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 이 말을 타고 모든 음악의 출생지로 가볼 수는 없을까

김 경 주


오늘 밤은 취한 말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잠든 말들을 깨워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술을 먹인다
구유를 당겨 물 안에 차가운 술을 부어준다
무시무시한 바람과 산맥이 있는 국경을 넘기 위해
나는 말의 잔등을 쓸어주며
시간의 체위(體位)를 바라본다
암환자들이 새벽에 병실을 빠져나와
수돗가에서 고개를 박은 채
엉덩이를 들고 물을 마시고 있듯

갈증은, 이미지 하나 육체로
무시무시하게 넘어오는 거다

말들이 거품을 뱉어내며 고원을 넘는다
눈 속에 빨간 김이 피어오른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취한 말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말들의 고삐를 놓치면
전속력으로 취해버릴 것을 알기에
나는 잠시 설원 위에 나의 말을 눕힌다
말들의 뱃살에 머리를 베고
(우리는 몇 가지 호흡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둥둥둥 북을 울리듯 고동치는 말의 염통!
말의 배 안에서 또 다른 개인들이 숨쉬는 소리
들려오는 것이다
밤하늘, 동굴의 내벽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연령
나를 조금씩 인용하고 있는 이 침묵은
바닥에 널브러진 말들의 독해처럼
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육체, 이미지인 것이다
나는 말의 등에서 몇 개의 짐들을 떼어내준다

말들이 다시 눈 덮인 고비 사막을 넘기 시작한다
그중엔 터벅터벅 내가 아는 말들도 있고
터벅터벅 내가 모르는 말들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 밤엔 취한 말들만 생각하기로 한다
음악 속으로 날아가는 태어날 때부터
바퀴가 없는 비행기랄지
본능으로 초행을 떠난 내감(內感) 같은 거, 말이
비틀거리고 쓰러져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분만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의식을 향해 말은 제 깊은 성기를 꺼낸다
기미(機微)란 얼마나 육체의 슬픈 메아리던가

그 사랑은 인간에게 갇힌 세계였다


 

-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중

 

----

 

 

의식을 향해 연정을 호소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얼마나 행복한가.

말과 의식의 사랑.

의식의 바닥자리에 한바탕 분만의 피를 뿜어내야 할

필요가 없는 말, 그런 욕구가 없는 말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그런 언어는, 그런 동물은 얼마나 순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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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은 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 아리스토파네스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타인들 속에서 찾는다.

                                      - 공자

현명한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

                                     - 유태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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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7-2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적으로부터 증오감을 키우고, 남들 탓 잘하고, 남들 욕도 물론 잘하고... 변명도 잘 하고... 그럽니다. 딱 저를 위한 말을 아리스부터 공씨, 유씨등도 잘도 남겨 주셨군요. 제 정체성을 밝혀 주시어 감사^^

프레이야 2008-07-23 01:0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래요.
하지만 안 그러려고 하죠. 저렇게 말은 누가 못하겠어요.
공씨, 유씨 아니더라도 말이죠.
요즘 많이 팍팍하죠. 우리네 마음이요. 님의 마음도요.ㅜㅜ

2008-07-23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3 0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결 2008-07-2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태경전' 한 구절, 마음을 후려칩니다.
결국은 입과 손발의, 삶과 사상의 통일일텐데요...

프레이야 2008-07-27 09:02   좋아요 0 | URL
머리와 가슴의 통일도 어려운걸요, 바람결님.
 
[식탁 위의 명상] 서평단 알림
식탁 위의 명상 - 내 안의 1%를 바꾼다
대안 지음 / 오래된미래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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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진부하게 들리는 이 문장은 중학교 교실 뒤 게시판에 걸려있었다. 99%의 노력이 중요할까 1%의 영감이 중요할까. 99도에서는 물이 끓지 못하고 나머지 1이 있어 100도에 이르러야 물이 끓을 수 있듯이, 1%의 소중함을 뒤집어 보이는 말이다. 에디슨의 천재적 자부심이 담긴, 이 오만하지만 결정적인 말이 좋다. 그것은 1%의 무엇이 없으면 우리가 지향하는 점에 이르기엔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식탁 위의 명상>의 부제는 ‘내안의 1%를 바꾼다’이다. 먹을거리의 양적 풍요가 빚은 재앙을 우리 앞에 두고 사는 요즘 대안스님은 먹을거리 앞에서 명상을 하라고 나직이 권한다. 하나의 음식이 내게 오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넓게 읽으라한다. 그것은 공감적인 명상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진정한 식도락가가 되라 한다. 혀의 지배자가 되어 “맛있다, 부드럽다”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릇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지각을 하라고 말한다. - 새로운 인류는 그릇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 요리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어떻게 운반되어 왔는가, 음식의 산지는 어떠한 상황인가, 이런 것을 당연한 것처럼 알고 있는 세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71쪽)

