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생각할때면 얼마나 더 함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내가 자란만큼 부모님의 흰머리가 늘고 주름살도 늘었다. 점점 건강도 약해지셔서 걸핏하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신다.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늘 부끄럽기만 하다. 머리가 커가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함께 키워갔다. 늘 뭔가를 해주지 않은 부모님들에 대한 섭섭한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막상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보니 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점점 힘이 없어지는 부모님, 어제 결국 오빠네와 합쳤다.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하나뿐인 아들은 부모님 집을 팔아 자신의 사업 자금을 마련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했다. 부모님은 오히려 기쁘게 집을 팔았다. 대출을 받고 대출금에 허덕이는 것보다 자신들이 더 늙고 추레해져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아들에게 무언가라도 해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속이 후련하시다고 하셨다.
오빠와 나는 사이 좋은 남매가 아니다. 언니들은 그냥 오빠 뜻에 맞춰주기도 잘 했지만 나는 어기장도 잘 놓고 오빠 말에 고분고분해본 적이 거의 없다. 오빠의 생각과 늘 부딪치기 일쑤라 다투기도 참 많이 했다. 부모님들은 늘 오빠에게만 잘 해준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요구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보니 오빠는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다. 늘 할아버지 할머니가 끼고 살아서 엄마는 오빠가 살갑지 않았단다. 잠을 잘때도 품안에 안고 자본적이 없었단다. 아버지야 워낙 자식들에 대해서는 마음뿐 표현하지 않으시는 분이셨으니 오빠는 부모님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게 맞는 것 같다. 오빠는 고등학교 시절도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오빠에 대해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첫째였는데도 가장 나중에 가정을 꾸리게 된 오빠는 마음 좋은 새언니를 만났다. 가끔 언니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할때면 오빠때문에 속상했던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러면 여느 시누이라면 그런 새언니가 미울테지만 언니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오빠는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없다.(물론 이건 내가 볼때 너무 부족하단 얘기다.) 늘 자기 중심적이라서 자식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도 아버지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지 않다고 느낄때가 많다. 언니가 아이를 위해서 책을 샀더니 쓸데없는데 돈을 썼다고 했단다. 오빠는 책장 가득 책을 쌓아놓고 사는 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듣는 새언니의 입장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 여름 휴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7월에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남편의 한달 수입이 반으로 줄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사치스러운 여행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남편은 마음을 훌쩍 비우고 어디로든 떠나보자고 자꾸만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결국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여름 휴가를 계획하면서 형부는 함께 가자고 했다. 언니네와는 종종 함께 여행을 다녔다. 함께 가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즐거운 여행이 될 거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번 여름엔 온 가족이 총출동하자며 친정부모님과 오빠네 식구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물론 유방암 수술을 한 작은 언니네 두 식구는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었다.(두 사람은 수술 직전 홍천과 양양에 다녀왔다.) 아픈 사람 빼놓고 가기가 마음이 편치 않다는 엄마를 설득한 건 작은 언니, 회복되면 괜찮아지니 걱정하지 말라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오히려 자신때문에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더 미안할거라고 말이다.
영월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4식구가 먹을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휴게소 음식을 먹는 것보다 간단한 도시락과 컵라면을 먹으며 비용을 절감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 아이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한껏 들떴다. 7시에 모두 모여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고 영월 한반도 지형을 보러 출발했다.
한반도 지형 앞에 선 아이들,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은 신기해하며 한반도 지형을 살펴보았고, 5살 꼬맹이들은 그저 산길을 걸어 내려와 딱 트인 전망 앞에 신나했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 뗏목체험은 할 수 없었다. 현준이는 다시 타보지 못해서 아쉽다고 했지만 다음에 또 탈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도 운행되지 않았다. 다시 들어갈 기회를 놓치고 장릉으로 발길을 옮겼다.
단종의 단촐한 무덤 앞에 섰다. 릉을 향해 뻗은 소나무 가지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임금을 향해 고개를 숙인 소나무의 모습이었다. 보통 일자형의 신도가 아닌 ㄱ자로 꺽인 신도가 내려다 보였다.
