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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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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은교> 열풍을 외면할 수 없다. 부단히 창작해온 작가이지만 때맞춰 이런 에세이도 나왔다.

김광균의 말이 아니어도 가장 자기고백적인 글, 수필이야말로 저물녘처럼 본성에 가장 가까워지고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글이 아닌가. 작가라면 결국 수필로 마무리 되어야할 것 같다. 이 책에도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의 집과 서재의 실제

공간이 되었던 집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쓸쓸한 분위기와 배우들에 대한 찬사가 잠시 있어 혼자 막 반가웠다.

10시간 노인 분장을 하고 난 박해일을 보고 작가는 자신을 본 듯 했을까, 이질감을 느꼈을까.

 

박범신의 소설을 좋아하거나 탐독한 독자는 아니었지만 작년에 읽은 <은교>는 상당히 경이로웠고 그 후 에세이

<산다는 것은>을 읽었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논산일기 2011 겨울'이라는 부제를 달고 따끈하게

갓 구워져 나온 빵처럼 풍미있는 일기다. 정확히 2011년 11월부터 2012년 3월 하루까지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일기를

모았다는데 그냥 가볍게 읽기에는 그의 실존적 고민과 고백이 비장하고 진중하다. 글을 쓰는 일을 천직으로 하거나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그저 각자 나름의 의미를 즐기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인생 선배로서 꽤

의미심장한 충고가 된다. 밤호숫가 별빛 아래서 막걸리 한 잔 나누며 들으면 더 좋을 듯하다. 

 

작가는 논산에서 살기를 결심하고 그동안 살면서 여러번 남편의 짐을 싸본 아내는 말없이 이불이며 옷가지를 싼다.

논산에서만이 아니라 차로 두 시간 걸리는 서울도 일이 있으면 왔다갔다 하며 서울에서의 일기도 섞여 있다.

작년에 그의 글쓰기 39주년. 39년의 삶을 동행한 아내의 지청구처럼 서울일기면 어떻냐는 말이다.

작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평생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박범신의 글을 보면서도 역시 느낀다.

<산다는 것은>에서도 그렇듯 이 책에서도 아내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시종일관 무뚝뚝하다.

하지만 깊이 모를 뭉근한 사랑과 정이 뚝뚝 묻어나는 게 감춰지지 않는다. 평생의 친구, 동지, 미안하고 고마운 대상.

 

평생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글을 쓰는 일을  천명으로 알고 살아갈 작가가 굳이 논산일기라고 쓴 이유가 그의 고향

논산이 그저 훈련소나 연상시키는 문화의 사각지대 같이 거친 느낌만을 주는 게 싫어서였다는 이유도 재미있다.

이건 반은 농담일테고 실제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곳에서 안빈낙도, 무위자연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고 그것은 하나의 '그리움'일 뿐 사실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솔직히 말한다.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위태로운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출발'해 간 것이라고, 

'새로운 시간을 향한 장엄한 반역과 그 너머에 있을 미지의 또 다른 감미를 구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은 옹골차다고

자신만만하게 고백한다. 역시 청년작가답다.

 

곁들여놓은 사진풍경도 맑고 깨끗하다. 작가의 고향 자랑도 들을 만하다. 예향 논산,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서인들의 본거지,

아름다운 풍광, 조정리 탑정호가 그리 멋진 곳인지 몰랐다. 그는 고향의 역사에 서린 잊혀져갈 이야기를 소설로 써내려갈

야심을 가졌고 책에서도 여러번 드러낸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강줄기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그가 글을

써온 오랜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서서 지난 날을 반추하고 현재를 감사하며 다음 사랑(글)을 시작하기 위한

내적 준비에 대한 가열찬 고백이다. 오욕칠정을 숨기지 않고 많은 부분 충동으로 살고 글을 쓸 때만 생각한다는 말에

동감하는 그는 어느 부분에서도 그다지 위선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자신 안에 키우는 짐승 한마리에 대한

고백에서는 청년의 기운이 느껴진다. <산다는 것은>에서도 비슷한 고백이 있었다.

글을 쓰는 자는 그래야 되지 않을까. 살아가는 자는 그래야 되지 않을까.

근원적인 슬픔을 안고 태어나 실존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그는 말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은 내가 보기엔 가짜 모습이다.

그는 일상적인 추락과 상승을 거듭하는 불연속선에 항시적으로 걸쳐져 있다.

내가 그러하니 내 안의 그들도 그러하리라고 나는 상상한다. 화석화 과정을 겪는 것은 바깥의 얼굴뿐이다.

나의 문학적 에너지도 알고 보면 그 위험한 내부 분열에서 나온다.

삶의 유한성이 주는 슬픔을 지혜롭게 넘으려면 창조적인 작업에 열중하는 게 좋다.

전문가가 꼭 될 필요는 없다. 중년에 준비하고 시작해야 할 일의 하나로,

늙어가면서 어떤 창조적인 작업을 연마할 것인가, 어떻게 창조적인 자아를 위로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156쪽

 

일찌기 한 번 멈춰선 적이 있다. 그는 1993년부터 3년간 용인의 한방산터에 묻혀 세상을 미워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고 칭찬과 비난를 동시에 듣고 앞뒤가 다른 지인들에게서 배신감도 들었던 그는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숨었던 적이 있다. 미워한다는 건 그만큼 그리워한다는 말. 그가 늘 말하는 '그리움'의 원천은

세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때도 지금도.

그런 말이 떠오른다. 사람이 어떤 것에 도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가 중요하다는.

