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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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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은교> 열풍을 외면할 수 없다. 부단히 창작해온 작가이지만 때맞춰 이런 에세이도 나왔다.

김광균의 말이 아니어도 가장 자기고백적인 글, 수필이야말로 저물녘처럼 본성에 가장 가까워지고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글이 아닌가. 작가라면 결국 수필로 마무리 되어야할 것 같다. 이 책에도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의 집과 서재의 실제

공간이 되었던 집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쓸쓸한 분위기와 배우들에 대한 찬사가 잠시 있어 혼자 막 반가웠다.

10시간 노인 분장을 하고 난 박해일을 보고 작가는 자신을 본 듯 했을까, 이질감을 느꼈을까.

 

박범신의 소설을 좋아하거나 탐독한 독자는 아니었지만 작년에 읽은 <은교>는 상당히 경이로웠고 그 후 에세이

<산다는 것은>을 읽었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논산일기 2011 겨울'이라는 부제를 달고 따끈하게

갓 구워져 나온 빵처럼 풍미있는 일기다. 정확히 2011년 11월부터 2012년 3월 하루까지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일기를

모았다는데 그냥 가볍게 읽기에는 그의 실존적 고민과 고백이 비장하고 진중하다. 글을 쓰는 일을 천직으로 하거나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그저 각자 나름의 의미를 즐기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인생 선배로서 꽤

의미심장한 충고가 된다. 밤호숫가 별빛 아래서 막걸리 한 잔 나누며 들으면 더 좋을 듯하다. 

 

작가는 논산에서 살기를 결심하고 그동안 살면서 여러번 남편의 짐을 싸본 아내는 말없이 이불이며 옷가지를 싼다.

논산에서만이 아니라 차로 두 시간 걸리는 서울도 일이 있으면 왔다갔다 하며 서울에서의 일기도 섞여 있다.

작년에 그의 글쓰기 39주년. 39년의 삶을 동행한 아내의 지청구처럼 서울일기면 어떻냐는 말이다.

작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평생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박범신의 글을 보면서도 역시 느낀다.

<산다는 것은>에서도 그렇듯 이 책에서도 아내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시종일관 무뚝뚝하다.

하지만 깊이 모를 뭉근한 사랑과 정이 뚝뚝 묻어나는 게 감춰지지 않는다. 평생의 친구, 동지, 미안하고 고마운 대상.

 

평생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글을 쓰는 일을  천명으로 알고 살아갈 작가가 굳이 논산일기라고 쓴 이유가 그의 고향

논산이 그저 훈련소나 연상시키는 문화의 사각지대 같이 거친 느낌만을 주는 게 싫어서였다는 이유도 재미있다.

이건 반은 농담일테고 실제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곳에서 안빈낙도, 무위자연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고 그것은 하나의 '그리움'일 뿐 사실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솔직히 말한다.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위태로운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출발'해 간 것이라고, 

'새로운 시간을 향한 장엄한 반역과 그 너머에 있을 미지의 또 다른 감미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은 옹골차다고

자신만만하게 고백한다. 역시 청년작가답다.

 

곁들여놓은 사진풍경도 맑고 깨끗하다. 작가의 고향 자랑도 들을 만하다. 예향 논산,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서인들의 본거지,

아름다운 풍광, 조정리 탑정호가 그리 멋진 곳인지 몰랐다. 그는 고향의 역사에 서린 잊혀져갈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려갈

야심을 가졌고 책에서도 여러번 드러낸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강줄기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그가 글을

써온 오랜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서서 지난 날을 반추하고 현재를 감사하며 다음 사랑(글)을 시작하기 위한

내적 준비에 대한 가열찬 고백이다. 오욕칠정을 숨기지 않고 많은 부분 충동으로 살고 글을 쓸 때만 생각한다는 말에

동감하는 그는 어느 부분에서도 그다지 위선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자신 안에 키우는 짐승 한마리에 대한

고백에서는 청년의 기운이 느껴진다. <산다는 것은>에서도 비슷한 고백이 있었다.

