸르거나 선명한 색채의 몸통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산소 부족으로 청색증이 돌듯이 사악하고 창백한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생명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요리는 생명을 위해 복무하지만, 그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에서 얻는다. 육식하는 사람의 태생적인 딜레마랄까. 번민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 p268

 

 

음식의 맛, 추억의 맛은 오후 다섯 시의 맛이란 말에 끄덕거려진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하니, 나머지 절반은 무얼까.

먹어서 '내가 된' 저자처럼 해거름에 서서 맛을 추억하는 아버지와 나, 그리고 멀가까운 인연들을 생각한다.

 

 

 

 

 

 

 

ps)  좋은 책에 오자가 둘 있어 아쉽다.

       p194 /아프리카 사람들은 뱀을 숭상한다. 대지를 배고 훑고 다니면서 어머니 대지와 동거한다. (배고 --> 배로)

       p263 /소설 속의 새댁은 아마도 작가의 어릴 적 분신은 혐오의 기분까지 한껏 내비치고 있었다. (분신은 --> 분신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int236 2012-09-2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의 맛은 추엇의 맛이기도 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되는 글입니다. 이번 명절이 지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녀석에게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파티쉐가 되어서 오라고 하면서 선물한 책입니다.

프레이야 2012-09-26 16:49   좋아요 0 | URL
추억을 불러주는 음식,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맛깔나게 쓰느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겠지만요.
이 책은 벗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LAYLA 2012-09-26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고 어찌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겠어요...바로 사러 갑니다 ㅎㅎㅎ

프레이야 2012-09-27 07:43   좋아요 0 | URL
홍홍! 사셨어요?ㅎㅎ
맛나게 읽으실 거에요. ^^

페크pek0501 2012-09-2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세이는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가 보여서 읽는 이와 쓴 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글쓰기 방식이라 좋다."
저는 글에서 저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 배워야겠군요. 잊고 있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낙관하는 거야. "
이것도 배워 갑니다.^^

프레이야 님, 저도 오후 다섯 시부터 어두워지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좋아한답니다.
요즘 이 시간에 산책을 하면 죽이죠. ㅋㅋ

프레이야 2012-09-27 20:47   좋아요 0 | URL
낙관이 때론 위험하단 생각을 하먼서도 그럼에도 그게 최선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귀착해요. 페크 님도 해 넘어가는 그 시간을 좋아하시는군요. 와락 반가워라. 님이랑 저는 기가 비슷한 거 같다능ᆢ 호호~~~ 개와 늑대의 시간이기도 한 그 시간, 공원산책 하며 저도 호흡 좀 가다듬어야겠어요. 산책! 이 말 참 좋아요^^
 

 

 

 

 

 

 

 

 

 

 

2012년 8월 29일 녹음 시작, 총 12시간 소요 완료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은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입장에서 집짓기의 철학과 집짓기의 욕망을 해부한다.

고객 중 자신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를 모르고 의뢰하는 부류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누구누구의 집 비슷하게, 이런 주문을 하는 부류는 건축 후 만족도도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은 하나의 은유로도 많이 쓰이는데 '집'을 '짓다'라는 의미에 많은 걸 대입할 수 있다.

저자 함성호는 개인적 차원의 집짓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공적 집짓기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생각을 갖고 있다.

 

글을 읽을수록 저자가 상당히 반듯하고 온기있는 품성을 지녔다는 걸 느낀다. 편견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무작정 도시보다 시골을 예찬한다든가, 유기농 채소가 무조건 좋다든가,

이런 틀에 잡히지 않는다.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감성적으로, 지적으로 통쾌하고 정확한 부분에서는 또 그렇게 해박하다.

학창시절 어느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나 건축현장에서 목수와 반목했던 이야기는 가슴을 둔중한 무엇으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척' 하지 않고(그렇다도 애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적은 사람 같다)

인간적으로 모자람에 솔직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같다. 생각이 깊고 공정하고 강직하면서도 여린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잘 보이는 에세이라서 믿음직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을 위한 집 이야기와 집을 통해 본 사랑과 문학과 문화에 대한 답사기!"

 

이 구절은 책 뒷표지에 적힌 부제 아닌 부제다. 다 읽고 나니 그다지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는 구절이다 싶다.

건축가 함성호는 실제로 늘 두 가지 이상의 길을 동시에 갔다고 고백한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그래서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프루스트는 갈림길에 서 있었던 어느 한 시절의 가지 않은 길을 노래했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길로 이미 우리의 그리움과 망설임의 또 다른 나를 가게 했다.

