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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김연수의 책을 그러고보니 네 권인가 가지고 있다. 모두 초반에서 읽다가 접은 상태로 제법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나도 변하고 너도 변하고 적지 않은 것들이 흩어지고 또 다져졌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공교롭게도 당시 책을 펴들었을 때 내 심경이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었거나 마음결이 문장과 같이 흐르지 못했던, 지금은 어렴풋한 기억들만 있다. 작가에게는 다소 불성실한 독자가 된 셈인데,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로 다시, 미뤄두었던 그의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이 좋았다는 말이다. 그건 사십대 중반인 내게, 글 쓰는 일에 어정쩡하게 몸을 담고 딜레마에 빠져 있는 내게, 혁신을 바라는 내게,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았고 세상에 이해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내게 이 책이 와닿았다는 필연의 결과다. 최근작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ebs fm 책읽어주는라디오,에서 낭독으로 몇 번 들었고 그게 그에 대한 애정복귀(혹은 복구)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김연수 작가는 소설의 제목을 참 특이하게 짓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목차의 제목들이 모두 그렇다. (나는 책을 처음 만나면 목차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제목은 첫인상이고 글의 얼굴이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닌데, 그의 제목짓기 방식에서 슬쩍 힌트 얻어볼 생각도 들었다.

 

1970년 생 경북 김천 출생, 서울 삼청동 자취 유학생을 거쳐 지금은 일산호수 근처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 중 한 사람이 쓴 에세이<지지 않는다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글쓰는 일을 주업으로 삼고 사는 한 남자의 성장과 성찰의 기록이자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다. 유년에서 청년, 중년이 되기까지 감각하고 체험하고 경험한 어떤 것 혹은 모든 것들에 대한 진솔한 기억이자 소망과 응원의 글이다. 특별한 점은 달리기를 인생의 노선과 동일하게 두고 달리기를 하며 느끼고 체득하게 된 몸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물론 백 미터를 9초 몇 분에 달리는 우사인 볼트 스타일의 달리기가 아니다.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달리기는 결승점까지 도달하는 데 의의가 있는 인내와 근력의 달리기이고, '결승점에 이르면 나를 환호해주는 사람들이 두루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달리기다. 어느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건 당연하다. 하루키 자신도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26p)"고 고백했다. 아래 문장은 무의미하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비교의 한 예다.

 

 

작가의 삶과 달리기가 유사하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논리와 흐름에 제 생각을 맞춰야만 하는 고된 소통'이라는 부분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보폭을 맞춰가면서, 또 그 사람의 이런저런 사정을 봐 가면서 함께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달리기 역시 자유를 선호하는 운동일 수밖에 없다 (지지 않는다는 말, 254p)

 

 

하루키가 이미 달리기와 삶과 글쓰기를 동일선상에 두고 그 행위를 관통하며 에세이를 썼지만 김연수의 이 책은 좀 다른 맛이든다. 이전의 문장보다 힘을 뺀 것도 같고 좀더 생각이 유연해진 것도 같고, 한 마디로 우주적 인간으로 넓어진 것 같은 성숙한 글이 읽는 이로 하여금 품 넓은 하늘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견일 뿐이지만, 궁핍한 시절(누구나 유년은 궁핍한 것으로 기억되지 않을까)의 기억이거나 팍팍한 현재의 삶이거나 암담한 미래의 길이거나, 그의 문장을 읽다보면 그 모든 걸 변화무쌍한 바람의 손길로 위로받고 힘을 얻는 느낌이다.

 

과거를 불러오는 일이 잦아지는 건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풍요로움이 어디에 기원했던가를 무의식에서 불러오는 심리적 작용이다. 고백성 강한 에세이를 쓰는 일이 흔히 과거 회상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가족에 대한 기억, 친구들과의 기억, 집 안팎에서의 기억, 학교에서 혹은 학교 밖에서의 기억, 사회인이 되어 만난 사람들과의 좀더 냉정하거나 업무적인 기억조차  '몸'으로서의 '나'를 키워가는 소중한 기억들이다.

 

