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나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내가 주먹을 휘두르면 바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쉭, 쉭쉭쉭 !  내 앞에서 수많은 일진(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나의 권술(拳術)을 검술(劍術)이라 했다.  내 주먹은,  강했다. 머리가 나쁜 탓에 공부를 못했기에 주먹 세계에 발을 들였다. 주먹 하나만큼은 자신있었으니까. 이 글은 내가 동정 없는 세계에 몸담으면서 깨닫게 된 << 진실 >> 에 대한 이야기'다. 경청 바란다. 주먹이나 칼부림으로 이기는 놈은 싸움을 잘하는 놈이 아니었다. < 칼부림 > 은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이 짓보다 상수는 < 욕부림 > 이었다. 살벌한 욕 한 마디'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의하면 이 전술은 고급 기술에 해당된다.

싸움의 기술에서 유혈'보다 한 단계 위는 무혈인 것이다. 그런데 칼부림과 욕부림을 담당하는 놈들은 조직 내 계급이 낮은 녀석들이었다. 쫄따구들이나 사용하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이보다 한 단계 위인 놈은 싸울 때 큰소리로 욕을 하지 않는다. 욕을 하기는커녕 존댓말을 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는 했다. 목소리 큰 놈보다 목소리 작은 놈이 이긴다 ?!  반말 하는 놈보다 존댓말 하는 놈이 이긴다 ???!!!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리라.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메라를 줌-아웃시켜서 원경(遠景)으로 빠지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 놈 뒤에는 칼부림하는 놈과 욕부림하는 놈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칼부림하는 놈도 무섭고 욕부림하는 놈도 무서운데, 이런 놈들을 한갓 병풍처럼 사용하는 저 놈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인가. 이 상상력 앞에서 주눅들게 된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사설 감옥 감시인이었던 철웅( 오달수 扮)이 장도리로 오대수(최민식 扮)의 이빨을 뽑을 때 이런 말을 한다. " 있잖아...사람은 말이야...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 거래...그러니까...상상을 하지 말아봐... 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 " 그렇다, 상상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도 이 세계에서는 중간 보스에 지나지 않았다. 몇 년 전, 조직 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조곤조곤한 존댓말로 상대를 제압하던 중간 보스'가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그를 무릎 꿇게 만든 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 대신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놈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중간 보스의 손모가지가 잘려나갔다. 그런데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놈은 결국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놈에게 제거되었다. 건달의 최상위는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놈이었다. << 의중 意中 >> 이라는 단어가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 마음속 " 이라는 뜻이다. 의중을 읽다, 의중을 헤아리다, 의중을 파악하다, 의중을 알아차리다, 의중을 살피다, 의중을 꿰뚫다 라는 말은 말로 표현된 메시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무언(無言)을 읽는다는 뜻이다. 뉴스에서 거물급 정치인을 다룰 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 의중 > 이다. 그렇다면 의중을 읽고, 의중을 헤아리는 주체는 누구일까 ? 당연히 아랫것들이다.

아랫것들이 하는 일은 보스의 마음속을 읽는 것이다. 아랫것들의 자발적 충성 경쟁은 바로 의중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스의 의중을 읽지 못하는 부하는 성공하지 못한다. 거물급 정치인을 다룬 뉴스에서 < 의중 > 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꼭지는 박근혜와 관련된 뉴스'다. 그녀의 정치술은 말의 메시지가 아니라 손짓과 눈짓으로 이루어진 무언술'이다. 진실한 사람은 무언에서 의중을 파악하는 이'다. 바로 그 점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정치의 기본은 밀실이 아닌 열린 광장에서의 대화'다. 박근혜와 안철수의 공통점은 말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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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1-24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만 열면 모지란 티가 나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7:19   좋아요 1 | URL
지난 연설 보니깐... 보고 읽어도 잘 못 읽으시더라고요..

cyrus 2016-01-24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과 박. 말이 없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말이 많아진 이상한 케이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7:19   좋아요 1 | URL
바로 그겁니다. 당사자가 말이 없으면 아랫것들이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의중을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의중을 해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메시지가 없으니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게 됩니다. 당연히 아랫것들의 말이 많아지는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겨운 정치를 하는 것이죠.

cyrus 2016-01-24 17:36   좋아요 1 | URL
안과 박 공통점 하나 더 있습니다. 가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툭 꺼내면(본인들은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국민)을 할 말 없게 만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8:14   좋아요 1 | URL
둘 다 물 새는 쪽박이죠. 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 있잖습니까.
박에서 새는 쪽박, 안에서도 샌다 ! 선조들이 미래를 예견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stella.K 2016-01-24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 가을 동생하고 한 35년만에 싸운 일이 있는데
겉으로는 제가 이긴 것 같긴 했습니다.
뭐 아무래도 제가 누나니까. 그리고 목소리에서 절대 꿀리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여자니까 여자들 싸울 때 잘하는 거 있잖습니까?ㅋㅋ 등등해서.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굳이 그렇게 힘들여 싸울 필요가 있나 싶더군요.
짜증나서 그런 거거든요. 그건 제압하기가 차라리 쉬웠는데 말입니다.
적어도 ˝너 나이가 몇 개니?˝ 한마디면 게임은 오버되는 거였는데
후회되더군요. 싸움의 고수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더군요.
더구나 조직 생활을 안하다 보니 싸울 일도 없더군요.
싸움도 역시 뇌를 자극해서 똑똑해지는 건데 말입니다.ㅋㅋ

근데 곰발님은 정말 질 싸움은 안하실 것 처럼 보이긴 합니다.
다혈질만 잘 다스린다면...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8:16   좋아요 1 | URL
조직이 든든한 놈이 무조건 이깁니다.
그래서 벡이 필요한 것 같습ㄴ디ㅏ.
한국인이 집단 속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잖아요.
아파트만 해도 사실 서구에서는 실패한 주거 환경이었씁니다.

[그장소] 2016-01-2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느님 ㅡ이...조직에...?!으헉~!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8:17   좋아요 1 | URL
세상을 조직에 단순 비유한 겁네다.. ㅎㅎ

[그장소] 2016-01-24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ㅡ전,또~곰곰 님이 온 몸에 곰발 문신 두르고
고객을 가~ 족˝ 가치 ..모신다고 하시나...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9:31   좋아요 1 | URL
전 주로 때리는 쪽보다는 맞는 쪽이었습니다..

