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따라 하루하루가 새롭다. 작은 것 하나, 스치는 순간 하나가 모두 낯설고 설렌다. 아마도 계절 탓이려니.

11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오늘, 아침에는 다소 흐린 하늘이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맑고 청명한 얼굴을 보였다. 

길가 가로수들도 울긋불긋, 노랑노랑. 초겨울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마저도 경쾌하다. 

환하게 노랑등불 밝히며 하늘거리는 은행나무 터널이 점자도서관 가는 길목에 나있는데,

그이들의 손짓을 받으며 빠져들어가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차를 길가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넋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순간을 담았다.

너희들 참 밝고 어여쁘구나. 순리대로 가고 오고, 만나고 이별하고 어엿하구나!

 

한동안 낭독녹음한 도서 정리가 좀 밀렸다. ^^

 

 

 

 

2012. 10. 10 녹음 시작, 총 256쪽, 8시간 소요 완료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곷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 문장은 성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정약용, [다산시문집],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255-256쪽)

 

 

 

 

 

2012. 10. 29 녹음 시작, 총 390쪽, 13시간 소요 완료

 

 

이메일 언어를 통한 놀라운 사랑의 결실과 세심한 심리 분석 및 묘사가 흥미롭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후속작이다. 꼭 4년 전 나는 이 책을 녹음했는데 당시

내 마음의 어떤 작용이 그 책을 읽게 했다. 녹음해 둔 걸 며칠 전 들어보니 그때 내 목소리엔

모종의 무늬 같은 게 아른댔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친근감은 거리를 좁히는 게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에요."

에미 로트너가 레오 라이케에게 쓴 이메일 문장이다.

나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후 나의 4년이 흘렀고 나는 또 그때의 나와는 조금 다르기도

같기도 한 모양새로 또다른 의미의 '일곱번째 파도'를 기다린다.

산다는 건 설레는 일 아닌가.  '모든 것을 주는 사람에 대한 환상' 그것이 일곱번째 파도라면

어느 한 사람만은 '한 사람'에게 그 파도가 될 수도 있다는 설렘.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 운명.

레오와 에미는 그 파도를 놓치지 않을 만큼 영리하고 솔직하다. 물론 기나긴 이메일 언어와 몇 번의 만남, 갈등과 화해,

탐색과 이해의 시간들을 거쳐 서로 거리를 '극복'했으니. 역시 사랑하면 가까이 있고 싶고 가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사랑하기 쉬운 것인지. 육체적 호감과 육체적 거리에 '말'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는 결론은 좀 힘이 빠지지만 그게

진실 아닐까.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의 상관관계, 문장부호 하나하나의 의미, 번호매기기 질문과 대답, 재치있는 대화 등 재미난 요소가 많은, 다니엘 클라타우어 장편소설.

 

 

 

 

2012. 5. 21 녹음시작  녹음완료. 1차 편집 중,  총 495쪽 중 446쪽까지 완료.

다음 주면 마칠 듯. ^^

 

세번째 읽으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올리브는 어쩜 그렇게 살아서 튀어나올 정도로

생생할까. 어쩜 이렇게 사람의 구질구질한 이면과 내면을 짚어내 두근대게 하는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면 세상의 이러저러함에 의연하고 현명해지라는 응원을 들을 수 있다.

구역질 나는 순간의 기억들마저도 생의 프레임 밖으로 내치는 게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여

안고 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인생이 내게 준 게 많든 적든, 아니 많다고 생각하든 적다고

생각하든, 적절하다고 여기든.

둘러가는 듯 하나로 아우르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인물들이 남몰래 간직한 이런저런 상처와

비밀로 너덜한 가슴의 중심부를 적중하는 화살처럼 날렵하다.

'삶을 마법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내가 아는 최고의 이야기꾼 어머니에게'라는 헌사로

시작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역시 그녀에게도 이야기꾼 어머니가 있다.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

 

                                                                                                              - 378 쪽  "불안" 중

 

 

 

 

 

다음 녹음도서는 이정록 시집 <어머니 학교>, 다음 편집 도서는 한창훈의 <꽃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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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2012-11-1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보면 항상 제 나태한 생활을 반성하게 돼요.^^;;
제가 읽어본 저 책들 언젠가 프레이야님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네요. ^^

프레이야 2012-11-16 11:37   좋아요 0 | URL
읽으셨군요^^ 아.. 좋아라. 통하는 느낌^^
정말 몇 번 읽어도 좋아요, 저 책들.
귀엽고 상큼한 토트님, 오늘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요, 우리~~

아무개 2012-11-16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벽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락방님위 추천으로 읽었는데 전 지금 두 주인공의 이름이 님의 페이퍼를 보고서야 기억났어요. 저는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이름도 긴데-만 기억이 나더라구요. 제가 베른하르트에 감정이입을 해서 그랬나 봅니다. 밖에 날씨가 스산하네요. 날씨와는 상관없이 쫄깃!한 하루 되시길.^^

프레이야 2012-11-16 11: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마중물님, 베른하르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읽으셨군요.
저도 베른하르트에게도 감정이입 해봤어요. 충분히 그럴 만하죠.
결혼생활이란 모순형용이란 생각이 들게 에미에게 틈을 준 그가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일곱번째 파도'에서 에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 결혼이란 단지 거기에 발을 담근 사람들이
발판을 잃었을 때 꽉 붙잡고 매달릴 수 있다고 믿는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에요.
중요한 건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이곳은 날씨가 청명해요. 기분 좋은 정도로요.
님도 쫄깃한 하루!!!!! 되시길요.*^^*

moonnight 2012-11-1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EBS 라디오를 들으면 프레이야님 생각이 나요. 저도 프레이야님이 녹음하신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프레이야 2012-11-17 12:46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제 생각하셨다니 기뻐요. 좋아라^^
저도 도움이 좀 될까하기도 하고 책소개도 좋고 해서자주 듣는답니다. 오디오북은 씨디로 제작돼 시각장애우들에게 배포되는 거라 일반유통은 안 되고 있어요. 순전한 자원봉사인데 무엇보다 제가 즐겁고 행복해지는 일이라 너무 좋아요.^^