나는 달리기에는 젬병이다. 마음은 우사인 볼트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나는 출발선에서부터 이를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덜덜 떨고 서 있곤 했다. 학교 운동회 때면 꾀병이라도 부리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다. 다음 조가 따라와 나와 섞여 뛰어도 나는 3등을 못했다. 그래도 끝까지 달려 들어오곤 했지만 웃음거리밖에... 그래도 대입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은 건 피까진 아니어도 땀나는 노력의 결과다. 상대적으로 오래달리기가 좀 나았지만 그나마도 지구력이 부족한 나는 지금도 달리기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하지만 몸의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안다. 그것은 감각의 돋을새김이므로. 초등학교 6학년, 달리기 대신 선택한 자전거가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 자전거는 지금도 잘 탄다. 내 달리기에 대한 변명은 이만 접고. 김연수 작가는 삶과 글쓰기와 달리기를 등호로 놓고 보면, 글을 쓰는 자는 그 과정에서 몸이 느끼는 고통과 그 한계의 벽을 넘었을 때의 환희 모두를 벗으로 삼고 동행해야 하는 달리는 자의 숙명을 몸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달리기 대신 자전거로 좀 바꿔줄 수 없을까.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얘기다. 경험한다는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내게도 달리기는 내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그걸 육체의 지리학이라고 부른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길의 생김새와 각도와 냄새를 경험한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들의 지저귐과 사람들의 안색과 바람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말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272p)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내가 특히 매료된 건, '나 아닌 존재로' 변화무쌍하고 자유자재로 모순인 채로 살라고 권하는 말이다. 작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독자에게 하는 말인데, 에세이 전편에 일관되게 흐르는 말을  '바람과 구름의 정신'으로 명명하고 싶다. 가슴 뛰게, 나중에 얼마든지 할 일은 지금 하며, 변덕스럽게 살자는 말이다. 나는 언젠가도 말했지만 한결같이 웃음 짓고 있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한결같은 그 얼굴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파도가 치고 있을까. 나는 그늘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믿지 않는다. 사는 일이 그리 햇볕 짱짱하기만 할 리 없는데 웃고만 있는 네가 나는 믿기지 않는 것이다. 마음바닥까지 맑고 밝아서 지순한 행복으로 가득찬 얼굴의 웃음은 별개의 얘기이고. 정말 종교적으로 헌신적인 어느 분의 그런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마라톤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변덕과 변심이 다 들어 있다. 천국이었다가 지옥이었다가, 확신에 찼다가 회의했다가, 심지어는 몸이 자기 몸이었다가 남의 몸이었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다. 삶을 살아갈 때는 때로 행복이 그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일 뿐일 때도 있지만, 마라톤을 할 때의 행복은 말 그대로 티 하나 없는 지복의 상태다.......

한없이 미워해 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도 한결같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경우는 필경 둘 중의 하나다. 사랑하지 않거나 죽었거나. (276- 2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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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8-21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뛰러 가요, 비록 러닝머신이긴 하지만요 ^^
이 페이퍼는 있다가 와서 한번 더 읽어야겠어요. 이런 페이퍼는 저의 얄팍한 페이퍼 몇 개의 무게가 느껴지고, 프레이야님의 '생각'이 전해지니 참 좋군요.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려면, 어디에 매인데가 없어야하고 그러려면 욕심과 집착은 좀 내려놓아야겠지요.
오늘은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프레이야 2012-08-21 09:19   좋아요 0 | URL
나인님, 러닝머신이라도 하시니 부지런하시네요.ㅎㅎ
전 그림의 떡이랍니다. 아니 빨래널이 ㅋㅋ
제겐 김연수를 다시 읽고 싶게 만든 좋은 에세이에요.^^

blanca 2012-08-2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이 책 정말 좋았죠!! 저는 막 달리기를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이 글 읽으니 또 그런 생각이^^;; 과거가 현재에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정말 놀라운 통찰을 보여 준 작가 같아요. 공감 가는 글이라 더욱 반갑네요

프레이야 2012-08-21 15:0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페이퍼를 감동으로 읽으며 댓글 달았던 기억이 ^^
우리의 현재를 풍요롭게 하는 과거에 고마워해야겠어요. 힘들고 아팠어도요.
아까 차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시를 들었어요. 천양희 시인의 시인데,
과거는 가버리는 게 아니라 늘 내게 다가오는 것, 뭐 그런 싯구였는데 정확하진 않구요.ㅎㅎ

라로 2012-08-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으로 그럼 김연수를 만나 볼까봐요~~~.
저는 사실 청춘의 문장도 읽다 말았거든요. 남들 다 좋다는 것을,,ㅋㅎㅎㅎ

프레이야 2012-08-21 15:08   좋아요 0 | URL
청춘의 문장,은 저도 안 읽어봤어요.
남들 다 좋다는 책이 누구에게나 다 좋은 건 아니고 그때그때 다르기도 하구요.
인연이 닿아야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전 볼일 보고 좀전 왔어요. 한낮의 태양이 대단해요!! 여름이니까ㅎㅎ

페크pek0501 2012-08-2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얘기다. 경험한다는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저는 이 말을 자전거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어요. 10년 넘게, 아주 오랜 만에 자전거를 탄 적이 있는데,
타는 방법을 잊어서 잘 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몸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고 있더라고요.
저절로 잘 타지더라고요. 그때 정말 신기했어요. 제 머리와 상관없이 몸이 자전거를 타더라니까요.

프레이야 님, 이 리뷰, 참 좋은데요... 맛있어요. ㅋ

프레이야 2012-08-21 15:11   좋아요 0 | URL
저도요 페크님, 히히~~ 맛나게 드셨다니..
저는 두발 자전거를 12살에 배웠는데요, 자전거는 한 번 배우면 안 잊는다잖아요.
몸으로 익히는 건 대개 다 그런 것 같아요. 몸은 정신보다 위에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 이라는 표어의 교훈은 건강하게 몸과 정신을 닦아라는 말이라기보다
몸에 정신을 맡겨라 혹은 몸에 함부로 대들지 마라, 뭐 그런걸까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2-08-2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청춘의 문장] 던진 기억이.. 학교 때 도서관에서도 김연수를 읽다 던지고 읽다 던지고.. 더 커서 책을 샀을 때도 읽다 던지고..읽다 던지고.. 이후에 뭐 한 권 더 샀었는데 그것마저도..

