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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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의 첫 번째 마니아입니다 :  




 



재미없고 멍청한 애들 


 



  

                                                                                                     

 

​                                                                                  내가 좋아하는 청감(聽感)에 대해 말해볼까.   먼저 당부의 말씀.  " 취존1), 알지요 ? "  ( 라이너 릴케라는 이름보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풀-네임의 어감이 더 좋듯이 )

 

찰스 부코스키'라는 표기보다는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표기'가 더 근사하게 들린다.  좀더 귀족적 이미지'랄까 ?  전자가 서유럽풍 이미지라면 후자는 동유럽적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내 귀에 부코스키는 가볍게 들리고 부카우스키는 무겁게 들린다.  " 고딕 " 스럽고 " 고집 " 스러운,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적인, 몰락한,      아......  고성(古城)에서 사는 폐족 같은 느낌.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작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를 듣고는 찰스 부카우스키를 연상할 때 창백한 드라큘라 백작 이미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열 ~   책날개에 박힌 작가 프로필 사진을 보면 지적인 면모라고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촌스럽기 거지없는 아저씨 얼굴 하나가 뙇. " 누구세여 ? "    

그가 누구냐 하면   :   노동자 정서를 대변하면서 동시에 반(反)노동'을 찬양했고,  문학은 거들 뿐 문학을 핑계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술고래2) 가 되어 반인반어(半人半漁) 를 연기했으며, 승률 좋은 경마광'을 꿈꿨던 이가 바로 찰스 부카우스키 님'이시다.  또한 님포마니아(nymphomania)이면서 예쁜 여자만 보면 두렵다고 고백하는 소심한 남자이기도 했으니 고고하고 도도한 귀족 이미지보다는 미미하고 시시한 뱃놈 이미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내가 < 찰스 부카우스키 월드 > 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문학이 아니라 바벳 슈로더 감독이 연출한 << 술고래, barfly 1987 >> 영화'였다. 부코스키는 이 영화의 각본3)을 썼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찰스 부카우스키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영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첫 번째는 이 영화를 볼 당시에는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두 번째는 찰스 부카우스키를 연기한 배우가 미키 루크'라는 데 있었다.  지금이야 망가진 얼굴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가 젊었을 때는 알랑 드롱에 견줄 만한 외모를 자랑하던 배우였다(이 사실을 당신이 알랑가 몰랑).  딱 잘라 말해서,  코미디언 故 이주일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에서 송중기가 이주일 연기를 하는 꼴이다.  << 호밀빵 햄 샌드위치 Ham on Rye, 1982 >> 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 술고래 >> 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소설 후반부(챕터 54 ~ 58)는 핸리 치나스키가 성인이 되어 술집 2층에 있는 숙소를 얻는 에피소드가 영화 내용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는 핸리 치나스키가 술 마시고 싸우고, 술 마시고 싸우고, 술 마시고 싸우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소설은 성인이 된 핸리 치나스키가 어린 꼬마아이와 함께 기계식 권투 오락 게임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

                   10센트를 더 넣자 파란색 트렁크 팬티가 튀어 올랐다. 아이는 한쪽 방아쇠를 쥐어짜기 시작했고, 빨간색 트렁크 팬티의 오른팔이 펌프질하고 펌프질했다. 나는 파란색 트렁크 팬티를 잠시 동안 뒤에 서 있도록 놔두면서 생각했다. 그런 후에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파란색 트렁크 팬티가 두 팔을 마구 휘두르며 파고들도록 움직였다. 이겨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중요한 일 같았다. 그 일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왜 이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 그러자 또 다른 나의 일부가 대답했다. 그냥 중요하니까. 그때 파란색 트렁크 팬티가 다시 주저앉았다. 털썩. 똑같이 철이 쩔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작은 녹색 벨벳 매트 위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있는 내 선수를 보았다

