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손창섭 - 재일 은둔 작가 손창섭 탐사기
정철훈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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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손창섭

​참으로 별난 사람이지요. 평생 작가티를 내지 않았어요

- 손창섭 아내,  우에노 여사의 회고

2014년 개인 독서 기록장을 토대로 결산하자면 :  " 올해의발견 " 은 발터 벤야민'이고, " 올해의책 " 은   << 내가 만난 손창섭 >> 이다. 이 책은 2009년 손창섭 작가가 일본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린 국민일보 기자 정철훈 씨가 집필했다. " 애타게 손창섭을 찾아서 " 현해탄을 건넌 저자의 탐사 르포인 셈이다. 그런데 " 애타게 " 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손창섭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손창섭 작가는 국내 지인과 1996년까지 편지로 서신 왕래를 했고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가 지금의 현주소였으니 은둔 작가라는 말이 민망할 만큼 ( 성의만 있었다면 ) 손창섭 작가'에 대한 행방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문단은 손창섭을 철저하게 외면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 문단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의와 예우를 갖췄더라면 손창섭에 대한 풍부한 자료 조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현대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작가는 고은'이나 황석영 따위가 아니라 손창섭'이었다. " 작가티 " 만 놓고 보자면 " 시시한 소설가로 통하는 S ㅡ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삼류 작가 손창섭 씨 1 " 보다는 고은이나 황석영이 더 근사하겠지만 말이다. 만약에 그가 절필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 했다면, 한국 문단이 그토록 소망하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통속적인 세태 소설이라고 폄하된 후기 소설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병적 세태를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었다.

 

문장은 김승옥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시대를 꿰뚫는 문제 의식은 포스트모던한 구석이 있었다. 마지막 소설'인 << 삼부녀 >> 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해체하고 그 자리를 피가 섞이지 않은 타자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재구성하는 막장 소설'이다. 아내가 집을 떠나고 두 딸마저 가출을 하자 그 자리를 술집 여대생과 친구의 어린 딸이 대신한다. 유사 아내 역할을 하는 여대생과 딸 역할을 하는 친구 딸은 호시탐탐 아버지를 욕망한다. 손창섭이 이 소설에서 다루고자 하는 목적은 근대적 가부장 사회의 유산'인 " 자아 중심적 존재론 " 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가부장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지워진 " 타자성의 얼굴 " 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알기 쉽게 쌈마이들이 즐겨 말하는 저잣거리 입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가부장 중심 사회'라는 말은 딱딱한 남근 중심 사회'라는 소리이고, 자아 중심적 존재론'이란 내 새끼 귀한 줄은 알면서 네 새끼'는 귀한 줄 모르는 항문기 고착 사회를 뜻한다. < 내 > 와 < 네 > 를 대하는 잣대가 판이하게 다른 남근적 자세가 바로 자아중심적 존재론'이다. 여기에 김민정 시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 좆 > 은 숭배하면서 < 젖 > 은 배제하려는 배타적 사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무식하게 말해서 손창섭은 가부장 욕망이 극단적으로 숭배되었던 1970년대에 핏줄 대망론인 브라더후드 ( 불알 연맹 ) 에서 벗어나 불알 연맹에 의해 쫓겨난 타자와 연대하여 대안 가족을 만들자는 발칙한 주장을 한 것이다.

 

손창섭이 제시한 대안 가족은  레비나스의 << 전체성과 무한성 >> 에 나오는 " 타자(성)의 윤리학 " 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단편 소설과는 달리 손창섭이 먹고 살기 위해서 신문에 연재한 세태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레비나스가 대한민국에서는 뒤늦게 알려진 철학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창섭이 레비나스 철학을 접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엄혹한 강철 군화 시대에 이미 " 타자성 " 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문제적 인간이었다. 이 리뷰 목적이 손창섭 작가론'은 아니니 이쯤에서 장면을 전환하도록 하자. F.O ( 서서히 암전 ) 

 

사실 << 내가 만난 손창섭 >> 이란 책은 내용면에서 많이 아쉽다. 뜸을 덜 들인 상태에서 섣불리 밥그릇에 담은 꺼끌꺼끌한 밥 같다. 저자가 손창섭을 찾아갔을 때 손창섭은 이미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쇠약해진 상태였으니 그저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저자가 우에노 여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내용이 지극히 빈약했으며,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적극적 자세도 부족해 보였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차 한 잔 앞에 두고 오간 담소'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창섭 연구의 시발점 혹은 디딤돌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매우 값지다. ( 손창섭 사진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

 

우에노 여사가 말했던 것처럼 손창섭은 " 작가티 " 를 전혀 내지 않은 이상한 작가'였다. 그는 문단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는 작가이면서 작가'라는 직업군을 신뢰하지 않았다. 정작 자신은 현대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거머쥔 독보적 존재였으면서 말이다. " 껄렁껄렁한 시나 소설이나 평론 줄을 끄적거린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우쭐대는 선민의식. 말하자면 문화적인 것 일체와 문화인이라는 유별난 족속 전부가 싫은 것이다. ( 단편 << 신의 희작 >> 中) ”그가 보기에는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모두 한통속이었다. 손창섭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접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대한민국을 떠난 이유도 인간 혐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그는 이미 40년 전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시대를 앞선 작가의 천리안'이 아닐 수 없다 ■







  1. 단편 < 신의 희작 > 中
  2. 손창섭은 미래파 작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화두인 잉여 인간이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이도 손창섭이었고, << 삼부녀 >> 는 막장 드라마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 소설에서 계약 가족을 제안하는데 여대생이 아내 역할을 하고, 친구 딸을 입양해서 가족을 복원한다. 둘 다 아버지와 동침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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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0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손창섭 작가 요절로 알고 있었는데 작가의 소설만큼이나 전기도 무슨 소설같네요. 정말 훌륭한 소설가인데 시대가, 시절이 그렇게 만든 거겠죠. 많은 월북문인들처럼...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8 16:07   좋아요 0 | URL
전 손창섭이란 작가를 아예 몰랐씁니다. 잉여인간 하니깐 아, 손창섭이 떠오르더라고요. 옛날부터 손창섭 하면 괴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했는데, 작가로서의 결벽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행불일치하는 작가를 수없이 보았지만 손창섭은 언행일치했던 극소수의 작가였지 싶습니다. 작품 자체도 워낙 뛰어나고....요.