[그장소] 2016-01-24 22:1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전주ㅡ로 때리면 간주 중에는 마이크 돌리고 헤드뱅잉 하시겠습돠~?! ^^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5 14:10   좋아요 1 | URL
오, 그장소님 말장난의 묘미를 아시는군요. 반갑습니다.. ㅎㅎ.

[그장소] 2016-01-25 14:15   좋아요 0 | URL
아하핫~; 일찍 알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
점심시간도 다 지났는데..ㅎㅎㅎㅎ^^
별미는 없고..드릴게 묘미 뿐인지라~^^
곰곰 님 ㅡ따라가려면 ㅡ아직 아직 입죠~!!
잘.부탁 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5 14:3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그장소님이야말로 말장난의 달인이십니다.

세실 2016-01-25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맘도 내가 잘 모르는데 어찌 의중을......
할말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답답한 사람은 딱 질색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5 14:09   좋아요 1 | URL
정답이십니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합니다.
꼭 말해야 알아 ? 라고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폭력의 일종이죠..

수다맨 2016-01-2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연설문 정도는 스스로 초안을 잡고, 정확한 문장으로 남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젠가 시사인에 김대중/노무현 밑에서 일하던 연설비서관이 나온 적 있는데, 김대중 노무현 둘 다 자신의 손으로 국정과 관련한 연설문을 쓸 역량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수정 가필도 본인들이 알아서 했다고 하구요. 근데 박통은 (예전에 전여옥이 했던 말처럼) 베이비 토크baby talk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니 단답을 하거나, 자꾸만 비문을 만드는 거지요. 냉정히 말해서, 자기 생각을 논리 충분한 문장으로 옮길 수 없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하다못해 일본의 거대 야쿠자 단체(야마구치구미) 두목도 졸개들한테 보내는 신년 축사는 본인이 직접 쓴다고 하는 것 같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5 17:48   좋아요 0 | URL
읽기조차 잘 못하시는 분인데요, 뭘 기대하겠습니까 ?
노무현 같은 경우는 오히려 자신이 거의 쓰다시피 했다고 하더군요..
정치의 기본은 토크 아닙니까. 말을 해야 소통이고 나발이고 불통이고 하지
토크 자체가 없으니 아랫것은 충성한답시고 의중을 파악하려고 하죠..
하나의 메시지와 수백 개의 해석이 가능하게 됩니다. 의중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면 말이죠..

yamoo 2016-01-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한겨레나 경향에 고정 기고 란을 섭외해 보세요. 곰발 님은 매체에 필력을 휘날릴 분입니다. 뭐, 전 시간 문제라 생각합니다만... 곰발님이 액션을 취하느냐 마느냐..

고맙게 잘 읽고 갑니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6 12:48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삽니다. 이제 슬슬 액션을 취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기억의집 2016-01-2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머저리 대통령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 그런 사람에겐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통하지 않어요 후!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7 15:16   좋아요 0 | URL
가장 무서운 사람은 말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뭐, 공산당과 다른 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삼권이 이렇게 삼위일체인 경우도 드믈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물물(物物)에는 " 개성 " 이 깃들어 있고 개성에도 품격이 있다. 발터 벤야민은 이 품격을 " 아우라 " 라고 명명한다. 이 품격이  상품 가격을 좌우한다. << 유령 >> 도 마찬가지'다. 인기 없는 유령이 있는가 하면,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유령도 있다. 대표적인 유령이 연극 << 햄릿 >> 에 나오는 유령 햄릿 왕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저) 가 쓴 << 공산당 선언 >> 에서의 그 유명한 첫 구절에 등장하는 유령일 것이다.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 "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 이다.

가스통 할베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물어뜯을 지도 모르지만 << 공산당 선언 >> 은 뛰어난 정치 팜플렛'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이 문장에서 관심을 가진 단어는 < spectre(유령) > 이다. 유령을 뜻하는 단어는 많다. ghost, phantom, spectre, revenant도 모두 유령을 지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 spectre > 를 선택했을까 ?  ㉠ ghost는 독일어 geist에서 유래한 단어로 " 엄숙한 의식에 초대되는 조상의 영 "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호명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반면 ㉡ phantom 은 < 보여지다 > 에 방점이 찍힌다.  phan - 은 to appear = 나타나다 라는 의미이다. 그런가 하면 ㉢ revenant는 원래 뜻이 ‘저승에서 돌아온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소를 쪼개자면 re(다시) ven(=come) ant(사람) 이다.  여기서 정리를 하자면 ghost와 revenant는 저승에서 돌아온 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phantom과 spectre는 보는 행위를 중시한다.  전자가 " 장소의 이동 " 이라는 관점에서 유령을 이야기한다면, 후자는 시각이라는 관점에서 유령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phantom과 spectre는 맥락은 같지만 결은 전혀 다르다. phantom은 유령이 타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고, ㉣ spectre는 유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타자를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근 spec- 은 watch = 지켜보다, 주시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spec - 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 spy는 우리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그는 우리를 꿰뚫고 있는 자'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spy 또한 유령의 변형'이다.

spectre는 스펙타클한 볼거리로서 작용하는 유령phantom이 아니라 푸코의 판옵티콘으로 작용하는 감시 기계'이다. 작년에 개봉된 007 스파이 영화 제목이 << spectre >> 인 이유도 스파이와 스펙터의 은밀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 네 분의 유령 중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은 스펙터'다. 그는 타자에 의해 호명되는 주체도 아니고 볼거리로 전락한 주체도 아니다. 그는 << 스스로 볼 수 있는 주체 >> 이다. 마르크스가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종(從)이 아닌 주(主)로, 소극적이고 수동적 주체가 아닌 적극적이며 능동적 주체를 강조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유령은 굉장히 폭력적이기도 하다.  양심은 팔 수 있어도 쪽은 팔 수 없는 이상한 세계를 동경하는 양아치 뒷골목 사회에서 떠도는 말이 있다. 일명, 권력 계급 5단계 이론이다.

