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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생에 '그냥'이라는 대답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는 애타게 살고 싶은 오늘일 수 있는 그날을 내가 살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기 시작한지 한참만에야 이 책을 다 읽었다. 조금은 거친 문장들에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그녀 나름의 쿨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건 문장들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고, 또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이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바라봐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 마음이 비뚤어진 것 같다. 이 책 한권을 읽고 그녀에 대해 왜 이리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는 언니의 준비물을 준비하러 간 놀이터에서 만난 오빠에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울고 왔다는 말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를 알면서도 그녀를 다독이며 안아주고,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주절주절 끊임없이 말을 하셨다는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그녀에게 상처는 혼혈이라는 것 하나뿐인 것만 같았다. 무역업을 하신 아버지는 경제력으로 무능하지 않으셨을 것 같고,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어머니는 교육에 무지하지 않으셨을테니까 말이다. 아이들에게 식사예절과 파티예절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는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읽으며, 이것이야말로 없이 살았던 사람들에겐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를 생각했다.
우리 나라 일반 가정의 아이들이 그녀의 어린시절처럼 부유하게 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지금이나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었지, 그녀가 살았던 그 시절 해외여행이란 쉽지 않았을텐데, 그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고, 여행을 즐기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신도 여행을 즐기며 산단다. 처음엔 '구름투어'라는 말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읽다보니 내겐 뜬구름잡는 이야기로만 들리는 건 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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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여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당연히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군단들에게 격식이 있는 파티문화를 제대로 알려주고, 배우게끔 하기 위해서다. (중략) 나는 이들이 제대로 된 파티의 시작과 끝을 배우기를 원한다. 파티를 열거나 초대받았을 때,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준비해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이다. (중략) 처음엔 칼질도 제대로 못하던 애들이었지만, 지그믄 꽤 큰 파티도 스스로들 준비해서 손님들을 접대할 줄 안다.(181쪽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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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큰 뜻을 품고 가르쳤다고 하는데, 칼질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참 많이 슬퍼했다. 우리 부모 중 누구도 서양의 파티 문화를 제대로 알고 계신 분이 안 계셨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런 파티를 아직까지도 접해보지 못했다. 또, 그녀의 서양우월주의가 느껴져 울컥했던 것도 같다. 물론 그런 의도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꿈과 열정, 노력만으로 이루지 못하는 배경의 벽을 느끼고 또 느낀다. 그녀는 단지 '그냥'이라고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그냥'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멋지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나도 그녀가 나오는 '남자의 자격'을 보았다. 30명의 단원을 이끌고 가는 그녀의 힘을,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각각이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울림으로 내 가슴을 두드렸으니 말이다. 그녀의 압도적인 지휘 아래 단원들이 변화하는 것을 나도 보았으니 말이다. 거제도에서 열린 합창대회편을 보고 나도 함께 눈물이 나려고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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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일들이 있다. 집에 도둑이 들고 불이 나도, 자식이 아프거나 다쳐도, 할머니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해도, 공연을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마음으로 큰일 있어도 공연이 끝난 후에야 돌아가신 부모님께 달려가 펑펑 울어야 하고, 공연이 끝난 후에야 병원으로 달려가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20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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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은 올려져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난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 난 집에서 아이 키우며 살림이나 하며 살고 있는가 보다. 내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상상만으로도 난 벌써 눈물이 핑 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가 병원에서 앓고 있는 상황에 나라면 절대 공연을 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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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이 진행하는 것은무모하고 여행의 어디쯤에서 실패할 확률도 높다. 하지만 한번쯤은 준비하지 않고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는 여행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재지 않고 박장대소하는 여행. 해볼 만하다.(252~25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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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말이지 도전적이고 모험적이다. 자유를 만끽할줄 아는 여행가이며 낭만자이다. 그런 그녀와 여행은 한번쯤 떠나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지금, 현재, 내 삶의 모습이야말로 '그냥' 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그냥'이라는 말로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정말이지 너무 얄밉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은 특별한 기회들을 그녀 스스로 잘 활용했기에 지금의 그녀가 되었을테니까 말이다.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스스로 즐기며 멋지게 해내는 그녀는 정말 멋진 음악 감독이다. 그녀의 멋진 삶에 그만 배 아파해야겠다. 지금의 그녀가 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겠다. 그런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어느것도 없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