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물물(物物)에는 " 개성 " 이 깃들어 있고 개성에도 품격이 있다. 발터 벤야민은 이 품격을 " 아우라 " 라고 명명한다. 이 품격이 상품 가격을 좌우한다. << 유령 >> 도 마찬가지'다. 인기 없는 유령이 있는가 하면,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유령도 있다. 대표적인 유령이 연극 << 햄릿 >> 에 나오는 유령 햄릿 왕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저) 가 쓴 << 공산당 선언 >> 에서의 그 유명한 첫 구절에 등장하는 유령일 것이다.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 "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 이다.
가스통 할베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물어뜯을 지도 모르지만 << 공산당 선언 >> 은 뛰어난 정치 팜플렛'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이 문장에서 관심을 가진 단어는 < spectre(유령) > 이다. 유령을 뜻하는 단어는 많다. ghost, phantom, spectre, revenant도 모두 유령을 지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 spectre > 를 선택했을까 ? ㉠ ghost는 독일어 geist에서 유래한 단어로 " 엄숙한 의식에 초대되는 조상의 영 "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호명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반면 ㉡ phantom 은 < 보여지다 > 에 방점이 찍힌다. phan - 은 to appear = 나타나다 라는 의미이다. 그런가 하면 ㉢ revenant는 원래 뜻이 ‘저승에서 돌아온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소를 쪼개자면 re(다시) ven(=come) ant(사람) 이다. 여기서 정리를 하자면 ghost와 revenant는 저승에서 돌아온 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phantom과 spectre는 보는 행위를 중시한다. 전자가 " 장소의 이동 " 이라는 관점에서 유령을 이야기한다면, 후자는 시각이라는 관점에서 유령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phantom과 spectre는 맥락은 같지만 결은 전혀 다르다. phantom은 유령이 타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고, ㉣ spectre는 유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타자를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근 spec- 은 watch = 지켜보다, 주시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spec - 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 spy는 우리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그는 우리를 꿰뚫고 있는 자'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spy 또한 유령의 변형'이다.
spectre는 스펙타클한 볼거리로서 작용하는 유령phantom이 아니라 푸코의 판옵티콘으로 작용하는 감시 기계'이다. 작년에 개봉된 007 스파이 영화 제목이 << spectre >> 인 이유도 스파이와 스펙터의 은밀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 네 분의 유령 중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은 스펙터'다. 그는 타자에 의해 호명되는 주체도 아니고 볼거리로 전락한 주체도 아니다. 그는 << 스스로 볼 수 있는 주체 >> 이다. 마르크스가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종(從)이 아닌 주(主)로, 소극적이고 수동적 주체가 아닌 적극적이며 능동적 주체를 강조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 유령은 굉장히 폭력적이기도 하다. 양심은 팔 수 있어도 쪽은 팔 수 없는 이상한 세계를 동경하는 양아치 뒷골목 사회에서 떠도는 말이 있다. 일명, 권력 계급 5단계 이론이다.
주먹으로 싸워서 이기는 놈은 5류이고, 험한 말로 상대방을 제압해서 무혈 입성하는 양아치는 4류이며, 존댓말로 조곤조곤 상대방을 협박하는 양아치는 3류이다. 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양아치는 말 대신 손(짓)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놈이다, 이런 부류는 2류'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눈빛만으로 상대방을 조사버리는 놈을 이기지는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존재가 바로 1류다. 눈빛만으로 상대방을 조사버리는 스킬을 보유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박근혜'다. 말 없이 째려보면 다 죽어 ~
최고 권력은 말을 하지 않는다. 손(짓)을 까닥거리는 몸짓 언어는 말을 대신한다. 이보다 한 수 위는 눈(짓)이다. 최고 존엄은 수첩에 자신이 전하는 말을 팔사하지 않는 부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손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아주...... 잠깐 째려볼 뿐이다. 나머지는 십상시(十常侍)가 알아서 한다.
