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다음은 한겨레 블로그 박노자 글방에 올라온 << 개인 일상의 시대 >> 란 글을 서재에 옮긴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희망과 다짐보다는 절망과 포기로 이 글을 시작한다. 지하 생활자의 어깃장이라 생각하지 말고 현실을 보자.
개인 일상의 시대
박노자
저는 이번 신정을 앞두고 계속 여행질해왔습니다. 며칠 전에 오래간만에 모스크바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며칠 밖에 안되는 방문인지라 제 견문은 한계가 많지만, 한 가지 인상을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의 세계관이란 뚜렷하게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서방"과 "자본주의"에 대한 희망들이 많이 깨진 듯합니다. "민주적 서방"은 우크라이나에서 상당히 비민주적인 새 정권을 세우는 데 지원한 게 뚜렷하게 보였고, 또 6년 전에 고장이 난 자본주의가 여전히 그 모순덩어리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해 세계공황에 끝이 보이지 않는지라...몇년 전만 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서방"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매우 드물었으며, 요구의 최대치는 "서구와 같은 합리적인 체제, 공명 선거, 푸틴 권위주의 퇴장" 정도이었지만, 인제는 그 정치사상적 순진성에 상당히 균열이 간 것 같습니다. 2010년, 톨스토이 서거100주년에 권위주의적이며 군사주의적 국가도,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지식인 사회"도 군대 만큼이나 토지사유제 등을 혐오했던 러시아 문호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재조명 시도도 없이 그 100주년을 묵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히려 그 무관심에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 참신했습니다. 획실히 "여론"이 움직이고 있어 점차적 급진화의 과정이 "저류", "심층"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사회 의식이 점차 바뀌고 좌파에 훨씬 더 열려간다 해도, 사회의 현실은 의식만큼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비판을 인제 서슴지 않지만, 여전히 그 비판자들이 현실적으로 바라는 것은 취직이든 이민이든 아니면 국가로부터의 복지혜택이든 개인적인 "체제에의 편입"이지, 체제와의 현실적 충돌을 대다수가 여전히 피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지젝 등 "유행 속의 팝 좌파"에 심취할 수 있어도 이 개인적 취향은 현실적 삶에 거의 영향 주지 않는 거죠. 사회의 저항력은 여전히 대단히 낮은 수준에 있습니다. 급진좌파는 "셔클" 차원에서 존재한다 해도, 그 이상 나아가기에는 지반이 아직도 너무나 약하다는 거죠.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가요? 일면으로는 우리 집단의식은 우리 현실을 꽤나 정확히 반영합니다. <미생>의 장그래가 거의 "전국민의 캐릭터"가 되고 상징적 존재가 된 것을 보시죠. 대중문화산업도 반응해야 할 정도로 "노동인구의 비정규직화는 대참사다", "비정규직으로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해서 민생이 다 망한다"는 의식이 많이 퍼진 셈입니다. 아니면 최근의 유행작인 <카트>의 열풍을 보시죠. 현재 노동투쟁의 신주류인 비정규직 투쟁이 이미 대중문화 속의 "주요 주제"로 부상할 정도라면...신자유주의에 비판적 여론의 저류가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봐야 할 셈입니다. "진상고객"부터 "땅콩회항"은 "갑질"에 이어 갑오년의 유행어가 된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러시아가 "서방"과 "자본주의"에 실망했듯이, 대한민국도 "경쟁"의 신격화에 이미 나름 실망하여 광범위한 민중층 속에서 "따뜻한 사회", "민생 챙기는 나라"에 대한 선호모드가 만들어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왜 러시아에서 대자본과 군벌, 안보꾼 등의 대표자라고 할 푸틴은 그 어떤 "국유화" 등의 정책없이도 계속해서 80% 이상의 지지를 받을까요? 왜 한국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편에 섰던 통진당의 깡패적인 "강제해산"은 그 어떤 대규모적인 격렬집회의 파도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까요? 왜 그렇지 않아도 말도 안될 정도로 비정규직에 불리한 기존의 비정규직 관련의 법률을 더더욱더 개악시키려는 박근혜의 표독스러운 정권은 "저항의 해일"을 아직도 맞이하지 않았을까요? 왜 현실성이 강한 사회 의식과 너무나 타협적인 사회의 현실은 이 정도로 딴판일까요?
