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서평이 아니다




                                                         에둘러 고백할 필요가 있을까 ?  서둘러 고해성사를 하도록 하자. < 기술적인 면 > 에서 본다면 서평의 좋은 예는 출판사가 제공하는 보도자료( 책 소개 글 )이다.  글 깨나 쓴다는 사람이 모인 곳이 출판사요, 글 깨나 쓴다는 사람(출판사 담당 편집자)이 쓴 글이 보도자료'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책을 만드는 과정(번역, 교정 따위)에서 다른 이보다 텍스트에 대한 접근이 남달랐을 것이니 텍스트 이해도'도 높을 것이다. 또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수차례 퇴고를 한 끝에 내놓는 글이니 기교 면에서 본다면 훌륭한 글이다. 그렇기에 그럴듯한 서평을 흉내내고자 한다면 보도자료를 열심히 보고 공부하면 된다. 우선 기술 점수'에서 A+ 를 주도록 하자. 그런데 출판사 보도 자료를 좋은 서평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내가 보기엔 " 기술 " 이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보도자료는 서평으로써는 낙제다, F 다. 왜냐하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보도자료는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한 < 홍보용 팜플렛 >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공정성을 잃어버린 글이 보도자료라는 말이다.  서평이 < 읽은 만한 가치가 있는가 / 없는가 > 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형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출판사 보도자료는 항상 " 용비어천가-수준 " 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출판사 보도자료는 (서평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지 않기에) 서평이 아니다. 이처럼 자신이 담당한 책을 홍보할 목적으로 작성한 보도자료에서 공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청와대가 내놓는 보도자료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문장을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로쟈 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하면서 " 서평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쓴 글이라면, 독후감은 나 자신을 위해 쓴 글입니다. 결국, 서평은 책에 대한 품평이므로 감상 위주의 독후감과 다르다 " 라고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핵심을 놓친 것처럼 보인다. 서평이냐 / 감상이냐, 라는 문제는 자신이 쓴 글'로 인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가/ 얻을 수 없는가'에 달려 있다.  서평은 다른 사람(책을 읽지 않은 독자)을 위해 쓴 글이지만 나 자신의 이득/ 혹은 사회적 명성,평판'을 위해 쓴 글이기도 하다.  서평가만이 서평을 쓸 수 있으며, 설령 서평가가 서평을 썼다고 해도 여러 이해 득실'을 따져서 나쁜 책을 좋은 책이라고 선전한다면 그것은 서평이 아니라 보도자료이며 팜플렛에 지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오랫동안 직업 서평가로 활동했던 조지 오웰은 서평의 괴로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며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으로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 이 책은 쓸모없다 ' 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를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 일 것이다...(중략)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287쪽

 

 

< 감상 > 의 사전적 의미가 " 주로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함 "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평 행위는 감상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서평과 감상문(독후감)을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서평의 기술이 아니라 서평가의 정직'에 달려 있다.  서평가의 덕목은 비평적 안목과 공정성'이다.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는 서평보다 나쁜 책을 나쁘다고 말하는 서평이 더 좋은 서평(가)이다. 반면 좋은 책을 나쁘다고 말하거나 나쁜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 서평이다. 그리고 책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단순하게 줄거리를 요약한 글도 그닥 좋은 글은 아니다. 

 

다음은 최종덕 상지대 교수가 교수신문에 올린 글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매조지하기로 한다. 내가 부분 발췌할 문장은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나쁜 서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결국 이 지적은 좋은 서평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서평의 형식과 내용이 이래야 한다거나 아니면 저래야 한다는 등의 규정된 틀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 싶을 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우선 출판사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나 신간안내문을 적절히 재조립해 서평이라고 내놓으면 안 될 것이다. 둘째, 내용 중의 일부를 따다가 원고를 채우면서 서평자와 원저자 사이의 입장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도 서평이랄 수 없다. 셋째, 더군다나 멋들어지게 문장을 만든 것 같은데 실상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평 대상이 되는 책을 서문이나 마지막 장만 대충 훑어보고 쓴 것도 제대로 된 서평이 될 수 없다.