라로 2012-11-1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터널이라는 표현 너무 좋아요!!!!
저희 가게 앞에 은행나무가 있는데 큰 차창으로 바라보는 그 나무 덕분에 숨쉬고 견디고 했던듯,,,
어여쁘면서 어엿한 그것에 의지하면서,,,^^;;;;

라로 2012-11-17 14:45   좋아요 0 | URL
댓글 달고 급하게 다시 덧글,,,ㅎㅎㅎㅎ
저는 말만 이렇게 할 뿐 아주 잘 있습니다.ㅎㅎㅎㅎㅎ

프레이야 2012-11-17 15:34   좋아요 0 | URL
어여쁘고 어엿한 나무가 참 그런 힘이 되죠.
알아요.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거. ^^♥
봄이면 벚꽃터널, 가을엔 은행터널 ㅎㅎ
나무나 꽃 좋아지는 건 나이들어간다는 증거
아닌가 몰라ㅋ 그런것들 보는 게 전같지 않으니 헉

다크아이즈 2012-11-18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질구질한 이면과 내면, 이라는 프님의 소개글만 보고도 올리브 키터리지, 읽고 싶어지네요.
그나저나 이 긴 작품들을 몇 개월에 걸쳐 녹음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위대해요. 프레이야님.
녹음된 건 전국 배포가 아니라 필요한 그분들께만 제공되는 것이지요?

프레이야 2012-11-18 19:54   좋아요 0 | URL
호호~ 제가 즐거워 하는 일이라 그저 좋아요.^^
네, 전국의 점자도서관과 관련기관에 배포되어 시각장애우 회원들에게 보급되어요.
일반유통은 전혀 안 하구요.
팜님,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이지 강추에요. 님도 분명 아주 좋아하실 거에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에요. 우리 나이쯤 되면 더 와닿는 그런 것이요.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우선 표지에 대한 호감도 100%다. 내가 무조건 사랑하는 골동품 수동 타자기하며 펜대끝에 다는 깃털 하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타자체로 쓰고 음각으로 강조한 책제목의 과감한 배치와 전체적으로 여백을 많이 둔 하얀색 표지, 그리고 부제에 들어있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 'inspiration'. 저자는 "문학적 영감을 어떻게 얻고 글로 옮기는지에 관심이 많았고 현재 유명 작가들의 독특한 글쓰기 기술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미국의 실리어 블루 존슨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문학작품을 쓰고자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끌리는 대목인가. 저자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만 역자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을 옮긴 분이어서 더 끌린다. 역시 무리한 문장 없이 술술 잘 읽힌다.

 

 

예술가에게 영감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이면 다행한 일일까. 영감을 구하지 못해 고통스러워 하는 게 예술가의 숙명이고 의무다. 영감으로 탄생한 게 아닌, 모방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예술작품은 그것을 대하는 독자와 예술가 자신에게조차 감흥을 주기 어렵다. 문학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영감이 오는 순간, 이야기는 이미 시작하고 나아간다. 하지만 영감이란 게 아무런 준비도 없는 사람에게 불쑥 찾아오진 않는다. 늘 꿈꾸고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그리며 기회의 앞머리채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영감은 어느 날 우연을 가장하여 안겨들고 그 우연은 운명이 된다. 에세이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낳은 작가들이 영감이 온 순간을 어떻게 붙잡아 작품으로 탄생시켰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실었다. 한 마디로 사진의 톨스토이라고 불리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의 문학적 포착이다.

 

 

내가 연구한 작가들 중 똑같은 길을 개척해 그토록 창조적인 작품에 도달한 이는 없었다. 모든 작품이 정교하게 엮인,

각기 다른 상상과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으며, 순수하게 우연이 섞여 들어간 경우도 의외로 많았다.

다만 이들 작가들에게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열망을

지녔다. 그리고 그 순간은 대개 예기치 않았을 때 찾아왔다.   

(중략)

이 이야기들은 도처에 영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란 한순간에

사람의 두뇌를 압도하다가도 다음 순간에 까맣게 잊히곤 한다. 그러나 준비가 된 사람은 영감이 머리를 스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

 

                                                                                                                        - 저자가 쓴 '여는 글' 일부

 

 

 

"그리고 우리도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

이 문장에 힘을 얻어 이 책을 읽어본다면 창작을 고뇌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과 재미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단지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도 작가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조금 더 열어줄 수 있겠다. 목차를 펼치면 또 탄성이 새어나온다. 거장들의 펜대끝에 달렸을 그 깃털이 각 장의 번호를 달고 여섯 장으로 나뉘어 정말이지 이름만으로도 벅찬 대작가와 작품이 일렬종대로 섰다.

 

각 장의 제목은 이렇다.

- 1.번쩍 스치는 황홀한 순간, 2.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3.현실 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

4.어둠 속 저편 영감이 떠오르다, 5.영감을 찾아 떠난 위대한 여정, 6.내 삶의 현장이 곧 이야기. 

 

이렇게 6개의 소제목은 각각 영감이 스치는 순간이거나 그걸 찾아 떠났거나 일상에서 우연히 안았거나 모두 우리를 찾아온 영감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미덕을 발견할 수 있게 설렘을 준다. "작가들은 이미 훌륭한 이야기꾼이었고 영감으로 떠오른 오랜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매만져 흥미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물론 저자가 엮은 이 이야기들이 약간의 허구나 오류, 과장이 있었을 순 있겠지만 가히 지나친 수준이 아니란 걸 믿을 수 있게 연도나 갖가지 자료 등을 제시하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쓰고 있다.

 

 

1장의 첫 작품은 내가 요즘 읽고 있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룬다. 톨스토이가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초저녁 소파에 앉아 까무룩 잠결로 빠져드는 순간, 불현듯 스친 하나의 환영(幻影)에서 대작이 탄생했다니, 경이롭다. 그것은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였다. 그리고 몇 가지 당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 작품에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라든가 안나라는 인물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데 기여한 실존한 두 명의 여인이라든가.