ㅡ 413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불현듯 영화 << 술고래 >> 에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 연기를 해야 했던 미키 루크'가  떠올렸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었지만,  그는 배우 생활을 접고 권투 선수가 된다.   권투 선수로서의 실력은 할리우드 생활'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소설 속 문장처럼 파란색 트렁크 팬티를 입은(혹은 빨간색 팬티 트렁크를 입은)  그는 " 작은 녹색 벨벳 매트 위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있기 " 일쑤였다.       수많은 펀치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하나둘 망가뜨렸다.  그는 점점 미남에서 추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킬에서 하이드가 되어갔던 것이다.  그는 왜 화려한 할리우드 생활을 버리고 권투를 선택했을까 ?   추남이 된 미키 루크 얼굴을 보면 얼핏 설핏 찰스 부카우스키가 엿보인다. 

강고하지만 둥근 어깨,  얽은 얼굴,  굽은 등.  영화 << 레슬러 >> 에서 미키 루크는 별다른 분장 없이도 찰스 부카우스키의 분신처럼 보였다.  피부 곰보였던 젊은날의 핸리 치나스키를 연기했던 그가 늙어서 핸리 치나스키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울컥해지는 대목이다.  찰스 부카우스키는 분신인 핸리 치나스키의 고백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동안 가난한 애들과 지질한 애들, 멍청한 애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 주위에는 강한 애들 대신 약한 애들이, 잘생긴 애들 대신 못생긴 애들이, 승자 대신 패배자들이 꼬였다. 평생 이런 애들을 일행 삼아 여행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인 듯싶었다. 그것 자체는 내가 이런 재미없고 멍청한 애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는 사실만큼 거슬리지 않았다

ㅡ 219

 

이 문장을 읽고 나자, 나는 요실금 환자처럼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며칠 전  내 알라딘 북플에 이런 메시지가 떴었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은 찰스 부코스키의 첫 번째 마니아입니다. "  그렇다,   나는 " 가난하고 지질하며 못생긴, 이런 재미없고 멍청한 애들 " 중 한 명이다 ■ 




​                 

1)    취존 :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

2)    찰스 부카우스키는 고래 연기의 달인이면서 동시에 파리(fly)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파리도 아니면서 파리 연기를 멋들어지게 연기했던 술집죽돌이(barfly)였다.

3)    바벳 슈로더 감독과 찰스 부카우스키의 인연은 바벳 슈로더 감독이 1982년에 << 더 찰스 부코스키 테이프 >> 라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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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6-05-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서 여지껏 구매를 잊고 있었네요. 오늘 곰곰발님께서 리뷰를 써주신 덕택에 이제야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찰스 부코스키는 정말이지 독특하고도 보석 같은 작가입니다. 예전에도 말했던 바지만 그는 어느 글에서건 사실상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합니다. 도박, 섹스, 음주, 반노동, 고독, 자유, 개인 등을 선호하고 역설하는 얘기가 작품 세계의 주종을 이루지요. 부코스키는 어떻게 보자면 동어 반복이 아주 심한 작가인데, 그럼에도 작가와 작품이 조금도 밉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자기 삶과 생각을 이렇게만치 가감 없이, 망설임 없이 글로 옮기는 작가가 흔치 않아서일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6 11:08   좋아요 0 | URL
실증이 안 나는 이유가 핸리 치나스키가 나오는 소설이 일종의 한 편의 소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체국, 패토텀, 여자들, 햄.. 이렇게 4편은 소설 네 편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소설을 4권으로 분리했다고나 할까요. 그가 죽기 전에 완성했다는 장편 소설 펄프`가 출간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표맥(漂麥) 2016-05-1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짜몬 글을 이렇게 찰지게 쓸 수 있을까? (부럽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7 12:26   좋아요 0 | URL
부럽긴요. 허접한 글일 뿐입니다. 허허허허..
(이런 댓글 좋아합니다 ㅎㅎ)