뒷짐을 지고 열심히 구경에 나선 엄마의 뒷모습이다. 이번 여행동안 엄마는 차분하게 이것저것 둘러보는 일이 신기하고 재미있으셨단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엄마에게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운 날씨에 힘이 드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꿋꿋하게 이곳 저곳을 둘러보셨다.
"아, 전번에 TV에서 봤던건데......" 엄마의 눈을 즐겁게 해주던 TV 속의 것들을 진짜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장릉에서 나와 길 건너편의 식당에서 곤드레밥을 먹었다. 곤드레를 넣어 밥을 지은 것을 양념장에 비벼 먹는 것인데, 먹는데 집중한 나머지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아이들도 곤드레밥을 곧잘 먹었다. 다 드시고 나와 엄마는 여기 곤드레밥은 가짜야. 하신다. 왜요? 물었더니 곤드레와 밥을 따로 하여 섞어서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밥과 곤드레가 섞이지 못하고 자꾸 겉돌아 먹기에 불편했단다. 엄마 말을 들으니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작년에 먹었던 곤드레 국밥이 더 좋았다.
점심을 먹고 고씨동굴에 들르기로 했다. 표를 끊으려고 보니 표를 사고 2시간 있다가 입장이 가능하단다. 그래도 보고 가야한다고 아이들이 아우성쳐서 표를 끊었다가 결국에 환불도 안된다는 걸 환불하고 김삿갓 계곡 근처의 예약해놓은 팬션으로 갔다.
팬션에 짐을 풀고 아이들 수영복 입혀서 계곡으로 나왔다.
차가운 계곡 물에 흠뻑 젖어 아이들과 즐겁게 놀았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려 계곡에 물이 엄청 많았다.
계곡물에 발담그고 앉아 쉬는 모습이 많이 지쳐보이는 엄마, 그래도 시원하니 좋으셨단다.
계곡에서 실컷 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위한 준비를 했다. 팬션에서 준비해준 평상에서 숯불에 삼겹살과 소시지를 구워 먹었다. 물놀이로 허기가 진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엄청난 양의 고기와 밥을 먹었다.
다 먹고 난 후 설거지는 오빠가 도맡아서 했다. 이날 말고 다음날에도 오빠는 계속해서 설거지를 해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현수와 나와 엄마, 엄마와 단둘이 사진을 찍겠다니 현수가 와서 안겼다. 여행한 첫날이 엄마의 생신이었다.
어느새 예순아홉을 살고 계신다. 첫날 새언니가 사온 케잌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할머니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엄마는 잊지 못할 생일을 맞이하셨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낙산으로 가기 전 전날 못 본 고씨동굴을 보고 가자고 했다. 물론 우리 가족은 작년에도 다녀왔지만 동굴 속은 여전히 신비로웠다. 현수도 어느새 자라 혼자 힘으로 동굴을 탐험했다.
많이 힘드셨겠지만 동굴체험을 끝까지 해내셨다. 우리가 밖으로 나갔을때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만났었는데 우리 아이들과 엄마가 끝까지 다녀왔단 얘기에 도중에 나온 걸 후회하셨다.
제주도의 화산동굴을 이미 다녀오신 엄마는 석회암 동굴을 마냥 신기해하셨다. 동굴 속에 흐른 물, 물에 의해 생겨난 석순, 종유석, 기둥, 탑 모양, 기이한 형상들, 자연의 오묘함에 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단다.
이렇게 영월에서의 1박 2일은 끝이다. 박물관에도 가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을 또 기약해야할 것 같다.
영월 김삿갓 계곡에는 작은 언니도 다음에 데려가달라고 했으니 다음에 또 영월에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영월에서 바닷가로 가기 위해 또다시 고속도로를 탔다. 양양 낙산에어포트 콘도가 우리의 목적지, 콘도에 짐을 풀고 바로 바닷가로 달려가 해수욕을 즐기기로 했다.