 

 

2장에서는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를 낳으며 작품이 된 경우들이다. 톨킨이 <반지 원정대> 서문에서 "이 이야기는 말을 통해 점점 자라났다"고 밝혔듯, 2장을 읽으며 나는 아이가 어렸을 적 잠자리에 들어 이야기에 이야기를 물고 말로 동화창작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흔히 말하는 '뒷이야기 다시쓰기'다. 아이에게 창작동화 한 편을 읽어주곤 서로 이야기를 다르게 지어 들려주었는데 같은 원작에 매일 이야기는 다르게 나아가며 재탄생했다. 지금 하라면 닭살 돋아 못할 것 같은데 그땐 날마다 그 일이 참 즐거웠다. 물론 아이도 두 눈을 반짝이며 창작에 가담해 나에게 들려주며 서로 재미있어 하다 잠에 빠지곤 했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영감이 영감을 낳듯 상상력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대작가들도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려두고 쓴다기보다 쓰면서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들어갔다니 그 과정이 흥미롭다.

 

3장에서는 현실 속에서 만난 인물을 창작의 인물로 그려낸 경우다. 픽션이라고 하여 기이한 상상으로만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실의 여러 인물을 조합하여 다양한 성격과 외형적 특징까지 한 데 잘 섞어 빚어낸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다.

'오만과 편견', '댈러웨이 부인' 등이 나온다. 어쩌면 인물에 작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되기도 하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두고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밝혔다. "어느 순간에 개츠비를 나 자신으로 보게 됐는지 전혀 모르겠다. 처음엔 내가 아는 사람으로 출발했던 그가, 어느 틈엔가 나 자신으로 변해 있었다." (p188)

 

 

4장에서는 어려운 현실을 겪으며 어둠 속 저편에서 건져올린 영감들을 만날 수 있다. 누추한 감방 안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고 그 기반을 다진 세르반테스와 도스트예프스키. <돈키호테>와 <죄와 벌>이 탄생한 곳은 춥고 어두운 감방 안에서였다.

5장에서는 모험이나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위대한 영감을 찾은 경우다. 이런 경우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작품에 녹아날 수밖에 없다. <모비딕>, <야성의 부름>, <길 위에서> 등등.

 

 

6장은 삶의 현장, 생업의 현장이 이야기의 축이 된 경우다. 영감은 기상이나 환영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아 일하며 체험한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쓴 일기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생업을 갖지 않은 채 앉아서 글만 쓴다면, 이 얼마나 헛된 일이겠는가." 이런 걸 보면 일하느라 글 쓸 틈이 없다느니 영감이 말랐다느니, 다 합리화일 가능성이 크다. 정신병동 야간근무 조였던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1953년 <마드모아젤>의 객원 편집기자로 뽑혔던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 The Bell Jar>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작가 중 김훈의 소설을 읽다보면 특정 직업에 대한 자료조사가 철저하다고 느끼게 되는데, 특히 기억나는 건 등대지기와 세밀화가. 그리고 '공무도하' 에는 자신이 몸담고 일했었던 신문기자의 일상과 말투, 현장의 긴박감과  씁씁한 현실이 생생하다. 진짜 이야기는 기사화되지 못한 기사에 있다는 뭐 그런 내용까지. 

 

 

얼마 전에 본 영화 <사랑하는 여자, 창녀>에는 후속작을 쓰기 어려워 날마다 카페에 나와 머리를 쥐어짜는 어느 유명 소설가에게 위대한 영감을 준 여인이 나온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젊은 여인은 자신의 직업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소개하고 자신의 트라우마와 어두운 기억에 묻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소설가는 그걸 메모하고 돌아와 집필에 몰두한다. 만남을 거듭하며 그녀가 들려준 과감한 이야기와 생생하고 대담한 묘사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소설은 호평을 받게 된다. 여인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 자신의 기억을 빌려준 덕분에 탄생했고 작가는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에서도 영감을 건져올릴 수 있다. 세월이 지나며 더 윤기가 나는 가죽가방처럼 결정적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여인이 들려준 그 기억이란 실재한 기억이일까?  허구였다면 상상이었다면 기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여인의 사랑과 꿈이 얼마나 절실하고 진정 어린 것이었는지, 알게 되면 눈물겹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하여 묘사가 과대망상적이거나 실제와 달라서는 곤란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묘사는 정확하게, 상상은 과감하나 땅에 뿌리를 두고 정교할 것. 몸과 영혼 모두를 다해 영감을 준 그 여인 같은 '영감'이 평생에 몇 번이나 올까, 작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 책은 한 편 한 편 에피소드의 길이가 길지 않아 호흡이 짧다. 이미 읽은 작품에 먼저 눈이 갈 것이고 관심가는 작가와 작품을 먼저 골라 읽어도 무방하겠다.  아직도 접하지 않은 위대한 작품들은 기억해 두었다가 독서확장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영감을 얻는 순간을 타인의 경험을 통하거나 책을 통한 간접경험으로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덧)각 편마다 '작품 엿보기'를 붙여 줄거리 소개를 해두었고 몇 편은 왜 그런지 생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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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첫댓글인가요?
이런 책은 저도 흥미로워요. 독서나 글쓰기에 대한 책은 다 끌려요.

"그리고 우리도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다." - 저도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야기들이 마구 마구 피어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필기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생각만 하다가 잊고 말 때가 많아요.
길을 걷다가, 또는 어느 차 안에서, 또는 영화를 보는 극장에서...
그러니 메모지를 갖고 다녀야 할까요?

프레이야 2012-11-02 11:13   좋아요 0 | URL
위대한 작가와 평민과의 차이랄까 싶어요.ㅎㅎㅎ 저도 메모습관이 안 돼 흘려버리는 것들이
때로는 아까운데, 그러고보면 글을 쓰는 사람은 그처럼 예민하고 붙잡아둬야할 것, 불러들일 것들도
많으니 고달픈 인생인가요?!!! 자발적 고달픔이라면 흔쾌히 즐거운 일!
페크님,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세요^^

드림모노로그 2012-11-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가와 일반 사람이 틀린 이유가 영감이 스친 찰나의 순간을 기억한다는 것이군요..
제목도 이쁘고 표지도 정말 이쁜 책이네요 ^^
이 책 꼭 기억해두었다가 읽어봐야겠습니다 ^^ 바로 카트로 ㅋ~

프레이야 2012-11-02 11:14   좋아요 0 | URL
네, 그 차이인 것 같아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탄생시키는 능력이랄까.
가볍고 맛난 읽을 거리에요.^^
드림모노로그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다크아이즈 2012-11-01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께서 이 책 꼭 사게 만드시네요.
영감, 내 삶의 현장이 곧 이야기 등에 눈길이 꽂힙니다.
문장 탄탄한 프레이야님이 꼼꼼하게 짚어주시니 안 읽어도 읽은 듯.

