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 웨이츠, 밥 딜런 그리고 아델
어지러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저항하려 하지 않고 그것에 탐닉해버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에 취하고 더 약해지기를 바라며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큰길에서 주저앉게 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땅바닥보다 더 낮은 곳에 쓰러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ㅡ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中

ㅡ 탐 웨이츠
노래방에서 심수봉 노래를 부르려다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평소라면 빵빠레 포텐'이 터지면서 태진아 노래방 기기 목소리'가 나에게 " 우와,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 " 라는 명랑한 심사평을 남겼을 텐데, 심수봉 노래'가 끝나자 태진아 노래방 목소리'가 나에게 남긴 말은 " 하는 짓이 가관이네요 ! " 라는 맹랑한 심사평'이었다. 노래가 끝나면 접대용 멘트처럼 흔들던 헝가리 이주민 템버린 씨'조차 침묵했다. 템버린, 너조차 ? 순간, 주먹 불끈 쥐며 괄약근 꽉 조였지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노래 실력으로는 심수봉 노래다운 눈물 젖은 " 마이너ㅡ뽕끼 " 를 재현할 수는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심수봉 노래'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과는 항상 동일했다. 놀고 있네요 ! 그런데 심수봉 노래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단 나만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심수봉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트로트'라고 해서 모든 이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심수봉 노래는 어렵다. 곰곰 생각하면 아무리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라 해도 심수봉 노래를 멋들어지게 소화하는 가수를 본 적이 없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 보였다. 마치 이명박이 노무현 코스프레 한다고 밀짚모자 쓰고 자전거 타고 다니는 꼴과 비슷했다. ( 그에게는 오뎅, 호떡, 국밥 따위를 개스럽게 게걸스럽게 먹을 때가 " 존나 " 예쁘'다. ) 이처럼 보기엔 쉬워보여도 막상 부르면 어려운 노래'가 있다. 그것은 심수봉이 어려운 노래를 쉽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심수봉 노래는 오롯이 심수봉이 불러야 맛이 난다. 그녀는 어려운 표현을 쉬운 문장으로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문장가'다.
▶ http://youtu.be/JJcOWEucuFE : 정승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과 유재하 노래'도 그렇다. 노래방에서 제발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노래 1위'가 임재범 노래'라고 하는데, 내 기준을 적용하자면 노래방에서 정말 듣기 거북한 노래는 김광석과 유재하 노래'다. 이들 노래는 타인이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존재한다. 그런데 << 케이팝스타 >> 에서 정승환은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을 자기 노래'처럼 소화했다. 탁월한 목소리'였다. 듣고 있으니 눈물 나누나. 하지만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비단 " 가창력 " 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있는 기준은 아니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는 종종 가창력이 별 볼 일 없기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 http://youtu.be/ZVLtH6Bt8Kg 탐 웨이츠, 미니애폴리스의 창녀에게 온 크리스마스 카드 : 찰리, 잘 지내 ? 존나 보고 싶다, 시바. 난 잘 살아. 순둥이 남편 만나 사랑도 하고 임신도 했어. 존나 날마다 감동 쩌는 이벤트 마련한다. 시애미'도 잘해. 니미. 행복해, 호호. 똥 쌀 지경이야. 아, 사실. 나 돈이...... 좀, 필요해. 지금까지 했던 말 다 거짓말이야. 나 여기 깜빵이야. 보석금이 필요해.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찰리 ? 생각난다. 우리 침대에서 뒹굴 때 말이야. 자긴 내 젖가슴 터져라 움켜쥐었고 난 당구공 같은 당신 불알을 핥고는 했지. 당신 불알을 난 항상 눈깔 사탕이라고 놀렸잖아. 난, 흠뻑 젖고는 했어. 보고 싶어, 찰리. 돈 빌려줄 수 있지 ? 보석금만 있으면 크리스마스 전날에 풀려날 수 있을 거야. 찰리... 오, 찰리 !
탐 웨이츠와 밥 딜런'은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아니다. 둘 다 썩은 성대'로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고음이 없다. 눅눅한 짚불마냥 슬슬 타다가 연기만 매캐하게 날 뿐이다. 명창이 박연 폭포 아래에서 피를 토하는 지옥 훈련 끝에 득음을 얻었다면, 탐과 밥은 여자와 담배와 위스키로 숙성된 성대'로 전봇대 아래에다 800,000번 토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둘 다 썩은 성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썩은 성대에 썩 좋지 못한 가창력으로 불렀는 데도 이 정도 퀄리티'라면 가창력 뛰어난 가수가 부르면 정말 뛰어난 노래'가 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탐 웨이츠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르면 맛이 안난다. 찰스 부코스키'가 위스키 먹고 술 취한 상태에서 부르면 모를까, 다른 이'가 탐 웨이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 http://youtu.be/HwA-droqk5Y 밥 딜런, make you feel my love : 날도 오지라게 춥고 애새끼들은 널 괴롭히는 것 같고, 시바 ! 슬퍼서 많이 울었지 ? 비록 찐따 같은 나이지만 네 횡경막이 으스러지도록 안아줄께. 날 믿어, 시바. 우린 처음 만났을 때 알았어. 넌 내 여자'라는 사실. 우리 그냥 둘이, 고슴도치처럼 살자.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대로변에다 대변을 싸라고 명령하면 난 진짜 쌀 수도 있어. 넌 내꺼야.
반면 밥 딜런'은 정반대'다. 밥 딜런이 부른 노래를 듣게 되면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아주 나쁜 상태도 아닌 노래처럼 들린다. 음... 그러니까, 그냥 " not bad ! " 인 상태'다. 그런데 실력파 가수가 다시 부르게 되는 경우, 그 노래가 보석 같은 곡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밥 딜런이 가창력이 없다 보니 보석 같은 노래'를 not bad하게 부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 딜런 노래'는 누군가가 다시 불러야 비로소 진가'를 알 수 있는 곡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밥 딜런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썩은 성대, 새집 같은 헤어스타일, 허접한 가창력'에서 쏟아내는, 매캐한, 연기 자욱한, 뜨, 뜨뜨미적지근한, 겨우 내내 얼었던 수도가 봄볕에 녹아 쏟아내는 녹물 같은 맛이 밥 딜런 노래의 아우라'다. 이들 목소리에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떠돌이 서정을 담고 있다.
다음은 같은 노래를 가창력 제왕인 아델'이 부른다. 아델의 곡이 뛰어나지만 아델 노래는 불알 탁, 치며 아, 프게 하는 싼티 나는 " 19,990원의 서정 " 이 없다.
▶ http://youtu.be/ljawHxBl_Rk
아델의 프리허그'가 달달할지는 모르지만 끈적끈적한 뒷골목 쌈마이 프리허그'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수채화 물감으로 유화 그림 흉내를 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아무래도 가창력 뛰어난 가수의 미성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하기보다는 둔탁한 통증 앞에서 불알 탁, 치고 아, 픈 노래에 끌린다. 둘 다 좋다. 하지만 비루한 쌈마이 프리허그'가 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