저는 김연수를 홈피에서만 좋아했어요 :)
그래도 이 책 눈이 좀 번쩍한데 또 속을까요?^^

프레이야 2012-08-21 19:27   좋아요 0 | URL
읽다던지고ᆢㅎㅎ 저랑 비슷한 분 이제야 만났어요. 근데 아이님 이번엔 질끈 속아보셔도 크게 속진 않을 거 같아요,라고 말하고싶어요^^

2012-08-2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도로 찾으셨네요? ^^

프레이야 2012-08-22 13:52   좋아요 0 | URL
우와! 살아돌아왔어요. 섬님ㅎㅎ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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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정록은 서랍을 갖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소설가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머릿속에 많은 서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잘한 에피소드, 사소한 지식, 작은 기억, 개인적인 세계관(같은 것)... 등등. 그런 걸 에세이에서 다 써 버리면 소설 쓸 때 궁핍해지니 서랍 속에 아껴 두는데, 소설을 다 쓰고 나도 쓰지 않은 서랍이 몇 개씩 나온다고. 그중 몇 개는 에세이 재료로 쓸 만하다 싶은 게 생기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본업이 소설가인 하루키는 '맥주 회사에서 만드는 우롱차' 같은 에세이를,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이 에세이를 썼다(지만), '어깨 힘 빼고 편안하게 읽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이 책은 정말 어깨 힘 빼고 다리 뻗고 누워 히죽거리며 읽어야 제격이다. 휴가지에 이 책을 가져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분 좋을 정도로 가볍고 예쁜 '책'이다. 손에 쏘옥 쥐어지는 깨끗한 책의 외모도 흡족하다는 말. (근데 일본에서는 우롱차가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차인가? 우리나라에도 캔으로 나와있듯이)

 

'채소의 기분'은 이 책의 첫 이야기다. 용두사미식의 대화를 좋아한다는 하루키는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은 채소나 다름없다'라는 영화 대사에 매료되었지만 "채소도 채소 나름, 어떤 채소요? "라고 물으면 돌이켜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에 잠기게 될 때가 있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영화 '아멜리에'가 떠올랐다. 막돼먹은 채소 가게 주인의 최대 욕이 '채소같은 것!' 뭐 이런 대사였는데 주인에게 핍박받던 점원이 들고온 꽃양배추는 마치 하나의 '등장인물' 같았다. 갖가지 채소 중에 하필 꽃양배추라니. 대단한 걸! (꽃양배추님 이름 불러 죄송해요^^)  하루키의 결론은 "채소도 채소의 마음과 사정이 있으니 뭔가를 하나로 뭉뚱그려 우집는 건 좋지 않군요"라는 말이다. 첫 장의 채소 이야기는 나중에 나오는 굉장히 초현실적인 일본식 커다란 순무 이야기에서 다시 채소를 들먹이며 배꼽 잡게 하는데, '순무에게도 인격이 있다(179p)'고 농담하는 바람에 그만 또 우스워 킬킬댔다.

 

이 책은 첫 장의 채소 이야기부터 <먼 북소리>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와는 조금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가볍게 후후~ 하면서도 얕지만은 않은 생각의 타래에 고수의 글맛을 느낄 수 있다.  이야기에서 작은 교훈이나마 얻기를 원하는 독자는 그런대로, 그냥 킥킥 웃으며 소소한 이야기에서 일상의 여유와 농담을 즐기길 원하는 독자는 또 그런대로 괜찮은 책이다.

 

음식, 옷입기, 음악, 취침, 운동(달리기), 사람(여자, 남자), 대인관계의 기술 등 하루키의 취향이 두루 드러나는 데, 특히 본업인 소설 쓰기나 번역의 일보다 더 고민하게 된다는 에세이 쓰기에는 그만의 세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 내리긴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34p)

 

이런 법칙에 위배되지 않으려니 화제가 제한되고 '쓸데없는 이야기'나 쓰게 되어 피판 받을 때도 있지만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너무 화내지 말고 적당히 넘겨주시길. 무라카미도 무라카미 나름대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35p)"라고 번죽 좋게 능청을 부리는 저자의 말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긴 책으로 내기에 좀 시시하지 않나,라고 살짝 의심 들 때마다 이 문장이 생각나게 마련. 역시 에세이는 '어려운 글'이다. 글의 경중을 저울질 해가는 일도, 내용의 솔직함과 가감의 조절도. 나도 경험자이고 주위에서도 듣는 이야기지만 에세이는 개인적인 고백성이 강한 글이다 보니 자신과 독자 사이 가슴과 머리의 간격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 고백성의 정도도 그렇거니와 글쓴이 자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니 위선이나 가장, 미화 같은 심리적인 작업을 하기가 더 용이하다. 그걸 경계해야 된다. 에세이는 어떤 방식이든 어떤 내용이든 글쓴이 자신의 생각이 맑고 자신에게 솔직한 명분이 서시 않는다면 호감을 끌어내기에 힘든 글쓰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소설가든 시인이든 에세이를 쓰지 않고는 글쓰는 사람의 궁극에 가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런 점에서도 그래서 더 솔깃하다.

 

번역에 대한 생각도 들어볼 만하다. 오역보다 나쁜 것은 '읽기 힘든 나쁜 문장으로 나열된 번역과 맛이 결여된 지루한 번역'이라고. 그렇다고 오역을 봐주기엔 난감하다고.  비단 번역글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읽기 힘든 나쁜 문장의 나열과 맛이 결여된 지루한 글은 글쎄다. 나도 갈고 닦아야할 사항이다. 번역서를 읽다가 가끔 난감한 게, 지시대명사가 난삽하게 쓰였을 때다. 최근 무척 흥미로운 책 <케빈에 대하여>를 읽다가도 이게 어떤 걸 지시하는 거지,라며 다시 앞뒤를 읽어보게 되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 지시 대명사 경우가 아니어도 좀 풀어서 앞 뒤 맥락에 맞게 번역해 주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되씹어 읽어보며 머물러있을 때가 있다. 소설 같은 경우, 죽죽 이야기를 따라 나가고 싶은데 덜커덕 걸리는 것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표지와 삽화도 생뚱맞은 매력을 발산하는데 알고 보니 일본 동판화가의 동판화다. 글과 잘 어울린다.