라로 2015-01-0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식해서 손창섭이라는 작가를 곰발님 덕분에 알았어요~~~. ^^;;; 기회가 되면(여기선 힘드니까) 그분의 작품을 꼭 찾아 읽을거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8 16:08   좋아요 0 | URL
네에. 무식하기는 저도 서럽지만... 일단 단편집 읽어보십시요. 가람출판사에서 2권으로 나온 게 있으니 그거 보시면... 5,60년대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소름이 돋을 만큼.. 뭐라 해야 하나요. 하여튼 온갖 잡생각이 다 떠오르게 됩니다.

수다맨 2015-01-08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손창섭이 자신의 책에 200九라고 싸인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뭉클하더라구요. 아라비아 숫자와 한문이 혼재된 저 기이한 성명이야말로 그가 살았던 혼란한 시대와, 어느 소속에도 기댈 수 없었던 자신의 삶이 반영된 하나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그가 자발적으로 선태한 삶이긴 했어도, 이 위대한 작가가 별다른 대접도 못 받고 타국에서 쓸쓸히 별세한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움이 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8 17:17   좋아요 0 | URL
책 보면 찾아가는 여정이 너무 간단하잖아요. 편지 주소보고 찾아갔 더니 금방 찾을 수 있고... 국내 문단의 노력이 없었던 거죠. 적어도 문단, 아니.. 몇몇 출판사들이라면 이 거장을 수소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갈리마르나 이런 출판사들은 직접 좋은 작가를 찾아내고 발굴하고 지원하고 그러잖습니까.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된 사람도 많고.... 부코스키만 해도 출판사에서 지원을 해줘서 좋은 작가가 된 사례 아니겠습니까.

만화애니비평 2015-01-0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올해도 힘든 누님시기 잘 참아봅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9 09:20   좋아요 0 | URL
누님과 함께라... 참, 암담하군요.
 

 

 

 



2014 결산



1. 올해의 책

작년에 읽은 책은 대략 100권 안팎이다. ( 이중에는 절반은 옛날에 사 두었다가 이제서야 읽거나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경우가 포함되어 있다 )  반면 산 책은 150권 안팎이다. 결론은 새 책 가운데 100권 정도는 읽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인한 책 공급과 도서 정가제 시행 전 할인 행사 때문에 생긴 비극이다. 잘하는 짓이어서, 꽤... 신난다.  올해의 발견(2014년)은 단연 발터 벤야민'이다. 2500페이지에 달하는 << 아케이트 프로젝트 >> 는 벤야민이 왜 위대한 사상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걸작이었다. 칭찬을 하자면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책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모더니티'를 해석하는 방식이 탁월하며,

 

사상가답지 않게 문장 실력이 여타 문학 작품 못지 않게 뛰어나다. 벤야민이 소설을 썼다면 프루스트를 능가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프루스트가 " 잔향 " 에 의존한 과거 지향적 향수라면 벤야민은 화려한 볼거리를 향한 " 잔상 " 에 기댄다. 다시 말해 프르스트가 형이상학이라면 벤야민은 형이하학적이다. << 일방통행로 >> 와 << 베를린 유년의 기록 >> 도 좋다. 2013년이 허먼 멜빌의 발견 ( 단편 " 필경사 바틀비 " 는 최고였다. 바틀비였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 저는 가만히 있지 않는 편을 선택하렵니다. " ) 이었다면, 2014년은 발터 벤야민의 발견이었다.



 

 

 

 

 

 

 

 

 


 

 

2. 올해의 영화 ( 2014 )

올해 극장 개봉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다. 그나마 본 영화는 대부분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하거나 혹은 고속 터미널 발차 시간 간격이 너무 커서 터미널 근처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가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4년에 본 극장 개봉 영화를 잠시 언급하자면 << 수상한 그녀 >> 는 모성애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저열한 가부장적 강박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아무리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볼썽사나운 억척'이라 해도 " 내 새끼만 잘 키우겠다 " 는 삐딱한 모성애가 결합되면 용서받는 사회'이다. < 억척 > 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 타자와 연대하지 않겠다는 의지 " 이다. " 내 새끼 .... " 로 시작되는 모성애'는 타자를 배제한 혈맹이요, 배타적 태도'이다.

 

건강한 시민 사회'라면 억척스러운 행위는 " 에티켓 부족 " 으로 비판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한국 사회는 모성애를 빙자한 억척스러움이 찬양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엄마와 아빠라는 키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존나 보수적인 각하와 공주 정권'이 입성하면서 과거지향적 문화'가 유행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현실에 대한 불안 혹은 불만이 쌓인 결과이다. 현실에 대한 불안(불만) 때문에 과거를 호명하다 보니 과거지향적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대 위에 올라온 경우이다. 영화 << 변호인 >> 도 얼핏 보기에는 보수 정권에 실망한 진보 진영의 향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사 가족 영화'다. 국밥집 가족을 편모 가정으로 설정한 이유는 송강호를 유사 아버지 대리자'로 대체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가 없는 편모 가정의 빈 자리를 송강호가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아들을 구해내고자 하는 아버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대 악과 맞짱을 뜨며 싸우는 " 다이 하드 " 이다. << 명량 >> 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아버지'라는 근대적 인물을 호출하는 대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였던 이순신을 호명한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였던 세대가 개고생하며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을 몰라주면 호로 자식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각하 정권과 공주 정권 아래 만들어진 대중 영화는 온통 엄마를 부탁해와 아빠를 부탁해 ㅡ 서사'로 도배가 되었다.