주먹으로 싸워서 이기는 놈은 5류이고, 험한 말로 상대방을 제압해서 무혈 입성하는 양아치는 4류이며, 존댓말로 조곤조곤 상대방을 협박하는 양아치는 3류이다. 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양아치는 말 대신 손(짓)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놈이다, 이런 부류는 2류'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눈빛만으로 상대방을 조사버리는 놈을 이기지는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존재가 바로 1류다.  눈빛만으로 상대방을 조사버리는 스킬을 보유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박근혜'다.  말 없이 째려보면 다 죽어 ~ 

 

최고 권력은 말을 하지 않는다. 손(짓)을 까닥거리는 몸짓 언어는 말을 대신한다. 이보다 한 수 위는 눈(짓)이다. 최고 존엄은 수첩에 자신이 전하는 말을 팔사하지 않는 부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손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아주...... 잠깐 째려볼 뿐이다. 나머지는 십상시(十常侍)가  알아서 한다.

그는 메두사'다.  자, 이제부터는 시선의 권력에 관한 영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시선과 권력에 대한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 바로 스플래터 무비, << 피범벅 난도질 영화 >> 다. 이 영화 장르만큼 푸코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자료도 없다. 푸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싸구려 피범벅 난도질 영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박근혜가 대구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다음은 어떤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누군가가 집 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집 안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자'를 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집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자는 악령이기 때문이다. 그는 볼 수 있지만 절대 보여지지는 않는 존재'다.

악령이 창문을 통해 처음 본 남녀 커플은 청교도적이다. 진심이 담긴 목걸이 선물과 가벼운 키스 그리고 깊은 포옹. 이 장면은 정염에 불타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흥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유령이 다음으로 목격한 것은 또 다른 두 번째 커플이 머물고 있는 방. 그들은 첫 번째 커플과는 달리 섹스를 하기 위해 서둘러서 옷을 벗고 있다. 여자의 가슴이 출렁거린다. 유령이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두 커플 사이에서 혼자 온 솔로 여성'이 머무는 침실이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다. 영화 << 이블 데드 >> 의 한 장면이다. 자, 여기서 주관식 문제. 공포영화 영역. 5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악령에 의해 육체를 강탈당하는 등장인물을 순서대로 나열하시오 ? ( 4점 ).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유령에 의해 제일 먼저 육체를 빼앗기는 희생자는 솔로 여성이다.  그 다음은 두 번째 커플(옷을 벗는 장면을 연출했던) 중 여성이고, 다음은 남성이다.   그리고 맨마지막 희생자는 첫 번째 커플 여성'이다. 최후의 1인은 남자 주인공'이다.  종합하면 : 솔로 여성 - 두 번째 커플 여성 - 두 번째 커플 남성 - 첫 번째 커플 여성 - 첫 번째 커플 남성 순으로 죽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순서가 공포 영화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공포 영화에서 혼자 있는 여성은 제일 먼저 죽기에 딱이다.  괴물은 항상 혼자 있는 여성(혹은 남성)을 사냥한다. 다음은 집 밖에서 빤스를 내리는 커플이다. 이들은 대부분 섹스하다가(혹은 집 밖에서 섹스했다는 이유로) 죽는다.

괴물이 등장하는 스플래터 영화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쪽은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옷을 벗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청교도 이념에 충실한 사람이다. 빤스를 함부로 내리지 않고 혼자 제멋대로 굴지 않는 사람이 생존자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또한 가슴이 큰 여자는 가슴이 작은 여자보다 먼저 죽고, 가슴이 예쁜 여자는 마음이 따듯한 여자보다 먼저 죽는다. 이 모든 것은 공포 영화라는 장르의 클리셰'인 셈이다. 안 봐도 뻔하다. 모든 스토리는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포영화 관객들은 안 봐도 뻔하기 때문에 이 장르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이 루틴이 던지는 사회학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 시선의 주체는 남성 > 이고 < 관찰의 대상은 여성 > 이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항상 보여지는 존재'다.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을 때 시선을 빼앗긴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그것은 < 시선을 빼앗기는 것 > 이 아니라 < (여성의) 시선을 빼앗는 것 > 이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남성은 시선을 빼앗길 수 없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깐다는 것은 수컷 세계에서는 항복을 의미한다. 거세다. 스플래터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은 괴물이라는 탈을 썼지만 사실은 기득권 보수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이 반영된 그림자'이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혹은 남성)이거나 집단에서 벗어난 열외자'이다. 유령은 그들을 처단한다. 유령은 주류 남성의 정상적 욕망을 반영한다. 여성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선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시선의 독점은 폭력이다.

양성 평등의 시작은 남성의 시선 독과점(獨寡占)을 나누는 것이다. 남성이라는 시선으로 여성을 평가하지는 말자. 홍상수의 << 생활의 발견 >> 에서 연구원(김학선 扮)이 경수(김상경 扮)에게 말한다. " 우리 사람이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 ! "  이 대사는 모든 것을 여성의 외모와 몸매를 평가하는 남성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말이다. "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그러니까 내 말은......  눈 깔어, 이 쌥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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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1-2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영화 공식을 보니 13일의 금요일이 떠오르네요. 어릴 때 본 거라 그 공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도대체 왜 저러나 싶었죠. 문화가 달라 그런지 서구식 공포가 전혀 공포스럽지 않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4:20   좋아요 0 | URL
저도 서구 괴물은 무섭지 않은데 한국 귀신은 허접해도 무섭습니다.
이게 아마도... 문화적 학습 효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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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개고 밥 먹어


 

 

 

 

 

 

                                            하루 일과 가운데 내가 가장 잘하는 < 짓 > 은  " 쓸데없는 생각 " 이다. 쓸모없는 생각'을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우, 하던 마음이 아, 하게 된다. 이 세상에 < 쓸데없는 생각 > 이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  아침에 눈을 뜨니 방바닥이었다. 웃풍이 세다 보니 추운 침대에서 자다가 바닥에서 잔 모양이다. 헝크러진 침대'를 보다가 문득 한국인에게 침대 생활'이 적절한 것일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침대가 생활 필수 가구'가 된 데에는 한국인의 주거 형태가 한옥에서 양옥 주거 문화로 급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옛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 " 라고 소리치던 풍경은 이제는 볼 수 없다. 단순하게 90년대 이전을 과거'라고 규정하고 90년대 이후를 현재'라고 설정하자면  : 과거의 풍경을 상징하는 구령은 < 이불 개고 밥 먹어 > 이고, 