 

각 이야기 아래 사족 한 마디가 달려있는데 그것도 뜬금없다. 이런 게 바로 하루키식(?!!) 꺾기도 같은 것. 유쾌하고 발랄하게, 여름날을 사는 우리에게 한 줄기 살랑바람 같은 글!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에서 한 입 베어문 보석바 같은 글!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정전이 되면 마주 앉은 여성의 손에 가만히 손을 포개는 게 '세상에서 가장 타당하고 자연스럽고 예의바른 행동의 하나'라고 믿는 엉큼한 하루키. 그러나 생각만 하다 불이 번쩍 켜지고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버리는 소심한 하루키. 무라카미는 무라카미대로 채소는 채소 나름대로 우리는 각자 우리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러니 잘 못 산다고 총은 쏘지 맙시다,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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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8-2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힝,,,부러워요. 김연수 책도 그렇고 하루키의 이 책도 그렇고 다 평간단이라 받았다는 거죠!!!
저 옛날에 평가단 할 때는 이렇게 좋은 책 안 걸리더만,,,
암튼 이 책을 새책으로 사 중고로 사,,,이러면서 어제부터 망설이고 있어요.
그런데 "유쾌하고 발랄하게, 여름날을 사는 우리에게 한 줄기 살랑바람같은 글! 바짝바짝 마르는 입안에서 한 입 베어문 보석바 같은 글!" 바로 저에게 필요한 글이에요!!!갑자기 마음이 조급해 지고 있는 나비아줌마,,ㅋㅎㅎㅎㅎ

프레이야 2012-08-21 15:4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고 그게 또 누군가에겐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 권쯤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책 자체가 이~~뻐~~요.ㅎㅎ
당장 생일선물로 새 것으로 보내드릴 테니 꼼짝마욧!!ㅋㅋ

비로그인 2012-08-2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던 머그컵 증정이 오늘 주문할려고보니 글쎄 재고소진이래요 맘상할까말까 하고있는데 ㅎㅎ글 잘보고갑니다^^

프레이야 2012-08-21 15:15   좋아요 0 | URL
앗, 머그컵이 있었어요? 그럼 기다렸다가 구매할까나요...
재고소진이면 이제 다신 안 하나요? 그렇겠군요. 다시 안 하겠어요.ㅎㅎ
고맙습니다. 머그컵에 맘 상하진 마시구요.^^

댈러웨이 2012-08-2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리뷰 제목 보고 한참 웃었어요. 채소도 채소 나름,이 아니라 채소는 채소 나름으로,구나... --
전 왜 이제 하루키 책을 주문하지 않게 된 걸까요, 프레이야님? 그 빨간 책이랑(제목 기억 안남요. 미치겠다.), 달리기 책이랑도 함께 사고 싶었는데 최종 클릭에서 자꾸 빠지네요.

프레이야 2012-08-22 07:43   좋아요 0 | URL
리뷰제목은 채소도로 썼어요.ㅎㅎ
댈러웨이님 말씀하신 책은 하루키 잡문집 같은데 저도 그건 안 읽었구요. 최종클릭에서 자꾸 빠지는책, 있지요. 저도 그런게 많아요. 한정된 시간에 모든 걸 다 읽을 순 없죠. 전 댈러웨이님의 문학도서읽기 페이퍼가 참 좋아요. 럭셔리해요.^^♥
 

대개 그랬지만 어쩌다보니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동시다발이다.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감정들과 비슷한 상황인데,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겠다.

 

 

두꺼운 분량, 1/5 정도 읽어나가다 보니, '케빈'은 '미국'과 동일 선상에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압축해 보여주자니 영화에서는 적당히 생략한 부분과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에바와 프랭클린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 걸 고심하는 장면에서 가장 미국적인 이름 '케빈'을 프랭클린이 주장한다. 사랑하지만 이질적인 두 사람이 케빈을 두고 양극성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둘은 미국을 두고도 그렇다. 프랭클린은 에바에게 반미주의자라고 쏘아붙인다. 

 

소설 <케빈에 대하여>는 강요된 모성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가 본 '미국에 대하여'로 읽힌다. 미국에 대한 냉소와 성찰일 확률이 높다. 케빈이 소시오패스로 태어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 구체적인 날짜와 상황을 한 페이지 분량으로 열거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이고, 욕망과 자의식이 무척이나 강한,  살이 찌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중성적 얼굴이 개성있는 자유모험가 에바의 편지로. 케빈 캇차두리안은 왜? 미국은 왜? 캇차두리안은 에바의 姓이다.

 

 

 

 

 

'여행할 권리'와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이후 김연수의 산문에 좀 낙담하여 심드렁했었는데

서평단 도서로 읽고 있다. 절반 쯤 읽었다. 한 마디로, 좋다!!  다시 애정이 가는 작가.

 책을 읽을 당시의 상황과 마음상태에 좌우되는 일이 흔하니 아마도 그런 탓이겠거니.