 

그 정점이 바로 << 국제 시장 >> 이다. 대중 영화가 기본적으로 보수층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 서사는 정권에 아부하려는 천박한 근성을 갖춘 영화라서 보는 내내 부담스러웠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 부두에서 시작하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비판받아야 할 점은 " 현대사에 대한 반성 " 은 없고  " 현대사를 향한 미화 " 만 남발했다는 데 있다. 역사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미화가 아니라 반성이다. 개인의 고통을 만들어낸 원인은 외면한 채 고통 그 자체에 신화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피가학적 역사 인식에 불과하다. 

2014년에는 주로 서울 아트 시네마를 다니며 고전을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히치콕 영화'였다. 히치콕 영화는 수십 번 보았지만 올해 다시 체계적으로 보았다. 그중에서도 << 이창 >> 과 << 열차 속의 이방인 >> 은 올해의 발견이었다. 특히 << 열차 속의 이방인 >> 은 걸작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걸어둔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971840 : 열차 속의 낯선 자들 )


 

 

 

 

 

 

 

 

 

 

 

 

 

3. 올해의 인물

갑오년(2014)의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눈물 마케팅 전략은 감동적이었다. 모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 30초만 숨쉴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 " 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대국민 담화는 " 30초간 눈 감지 않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 " 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서로 상대방 눈을 쳐다보다가 한쪽이 눈을 감으면 지는 놀이가 있는데,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 눈싸움을 했는지도 모른다. 을미년(2015)의 인물도 박근혜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고, 병신년(2016)의 인물도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 무엇을 해도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줬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 무엇을 해도 상상 그 이하'를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권이 형이상학이라면 박근혜 정권은 형이하학이다. 형이하학은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하는데 " 콘크리트 사이언스 " 라고도 부른다. 마가렛 대처가 철의 여인이었다면, 박근혜는 콘크리트의 여인'이다.

4. 올해의 음악

​올해의 음악은 고승덕이 이동식 길거리 무대에서 선보인 << 미안하다 >> 라는 곡이다. 박진영 심사위원이었다면 " 미안하돠 ~ 라고 내지르는 고 퀄리티 고음 샤우팅 기술은 뛰어난데, 진심이 보이지 않아 아쉽네요.  " 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롹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이 아니라 기술이다. 진심 운운하는 것은 발라드에나 필요하지 악을 기술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하드 락에서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고승덕의 미안하다는 완벽한 샤우팅 기술을 선보인다. 가히 놀랄 만한 음악이었다. 


 

5.올해의 정의

올해의 정의 상은 미국 백악관을 선정했다. 활동 사진을 팔아서 먹고 사는 헐리우드 변방의 꼬딱지 만한 소니 픽쳐스'가 해킹을 당했는데 해커로 북한이 지목되었다. ( 미국 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해킹 주범은 북한이 아니라 돈을 노린 소니 픽쳐스 직원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 이에 오바마는 일개 사기업의 흥망을 국가의 흥망으로 생각하야 " 비례적 보복 " 이라는 야리꾸리한 말로 복수를 감행했다. " 네 일 " 을 " 내 일 " 로 생각하는 백악관이야말로 정의로운 집단이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들었다고나 할까 ?  대다나다.

 

 

6. 올해의 히트 상품

올해의 히트 상품은 << 가마니 >> 로 선정했다. 가마니를 파는 곳은 없다보니 곳곳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 가마니 있어 ?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은 가마니 있으면 안되는 나라'이다. 가마니 있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 가마니 무서운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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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0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케이드프로젝트 반값주문했다가 품절통보받고 주문취소돼서 얼마나 울적했던지ㅜ...그래도 전 프루스트와 벤야민을 동등하게 두렵니다.
2 전 영상자료원빠~ 무려 무료! 언더 더 스킨 이번주부터 상영시작하던데 각종 차트 작품평가 올해 1위인 걸 보니 안 보고 못 배기겠던데요 ㅎ...책도 읽다가 처박아뒀는데 다시 봐야겠어요ㅜ
3 더 할 말 없음
4 신해철 무한반복... 장국영 죽음보다 더 어이없어 공황...
5 팔레스타인 야간침공을 구경하던 이스라엘 군중
6 북플...알라딘 폐인이 돼가는 위협을;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4 21:03   좋아요 0 | URL
비극이군요. 가격이 십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서 사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저도 가끔 영상자료원 갑니다. 시간 되시면 언제 술이나 한 잔 하시죠.

아, 박근헤가 계속 올해의 인물이 될까 봐 걱정입니다.


cyrus 2015-01-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케이트 1권이라도 반값 할인 때 사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결국 이걸 포기하고 산 것이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입니다.

AgalmA 2015-01-05 04:24   좋아요 0 | URL
아니, 이또한 부럽군요. 중력무지개 지금은 품절이던데...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6 14:19   좋아요 0 | URL
중력 무지개도 새물결에서 나왔나요. 아, 새물결 못마땅합니다. 무슨 소설 가격을 그따위로 책정하는지....

풀무 2015-01-05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그동안 알라딘에도 꾸준히 실시간 업뎃하고 계셨군요.

덧글들도 그렇고.. 이제 곰발님 주무대는 네버가 아니라
완전히 알라딘이 된 듯하여 왠지 모를 섭섭함과 씁쓸함이..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6 14: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제가 원래 남 모르게 ㅋㅋㅋㅋ
저는 그저 무대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ㅋㅋㅋㅋ