cyrus 2016-05-1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민 교수님의 책에 관한 글을 세 편(서평 두 편)이나 썼는데도 ‘서민 마니아’라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알라딘 시스템은 믿을 게 못 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7 12:27   좋아요 1 | URL
서민 님 인기도에 비하면세 편은 좀 부족합니다.. ㅎㅎ

cyrus 2016-05-17 12: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가요?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

yamoo 2016-05-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코우스키 전집을 꼭 장만해서 곰발 님에게 자랑질하는 페이퍼를 쓰도록 해 보이것습니다요~~ 불끈~!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22   좋아요 0 | URL
부코우스키 전집이 과연 마련될까요? ㅎㅎㅎㅎ 이 양반 소설보다는 시집이 많을 겝니다..

시시프 2016-05-2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반갑습니다. 저도 부코스키를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barfly에 부코스키가 잠시 출연하기도 했었죠? 부코스키 테입이 바벳 슈로더 감독인 줄은 몰랐는데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팩토텀은 `삶의 가장자리에서`라고 타이틀이 바뀌어 나왔던가요. 삶의 가장자린지 생의 가장자린지 헷갈리긴 합니다만, 맷 딜런이 그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메리사 토메이가 역시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미친 시인의 사랑`은 어떤 책과 내용이 상당히 겹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번역을 잘못한 문장들이 왕왕 보였습니다. 역시 부코스키에 목마른 분들이라면 절판된 책들을 갖고 싶어 찾아나서겠죠? 이번에 민음사에서 그의 시를 출판해줘서 처음으로 그의 시를 읽게 되었네요. 아, 아무튼 부코스키를 사랑하는 분을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길 기대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2 11:59   좋아요 0 | URL
아. 이토록 놀라운 박학다식.... 제 일 마니아는 제가 아니라 시시프 님이신 것 같습니다. 이야,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근데 술고래에서 부코 할베 나오셨나요 ? 옛날에 멋모르고 보아서 나온 줄도 몰랐습니다. 함 찾아봐야겠습니다...이렇게 부코 마니아를 만나니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시시프 님 만세 ~~
 

 

 



 

 

 

 

 

 

 

 

 

 

 

 

 

 

 

 

 



 

 

 

 

 

 

 


 

사이코 : 낫은 기역(ㄱ)보다는 니은(ㄴ)에 가깝다



                                                                                                      낫은 기역(ㄱ) 자를 닮았지만 동시에 니은(ㄴ) 자도 닮았다.    낫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기역(ㄱ)으로도 보이고 니은(ㄴ)으로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낫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기역 자보다는 니은 자가 먼저 연상이 되어서 어릴 때 "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 는 속담을 이해할 수 없었다.  < 낫 > 과 < 기역(ㄱ) 자 > 가 닮았나 ?!  낫 놓고 니은(ㄴ) 자도 모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

사실,  < 낫 > 이라는 사물의 형태와 < 낫 > 이라는 낱말은 모양새가 닮았다.    낫이라는 낱말이 낫이라는 사물을 닮았으니 상형 문자와 비슷하다고 말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그래서 그런가 ? < 자신 > 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 자식 > 이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된다. 자신이라는 낱말에서 종성 니은(ㄴ)을 이리저리 돌려놓다 보면 자식이 되니까 왠지 두 단어는 한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인은 자신과 자식을 한몸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족주의는 자신과 자식을 동일자로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 나 > 는 < 너 > 다 ! 이런 말을 하면 어버이연합으로부터 종북 좌파 빨갱이 개 호로새끼'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하지만 피아(彼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합일의 욕망이 같잖다.