어떤 결론에 이른 게 어떤 결과를 얻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 어떻게 나아갔는가, 어떻게 달라졌는가가 중요하다.

 

'저만치'에 대한 글귀는 자신이 비난 받았던 예전의 글쓰기에 대한 적절한 해명(변명이라해도 좋다) 같이 들리면서

나름의 꼿꼿한 작가관에 공감 되었다.

 

유리창 한 장 사이인데, 때론 창밖과 창 안쪽 세계는 별과 별 사이처럼 멀고, 또 나와 나 사이처럼 가깝다.......

'저만치'는 그야말로 비밀스럽고 눈물 나는 거리이다.

 

작가는 창 안쪽에서 창 밖의 세계를 보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뛰고 걸으면서 쓸 수는 없다. 피 튀기는 저자의 이야기를

아무리 현장감 넘치게 쓴다 해도 쓸 때, 그는 창 안쪽의 책상으로 돌아와 앉아야 한다. '저만치'의 거리가 없다면

사물을 볼 수도, 기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평생 '저만치'의 그 거리와 싸워온 느낌이다. 세상과, 혹은 당신과, 더 가까워 한 몸이 되고 싶을 때는

'저만치' 떨어져 있어 고통받았고, 더 멀어져 남이 되고 싶을 때 역시 '저만치' 가까이 있어 고통받았다.  (257-258쪽)

 

 

 

 

앞으로 그의 소설이 나오면 읽어보게 될 것 같다. 내일 힐링캠프에도 출연한다.^^

본문 뒤에 수록된 2011년 6월 발표한 소감문(장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출판기념회)은 '논산일기'를 압축한 듯

그의 '산다는 것'과 '글을 쓰며 산다는 것'에 대해, 앞으로의 행보와 결심과 야망에 대해 정리하여 드러내준다.

"고백하거니와, 나의 마지막 꿈은 문학에서가 아니라, 인생, 그것 자체에서 승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실존의 어두운

혼돈을 이기고, 유한한 시간의 감옥을 벗어나서 내 영혼이 마침내 참된 자유에 도달, 그야말로 훨훨,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나의 은밀하고도 최종적인 지향입니다.(322쪽)"라고.

그는 정말 욕심 많은,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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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6-1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그런데 시간이 읎어요,,ㅠㅠ
그리고 이번에 남편이 집 싹 정리하면서 책 사면 어쩌구 저쩌구 라는 엄포를 놔서,,,ㅠㅠㅠ
저 내일 유방검사가요,,,갑자기 무서워요,,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2-06-18 22:13   좋아요 0 | URL
검사 잘 받고 꼭 결과 알려줘요. 너무 겁 먹지 말구요.ㅠㅠ
책보다 건강이 우선 ^^

근데 박범신, 인용을 줄이자라고 본인 스스로 결심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의 작품 몇 개를 읽어본 제 느낌은, 인용이 꽤 많은 편이란 거에요.
훌륭한 작가의 훌륭한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인용하는 것, 나쁘다곤 볼 수 없지만
거기서 나아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은교'같은 경우는 아예 좋은 시들을 대놓고 따왔구요.
물론 등장인물 이적요 시인의 시노트라는 구실이 되지만요.

moonnight 2012-06-18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교도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주제에 이 책도 보관함에 넣습니다. 프레이야님 리뷰를 읽자니 너무 읽어보고 싶어지는걸요. >.<

프레이야 2012-06-18 19:57   좋아요 0 | URL
열정이 식지 않는 어느 육십 대 작가에 대해, 생을 나보다는 더 산 인생선배의 이야기로서도
들어볼만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삶을 사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은교'는 어여 읽어보세요. 맘에 드실 건데요.^^

반딧불,, 2012-06-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교를 시작 못했습니다. 영화를 한번 더 볼 요량이었는데 아마 요원할 듯 해서 책을 읽어야 겠네요.
최근에 반하게 된 작가죠. 그전엔 그리 대단하단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뭘 모르는 독자였는지도^^

프레이야 2012-06-18 22:1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예전에 별 관심 없었던 작가인데 은교 이후 달라졌어요. 제가요.
에세이도 좋습니다.^^

프레이야 2012-06-1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밤 힐링캠프에서 박범신, 매력있었어요.
논산의 그 집으로 3명이 갔더군요. 글방 창문 밖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풍경이 호젓했어요.
이 책 '논산일기'에서 이야기한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나왔고요. 유쾌하고 의미있게 좋은시간이었어요.

blanca 2012-06-19 09:1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도 어제 보고 무한감동 받았어요. 그 어린 시절 담벼락 얘기하는데 눈물이 줄줄 나더라고요.

프레이야 2012-06-19 10:2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눈물을 찍어내며 고백하던 작가의 모습이 참 순수해 보였어요.
목숨을 끊으려 4번이나 시도했던 이야기, 히말라야 이야기, 독서지도의 필요성까지
오욕칠정의 긍정적 발산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요. 위트도 있고 재미나게 봤어요.
요새 힐링캠프 계속 좋아요.ㅎㅎ 법륜, 정대세에 이어 ㅎㅎ 담주는 안 볼까 해요.
그 여자탤런트분은 그닥 관심가지 않아서요.ㅋ

2012-06-2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재밌게 읽지는 않았지만, 힐링캠프는 보고 싶네요. ^^;

프레이야 2012-06-20 23:57   좋아요 0 | URL
히히~ 힐링캠프 좋았어요.
논산 서재 창 밖으로 보이는 계룡산 국자봉까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