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따라 하루하루가 새롭다. 작은 것 하나, 스치는 순간 하나가 모두 낯설고 설렌다. 아마도 계절 탓이려니.
11월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오늘, 아침에는 다소 흐린 하늘이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맑고 청명한 얼굴을 보였다.
길가 가로수들도 울긋불긋, 노랑노랑. 초겨울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마저도 경쾌하다.
환하게 노랑등불 밝히며 하늘거리는 은행나무 터널이 점자도서관 가는 길목에 나있는데,
그이들의 손짓을 받으며 빠져들어가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차를 길가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넋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순간을 담았다.
너희들 참 밝고 어여쁘구나. 순리대로 가고 오고, 만나고 이별하고 어엿하구나!
한동안 낭독녹음한 도서 정리가 좀 밀렸다. ^^
2012. 10. 10 녹음 시작, 총 256쪽, 8시간 소요 완료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곷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진실한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쏟고, 줄기를 바로잡듯 부지런히 실천하며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 문장은 성급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정약용, [다산시문집],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255-256쪽)
2012. 10. 29 녹음 시작, 총 390쪽, 13시간 소요 완료
이메일 언어를 통한 놀라운 사랑의 결실과 세심한 심리 분석 및 묘사가 흥미롭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의 후속작이다. 꼭 4년 전 나는 이 책을 녹음했는데 당시
내 마음의 어떤 작용이 그 책을 읽게 했다. 녹음해 둔 걸 며칠 전 들어보니 그때 내 목소리엔
모종의 무늬 같은 게 아른댔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친근감은 거리를 좁히는 게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에요."
에미 로트너가 레오 라이케에게 쓴 이메일 문장이다.
나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후 나의 4년이 흘렀고 나는 또 그때의 나와는 조금 다르기도
같기도 한 모양새로 또다른 의미의 '일곱번째 파도'를 기다린다.
산다는 건 설레는 일 아닌가. '모든 것을 주는 사람에 대한 환상' 그것이 일곱번째 파도라면
어느 한 사람만은 '한 사람'에게 그 파도가 될 수도 있다는 설렘.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 운명.
레오와 에미는 그 파도를 놓치지 않을 만큼 영리하고 솔직하다. 물론 기나긴 이메일 언어와 몇 번의 만남, 갈등과 화해,
탐색과 이해의 시간들을 거쳐 서로 거리를 '극복'했으니. 역시 사랑하면 가까이 있고 싶고 가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사랑하기 쉬운 것인지. 육체적 호감과 육체적 거리에 '말'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는 결론은 좀 힘이 빠지지만 그게
진실 아닐까.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의 상관관계, 문장부호 하나하나의 의미, 번호매기기 질문과 대답, 재치있는 대화 등 재미난 요소가 많은, 다니엘 클라타우어 장편소설.
2012. 5. 21 녹음시작 녹음완료. 1차 편집 중, 총 495쪽 중 446쪽까지 완료.
다음 주면 마칠 듯. ^^
세번째 읽으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올리브는 어쩜 그렇게 살아서 튀어나올 정도로
생생할까. 어쩜 이렇게 사람의 구질구질한 이면과 내면을 짚어내 두근대게 하는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면 세상의 이러저러함에 의연하고 현명해지라는 응원을 들을 수 있다.
구역질 나는 순간의 기억들마저도 생의 프레임 밖으로 내치는 게 아니라 안으로 끌어들여
안고 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인생이 내게 준 게 많든 적든, 아니 많다고 생각하든 적다고
생각하든, 적절하다고 여기든.
둘러가는 듯 하나로 아우르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인물들이 남몰래 간직한 이런저런 상처와
비밀로 너덜한 가슴의 중심부를 적중하는 화살처럼 날렵하다.
'삶을 마법으로 만들 줄 아는 분이자 내가 아는 최고의 이야기꾼 어머니에게'라는 헌사로
시작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역시 그녀에게도 이야기꾼 어머니가 있다.
때때로, 지금 같은 때, 올리브는 세상 모든 이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걸 얻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필요한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이 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담배 피우는 앤을 바라보며 생각하건대, 그런 안정감을 갖는 데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아이가 필요했다면
사랑으로는 불충분했던 게 아닐까.
- 378 쪽 "불안" 중
다음 녹음도서는 이정록 시집 <어머니 학교>, 다음 편집 도서는 한창훈의 <꽃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