나는 나고 너는 너지, 어째서 나는 너가 될 수 있느냔 말이다.  서양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가족 동반 자살이 한국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 심리를 파고 들면 자신과 자식을 하나로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 나 > 가 불행하니 < 너 > 도 불행할 거란 생각.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 따위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피아 구별이 불가능한 애착은 자신의 욕망을 대상(자식)에게 투사하게 만든다. 좋게 말하면 애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집착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많다. 명절만 되면 가족끼리 싸우는 원인도 서로가 투자 대비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어쩌면 나에게 이럴 수 있니, 라는 원망에는 자식에게 투자한 비용에 비해 수익성에 낮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이 얼마나 자본주의적 가족애'인가. 가족 드라마는 가족애를 찬양하면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그 내면에는 투자 심리가 내포되어 있으니 웃긴 꼴이다. 아가페적 사랑과 헌신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자신과 자식은 서로 뜻이 다른 단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그 유명한 영화 << 사이코 >> 는 관객에게 부모와 자식 간 피아 구별이 불가능해지면 좆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이 영화는 자신(어머니)과 자식(노먼 베이츠)이 분리되지 못하고 하나가 될 때의 비극을 다룬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 가족끼리 왜 이래 ? >> 라는 드라마'가 떠오른다. 가족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그 믿음을 바탕으로 한 무리한 요구들이 한국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다.

맹랑한 목소리로 가족끼리 왜 이래, 라고 되묻지 말자. 가족끼리 그래도 된다. 부패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가족주의에 집착한다는 통계가 있다. 딴청은 능청스럽게 핵심은 간략하게. 영화 << 사이코 >> 에 대한 리뷰의 맺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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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1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패 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가족주의에 집착한다.
새로운 학설이군요.
암튼 저도 곰발님 생각에 동감입니다.
가족끼리 친해야 한다.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은 이제 좀 없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가급적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면서 평화 공존하려고 노력하면 좋은 거지,
예전처럼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지나친 온정주의도 옳지 않구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홀로 있으려는 욕구와 함께 있으려는 욕구를 상충시키며 진화해 온 동물 아니겠습니까?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5 13:14   좋아요 0 | URL
가톨릭 국가가 보통 가족주의잖아요. 이탈리아나 필리핀... 유럽에서 부패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이탈리아이고, 필리핀은 뭐 워낙 유명하지 않습니까.. 수치로 나온 예입니다..

부패의 원형은 우리끼리끼리 해먹자 아니것습니까.. 개인주의보다 가족주의가 부패가 심합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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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구두구두구두구




 

       구두 이야기



 

동화 속에서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하여 계급 장벽을 무너뜨린 입지전적인 여성이 되었다.     그녀의 인생 역전 로또는 < 구두 > 였다.  그녀가 무도회장을 떠나면서 남긴 것은 발에서 벗겨진 구두 한 쪽.  왕자님은 방을 붙여 잃어버린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1).  자고이래로 자기 발에 딱 맞는 구두는 찾기 힘든 모양이다.   인생 역전을 위해 수많은 아가씨들이 유리 구두를 신어보지만 크거나 작거나.  뭐, 다들 아시는 동화이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자.   신데렐라 10자평은 이렇다   :   새 구두는 불편하다.            오늘은 구두에 대한 썰(舌)을 풀어 볼까 한다. 기대하시라.  두구두구두구두구.......   아니,  구두구두구두구두.



