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서 많이 배운다.

책에서 읽은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을 쌓으며 배우는데 

배움에 지불해야 하는 댓가가 너무 아프다.


상처를 받으면서 배우는데 다들 잘 버텨보라고 한다.


잘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나는 싸우고 있지 않은데 누군가와 대결을 하고 있는게 아닌데 이겨야 한다니.... 그게 더 슬프다.


상처를 받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작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채기를 남긴다.


선배는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건강한 사람들과 건강한 대화를 많이 하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건강한 사람들과 건강한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든지가 좀 된 것 같다.

가족들도 모두 각자 바쁘게 지내다보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웃고 떠든지가 좀 된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읽기와 수영. 

일단 정리해야 하는 것들부터 하나씩 정리하고,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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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그리운 것들


가끔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컥 눈물이 쏟아질 때가 있다

그녀를 떠올리며 전화를 걸오보고 싶지만 안부조차 물을 수 없다

거기에서 잘 지내고 있냐고 묻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며 망설인다 

나는 여기에서 잘 지내기도 하지만 

때론 잘 못 지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전화를 걸어 말을 할 수가 없다

찾아갈 수도 없다

그게 가장 슬픈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파란색 반짝이는 실로 짠 목도리를 두르며 

또 다른 그녀를 생각한다

잘 지내고 있겠지하고 마음으로만 생각하다 그녀의 이름을 한번 끄적여본다


그리움을 가슴에 담아 두고 산다는 건 아플 때도 있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을 내가 그리워한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이 내게 그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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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중간고사기간인데 아들은 일요일 저녁부터 몸의 이상을 느끼고 어제 아침 신속항원으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중간고사 대비한다며 나름 열심히 공부 준비하며 한달 전부터 스터디카페에 다녔다. 그런데 어제 확진되어 오늘부터 실시되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대신 기말시험 대비 인정점수를 부여받는다는데 이게 정말 합리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코로나를 숨기고 학교에 가서 시험보라고 하고 싶었다. 머리 싸매고 한숨 쉬는 아들이 이번 시험 준비로 고생했는데 그 결과를 확인받지 못하게 되자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안쓰러웠다.

확진자들만 따로 모아 시험 볼 수는 없는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어느새 고2가 된 아들에게는 대입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시험인데 응시하지 못한다니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픈 아이들에게 시험을 보게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며 시험 응시기회를 주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하면서 다음 기말시험부터는 응시기회를 준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결정으로 여하튼 내 아이는 피해를 보게 되었다.

아들은 ˝엄마 난 왜케 뒷북이지..예전에 독감도 다 끝나갈 무렵 혼자 걸리고, 이번에도 우리반에선 나만 걸려서 빠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오늘 일을 우린 언젠가 기억하고 있을까? 이번 시험보다 더 중요한 시험은 계속해서 있어. 이 일로 인해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하니
˝에휴 다시 계획을 세워볼게. 기말시험을 잘 봐야지. 살면서 좋은 경험했다 생각해야지 뭐.˝한다.
˝이건 좋지않은 경험 아냐?˝ 아들은 ˝좋은걸로 해˝하며 일괄했다.
나보다도 더 속이 깊은 아들은 공부하느라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며 잘 먹고 얼른 회복할게라며 나를 오히려 안심시킨다.

아들, 솔직히 엄만 안 괜찮은데..오히려 네가 더 괜찮다하니 속상한 마음이 조금 달래진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줘. 고맙다, 잘 자라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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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4-2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아이가 벌써 고2라니 시간의 흐름을 실감합니다. 코로나 걸려 시험 응시 못하는 것 저도 정말 너무 불합리한 것 같아요. 이게 말이 되나요? 확진자들끼리 모아서라도 시험 응시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 안타깝네요. 그런데 아드님 정말 대견하네요. 어떻게 그렇게 담담하게 잘 받아들이나요.

라로 2022-04-2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 아이가 벌써 고2라니!! 정말 저 늙은 줄 모르고,,, ^^;; 그나저나 아이가 그렇게 의젓하게 자랐군요!!!! 코로나 환자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학교는 더 좋은 방침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시험만 문제가 아니니 다시 건의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안타깝네요. 그래도 님의 글을 읽으면서 두 모자가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6권의 책을 빌려왔다.

원래는 김호연 작가의 책을 빌려오려고 했는데 2권 다 대출중이라 더 기대가 생겼다.