수다맨 2015-01-06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영웅으로 떠받드는 영화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아해들만 사는 세상도 아닌데 말이죠. 혈연주의와 가족주의를 경멸했던 손창섭 선생이 절로 생각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6 14:18   좋아요 0 | URL
곧 허삼관이란 영화도 나오더군요. 원작 허삼관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궁금합니다.
허삼관은 오히려 체제 비판적이지 않았나 싶네요. 영화들이 너무 퇴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다맨 2015-01-07 01:18   좋아요 0 | URL
영화 줄거리만 대충 보기는 했는데, 어딘지 실망스럽더라구요. 원작에는 또렷했던 한 남자의 일생에 걸친 매혈 여로(旅路)와, 중국의 역사적 비극(문화대혁명)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은 어디론가 증발되어 버리고, 영화에는 그저 코믹한 스토리 전개와 어설픈 부성애만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곰곰발님 말씀처럼 다수 영화들이 요즘 들어 퇴행적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7 18:04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제가 봐도 허삼관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적 우화`였는데, 예고편만 딱 보니 아버지 세대에 대한 향수만 그려진 것 같아서 좀 황당했습니다. 그나저나 새해 인사가 늦었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수다맨 2015-01-08 04:30   좋아요 0 | URL
넵, 곰곰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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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꼽등이'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철학 명제를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사람은 자신이 꽤나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 코기토 " 보다는 파스칼이 말하는 " 흔들리는 갈대 " 에 가깝다.   파스칼은 여자를 흔들리는 갈대라고 말했으나 내가 보기엔 남자도 흔들리는 갈대'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 자발적 의지 "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익 집단이 치밀하게 준비한 각본대로 상품을 소비할 뿐이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당신이나 나나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날마다 세뇌당한다. 좋은 예가 패션 유행'이다. < 유행 > 이란 소비자 다수가 선택한 " 현재의 결과 "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패션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큰손 몇몇이 선택한 " 과거의 결정 "이다. 

예를 들어 패션계 큰손은 년에 유행했던 아이템이 미니스커트였다면 올해 유행할 아이템으로는 꽃무늬 롱스커트'가 되도록 계획표를 꾸민다. 유행하는 칼라'도 패션 산업계 큰손이 결정한 것에 불과하다. 작년에 파란색이 유행했다면 올해는 빨강색이 유행을 탄다. 그러니까 패션계 큰손들이 " 조작질 " 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지난해 패션을 촌스러운 것으로 뭉개는 것이다. 아직도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면 당신은 상황 판단이 조금 부족한 사람이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올해 유행하는 롱스커트 대신 작년에 " 존나 " 유행했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청담동 가로수길을 걸으면 패션 테러리스트'가 된다는 말이다. 작년과 올해의 유행 대비 對比가 선명할 수록 지난 것은 보다 더 촌스러운 것이 된다.

패션계 큰손이 노리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유행에 민감한 옷일수록 촌스러운 옷이 된다는 사실은 모두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 유행 " 이라는 사이클 주기가 짧을수록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 수 있다. 유행'이 느리게 순환되거나 유행 자체가 없다면 패션 산업 종사자는 거지가 될 수밖에 없다.  굳이 새옷을 사 입을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큰손들은 극단적 대비'를 요구한다. 어려운 계획이 아니다. 매력 있는 모델을 선정해서 지속적으로 패션 잡지 따위에 노출시키면 된다. 큰손 집단은 이미 서로 짝짝꿍이 되어서 한몸처럼 움직인다. 큰손 몇몇이 유행이라고 하니까 대중은 그저 따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의 패션 취향은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큰손이 결정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 올해의 유행은 이미 과거의 결정에 의한 결과'이다. 2015년 여름에 유행할 패션은 2012년에 결정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조작은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음모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인간은 절대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줏대없이 흔들리는 갈대'에 불과하다. 여론 조사 결과도 사소한 조작질로 결과를 180도 다르게 변경할 수 있다. 질문 순서만 바꿔도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첫 번째 경우 : 먼저 "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 " 라는 질문을 던진 후, 다음 질문으로 " 당신은 일주일에 데이트를 몇 번이나 하십니까 ? " 라고 묻는 것과 두 번째 경우 : 먼저 " 당신은 일주일에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몇 번이나 하십니까 ? " 라는 질문을 던진 후 다음 질문으로 "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 " 라고 묻는 것.

순서만 바꿨을 뿐이지만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온다. 전자보다 후자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확률이 더 높다. 이래도 당신은 스스로를 생각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21세기는 정보 홍수 시대'다. 이제는 24시간 미디어에 노출이 된다. 스마트폰이 있기에 가능하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각 업계 ( 정치, 경제, 산업 ) 큰손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대중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당신이 선택한 결과는 곧 당신의 취향이 된다. 하지만 그 취향이 몇몇 타자에 의해 결정된 사항이라면 당신의 취향은 온전히 당신이 선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 유행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개성 있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이상, 당신은 꼽등이가 될 수밖에 없다.

연가시가 꼽등이를 조종하듯이, 1%는 99%를 조종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1%는 마징가 Z 로보트 머리 속에서 스틱으로 행동을 조종하는 쇠돌이'이고, 덩치는 산 만한 마징가 Z 본체는 대중'이다. 쪽수가 많다고 이기는 시대는 지났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이유이다.  청기 올리라고 하면 청기 올리는 존재가 바로 소비자요, 대중인 것이다. 나는 왕이 누군가가 청기 올리라고 해서 잽싸게 청기 올리는 경박스러운 왕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소비자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신상은 이미 몇 년 전에 짜놓은 구닥다리'일 뿐이다. 어떤 믿음이 100%가 될 때, 그 믿음이 순도 100%가 될 때, 그 믿음은 순결한 것이 아니라 맹목이 된다. 100% 라는 완전체는 적어도 믿음이라는 영역에서는 아주 나쁜 순정이 된다.

믿더라도 51%만 믿어야 한다. 그 믿음 밑바닥에는 불신이 49% 정도 깔려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물물은 불순물이어야 한다. 우리가 그토록 숭배하는 황금도 기껏해야 99%이지 않은가 ? 대한민국은 눈먼 자들의 나라'가 되었다. 100% 순결한 맹목이 국가를 침몰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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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1-02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징가Z를 조종한 사람은 쇠돌이고, 훈과 영희는 태권V를 조종했죠. 철이와 영희를 불특정 보통 사람으로 가장한 것으로 표현한, 문학적 것일 수 있지만 ^^, 새해 인사 차, 지적질하고 지나갑니다.