읽는 기계,                  다독의 대명사인 독(讀)한 다치바나 다카시 달인이 쓴 <<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라는 책은  제목 그대로 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보유한 책이 수만 권이니 일일 독서량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터.  책 깨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예외없이 정독을 모범 답안으로 내놓을 때,  독한 다치바나 다카시 선생은 속독을 권유한다.   그가 말하는 독서론은 간단하다. "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으니,  후딱 ~ 읽으셔 ! "   그가 내놓은 << 후딱 읽기 ㅡ 요령 >> 中  하나는 동종 테마의 책을 몰아서 읽는 것이다.  특정 분야를 공부하고 싶으면 우선 가벼운 개설서를 먼저 읽고 나서 바로 입문서를 읽는다. 그리고 나서 그와 관련된 동종 테마의 책들을 연속적으로 읽는다. 그가 이 방법을 권유하는 까닭은 속독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동종 테마(의 책)이니 첫 번째 책보다는 두 번째 책이 읽기에 수월하고,  세 번째 책보다는 네 번째 책이 읽기에 수월하다. 내용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동종 지식이 축적되다 보면 속독이 가능하게 된다. 경기를 펼칠수록 더욱 강해지는 인공지능 알파고 시스템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읽고 나서 프로이트를 읽는 것보다는 마르크스를 읽고 나서 알뛰세르를 읽거나 프로이트를 읽고 나서 바로 라캉을 읽는 것이 속독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 입문서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는 입문서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치우는 편이 낫습니다2) "   쉽게 말해서 이 분야 저 분야 두서없이 읽지 말고  한 분야'에 몰빵하라는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이런 분이야.   


< 몰빵 > 이라는 속된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 몰빵 " 하면 한 몰빵 했던 사람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 그것 " 만 한다.  하지만 몰빵의 미덕이 독서 영역이 아닌 소비 영역으로 뻗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때 " 니트 넥타이 " 에 꽂힌 적이 있어서 니트 넥타이'를 열심히 사서 모은 적이 있다.  안다,   나도 알고 있다.  명품을 모으면 콜랙터(collecter)가 되지만, 싸구려 가품을 모으면 호더(hoarder)가 된다는 것. 그래서 의미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구려 니트 넥타이를 열심히 모았다.  하나둘 모으다 보니 넥타이 공장을 차려도 될 만큼 모았다. 문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실증이 난다는 점이다. 발품 팔아서 모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날 갑자기 한갓 천조각으로 보이는 거라. 

이깟,   천조각 따위나 모으려고 사나이로 태어났단 말인가 !   희귀 비디오를 모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택까지 가서 웃돈을 주고 사왔던 그  수많은 희귀 비디오 테이프들이 어느 순간 폴리에스테르 플라스틱 쓰레기로 보이는 거라.   열정이 식을 때 내가 선택한 방식은 가혹하게도,  가혹하게도, 아아. 가혹하게도 쥐도새도 모르게 한방에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신경쇠약 직전의 조울증적 소비 습관'이라 할 만하다. 구두도 마찬가지였다.   금강제화 랜드로버에 꽂혀서 랜드로버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한달에 두세 켤레를 산 적도 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1년에 4,50켤레를 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새 구두는 불편하다는 점이다.  새 구두가 50켤레에 육박했지만,   정작 내가 신고 다니는 구두는 뒷굽이 닳을 대로 닳은 낡은 신발이었다. 

단순한 이유.   새 구두는 불편하고 낡은 구두는 편하니까.  새 구두를 신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것은 악몽이니까.  신발과 신발 주인의 관계는 야생마와 카우보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새 신발과 날뛰는 야생마는 길들여야지 편해지는 법.  신발은 뒷굽이 닳아서 보기 싫어질 때 가장 편한 상태가 된다.  애인도 그렇다.  좋은 애인은 낡은 구두와 같다.  내가 사 모았던 50켤레의 구두는 그렇게 방치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구두는 먼지가 쌓이고 공기 접촉으로 인해 가죽이 굳게 되었다.   새 구두는 한번도 신지 않은 채 낡은 구두가 되었으니 신지도 않을 신을 사 모으는 것(가지고 싶다는 욕망)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새 구두이지만 편한 구두는 드물지. 발에 물집이 잡혀야 나중에 편한 구두가 되는 법...... "   