'나'는 실은 단수로서의 '나'가 아니라 수많은 복수로서의 '나'가 모인 우리이다. 그 수많은 '나'들은, 잃어버리고

새로 나타나는 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만나고 헤어진 '나'다. 우리가 타인과 만나 이야기 할 때, 그 타인은

어쩌면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믿고 있던 그 길로 보낸,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 p145

 

 

저자는 건축가 외에도 시인, 만화광, 공연연출가, 여행가이지만

나는 철학자라는 이름을 하나 더 주고 싶다.

 

마지막 장의 '행복의 조건들'에서 그가 중요하게 말하는 '경험'이란 말에 집중하게 된다.

바깥으로 우리의 경험을 이끈 다음에야 파랑새를 보여주는 행복을 넘어 이제는

구체적으로 행복을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는 그의 조언이 귀담아 들린다.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에서 감동할 줄 아는 삶의 경험을 찾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다.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결과에 가까운 '만족'과 인간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흐름을 뜻하는 '행복',

둘의 차이에 대한 구절이 내 마음 깊이 와닿는다.

 

 

만족한다는 것은 한계를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만족한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다 뒤져보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만족은 꼭 기쁨으로 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짙은 슬픔으로 우리를 집어넣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따라 나는 내 것이 아닌 게 어떤 것인 줄도 알게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리가 없다.    - p282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2-09-2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정말 그런 것 같아요...
찾아보니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을 비롯해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도 마음이 끌려요. 얼른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2-09-23 18:41   좋아요 0 | URL
아, 아른님, 역시 함성호는 철학가군요.
철학으로 읽는 옛집,도 전에 제목만 보고 담지 않은 책인데 바로 담았어요.
아주아주 좋아보여요.^^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읽는데 함성호의 시가 몇 번 나와 반가웠어요.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인가? ㅎㅎ

2012-09-23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3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2-09-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애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적은 사람'이라는 님이 표현 좋아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해요.
저, 표현이 적은 사람이랑 살면서 애정이 적은 사람이랑 사는 줄 착각하고 툴툴거린 날들을 돌아봤어요.
프레이야님, 감사~!
여긴 가을 햇살이 참 넉넉해요.
거긴요~?

프레이야 2012-09-25 11:12   좋아요 0 | URL
님, 저도 늘 툴툴거리며 살아요.^^ 생각해보면 참 많은 걸 가지고 누리고 사는데도 말이죠.
여기도 가을 햇살이 밝고 넉넉해요. 마음에서 분노나 불만이 일어날 때면 그건 사실과는 달리
무의식의 기억이나 상처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과 기억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걸 깨닫고 멈추면 되는데.. 브레이크 작동 잘 하며 살아야겠어요.^^
 
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폴 오스터의 어느 책표지에서 본 이후로 나는 표지나 삽화에 실재하는 수동타자기라면 사족을 못쓴다. 수동타자기의 추억은 그보다 더더 오래전 이십대 초반으로 거슬러 간다. 신입생이 된 나는 영문타자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학교 앞 타자학원에 등록했다. 여름으로 접어들어 한낮의 열기가 제법이었던 어느 날, 작고 낡고 후텁지근한 공간에 앉아 거리로 난 창문을 활짝 열고 차소리를 들어가며 타.닥.타.닥 ...  내 촉수는 온통 타자기 소리로 뻗치고 한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몰랐다. 한달 후 강사에게 물어보니 집으로 가져가서 연습할 수 있게 타자기를 대여해 준다는 것이다. 학원은 한 달이면 충분했고 집에서도 한 달이면 되었다. 한글타자보다 영문타자가 훨씬 쉽다. 받침이 없으니.

