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유독 지글지글 익은 부침개와 막걸리가 생각난다. 마침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아침 6시에 나갔다가 7시에 다시 들어왔다. 카센타에 맡겨둔 차가 다 고쳐져서 차를 찾아오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남편이 갑자기 부침개를 해달란다. 비도 오고 부침개 좋지하며 전 부칠거리를 찾아보는데 호박, 감자, 양파, 당근은 있다. 중요한 건 부침가루와 밀가루 어느 것 하나 없었다. 결국 옆집 언니에게 전화했다. 옆집 언니네 옆지기도 마침 오늘 쉬신다고 함께 부쳐 먹잔다. 그래서 막걸리는 우리가 사가겠다고 하고는 언니네 집에 모였다. 또 친하게 지내는 집이 있는데 남편이 문자로 자랑해야겠단다. 그랬더니 근처에서 일하시던 그분이 점심 시간쯤에 부침개를 드시러 오셨다. 사실 언니랑 둘이서 준비하면서 나는 감자를 꽤 많이 깎았다. 감자전을 좋아하신단다. 그래서 감자에 부추를 넣은 감자전과 감자, 당근, 양파, 부추를 넣은 야채전 두가지를 부쳐냈다. 평소 맛있다는 말에 인색하시다는 형부는 정말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주고 언니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이들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2시까지 어른들끼리 모여서 대낮에 부침개에 막걸리를 마신 것이다. 손이 큰 언니가 넉넉하게 준비하여 집에 갈때 손에까지 쥐어주고, 유치원 다녀온 아이들이 간식으로 먹었다.
이 동네에 이사오고나서 한동안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했는데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서 친하게 되어 언니네 식구와 가깝게 지낸다. 평소 말이 없는 남편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단다. 게다가 엄청 권위적이시다. 안동 권씨라는데 내가 아는 다른 안동 권씨도 참 권위적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 것 같다. 요새는 다정한 말도 잘 하신다고 하고, 우리랑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할때 농담도 곧잘 하신다. 처음 언니랑 스포츠댄스를 시작할때도 난 남편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언니는 비밀리에 다녔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상하게 말해서 싸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비밀로 하지 않는다. 왜냐면 남자들끼리도 많이 친해졌기 때문이다. 언니네를 보면 결혼해서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단다. 그냥 싸울 일이 생겨도 싸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단다. 그냥 말하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싸울 일은 싸우고, 화해할땐 또 화해하고, 용서를 구해야하면 용서를 구해야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사실 우리 부부는 참 많이 싸웠다. 싸우지 않고 해결되는 일이 별로 없었던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싸울 일이 많이 줄었고, 서로가 싸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다. 그냥 덮고 지나갔다면 그리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언니네랑 친하게 지내던 다른 가족과도 친하게 되었다. 마침 남자들끼리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물론 의사소통에 가끔 오해가 생기기도 하다. 우리는 '아'하고 말했는데 그쪽은 '어'하고 알아듣기도 하니 말이다. 이 부부도 참 대화가 없다. 아내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서 각자 요일별로 저녁에 아이를 맡는다. 그러다보니 자기 요일이 아닌 날은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고 꼭 약속을 잡게 된단다. 일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도 함께 노력해야한다게 남자 입장에선 억울했던 것처럼 늘 한마디씩 했었는데 우리 부부는 당연히 남자가 도와줘야하는게 아니냐고 말해주니 점점 당연한 일이 되어 억욱해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집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니 혼자서 하루를 잘 보내는 것 같다. 다만 학원으로 돌아다녀야하니 많이 고달플 것도 같다. 게다가 아빠가 챙겨주는 날엔 외식을 하거나 부실하게 때우는 것 같아 조금 안쓰럽긴 하다. 늘 현준이보다 먹는 양이 적다. 하지만 이것도 이 부부의 사는 법이다. 맞벌이를 하니 남자끼리 동갑이긴 하지만 그 집은 집 마련이 빠르고 대출금도 거의 없단다. 이런 부분에선 나도 사실 혹 한다. 그래도 아직 우리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엄마 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가끔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술도 한잔씩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 많이 친해지게 되었고, 각자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것들을 배우게 된다.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나쁜 점은 나쁜 점대로 다른 부부를 보면서 배우는 것이 생기니 그것도 또 괜찮은 것 같다.
사람들 만남은 정해진 수순을 거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만나야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고 헤어져야 할 사람은 언젠가 또 헤어지기 마련이 아닌가하고 생각을 한다. 두 부부는 우리가 멀리 이사할까봐 멀리가지 말라고 재차 당부한다. 처음엔 친정 근처로 갈 수 있을때 가야지 했는데 지금은 또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곳도 그리 나쁘진 않잖아한다. 아직 시간이 좀 더 있으니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