글을 쓰는 자는 그래야 되지 않을까. 살아가는 자는 그래야 되지 않을까.

근원적인 슬픔을 안고 태어나 실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그는 말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은 내가 보기엔 가짜 모습이다.

그는 일상적인 추락과 상승을 거듭하는 불연속선에 항시적으로 걸쳐져 있다.

내가 그러하니 내 안의 그들도 그러하리라고 나는 상상한다. 화석화 과정을 겪는 것은 바깥의 얼굴뿐이다.

나의 문학적 에너지도 알고 보면 그 위험한 내부 분열에서 나온다.

삶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을 지혜롭게 넘으려면 창조적인 작업에 열중하는 게 좋다.

전문가가 꼭 될 필요는 없다. 중년에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 일의 하나로,

늙어가면서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연마할 것인가, 어떻게 창조적인 자아를 위로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156쪽

 

일찌기 한 번 멈춰선 적이 있다. 그는 1993년부터 3년간 용인의 한방산터에 묻혀 세상을 미워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고 칭찬과 비난를 동시에 듣고 앞뒤가 다른 지인들에게서 배신감도 들었던 그는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숨었던 적이 있다. 미워한다는 건 그만큼 그리워한다는 말. 그가 늘 말하는 '그리움'의 원천은

세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때도 지금도.

그런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어떤 것에 도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가 중요하다는.

어떤 결론에 이른 게 어떤 결과를 얻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 어떻게 나아갔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중요하다.

 

'저만치'에 대한 글귀는 자신이 비난 받았던 예전의 글쓰기에 대한 적절한 해명(변명이라해도 좋다) 같이 들리면서

나름의 꼿꼿한 작가관에 공감 되었다.

 

유리창 한 장 사이인데, 때론 창밖과 창 안쪽 세계는 별과 별 사이처럼 멀고, 또 나와 나 사이처럼 가깝다.......

'저만치'는 그야말로 비밀스럽고 눈물 나는 거리이다.

 

작가는 창 안쪽에서 창 밖의 세계를 보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뛰고 걸으면서 쓸 수는 없다. 피 튀기는 저자의 이야기를

아무리 현장감 넘치게 쓴다 해도 쓸 때, 그는 창 안쪽의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야 한다. '저만치'의 거리가 없다면

사물을 볼 수도, 기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평생 '저만치'의 그 거리와 싸워온 느낌이다. 세상과, 혹은 당신과, 더 가까워 한 몸이 되고 싶을 때는

'저만치' 떨어져 있어 고통받았고, 더 멀어져 남이 되고 싶을 때 역시 '저만치' 가까이 있어 고통받았다.  (257-258쪽)

 

 

 

 

앞으로 그의 소설이 나오면 읽어보게 될 것 같다. 내일 힐링캠프에도 출연한다.^^

본문 뒤에 수록된 2011년 6월 발표한 소감문(장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출판기념회)은 '논산일기'를 압축한 듯

그의 '산다는 것'과 '글을 쓰며 산다는 것'에 대해, 앞으로의 행보와 결심과 야망에 대해 정리하여 드러내준다.

"고백하거니와, 나의 마지막 꿈은 문학에서가 아니라, 인생, 그것 자체에서 승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실존의 어두운

혼돈을 이기고, 유한한 시간의 감옥을 벗어나서 내 영혼이 마침내 참된 자유에 도달, 그야말로 훨훨,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은밀하고도 최종적인 지향입니다.(322쪽)"라고.