 

한글타자기도 그 후 대여해 와 집에서 연습했다. 몸으로 익힌 건 잊어먹지 않는다더니 지금도 영문타자를 더 잘 친다.  이후 개인용 컴이 보급화되고 누구나 부드러운 자판에 미끄러지듯 손가락질을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수동타자기의 촉감과 소리가 참말 좋다. 먹끈를 갈아끼우며 손이 시커멓게 되던 일, 한 행을 치면 왼쪽에 달린 막대를 조작해 덜커덩 행을 내려주고 종이 한 면을 다 치고 나면 레버를 돌려 종이를 빼고 새 종이를 갈아끼우고. 종이가 자주 끼이기도 하고 먹끈이 감기기도 하지만, 한 타 한 타 내려칠 때마다 톡.톡... 활자판이 튀어나가 종이에 찍히는 기막힌 광경을 쳐다보며 글을 쓴다는 건 말할 수 없는 희열이다. 한 자 한 자 내 생각과 마음이 곧바로 교감과 이해를 얻는 듯 눈 앞에서 내 눈을 보고 맞장구 쳐주는 것과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지금도 집에 골동품 같은 수동타자기가 있다. 외국 것이라 영문타자기인데 가끔 자판을 몇 개 탁.탁. 쳐본다. 고장나 작동은 안 되고 둔탁한 소리를 내지만 오래 갖고 있고 싶은 물건이다.

 

수동타자기의 낡은 기억을 늘어놓은 까닭이 있다. 강영숙의 소설 <라이팅 클럽>이 끌렸던 건 다분히 저 표지의 수동타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이팅'이라는 낱말에도. 예를 들어 '글쓰기 수업'이라고 제목 짓지 않은 건 어떤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다 읽어보면 왜 우리말 제목을 짓지 않았는지 수긍된다. 분명히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건 또 행운이었고 인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작년이었던가? 어느 모임에서 '내 삶의 키워드'를 발표하는 기회가 있었다. 나는 바로 '글쓰기'를 떠올렸지만 발표는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진심이 잘 전해졌는지 모호하다. 말이든 글이든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이다. 진실과는 다르게 들릴 수도 있고 지나친 자기검증과 겸손의 책무로 덜 전해지기도 하고 잘못하면 과시나 자만으로 들릴 수도 있고, 아무튼 말과 글은 늘 오해의 소지를 그림자처럼 달고 태어난다. 그렇다고 주눅들지 말자. 글쓰기는 삶의 방식이고 양식이며 삶 그 자체라고 <라이팅 클럽>이 자신있게 응원하고 있으니.

 

 

중요한 건 의지가 아니라 테크닉이다. - 9p

 

 

<라이팅 클럽>을 여는 첫 문장이다. 눈치 챌 수 있겠지만 라이팅을 리빙 정도로 대입한다면 삶은 의지만으로 충분한 게 아니라 테크닉이라는 말이 된다. 이 소설은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물론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 중도에 딜레마에 빠져있는 사람, 삶이 충분히 풀리지 않는다고 여겨져 의기소침한 사람 모두에게 적절한 보람을 준다. 작가는 글쓰기에도 삶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고 지금도 늘 요령 부득으로 살고 있는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소설 속 김 작가와 딸(주인공)은 지지부진한 삶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결국 삶의 테크닉, (세상과 사람과의)관계의 테크닉, 글쓰는 일의 테크닉을 몸으로 익힌다. 내가 얻은 결론은 누구나 자기 삶의 승리자이고 패배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삶이건 글이건 테크닉이라고 하니 거창한가. 그렇지도 않다, 사실은. 우리가 대체로 알고 있는 구체적 글쓰기의 테크닉도 알고 있어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테크닉보다 연습이 아닐까. 시행착오와 전쟁과 아픔과 상처의 나날을 거듭하는 연습. 죽기와 살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연습. 글쓰기의 과정만 놓고 봐도, 아무리 허섭스레기 같은 초기의 일기류 글과 구구절절이라 해도 그것을 월반해서는 다음 단계가 오지 않는다. 그런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쳐, 결국 치를 것은 다 치러야 '그 다음'이란 게 있다. 삶도 그런 것이다.

 

 

비유로, 거짓말로 구질구질한 실존의 고통을 비켜 갔다 - 269p

 

 

한 때 나는 잡문이든 아니든 왜 깊은 밤 잠 안 자고 글을 쓰고 있나, 자문한 적이 있다. 답은 쉽게 나왔다. 고통을 비켜 가기 위해. 배설이라도 나쁘지 않다. 痛하고 慟해야 通하니까. 저 인용 구절의 '비유'는 시로 '거짓말'은 소설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구질구질한 실존의 고통을 비켜가고 싶은 무의식의 욕망이 작용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걸 나무랄 수 없다. 자신의 것을 다 토해내야 남의 것도 들어온다. 대개 우리는 남의 이야기에는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너머의 너머 세상으로 가기 위해선 타인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단계가 온다.