저는 이게 준주변부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원자화된 사회에서는 사회 의식은 아무리 좋게 진화돼도, 급진 조직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는 "잠재적 저항층"의 대다수는 그저 개인 일상 속에 파묻혀 삽니다. "저항"을 시도해도 그저 개인적으로, 일상 속에서 피케티를 읽거나 페북에서 급진적 포스트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저항"을 연출해보는 것이지, 개인으로서 부담이 돼 일상에 방해될 수 있는 연대적인 집단행동을 가급적 삼가한다는 것입니다. 데모해도 죽거나 크게 다칠 시대는 지났지만, 일단 데모하게 되면 사진 채증돼 나중에 막연히 불리할 수도 있고, 또 잘못되면 벌금형 등이 내려질 수 있기에, "격렬집회"는 거의 과거 속으로 흘러간 셈입니다. 모든 가용 자원들이 개인 생존을 위한 사투에 집중되는 개인 일상의 시대, 즉 자본주의 후기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인이 이해관계도 불확실한 "타자"들과의 연대에 약간이라도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개인의 정의감이 아무리 짓밟혀도, 이에 대한 반응을 집단저항보다 개인적 소비로 표출됩니다. 피케티를 읽고 <미생> 보고 장그래를 동정하고...이런 세대의 기준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것은 바로 "포스트" 철학이기도 하죠. 패배 당한 1968년의 혁명 이후의 소비/일상의 세대의 커다란 자기변명은 바로 "포스트"에 해당됩니다.
개인 일상으로의 회귀라는 우리 아노미는 전혀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기자본주의의 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기에 언젠가는 조직과 집단행동의 시대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피케티나 지젝의 독자 내지 <미생>의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문재인들의 "복지주의"적 궤변에 넘어가서 보수야당에 표를 던지는 것까지 아마도 "개인적 저항"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정말 답답한 겨울의 시대죠.
세월호는 시작이자 끝이었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 아아 / A > 와 < 오오 / O > 뿐 이었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고는 없었다. 언론은 초라한 리얼리티 ( 현실 ) 을 숨긴 채 판타지 ( 허구 ) 를 양산했다. 긴급 편성된 24시 재난 방송은 헐리우드 영화 속 장면처럼 긴박감 넘치게 작동하고 있었다. 최대 인원, 최대 물량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재생되었다. 말 그대로 " 지상 최대의 작전 " 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난 방송이라기보다는 국가 홍보 방송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거대한 스펙타클과 화려한 판타지에는 정부의 프로파간다적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방송 보도와는 다르게 진도 앞바다는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처음부터 정부는 구조 의지'가 없었다.
관료 조직은 일사분란한 게 아니라 뒤죽박죽이었다. 대한민국은 << 오즈의 마법사 >> 에 등장하는 마법 나라 王처럼 초라하고 꾀죄죄한 " 얼라 " 였다. 그들은 콧잔등처럼 보이는 배 밑바닥 꼬투리'가 빨리 가라앉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숨쉬는 게 거북해지는 순간이었다. " 리얼 " 인 척하는 " 판타지 "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판타지인 척하는 리얼리티 > 가 세련된 정치적 수사'라면 < 리얼리티인 척하는 판타지 > 는 천박한 기만이었다. 후자는 백마 탄 실장님과 결혼하게 되는 가난한 여자가 주인공인 드라마 연속극이었다. 세월호 방송 보도는 명백하게 리얼리티인 척하는 판타지였다. 기만이었다. 오직 거대한 울음만이 숭고한 수난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재난 앞에서 일베가 폭식 투쟁을 펼쳤을 때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박근혜가 " 통일 콘서트 사제 폭탄 테러 사건 " 에 대한 언급에서 테러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하지 않은 채 테러 피해자인 토크 콘서트 강연자에게 사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때 이미 대한민국은 " 위 아래, 위위아래, 위 아래, 위위아래 " 모두 썩을 대로 썩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박노자는 글에서 " 개인은 이해관계도 불확실한 "타자"들과의 연대에 약간이라도 투자하려 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개인의 정의감이 아무리 짓밟혀도, 이에 대한 반응을 집단저항보다 개인적 소비로 표출 "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제 21세기 시민 사회는 정부 비판 글'에 대해서는 < 좋아요 > 를 클릭할 수는 있을 만큼 인문학적 소양을 갖췄지만 왜 아니 그러겠는가. 단군 이래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아니었던가 ? 정작 광장으로 나와 손을 잡지는 않는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광장에 나와 " 정의 " 를 외치기보다는 모니터 앞에서 " 정의 " 를 전자 결재할 뿐이다. 여러 모로 보나 이 사이버 지지 방식이 일렉트릭的이며, 소셜네트워크的이며 심플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계급 간 연대는 무너졌고 대신 그 자리를 인문학적 교양과 양심이 결합된 꾀죄죄한 교양과 ( 정치적 ) 취향만 남게 되었다. 현실을 직시하자니 귀찮고 사실을 외면하자니 찔린다. 그래서 저항인 듯, 저항 아닌, 저항 같은 " 좋아요 " 를 누른다. 이것은 일종의 << 송혜교 효과 >> 다. " 오늘부로 나는 너의 죄를 사하노라 ! " < 좋아요 ㅡ 버튼 > 을 누르는 순간 자신은 멍청한 보수 꼴통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 것처럼 코스프레를 하지만 차이점은 거의 없다.