점심 약속 있어 나갔다 왔는데 쌀쌀하네요.
독감 주사도 맞고 왔어요. 프레이야님도 건강 조심하시길...

프레이야 2012-11-02 11:16   좋아요 0 | URL
후훗~ 팜므느와르님도 좋아하실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오늘은 기온이 좀 올랐는지 몸이 대번에 느끼네요.
추위 맞을 준비도 안 했는데 너무 갑자기 춥다 싶더라구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전 독감주사 한 번도 안 맞아봤어요.ㅎㅎ
건강하다기보다 유비무환 타잎이 아닌거죠.^^

M의서재 2012-11-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책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제가 딱 찾고 있던 책이기도 하네요. 원하는 순간, 딱 맞은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12-11-02 11:18   좋아요 0 | URL
책도 인연처럼 다가오더라구요. 신기하게도.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하루 또 바쁘게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댈러웨이 2012-11-02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감의 순간...이 오면 정말 페이퍼 써 나가는 게 저절로 각이 딱 잡혀요. A, B, C, D 해가면서. 그럼 순식간에 써지기도 하고요. 하. 여지껏 페이퍼 서른 몇 개 올리면서 그런 순간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말지 했던 것 같네요. --; 이 책도 읽고 싶어지게 하는 리뷰이지만, 장바구니에 넣어진 채로 또 처분만 아마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는. 프레이야님, <안나 카레니나> 읽으시고서 안나-브론스키에 관해 우리 열띠게 의논해 보아요. 저는 이 책 아무래도 제목 잘못 정했지 싶은데. 그리고 안나-브론스키 간의 관계가 정말 센슈얼 그 자체인지, 그래서 감탄스러울 정도인지도 한 번 열띠게 의논해 보아요. 나비님이랑 한 번 얘기해볼려고 그랬는데 나비님 사라지는 바람에. ㅠ.ㅠ 아, 저 또 너무 시끄러웠어요. 주말 잘 보내세요, 프레이야님. ^^

프레이야 2012-11-04 01:45   좋아요 0 | URL
문학작품을 정말정말 사랑하는 댈러웨이님이 이 책 보시면 더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안나-브론스키는 센슈얼 그 자체인지, 아직은 모르겠어요.ㅎㅎ 영화는 봤지만 책 다 읽고 생각해봐야겠네요.
문학동네 것으로 읽고 있는데 이제 겨우 1권 1/4 남았어요. 두 사람이 서서히 마음을 알아가고 있어요.
아무튼 나중 열띠게 얘기해 봐요.ㅎㅎ 나비님은 무지하게 바빠서.. 그래도 다음에 같이..ㅎㅎ

앗참, 저 자카란다 사진 저장했어요. 꿈결처럼 좋아서요.^^

2012-11-03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11-05 13:4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 새 아이콘 정말 마음에 들어요. 색감도 그렇고. 이제 바꾸지 마세요. 아, 센슈얼이랑 섹슈얼이랑 어떤 걸로 할까 하다가 고친 게 센슈얼이라는. --; 성적인 것과 관능적인 것, 이 두 가지 다인가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런 것들이 막 흥분을 일으킬 정도인가요? TV 북클럽 리뷰어들이 하도 그렇다고들 강조에 강조를 하길래, 아 이건 내가 뭘 완전히 다 놓쳤구나 했다니까요... 자카란다는 사진이 너무 어둡게 나와서... 조만간 자카란다 순례여행을 (응?) 떠날 거거든요. 그때 멋진 사진 올릴께요. 근데 얘네는 멀리서 보면 그 색감이 너무도 신비스러운데,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안 이뻐요. 꼭 저 같다는. (또 응? ㅎㅎㅎ)

2012-11-0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1-05 20:08   좋아요 0 | URL
님, 센슈얼, 섹슈얼은 더 읽어보고 얘기해요.^^
자카란다 순례여행은 말만 들어도 근사해요. 저도 막 따라가고 싶어요.ㅎㅎ
멀리서 보면 뭐든 신비하고 아름다워 보이기 쉽지요. 가까이서 실체를 알면 꼭 그런 것도 아닌데
말에요. 그치만 댈러웨이님이 그렇단 건 절대 아니에요. 저도 안 그래요.^^
가까이서 보면 더 이뻐요, 우리. 호호~~

아.. 대문사진은 최근에 본 영화 'Searchign for Sugar Man' 포스터에요.
영화가 너무나 좋았답니다. 음악이 더 좋아 음반 주문해뒀어요.
실제 로드리게즈 라는 미국가수의 삶을 담은 다큐에요. 페이퍼 쓸게요^^

2012-11-05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2-11-0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문학의.깊이를.잘 몰라서 프레이야님의 글을 보고는 약간 부끄러워져요^^ㅋㅋ
프레이야님 갑자기.날씨가.추워졌어요~ 꼭 건강 조심하셔야해요...
제철인.생강으로.끓인차가 인삼보다 몸에 더 좋다네요^^
모쪼록 감기조심 부탁(?)드립니다!ㅋ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프레이야 2012-11-03 19:25   좋아요 0 | URL
님, 어찌 이리 다정한 부탁을요. ^^♥
생강은 제 체질에도 좋다는 건데 손수 끊일줄은 모르고 감기기운 있을 때 가끔 인스턴트로요.
불루데이지님도 세 아기 돌보며 꼭 감기 안 걸리시길
부탁드려요. 아프면 나만 힘들어요.
편안한주말 보내세요. 울긋불긋! 이쁘게요.~~

플레져 2012-11-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어요.
좋은 책 리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

프레이야 2012-11-05 20:06   좋아요 0 | URL
플레져님께 정말 좋은 책이 될 거 같아요. ^^
책도 임자를 만나야 쓸모가 더 있지요.~~~