 

 

자, 이제 우리의 수업 방향을 좀 바꿔야 해요.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 혹은 이미지로부터 얘기를 만들어나가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왔어요. - 173p

 

 

시간과 공간,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라는 우문에 접한 적이 있다. 공간설정이야 말로 이야기의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다. 강영숙 작가는 공간을 관찰하는 정도가 아니라 탐구하라고 한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공간이 나를 지배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낯선 공간에 두고 싶은 열망에 여행을 하고 생경한 공간에 자신을 두어 다르게 물들어가는 그 순간의 마음에 집중해보기도 한다. 그 공간은 점멸등처럼 기억의 스위치를 켰다껐다 반복하고 공간마저 잠식하는 시간의 잔인함을 이기는 힘이 된다. 다음 팁은 소설은 물론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사람 모두에게 유효하다.

 

 

나는 그때 뭔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것,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탐구하는 것이 글을 쓰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걸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공간을 제대로 설정하라. 그러면 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써지고 훨씬 더 힘 있게 진행된다!   - 199p

 

 

주인공을 빌어 작가는 글쓰기 모드의 필요조건으로 날씨가 너무 더워선 안 되고 배가 너무 고파도 불러도 안 된다고 썼다. 배가 부르면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소리 때문에 글 쓰는 데 집중을 못 한다고 우스개처럼 말한다. 이 소설은 가벼워 보이는 화법을 쓰지만 그렇지 않다. 블로그의 시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에 우리의 욕망이 어디로 어떻게 투사되는지 그리고 그 방향성은 어떠해야할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술술 잘 읽히는 멋내지 않은 문장으로 날강날강한 삶의 이면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하면서 결국 눈물나게 따뜻하고 힘찬 기운을 주는 강영숙 소설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

 

이 소설에 언급된 책 15권을 메모해둔다. 언젠가 찾아읽고 싶은 책들.

작가는 '어떤 경우 책은 너무 많은 걸 감춰주는 보호 장치의 역할도 한다'며, 책을 읽는 상대의 첫번째 좋은 이미지 속으로 쏙 들어가 모든 걸 덮어버린 결과는 오해나 착각을 불러왔고 대부분 좋지 않았다고 주인공을 고백한다. 그래도 책읽기는 글쓰기와 도반인 걸. J작가가 주인공 영인에게 준 읽어야할 책 목록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읽고 읽었듯. 읽고 쓰고, 쓰고 읽고, 생각하고 구축하고, 그리고 넘어서기!

 

1. 노동일기/ 시몬느 베이유

2. 형태의 삶/ 앙리 포시용

3.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뵐

4. 제8요일/ 마렉 플라스코

5. 닥터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6. 자기만의 방, 댈러웨이부인/ 버지니아 울프

7. 디 아워스

8.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에이드리언 리치

9. 티보가의 사람들

10. 캬라멜 공장부터/ 사다 이네코

11. 강철군화/ 잭 런던

12.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시몬느 보봐르

13. 돈 키호테/ 세르반테스

14. 파울라/ 이사벨 아옌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2-09-2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탁탁탁...타자기 두드리는 소리를 좋아하셨구나...
저도 그 타자기 소리와 관련된 페이퍼를 언젠가 한번 올려야겠어요.
강영숙 작가 글 좋아요. 이 책 말고 다른 책들도 제가 읽어본 것들은 다 좋았어요.

프레이야 2012-09-22 18:50   좋아요 0 | URL
나인님의 리뷰로 얼핏 이 책을 본 것 같아요.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페크pek0501 2012-09-2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쓴 리뷰를 맛있게 음미하다가 내려오니 벌써 다 읽고 말았다는...ㅋ

14권의 목록은 저도 어디다 적어 놓고 싶군요. 전 이중 세 권만 읽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자 알...


프레이야 2012-09-22 18:51   좋아요 0 | URL
그 중 세 권이나요!! 전 한 권 달랑.^^
맛있게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페크님.

하늘바람 2012-09-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나게 읽었어요 리뷰를 볼

프레이야 2012-09-22 18:52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읽으셨군요, 이 소설.
산후조리 잘 하셔야 해요.
마침 계절이 참 좋은 때라 행운이에요. 반디도 엄마도^^

자목련 2012-09-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영숙의 소설, 좋아요. 특히 이 장편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단편집 <아령 하는 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도 좋았어요.
한데 프레이야님의 리뷰는 더 좋아요!!