 

요령은 간단하다. 그냥 믿어버리는 거다. 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 남는 건 그걸 얼마나 더 세게 표현하느냐의

문제뿐이다. ...... 어쩌면 우리는 이 삶에 '칭커'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말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다.

요령은 간단하다. 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 (93p)

 

 

 

 

 

 

 

통나무집 복층에서 다리 뻗어 올리고 읽은 책.  

휴가지에서 읽으면 딱 좋을 정도의 가벼움과 여유와 농담이 적절한 하루키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새하얀 바탕색 표지가 마음에 든다.

 

사람을 신뢰하면서 신용하지 못하는 인생이란 것 역시 때로는 고독한 것이다.

그런 미묘한 틈, 괴리 같은 것이 통증을 초래하여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하는 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 이런 건 그냥 미트 굿바이잖아'라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55p)

 

미트 굿바이... 무리 모두에게 필요한 뭔가 살아갈 의지가 될 만한 밝고 긍정적인 신화!

 

 

 

 

 

 

조금 남겨둔 상태에서 서평단 도서와 다른 일들로 잠시 쉬고 있는 중.

사뒀던 책인데 영화 '미드나잇 파리'를 보고 당장 읽고 싶었다.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1920년대 초중반에 파리에 머물며 습작했던 시기의 기록이다.

흥미로운 건 거투르드 스타인과 핏츠 제럴드를 비롯해 문인들과의 소소하거나 솔직한

이야기, 뒷담화, 글쓰기에 대한 헤밍웨이 자신의 신조와 태도, 방식 같은 것.

책 뒷쪽에는 '사진으로 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흑백사진을 많이 실어뒀다.

상당한 식욕과 삶의 에너지를 지닌 작가 헤밍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내겐 너무 좋은 책.

 

그때 내가 쓴 작품은 <계절에 뒤늦은>이라는 아주 간단한 단편이었는데, 나는 그 작품을 쓰면서

노인이 스스로 목을 매는 결말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이론에 따른

결정이었다. 생략한 부분이 글의 내용을 더욱 강화하고, 그것을 계기로 독자가 단순한 이해 이상

의 뭔가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떤 부분이든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86p)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쑤퉁의 소설집.

점자도서관에서 낭독녹음 중이다. 절반 155쪽까지 완료.

쑤퉁 문학의 백미로 불리는 <처첩성군> <이혼 지침서> <등불 세 개>가 실려있다.

'처첩성군'은 장이모우 감독 공리 주연의 '홍등'으로 유명하다.

거침없는 표현, 생생한 묘사 등 이야기가 상당히 재미있다.

 

쑹렌은 단박에 흥미가 식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란 얼마나 무료한 것인가. 그건 역시 너가 나를, 내가 너를 속이는 게 아닌가.

사람이 입을 열면 바로 가식적으로 변한다.

(처첩성군, 44p)

 

 

 

 

 

 

 

1차 편집 중. 175쪽까지 완료. 편집하며 한 번 더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역시 원작이 더 좋더라는 결론.

 

소비자신용은 일본경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 그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해마다 몇 만명씩 되는

사람기둥을 세우는 어리석은 짓, 자살, 가족동반자살, 야반도주, 범죄로 까지 다른 사람을 끌어

들여 비극을 초래하는 사태로 내몰리는 다중채무자라는 인간 기둥을 세우는 짓은 그만둬야한다는 미조구치 변호사의 변. 그러기 위해선 비정상적인 고금리를 단속하자는 것.

"이것은 이 자제한법과 개정출자법 틈에 끼어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일이 탓할 수는 없다'는, 이른바 그레이 존에 속하는 금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채무자 개개인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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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8-17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1.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서 왜 실망 하셨어요? 어우 저는 그 책도 완전 좋았거든요. ㅠ.ㅠ
2. <케빈에 대하여>는 세 권을 두 권 값에 살 수 있는 할인기간에 사서 두고는,,, 쟤도 먼지만 먹고 있어요. 읽어야 하나,,, 고민,,, 언젠가는 읽겠지하면서 반 체념,,,요.
3. 저는 헤밍웨이를 자꾸 다르게 보게 되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성석제 작가의 리뷰 한 꼭지나 제프리 메이어스가 쓴 전기에서 상당부분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구요, <미드나잇 인 파리스>에서도 젤다가 엄청 싫어하쟎아요. <앨라배마 송>에서도 헤밍웨이 나오는데요, 물론 소설인데, 혐오감 장난 아니에요. ㅎㅎㅎ 읽어보셔야 해요.
4. <화차>는 영화를 보고 싶어요. 둘 다 막 가슴 설레게하는 선남선녀. ^^

통나무집은,,, 그냥 부럽,,,워요,,, ㅠ.ㅠ

프레이야 2012-08-17 20:20   좋아요 0 | URL
세계의끝은 당시 제 심경이 그랬지싶어요. 이번 에세이로 다시 펼쳐보려구요. ^^
케빈은 꼭 읽어보심 좋겠어요. 영화도 좋았어요.
헤밍웨이는 참 다채로운 인물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랍니다. 그의 작품과 영화까지 어서 다 만나고싶은데ᆢ 구매해둔 것부터 부지런을 떨어야겠어요.ㅎㅎ
젤다와 헤밍웨이는 서로 호악의 기가 통했겠지요.
그런 건 느낌으로 충분하잖아요.ㅋ
젤다의 소설 소개해주셔서 고마워요. 담아뒀어요.