그는 정말 욕심 많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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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6-1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그런데 시간이 읎어요,,ㅠㅠ
그리고 이번에 남편이 집 싹 정리하면서 책 사면 어쩌구 저쩌구 라는 엄포를 놔서,,,ㅠㅠㅠ
저 내일 유방검사가요,,,갑자기 무서워요,,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2-06-18 22:13   좋아요 0 | URL
검사 잘 받고 꼭 결과 알려줘요. 너무 겁 먹지 말구요.ㅠㅠ
책보다 건강이 우선 ^^

근데 박범신, 인용을 줄이자라고 본인 스스로 결심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의 작품 몇 개를 읽어본 제 느낌은, 인용이 꽤 많은 편이란 거에요.
훌륭한 작가의 훌륭한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인용하는 것, 나쁘다곤 볼 수 없지만
거기서 나아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은교'같은 경우는 아예 좋은 시들을 대놓고 따왔구요.
물론 등장인물 이적요 시인의 시노트라는 구실이 되지만요.

moonnight 2012-06-1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교도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주제에 이 책도 보관함에 넣습니다. 프레이야님 리뷰를 읽자니 너무 읽어보고 싶어지는걸요. >.<

프레이야 2012-06-18 19:57   좋아요 0 | URL
열정이 식지 않는 어느 육십 대 작가에 대해, 생을 나보다는 더 산 인생선배의 이야기로서도
들어볼만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삶을 사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은교'는 어여 읽어보세요. 맘에 드실 건데요.^^

반딧불,, 2012-06-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교를 시작 못했습니다. 영화를 한번 더 볼 요량이었는데 아마 요원할 듯 해서 책을 읽어야 겠네요.
최근에 반하게 된 작가죠. 그전엔 그리 대단하단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뭘 모르는 독자였는지도^^

프레이야 2012-06-18 22:1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예전에 별 관심 없었던 작가인데 은교 이후 달라졌어요. 제가요.
에세이도 좋습니다.^^

프레이야 2012-06-1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밤 힐링캠프에서 박범신, 매력있었어요.
논산의 그 집으로 3명이 갔더군요. 글방 창문 밖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풍경이 호젓했어요.
이 책 '논산일기'에서 이야기한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요. 유쾌하고 의미있게 좋은시간이었어요.

blanca 2012-06-19 09:1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어제 보고 무한감동 받았어요. 그 어린 시절 담벼락 얘기하는데 눈물이 줄줄 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2-06-19 10:2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눈물을 찍어내며 고백하던 작가의 모습이 참 순수해 보였어요.
목숨을 끊으려 4번이나 시도했던 이야기, 히말라야 이야기, 독서지도의 필요성까지
오욕칠정의 긍정적 발산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요. 위트도 있고 재미나게 봤어요.
요새 힐링캠프 계속 좋아요.ㅎㅎ 법륜, 정대세에 이어 ㅎㅎ 담주는 안 볼까 해요.
그 여자탤런트분은 그닥 관심가지 않아서요.ㅋ

2012-06-2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재밌게 읽지는 않았지만, 힐링캠프는 보고 싶네요. ^^;

프레이야 2012-06-20 23:57   좋아요 0 | URL
히히~ 힐링캠프 좋았어요.
논산 서재 창 밖으로 보이는 계룡산 국자봉까지도요^^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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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읽지 못했다. 이 책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인터뷰집은 흥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좀 있는데 이 책은 김제동 특유의 편안하면서도 날카로운 번득임이 고루 묻어 있어 흥하는 쪽이 아닐까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내가 읽었던 인터뷰집이라야 고작 지승호가 우리시대 빛나는 영화감독들과 함께한 인터뷰집 몇 권과 조국, 정재승, 정혜신 등 각계 엘리트들의 한겨례 특강을 청중을 앞에 두고 사회자 오지혜와의 대담식으로 모은 <21세기를 사는 지혜, 배신>, 지승호가 인터뷰한 박원순의 <희망을 심다>등이다. <배신>과 <희망을 심다>는 점자도서관에서 낭독녹음을 한 책이라 더 인상깊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좀 더 대중에게 알려졌고 티비에서 주 1회는 보게 되는(힐링 캠프), 본인은 싫다지만 소셜테이너로 불리는 노총각이 다양한 분야의 친분관계를 살려 인터뷰이를 택해 자신과 그들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였다.

 

몇 해 전인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에 간 적이 있다.