 

이럴 경우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적당히 호의적으로 서평을 쓰거나 아니면 신문에서 본 신간소개란이나 입소문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 책의 내용보다는 책의 저자에 대한 평으로 왜곡 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 저자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혹은 칭찬 일색이 되는 감정적 응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나 역자의 권위에 밀려 비판은 근처도 가지 못하고 책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생하는 서평도 꽤나 눈에 띈다. 다섯째, 혹시나 이런 일은 아주 드물겠지만 오자와 탈자 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용어 사용 등의 문제점만을 논의하고 끝나버리는 것도 서평으로서는 싱거운 일이다.

 


- < 과학서평의 위치와 갈 길 > , 최종덕 / 상지대 교수

 


 

 

 

 

 

 


 

 

 

 

 

 

덧대기 ㅣ http://blog.aladin.co.kr/749915104/7782322 ㅣ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딩 2016-01-21 0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웰에 힘을 내서 말해보면, 좋은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근래 나온 책일 수록 :-) 저의 편견이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저는 고전이나 선집에 손이 더 가는 것 같구요.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직접적 경제 이득을 보는 이가 아니면, 책에 대한 글은 `이거 이래서 나는 좋았다 그래서 당신도 비슷한걸 얻고 싶으면 볼만하다˝식의 골격으로 솔직 담백한 찬사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0:46   좋아요 2 | URL
모든 글의 시작은 결국 정직인 것 같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기술은 없는듯요..
반가워요, 초딩 님..

cyrus 2016-01-21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곰발님이 인용한 문장이 있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하도 오래돼서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좋은 서평에 대한 기준들마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여러 기준들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평적 안목과 공정성. 이 두 가지 단어를 기억해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0:45   좋아요 1 | URL
저는 모든 서평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줄거리 요약 형식만 아니라 자기 견해를 밝히는 서평이라면 환영입니다.

기억의집 2016-01-2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출판사와 아무 관련 없고 거의 모든 책들을 사서 읽다보니 내 멋대로 평가할 수 있어서 편해요~ 저도 조지오웰의 저 대목 읽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0:47   좋아요 1 | URL
이 맛에 사서 읽는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책이 늘어나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그렇지...

기억의집 2016-01-21 11:30   좋아요 1 | URL
음.. 근데 서재 둘러보다 보니 서평 논쟁이 있었나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1:33   좋아요 1 | URL
서평 논쟁은 아니구요. 그냥 사이러스 님 서평은 뭘까요? 라는 질문을 던져서 남긴 글입니다.. ㅎㅎ..

yamoo 2016-01-21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서평과 독후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글에서 서평자가 드러나지 않고 책이 드러나는냐, 아니면 책을 읽은 사람이 드러나느냐..

골발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 문제는 관점의 차이가 아주 크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1:19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이십니다. 공정성을 위해서는 < 자신 > 을 죽여야지요. 서평에서 1인칭을 지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야무 님 말씀처럼 서평의 문제는 거의 대부분이 칭창만 한다는 겁니다. ㅏ

2016-01-21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01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kardo 2016-01-21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자신`을 없앨 수 없어서 진정한 서평은 못 씁니다;;다 독후감이죠. 하하;;;전문 서평가를 꿈꾸진 않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생각하지만.......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면 너무 심하게 못 쓴 거 아니면 대부분 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해서 비판하기 어렵더군요, 그리고 신랄하게 까고 싶은 경우는 나중에 골치아플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수위를 낮춰서 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7:14   좋아요 1 | URL
저도 자신이 없어서 신소리만 하다가 항상 삼천포로 빠집니다..ㅎㅎㅎㅎㅎ
저도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읽고 나서 재미있었으면 하고.
독서를 통해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독특하게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묘한 쾌락이 있거든요

2016-01-21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1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1-2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어투는 늘 고백체라 객관화해서 얘기하지 못 합니다.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은 알지만. 제 몸은 거의 대부분 수분이 아니라 감정으로 이뤄져 있어서 감정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거든요. ㅎㅎㅎ ˝재미있는 책 골라주기˝그게 좋아서 지극히 주관적인 서평을 일부러 씁니다. 귀찮아서 빼먹을 때도 많고 책 내용이 별로이면 쓰기조차 싫어지기도 하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듯 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서요. 그래도 금방 망각의 늪 속에 가라앉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