[불편한 편의점]은 예약까지 걸려 있어서 한참 뒤에나 빌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책이 있는 곳으로 가서 책장을 둘러보고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골랐다. 

이기호, 이금이, 김이설은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가들의 책이라 반가운 마음에 꺼내들었고,

[붕대감기] 윤이형은 누구지? 하는 마음으로 꺼내 들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다시 읽어보려고 하고, 어떤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 [허구의 삶]을 먼저 집어 들었다. 첫장부터 너무 흥미로웠다. 동창 밴드에 익명의 초대장이 올라오고, 초대장은 다름아닌 부고장이다. "마흔아홉은 친구의 부고를 받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p.7)라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책을 손에 잡자 '허구와 상만'의 삶에 호기심이 일어나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수 없었던 허구와 상만의 모습이 그려지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을까? 하고 나를 돌아본다.  


"삶은 어느 한 순간 정지시키고 리셋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억은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삶 자체를 편집할 수는 없는 것이다."(p.275)


결혼에 대해 긍정적이던 나였지만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결혼으로 인해 맺어진 관계들에 지칠 때가 있다. 서로가 서운하고 속상할 수 있지만,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자주 치밀어 오르는 요즘이다. 한없이 요구하고 베풀기를 반복하며 자신들이 한 만큼도 못한다며 책망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괴롭다.   

그때마다 시를 한편 읽으며 마음을 다독인다.


지금은 지나가는 중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것들이다/ 비가 내리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 불이 켜지는 것 아니라 지나간다/(중략)

눈이 너무 부셔/ 눈물마저도 은빛 지느러미처럼/ 아름다웠던 날들 속으로/ 눈먼 사랑이, 모닥불이 지나간다/(중략)

모두가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모두 지나가는 중 


-권대웅 시집 <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며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지금 모두 지나가는 중'이니......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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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많은 나는 버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TV나 인터넷에서 깨끗하게 잘 정돈된 집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집기들과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교체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다보니 지금은 불필요한 것들도 나중에 필요할까봐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사는데 정말 유용하게 매일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 아닌 것들도 많아 베란다 선반에 쌓아있다.


김혜진의 [중앙역]을 읽으면서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여든걸까?  예전에 봤던 노숙자들이 한편 떠오르며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거뭇거뭇 더러운 얼굴과 새까맣게 떼가 낀 손톱, 악취가 나고, 절대 그들 옆에 갈 수 없고 그들이 옆으로 오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어느날에는 역사에 있던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강탈당한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나를 그곳에 버릴 수 있을까? 악취와 오물이 뒤덮인 보호받을 수 없는 그곳에 자신을 그곳에 버려둔 사람들, 그들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 자신을 버렸을까. 작은 물건하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지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잠시 만났다. 몇개월만의 만남이었다. 자주 연락 하지 못하고, 서로가 사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니 더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토요일에는 어쩌다보니 상담이 1건이었다. 상담 하나 하러 먼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비합리적이지만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나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서로 쏟아놓지만 친구는 아이들 학원가는 시간, 인강들어야 하는 시간 등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친구는 요새 시간이 아까워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한다. 일본어 원서 읽기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하루 3~4시간 밖에 잠을 안 잔다는 친구, 하루종일 직장에 있다가 돌아와서 밤 12시 이후에나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 친구는 시간이 너무 없고,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다시한번 더 말했다. 


친구는 최근에 읽은 책을 얘기하며 김호연 작가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고 한다. [불편한 편의점] [망원동 브라더스]를 찾아봐야겠다고 기억해두었다.

경춘선 숲길을 함께 걸었다. 사람들이 많았고, 햇빛이 좋았고, 길가에 핀 꽃들이 예쁜 곳이었다. 더이상 경춘선 기차가 달리지 않는 선로를 사람들의 산책길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친구와 나란히 걸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 만나기가 쉽지 않고, 점점 더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서 만나고 돌아오며 우리는 과거로부터 연결되어 온 끊어지지 않은 끈이었음을 생각한다. 무수히 만나고 스쳐갔던 많은 인연의 끈들을 모두 다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남겨두는 게 아닌가. 친구를 만나 속 얘기를 꺼내놓고, 그렇게 돌아설땐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 같다.

친구는 최근에 다시 블루레이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택배를 받으면 잔소리가 심하다며 택배기사님을 만나자 그것을 찾아달라고 한다. 모아두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사모은다는 친구, 버리고 모으기를 반복하며 일상을 조율한다. 


삶에 기대가 많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기대하고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어떠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은 특히 더 그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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