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녹음 시작, 총 12시간 소요 완료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은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입장에서 집짓기의 철학과 집짓기의 욕망을 해부한다.

고객 중 자신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를 모르고 의뢰하는 부류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인테리어 잡지에서 본 누구누구의 집 비슷하게, 이런 주문을 하는 부류는 건축 후 만족도도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은 하나의 은유로도 많이 쓰이는데 '집'을 '짓다'라는 의미에 많은 걸 대입할 수 있다.

저자 함성호는 개인적 차원의 집짓기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공적 집짓기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생각을 갖고 있다.

 

글을 읽을수록 저자가 상당히 반듯하고 온기있는 품성을 지녔다는 걸 느낀다. 편견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예를 들어 무작정 도시보다 시골을 예찬한다든가, 유기농 채소가 무조건 좋다든가,

이런 틀에 잡히지 않는다.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감성적으로, 지적으로 통쾌하고 정확한 부분에서는 또 그렇게 해박하다.

학창시절 어느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나 건축현장에서 목수와 반목했던 이야기는 가슴을 둔중한 무엇으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척' 하지 않고(그렇다도 애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적은 사람 같다)

인간적으로 모자람에 솔직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같다. 생각이 깊고 공정하고 강직하면서도 여린 심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잘 보이는 에세이라서 믿음직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당신을 위한 집 이야기와 집을 통해 본 사랑과 문학과 문화에 대한 답사기!"

 

이 구절은 책 뒷표지에 적힌 부제 아닌 부제다. 다 읽고 나니 그다지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는 구절이다 싶다.

건축가 함성호는 실제로 늘 두 가지 이상의 길을 동시에 갔다고 고백한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그래서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프루스트는 갈림길에 서 있었던 어느 한 시절의 가지 않은 길을 노래했지만, 사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길로 이미 우리의 그리움과 망설임의 또 다른 나를 가게 했다.

'나'는 실은 단수로서의 '나'가 아니라 수많은 복수로서의 '나'가 모인 우리이다. 그 수많은 '나'들은, 잃어버리고

새로 나타나는 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만나고 헤어진 '나'다. 우리가 타인과 만나 이야기 할 때, 그 타인은

어쩌면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믿고 있던 그 길로 보낸, 또 다른 나일지도 모른다.      - p145

 

 

저자는 건축가 외에도 시인, 만화광, 공연연출가, 여행가이지만

나는 철학자라는 이름을 하나 더 주고 싶다.

 

마지막 장의 '행복의 조건들'에서 그가 중요하게 말하는 '경험'이란 말에 집중하게 된다.

바깥으로 우리의 경험을 이끈 다음에야 파랑새를 보여주는 행복을 넘어 이제는

구체적으로 행복을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는 그의 조언이 귀담아 들린다.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에서 감동할 줄 아는 삶의 경험을 찾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말이다.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결과에 가까운 '만족'과 인간의 의지보다는 어떤 큰 흐름을 뜻하는 '행복',

둘의 차이에 대한 구절이 내 마음 깊이 와닿는다.

 

 

만족한다는 것은 한계를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만족한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다 뒤져보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만족은 꼭 기쁨으로 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짙은 슬픔으로 우리를 집어넣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따라 나는 내 것이 아닌 게 어떤 것인 줄도 알게 될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할 리가 없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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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9-2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은 없다....정말 그런 것 같아요...
찾아보니 당신을 위해 지은 집을 비롯해 철학으로 읽는 옛집에도 마음이 끌려요. 얼른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2-09-23 18:41   좋아요 0 | URL
아, 아른님, 역시 함성호는 철학가군요.
철학으로 읽는 옛집,도 전에 제목만 보고 담지 않은 책인데 바로 담았어요.
아주아주 좋아보여요.^^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읽는데 함성호의 시가 몇 번 나와 반가웠어요.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인가? ㅎㅎ

2012-09-23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3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09-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애정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적은 사람'이라는 님이 표현 좋아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해요.
저, 표현이 적은 사람이랑 살면서 애정이 적은 사람이랑 사는 줄 착각하고 툴툴거린 날들을 돌아봤어요.
프레이야님, 감사~!
여긴 가을 햇살이 참 넉넉해요.
거긴요~?

프레이야 2012-09-25 11:12   좋아요 0 | URL
님, 저도 늘 툴툴거리며 살아요.^^ 생각해보면 참 많은 걸 가지고 누리고 사는데도 말이죠.
여기도 가을 햇살이 밝고 넉넉해요. 마음에서 분노나 불만이 일어날 때면 그건 사실과는 달리
무의식의 기억이나 상처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네요. 사실과 기억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걸 깨닫고 멈추면 되는데.. 브레이크 작동 잘 하며 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