현재의 풍경은 < 이불 펴고 밥 먹어 > 인 셈이다.  이제 아침에 잠자리(침대)를 정리한다는 것은 이불을 개는 게 아니라 이불을 (구김 없이) 펴는 것에 해당된다. 그런데 침대 문화는 한국의 주거 환경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주거 문화가 서구식으로 변했다 해도 말이다. 우선 난방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서구의 난방 방식은 벽난로나 스팀을 이용해서 공기를 덥히는 방식이고, 한국은 바닥(지열)을 덥히는 온돌 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서구식 난방은 공기는 따듯하지만 바닥은 차갑고, 한국식 난방은 공기는 차갑지만 바닥은 따듯한 구조이다. 이 차이는 도긴개긴 같지만 큰 차이를 만든다. 바닥이 차니 서양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카페트를 깔고, 침대를 사용한다. 반면, 한국인은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

굳이 신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카페트와 침대의 사용이다. 열 효율 측면에서 보자면 카페트는 지열을 활용하지 못하고, 침대는 바닥을 활용하지 못한다. 웃풍이 센 주거 환경에서 웃풍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침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가구 회사의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해도,  분명한 것은 침대 생활이 한국식 난방 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과학적 효용이라는 점이다. 침대가 과학일망정 침대 생활은 과학이 아니랍니다. 바닥은 뜨끈뜨끈한데 침대는 춥다 보니 침대 생활자는 대부분 전기장판을 사용한다. 선풍기 옆에 두고 부채질하는 꼴이다. 내 쓸데없는 생각은 쓸모없는 침대로 확장된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의 특징은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성된다는 점이다.

침대를 생각하다가 느닷없이 보니엠의 <<  Rivers Of Babylon >> 이란 달달한 노래가 떠올랐다. 이 노래 가사에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 " 라는 구수한 한국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 구수한 노랫말이다잉 ~  잠시 추억에 젖어 불러본다, 아련한 추억의 편린을 !  아아아아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 국물 없인 밥 안 먹어 ~  흥얼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샘 레이미가 약관의 나이로 만든 영화 << 이블 데드 >> 가 떠올랐다. 아아아아 ~ 다들 이블 데드 보고(나서) 밥 먹어 ~  한때 B무비에 환장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샘 레이미 감독이 다니던 대학을 때려치우고 나서 불알친구들과 힘을 모아 만든 16M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영화에 대한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연기를 공부1한 적도 없지만 그들은 동전 몇 푼 모아서 영화를 만들었다. 바로 그 영화가 내가 열광했던 << 이블 데드 >> 였다. B 무비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좋아서 돌아버리게 된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경제적 효율성에 있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생각난 김에 유투부를 통해 다시 보았다. 지금 보아도 여전히 경이롭다. B급 영화를 보는 재미는 영화 스탭의 < 악전고투 > 에 있다. 멋진 장면을 뽑아내고는 싶으나 돈이 없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똥찬 아이디어를 내거나 몸으로 때우는 것밖에는 없다. 이 영화에는 가진 거라고는 불알 두 쪽과 맨발이 전부였던 청춘의 열정이 엿보인다.

그래서 나는 샘 레이미의 < 스파이더 > 시리즈'보다는 < 이블데드 > 시리즈가 더 재미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다시 또 다른 생각을 탄생시켰다. 내가 가입한 영화 카페 정모 때, 이 영화를 함께 보고 나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생각난 것이다. 각자 동전 몇 푼 추렴해서 소주를 마셨던 기억. 술국 하나 시켜 놓고 몇 시간 동안 이 영화를 찬양했던 기억 말이다. 한때 우리는 모두 샘 레이미를 꿈꿨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수소문 끝에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그 친구에게 << 이블 데드 >> 를 유독 좋아했던 친구 A 에 대해 물었다. 그가 말했다. " 그 새끼 깜방 갔잖아. 이름 생각 안 나 ?! 명균이, 오명균이. 보이스피싱으로 사기치고 다니다가 걸렸잖아. 몰랐어 ? 그 유명한 서울 중앙지검 오명균 수사관이 바로 그 놈이야.  그 새끼...  영화 찍는다, 찍는다, 찍는다 하더니 진짜로 영화를 찍었더라고 ! 어차피 인생이란 거대한 연기요, 거대한 환영(幻影)이잖아. "

내일, 면회를 가야겠다. 눈물이 앞...... 을 가린다.



 

  1. 불알친구 동맹 가운데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브루스 캠벨이 연기를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다른 친구들보다는 잘생겼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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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1-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맘에 쏙 드네요
곰발님 그런데 제 책들은 왜 안오는걸까요 흑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18:02   좋아요 0 | URL
늦잠을 자는 모양입니다..

stella.K 2016-01-22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거 실제 상황인가요?
진짜 뻥터져버렸습니다. 특히 저 아주머니들의
배꼽잡을 듯한 웃음 소리는 정말...!ㅎㅎ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18:30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이 유투브 보고서 배꼽 잡고 웃었습니다.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날아간 영상에 버금가는 엿대급 빅재미였습니다. 하, 엄청 웃었네..

cyrus 2016-01-22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불 밖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너무 추워요. 그래서 ‘이불 데드’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19:05   좋아요 0 | URL
요 며칠 간 얼어죽을것같은 추위였죠. 언데드였슴좌.

clavis 2016-01-2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불 니드함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19:06   좋아요 0 | URL
뽀송뽀송한 이불 덮고 싶네요. 햍볕 잘 말린, 펄럭이면 볕 냄새나는 이불 말입니다. 최고의 이불이죠. 볕 냄새나는 이블 말입니다.

clavis 2016-01-22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하러 나가는 저에게 이불개라는 엄마목소리와
웃음치료제 아주머니들이 힘이되네요 곰발님감사^^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22:46   좋아요 0 | URL
참.. 옛날 기억하면 주말에 어머니가 항상 소리치시고는 했죠.
이불 개고 밥 먹어 !!!!!