2012-11-06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정적 순간의 포착 맞네요. 이 책, 그랬지요.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프레이야 2012-11-07 20:21   좋아요 0 | URL
대단한 작가에 대단한 작품들의 탄생 뒷이야기, 흥미롭게 읽었어요.
섬님은 12기 신청하셨어요? 전 안 했어요. 한 번 쉬고 밀린 책부터 읽으려구요^^

2012-11-09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신청 안 했어요. 책 받아 보는 건 좋은데, (선물로 받는 것도 좋고, 안 읽을 뻔한 좋은 책 읽는 것도 좋고)
리뷰 쓰기가 넘 힘들어요.ㅠ 한동안은 안 할 거예요. -앞으로 절대 신청 안 할 거란 장담은 못 하겠고~^^

프레이야 2012-11-09 20:4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섬님도 ^^ 좀 건너뛰었다 마음 내킬 때 하지요 뭐. ㅎㅎ
 

 이홍섭 시집 <터미널>, 문학동네

 

 

 

 

 

2012년 6월 22일 녹음 2시간 30분 소요 완성 

 

 

 

시집을 낭독 녹음한 건 처음이었다. 오늘 1차 편집.

다음에도 기회가 오면 또 하고 싶은 게 시집 낭독.

 

 

그런데 앞으론 소설을 주로 해야할 것 같다. 오늘 팀장이 특별히 부탁을 한다.

40대 이하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은 컴퓨터 음성 지원 시스템을 이용해 듣는 경우가 많고

청소년 이하 학생들은 점자를 학습해 점자도서를 잘 읽고

녹음도서를 이용하는 분들은 대개 50, 60, 70대 연령의 남 녀 반반 비율인데 소설류를 가장 애호한다고.

연세도 있는 분들이 귀로만 집중해 들어야 하니 딱딱한 책은 힘들다고 한다.

특히 연애소설, 그러니까 로맨스가 있고 관능적인 부분이 많으면 더 좋고.

욕설이나 저속어가 나오면 그것도 오히려 좋아하신다고.

대리만족 같은 걸까. 나도 녹음하다 그런 문장이 나오면 감정이입 되어 실감나게 내뱉는데ㅎㅎ

 

예를 들어 한창훈의 '꽃의 나라'나 김훈의 '공무도하'도 그랬고,

동시에 1차 편집하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에도 그런 단어나 대사들이 실감나게 나온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이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무말 못할 정도다. 다음 기회에...

 

그다음으로 잘 나가는 게 에세이류인데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처럼 소녀감성이 두드러진 에세이도 의외로 좋아한단다.

미처 몰랐다. 소설 낭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녹음봉사자들이 꺼리는 경우가 많아 수요와는 반비례하기에

특별히 봉사자들에게 귀띔하는 것이라고. 철학서나 종교서나 좀더 전문적인 도서는 특별히 신청하는 회원의

책에 한하여 봉사자들에게 부탁할 것이라고 한다.

이왕이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한 봉사니까 그분들이 원하는 걸 제공하는 게 맞겠다. 동감!

점자도서관 책꽂이에 비치된 소설류는 영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서 집에 있는 소설들 중 몇 권 찜해 뒀다.

이미 나는 읽은 책이지만 일순위는 <일곱번째 파도>.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를 몇 해 전 녹음했으니 후속편으로 나온 이 책을 녹음하면 좋을 것 같다.

이메일로 주고받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선 그 후속편이니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걸 상상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대화체니 듣는 사람도 편안하게 들을 수 있을 거다.

자, 그럼 소설은 목소리를 너무 차분한 톤으로 하지 말고 드라마틱하게 읽어보자구. 일석삼조!

 

그리고 자목련님 페이퍼 보고 신간 소설 두 권(각각 한강, 김선우 작)도 담아왔다. 그분들 취향에 맞을 것 같고 나도 읽고 싶고.^^

 

 

 

 

 

 

 

 

 

 

 

 

 

 

 

 

 

 

 

다시 시로 돌아가, 강원도 산골마을이 고향인 이홍섭의 <터미널>에는 좋은 시가 많다.

 

 

 

입술

 

 

수족관 유리벽에 제 입술을 빨판처럼 붙이고

간절히도 이쪽을 바라보는 놈이 있다.

 

동해를 다 빨아들이고야 말겠다는 듯이

입술에다 무거운 자기 몸 전체를 걸고 있다

 

저러다 영원히 입술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유리를 잘라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시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꼭 저 입술만하지 않겠는가

 

 

 

 

 

심봤다

 

 

  일평생 산을 쫓아다닌 사진가가 작품전을 열었는데, 우연히 전시장을 찾은 어떤 심마니가

한 작품 앞에 섯 감탄을 연발하며 발길을 옮기지 못하더란다. 이윽고 그 심마니는 사진가를

불러 이 좋은 산삼을 어디서 찍었느냐고 물어온 것인데, 사진을 찍고도 그 이쁜 꽃의 정체를

몰라 궁금해했던 사진가는 산삼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기절초풍을 했더란다. 그날 이후 사진

가는 작품전은 뒷전인 채 배낭을 메고 산삼 찍은 곳을 찾아 온 산속을 헤매게 되었다는데......

 

  그 사진가는 허름한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건네며 사는 게 꼭 꿈결 같다고 자꾸만 되뇌는데,

그게 자신한테 하는 말인지, 산삼한테 하는 말인지, 사진한테 하는 말인지 영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 이상한 것은 그 얘기를 듣는 나도 그 사진가를 따라 오랫동안 산속을 헤매 다닌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리고 자꾸만 사는 게 꿈결 같다고 맞장구를 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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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2-10-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프레이야님께서 실감나게 내뱉으신다구요?ㅋㅋ 박장대소했어요...
프레이야님께서 낭독녹음하신 그 도서들을 읽는분도 듣는분도 참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홍섭님의 시집은 그냥 지나쳤던 시집이었는데..
시를 잘 음미할줄 모르는데..적어놓으신 시들을 두번 내리 읽으니까..뭔지 모르게 좋으네요...
이런 느낌 주신 프레이야님~~~ 좋은밤 되시길...빕니다.