라로 2012-08-1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동시 다발성 책 읽기를 하고 있어요, 아니 그렇게 한 지 꽤 됐나?? ㅎㅎㅎ
암튼 케빈이라는 이름은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인기 있는 남자아이 이름 1위였어요.
영화에서는 알 수 없었던 좀 더 섬세한,, 이해가 되는 내용이 많군요!!
사실 영화에서 남편인 프랭클린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였거든요.
암튼 언급하신 책 중 저도 마음에 둬놓은 책이 대부분이지만 전 과연 읽게 될지 의문이에요.
도서관에서 책을 잘 빌려 읽지 못하는 처지라 사서 봐야 하는데 또 살 생각을 하니 벌써 부담 백배!! ㅎㅎㅎㅎ

프레이야 2012-08-18 08:07   좋아요 0 | URL
나비님, 프랭클린에게 쓰는 편지로 소설이 이어지는데요, 그래서 에바가 갖고있었던 생각과 느낌이 아주 솔직하고 섬세하게 드러나요. 진실은 참 소중하면서도 두려운 것 같아요. 더 읽고 또 얘기할게요.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작품같아요. ^^ 세상에 읽어야할 책이 어찌나 많은지ᆢ 다 읽진 못해도 나비님은 이미 너무 많이 읽으시잖아요.

순오기 2012-08-1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책읽기를 제대로 못해서, 이러다 독서마라톤 완주도 힘들겠다 싶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마워요, 내가 읽은 건 이혼지침서 하나 뿐.
영화도 홍등과 화차만 봤고요.^^

프레이야 2012-08-19 10:46   좋아요 0 | URL
요즘 언니 여러모로 바쁘시죠.^^
정말 더위가 좀 가셔야 읽기도 좀 수월할 거 같아요~~~

자목련 2012-08-2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의 <세계 끝 여자친구>는 좋아하는 소설집인데^^

<케빈을 위하여>는 영화도 책도 모두 좋은가 봐요. 한데 저는 엄마라서, 읽기 두려워요..
쑤퉁의 소설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2-08-20 12:39   좋아요 0 | URL
세계의끝ᆢ당시 제 심경이 소설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거 같아요. 언젠가 다시 보려고 잘 갖고있답니다.^^ 자목련님, 케빈에대하여,는 두렵다고 하시는분들 적지않은데 그래도 하나를 고른다면 영화보다책을 더 권하고싶어요.♥

세실 2012-08-2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소의 기분, 바다 표범의 키스>는 제목부터 유머러스 합니다.
마음이 산만해서 깊게 생각할 수 없을때 읽으면 좋겠죠? ㅎㅎ

프레이야 2012-08-20 17:54   좋아요 0 | URL
네, 세실님, 표지그림도 우스꽝스럽고요.ㅎㅎ 한 쪽 눈썹이 ㅋㅋ
가볍게 터치하는 글, 정말 딱 그런 기분일 때 부담없이 실실거리며 웃을 수 있는 책이에요.

2012-08-2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파리는 날마다 축제, 라니 읽기도 전에 읽고 나서 파리를 가고 싶네요.ㅎㅎㅎ
이런 책이 집에 떡 하니 대기 중이라니 부럽네요~~~. 미드나잇 인 파리 보고 나서, 읽기 매우 적절해요! ^^

프레이야 2012-08-20 23:35   좋아요 0 | URL
원제는 '움직이는 축제'라니. 헤밍웨이는 어딜 가든 축제를 즐겼고 실제로도 스페인 축제를 가기위해
돈을 모으고 그랬더군요. ^^ 어서 지금 할 일 해놓고 이 책 마자 읽고 싶어요. 조금 남았거든요.
헤밍웨이는 참 아니 누구든 그렇겠지만 알다가도 모를, 다채로운 사람 같아요. 에너지도 굉장히
풍부하고요.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총 614페이지에 이르는 분량, 목차부터 살펴보니 모두 28장의 편지글.

2000년 11월 8일자 편지를 시작으로 2001년 4월 8일자 편지가 끝이다.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원작이 너무나 읽고 싶어졌다.

영화도 훌륭했지만 아니 그래서 더 원작이 읽고싶어지는 경우다.

방금 도착해 따끈따끈!!!  얼른 읽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내용은 주인공 에바가 남편 프랭클린에게 쓴 편지인데, 그 첫 문장은 이렇다.

 

오늘 오후에 일어났던 그 사소한 사건으로 어쩌다 당신한테 편지까지 쓰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저자 라이오넬 슈라이버(Lionel Shriver)는 남자이름이라 혼동되었는데 원래 이름은 마거릿 앤 슈라이버다.

스스로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15세 때 보다 중성적인 분위기의 라이오넬로 바꾸었다고 한다.

책날개에 실린 흑백 사진 얼굴이 무척 개성있고 고집스러워 보인다.

이 작품은 2005년 오렌지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세상에 나온 지 7년이나 되었다.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어머니의 독백'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논쟁의 중심에 섰던 작품이라고 적혀있다.

영화 속 케빈의 그 병증이 '소시오패스'였구나.  사이코패스하고는 다른 것 같은데 처음 들어본 용어다.

대충 쓰윽 읽어봐도 영화가 원작을 잘 표현해낸 것 같다는 인상인데, 좀 다른 건 영화에선 부부가 그런대로

잘 지내고 남편이 자상한 성품으로 나오지만, 책에서 에바는 서로 자주 싸웠던 기억만 있다고 쓰고 있다.