지금행복하자 2016-01-2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렇게 추운 날엔 뜨끈뜨끈한 온돌방이 생각나요~ 온 몸이 나른나른 해질 정도로 뜨거운 방에서 푹 지지고 나와줘야 하는데 말이에요~ 찜방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22:47   좋아요 0 | URL
정말 이런 날은 온돌 방에 등짝 지지면서, 혹은 배 지지면서 만화책 읽으며
차가운 동치미에 뜨거운 군고구마 먹는 맛이 최고죠..

기억의집 2016-01-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진짜에요? 감방간 친구 이야기?

샘 레이미의 무슨 영화인지 기억 안 나지만 저는 브루스 캠벨이 가다가뒤를 돌아보며 끝나는 장면이 이십년이 지나도 기억이 나요. 브루스 캠벨 뭐 할까요? 니암 니슨은 흔한 말로 스타가 되엇는데.....

저희도 침대 생활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다 전기요 틀고 자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22:51   좋아요 1 | URL
제 리뷰는 항상 논픽션과 픽션이 가미된 신세기 포스터모던 무비 노블 리뷰입니다요.. 허허..


감방 간 이야기는 허구입니다 ~

samadhi(眞我) 2016-01-24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줄 알았어요. 진짜게? 하는 곰발님식 유머 ㅋㅋㅋ B급 영화에서만 주연인 줄리아 로버츠의 오빠, 에릭 로버츠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죠. 그냥 막 섹시(?)하게 보여서. 이블 데드 한번 찾아 봐야겠는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4:23   좋아요 0 | URL
아. 에릭 로버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생각나네요. 에릭 로버츠가 삐급 영화에 단골 배우였죠.. ㅎㅎ



이블데드는 유투부 가면 무료로 불 수 있습니다. 대사 몰라도 됩니다. 뭐 공포영화라는 게 뻔하ㅏㄶ습니까.
꼭 보십시오..
 
[블루레이] 클리프행어 : 렌티큘러 풀슬립 한정판 - 무삭제판
레니 할린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 외 출연 / 그린나래미디어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클리프 행어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정색을 하고 말하겠다. 영화 << 클리프 행어 >> 는 놓치면 후회할 만한 영화'다. 이 영화 줄거리를 10자 이내로 요약하자면 " 놓/치/면/후/회/하/실/겁/니/다 " 일 것이다. 록키 산악 공원 구조 대원이었던 실베스타 스텔론은 동료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동료를 잃는다. 그는 이 끔찍한 사고 때문에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일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해 놓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때,  록키 발모어로 불렸던 그는 과연 동료를 구조할 수 있을까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놓치면 후회할 일이 비단 이 영화 속 주인공뿐이랴.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도 놓치면 후회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은 놓치면 후회하게 될 분야를 소개하기로 한다.

서평은 서평가가 쓴 글이다. 그러니까 " 서평이냐 / 감상(문)이냐 ? " 라는 문제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자격의 문제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평론은 평론가가 쓴 글이다. 일개 무명 독자가 평론가가 쓴 글보다 뛰어난 평론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평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도 결국은 글쓴이의 " 자리(자격) " 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즉, 서평과 독후감은 어떻게 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썼는가가 중요하다. 굳이 독후감과 서평을 나누자면, 독후감은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것이고 서평은 음식 맛을 분석하는 것이다. 전자는 맛있다 / 맛없다, 라고 단순하게 논평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는 단순하게 맛있다 / 맛없다, 라는 논평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음식에 대해서 맛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재료의 식감, 영양학적 평가, 향미 따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논평을 내놓아야 한다. 드라마 << 대장금 >> 에서 임금(임호 扮)이 " 마디꾸나 ~ " 라고 말했을 때 그는 서평가의 입장이 아니라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내놓은 독후감이다. 장금이'라고 다를까 ?  어린 장금이가 " "제 입에서는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이라 말할 때 그녀는 서평가의 입장이 아니라 일개 무명 독자로써 맛을 평가한 것이다. 이해는 간다. 그녀는 당시에 어렸으니깐 말이다. 만약에 어른이 된 장금이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면 말을 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맛에 대한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별할 수 있다.

여기에 덧대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약은 약사에게 서평은 서평가에게 진단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삼천포로 빠지는 서평을 좋아한다.  정희진의 << 정희진처럼 읽기 >> 에서 저자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책을 핑계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삼천포행 궤적이 논점 이탈로 읽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유의 확장처럼 읽히기도 한다. 나는 경제를 이야기하는 데 파리가 날아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는 어이가 없네, 라며 유아스러운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것은 파리의 자유이다. 경제와 파리는 무관하다. 사실, 좋은 서평(가)은/는 좋은 책은 좋다고 말하고 나쁜 책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평가가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좋은 이유를 말하는 것도 어려운 고백이 아니다. 하지만 나쁜 책을 나쁘다고 말하는 데에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서평가는 알게 모르게 저자와 출판사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는 이해 당사자와 소송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평가는 칼칼한 < 칼 > 보다는 달달한 < 달 > 을 선택한다. 달을 선택한 자는 대중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칼을 선택한 자는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기 일쑤다. 서평을 비평 영역으로 확장하면 이해하기 쉽다. < 달 > 을 선택한 신형철은 대중으로부터 온갖 칭찬을 얻는다. 문학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소리를 할 수 없다는 고백 앞에서 독자는 그 진심을 믿는다.  " 으따, 멋져부러 ~ "  

반면, < 달 > 보다는 < 칼 > 을 쥔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기 일쑤다. 신경숙도 까고, 황석영도 까고, 김애란도 깐다. 대중이 좋아하는 작가들만 까니 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인정 욕구에 시달려서 모든 작품에 대해 어그로를 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영일을 지지하는 편이다. 내가 신형철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이해당사자인 문학인에게 좋은 말만 한다는 데 있다.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하수요, 기회주의'다. 치세(治世)에서 < 예쁜 말 > 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난세(亂世)에서 " 예쁜 말 " 은 나쁜 말이다. 굶어죽는 시대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폭력이다. 신형철은 문학이 위기인 시대이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해 예쁜 말을 한다고 변명하지만,