하늘은 맑고 날씨는 뜨거웠지만 차 안은 에어콘 바람으로 시원하기만 했다. 전날 계곡에서 젖은 축축한 운동화를 벗어 버리고 차창 위로 다리를 올렸다. 현수가 자다가 깨서 잠깐 나의 배 위에 누웠고 엄마 발 위에 자기 발을 포갰다. 언젠가는 내 발보다 더 큰 발이 되겠지. 하고 생각하니 나도 어느새 엄마처럼 늙어가겠구나 싶었다. 그때 난 또 어떻게 늙어가게 될까. 엄마처럼 호기심 많은 소녀의 모습으로 이곳 저곳 둘러보며 좋아라 손뼉을 칠까.
바닷가 모래밭, 아이들은 모래로 놀이를 한다. 원초적인 즐거움이 도사린 곳이다. 모래밭에서 실컷 놀고 바다로 뛰어들어 그 열기를 식힌다. 바다에 빼앗긴 체온을 다시 모래밭에서 충전한다. 아이들의 즐거움은 아무 것도 없는 바다에서도 가능하다. 확 트인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그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에 휘청거리는 일도 즐겁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모래사장에 묻었다. 뜨끈한 모래 속에서 찜질을 한다. 근육통이 좀 나으셨나 모르겠다.
바닷가에서의 놀이를 마치고 저녁에는 회를 먹었다. 아빠는 회를 엄청 좋아하신다. 어마어마하게 회를 먹었다. 소주도 마셨는데 나는 세잔 마시고 바로 뻗어서 잤다.
다음 날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한번 더 놀자고 했지만 다들 바다보다는 낙산사에 가자고 했다. 산불로 소실된 절이 복원되었기에 낙산사에 들르고 형부가 잘 아는 식당에 들러 물회와 섭국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우리가 낙산사에 들른 날은 음력으로 칠석날이다. 칠석에는 절에서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법회가 있다. 낙산사에서도 스님이 법회를 주도하고 계셨다. 엄마는 보타전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고 나왔고, 또 해수관음상에서도 절을 하셨다.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현수가 할머니를 따라 절을 했다. 복전함 아래의 두꺼비를 만지면 두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현수와 엄마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계실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낙산사를 둘러보고 기와불사를 하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 구경도 실컷할 무렵, 갑자기 온 몸에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하고 속이 갑갑해졌다. 갑갑한 속 덕에 맛있는 물회와 섭국은 한 수저씩 맛만 봤다.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에서 잠을 청했지만 체한 것 같은 속은 뚤리지 않았다. 모두 엄마네 집에 모여 저녁을 먹는데 남편은 등심과 채끝을 사왔다. 고기를 굽는 족족 아이들이 열심히 먹었다. 아, 나도 먹고 싶다. 결국 몇 점 집어 먹고는 모두 다 토해냈다.
며칠 고생한 끝에 속이 가라앉았고, 그렇게 즐거웠던 여행을 허무하게 마무리했다.
이제는 나이 들어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언제 다시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우리가 어렸을때 아빠는 텐트를 사고 택시를 대절하여 홍천강가에서 캠핑을 하기도 했고, 양평의 어느 계곡에서 캠핑을 하게 하셨었다. 우리의 여름방학은 주로 외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것이었지만 아빠는 자식들을 위한 나름의 여행을 계획하셨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뭉쿨한 그 무엇이 남아 있다. 엄마는 우리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오셨고, 아빠는 우릴 위해 텐트를 치고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없이 맑고 큰 소리로 웃어대며 강가에서 땅을 짚고 헤엄을 쳤다. 바람을 넣은 보트에 한명씩 태워 물놀이를 시켜주셨던 아빠가 지금은 한없이 약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고, 사위를 손을 잡고 간신히 한 걸음 한걸음 떼어 새로운 곳을 둘러 보신다. 우리에게 특별했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자주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과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사진 찍는 것을 어색해하시며 찍지 말라던 아빠는 젊은 시절의 멋진 모습을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늙어가는 모습을 기억하듯 젊었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흰 피부가 유난히 빛나던 엄마와 아빠는 어디를 가셔도 귀티나는 모습이셨다. 엄마와 아빠의 늙어가는 모습은 그 어느 모습보다 더 아름답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다시 새롭게 보기 시작한 나의 마음이었다. 가족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함께 하는 것을 즐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이번 여행, 내 마음은 커다란 마음의 빚을 청산한 느낌이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적셔오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여전히 함께 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