에바의 심리적 기억일 거라고 생각된다. 호수가 고요하다고 물밑까지 고요하다고는 볼 수 없을 터.

 

마지막 편지의 끝부분을 읽는다.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야. 1983년 4월 11일, 내게 아들이 태어났고 난 아무 느끼이 없었다는 거.

다시 말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그것으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큰 법이야.

그 아이가 내 가슴 위에서 몸부림쳤을 때, 내 젖이 싫다고 몸을 웅크렸을 때, 난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 애를

퇴짜 놓아버렸어. 그 애가 내 몸의 15분의 1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도. 그땐 그게 정당하게 느껴졌으니까." (612p)

 

지금 읽고 있는 '지지 않는다는 말'을 밀쳐두고? 아니 동시다발로 읽어야겠다. 할 일도 있는데 그거부터 끝내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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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14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랜만에 알라딘에 글 하나 쓰고 있고, 방청소도 해야하고, 화장실 청소도 해야하고, 방학숙제로 독후감도 세 편 써야하고, 그러기 위해 책을 서너권 읽어야 하고, 소설도 한 편 뚝딱 완성해야하는데... 시....시간이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프레이야님 오랜만이예요 ㅠㅠㅠㅠ 꺄 ㅠㅠ

프레이야 2012-08-16 11:01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지인짜 오랜만이에요ㅎㅎ소설도 한편 뚝딱이요? 말만 들어도 왠지 근사해요. 편한마음으로 뚝딱 써봐요! 얍! 요샌 시간이 빈둥대다 다가는 거 같아요 전. 더워서 그런지ㅋㅋ 더위탓만해ㅋ 오늘 여긴 지금 비와요 그곳은 어떤가요? 비 많이오나요?

마녀고양이 2012-08-1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시오패스>라는 단어에 굉장히 흥미가 가버렸어요.
그 어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서요. 자폐증 역시 부모와 교감이 안 되지만, 악하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의 화이트칼라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쉽거든요.
상대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그러면서 자신의 특징이나 상대의 특징을 인지적으로 잘 파악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게 특징이지요. 뇌의 공감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해서 그렇거나 초기 유아적 어머니와 문제 때문이라는데, 아직 결론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구요.... ㅠㅠ

너무너무 흥미가 가게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읽고나면 너무 슬플거 같아요.

프레이야 2012-08-15 16: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고 하던데 영화에서도 여동생을 신체적으로 심각하게 훼손해놓고도 전혀 죄책감 같은 걸 느끼질 않는 장면이 나와요. 부모가 그 대목에서 문제점을 발견해야되는데 아빠는 그냥 좋게만 보고 진실을 덮으려는 경향이 있고 엄마는 직접 당하는 입장에서 뭔가 대단히 무서운
일이라는 걸 느끼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이 책 달여우님이 읽어보면 더 좋을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12-08-1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저는 오늘 아침으로 <닥치고 정치>를 다 읽었답니다. 이렇게 한 박자 늦게, 아니 몇 박자 늦게 읽는 게
제 습관이에요. 많이 팔린 책은 이미 독자들로부터 검증된 책을 읽는 거니까, 좋은 점도 있어요.

"호수가 고요하다고 물밑까지 고요하다고는 볼 수 없을 터." - 표현 좋고요. ㅋㅋ
"그 애가 내 몸의 15분의 1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도. 그땐 그게 정당하게 느껴졌으니까." - 누구나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지 않나, 생각되어요. 치명적인 실수이다, 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인간이니까, 로 보게 돼요.
오늘 서울은 비가 와서 시원한 날이에요. ^^

프레이야 2012-08-15 16:41   좋아요 0 | URL
저도 대개는 몇박자씩 늦은 읽기를 하는 편이에요.
페크님 정말 우리는 우리가 정작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을 때는 시간이 제법 지나서일 때가 많아요. 사람이니까, 네, 그렇게 자신에게부터 너그러워져야겠어요. 여긴 오늘 비가 오락가락 완전 변덕을 죽끓이듯 하고있어요. 좀 눅눅해도 바람이 시원하네요. 요즘 진짜 눈이 무쟈게 아파요ㅠ 흑흑

블루데이지 2012-08-16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훌륭했지만 아니 그래서 더 원작이 읽고싶어지는 경우다.얼른 읽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라는 프레이야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더 짜릿짜릿해요!
이런영화가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 2012-08-16 08:29   좋아요 0 | URL
블루데이지님, 더운 날씨에 몸조리는 잘 하고 계신가요? 힘드실 것 같아요.
그래도 몸과 마음 건강하게 지내려고 하시는 모습이 참 좋더군요.
저 같으면 맨날 짜증내고 축 쳐져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 무지하게 두꺼운데, 영화에서 다 못 나온 이야기도 있고 좋으네요.
물론 그 많은 이야기를 영화에서도 잘 녹여낸 것 같아요.