프레이야 2012-09-23 18:04   좋아요 0 | URL
역시 문학을 사랑하시는 자목련님^^
권해주신 강영숙의 단편집도 담아둡니다.
고마워요~~~~
 
지금, 내 곁에 있는 책 52쪽의 다섯 문장

그것을 '공장'의 범주에 집어넣는 데 결코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그건 공장 외의 다른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일종의 공장인 결혼식장, 혹은 '결혼식장'이란 이름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아름아닌 신랑 신부로 불리는

한 쌍의 남녀이며, 그 기계적 추진력은 전문적 노하우와 숙달된 서비스, 주된 부가가치는 감동

(좀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서의 고양), 그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상 일반의 '관례, 상식, 습관'이다.

그런 식으로 결혼식장에서는 오늘도 흉일만 아니면 한 회 또 한 회, '의식'이라는 이름의 휘황찬란한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결혼식 공장'과도 같은 결혼식장의 성격을 비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슨 책의 구절인지 아실 것 같아요. 많은 분이요.^^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와 재미나게 읽은 책인데 지금 컴 옆에 제일 가까이 있는 책입니다.

반납 기일을 못 지키고 이러고 있네요.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들꽃 2012-09-2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헉 저는 왜 모르겠죠?

프레이야 2012-09-21 09:59   좋아요 0 | URL
서늘한달빛님, 반갑습니다.^^
근데 모르셔도 좋아요.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은데 그걸 어떻게 다 읽어요? ^^

2012-09-21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12-09-2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주를 즐겨마시고 달리기를좋아하는. 아시아 최고의 작가님이시죠. 섭가는중이라 급하게 인사드려요. 혜경님 ㅎㅎ. 이가을. 알차게 맞이하시길요 ~^^

프레이야 2012-09-21 09:27   좋아요 0 | URL
춤인생님, 수업 가는 중에.. 너무 오랜만, 반가워요.
가을 누리고 계시죠? 님도 좋아하는 작가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댈러웨이 2012-09-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이참 프레이야님은. 무슨 책인지 알아냈어요. 왜 안 알려주시는 거에요? 저야말로 공장식 결혼식 치뤄놓고는 후회했어요. 그냥 양가 가족들만 모아놓고 단란하게 조촐하게 축복 받으면서 해도 됐을 것을 하면서요. 간소화되어져야 할 거창한 '의식'들이 참 많아요. 그나저나, 반납기일 준수 이꼬르 문화시민. =33333

프레이야 2012-09-21 09:29   좋아요 0 | URL
그게그게 책제목은 안 알려주는 거라네요.ㅎㅎ
저 글을 1986인가 썼으니 당시 일본에도 공장식 결혼식이 성행했나봐요.
우리도 대개 그렇지요. 저도 그랬구요. 하나의 '의식'이 필요한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근데 저는 아무래도 미개시민 ㅋㅋ
오늘은 꼭 반납할 거에요. 부끄러워서 얼굴 안 들고 책만 삐죽 던지듯 내밀고 나와야쥐.

sslmo 2012-09-20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몰라여~--;
전 일본 작가는 멀리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지라...ㅋ~.

프레이야 2012-09-21 09:3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역시 양철나무꾼님은 몰라~
일본 작가를 멀리하시니..ㅋ

페크pek0501 2012-09-2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것 참 좋은 아이디어의 페이퍼인데요. 재밌어요. ㅋ
그런데 어렵군요. 힌트를 주셔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나중엔 꼭 답을 알려 주셔야 합니다.
보러 올게요.

프레이야 2012-09-21 09:31   좋아요 0 | URL
페크님, 힌트는 위의 댓글들 ㅎㅎ

2012-09-21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2-09-2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요. 저도 지인들의 결혼식에 가도 무언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마지막에 주린 배를 움켜 쥐고 사진까지 꼭 찍고 와야 임무를 완성하는 것 같은 기분도 그렇고요--;;

프레이야 2012-09-22 20:10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정말 공장식 결혼식 재미없지요.
너무 복잡하고 틀에 박힌 절차하며... 좀 다르게 멋지게 해보고 싶어요.^^
이 책 읽으셨어요? 하루키 에세이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인데요, 재미나게 읽었어요.
 

계절이 옷을 갈아입을 때면 시집을 찾게된다. 특히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더욱,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가는대로.  