프레이야 2012-10-25 17:54   좋아요 0 | URL
히히, 잘 내뱉어요, 저 ㅎㅎ 대리만족도 하고요.
저도 우연히 만나게 된 이홍섭 시집, 좋은 시가 참 많더군요.
오늘 하루도 멋지게 보내고 계시죠, 블루데이지님^^

순오기 2012-10-2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낭독녹음하는 페이퍼 읽으면 나도 막 낭독하고 싶어져요.
애들 어릴 땐, 책 읽으면 늘 곁에 있으니까 필 돋으면 막 읽어줬는데
이젠 다들 커서 내 곁에 있어주는 녀석이 없네요.
우리 광주에서 만날 때 한 꼭지 읽어줄 것도 챙겨오세요~ ^^

프레이야 2012-10-25 17:39   좋아요 0 | URL
애들 어릴 땐 진짜 아이랑 윤독도 하고 대사 부분은 아이가 또는 제가.. 이런 식으로도 하고..
이제 애들이랑 같이 책읽기는 안 되지만 그런 기억이 새록새록^^

네꼬 2012-10-2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완전 멋있다. (얼얼한 얼굴로.)

프레이야 2012-10-25 17:54   좋아요 0 | URL
진짜 멋찐 네꼬님, 얼얼한 얼굴은 어떤 거에용??? ㅎㅎ

heima 2012-10-25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틱한 낭독!! +_+ 듣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시겠어요!

프레이야 2012-10-25 17:40   좋아요 0 | URL
소설은 그렇게 좀 후까시 넣어 낭독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잘 안 되겠지만 노력은 해보려구요. 그래도 기본은 편안하게 들리는 게 최고라지요>^^

댈러웨이 2012-10-2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노랑무늬영원> 저도 자목련님 방에서 보고 표지 완전 이쁘다고 생각했었는데. 한강 작가는 <희랍어시간> 때문에 고생을 좀 해서 손이 갈까 했는데 순전히 표지때문에 읽고 싶어졌어요. 따뜻한 뭔가를 기대해? 뭐 그런 심정? 그나저나 <심봤다>는 정말 꿈결같은 시군요. ^^

프레이야 2012-10-25 17:41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 찌찌뽕 ㅎㅎ 전 노랑색 좋아하는데다가 저 책 표지는 정말 사랑스럽지 뭐에요.
뭔가 노랑노랑해지는 기분.^^
시인은 참 대단하다 싶어요. 물론 소설가도 그렇구요.

야클 2012-10-2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지만 정말 좋은 일 하십니다 ^^

프레이야 2012-10-27 16:40   좋아요 0 | URL
야클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계속 할 생각입니다. ^^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오늘아침 모 퀴즈프로그램을 잠시 보는데 출제문제 중 오 헨리의 말이 나왔다 - 훌륭한 이야기란 겉에는 설탕 발린 쓰디쓴 알약 같은 것이다. 당의정으로 둔갑해 전달되지만 쓰디쓴 현실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스토리, 소설을 두고 한 말이지만 시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시적 언어의 감동까지 고려한다면 더 응축된 언어를 써야하니 시인은 어쩌면 소설가보다 몇 배는 더 고민하고 고뇌하는 사람이어야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고시절 책 강매 사건(?) 후 담임선생님에게 내 나름의 억울함과 진심어린 심정을 전달하기 위해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시 노트에서 옮겨 편지로 전해드렸다. 당돌했지만 그 일은 선생님에게 모종의 충격을 드렸던지,  '너, 참 그렇게 빡빡해서는 세상 살기 쉽지 않겠다'는 막막한 눈빛으로 빤히 내 눈을 뚫어져라 보시며 조근조근 훈계하시던 노처녀 선생님. 그분도 지금은 어디선가 세월의 놀빛을 따라 물들어가고 계시겠지. 일흔 넘은 엄마가 소중히 갖고 계시던 조병화, 천상병 시집도 이제는 날강날강 곰팡이 나는 누런 종이가 되었다. 언젠가 시를 좋아한 엄마가 쓴 수필(굳이 분류하자면) 한 편을 내게 주셨는데 읽다가 눈시울에 젖은 나는 같은 사건의 기억으로도 엄마의 진실과 나의 진실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때 이후 엄마의 문학소녀 같은 감성을 좀더 일찍 펼칠 수 있게 해드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라색 펜으로 시를 옮겨적던 그 베레모 쓴 여고생과 팍팍한 현실에 묻어버린 감성을 한때는 지녔던 문학소녀, 이제는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도 헤어지지 못하는 인연의 끈처럼 활자 주변을 맴돌고 글 나부랭이를 쓰고 있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언제였을까. 

 

 

시집 같은 모양을 한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시인과 평론가 하응백의 연애담이다. 삶을 사는 일, 시를 쓰는 일이 연애와 같다는 공식을 두었을 때 말이다. 나는 이 공식에 동의하는 사람이고. 이들 4명이 어떠한 시와 조응하게 되는 삶의 순간들이란 명멸하는 별빛이라기보다 백일몽처럼 떠있는 새파란 하늘의 하얀 낮달 같은 것이다. 부끄러운 듯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고 상현달 조각으로 창백한 뺨 한 쪽을 내보이던 낮달. 나는 어느 포구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던 그 낮달의 한 쪽 눈이 감길 때까지 내 마음처럼 희뿌옇던 낮달을 뚫어져라 올려다 본 적이 있다. 순간은 내가 미처 잡지도 못하는 새 조롱하듯 달아나는데, 무수한 이야기들은 먼지 되어 날아가는데...

 

 

어쩌면 시 소개서 같기도 한 이 책의 미덕은 4인의 시인이 소박하고 맛깔나게 풀어놓은 결정적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와 아픈 현실의 뒷골목 빨랫줄에 널려있는 주렁주렁한 이야기들, 문학과 시쓰기에 대한 칼날같은 이야기들, 먼저 간 불운한 시인들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읽다가 만나게 되는 '시의 발견'에 있다. 의외성과 친숙함이 공존하면서 특별한 방식의 시선집 같기도 한데 시를 분석하거나 자신들의 감상평을 주입하는 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구절구절에서 마주한 특별한 시들을 지극히 사적인 감정으로 소개한 것이라 더욱 와닿는다. 시인들의 글이다보니 그 글 자체만으로도 충만하고 시적이다. 그런데 제목만 나온 시들이 많아, 전문을 싣진 못해도 일부라도 소개해 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제목과 시인을 적어두었다가 따로 찾아보면 미처 몰랐던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참 좋았던 것은 책에 실린 흑백사진들이다. 조야하지 않고 차분하고, 여백이 있어 시적인 사진들이 잔잔한 감흥을 준다. 기시감이 드는 꿈결 같은 풍경들,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결이 살아있는 사진들, 나는 그 속에 한참 머물러 있곤 했다. 요즘 성향의 사진에세이집에서는 드문 사진들이다.