곰곰발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2 17:3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고 철이와 영희가 아니라 훈이와 영희로군요... ㅋㅋㅋㅋㅋㅋ 얼릉 고쳐야겠습니다. 새해에도 지적질 자주 해주십시오. 이런 거 대환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2 17:3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고 철이와 영희가 아니라 훈이와 영희로군요... ㅋㅋㅋㅋㅋㅋ 얼릉 고쳐야겠습니다. 새해에도 지적질 자주 해주십시오. 이런 거 대환영입니다.

빨강요다 2015-01-0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눈먼`자가 아닌 `깨어있는` 자가 되어야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4:51   좋아요 0 | URL
정치적 후진성은 아마도 근대화 과정이 매우 짧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 부자 중에 제일 꼴불견이 벼락 부자`잖아요. 갑자기 부자되면 교양을 배우지 못하듯이
한국 정치도 근대화 과정, 민주화 과정이 지나치게 짧아서 교양이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비로그인 2015-01-0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행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개성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몰개성을 개성으로 포장하는 미디어 보다도, 조작된 욕망을 좇아 정체성을 찾는 가난한 영혼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여기서 영혼들은 저를 포함하기에 더더욱 안타깝네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4:53   좋아요 0 | URL
실제로 국제 패션 모임 같은 데에서 미리미리 유행을 선도할 패턴을 공유하고 계획을 짭니다.
결론은 신상은 다 구닥다리`라는 거. 전 유행에 민감해서 레깅스 패션이다 하면 레깅스 입는 사람들이
유행에 뒤떨어지는 사람 같습니다. 무슨 모자 유행한다 싶으면 죄다 다 그 모자 쓰고 나오는 데 정말 촌스럽더군요..

[그장소] 2015-01-0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헉~^^? 친구가 되서 반갑다고 달려오자마자
뜨악..보인게 당신은 곱등이...!! ( 뭘..또,그렇게 진심으로 파악하고..아잉~(-_ど) 책임져..! ) 우~왕.왕♬♪☞자체 bgm..에고 오자마자, 혼자 생 날라리 생쇼를 하느라..바쁩니다..이거...정상 참작 안될것 같죠? 지우기 힘들어요.
일일이 손글씨 쓰고 답장을 사진으로 찍어 붙이기 하고파요..스마트폰 터치자판 대따 어려워요...아직 그리 늙은 손도 아닌데 자판은 왜 제 키를 단번에 못 누를 까요?
원글로 옮기고 싶지만..포기..수없이.ㅋㅋ
어제 하다 하나.제 손이 미웠어요..흑흑..
손가락 끝에 눈이 안달려서...그런다고요..
아.....!!! 그걸 왜 이제 알려 주는 겁니까?
그럼 안경은 제가 안쓰고 손가락 씌워주는 건데..에효...
눈먼..자들의..국가 여! 정말 죄송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들이 일망타진( 응?)이 아니고 ..모두 포진되어 있는 데도 불구...휴..이책..안볼거니까. 현재로는..
이 댓글이 당신은 곱등이...로 가야 한다규...
암튼 곰곰생각하는발 님.
반갑다는 인사가 무례에 가까워 죄송^^
닉네임이...우와..이런 닉넴..넘 좋아요.
마구 상상력 돋는..
좋은글로 자주뵙길..( 즐거운...은 왜 지워?..자리가..아니라고?)
바라고,
새 해 기쁜일만.. 가 득 하시길 바랍니다!
추신...저는 뭘하는 걸까요?진지하게..^^;
진짜...푸핫..왜 사냐묻거든...웃지요..
진짜..눈이 나쁜게...맞아요!(단디 교육 시키겠습다~T-T )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4:56   좋아요 0 | URL
손글씨 예쁜 그장소 님이로군요.
닉네임 특이합니다. 그장소`라...
장소에 그`라는 지시어가 붙었으니 그장소`란 특별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롤랑바르트가 사랑의단상에서 말한
아토포스` 개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주 오셔서 소소한 덧글 부탁드립니다.

[그장소] 2015-01-03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본글은 애도의 글들이라 작가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 이럼서..슬픔의 문학이 없어 이젠 모여서 이슈화하는구나.했잖아요..이것도..음.
서평..일견 곱등이 문화 양산에서 온걸지도...
본 책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고..하 작가의
슬픔가득한 서문에 ..다 그런 글로..그리고
서평해주신 분들의 넘치는 감정이 청기 같이 올리고 백기내리고..그러고 있었네요
덕분에..이 책이 무슨 책인지...다시 봤어요.
고맙습니다.꼭 읽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3 14:58   좋아요 0 | URL
글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전 여러 작가들 책으로 엮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물론 이 책에는 좋은 글도 있고
무덤덤한 글도 있고 합니다.
하여튼 전 1작가1책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다 작가 1책 구성은 아무래도 ..... 짠 평가르르 내릴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그장소] 2015-01-03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주관 반갑네요! 아이스크림도 골라먹는 31 싫어..이런건 아니죠? 뭐 취향은..개인의취향˝ 이라니까..저도 종합선물셋트 구성 맘에 든적 별로 없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그냥 볼 뿐.동인은 그런대로 방향을 잘 잡아 가고있잖아요..
현대.이상..황순원.왜..묶는지..
 
아이다호 - [초특가판]
구스 반 산트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서울콤 / 200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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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씌어진 3


                                           

                                             최승자


꿈인지 생시인지

사람들이 정치를 하며 살고 있다

경제를 하며 살고 있다

사회를 하며 살고 있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도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내 이름은 짦은 흐느낌에 지나지 않았다
오 명목이여 명목이여
물 위에 씌어진 흐린 꿈이여)


(죽음은 작은 터널 같은 것
가는 길은 나중에야 환해진다)

 

 

 