 주변에 아토피를 심하게 앓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저자는 60년대 먹을거리의 풍요가 가져온 결과라고 말한다. 특히 통칭하여 흰 설탕의 지나친 섭취를 드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음식섭취에 걸림돌이 되는 일례이다. ‘자연스러운 모든 것은 항상 만족을 준다(71쪽)’는 오쇼 라즈니쉬의 인용문처럼 우리의 혀를 유혹하는 모든 종류의 음식은 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혀가 원해서, 즉 마음이 미혹해진 결과로 본다. - 예전에는 탐욕과 굶주림과 늙음의 세 가지 병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가축들을 살해한 까닭에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이 생긴 것입니다.(60쪽)

 저자는 산야초 건강법을 통해 몸과 마음을 수행하여 우주의 섭리를 인생에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행공간을 운영하며 자기 수정을 원하는 이들에게 정신적인 안정과 회복의 기쁨을 주고 있다고 한다. (금수암 홈페이지 www.guemsuam.or.kr) 나는 사찰음식에 크게 관심이 있다거나 명상음식이란 이름에 낯설어하지 않을 정도로 수양된 사람이 아니다. 이 책은 결국 절밥의 느림과 여유의 철학을 말하지만 굳이 절밥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네 식탁 전반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소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 그런 미덕으로 읽힌다. 내 마음을 읽고 정갈히 할 수 있기를 돕는 글귀들이 가득하다.

 1부 ‘음식이 맛있는 명상’의 첫 장 ‘자연과 오행밥상’은 이런 독자를 위해 오행원리를 음식과 사람과 우주의 원리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오행의 기운이 고루 든 음식을 먹어야 몸도 생각도 성한 기운과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다섯가지 색깔이 든 소박한 우리네 밥상과 잔치국수 한 그릇에도 담겨있는 기운이다. 불교용어들이 많이 나와 좀 어렵게 들릴 수 있는 대목이 좀 있지만 새겨들어둘 구절들이 많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닿은 게 있다. ‘먹는 것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분별심만 기르게 된다. 좋은 건 너무 좋아하고 싫은 건 너무 싫어하는 습관에 익숙해진다. 오행을 갖추어 밥상을 차려야 평등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28쪽) 평등심! 분별심은 충분한 미덕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평등심을 앞질러 갈 때 초래되는 죄악은 적지 않다. 오행밥상이란 오행의 색깔을 다 함유하고 있는 식재료로 골고루 차린 건강한 밥상을 말하며 식감을 돋우기 위한 ‘컬러푸드’와는 구별된다. 즉 내몸의 기운을 평등하게 키우는 밥상이 오행밥상이다.

 2부에서는 구체적인 자연의 식재료와 소박한 음식을 소개하고 이들을 소울푸드라고 이름하며 집에서 만드는 법도 간단히 제시한다. 어려운 레시피의 요리는 아니지만 나같이 부엌에서 서성대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게으른 주부는 손이 많이 가야할 것만 같아 머뭇거려진다. 저자는 내 입으로 들어갈 음식은 제 손으로 만들어 먹어야 좋은 기운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식, 절식, 단식으로 마음의 살도 덜어내라고 한다. 또한 계절별로 좋은 자연의 음식재료를 상세히 소개하여 우리몸이 상생의 기운으로 조화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음식으로 낫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처럼 자연의 먹을거리는 모두 우리 몸과 기운을 같이 할 때 약이 된다. 많은 가축을 살해한 끝에 생긴 아흔여덟 가지나 되는 병을 끊는 길은 우리의 태도, 음식에 대한 총체적인 태도에 있다 하겠다. 1%의 느린 개혁이 나로부터 일어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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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식사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7-04 10:09 
    * 혜경님의 2008년 7월 3일자 <식탁위에 명상> 리뷰에서 발췌 '부엌에서 서성대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게으른 주부는 손이 많이 가야할 것만 같아 머뭇거려진다.'
 
