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Petra Magoni와 Ferruccio Spinetti의 'MUSICA NUDA'를 들었다.
5번째 곡 "I wil survive."
이 노래를 듣는데 왜 뜬금없이 안나 카레니나의 "나를 죽일 거야"가 떠올랐을까.
비비안 리의 <안나 카레니나>
디비디로 봤는데 상품이 뜨질 않는다.
제정 러시아 시대, 권력과 위선의 시대에 심장이 하는 말에 따라 살기 위해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 안나 카레니나.
"위선은 들키지 않는 것이 황금률이지."
어느 권력자의 자조적이며 냉소적인 말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열정과 모성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온전한 사랑을 얻지 못하는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워 스스로 자멸하는 안나의 말 "나를 죽일 거야",
강렬하다. 진심으로 살아가기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 죽음으로 자신을 구한 안나는 사라지고 무엇이 남았을까.
흑백필름 속 비비안 리는 예전에 보았던 소피 마르소의 안나보다 훨씬 비운의 그림자가 짙고 애련함을 불러온다.
"영혼의 불꽃이 드디어 그녀 인생의 어느 한 편을 비추고, 그 불꽃은 한동안 명멸하다가 영원히 암흑으로 사라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막에 흐르던 문장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도 영화 서두에 나왔다.
번역이 조금씩 다르지만 내가 마음으로 기억하는 문장은 이런 것.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키이라 나이틀리 2012
많은 안나 카레니나가 있었는데 키이라 나이들리는 어떤 안나 카레니나로 다가올지...벌써부터 기대된다.
문학동네 표지가 예쁘다. 반양장 3권까지 나와있다.
문학동네 첫 문장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를 보며 세브린느가 떠오른 것은 무슨 연관성의 작용인지...
유월도 어느새 3주째를 맞은 오늘, 벌써 장마를 예고하는 빗방울 후둑거리더니 고즈넉한 초여름밤, 와인에 젖는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감독 브뉘엘의 <세브린느 Bell de Jour>(1967). 아름다운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
영화 내내 배경음악도 없고 차갑고 메마른 느낌인데,
초반부터 강렬한 영상에 영화는 상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어릴 적 성적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되지 않고 성적 판타지도 갖고 있는
우아하고 지적인 세브린느가 기이한 성적 체험을 통해 판타지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진정한 사랑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Belle de Jour, '한낮의 미녀'는 원제이기도 하고 영화 속 세브린느가 갖게 되는
애칭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남기 위해선 피할 수만은 없는 어떠한 강을 맨몸으로 건너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강이 아름답지 않다고 물살이 너무 거칠다고 때로는 너무 지루하다고 불평한들 소용없을 터,
그저 몸을 담그지 않고는 그 강을 건너갈 수 없는 것인지도. 남는 건, 강 이쪽과 저쪽의 문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