 

 

 

첫번째, 정호승 편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에서는 나도 몇 해 전 장생포 포경선에 올라 느낀 걸 글로 쓰며 인용했던 안도현의 시 <고래를 기다리며>가 나와 반가웠다. 이동순의 <서흥 김씨 내간>이나 박해석의 <타이탄 트럭>을 들어 가난의 문학적 힘을 말하는 장에서 그 시들을 전혀 인용하지 않아 아쉽다. 신경림의 <봄날>을 말하면서도 시를 조금 인용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 시에서 아흔살 외할머니를 보며 정호승은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희생이 바탕이 되지 않은 사랑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p33)"고. 맞는 말이지 않은가. 이기적이기만 사랑은 가짜다. 

 

 

두번째, 안도현 편 '그릴 수 없는 마음의 빛깔까지도'에서 황동규의 <방파제 끝>이라는 시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방파제 끝 / 황동규

 

 

언젠가 마음 더 챙기지 말고 꺼내놓을 자리는

방파제 끝이 되리.

앞에 노는 섬도 없고

헤픈 구름장도 없는 곳.

오가는 배 두어 척 제 갈 데로 가고

물자국만 잠시 눈 깜박이며 출렁이다 지워지는 곳.

동해안 어느 조그만 어항

소금기 질척한 골목을 지나

생선들 함께 모로 누워 잠든 어둑한 어물전들을 지나

바다로 나가다 걸음 멈춘 방파제

환한 그 끝.

 

 

 

이 시를 읽고 난 후 얼마 전 서해 곰섬이 보이는 해변에 갔다가 저 멀리 보이는 방파제 끝에 일부러 발 딛었다. 그 끝에 새삼 서 보고 싶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청년들 틈, 시뻘건 칠을 한 작은 등대를 등 뒤로 하고 서서 나는 바다끝 아니 방파제 끝을 딛고 섰다. 발 아래 잔잔한 바닷물이 참방이고 무언의 바다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유리조각처럼 빛났다. '마음 더 챙기지 말고 꺼내놓을 자리는 방파제 끝, 환한 그 끝'이 되리. 이 시를 소개하며 안도현 시인은 황동규 시인의 언어적 절제력을 찬사한다.

 

문학공부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과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중략)

시는 자아도취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한테 빠져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검증해서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비로소 시는 제대로 된 꽃을 갖추기 시작한다.  - p84

 

 

시적 언어의 힘을 강조하는 안도현을 다음 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남주를 읽고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한마디씩 딴지를 걸곤 한다.

올곧고 진보적인 세계관으로 무장한다고 해서 과연 누구나 김남주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다 아는 이야기지만,

시의 감동은 시적 언어의 감동에서 온다는 것을 김남주의 시를 대할 때 간과하는 후배들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김남주만큼 철저한 언어의 승부사를 알지 못한다.  - p111

 

 

 

세번째, 장석남 편 '우리의 희망이 꽃피는 절망일지라도' 에서는 정현종의 시를 소개하며 쓴 다음 인용글이 인상적이다.

 

좋은 시란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의 시 쓰기는 피투성이 말의 현장에서 다시 은어처럼 침묵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힘든 여정. 그것도 말이라는 지느러미로 헤엄쳐 올라가야 하는 실로 운명적인 현장. 그것이 시 쓰기겠다! 

그러니까 말 이전에 시가 있(었)다!는 말씀. 씌어지기 전에 이미 좋은 시였다는 말씀.   - p137

 

 

마지막, 하응백 편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에서는 깊은 밤 자신을 오열하게 했던 기형도의 그 불온문서 같은 시집에 대한 소개가 좋다. <빈집>과 <포도밭 묘지 . 1>을 소개하며 "그의 절망은 순수한 절망이며, 흉내 낼 수 없는, 흉내 내서는 안 되는 절망"이라고 한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하응백 편에서 또 언급되는 시인은 박정만과 황동규다. '다정다감하고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시인일 뿐인' 박정만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얽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폐인이 되어 살아가던 중 1987년 여름 그에게 詩神이 찾아왔다. 접신의 경지에서 이십여 일만에 삼백여 편의 시를 쓰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화가 꺼진 10월 2일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작은 연가 /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공식이 없는 세 가지, 인생, 사랑, 시'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네 사람은 이렇게 쓴다.

 

좋은 시는 사람을 변화하게도 하고, 추억의 등불에 사로잡히게도 하고, 울분의 눈물을 반짝이게도 하고,

때로는 마음의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 이 한 권의 책이 우리 모두에게 시의 왕국으로 가는 쉬운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더 깊은 시의 나라로 나아가고 안 가고는 읽는 이의 몫이지만 언급되는 시와 시인들을 메모해 뒀다가

하나씩 찾아가보는 '시 나들이길'도 이 가을에 가볼 수 있는 참 좋은 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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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10-2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과 열정이 다시 돋는 리뷰네요

프레이야 2012-10-21 19:21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의 추억과 열정이 되살아나면 좋지요. 이 가을에^^

댈러웨이 2012-10-2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시로 인사동을 들락거렸으면서도 정작 천상병 시인의 찻집 귀천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어머니의 그 낡은 시집을 제가 갖고 싶어요 프레이야님. 장생포, 곰섬, 그냥 이름만으로도 시어잖아요. 달리 시를 쓰지 않아도 되겠는.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내 청춘아, 시들아. 마음을 죄 흔들어 놓는 것, 그래서 못 읽겠는 것. 일요일 오후, 선선한 바람 한 자락이 그곳에서 불어오나 싶어요.


