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이번에 부산국제고등학교에 합격했어요. ^^ 특목고를 지원하게 된 경위는 말하자면 길고 복잡했어요. 아니 오히려 아주 단순하게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전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아이 스스로의 결정에 맡겼으니까요. 아이와 전 굳이 특목고를 가야하는가를 두고 오래 갈등했어요. 전 그런 쪽에 워낙 발품 팔고 다니는 편도 아니고 엄마들끼리 모여 이러쿵저러쿵 정보교환이니 뭐니 하며 모이는 편이 아니라 관심 밖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중3 여름방학이 지나고부터는 결정을 해야하는 쪽이 되었어요. 몇군데 특목고에서 학교소개와 설명회도 갖고 학교 홍보도 하고 그러면서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군요. 부산외국어고등학교 입학모의고사에서는 전혀 준비하지 않고도 장려상을 받았어요. 영어공부는 우리나라 여느 아이들처럼 계속 해왔는데 3학년 2학기 가을에 두번째 응시한 TEPS 에서 850점을 받더군요. 그걸로 가산점 2점은 확보했어요. 그러더니 가을에 부산국제고 입학설명회에 갔다온 후 그 학교에 응시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커리큘럼이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요. 떨어지면 일반고에 가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응시했어요. 말은 그래도 애살이 많은 아이라 차근차근 혼자서 문제집을 풀고 정리를 하더군요. 중간중간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무한도전 다운로드 받아 보면서 깔깔거리고 그러면서요. 시험당일보다 발표날 속으론 더 떨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이는 인문사회 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했어요. 언어, 사회, 영어 세과목을 봤는데 점수가 잘 나온 것 같아요. 물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시험을 본 것 같아 속으로 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 기뻤습니다. 아이도 스스로 흐뭇해하며 좋아하구요. 무엇보다 아이가 꼭 가서 공부해보고 싶은 학교에 합격이 되어 만족스러워요. 대학 가기 좋은 학교로 간다는 것보다 소중한 3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이 학교에서 서울대 가기는 좀 쉽지가 않다고들 합니다. 내신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전을 갖고 자신을 가꾸며 배워서 남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고대사학에 관심이 높은데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만 조심스레 해봅니다. 독일어를 꼭 배우고 싶다고 하니 제2외국어는 독일어과를 지망하려고 하네요.
요즘, 아이는 알랭 드 보통의 책에 빠져 '불안', '행복의 건축'을 읽고 '여행의 기술'도 사달라고 해서 주문해 뒀어요. 오래 전 사줬던 '반지의 제왕' 원서도 틈틈히 보네요. '아임 낫 데어'와 '파이트 클럽' 디비디도 사달라고 해서 흔쾌히 주문해뒀어요.(이미 다운로드 해서 봤으면서요) 아이 스스로 하는 습관이 잘 되어 있는 편이고 제가 뭐 해라 하지마라 얘기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아이의 투정도 잘 받아주지 못하고 같이 소리지르고 더해버리고, 맛나고 영양가 높은 음식도 별로 챙겨주지 못했어요. 간섭하는 걸 싫어하고 자의식도 강한 편이라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대개는 모른 척 내버려두는 편이었어요. 사달라고 하는 문제집 사줬고 사달라고 하는 음반 사줬고 봐야겠다는 영화 있으면 친구랑 보러가거나 저랑 보러가거나 그랬던 것밖에요. 어릴 적 밤낮으로 잘 안 자고 두 눈 말똥말똥 깨어있어서 참 쉽지 않았던 애였는데 이제 저보다 훌쩍 커버렸네요.
입학하게 되면 기숙사 생활을 하게되니까 주말에만 볼 수 있을 겁니다. 토요일에 기숙사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점자도서관에 가서 같이 낭독봉사 하고 올까 합니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거든요. 영어동화 낭독봉사자로 적격이라고 실장이 귀띔해 주더군요. 물론 오디션을 봐서 통과되어야 하겠지만 적극 권유하고 있는 중입니다. 날씬해야 한다고 어찌나 안 먹는지, 먹성 좋은 통통이 작은딸과 비교되어요. ㅎㅎ 뭐든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절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