시인의 상상력이 뻗어간 언어는 한없이 부럽기도 두렵기도 한 세계다. 나는 시인의 눈을 흠모하는 사람에 불과하여 늘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길 여러 해. 그렇다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독자도 못 되고 그저 내게 시란 문득 생각나면 들르고픈 한갓진 찻집 창가 한구석 비슷한 것이다. 게으르지만 끊이지는 않는 지리멸렬한 시읽기. 너무 어려우면, 뭐야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내팽개치고 싶다가도 어느새 마음 기울이고 있는 아둔한 연애 같은 것. 사는 일이 연애질과 닮았으니. 무심결에 만난 반짝반짝 빛나는 한 구절에도 불 꺼진 방에 불이 켜지듯. 시는 입술로 읽을 것!

 

<자두나무 정거장>의 박성우 시인이 '시란 아침밥 같은 것'이라고 느릿하고 구수한 전라도 말로 고백할 때, 아 그렇겠구나, 생각했더랬다. ebs fm 시콘서트 감성지기라 부르는 강성연의 질문 "시란 무엇이에요?"에 이은 대답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아침밥을 잘 안 챙겨먹는다고, 그렇지만 어느 날 한 번이라도 아침밥을 챙겨먹고 나온 날은 속이 참 든든하다고, 시는 그런 아침밥 같은 것이라고. 천년초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는 어느 농부가 아침이면 천년초들 앞에서 백석의 시를 읽어주며 하루를 여는 장면을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백석의 시를 아침밥으로 먹고 자란 천년초는 어떤 영혼의 성분을 지니게 될까 싶었다. 업의 업의 업의 인연법으로 몇 생을 살겠지만 우리 서로 구업은 짓지 말자. 아마도 농부는 그런 마음으로 천 년을 살자고 시를 아침밥으로 먹이고 또 먹었을까. 포슬포슬 갓 지은 하얀 밥알을 호호 불어 동글려 삼키듯.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만 올라 안타까운 고은 시인의  시집.

'시인 생활 50여년, 시집 여럿'이 책날개에 적힌 약력이다.

다른 시집보다 좀 두껍다. 장도 나눌 필요 없이 모두 114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읽다보면 새파란 날을 세우고 번득이는 눈으로 세상의 사막을 가르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청년의 영혼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여든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무지무지한 허허망망의 울음'('타클라마칸 사막' 중)이 갖는 힘, 거침없이 약동하는 상상력, 변혁과 초월의 열망,

언어 이전의 언어 그 너머의 너머를 향한 강렬한 바람, 발전과 발명에게 내리는 멈춤의 포고, 

세상 약자들에 대한 연민과 인식의 환기. 사람에 대한 믿음,

시간의 잔인함과 세월의 무상함에 무릎 꿇지 않는 패기와 생명력, 토속적이고 다정한 시어들, 생경한 조합들.

개그 익살 웃음이 판을 치는 세상이 못마땅해 '시 너 죽어줘 푹 죽어줘'('시에게' 중)라고 하면서도

'이거 죽어도 헛소리 아니오라 다 시가 되느니 다 시이니 세상이 시이니' 라고...('취중' 중)

 

시인의말, 에서 시인은 <내 변방은 어디 갔나>에 실린 모든 시 못지않게 절창이다.

 

그러므로 나는 태생(胎生)이나, 난생(卵生), 습생(濕生) 넘어서 저만치 실안개 어리는 化身일 것이다.

실재와 부재의 경계를 모르는 그것이며, 구상과 추상의 담장도 없는 맨마당의 그것. 그것도 아닌 그것.

 

오래전의 죽은 별로부터 산 채로 오고 있는 뭇 시대의 별빛을 받아오는 내 세월에 더이상 무슨 종교가 있겠는가.

오로지 내 몇십년의 백지가 아직까지도 내 교조(敎祖)이다.

다못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철없이 철을 읽듯이 어떤 깨달음도 느낌도 굳이 물리치고 싶은 나는 오늘도 그저 공으로 운다.

울음이야말로 다른 세계에서 내 세계에 귀기울이는 굿이다.  (232, 233p)

 

 

 

마지막 시 한 수만 인용.