 
순오기 2008-07-0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안녕?
이책 서평단 신청했다 미역국 먹었어요~ 아흐~ 님 리뷰 덕에 궁금증을 풀고 가요.]
그런데 3문단에 아토피를 60년대 먹을거리의 풍요로움이 가져온 결과라고 했는데...60년대 먹을거리의 풍요로움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돼요. 60년대가 아니고 80년대나 90년대가 아닌가요?

프레이야 2008-07-04 08:17   좋아요 0 | URL
그게요.. 질보다 양적인 풍요를 아이러니하게 말한 걸로 들렸어요.
우리세대가 그렇잖아요. 잘 먹었죠. 뭐든 몸에 좋다 나쁘다 가리지
않구요. 60년대면 저 어릴 적인데요, 70년대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웰빙이니 뭐니 몸에 좋은 것 따지게 된 건 그 이후지요.
그 세대가 자라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에게 병이 나타난 거죠.
전에 이 부분은 부산 번개에서 드팀전님도 잠시 꺼냈던 기억이 나요.
열정 넘치는 오기 언니, 잘 지내시죠? ^^ 늘 응원합니다.
일본 여행도 잘 다녀오세요. 후기 기대할게요^^

turnleft 2008-07-04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덥썩!! 오랜만의 혜경님 리뷰군요!!

아 정말, 요즘 같은 때는 가족들 먹거리 챙기시는 분들 고민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로 이렇게 고민을 해야 한다니, 시간이 지나도 세상살이는 별로 발전하는 것 같지 않단 말이죠..

영화 '월리'에 보면 기계에 모든 것을 의존한 인간의 비참한(?) 미래가 나오거든요. 단지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물'이 살아가는 패턴의 변화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콘크리트 벽 속에 갖혀서 온실 속 화초처럼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결국 인간은 병약해질 수 밖에 없겠죠. 먹는 것 포함,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야하나 고민이 많은 요즘이랍니다.(총각이 왜 이런 고민을.. -_-)

프레이야 2008-07-05 17:11   좋아요 0 | URL
턴님, 반가워요.^^
월리,는 못 봤어요. 먹을거리를 통해 우리 삶의 작은 부분까지
근본적으로 통찰하게 하는 요즘이네요. 총각이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하죠. 요즘같으면 애 안 낳고 싶단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 같을
지경이에요.

마립간 2008-07-0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 내용을 저의 서재에 옮깁니다.

프레이야 2008-07-05 17:11   좋아요 0 | URL
^^ 마립간님, 그 구절이 가장 와닿던가요.
ㅎㅎ 아무튼 감사합니다.

소나무집 2008-07-0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꼼꼼한 내용 설명...
저는 부처님 말씀이 많아서 1부에서는 책이 잘 안 읽히던 걸요.

프레이야 2008-07-05 17:12   좋아요 0 | URL
님의 리뷰도 잘 읽었어요. 1부에 부처님 말씀이 좀 많긴 하더군요.
실천의 문제인 것 같아요.^^
 

  7월 2일까지 서평

 

 




흔히 '절밥'이라 불리는 우리 사찰음식의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왜곡된 음식문화를 되돌아보며, 마음을 다해 음식을 살피고 만들고 먹는 일이 곧 삶을 올바로 이끄는 첫걸음임을 일깨워준다. '내 안의 1%를 바꾼다'라는 부제에서 말해주듯, 매일 해오던 일이기에 되돌아 살피지 않고 익숙한 대로 해온 먹는 일, 그 일상의 1%를 근본에서부터 점검해보고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음식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고 잘라말한다. 그리고 '소식, 절식, 단식'을 시도해볼 것을 권한다. 밥을 덜어냄과 동시에, 마음을 비우고 삶을 간결하게 가꾸려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2부에서는 전통적인 사찰음식뿐만 아니라 전통에 바탕을 두고 맛과 공정에 현대에 맞게 자연스러운 변화를 가미하여 모든 이들이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레시피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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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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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서평단도서는 먼댓글로 연결해야 되던데... 확인해보세요~ 난, 요거 신청했다가 미역국 먹었어요.ㅋㅋ