< 좋아요 ㅡ 버튼 > 은 " RIGHT " 라기보다는 단순한 " GOOD " 기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골목 상권 보호'를 주장하는 글에 < 좋아요ㅡ 버튼 > 을 누르며 지지하지만 정작 자신은 시장 옆에 우뚝 솟은 이마트에서 장을 본다. 중요한 것은 전시 효과이지 실천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가 SNS 여론을 우습게 보는 이유이다. 이곳에서는 말은 넘치는데 실천은 없다. 68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성공한 혁명이었다. 68혁명은 정치적, 사회적, 성적 금기와 같은 모든 금기가 최초로 도전받고 깨뜨려진 시기였다. 그 실패는 가능성에 대한 리트머스였기에 실패에서 희망을 보았다. 68혁명 이후 프랑스는 수많은 사회 변혁이 이루어졌다. 실패가 결국 사회를 변혁시켰던 것이다.
세계는 곳곳에서 저항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도 끊임없이 저항했고, 저항했고, 저항했다. 누군가는 분신으로 노동자 권리를 전했고, 누군가는 군부 독재와 싸우다가 죽었다. 박정희 덕에 이만큼 먹고산다는 말은 판타지'다. 대의를 위한 노동자의 희생 덕분에 이만큼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말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투쟁의 역사와 신화는 헛것이 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시민 사회는 어느 누구도 개인적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 내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네 일에는 관심이 없다. 甲은 승리했고 乙은 실패했다. 자본에 의한 이자 이윤이 노동에 의한 생산 이윤보다 앞서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는 더 이상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되었다. 돈이 돈을 낳는 구조가 된 것이다.
조현아는 몰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불행의 편린'일 뿐이지 인생 자체의 몰락이 아니다. 그녀는 교도소에서 몇 달 살다가 경제 활성화라는 이유로 특별 사면되거나 가석방될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이때 일을 마치 무용담처럼 말할 것이다. 몰락과 절망이라는 표현은 특혜와 특권으로 이루어진 계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부자가 삼대를 못 간다는 속담은 이제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돈이 돈을 낳는 21세기 신자유주의는 대대손손 부를 상속할 것이다. 1968년, 소르몬 대학 벽에 이런 문장이 써 있었다. "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 이 말은 마치 클린 윌슨이 << 아웃사이더 >> 에 쓴 그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렇다 할 재능도 없고 이룩해야만 할 사명도 없으며, 반드시 전달하지 않으면 안될 감정도 없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며 무엇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 보상을 바라고 있다.
- 아웃사이더 中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은 상상(판타지)'에 속한다. 그렇기에 " 리얼리스트 " 이면서 동시에 " 판타스틱 베이비 " 가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뻔뻔한 것이 아니다. 소르몬 대학 벽낙서와 콜린 윌슨의 말은 같은 말이다.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며 무엇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보상을 바란다. 보수는 이러한 요구를 뻔뻔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말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그것이 비록 확률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말이다.
- A 는 알파이고, O는 오메가'이다. 즉, 시작과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