 

 

화개(花開)

 

 

바야흐로 꽃의 날이다

 

다 그만두고

너도 울어라

나도 울어라

 

 

 

고은의 <내 변방은 어디 갔나>와 곽재구의 <와온 바다>는 팔월 말에 도서관에서 업어와 야곰야곰 보면서 9월의 절반을 지났다. 반납 기한을 넘긴 불량대출자를 자처하며. 9월은 내 탄생월이기도 해 나이만 한 개 더 먹고 지나가는 것 같다고 다소 생각이 많아지는 즈음에 선물처럼 내가 꼭 들어야될 말을 들었다. 불평하지 말고 지금에 감사하고 룰루랄라 하며 살라고, 기도하고 명상하며 덕담만 하라고. 콕 집어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지도 모른다. 불평은 자신만을 위한 기도에서 온다고 했다. 아닐 땐 발버둥치지 말고 엎드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멀가까이서 늘 나의 안녕을 염려하고 물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눈물나게 고맙다. 잘 지내요...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잘 지냈어요... 잘 자요. 친구와도 동감했듯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쉽지 않고도 고마운 일이다.

 

 

와온 바다, 곽재구

 

고은 시집 하나 더 <두고 온 시>

 

 

 표지가 아주 산뜻하다.

 문정희 <다산의 처녀>, 장석남 <젖은눈>과 함께 도착.

 

 

 

 

 

 

 

 

 

 

 

 

 

고은 시집 검색하다... 이런 여행에세이가 있었네. ^^  저 작가들 이름과 목차만 훑어봐도 급호감.

 

 

 

 

 

 

 

 

 

 

 

 

 

 

 

 

 

 


댓글(14) 먼댓글(2)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2-09-19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년초들 앞에서 백석의 시를 읽어주는 농부. 그분은 시인보다 더한 분이시군요.

이번 가을, 든든하시겠습니다 ^^

프레이야 2012-09-19 21:03   좋아요 0 | URL
나인님, 든든해요!!
그 농부처럼 누군가에게 하루를 시를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요.
자신에게부터요.^^

비로그인 2012-09-19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하면..저는 고정희님이 떠올라요...백여권 남짓한 시집들을 책장한구석에 잘 안보이게 쌓아 두었는데...이제 다시 꺼내볼 때가 온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2-09-19 21:05   좋아요 0 | URL
아른님, 반갑습니다.^^
다른 분 서재에서 뵌 것 같아요. 고정희 시집을 소장하고 있지 않아 부럽습니다.
잘 안 보이게 쌓아두신 시집들 하나씩 가을바람 쐬어주시지요.^^ 좋을 것 같아요.

치니 2012-09-19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팽개치고 싶다가도 어느새 마음 기울이고 있는 아둔한 연애 같은 것.' - 끄덕끄덕.
프레이야 님 오늘 이 글, 참 좋아요. :)

프레이야 2012-09-19 21:06   좋아요 0 | URL
치니님, 삶을 산다는 게 참 연애질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좋아해주셔서 전 느무 기쁘지요.^^

2012-09-19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19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12-09-20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친구와 고은 시인의 <차령이 뽀뽀>라는 동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괜히 더 반가운^^
전 <내 변방은 어디 갔나>과 <순간의 꽃>을 가까이 두었지만 차분히 읽지 못했어요.
프레이야님 덕분에 그 시집을 펼치는 오후가 될 듯해요...

프레이야 2012-09-19 21:09   좋아요 0 | URL
차령이 뽀뽀!! 이름이 너무 이뻐요. 동시집이 있군요.
고은 시인의 언어와 상상력은 정말이지 뭐라 부연할 말이 있을가요.
'고통의 꽃'도 있군요. 역시 문학을 사랑하시는 자목련님^^ 고마워요.

자목련 2012-09-20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순간의 꽃>인데 고통의 꽃이라고.. 수정했더니 시각이 바뀌네요.
읽고 또 읽어야 진짜 사랑하는 건데.. 그렇지 못해요..

프레이야 2012-09-21 09:33   좋아요 0 | URL
네, 순간의 꽃!!! 바로 찾아서 찜해둘게요.

들꽃 2012-09-24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먼댓글로 오게 된 곳이네요! 시란 아침밥 같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잘 거르지만, 한 끼 먹고 온 날은 든든하다고. 아직도 시를 즐겨 읽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이전에 비해서 시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어요.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읽기를 권했는지.

글 첫 문단이 좋아서 세번 곱씹어 읽었습니다.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면 이래서 괜한 충만감이 드나봐요.

프레이야 2012-09-25 11:14   좋아요 0 | URL
서늘한달빛님, 고맙습니다.
작은 것에서도 충만할 줄 아는 능력, 시 읽는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가을햇살 만끽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