해가 밝았다. 모두 다 새로운 다짐을 경쟁적으로 내놓는다. 흡연가는 금연을 시작하고, 애주가는 금주를 선언한다. 새것은 새 자루에 담아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새해에 < 시작 > 대신 < 끝 > 에 대해 말하련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끝이니까. 시작은 " 끝의 티끌 " 일 뿐이다. 어릴 때부터 " 끝 " 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았다. 예술적 아우라는 대부분 끝이 주는 정서에서 나온다. 내가 교보문고 건너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쉬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읽은, 이른 봄 늦가을 같던 계절에 읽은 최승자 시집 속에서 " 가는 길은 나중에야 환해진다 " 라는 싯구를 읽었을 때 울컥했던 마음은 < 나중 > 이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한 시간의 폐허'를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 나중 " 이라는 말은 시간의 맨 끝 혹은 끝나고 난 뒤'를 의미하기에 그것은 더 이상 갈 곳 없음이거나 뒤늦은 회상을 담고 있다. 끝이란 늘 시작하는 과정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품는다. 로드 무비'에서 주인공은 배우가 아니라 길'이다. < 길 > 은 항상 처량하고 삭막하며, 동정 없으며 매섭고 오라지게 춥다. 길은 타자를 품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품는 순간 그것은 길이 아니라 관광엽서에 박힌 풍광 좋은 풍경일 뿐이다. 아, 그러나......  길은 아름답다. 길이 아름다운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로드 무비는 반드시 길 위에서 끝난다. 여정 旅程'은 멈춘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길 >> 에서 짐파노는 젤소미나가 즐겨 부르던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젤소미나는 부재하고 목소리만 길 끝 막다른 골목에 남아 있다.

먼지를 쓸고 가던 칼바람이 막다른 골목 벽을 만나 품었던 먼지를 분수처럼 쏟아내듯이, 짐파노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끝이 보이는 막다른 길에 쏟아낸다. 영화 << 파이란 >> 도 마찬가지다. 3류 건달 이강재'가 방파제에 앉아 어미를 잃은 짐승새끼처럼 목놓아 우는 장면이 주는 파토스는 이강재 때문이 아니라 " 길의 끝 " 때문이다. 이처럼 로드 무비는 " 길의 끝 " 을 보여주는 장르'다. " 길의 끝 " 에 다다르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산악 등반가 말로리가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로드 무비는 끝이 있기 때문에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학 작품 또한 끝이 주는 아우라'를 다룬다. 갈 때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서사보다는 되돌아올 수 없는 몰락을 다룬 작품이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은 끝이 있기에 가능했다.

<< 폭풍의 언덕 >> 은 길의 끝이 벼랑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끝까지 간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끝이 반드시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끝은 쓸쓸한 절망과 함께 쓸쓸한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이 마침내 끝이 보일 때 희망이 생기듯이, 흐지부진한 연애도 끝이 보일 때 차리라 속 시원한 쾌감을 얻기도 한다. < 마지막 > 이라는 낱말보다 < 끝 > 이라는 낱말이 주는 음율'이 좋다. 1음절이 주는 단호함 속에는 신파에 대한 배제'를 담고 있다. 1인칭 소설은 감정 표현을 최소화해야 좋은 문장이 될 수 있다고 배웠다. 1인칭 소설에서 1인칭 화자가 자기 감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촌스러운 문장은 없다.

어젯밤, 꿈을 꾸었다. 왼손 손목을 자르는 꿈이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면서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황한 나는 오른손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왼손을 집었다. 차가운 손끝이었다. 꿈에서 깨어났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 아이다호 >> 를 보다가 다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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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0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 있다 …… 김중식 「食堂에 딸린 房 한 칸」
진정한 길에는 무덤이 없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1 18:30   좋아요 0 | URL
문장이 좋아 찾아보았습니다.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氏

紅燈 유리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구 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敵을 만들어 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돌아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출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문학동네::) |작성자 라디비나


stella.K 2015-01-0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오늘 글은 정말 좋네요. 물론 곰발님 글이 안 좋은 적은 거의 없지만 오늘은 특별히!
시작`은 ˝ 끝의 티끌 ˝ 정말 그렇군요. 길에 대한 곰발님의 단상도 좋고.
솔직히 곰발님 읽는 건 좋은데 단점은 글을 읽고나면 전 글 쓰기가 싫어진다는 거죠.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1 18: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새해만 되면 만날 새해 다짐, 새 결심, 새날, 이런 말만 하기에 끝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 시작보다는 끝이란 단어가 더 좋군요.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다음은 한겨레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올라온 << 개인 일상의 시대 >> 란 글을 서재에 옮긴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희망과 다짐보다는 절망과 포기로 이 글을 시작한다. 지하 생활자의 어깃장이라 생각하지 말고 현실을 보자.