그는 메두사'다. 자, 이제부터는 시선의 권력에 관한 영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시선과 권력에 대한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 바로 스플래터 무비, << 피범벅 난도질 영화 >> 다. 이 영화 장르만큼 푸코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자료도 없다. 푸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싸구려 피범벅 난도질 영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박근혜가 대구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다음은 어떤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누군가가 집 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집 안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자'를 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집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자는 악령이기 때문이다. 그는 볼 수 있지만 절대 보여지지는 않는 존재'다.
악령이 창문을 통해 처음 본 남녀 커플은 청교도적이다. 진심이 담긴 목걸이 선물과 가벼운 키스 그리고 깊은 포옹. 이 장면은 정염에 불타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흥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유령이 다음으로 목격한 것은 또 다른 두 번째 커플이 머물고 있는 방. 그들은 첫 번째 커플과는 달리 섹스를 하기 위해 서둘러서 옷을 벗고 있다. 여자의 가슴이 출렁거린다. 유령이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두 커플 사이에서 혼자 온 솔로 여성'이 머무는 침실이다. 그녀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있다. 영화 << 이블 데드 >> 의 한 장면이다. 자, 여기서 주관식 문제. 공포영화 영역. 5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악령에 의해 육체를 강탈당하는 등장인물을 순서대로 나열하시오 ? ( 4점 ).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유령에 의해 제일 먼저 육체를 빼앗기는 희생자는 솔로 여성이다. 그 다음은 두 번째 커플(옷을 벗는 장면을 연출했던) 중 여성이고, 다음은 남성이다. 그리고 맨마지막 희생자는 첫 번째 커플 여성'이다. 최후의 1인은 남자 주인공'이다. 종합하면 : 솔로 여성 - 두 번째 커플 여성 - 두 번째 커플 남성 - 첫 번째 커플 여성 - 첫 번째 커플 남성 순으로 죽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순서가 공포 영화에서 강박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공포 영화에서 혼자 있는 여성은 제일 먼저 죽기에 딱이다. 괴물은 항상 혼자 있는 여성(혹은 남성)을 사냥한다. 다음은 집 밖에서 빤스를 내리는 커플이다. 이들은 대부분 섹스하다가(혹은 집 밖에서 섹스했다는 이유로) 죽는다.
괴물이 등장하는 스플래터 영화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쪽은 무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옷을 벗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청교도 이념에 충실한 사람이다. 빤스를 함부로 내리지 않고 혼자 제멋대로 굴지 않는 사람이 생존자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또한 가슴이 큰 여자는 가슴이 작은 여자보다 먼저 죽고, 가슴이 예쁜 여자는 마음이 따듯한 여자보다 먼저 죽는다. 이 모든 것은 공포 영화라는 장르의 클리셰'인 셈이다. 안 봐도 뻔하다. 모든 스토리는 이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포영화 관객들은 안 봐도 뻔하기 때문에 이 장르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이 루틴이 던지는 사회학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 시선의 주체는 남성 > 이고 < 관찰의 대상은 여성 > 이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항상 보여지는 존재'다.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보았을 때 시선을 빼앗긴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그것은 < 시선을 빼앗기는 것 > 이 아니라 < (여성의) 시선을 빼앗는 것 > 이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남성은 시선을 빼앗길 수 없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깐다는 것은 수컷 세계에서는 항복을 의미한다. 거세다. 스플래터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은 괴물이라는 탈을 썼지만 사실은 기득권 보수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이 반영된 그림자'이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혹은 남성)이거나 집단에서 벗어난 열외자'이다. 유령은 그들을 처단한다. 유령은 주류 남성의 정상적 욕망을 반영한다. 여성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선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시선의 독점은 폭력이다.
양성 평등의 시작은 남성의 시선 독과점(獨寡占)을 나누는 것이다. 남성이라는 시선으로 여성을 평가하지는 말자. 홍상수의 << 생활의 발견 >> 에서 연구원(김학선 扮)이 경수(김상경 扮)에게 말한다. " 우리 사람이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 ! " 이 대사는 모든 것을 여성의 외모와 몸매를 평가하는 남성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말이다. "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그러니까 내 말은...... 눈 깔어, 이 쌥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