문학이 위기일 수록 중요한 말은 " 뼈 아픈 말 " 이다.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정영일이라는 영화평론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kbs << 명화극장 >> 에 소개될 영화에 대한 소개'를 했다고 한다. 일종의 명화극장 예고편인 셈이다. 예고편이란 관객에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높여서 시청률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다. 그러다 보니 정영일은 소개할 영화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개를 끝마칠 때가 되면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라는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일말의 양심 탓일까 ? 소설가 최인호는 정영일이 활짝 웃으면서 영화를 소개하면 좋은 영화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딱딱하게 영화를 소개하면 나쁜 영화'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웃으면서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라고 말하는 것은 무표정한 얼굴로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서평도 마찬가지다. 대충 읽고 대충 쓰는 출판 담당 기자(혹은 서평가)의 서평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보이지 않고, 목차 순서대로 나열된 줄거리 요약만 있는 서평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 이 책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부류 > 인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끝까지 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일말의 잘못은 있다.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놓치면 후회한다고 미끼를 던졌을 때 당신은 알아차렸어야 했다.

 

" 클리프 행어,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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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객 2016-01-21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을 소설처럼 쓰시는군요. 이 짧은 글에 반전도 있고 재미도 있고 느낀점도 있고...... 재미있는 글 잘읽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8:49   좋아요 1 | URL
제 글은 서평도 아니고 잡글이죠. 영화에 대한 글도 아니고...
항상 쓰다 보면 이상하게 엉뚱하게 갑니다. 주의력결핍장애인 것 같기도 하고...
글쓰는 환경이 후딱 썼다가 다시 조금있다 후딱 쓰고 해서리.. 통일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6-01-2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그렇죠..그 손을 놓으면 니 인생이 뭐가 된다고?
트라우마!
이시대에 좋은 책만 좋게 포장해 쌓는 글을 읽으면 뭐가 된다고?
신형철! (응?)

이해당사자 ㅡ가 될지도 모른다..그걸 노리는거얏! (그게 좋을..걸 그랬나...?)

웃다 갑니다..

영화에 낚시 ㅡ제대로...그래서.
영화줄거리는?
생각 안나서 그러는데..버티컬 리미트 ㅡ랑 저 햇갈리나봐요...알려주셈~~!!^^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8:46   좋아요 1 | URL
버티칼... 음... 안 봤습니다.. ㅎㅎ..
이것도 산악 영화죠 ?
클프행어 내용은 간단해요. 동료 손을 놓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긴 남자는
구조대원을 그만 둡니다.
그러다가 구조를 해야 될 상황이 발생해서 다시 찾아가는...
보면 람보 서사하고 비슷해요..

2016-01-2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6-01-21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오늘도 사람을 낚으신?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8:45   좋아요 1 | URL
제가 루어 낚시 전문입니다.. ㅎㅎ

clavis 2016-01-21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문용어에 약해요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8:48   좋아요 1 | URL
아, 루어 낚시란 진짜 미끼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 미끼를 가지고 물고기를 유인합니다.
이 장만감을 루어라고합니다. 색이 화려하죠... 색에 현혹되어서 물고기들이 일단 물고 봅니다.....
제 글은 다 가짜입니다.. ㅎㅎ

[그장소] 2016-01-21 18:55   좋아요 0 | URL
낚시의 한종류입니다.^^

stella.K 2016-01-21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늘 글 마디습니다. 근데 뼈가 씹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8:49   좋아요 1 | URL
세꼬시는 원래 뼈 채 먹어야 고소하죠.. 세꼬시 좋아하십니까 ?

stella.K 2016-01-21 18:52   좋아요 1 | URL
세꼬시...? 잘 모르겠네요. 내가 먹어봤나??

오늘은 또 이 주제로 하루가 가네요.
글 써야하는데...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08:02   좋아요 0 | URL
세코씨 드셔보십시오. 아삭아삭해서
씹는 맛이 있어요..
꼬들꼬들하고...
아, 오늘은 세꼬시에 소주 한 잔 걸쳐야겠ㄴ요...

clavis 2016-01-21 1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컬러풀하지요.장만감처럼.
발님.건승 건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08:02   좋아요 1 | URL
네에 고맙습니다. 클라비스님..

흐르는강물처럼에 나오는 낚시가 루어낚시입니다..

[그장소] 2016-01-2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ㅡ분명 ㅡ그것에 저는 동의 해요.
우리나란 비평하는 구조를 잘못 이해하는지도 몰라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걸 못견뎌하거든요.
사람들이 단체를 이룰수록 뜻을 하나로 뭉쳐 버리고 너도 같지..이런식이니까요...
거기서 좀 다르면 이봐..이봐..튀어나오면 튕겨나가는 법이라고...이러죠.
그러니 스스로 찟는 송곳이 안되려니..으휴..
비평가는 없어요. 진정한 의미의 비평가는....

아니..비난과 비평을 같이 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08:01   좋아요 1 | URL
비난과 비판을 구별하지 못하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한국인은 피가 뜨거워서인지
아니면 논쟁의 세련된 기술을 애초에 배우지 못해서인지
비판에도 욱하고
비난에도 욱하고...


