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라스 루만의 <사회적 체계들> (2020, 한길사)이 새 역자의 참여로 재번역, 재출간되었다. 기존의 (오역으로 점철되었던) 번역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수없으나 (두 판본의 번역 비교는 관심이 아니라서), 적어도 루만의 역작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갑다. 이를 기회로 <사회적 체계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였다. 과연 번역이 많이 매끄러워지고, 적어도 1장을 읽는 동안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다만, 영어 번역판과 비교해서 여전히 군데군데 오역으로 보이는 부분이 남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고, 또 어떤 부분은 영어 판본이 훨씬 쉽게 읽히는 면도 있고 해서, 다시 이 책을 읽는 참에 오역이나 재번역이 필요한 부분을 다른 루만 독자들과 공유하면 어떨까 하여 이 글을 적는다.
물론 독일어 원본은 읽을 수 없어 영어 번역본과 비교했기 때문에, 영어판본이 틀렸고 한글번역이 옳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문맥상 오역으로 판단되는 부분은 [오역]으로, 오역이 아니더라도 영어본을 재번역한 것은 [번역]으로 표시한다. 틈이 나는 대로 책을 읽는 중이라, 조금씩 오류를 발견하는대로 내용을 업데이트하기로.
1장. 체계와 기능
2.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의 기본 개념들: 복잡성 이론과 분화 이론의 동시 추진을 위한 기획
“복잡한 체계들은 자신의 환경에 적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한 복잡성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체계들은 내적 불확실성과 불충분성으로 버텨내어야 한다.” (127)
✏️ [번역] 체계들은 내적 비개연성(internal improbabilities)과 불충분성(inadequacies)에 대처해야(cope with) 한다.
“달리 말하면, 구조들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의 기초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면 자기생산적 재생산의 연결 능력을 가능케 해야 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가능한 변화들, 가능한 학습의 영역을 제한받는다.” (135)
✏️ [번역] (자기고유 존재의 기반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기생산적 재생산의 연결성(connectivity)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구조 structures”이다. 이것은 가능한 변화나 가능한 학습 영역을 제한한다.
“이러한 통제의 쟁점화는 부분적으로 자기관찰(Selbstbeobachtung)의 강조를 통해 상쇄된다. 관찰은 이 맥락, 즉 일반 체계이론의 층위에서는 바로 구분을 다룬다는 뜻이다. [관찰] 개념은 심리적 체계의 경우에서만 의식을 전제한다” (136)
✏️ [오역] ‘통제'가 아니라 ‘관찰’
“개념들과 이론들을 이렇게 재배치하는 것은 과거의 사고 수단들에 비해 매우 중요한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그 점을 특별히 자세하게 다루어야 한다.” (139-140)
✏️ [오역] 과거의 사고와 분리되는 이 변화(개념과 이론의 재배치)는 매우 중요해서...
“그 생각은 관련들의 실행이 복잡성 때문에 선택들을 요구하며 그래서 그 실행이 요소들에 단순하게 추가될 수 없다는 테제로 대체된다. 관계의 실행은 요소들의가능성들의 조각에 연관되며 요소들의 자격을 부여하는 데에 기여한다.” (140)
✏️ [오역/번역] 그 생각은 요소들을 연결하는 과정의 실행이 복잡성 떄문에 선택을 요구하며, 그래서 그 관계가 요소들에 단순하게 추가될 수 없다는 테제로 대체된다. 그러한 선택들과 함께, 관계짓는 과정은 요소들의 가능성 중 일부를 버림으로써 그것들(요소들)에 자격을 부여한다.
“자기준거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차이)동일성들에 대한 배수 구성의 요구는 '체계/환경 - 주제'를 또한 다른 방식으로 복잡하게 만든다.” (141)
✏️ [번역] 자기준거적으로 처리가능한 (차이)동일성들은 다중적으로 (multiply) 구성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체계/환경-주제를 새롭게 복잡하게 한다.
“구조는 차이 경험으로 이동하기만 하며, 그 경험들은 그 자체로 정보를 가능케 하지만, 그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는다.” (144)
✏️ [번역] 구조는 그 안에서 무엇이 발생할지 결정하지 않고도 정보를 가능하게 하는 차이 경험을 시작(enter into)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체계들의 복잡성을 꿰뚫어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논리의 이유에서도 그러하다.” (144)
✏️ [오역] 이것은 체계들의 복잡성을 꿰뚫어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not because..., but...) 논리의 이유에서 그러하다.
3. 자기준거적 시간 개념의 여러 측면들
“그러나 원래 시간 자체는 (그리고 그 때문에, 나중에 보게 되듯이 현재는) 모호하게 주어져 있으며, 비가역성들을 보다 높은 질서의 비가역성들로 옮기고, 그리고 역으로 비가역성들을 둘러싸기 위해 공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147)
✏️ [번역] 시간자체(그리고 현재)는 원래 모호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으며, 비가역성이 더 고차원의 비가역성으로 변환하거나 또는 그 역으로 전환할 여지를 남긴다.
"이것은 복잡성과 자기준거라는 주소지로 향한다!”" (148)
✏️ [번역] 이것은 직접적으로 복잡성과 자기준거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선택 과정의 재귀성(Reflexivität des Selektionsprozesses)을 통해 일어난다.” (149)
✏️ [번역] ‘재귀성’을 ‘성찰성’으로 바꿔야 할 듯. 영어 판본에서는 reflexivity로 번역되어 있다. (재귀성은 통상 recursiveness로 번역). 이어지는 내용상으로도 ‘성찰성’이 더 맞는것 같다. 재귀성이라면 자신의 요소, 작동 등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이용해서 후속 작동을 이어가는 것일텐데, 이 문맥에서는 기존의 구조, 과정들을 훑어본 (관찰한) 후 그에 기반해서 (또는 그에 제한받아서) 후속 작동을 이어간다는 내용이어서.
“구조들은 시간을 비가역적인 상태로 붙잡고 있다.” (150)
✏️ [오역] “구조들은 시간의 가역성을 포착한다” (Structures capture the reversibility of time). 이는 확실한 오류인데, 내용상 구조는 가역적인 것으로, 과정은 비가역적인 것으로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능한 요소들의 총체를 이렇게 선택 강화의 형식들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 환경의 조건에서 지나치게 배타적으로 다루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차이 도식으로서만 기능한다. 즉 구조들과 관련해서는 순응적인 사건들과 일탈적인 사건들을, 과정들과 관련해서는 확실한 사건들과 불확실한 사건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151)
✏️ [번역] 그렇지만 모든 가능한 요소들이 선별성(selectivity)을 강화하는 형식 안에 포함될 수 없다. 환경조건들 때문이다. 그들을 포함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단지 차이도식으로서만 기능한다. .... 과정들과 관련해서는 개연적인 (probable) 사건들과 비개연적인 (improbable) 사건들을 감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확실한/불확실한”은 확실히 “개연적인/비개연적인"으로 번역해야 좋을텐데, 개연성과 비개연성의 문제는 루만 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특히 이중우연성의 문제에서 깊이 다루어지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