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이 많은 나는 버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TV나 인터넷에서 깨끗하게 잘 정돈된 집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집기들과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교체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다보니 지금은 불필요한 것들도 나중에 필요할까봐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사는데 정말 유용하게 매일 매일 사용하는 것들이 아닌 것들도 많아 베란다 선반에 쌓아있다.
김혜진의 [중앙역]을 읽으면서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왜 그곳에 모여든걸까? 예전에 봤던 노숙자들이 한편 떠오르며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거뭇거뭇 더러운 얼굴과 새까맣게 떼가 낀 손톱, 악취가 나고, 절대 그들 옆에 갈 수 없고 그들이 옆으로 오게 될까봐 조마조마했다. 어느날에는 역사에 있던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강탈당한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나를 그곳에 버릴 수 있을까? 악취와 오물이 뒤덮인 보호받을 수 없는 그곳에 자신을 그곳에 버려둔 사람들, 그들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 자신을 버렸을까. 작은 물건하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지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잠시 만났다. 몇개월만의 만남이었다. 자주 연락 하지 못하고, 서로가 사는 곳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니 더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이번 토요일에는 어쩌다보니 상담이 1건이었다. 상담 하나 하러 먼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게 비합리적이지만 나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나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여 만났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서로 쏟아놓지만 친구는 아이들 학원가는 시간, 인강들어야 하는 시간 등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친구는 요새 시간이 아까워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한다. 일본어 원서 읽기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하루 3~4시간 밖에 잠을 안 잔다는 친구, 하루종일 직장에 있다가 돌아와서 밤 12시 이후에나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 친구는 시간이 너무 없고,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다시한번 더 말했다.
친구는 최근에 읽은 책을 얘기하며 김호연 작가 책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고 한다. [불편한 편의점] [망원동 브라더스]를 찾아봐야겠다고 기억해두었다.
경춘선 숲길을 함께 걸었다. 사람들이 많았고, 햇빛이 좋았고, 길가에 핀 꽃들이 예쁜 곳이었다. 더이상 경춘선 기차가 달리지 않는 선로를 사람들의 산책길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친구와 나란히 걸으며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 만나기가 쉽지 않고, 점점 더 인간관계가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오래된 친구를 찾아가서 만나고 돌아오며 우리는 과거로부터 연결되어 온 끊어지지 않은 끈이었음을 생각한다. 무수히 만나고 스쳐갔던 많은 인연의 끈들을 모두 다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남겨두는 게 아닌가. 친구를 만나 속 얘기를 꺼내놓고, 그렇게 돌아설땐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 같다.
친구는 최근에 다시 블루레이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남편이 택배를 받으면 잔소리가 심하다며 택배기사님을 만나자 그것을 찾아달라고 한다. 모아두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다시 사모은다는 친구, 버리고 모으기를 반복하며 일상을 조율한다.
삶에 기대가 많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기대하고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어떠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은 특히 더 그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