[그장소] 2016-01-22 08:14   좋아요 0 | URL
일단 회자의 중심에 있다는것 자체가 좋은 기회라는 걸 ㅡ성장 할 수있는 , 물론 너무 사로잡혀선 곤란하지만 ㅡ모르거나 , 알아도
기회가 아닌 꺼꾸로뜨리는 기횔 삼는
구조가 ㅡ그건 사로잡히는 것이겠지만 ㅡ되는
것이 안타까워요. 충분히 개선의 여지와 다 함께 성장하는 좋은 발판을 좀 만들면 좋을텐데 잘되는것을 의도적으로 막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ㅡ랄까요 ㅡ그래서 더 자라지 못하게 그만큼만 해 ㅡ하는 냥 ㅡ칭찬으로 일색인거라고 봐요.
잘하고 있어 ㅡ이게 진짜 잘하고 있어서가 아닌거죠. 더 자랄까봐 ..아예 싹이 자랄 틈을 안주는 거랄까요..잘 자라라..물을 주는데 뿌리 썩도록 주는 형국 ..인셈...비판과 비난일색으로 물어뜯기 역시나 솎아내지 않아 저들끼리 헝클어 지도록 하는 것과 같고요...다 같이 망해야 해...이런 심리 ㅡ슬픈일이예요..피해의식이 많이들 깔린...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13:40   좋아요 1 | URL
나쁜 책을 나쁘다고 말할 용기가 없는 것은 그나마 양호합니다.
나쁜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다는 겁니다.
이건 정말 나쁜 비평이거든요.

[그장소] 2016-01-22 15:26   좋아요 0 | URL
이런 시대에 그저 책을 내는 수고라니...하고 저는 그 품에 드는 것을 함부로 내치고 싶지 않아서 좋은걸 찾으려 애를 씁니다만. 있죠.
대체 왜 썼나...싶은 책 ㅡㅎㅎㅎ일단 저는
서평 .비평 이 부분을 가급적 읽지 않으려 합니다.


기억의집 2016-01-22 0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영일이 있었다고 한다..... 곰곰님 젊으신가요?

중요한건 뭔가를 찾아내는 거 아닐까 싶네요. 킹이 문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부여받은게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에 의한 거 보면... 다들 문학적으로 싸구려라고 욕할 때 피들러가 킹을 재조명하고 나서 킹을 대하는 게 달라졌으니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07:58   좋아요 1 | URL
알죠.... 옛날 옛날을 강조하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ㅎㅎ..

기억집 님 말씀 듣고 피들러 찾아보니 흥미롭네요... 혹시 국내에 이 분 책이 나온게 있나요...?


수다맨 2016-01-22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비판적 서평(여기에는 비평도 포함된다 봅니다)을 쓰면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예 은둔자의 삶(미국의 미치코 가쿠타니)을 택하고, 대중의 미움을 받는 존재(조영일)로 살아가야지요. 외국이야 얘기가 많이 다를 테지만, 한국에서 비판적 평자의 자리에 서려면, 일 년에 (글과 관련된 수익이) 1000만원 미만으로 살아가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2 13:39   좋아요 1 | URL
장정일 있잖습니까.. ㅎㅎㅎㅎㅎ.
수다맨 님 말씀이 맞습니다. 비판적 서평은 결국 밥줄을 끊어놓습니다.
작가 혹은 문필가라면 천만원 미만으로 살아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코멕 메카시를 보십시오. 그도 은둔 하며 오두막에서 굶어가며 살았잖습니까..

samadhi(眞我) 2016-01-2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곰발님 글에 너무 익숙(?)해졌나 봐요. 이제 제목만 봐도 알아차립니다. ㅎㅎㅎ 그냥 웃지요. 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4: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스타일을 좀 다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겠네요..

samadhi(眞我) 2016-01-24 14:40   좋아요 0 | URL
저는 그게 좋은데요.
바꿔도 금방 알아낼 거예요. ㅋㅋㅋ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장르를 좋아하는데
곰발님 뻥카가 제 맘에 쏙 들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4:51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오호, 진아 님이 지지해주시는군요.
제가 보르헤스를 좋아합니다. 이 양반 소설을 보면
실제와 허구가 마구마구 섞여서 당최 뭐가 진짜고 어느 부분이 가짜인 지 모릅니다.

samadhi(眞我) 2016-01-24 15:02   좋아요 0 | URL
저 말고도 곰발님 글 좋아하는 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니 굳세게 밀고 나가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5:24   좋아요 0 | URL
정말 의외로 열성당원들이 의외로 많으셔서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어쩐 분은 항상 프린트 해서 아침 출근길에서 읽으신다고 하더라고요. 어찌나 고맙던지..

samadhi(眞我) 2016-01-24 15:25   좋아요 0 | URL
그러니 누가 뭐라고 짖어(?)대도 안 딛기(들려) 하시고
쭉 하던대로 하세요
아자!!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4 15: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짖는 새끼들은 무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서평이 아니다




                                                         에둘러 고백할 필요가 있을까 ?  서둘러 고해성사를 하도록 하자. < 기술적인 면 > 에서 본다면 서평의 좋은 예는 출판사가 제공하는 보도자료( 책 소개 글 )이다.  글 깨나 쓴다는 사람이 모인 곳이 출판사요, 글 깨나 쓴다는 사람(출판사 담당 편집자)이 쓴 글이 보도자료'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책을 만드는 과정(번역, 교정 따위)에서 다른 이보다 텍스트에 대한 접근이 남달랐을 것이니 텍스트 이해도'도 높을 것이다. 또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수차례 퇴고를 한 끝에 내놓는 글이니 기교 면에서 본다면 훌륭한 글이다. 그렇기에 그럴듯한 서평을 흉내내고자 한다면 보도자료를 열심히 보고 공부하면 된다. 우선 기술 점수'에서 A+ 를 주도록 하자. 그런데 출판사 보도 자료를 좋은 서평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내가 보기엔 " 기술 " 이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보도자료는 서평으로써는 낙제다, F 다. 왜냐하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보도자료는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한 < 홍보용 팜플렛 >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공정성을 잃어버린 글이 보도자료라는 말이다.  서평이 < 읽은 만한 가치가 있는가 / 없는가 > 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형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출판사 보도자료는 항상 " 용비어천가-수준 " 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출판사 보도자료는 (서평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지 않기에) 서평이 아니다. 이처럼 자신이 담당한 책을 홍보할 목적으로 작성한 보도자료에서 공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청와대가 내놓는 보도자료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문장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로쟈 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하면서 " 서평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글이라면, 독후감은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입니다. 결국, 서평은 책에 대한 품평이므로 감상 위주의 독후감과 다르다 " 라고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핵심을 놓친 것처럼 보인다. 서평이냐 / 감상이냐, 라는 문제는 자신이 쓴 글'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가/ 얻을 수 없는가'에 달려 있다.  서평은 다른 사람(책을 읽지 않은 독자)을 위해 쓴 글이지만 나 자신의 이득/ 혹은 사회적 명성,평판'을 위해 쓴 글이기도 하다.  서평가만이 서평을 쓸 수 있으며, 설령 서평가가 서평을 썼다고 해도 여러 이해 득실'을 따져서 나쁜 책을 좋은 책이라고 선전한다면 그것은 서평이 아니라 보도자료이며 팜플렛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오랫동안 직업 서평가로 활동했던 조지 오웰은 서평의 괴로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며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으로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 이 책은 쓸모없다 ' 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를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 일 것이다...(중략)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287쪽