개인 일상의 시대

​박노자

저는 이번 신정을 앞두고 계속 여행질해왔습니다. 며칠 전에 오래간만에 모스크바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며칠 밖에 안되는 방문인지라 제 견문은 한계가 많지만, 한 가지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의 세계관이란 뚜렷하게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서방"과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들이 많이 깨진 듯합니다. "민주적 서방"은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히 비민주적인 새 정권을 세우는 데 지원한 게 뚜렷하게 보였고, 또 6년 전에 고장이 난 자본주의가 여전히 그 모순덩어리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해 세계공황에 끝이 보이지 않는지라...몇년 전만 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방"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매우 드물었으며, 요구의 최대치는 "서구와 같은 합리적인 체제, 공명 선거, 푸틴 권위주의 퇴장" 정도이었지만, 인제는 그 정치사상적 순진성에 상당히 균열이 간 것 같습니다. 2010년, 톨스토이 서거100주년에 권위주의적이며 군사주의적 국가도,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지식인 사회"도 군대 만큼이나 토지사유제 등을 혐오했던 러시아 문호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재조명 시도도 없이 그 100주년을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히려 그 무관심에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 참신했습니다. 획실히 "여론"이 움직이고 있어 점차적 급진화의 과정이 "저류", "심층"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 의식이 점차 바뀌고 좌파에 훨씬 더 열려간다 해도, 사회의 현실은 의식만큼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비판을 인제 서슴지 않지만, 여전히 그 비판자들이 현실적으로 바라는 것은 취직이든 이민이든 아니면 국가로부터의 복지혜택이든 개인적인 "체제에의 편입"이지, 체제와의 현실적 충돌을 대다수가 여전히 피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지젝 등 "유행 속의 팝 좌파"에 심취할 수 있어도 이 개인적 취향은 현실적 삶에 거의 영향 주지 않는 거죠. 사회의 저항력은 여전히 대단히 낮은 수준에 있습니다. 급진좌파는 "셔클" 차원에서 존재한다 해도, 그 이상 나아가기에는 지반이 아직도 너무나 약하다는 거죠.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가요? 일면으로는 우리 집단의식은 우리 현실을 꽤나 정확히 반영합니다. <미생>의 장그래가 거의 "전국민의 캐릭터"가 되고 상징적 존재가 된 것을 보시죠. 대중문화산업도 반응해야 할 정도로 "노동인구의 비정규직화는 대참사다", "비정규직으로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해서 민생이 다 망한다"는 의식이 많이 퍼진 셈입니다. 아니면 최근의 유행작인 <카트>의 열풍을 보시죠. 현재 노동투쟁의 신주류인 비정규직 투쟁이 이미 대중문화 속의 "주요 주제"로 부상할 정도라면...신자유주의에 비판적 여론의 저류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봐야 할 셈입니다. "진상고객"부터 "땅콩회항"은 "갑질"에 이어 갑오년의 유행어가 된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러시아가 "서방"과 "자본주의"에 실망했듯이, 대한민국도 "경쟁"의 신격화에 이미 나름 실망하여 광범위한 민중층 속에서 "따뜻한 사회", "민생 챙기는 나라"에 대한 선호모드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왜 러시아에서 대자본과 군벌, 안보꾼 등의 대표자라고 할 푸틴은 그 어떤 "국유화" 등의 정책없이도 계속해서 80% 이상의 지지를 받을까요? 왜 한국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편에 섰던 통진당의 깡패적인 "강제해산"은 그 어떤 대규모적인 격렬집회의 파도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까요? 왜 그렇지 않아도 말도 안될 정도로 비정규직에 불리한 기존의 비정규직 관련의 법률을 더더욱더 개악시키려는 박근혜의 표독스러운 정권은 "저항의 해일"을 아직도 맞이하지 않았을까요? 왜 현실성이 강한 사회 의식과 너무나 타협적인 사회의 현실은 이 정도로 딴판일까요?
 
저는 이게 준주변부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원자화된 사회에서는 사회 의식은 아무리 좋게 진화돼도, 급진 조직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는 "잠재적 저항층"의 대다수는 그저 개인 일상 속에 파묻혀 삽니다. "저항"을 시도해도 그저 개인적으로, 일상 속에서 피케티를 읽거나 페북에서 급진적 포스트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저항"을 연출해보는 것이지, 개인으로서 부담이 돼 일상에 방해될 수 있는 연대적인 집단행동을 가급적 삼가한다는 것입니다. 데모해도 죽거나 크게 다칠 시대는 지났지만, 일단 데모하게 되면 사진 채증돼 나중에 막연히 불리할 수도 있고, 또 잘못되면 벌금형 등이 내려질 수 있기에, "격렬집회"는 거의 과거 속으로 흘러간 셈입니다. 모든 가용 자원들이 개인 생존을 위한 사투에 집중되는 개인 일상의 시대, 즉 자본주의 후기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인이 이해관계도 불확실한 "타자"들과의 연대에 약간이라도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개인의 정의감이 아무리 짓밟혀도, 이에 대한 반응을 집단저항보다 개인적 소비로 표출됩니다. 피케티를 읽고 <미생> 보고 장그래를 동정하고...이런 세대의 기준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것은 바로 "포스트" 철학이기도 하죠. 패배 당한 1968년의 혁명 이후의 소비/일상의 세대의 커다란 자기변명은 바로 "포스트"에 해당됩니다.
 
개인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우리 아노미는 전혀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기자본주의의 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에 언젠가는 조직과 집단행동의 시대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피케티나 지젝의 독자 내지 <미생>의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문재인들의 "복지주의"적 궤변에 넘어가서 보수야당에 표를 던지는 것까지 아마도 "개인적 저항"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정말 답답한 겨울의 시대죠.  

 

세월호는 시작이자 끝이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 아아 / A > 와 < 오오 / O > 뿐1 이었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고는 없었다. 언론은 초라한 리얼리티 ( 현실 ) 을 숨긴 채 판타지 ( 허구 ) 를 양산했다. 긴급 편성된 24시 재난 방송은 헐리우드 영화 속 장면처럼 긴박감 넘치게 작동하고 있었다. 최대 인원, 최대 물량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말 그대로 " 지상 최대의 작전 " 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난 방송이라기보다는 국가 홍보 방송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거대한 스펙타클과 화려한 판타지에는 정부의 프로파간다적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방송 보도와는 다르게 진도 앞바다는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처음부터 정부는 구조 의지'가 없었다.

 