프레이야 2008-06-24 18:57   좋아요 0 | URL
네, 알고있어요. 아직 읽지도 않았네요.ㅜ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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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
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
대초원들과 깊은 숲들,
산들과 강들 너머까지.
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
그 한가운데라고.
- 메리 올리버, '기러기'-서문쪽

완전한 해방은 두려울 정도로 요염한 쾌감과 연결돼 있었다. 중년 남자의 말은 옳았다. 완전한 해방이란 사적인 쾌감과 관계된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56쪽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 바 있다. 권력이 훼손될 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양될 때, 폭력은 일어난다. 권력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정권 아래에서 폭력이 빈번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정권은 대리 감시자들에게 그 불안한 권력을 나눠주는 것으로권력 유지의 한 방편을 삼는다.-104쪽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 반석이란 네가 스스로 말살시킨 고유의 천성이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아내의 사랑에 대한 꿈이며, 네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인생에 대한 꿈이다. 너의 환상들을 약간의 진실과 바꾸어라. 너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을 짐을 꾸려 떠나보내라. 이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의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123쪽

칼 세이건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전제를 통해 이 우주가 이처럼 광활한 까닭은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인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세상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들 천지였다.-143쪽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150쪽

"밤이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결국 만지면 부서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지. 현실이 잔혹할 때, 희망이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장난감 같은 거야. 그래서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희망과 함께 자신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을."-167쪽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의 세계란? 패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일 뿐, 운명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니 꿈처럼 지나가는 비극의 삶에서 살아남겠다면 먼저 웃으라는, 쓸쓸한 목관과 유머러스한 현악의 전언.(중략) 모든 것은 폐허가 됐고 베를린에는 물도, 가스도, 전기도 없었다. 그런데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었다. 왜냐하면 삶이 본질적으로 역설이니까.-220쪽

"하루에 시십이해일천이백만 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 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중략) 그러니 네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써야만 하는 거야."-283-284쪽

문제는 그게 우연한 폭행이었다는 점이었어요. 폭력에 관한 한 제비뽑기를 하는 사회인 거죠. 단군의 자손으로 태어난 한민족으로서 태극기를 향해서 애국가를 목청껏 부르던 사람도 그 다음 순간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심지어는 사형까지 당해요. 놀라운 반전이죠. 그런 일을 당하면 한민족이니 대한민국이니 유신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런 걸 깨닫고 나면 단 하루도 버틸 수가 없어요. 구역질이 나죠. 필연을 가장하는 그 모든 언사를, 그 모든 상징을, 그 모든 행위를 부정할 수밖에 없어요. 우연의 사회. (중략) 그건 필연을 가장한 체제에서 자발적으로 우연한 존재가 되겠다는 뜻이기도 해요. -329-330쪽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슬프게, 그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384쪽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결점들', 한 여인의 변덕과 연약함에도 애착을 갖는다. 그녀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과 기미, 오래 입어 해진 옷과 삐딱한 걸음걸이 등이 모든 아름다움보다 더 지속적이고 가차없이 그를 묶어놓는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 그런가? 감각들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지 않다는, 다시 말해 창문과 구름, 나무가 우리 두뇌 속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고 감각하는 바로 그 장소에 깃들고 있는 것이라는 학설이 옳다면,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우린 우리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고통스럽게 긴장되고 구속되어 있다.-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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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1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2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6-22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셨지요?
위에 있는 눈사람을 보니 저는 비밀로 글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지금,비오네요.
조용해서 아침에 살짝 일어나 밖으로 나왔더니 남편이 출근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온세상이 잠든 시각에 깨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일어났는데 누군가 먼저 세상을 시작했다는것을 알았을 때처럼 조금 서운했어요.
공유하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것을 들킨것처럼요.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혼자예요.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깨어나고 저는 요란한 시간을 보내겠지요.

즐거운 휴일되세요.
그리고, 자주 만났으면 좋겠어요.

2008-06-25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4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5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