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결산
1. 올해의 책
작년에 읽은 책은 대략 100권 안팎이다. ( 이중에는 절반은 옛날에 사 두었다가 이제서야 읽거나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은 경우가 포함되어 있다 ) 반면 산 책은 150권 안팎이다. 결론은 새 책 가운데 100권 정도는 읽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 활동으로 인한 책 공급과 도서 정가제 시행 전 할인 행사 때문에 생긴 비극이다. 잘하는 짓이어서, 꽤... 신난다. 올해의 발견(2014년)은 단연 발터 벤야민'이다. 2500페이지에 달하는 << 아케이트 프로젝트 >> 는 벤야민이 왜 위대한 사상가'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걸작이었다. 칭찬을 하자면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책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모더니티'를 해석하는 방식이 탁월하며,
사상가답지 않게 문장 실력이 여타 문학 작품 못지 않게 뛰어나다. 벤야민이 소설을 썼다면 프루스트를 능가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프루스트가 " 잔향 " 에 의존한 과거 지향적 향수라면 벤야민은 화려한 볼거리를 향한 " 잔상 " 에 기댄다. 다시 말해 프르스트가 형이상학이라면 벤야민은 형이하학적이다. << 일방통행로 >> 와 << 베를린 유년의 기록 >> 도 좋다. 2013년이 허먼 멜빌의 발견 ( 단편 " 필경사 바틀비 " 는 최고였다. 바틀비였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 저는 가만히 있지 않는 편을 선택하렵니다. " ) 이었다면, 2014년은 발터 벤야민의 발견이었다.

2. 올해의 영화 ( 2014 )
올해 극장 개봉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다. 그나마 본 영화는 대부분 약속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하거나 혹은 고속 터미널 발차 시간 간격이 너무 커서 터미널 근처에서 시간을 때울 필요가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4년에 본 극장 개봉 영화를 잠시 언급하자면 << 수상한 그녀 >> 는 모성애를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저열한 가부장적 강박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아무리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볼썽사나운 억척'이라 해도 " 내 새끼만 잘 키우겠다 " 는 삐딱한 모성애가 결합되면 용서받는 사회'이다. < 억척 > 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 타자와 연대하지 않겠다는 의지 " 이다. " 내 새끼 .... " 로 시작되는 모성애'는 타자를 배제한 혈맹이요, 배타적 태도'이다.
건강한 시민 사회'라면 억척스러운 행위는 " 에티켓 부족 " 으로 비판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한국 사회는 모성애를 빙자한 억척스러움이 찬양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엄마와 아빠라는 키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존나 보수적인 각하와 공주 정권'이 입성하면서 과거지향적 문화'가 유행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현실에 대한 불안 혹은 불만이 쌓인 결과이다. 현실에 대한 불안(불만) 때문에 과거를 호명하다 보니 과거지향적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대 위에 올라온 경우이다. 영화 << 변호인 >> 도 얼핏 보기에는 보수 정권에 실망한 진보 진영의 향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사 가족 영화'다. 국밥집 가족을 편모 가정으로 설정한 이유는 송강호를 유사 아버지 대리자'로 대체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가 없는 편모 가정의 빈 자리를 송강호가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아들을 구해내고자 하는 아버지가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대 악과 맞짱을 뜨며 싸우는 " 다이 하드 " 이다. << 명량 >> 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아버지'라는 근대적 인물을 호출하는 대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였던 이순신을 호명한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였던 세대가 개고생하며 나라를 지켰다는 사실을 몰라주면 호로 자식이 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각하 정권과 공주 정권 아래 만들어진 대중 영화는 온통 엄마를 부탁해와 아빠를 부탁해 ㅡ 서사'로 도배가 되었다.
그 정점이 바로 << 국제 시장 >> 이다. 대중 영화가 기본적으로 보수층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영화 서사는 정권에 아부하려는 천박한 근성을 갖춘 영화라서 보는 내내 부담스러웠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 부두에서 시작하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비판받아야 할 점은 " 현대사에 대한 반성 " 은 없고 " 현대사를 향한 미화 " 만 남발했다는 데 있다. 역사 인식에서 중요한 것은 미화가 아니라 반성이다. 개인의 고통을 만들어낸 원인은 외면한 채 고통 그 자체에 신화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피가학적 역사 인식에 불과하다.
2014년에는 주로 서울 아트 시네마를 다니며 고전을 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히치콕 영화'였다. 히치콕 영화는 수십 번 보았지만 올해 다시 체계적으로 보았다. 그중에서도 << 이창 >> 과 << 열차 속의 이방인 >> 은 올해의 발견이었다. 특히 << 열차 속의 이방인 >> 은 걸작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걸어둔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971840 : 열차 속의 낯선 자들 )
3. 올해의 인물
갑오년(2014)의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눈물 마케팅 전략은 감동적이었다. 모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 30초만 숨쉴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 " 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대국민 담화는 " 30초간 눈 감지 않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 " 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서로 상대방 눈을 쳐다보다가 한쪽이 눈을 감으면 지는 놀이가 있는데,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과 눈싸움을 했는지도 모른다. 을미년(2015)의 인물도 박근혜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고, 병신년(2016)의 인물도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 무엇을 해도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줬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 무엇을 해도 상상 그 이하'를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권이 형이상학이라면 박근혜 정권은 형이하학이다. 형이하학은 형체를 갖추고 있는 사물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하는데 " 콘크리트 사이언스 " 라고도 부른다. 마가렛 대처가 철의 여인이었다면, 박근혜는 콘크리트의 여인'이다.
4. 올해의 음악
올해의 음악은 고승덕이 이동식 길거리 무대에서 선보인 << 미안하다 >> 라는 곡이다. 박진영 심사위원이었다면 " 미안하돠 ~ 라고 내지르는 고 퀄리티 고음 샤우팅 기술은 뛰어난데, 진심이 보이지 않아 아쉽네요. " 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롹에서 중요한 것은 진심이 아니라 기술이다. 진심 운운하는 것은 발라드에나 필요하지 악을 기술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하드 락에서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고승덕의 미안하다는 완벽한 샤우팅 기술을 선보인다. 가히 놀랄 만한 음악이었다.
5.올해의 정의
올해의 정의 상은 미국 백악관을 선정했다. 활동 사진을 팔아서 먹고 사는 헐리우드 변방의 꼬딱지 만한 소니 픽쳐스'가 해킹을 당했는데 해커로 북한이 지목되었다. ( 미국 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해킹 주범은 북한이 아니라 돈을 노린 소니 픽쳐스 직원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 이에 오바마는 일개 사기업의 흥망을 국가의 흥망으로 생각하야 " 비례적 보복 " 이라는 야리꾸리한 말로 복수를 감행했다. " 네 일 " 을 " 내 일 " 로 생각하는 백악관이야말로 정의로운 집단이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들었다고나 할까 ? 대다나다.
6. 올해의 히트 상품
올해의 히트 상품은 << 가마니 >> 로 선정했다. 가마니를 파는 곳은 없다보니 곳곳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 가마니 있어 ?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은 가마니 있으면 안되는 나라'이다. 가마니 있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 가마니 무서운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