 

 

< 감상 > 의 사전적 의미가 "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평 행위는 감상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서평과 감상문(독후감)을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서평의 기술이 아니라 서평가의 정직'에 달려 있다.  서평가의 덕목은 비평적 안목과 공정성'이다.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는 서평보다 나쁜 책을 나쁘다고 말하는 서평이 더 좋은 서평(가)이다. 반면 좋은 책을 나쁘다고 말하거나 나쁜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 서평이다. 그리고 책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단순하게 줄거리를 요약한 글도 그닥 좋은 글은 아니다. 

 

다음은 최종덕 상지대 교수가 교수신문에 올린 글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매조지하기로 한다. 내가 부분 발췌할 문장은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나쁜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결국 이 지적은 좋은 서평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서평의 형식과 내용이 이래야 한다거나 아니면 저래야 한다는 등의 규정된 틀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 싶을 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우선 출판사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나 신간안내문을 적절히 재조립해 서평이라고 내놓으면 안 될 것이다. 둘째, 내용 중의 일부를 따다가 원고를 채우면서 서평자와 원저자 사이의 입장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도 서평이랄 수 없다. 셋째, 더군다나 멋들어지게 문장을 만든 것 같은데 실상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평 대상이 되는 책을 서문이나 마지막 장만 대충 훑어보고 쓴 것도 제대로 된 서평이 될 수 없다.

 

이럴 경우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적당히 호의적으로 서평을 쓰거나 아니면 신문에서 본 신간소개란이나 입소문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저자에 대한 평으로 왜곡 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혹은 칭찬 일색이 되는 감정적 응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나 역자의 권위에 밀려 비판은 근처도 가지 못하고 책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생하는 서평도 꽤나 눈에 띈다. 다섯째, 혹시나 이런 일은 아주 드물겠지만 오자와 탈자 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용어 사용 등의 문제점만을 논의하고 끝나버리는 것도 서평으로서는 싱거운 일이다.

 


- < 과학서평의 위치와 갈 길 > , 최종덕 / 상지대 교수

 


 

 

 

 

 

 


 

 

 

 

 

 

덧대기 ㅣ http://blog.aladin.co.kr/749915104/7782322 ㅣ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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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21 0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웰에 힘을 내서 말해보면, 좋은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근래 나온 책일 수록 :-) 저의 편견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저는 고전이나 선집에 손이 더 가는 것 같구요.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직접적 경제 이득을 보는 이가 아니면, 책에 대한 글은 `이거 이래서 나는 좋았다 그래서 당신도 비슷한걸 얻고 싶으면 볼만하다˝식의 골격으로 솔직 담백한 찬사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0:46   좋아요 2 | URL
모든 글의 시작은 결국 정직인 것 같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기술은 없는듯요..
반가워요, 초딩 님..

cyrus 2016-01-21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곰발님이 인용한 문장이 있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하도 오래돼서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좋은 서평에 대한 기준들마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여러 기준들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평적 안목과 공정성. 이 두 가지 단어를 기억해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0:45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서평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줄거리 요약 형식만 아니라 자기 견해를 밝히는 서평이라면 환영입니다.

기억의집 2016-01-2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출판사와 아무 관련 없고 거의 모든 책들을 사서 읽다보니 내 멋대로 평가할 수 있어서 편해요~ 저도 조지오웰의 저 대목 읽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0:47   좋아요 1 | URL
이 맛에 사서 읽는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책이 늘어나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그렇지...

기억의집 2016-01-21 11:30   좋아요 1 | URL
음.. 근데 서재 둘러보다 보니 서평 논쟁이 있었나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1:33   좋아요 1 | URL
서평 논쟁은 아니구요. 그냥 사이러스 님 서평은 뭘까요? 라는 질문을 던져서 남긴 글입니다.. ㅎㅎ..

yamoo 2016-01-21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서평과 독후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글에서 서평자가 드러나지 않고 책이 드러나는냐, 아니면 책을 읽은 사람이 드러나느냐..

골발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 문제는 관점의 차이가 아주 크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1:19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이십니다. 공정성을 위해서는 < 자신 > 을 죽여야지요. 서평에서 1인칭을 지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야무 님 말씀처럼 서평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이 칭창만 한다는 겁니다. ㅏ

2016-01-21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01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kardo 2016-01-21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자신`을 없앨 수 없어서 진정한 서평은 못 씁니다;;다 독후감이죠. 하하;;;전문 서평가를 꿈꾸진 않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하지만.......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면 너무 심하게 못 쓴 거 아니면 대부분 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해서 비판하기 어렵더군요, 그리고 신랄하게 까고 싶은 경우는 나중에 골치아플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수위를 낮춰서 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7:14   좋아요 1 | URL
저도 자신이 없어서 신소리만 하다가 항상 삼천포로 빠집니다..ㅎㅎㅎㅎㅎ
저도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읽고 나서 재미있었으면 하고.
독서를 통해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독특하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묘한 쾌락이 있거든요

2016-01-21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1-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어투는 늘 고백체라 객관화해서 얘기하지 못 합니다.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은 알지만. 제 몸은 거의 대부분 수분이 아니라 감정으로 이뤄져 있어서 감정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거든요. ㅎㅎㅎ ˝재미있는 책 골라주기˝그게 좋아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을 일부러 씁니다. 귀찮아서 빼먹을 때도 많고 책 내용이 별로이면 쓰기조차 싫어지기도 하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듯 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서요. 그래도 금방 망각의 늪 속에 가라앉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