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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오리지널 하이비트 에디션 - [할인행사]
나카다 히데오 감독, 마츠시마 나나코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어수선 43호
이 글을 보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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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알브레히트 뒤러 <오르페우스의 죽음> 1494년. 펜 드로잉, 28.9x22.5. 함부르크 미술관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링 >> 줄거리'를 10자평으로 요약하자면 " 이 비디오를 보면 죽는다 " 이다. 6자평으로 더 줄이면 " 동영상 쥑이네 ! " 이다. 더 줄이라고?! " 쥑이네 " 정도면 요약 정리'가 되지 않을까 ? " ○○ 하면 죽는다 " 식 서사는 신화ㅡ서사'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뮤지션 오르페우스'가 대표적 인물'이다. 독사에게 복사뼈를 물려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그리워하다 하데스 부부와 쇼부를 보기 위해 저승길 여행'에 오른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를 설득하여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뒤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몇 발자국 앞이 빛이 있는 지상 세계'였으니 오르페우스는 땅을 치며 후회했으리라.
그런데 이토록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오비디우스의 << 변신 이야기 >> 에 따르면 실의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여자를 멀리하고 미소년들과 놀다가 그만 동성애'에 빠지게 되고, 나중에는 남색을 유포한 죄로 여성들에게 돌팔매와 몽둥이질'로 사지가 찢겨 죽는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 오르페우스의 죽음 >> 이라는 그림을 보면 나무우듬지에 걸린 현수막(?) 에 " Orfeus der erst puseran " 이라 쓰여있는데 번역하자면 " 오르페우스, 남색의 시조 " 라는 뜻이다. 그는 성적 취향 때문에 죽음에 이른 최초의 홀로코스트 희생자'였던 셈이다. 애틋한 러브 스토리'는 어느새 막장 잔혹극으로 끝난다. 마치 품격 높은 노희경 드라마로 시작했다가 임성한 드라마'로 급히 매조지하는 느낌'이다.
뒤돌아보면 죽는다는 서사는 " (비밀을) 말하면 죽는다 " 는 이야기로 변형되었는데 비밀'이 < 과거'라는 뒤에 머물러 있는 어떤 것 > 이라는 점에서 < 뒤돌아보면 죽는다 > 와 < 비밀을 말하면 죽는다 > 는 동일한 서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구미호 전설'이다. 이승 세계를 알리는 희미한 빛이 보이자 방심한 오르페우스가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듯이, 구미호 남편도 천 일'을 하루 남긴 날, 긴장이 풀린 탓인지 구미호의 경고를 잊은 채 비밀'을 누설하여 구미호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 구미호 또한 에우리디케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반면 메두사 신화 줄거리를 10자평으로 요약하자면 " 똑바로 쳐다보면 죽는다 " 이다. 6자평으로 더 줄이면 " 꼴리면 죽는다 " 가 되고, 더 짜내면 " 눈 깔아! " 가 된다.
비속어'를 교양어로 승격시킨 남근의 아버지 프로이트 씨'는 메두사 신화에서 메두사를 여성 성기'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했고 돌이 되어 죽는 현상을 페니스 발기'로 설명했으니, 그에게 있어서 메두사 신화는 " 꼴리면 죽는다 " 는 이야기'와 동일한 서사'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영화 << 링 >> 도 꼴리면 죽는다ㅡ서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무시무시한 사다코 괴물'은 메두사와 피를 나눈 sisterhood 이다. 사다코와 눈이 맞은 대상은 모두 죽는다. 프로이트 식으로 설명하자면 그들은 꼴려서 죽는다. 사다코가 출현하는 곳이 우물'이라는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우물은 " 검고 촉촉한 구멍 " 이다. 이 형태는 명백히 여성 성기'에 대한 게슈탈트 gestalt 라 할 수 있다.
우물이 물을 저장하는 곳이란 점에서 우물은 양수'를 담은 자궁과 같다. 말도 안되는 억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텍스트를 해석하는 몫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라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롤랑 바르트도 저자는 죽었다고 선언하지 않았는가 ? 내가 보기엔 << 링 >> 은 메두사 신화와 유사하며 더 멀리 보면 오르페우스 신화'와도 연결된다. << 링 >> 에서 보여주는 검은 우물(구멍)은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볼 때 목격하게 되는 검은 동굴'과 겹쳐진다. 오르페우스가 뒤돌아서 본 것은 어떤 " 검은 응시 " 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체의 응시가 아니라 대상(타자)의 응시에 있다. 그러니까 오르페우스가 어둠'을 뒤돌아본 것이 아니라 어둠의 눈이 오르페우스'를 응시했기에 오르페우스의 욕망인 에우리디케는 사라진다( 혹은 돌이 되어 죽는다)
타자의 응시'에 대한 문제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이 1977년에 연출한 영화 제목인 << the hills have eyes / 언덕에 눈이 있다 >> 에 잘 나타나 있다. 등장 인물(주체)이 언덕을 응시하는 게 아니라 언덕(대상)이 주체를 응시한다. 니콜라스 뢰그 감독이 연출한 << 눈 깔아, 시바 ! don't look now >> 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관객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타자의 불분명한 응시 때문에 불안해진다. 영화 속 타자(영화 주인공이 아닌)는 끊임없이 정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응시'를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이 응시'는 생각보다 효과적인 공포를 창출한다. 이처럼 << 링 >> , << 오르페우스 신화 >> , << 메두사 신화 >> , << 쳐다보지 마 >> 는 공포의 주체'가 " 응시 " 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예는 무엇이 있을까 ? " 이 글을 보면 " 죽는다는 설정도 있다. 한번쯤 경험했으리라. 행운의 편지'가 그렇다. 연애 편지 한번 받아본 적은 없어도 "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 로 시작되는 행운의 편지'는 모두 받아보았으리라. 만약에 행운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20세기'를 논할 자격이 없다. 행운의 편지 내용을 10자평으로 요약하면 " 이 편지'를 읽으면 죽는다 " 다. 그것은 사다코가 비디오 테이프 대신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지로 된 비디오 테이프'이다. 아마도 << 링 >> 원작 소설가 스즈키 코지는 행운의 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만 보면 행운의 편지'와 스팸'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편지를 뜯는 순간 혹은 클릭하는 순간 : 악성 바이러스'는 당신 뇌와 개인 컴퓨터에 침투하여 회로를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악의를 숨긴 메시지'는 대부분 친절하다. " 나야, 김미영 ! 오랜만이지. 보고 싶어 " 라거나 " 악성 바이러스로부터 당신의 정보를 보호하십시오 " 로 시작하는 가짜ㅡ무료 백신 메시지'가 좋은 예이다. 그런 메시지'는 달달한 말로 당신을 유혹한다. 사기꾼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악의를 숨긴 메신져'이다. 비록 내 글이 거칠고 횡설수설하지만 적어도 난 달콤한 메시지'로 당신'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않고, 손글씨를 10번 필사해서 유포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게 하지도 않는다. 내 글은 유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유해하지도 않다. 안심하고 읽어도 좋다 ㅡ
라고 끝낼 줄 알았지 ? 천만에 ! 이 글은 행운의 편지'다. 이 글을 보면 죽는다. 이 포스트'를 손글씨로 열 번 써서 당신 블로그에 인증샷을 올리지 않을 경우, 당신은 열흘 안에 죽는다.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