국내 모 기업에서 연 환경토크콘서트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작은딸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복도를 지나다가 하얀색 반팔 피켓셔츠를 입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 생각보다 단단해 뵈는 체구의 남자랑 딱 부딪힐 뻔했는데, 그였다. 주변에 몇 사람의 남자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그는 한 시간 반 정도 토크를 이어갔고 무릎을 꿇기도 했고 종반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까지. 환경을 주제로 한 토크라 4대강 이야기도 나오고 토목공화국에 대한 이야기도 얼핏 나왔지만 우스개로 정치적인 코멘트는 넘기는 재주를 보이며 시종일관 구비구비 이야기 고개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재능이 돋보였다. 의미심장한 고개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나 심경을 아주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결핍을 웃음의 소재로 하는 모습도 미더웠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자유로이 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 행복해보였다.  

 

그래서인가, 상대이 자신이 하고픈 말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게 김제동이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는 각계각층 18명의 인터뷰이를 김제동이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가 준비한 것은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은 걸 물어줄 준비다. 그가 모르는 것에서 과도하게 나아가지도 않고 잘난 척 하지도 않는다. 인터뷰이한테서 배울 건 배우고 얻을 건 얻겠다는 생각이 엿보이는 개방된 대화의 태도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터뷰이 모두가 그에게는 스승이라는 태도가 강점이다. 무엇보다 편안하고 겸손하다. 이효리처럼 상대적으로 친분이 더 있는 상대와의 인터뷰는 또 다른 느낌일 텐데, 그것마저도 나쁘지 않다. 굳이 흠을 잡자면, 깊이는 좀 덜하다고 할까. 그렇다고해서 할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느낌은 없다. 장황설을 늘어놓는다고 본질에 가까운 건 아닐 테니. 대화마다 내가 밑줄 긋기해 놓은 부분도 많다. 그건 다음에 다른 카테고리로 하고.

 

특히 안철수, 박경철과 나눈 대화 중 리더십에 대한 부분이 내게 공명한다. (52-52쪽)

 

안> 21세기는 일반 대중이 리더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아요. 탈권위주의 시대가 되면서, 지금은 대중이 리더에게 리더십을 부여하지요. 게다가 대중이 리더에게 원하고 갈망하는 자질이 더 중요해요. 현재 대중이 원하는 리더십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그리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에요.

 

제동> ...... 어쨌든 리더십은 정의와 연결돼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고 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고 말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안>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그사람이더라고요.

 

박> 수많은 구호와 수다, 슬로건은 결국 자신의 콤플렉스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죠.

 

 

저 위의 인용문 중 제동의 괄호 부분은 책을 읽다가 처음엔 좀 헷갈리는 편집인데, 인터뷰어의 독백 같은 것이다.

대화 중간중간에 저런 부분이 있는데 글자체를 좀 달리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제동이 대화로 배우고 사유하고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정리해나가며 성장하는 부분이라 의미가 있다.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에게 살짝 더 비중이 갔다고 느끼게 되는 건, 18인의 인터뷰가 끝난 후 신동화, 오광수

두 명의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각각 김제동을 심층인터뷰 한 부분과 '이 시대의 보통명사 김제동을 말한다' 편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터뷰이를 통해 인터뷰어 김제동이 더 돋보이는,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책으로서 더 의미 있다.

 

웃음에 좌나 우를 가릴 수는 없죠. 좌뇌-우뇌로 갈라서 사람이 살 수 없듯이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는 구조,

이게 웃음의 한 구조라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모든 혁명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웃게 만들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요?

행복하면 웃지 않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웃음은 혁명과 동의어라고 해도 된다는 것이죠.  (중략)

 

여담이지만 저같이 무대에 서는 사람의 가장 큰 기술은 사람을 웃기는 것이라기보다 웃기고자 했던

의도를 숨기는 것 입니다. 웃기고자 했는데 안 웃잖아요. 그럼 빨리 숨겨야 됩니다. 안 들키게 말이죠.