프레이야 2012-10-21 19:23   좋아요 0 | URL
저도 '귀천'을 가보진 못했어요.
우리나라 지명들은 그 자체로 시어가 되는 게 많은 것 같네요, 정말.
전 오늘오후 가까운 영화관에서 'Elles'보고 왔어요. 줄리엣 비노쉬는 어쩜 그리..^^
더 말 안 할래요.ㅎㅎ 좋더라구요 영화가.

비로그인 2012-10-2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도, 이곳에서 오랜만에 시를 읽게 되네요. 시는 자아도취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 문학공부란 말과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것, 새삼스럽게 다시 글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봅니다. 저도 방파제 끝, 그 환한 끝으로 가서 발을 디뎌보고 싶네요. 고운 책, 고운 리뷰 잘 들여다보고 갑니다. :)

프레이야 2012-10-21 19:29   좋아요 0 | URL
방파제 끝!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것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해 시어로 조탁해 내는 시인은
특별한 유전자를 가졌을까요? ㅎㅎ 시를 쓰니 시인이다,라고 하기에는 정말..
환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서서 눈을 감아봤어요.
말도 감정도 절제하는 법! 저도 새깁니다.

다크아이즈 2012-10-2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들은 시 리뷰는 잘 안 올리시던데 프레이야님 같은 분이 있어서 존경스럽습니다. 시중(?)에 나가보면 시 쓰는 사람들이 긴 글 쓰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데 실제로 리뷰 올라오는 것 보면 시 리뷰는 많이 없거든요. 시 쓰는 사람들은 시집을 많이 읽긴 하는데 시집 리뷰를 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시 쓰는데 바쁜 것 같은... 반면, 긴 글 쓰는 사람들은 제 글을 익히기 위해서라도 남의 글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적으로 할 말이 많은 건지...

간만에 시집 리뷰 만나 좋고, 80년대 시인 박정만을 만나게 돼서 더 좋고... 감삽니다. 프레이야님...

프레이야 2012-10-21 23:02   좋아요 0 | URL
앗 느와르님 오해가ㅠ 이 책은 시집이 아니고 시를 만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시인이 쓴 시와 삶과 사랑에 관한 에세이랍니다. 박정만 시인 좋아하시는군요. 참 불운한 시인들이 많아요. 저도 시집 리뷰는 쓴 적이 없는거 같네요. 시중ㅋ에는 웬 시인이그리 많은지ㅎㅎ

다크아이즈 2012-10-2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오해 아니어요.ㅋ 시인들 또는 평론가가 쓴 연애담이란 얘기 님이 한 것 봤는데, 시에 대한 리뷰와 관계 있길래 넘 반가운 맘에 제가 그렇게 표현했어요. 제 실숩니다. ㅠ 시에 관련된 리뷰는 거의 안 올라와서 넘 흥분했나 봐요. 크~

프레이야 2012-10-22 00:07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느와르님 펀안한 밤 ~~~

2012-10-22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0-22 20:58   좋아요 0 | URL
님, 이 에세이에서 시의 세계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르는 아리송한 길이지만 좋은 시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요.
전문적인 내용이기보다 시인들 나름의 개인적인 기억과 추억과 소회가 좋답니다.
느끼는 건 개인의 몫이지 싶어요. 날이 추워집니다. 포근한 저녁 보내세요^^

블루데이지 2012-10-2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책을 항상 저를 꼬옥 안고 이야기해주시는것같은 프레이야님글...
어제도 오늘도 감동~~~입니다.
내일도 부탁드려요..또 감동받을 준비 다 되어있습니다.

프레이야 2012-10-25 17:49   좋아요 0 | URL
호호~ 블루데이지님 날씨도 추워지는데 이렇게나 따스한 인사^^ 마음이 노골노골해져요.
오늘 전 작은딸 사물놀이경연대회 갔다왔는데 정말 잘하더라구요. 중학생 학교별 대회요.
그동안 연습 바짝 하더니 신명나게 즐기며 하는 모습에 감동했어요. 금상도 타고!
 

<첫 문장들>이란 제목으로 쓴 페이퍼가 또 날아갔다. 에효 ㅠㅠ

손이 오작동을 자주 한다. 얼마 전 '지지 않는다는 말' 리뷰도 그랬는데.

우선 서재지기에게 문의해 부탁해 놓았는데 어서 살려주셔야 할텐데...ㅠㅠ

댓글 주셨던 팜므느와르님에게 죄송하다. 추천 주신 분에게도.

칼의 노래, 김훈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도 주셨는데... 

작가는 '이'와 '은' 사이에서 밤새 고민하였다고 하는 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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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5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0-16 10:34   좋아요 0 | URL
서재지기한테 문의했는데 아직 답글이 없네요.ㅠㅠ
아휴..
김훈의 그 첫 문장은 누구에게나 참 인상 깊은가 봐요.
고맙습니다. 좋은하루~~~보내세요.^^

2012-10-17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0-16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빨리 살려달라고 조르세요.
님의 노고 깃든 글, 아까워서 어떡해요.
프레이야님의 첫 문장들 페이퍼, 탐 나는 아이디어였어요.
님 페이퍼 보고 나도 감동 받은 첫 문장들 옮겨 봐야겠다,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 첫번 째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가 되겠지요. 크~~

프레이야 2012-10-16 10:36   좋아요 0 | URL
서재지기에게 부탁했는데 아직 답글이 없고 ㅠㅠ
모든 글은 첫 문장에서 시작하니까 어떤 책 읽다가 첫 문장에서부터 확 끌리는 경우가 있지요.^^
느와르님이 사랑하는 첫 문장들, 제 카테고리 '첫 문장을 주세요'에도 트랙백해 주세요.~~~
같이 보게요^^

2012-10-16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10-16 13:10   좋아요 0 | URL
아ᆢ그런 방법이 있군요. 전 뭐든 준비없이 대책없이 이래요ㅎㅎ 가르쳐주신 대로 해볼게요 이제부터는. 고맙습니다^^

2012-10-1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페이퍼 살려서 기뻐요~

프레이야 2012-10-16 21:32   좋아요 0 | URL
히히~ 자주 이래요, 요즘 들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