다락방 2012-08-1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도 인용이 되어 있지만, 그녀가 아이가 생기는걸 원하지 않는 이유를 얘기하는 장면에서 저는 너무 공감을 해버렸어요. '내 스케쥴이 내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내가 먹고 싶은걸 먹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등에서 나 역시도 심하게 불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떤 부조리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런것들을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모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인걸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나에게도 그것은 생기지 않을 확률은 높지 않을까 까지. 아주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어요. 프레이야님, 인용하신 마지막 편지 전에, 그러니까 케빈이 한 짓들이 그것 말고도 다른것도 더 있다는 걸 알면서, 저는, 너무 힘들어져 버렸어요. 케빈의 엄마가 저렇게 편지를 쓰면서라도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졌어요. 프레이야님은 다 읽고 어떤 감상을 토해내실지 궁금해요.



덧) 보내주신 것,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프레이야 2012-08-16 11:0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마워요^^
이 책, 백여 쪽 넘어 읽었어요. 저도 너무 공감하며 읽고 있어요.
아르메니아인이었어요, 에바가요. 책에 묘사된 에바의 외모도 틸다 스윈튼이 적격이었구나,
했어요. 영화에선 다 말 되어지지 않거나 축약이나 은유된 부분들 책으로 읽으니 좋으네요.
아이들은 커가면서 부모를 끊임없이 용서하며 산다고 해요. 그런 말을 우연히 들었는데
공감되지 않나요? 케빈도 에바도 프랭클린도, 에바를 비난한 메리도 자신의 입장에선 어떤 이야기도
자신에게 할 수 있겠거니 싶어요. 에바의 길고 긴 사연이 궁금ㅎㅎ 다른 것도 해야되는데..ㅠ
 

 

[내꺼]

 

 

김선우

 

 

 

젊은 여자 개그맨이 TV에서 연애시절 받은 편지를 읽는다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니꺼가]

세 음절의 그 말을 힘주어 읽은 후 어깨를 편다 젊은 남자 가수가

노래를 한다 밥을 먹다가 나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멍해진다

'내꺼 중에 최고'가 노래 제목이다 내꺼 중에 최고......

 

보채는 당신에게 나는 끝내 이 말을 해주지 않는다

[누구꺼? 당신꺼 내꺼]

이 모든 소유격에 숨어 있는 마음의 그림자노동,

그게 싫어, 라고 말하려다 관둔다 내가 좀더 현명하다면

[당신꺼]라고 편안히 말해줄 수도 있을 텐데 여인을 업어

강 건네준 후 여인을 잊는 구도자의 자유자재처럼

모두에게 속하고 어디에도 영원히 속할 수 없는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는다

햇살을 곰곰 빗기면서 매일 다시 생각해도

당신이 어떻게 내 것인가 햇살이 공기가 대지가 어떻게,

내 것이 아닌 당신을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

 

 

 

 

 

 

 

 

 

 

 

 

 

 

 

 

 

 

-------------------------

 

햇살은 바람은 공기는

바다는 하늘은 대지는 공평하다.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인 그것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속한다.

 

'이 모든 소유격에 숨어 있는 마음의 그림자노동'

 

그래서 힘들었구나, 그래서 힘이 드는구나.

소유하려함으로써 나는 노동을 하는구나 중노동을 하는구나.

그것도 햇살의 반대편 그늘의 노동을.

다만 사 랑 하 면 될 일을.

다만 고 마 워 하면 될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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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8-11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격'이라는 문법 용어에도 우리는 민감해지지요.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거의 본능인가요.
어차피 갈때는 다 두고 갈것을 말이지요.
김선우 시인의 낭낭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12-08-11 10:12   좋아요 0 | URL
소유격은 목적격을 염두에 두는 것이니, 목적격 없이 주격만으로 사랑하는 삶은
어떤 걸까 생각해보게 되어요, 나인님.^^
김선우 시인은 산문도 참 낭낭한 것 같던데 나인님은 목소리를 직접 들으신 것 같으네요.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아직 기승이에요. 오늘 비가 온다더니 일기예보가 전혀 맞질 않네요.
모쪼록 즐기는 여름 되시길^^

L.SHIN 2012-08-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살을, 대지를, 공기를, 바다를, 이 지구를
내 것이 아닌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나도 이 세상 그 무엇도 소유하려고 하지 얂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은 이런 나를 잘 이해 못 하는군요(웃음)

약 15년 만이네요, 내 마음에 닿은 시가.

프레이야 2012-08-11 19:26   좋아요 0 | URL
이해는 원래 불가한 영역인긴봐요. 지구인은요ㅎㅎ
외계엘신님은 지구도 사랑하네요. 역쉬!
시가 15년만에 마음에 와닿으셨다니 너무 그리
오래진않은것 같아요^^ 무언가 진심으로 마음에 와닿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뭐. 히히~~

실비 2012-08-1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하려함으로써 나는 노동을 하는구나 중노동을 하는구나.'
이부분이 왠지 공감이 가는 이유는 몰까요. ㅎㅎㅎ
여러생각과 공감이 교차되는시네요 ^^

프레이야 2012-08-12 00:08   좋아요 0 | URL
실비님, 그 구절은 제 소감이에요.^^
사랑을 소유하지않고도 사랑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싶어요.

네꼬 2012-08-13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시고 어디가 감상인지 알 수 없는, 통째로 아름다운 페이퍼군요!

프레이야 2012-08-13 19:15   좋아요 0 | URL
네꼬님, 박성우 시인은 '시는 아침밥'이라고 말하던데요
제게 시는 뭘까, 하다가도 이런 시 한 구절에 그냥 와락 안길 때가 있어요.
품넓은 가슴 또는 기댈 수 있는 어깨 같은 것이랄까요. 히히~ 좋아요, 네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