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엄마가 된 건 스물여덟 살 때였을까. 아니면 그 이전 소꿉놀이 시절의 엄마역할 때부터였을까. 그때부터였다면 난 그때 엄마역할에 만족했었나? 분명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 역할이나 굵은 목소리를 내는 아빠 역할을 더 하고 싶어했다. 몇 명이 어울려 놀 땐 역할을 바꾸기도 했지만, 혼자 소꿉놀이를 할 때면 자연스레 나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리 바라지도 않았던 역할인데도.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이기를 강요당한, 엄마가 필요했던, 영원히 딸이고 싶었던, 딸의 이야기다. 작품 속에는 박소녀를 비롯해 두 딸이 나온다. 그들 세 딸 안에 ‘엄마’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숨거나 드러난다. ‘엄마’들은 복합적으로 내 안에 살고 있는 세 가지 얼굴이기도 하다. 거부하고도 싶고 애틋한 연민이 일기도 하고 굳세게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책장을 다 덮고 나니 모순으로 상충하는 내안의 엄마, 를 부탁하고 싶다는 자조의 말이 슬몃 나오기도 했다.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진짜 이야기는 오래전 엄마가 어린 아이였을 적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스토리는 도시적인 생활을 해온 독자가 보기에는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그럼에도 어디서나 본 듯한 소눈을 가진 여인으로 누구나에게 기억됨으로 보편성을 얻는다)그만큼 박소녀가 넘어온 생의 굴곡이 험난하고 그녀 삶은 가시울타리 안의 것처럼 보인다. 빠져나가려면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어서 차라리 돌아서 앉아 울음을 삼키는 게 나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로서 살아야하는 가시울타리 안의 삶을 슬픔과 절망만으로 덧칠하지 않았다. 독특하게도 화자를 달리하며 육성으로 들려주는 듯한 박소녀의 징글징글한 삶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환희와 자부심이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엄마'에게서 희망을 읽으라면 그런 곳에서 찾고 싶다.

 그녀의 삶은 두터운 한 권의 점자책이다. 점자도서관에서 점자책을 앞에 두고 느꼈던 일로 소설가 큰딸이 엄마를 알아가는,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가는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엄마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대로 보고 역할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발목을 붙잡고 있진 않았는지. 엄마의 눈을 보고 이야기 한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보고 만진다 해도 해독이 되지 않는 점자책 앞에서 까막눈으로 살아온 딸의 회한이 낡은 필름처럼 이어진다. 글을 못 배운 인간 박소녀가 큰딸이 쓴 소설이 자랑스러워 그걸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어서라도 읽은 것,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불우아동에게 나눈 것, 생의 고비마다 정신적인 힘이 되어준 비밀 같은 사람에 대한 소중한 추억. 그런 것들을 다 열거하지 않더라도 이름처럼 ‘소녀’의 꿈을 안고 살았던 엄마도 외국의 낯선 풍광에 빠져보고 싶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장미묵주를 그래서 상징적으로 갖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밝은 면을 보는 쪽은 딸보다 오히려 아들이었다. 엄마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삶을 그렇게 슬프게만 생각하는 건 우리의 죄의식이 갈구하는 하나의 자위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딸은 좀 다르다. 특히 작은딸은 아이를 셋이나 두고 전문직까지 있으면서 안팎으로 힘든 생활을 꾸려가면서 생각한다. ‘과연 엄마가 부엌에 들어가는 걸 진짜 좋아했을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없어.’ 사회적 역할은 물론이고 아들과 딸이 당면한 소소한 문제들이 다르니 딸이 보는 엄마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애잔하다. 엄마라는 자리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덕목이 희생이나 인내, 자비 같은 것이라면 박소녀는 아주 적격의 엄마이지만, 그녀도 딸에게 소리치고 투정할 때는 엄마가 아닌 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면 성인이 된 딸은 엄마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은 큰딸에게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큰딸은 아직 진짜 엄마이진 않지만 늘 엄마가 안타까운 그래서 어쩌면 엄마 되기를 미루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머나먼 땅, 피에타상 앞에서 엄마를 부탁해, 라고 말하며 속죄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제는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진 엄마에 대한, 동시에 내재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좀 더 홀가분한 주문 같기도 하다. 여동생은 엄마를 포기하지 말고 찾아달라고 언니에게 부탁했지만 언니는 오히려 엄마를 놓아주고 싶어한다. 엄마에게 무기한의 자유여행의 시간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으로 읽힌다.

 두 딸들과 아들에게 엄마 박소녀는 실종자로 남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몸을 숨긴 건 아닌지, 상상해보면 슬근슬근 웃음바람이 난다. 투명인간처럼 혹은 전지자처럼 보고 듣고 서술하며 자신의 모든 걸 토로하는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오래전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온정에 대한 갈망,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하염없이 풀어낸다. 사랑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그 어조가 아련한 슬픔 위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하다. 그녀에게도 그녀처럼 품 넓은 ‘엄마’가 필요했음을, 뒤늦은 후회를 하는 남편과 아들은 딸보다 더디 아는 것 같다. 수많은 엄마와 그 속의 '엄마'는 오늘 하루도 잘 지내셨는지, '엄마'를 잃어버린 우리들 가슴에 '엄마'를 회복하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p262)

 작은딸이 큰딸인 언니에게 눈물로 쓴 편지 내용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나무집 2008-12-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눈물 찔끔거리며 읽었답니다.
친정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지라
작가 엄마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프레이야 2009-01-03 19:23   좋아요 0 | URL
신파조라는 말도 있지만 공통분모 같은 슬픔의 정서가 묻어나요.
그렇군요, 소나무집님.^^

순오기 2008-12-31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전에 읽었지만 리뷰를 쓸 수 없었던 책.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
그댁의 엄마는 안녕하시겠죠.

프레이야 2009-01-03 19:24   좋아요 0 | URL
엄마는 안녕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요.
엄마로서 강건하기를..

BRINY 2008-12-3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이 왜 이 책 리뷰를 안쓰실까 궁금했더랬습니다.

프레이야 2009-01-03 19:24   좋아요 0 | URL
브리니님, 그랬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