관료 조직은 일사분란한 게 아니라 뒤죽박죽이었다. 대한민국은  << 오즈의 마법사 >> 에 등장하는 마법 나라 王처럼 초라하고 꾀죄죄한 " 얼라 " 였다.  그들은 콧잔등처럼 보이는 배 밑바닥 꼬투리'가 빨리 가라앉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숨쉬는 게 거북해지는 순간이었다.  "  리얼 " 인 척하는 " 판타지 "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판타지인 척하는 리얼리티 > 가 세련된 정치적 수사'라면 < 리얼리티인 척하는 판타지 > 는 천박한 기만이었다.  후자는 백마 탄 실장님과 결혼하게 되는 가난한 여자가 주인공인 드라마 연속극이었다. 세월호 방송 보도는 명백하게 리얼리티인 척하는 판타지였다. 기만이었다. 오직 거대한 울음만이 숭고한 수난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재난 앞에서 일베가 폭식 투쟁을 펼쳤을 때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박근혜가 " 통일 콘서트 사제 폭탄 테러 사건 " 에 대한 언급에서 테러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은 채 테러 피해자인 토크 콘서트 강연자에게 사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때  이미 대한민국은 " 위 아래, 위위아래, 위 아래, 위위아래 " 모두 썩을 대로 썩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박노자는 글에서 " 개인은 이해관계도 불확실한 "타자"들과의 연대에 약간이라도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개인의 정의감이 아무리 짓밟혀도, 이에 대한 반응을 집단저항보다 개인적 소비로 표출 "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제 21세기 시민 사회는 정부 비판 글'에 대해서는 < 좋아요 > 를 클릭할 수는 있을 만큼 인문학적 소양을 갖췄지만     왜 아니 그러겠는가. 단군 이래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니었던가 ?   정작 광장으로 나와 손을 잡지는 않는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광장에 나와 " 정의 " 를 외치기보다는 모니터 앞에서 " 정의 " 를 전자 결재할 뿐이다. 여러 모로 보나 이 사이버 지지 방식이 일렉트릭的이며, 소셜네트워크的이며 심플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계급 간  연대는 무너졌고  대신 그 자리를 인문학적 교양과 양심이 결합된 꾀죄죄한 교양과 ( 정치적 ) 취향만 남게 되었다. 현실을 직시하자니 귀찮고 사실을 외면하자니 찔린다. 그래서 저항인 듯, 저항 아닌, 저항 같은 " 좋아요 " 를 누른다. 이것은 일종의 << 송혜교 효과 >> 다.  " 오늘부로 나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 ! "  < 좋아요 ㅡ 버튼 > 을 누르는 순간 자신은 멍청한 보수 꼴통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 것처럼 코스프레를 하지만  차이점은 거의 없다.

 

< 좋아요 ㅡ 버튼 > 은 " RIGHT " 라기보다는 단순한 " GOOD " 기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골목 상권 보호'를 주장하는 글에 < 좋아요ㅡ 버튼 > 을 누르며 지지하지만 정작 자신은 시장 옆에 우뚝 솟은 이마트에서 장을 본다. 중요한 것은 전시 효과이지 실천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가 SNS 여론을 우습게 보는 이유이다. 이곳에서는 말은 넘치는데 실천은 없다. 68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성공한 혁명이었다. 68혁명은 정치적, 사회적, 성적 금기와 같은 모든 금기가 최초로 도전받고 깨뜨려진 시기였다. 그 실패는 가능성에 대한 리트머스였기에 실패에서 희망을 보았다.  68혁명 이후 프랑스는 수많은 사회 변혁이 이루어졌다. 실패가 결국 사회를 변혁시켰던 것이다.

세계는 곳곳에서 저항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도 끊임없이 저항했고, 저항했고, 저항했다.  누군가는  분신으로 노동자 권리를 전했고,  누군가는 군부 독재와 싸우다가 죽었다.  박정희 덕에 이만큼 먹고산다는 말은 판타지'다. 대의를 위한 노동자의 희생 덕분에 이만큼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말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투쟁의 역사와 신화는 헛것이 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시민 사회는 어느 누구도 개인적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 내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네 일에는 관심이 없다. 甲은 승리했고 乙은 실패했다. 자본에 의한 이자 이윤이 노동에 의한 생산 이윤보다 앞서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는 더 이상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되었다.  돈이 돈을 낳는 구조가 된 것이다.

 

조현아는 몰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불행의 편린'일 뿐이지 인생 자체의 몰락이 아니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몇 달 살다가 경제 활성화라는 이유로 특별 사면되거나 가석방될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이때 일을 마치 무용담처럼 말할 것이다. 몰락과 절망이라는 표현은 특혜와 특권으로 이루어진 계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속담은 이제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돈이 돈을 낳는 21세기 신자유주의는 대대손손 부를 상속할 것이다. 1968년, 소르몬 대학 벽에 이런 문장이 써 있었다. "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 이 말은 마치 클린 윌슨이 << 아웃사이더 >> 에 쓴 그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이룩해야만 할 사명도 없으며, 반드시 전달하지 않으면 안될 감정도 없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며 무엇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있다.

- 아웃사이더 中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은 상상(판타지)'에 속한다. 그렇기에 " 리얼리스트 " 이면서 동시에 " 판타스틱 베이비 " 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뻔뻔한 것이 아니다. 소르몬 대학 벽낙서와 콜린 윌슨의 말은 같은 말이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며 무엇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보상을 바란다. 보수는 이러한 요구를 뻔뻔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말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그것이 비록 확률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말이다.








  1. A 는 알파이고, O는 오메가'이다. 즉, 시작과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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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4-12-3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말, 형태만 시종 바꾸는 고체와 사라지길 반복하는 액체 사이와의 사투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2-31 20:45   좋아요 0 | URL
에휴.. 개새들 ! 진짜 욕 좀 먹는다 싶으면 이름만 살짝 바꿉니다.
칼 휘두르는 양아치에서 갑으로, 갑이 욕 먹으면 멘토`로, 멘토가 시들해지면 힐링 전도사로, 힐링도 욕 먹으면 코칭으로, 이름만 바꾸지 사실 다 비슷비슷합니다.

비로그인 2014-12-31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누르기가 부끄러워지는 글이네요. 그래도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2-31 20:43   좋아요 0 | URL
아, 글구 보니 여기도 좋아요 였죠. 원래는 곰감인가 그랬는데. 좋아요. 좋아요가 뭡니까. 페이스북스럽게 말입니다.

2015-01-01 0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5-01-0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때일수록 예상 가능한 대책 마련이 아니라 도리어 불가능한 요구를 (적에게) 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곰곰발님 저번 말씀처럼 대한민국이 점점 망해간다는 것은 왠지 불변의 현실처럼 여겨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1-02 17:22   좋아요 0 | URL
네, 답답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ㅋㅋㅋㅋ 오죽 답답햇으면....
확실히 세월호 사건은 다른 사건을 압도하는 절대적 절망이 있습니다.
뭔가 그냥 폭삭 가라앉은 듯한 느낌.. 서서히 붕괴되었다기보다는 그냥 왕창 무너진 느낌.. 뭐,그런 느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