                                                                                                                      (224-225 쪽)

 

눈물 많고 글도 말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 휴먼테이너, 소통의 감수성과 실천적 연대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무엇보다 "웃음은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올곧은 김제동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이토록 속 깊은 남자가 아직 결혼을 못한 건

단지 인연이 안 나타나서일까. 비가 오는 날 어떻게 술을 안 마실 수 있냐며 너스레를 떨지만 외로움에 몸서리 친다는 총각,

이 책의 수익금은 결혼 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서문에 적으며 잠시 행복해져 본다는, 제대로 웃기는 남자다.

 

꼭 안고 자자. 우리.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세상이 다 너를 내팽개져도 나는 너를 지킬테니.

세상 소리 다 내 품안에서 못 듣게

내 더운 몸으로 너를 껴안을 테니 아무 걱정 없이 자라.

잠든 사이에도 너에게서 멀어지지 않을 테니.

잘 자.

베개야.

                                                             - 서문 중

 

 

 역시 그는 홍희인간(弘喜人間)을 목표로, 웃기고자 했던 의도를 숨길 줄 아는 똑똑한 개그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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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6-1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그사람이더라고요"

저는 이 부분이 몸서리치게 공감됩니다.
말과 생각은 포장할 수 있지만, 일관된 한사람의 행동과 선택은 포장되지 않으니까요.
특히 특정 상황에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극단 상황에서 나타나는 행동과 선택도 그렇지만,
일상적으로 보여지는 행동과 선택도 그렇습니다. 아니, 일상사의 행동과 선택이 더 어렵겠다 싶어집니다.

프레이야 2012-06-18 20:01   좋아요 0 | URL
저도 격하게 공감되어 밑줄 좍^^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종류의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들로 이어가는 것 같아요.
어떤 행동도 선택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가 그 사람이라는 말인데
거창한 것보다 소소한 일상의 선택에서부터 '그 사람'이 나타는 것이겠죠.
'선택'은 어떤 면에서 '태도'의 문제와도 통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고님.^^
 

 

 

 

 

 

 

 

 

 

 

 

 

 

오늘부터 1차 편집 시작, 1/3 정도 했다.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라는 부제가 있는데 생생한 실화들이라 다시 읽으며 감동이 망울망울 맺혔다.

꾸밈없이, 어떤 미문도 과장도 없이 깨끗하고 담담하고 진솔하게 써내려간 글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할머니의사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식과 동반자살을 하는 어른을 이해할 수 없다고 쓴소리를 한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닌데, 그 아이의 삶이 어떤 희망과 축복을 가져올지 알 수 없는 것인데

부모라는 이름으로 차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혼 후, 어린 딸을 안고 철로에 뛰어든 여교수가 있었다. 자신은 즉사, 두 살 난 딸은

죽은 어미 옆에서 목숨이 붙었지만 두 다리가 잘려나간 상태였다. 

그 아이는 의족이 평생 필요하게 되었고 당시 국내에서는 성장에 맞춰 매년 두 번 정도 의족을 갈아줘야할 만큼의

경제력이 될 입양부모가 나서기 어려웠다. 그 아이는 미국의 좋은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현재 서른 살쯤이 되었단다.

미국은 장애아에 대한 국가적 보조가 뛰어났고 그 당시에만 해도 18세가 될 때까지 지원금이 나왔고 성인이 되면

갚아나갈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지원금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지만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하니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복지정책이 안타깝다.

 

사람은 스스로 어떤 이유로도 목숨을 버리거나 그래서도 안 되지만

이렇게나 불우한 삶의 굴레를 타고난 듯 보이는 아이들이 또 다른 인생을 맞아 

사랑을 나누고 기쁨으로 살고 있는 사례들을 보며, 세상 누구의 삶도 쉽게 갈라서 생각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구나, 다시 느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게 다일 수도 없다.

작디 작은 먼지에 불과할지도 모를, 너도 나도 우물 안 개구리, 수족관 안의 물고기에 불과할지도 모를 존재다. 

