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 황규관
낙엽도 이제 끝이 보인다
감빛 시간이 홀로 켜진 상태를
나는 고독이라 부르기로 했다
지난밤의 누추한 광기로부터
날이 밝으면 다시 고쳐 입을 옷매무새로부터
깊이 떨어져 있기로 했다
시간을 셈하지 않고
지는 싸움에 전력하는 눈빛을
이제 고독이라 부르기로 했다
가는 사랑과 오고 있는 사랑 사이에서
떠난 잎새와 남은 잎새가
남긴 파문 가운데서
슬픔을 더 많이 갖기로 했다
선도 악도 사라진 얼굴을 문지를 수 있는
거친 손바닥을 갖기로 했다
나도 그만 겨울이 되기로 했다
시집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에서/ 황규관 / 실천문학사
입동이 11월 7일이었으니 열흘이 지난 셈이다.
마음은 가을 끝자락을 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계절은 제 할 일을 놓치지 않는다.
초겨울 이즈음이면 마음이 늘 부산해지곤 했는데, 올해는 유난히 덜 부산스럽고 오히려 평안하다.
여러 해 앓았던 연말증후군도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겨울 들머리에 있는 오늘, 하늘도 바다도 새파란 물을 들여 단 한 점의 흠도 없이 눈부시게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 만추를 놓아주고 두 팔 벌려 '겨울이 되기로' 한다. 겨울이 되어야 봄이 되는 것이니. 계절은 돌고 나도 흐른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 황규관
천 길 벼랑 같은 사랑을 꿈꿀 나이도 지난 것 같은데
이 한여름에 목마름의 깊이가 아득타
영등포역 맞은편 사창가 골목에서 눈이
마주친 여인의 웃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종말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새로운 시간은
갈라 터진 목마름을 넘어
텅 빈 몸뚱이가 될 때라 읽었는데
아직 태풍이 오지 않는다
거센 바람과 빗줄기가
허공을 힘차게 가른 다음에야
얹힌 슬픔은 북받치는 울음이 되겠지만
어지러운 인간의 길은
범람한 강물이 투명하게 지우겠지만
태풍은 지금 적도 부근에서 끓고 있는가
짓밟힌 골짜기에서 몸 일으키고 있는가
차마 절망하지 못해서
아주 아프게 그러나 빗물에 씻긴 무화과나무 잎처럼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가
목마름을 태울 새로운 목마름은
오늘을 절멸시킬 새로운 오늘은
밥 / 황규관
이게 다 밥 때문이다.
이런 핑계는 우리가 왜소해졌기 때문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서
참 맑은 하늘을 보며
해방이란 폭발인지 초월인지, 아니면 망각인지
내가 내 맥을 짚어보았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그리운 동무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우리를 영영 떠날지도 모르지만
아들아, 밥은 그냥 뜨거운 거다
더럽거나 존엄하거나, 유상이든 무상이든
밥을 뜰 때 다른 시간이
우리의 몸이 되는 것
정신도 영혼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이게 다 밥 때문이다
더 먹어라, 벌써 비운 그릇에
한 숟가락 덜어주는 건
연민이나 희생이 아니다
밥은 사유재산이 아니니
내 몸을 푹 떠서 네 앞에 놓을 뿐
밥을 먹었으면 밥이 될 줄도 알아야지
나무 아래서 걸어 나오니
아직도 지평선이 붉게 젖어 있다
황규관의 시집을 만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점자도서관 책꽂이에서 한눈에 들어왔으니, 우연의 선물로 너무 근사하다.
노동시로만 읽지 않아도 좋을 시들이 빼곡히, 뜨겁고도 차가운 노래가 한 장 한 장 펼쳐진다.
요즘따라 갓 한 밥 냄새가 참 좋다. 푸근하고 따스하다. 밥은 너의 몸, 나의 몸이었구나.
밥을 푹 떠서 벌써 비운 그릇에 한 숟가락 더 덜어주었던 살가운 기억, 그것으로도 족하다.
"밥을 먹었으면 밥이 될 줄도 알아야지!" 좀 더 읽고 또 옮겨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