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라딘에서는 도서정가제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글이 대부분이다.
오늘도 알라딘 서재의 핫한 이야기는 여전히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글들이 차지한다.
알라딘 메인 화면에는 도서정가제 찬반 의견을 투표해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도서정가제라......
어릴 땐 무엇이든 정가를 주고 구매했다. 과자, 사탕, 빵, 라면, 아이스크림, 연필, 공책, 수첩, 책......등등
권장소비자 가격이라고 써 있는 가격을 그대로 주고 샀다.
지금도 권장소비자 가격을 그대로 받는 곳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어떤 물건들은 권장소비자 가격이 없는 것들도 있다.
언젠가부터 물건의 가격은 매장마다 천차만별이 되었다.
소소한 물건은 동네 구멍가게나 편의점을 이용하지만, 대량의 물건을 구매할때는 마트를 이용하게 된다. 가격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동네 구멍가게가 피해를 본다고해도 내 주머니 사정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인근에 대형마트가 없기도 하고, 대량의 물건을 사는 것도 불가하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할인혜택을 제대로 누리며 살지 못할 거란 생각을 가끔 한다.
지금은 익숙한 책값 할인이, 예전에는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정가 얼마하면 그 값을 지불해야 내 책이 되었다.
책을 사는 일은 그 값이 얼마든 아까워하지 않았다. 살 수 있는대로 살 수없는 게 안타까웠을 뿐.
대신 더 많이 사고 싶은 욕구는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한보따리씩 책을 사모았다.
그것조차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점점 새책도 싸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인터넷 서점이었다.
가끔 출판사에서 구판할인해서 내놓는 시집들은 두말할 것없이 샀다.
인터넷 서점과의 인연은 단연 새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시작했다.
책을 싸게 사다보니 아무래도 한권이라도 더 사게 되었던 게 사실이고, 택배로 배송되니 책 무게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진 것도 한몫했다. 이 책 저 책 장바구니 가득 담아도 무거워서 어찌 들고 가지? 하는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
게다가 알라딘으로 바꾼 이후 서재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고, 책을 사는 일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책 이야기 등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책을 사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라 독자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책을 사지 않는다고해서 책을 읽지 않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장 가득 사놓은 책들을 모두 읽지 못한 나는 책을 사는 소비자의 성격도 함께한다.
읽고 싶은 책이라면 어떤 가격에 상관없이 산다고 말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읽고 싶은대로, 갖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책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요새는 책구입비가 확연히 줄었다.
내 주변에는 책 사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뭔가 다른 걸 줄여서 구입한 책을 타인은 쉽게 빌려달라고 한다.
솔직히 빌려주기 싫다. 자신은 몇십만원씩하는 장난감을 아이에게 사주는 사람인데, 난 그런 장난감 대신 책을 사는 것인데, 어찌 내게 그리 쉽게 빌려달라고 말하는지 얄밉다.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 다만, 정말 책을 읽고 싶지만 책을 살 수 없는 여건의 사람에게는 책을 빌려주거나 선물한다.
도서정가제를 통해 동네서점과 대형서점 그리고 인터넷 서점이 불공정한 거래가 아닌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또 어려운 위기에 처한 출판업계가 살아난다고 말한다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과연 그걸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든다.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책값에 민감할 수 있냐고? 책 사는 것을 아까워할 수 있냐?고
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진 게 얼마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책도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값을 할인해서 파는 인터넷 서점때문에 동네 서점이 문을 닫았다고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인터넷 서점때문에 안 사도 되는 책까지 궁금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 서점은 인터넷 연결만 되어 있으면 다양한 종류의 서적을 마음대로 조회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책에 관한 의견까지 들을 수 있어서 구매의지가 더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건 출판업계에 좋은 게 아니었는가 말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좋은 책을 싸게 사고 싶다.
좋은 책을 싸게 사는 것이 왜 나쁜가?
출판사가 경영난에 허덕여서? 좋은 책의 질이 낮아보여서?
난 그런 거 잘 모르겠다.
책을 통해서 배우고, 생각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 좋은 책을 싸게 사야 계속해서 많이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밖엔 안든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 그런 거 잘 모른다.
다만, 가난한 사람에게도 읽을 수 있는 기회뿐만아니라 책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책은 돈 있는 사람들만이 독차지해서는 안되는 가장 유익한 물건이니 말이다.
난 가끔 종로서적을 생각한다.
종로서적에 묻어두었던 추억들을
종로서적이 사라졌다는 것이
마치 나의 추억이 사라진 듯
종로에 가면
여전히 종로서적이 있을거라고
종로2가 길가를 서성일 것 같다
여기 어디였는데 하고
종로서적 계단을 오르내리며
키워왔던 꿈들이 있었는데
내 아이도 이곳에 데려와 책을 읽혀야지 했는데
엄마는 처음 가본 종로서적에 반했었다고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혹은 혼자서
종로서적 어느 구석에서
책 한 권 다 읽고나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용돈 모아 사고 싶은 책을 사는 날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