가엾다 너나 나나. 소중하다 너나 나나. 그리고 인생이 나에게 또 너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인생을 너무 집요하게 들여다보면 비관적인 사람,

관조하면 냉소적인 사람이 된다.

인생을 보는 적당한 거리를 아는 것,

그게 바로 현명함이 아닐까.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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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6-12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을 보는 적당한 거리를 아는 것!
그래서 인생이 나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도 모를 일!
내식대로 해석해서 읽게 되지만..가슴에 와 닿아요
선물 받고 싶네요.^^
님의 목소리도 한 번 듣고 싶구요.ㅋ

프레이야 2012-06-12 08:47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님,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도서관 안 가시나요?
제 목소리는 그저 그렇지만 님의 목소리는 듣고 싶네요.
인생을 보는 적당한 거리는, 사람을 보는 적당한 거리와도 통하는 게 아닐까 해요.
마음의 완급이랄까. 아무튼 멀리서 보면 희극, 자잘한 '비극'은 패스하는 현명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댈러웨이 2012-06-1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보이는 게 다일 수가 없는데'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아, 갑자기 우울해지려고 한다. ㅠ.ㅠ

프레이야 2012-06-12 19:09   좋아요 0 | URL
보이는 게 다가 아니지만, 어떨 땐 보이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잘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보이는 건 간과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안달할 필요까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간혹 들어요.^^
댈러웨이님 우울해지지 마시라구요.^^

2012-06-12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6-13 00:23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 읽으며 몇 번이나 뭉클뭉클 목울대에서 뭔가 치고 올라왔어요.
세상엔 험한 일도 험한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그래서 세상이 굴러간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좋은 책이에요.
사람의 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지도에 의한 것이란 생각도 들고..
탈없이 낳아서 길러준 부모님께 그나마 감사한 마음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2012-06-13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4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1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레이] 모나리자 스마일 - 아웃케이스 없음
마이크 뉴웰 감독, 줄리아 로버츠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1950년대 웰슬리 대학,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혁명을 위해 주체적 선택과 이미지가 아닌 진실을 선도한 미술사 강사. 그녀와 여학생들의 고뇌와 갈등, 현명한 선택의 과정에서 잭슨 폴락을 포함한 그림도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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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도 이거 재미있게 봤어요.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모두들 '내가 하고싶었던' 걸 하고있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이가 하고 있으면 거기에 대해 비난하기를 멈추지 않는게 특히 다가오더라구요. 이를테면 사실 공부하고 싶었던 커스틴 던스트가 진학하는 줄리아 스타일즈에게 결혼이 더 현명하다고 말하는 그런거요.

좋았어요, 이 영화.

프레이야 2012-06-08 20:2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게 욕망의 투사가 아닐까요. 누구나 그런 혐의에서 자유롭진 못할 듯해요.
커스틴 던스트가 후반부에 결혼생활의 배신감을 느끼고 모나리자의 미소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장면과 엄마(체면, 규범)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장면이 좋았어요.
이 영화 저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완전 뜻밖의 선물 같았어요.ㅎㅎ
줄리아 로버츠는 저런 역할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메기 질렌할, 마음에 들더라구요^^

 
제인 오스틴의 북 클럽
로빈 스위코드 감독, 메기 그레이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비중이 거의 같은 여러 배우들의 조화로움, 신선한 구성, 제인 오스틴의 여섯 작품을 만나는 재미, 각자의 상처와 화해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이 밝고 경쾌하고 따스하고 진지한 무드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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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6-09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 오스틴... 책 대신에 디브디로나 보자고 시리즈로 다 구입해놓고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데,,, 아 근데 이건 뭐죠? 종결편으로 봐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드는걸요. 귀한 발견. ^^

프레이야 2012-06-09 23:04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제인 오스틴 영화 시리즈 다 구해놓으셨구나. 두근두근^^
이 영화는 종결편으로 봐줘야 할까요?^^ 오스틴의 여섯 작품을 읽고 보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않아도 아무 상관 없을 듯해요. 전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