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나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내가 주먹을 휘두르면 바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쉭, 쉭쉭쉭 ! 내 앞에서 수많은 일진(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나의 권술(拳術)을 검술(劍術)이라 했다. 내 주먹은, 강했다. 머리가 나쁜 탓에 공부를 못했기에 주먹 세계에 발을 들였다. 주먹 하나만큼은 자신있었으니까. 이 글은 내가 동정 없는 세계에 몸담으면서 깨닫게 된 << 진실 >> 에 대한 이야기'다. 경청 바란다. 주먹이나 칼부림으로 이기는 놈은 싸움을 잘하는 놈이 아니었다. < 칼부림 > 은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이 짓보다 상수는 < 욕부림 > 이었다. 살벌한 욕 한 마디'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의하면 이 전술은 고급 기술에 해당된다.
싸움의 기술에서 유혈'보다 한 단계 위는 무혈인 것이다. 그런데 칼부림과 욕부림을 담당하는 놈들은 조직 내 계급이 낮은 녀석들이었다. 쫄따구들이나 사용하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이보다 한 단계 위인 놈은 싸울 때 큰소리로 욕을 하지 않는다. 욕을 하기는커녕 존댓말을 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무서워서 벌벌 떨고는 했다. 목소리 큰 놈보다 목소리 작은 놈이 이긴다 ?! 반말 하는 놈보다 존댓말 하는 놈이 이긴다 ???!!!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리라.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메라를 줌-아웃시켜서 원경(遠景)으로 빠지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 놈 뒤에는 칼부림하는 놈과 욕부림하는 놈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칼부림하는 놈도 무섭고 욕부림하는 놈도 무서운데, 이런 놈들을 한갓 병풍처럼 사용하는 저 놈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인가. 이 상상력 앞에서 주눅들게 된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사설 감옥 감시인이었던 철웅( 오달수 扮)이 장도리로 오대수(최민식 扮)의 이빨을 뽑을 때 이런 말을 한다. " 있잖아...사람은 말이야...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 지는 거래...그러니까...상상을 하지 말아봐... 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 " 그렇다, 상상력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도 이 세계에서는 중간 보스에 지나지 않았다. 몇 년 전, 조직 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조곤조곤한 존댓말로 상대를 제압하던 중간 보스'가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그를 무릎 꿇게 만든 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 대신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놈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중간 보스의 손모가지가 잘려나갔다. 그런데 손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놈은 결국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놈에게 제거되었다. 건달의 최상위는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놈이었다. << 의중 意中 >> 이라는 단어가 있다. 풀어서 설명하면 " 마음속 " 이라는 뜻이다. 의중을 읽다, 의중을 헤아리다, 의중을 파악하다, 의중을 알아차리다, 의중을 살피다, 의중을 꿰뚫다 라는 말은 말로 표현된 메시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무언(無言)을 읽는다는 뜻이다. 뉴스에서 거물급 정치인을 다룰 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 의중 > 이다. 그렇다면 의중을 읽고, 의중을 헤아리는 주체는 누구일까 ? 당연히 아랫것들이다.
아랫것들이 하는 일은 보스의 마음속을 읽는 것이다. 아랫것들의 자발적 충성 경쟁은 바로 의중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스의 의중을 읽지 못하는 부하는 성공하지 못한다. 거물급 정치인을 다룬 뉴스에서 < 의중 > 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꼭지는 박근혜와 관련된 뉴스'다. 그녀의 정치술은 말의 메시지가 아니라 손짓과 눈짓으로 이루어진 무언술'이다. 진실한 사람은 무언에서 의중을 파악하는 이'다. 바로 그 점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정치의 기본은 밀실이 아닌 열린 광장에서의 대화'다. 박근혜와 안철수의 공통점은 말이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