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손창섭
참으로 별난 사람이지요. 평생 작가티를 내지 않았어요
- 손창섭 아내, 우에노 여사의 회고
2014년 개인 독서 기록장을 토대로 결산하자면 : " 올해의발견 " 은 발터 벤야민'이고, " 올해의책 " 은 << 내가 만난 손창섭 >> 이다. 이 책은 2009년 손창섭 작가가 일본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린 국민일보 기자 정철훈 씨가 집필했다. " 애타게 손창섭을 찾아서 " 현해탄을 건넌 저자의 탐사 르포인 셈이다. 그런데 " 애타게 " 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손창섭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손창섭 작가는 국내 지인과 1996년까지 편지로 서신 왕래를 했고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가 지금의 현주소였으니 은둔 작가라는 말이 민망할 만큼 ( 성의만 있었다면 ) 손창섭 작가'에 대한 행방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문단은 손창섭을 철저하게 외면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국 문단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의와 예우를 갖췄더라면 손창섭에 대한 풍부한 자료 조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현대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작가는 고은'이나 황석영 따위가 아니라 손창섭'이었다. " 작가티 " 만 놓고 보자면 " 시시한 소설가로 통하는 S ㅡ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삼류 작가 손창섭 씨 1 " 보다는 고은이나 황석영이 더 근사하겠지만 말이다. 만약에 그가 절필하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 했다면, 한국 문단이 그토록 소망하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통속적인 세태 소설이라고 폄하된 후기 소설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병적 세태를 적나라하게 투영하고 있었다.
문장은 김승옥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시대를 꿰뚫는 문제 의식은 포스트모던한 구석이 있었다. 마지막 소설'인 << 삼부녀 >> 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해체하고 그 자리를 피가 섞이지 않은 타자로 이루어진 가족으로 재구성하는 막장 소설'이다. 아내가 집을 떠나고 두 딸마저 가출을 하자 그 자리를 술집 여대생과 친구의 어린 딸이 대신한다. 유사 아내 역할을 하는 여대생과 딸 역할을 하는 친구 딸은 호시탐탐 아버지를 욕망한다. 손창섭이 이 소설에서 다루고자 하는 목적은 근대적 가부장 사회의 유산'인 " 자아 중심적 존재론 " 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가부장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지워진 " 타자성의 얼굴 " 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알기 쉽게 쌈마이들이 즐겨 말하는 저잣거리 입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가부장 중심 사회'라는 말은 딱딱한 남근 중심 사회'라는 소리이고, 자아 중심적 존재론'이란 내 새끼 귀한 줄은 알면서 네 새끼'는 귀한 줄 모르는 항문기 고착 사회를 뜻한다. < 내 > 와 < 네 > 를 대하는 잣대가 판이하게 다른 남근적 자세가 바로 자아중심적 존재론'이다. 여기에 김민정 시인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 좆 > 은 숭배하면서 < 젖 > 은 배제하려는 배타적 사회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무식하게 말해서 손창섭은 가부장 욕망이 극단적으로 숭배되었던 1970년대에 핏줄 대망론인 브라더후드 ( 불알 연맹 ) 에서 벗어나 불알 연맹에 의해 쫓겨난 타자와 연대하여 대안 가족을 만들자는 발칙한 주장을 한 것이다.
손창섭이 제시한 대안 가족은 레비나스의 << 전체성과 무한성 >> 에 나오는 " 타자(성)의 윤리학 " 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단편 소설과는 달리 손창섭이 먹고 살기 위해서 신문에 연재한 세태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레비나스가 대한민국에서는 뒤늦게 알려진 철학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창섭이 레비나스 철학을 접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엄혹한 강철 군화 시대에 이미 " 타자성 " 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문제적 인간이었다. 이 리뷰 목적이 손창섭 작가론'은 아니니 이쯤에서 장면을 전환하도록 하자. F.O ( 서서히 암전 )
사실 << 내가 만난 손창섭 >> 이란 책은 내용면에서 많이 아쉽다. 뜸을 덜 들인 상태에서 섣불리 밥그릇에 담은 꺼끌꺼끌한 밥 같다. 저자가 손창섭을 찾아갔을 때 손창섭은 이미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만큼 쇠약해진 상태였으니 그저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저자가 우에노 여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내용이 지극히 빈약했으며,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적극적 자세도 부족해 보였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차 한 잔 앞에 두고 오간 담소'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손창섭 연구의 시발점 혹은 디딤돌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매우 값지다. ( 손창섭 사진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
우에노 여사가 말했던 것처럼 손창섭은 " 작가티 " 를 전혀 내지 않은 이상한 작가'였다. 그는 문단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는 작가이면서 작가'라는 직업군을 신뢰하지 않았다. 정작 자신은 현대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을 거머쥔 독보적 존재였으면서 말이다. " 껄렁껄렁한 시나 소설이나 평론 줄을 끄적거린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우쭐대는 선민의식. 말하자면 문화적인 것 일체와 문화인이라는 유별난 족속 전부가 싫은 것이다. ( 단편 << 신의 희작 >> 中) ”그가 보기에는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모두 한통속이었다. 손창섭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접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대한민국을 떠난 이유도 인간 혐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그는 이미 40년 전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시대를 앞선 작가의 천리안'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