그때 깨달았다  :    ㉠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모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사실,  ㉡  새 책이지만 읽지 않은 책은 낡은 책이라는 사실,  ㉢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결국에는 좋은 책이었다는 사실,  ㉣  낡은 구두와 읽은 책과 오래 사귄 애인은 서로 닮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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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6-05-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와 구두가 도대체 뭔 상관이냐고 투덜투덜.. 논점 흐리기는 역시 곰곰 님 특기라며 돌아서다가 오래된 애인에서 그만 발목이 콱..
오래된 애인은 좋은 애인이라기 보다는 그냥 낡은 구두같은 사람 아닐까요? 애인이 아니라 그 뭐랄까... 의형제 같은... ㅡ..ㅡ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0:50   좋아요 0 | URL
제가 워낙 짬뽕 스타일이라... ㅎㅎ..
맞습니다. 애인과 낡은 구두는 동일어`죠..


아무래도 전 사기꾼 ㅇ 아니... 삐끼적 운명을 가진 놈인 거 같습니다.. ㅎㅎㅎ 제 글이야 거의 다 삼천포죠..
영양가는 업씀..

비의딸 2016-05-13 11:10   좋아요 0 | URL
영양가가 없었다면 골방에 처박혀있길 좋아하는(알라딘 블로그를 소통의 장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제가 이렇게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안할 것 같은데요. 곰곰 님의 논점 흐리기는 특기이며, 매력이기도 하다고 뒤늦게 말씀 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18   좋아요 0 | URL
이런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제가 삼천포 운운한 거죠.. ㅋㅋ
제가 곰 같아도 여우 같은 구석이 있죠... 흐흐....

붉은돼지 2016-05-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글을 읽다가 아아아!!! 문득 생각났습니다.
장농 서랍 안에 혹은 옷장 안쪽 구석에 소복하게 쌓아놓은 비디오테잎들....
뭐 이제는 볼려고 해도 플레이어가 없어서 못봐요..ㅜㅜ
dvd도 곧 그 꼴 날것 같은 예감이...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4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말이죠. 이제는 뭘 수집하려 해도...
하드웨어가 단종될까 봐 그러지도 못하겠습니다.
누가 비디오테잎이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마 디븨디도 사라질 거입니다...
이젠 수집의 의미가 사라졌어요... 아쉽기도 합니다...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테입이길래 은밀하게 비됴테입을 숨겨노셨슴까?

peepingtom 2016-05-1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야 저 분야 다치바나 다카시 이런 분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임의 황태자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55   좋아요 0 | URL
이 분야 저 분야 다 같은 분이죠.. ㅋㅋㅋㅋ
라임에 살고 라임에 죽습니다... 라임왕이라 불러주십시오.

yureka01 2016-05-1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ㅋㅋㅋㅋ맞습니다..세상에 나온책 나올책 나올 예정인 책..다 못보고 죽습니다.그렇다면 방법은 선택과 집중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선택은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난 분야를 선택하다보면 이게 쌓이다보면 선택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니 빨리 읽을 수 있게 될 것이고...집중도 마찬가지로 파고 드니까 더 빨리 속독되는 이치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57   좋아요 0 | URL
다카시 독서법을 저는선호합니다. 문학이나 철학을 빼면 나머지는 발췌독이 정답인 거 같습니다.
사실... 팔 할은 잔소리고 이 할만이 핵심이잖아요. 쓸데없는 군소리는 건너뛰는 것이 정답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문학과 철학 빼면 나머지 분야는 거의 다 발췌독입니다..

stella.K 2016-05-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능력있는 남자들에겐 조강지처와 조강지첩이 있다더니
님의 글에서 또 한 번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난 또 뭐라구...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4:24   좋아요 0 | URL
저강지첩은 무슨 뜻입ㄴ까 ?

stella.K 2016-05-13 14:55   좋아요 0 | URL
오타입니다. 아시면서...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8:00   좋아요 0 | URL
저강지첩이라길래 내가 모르는 사자성이인 줄 알았습니다..

cyrus 2016-05-1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책을 다 못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속전속결로 읽어야 할 책을 고르고, 후딱 읽어야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7:59   좋아요 0 | URL
도서관 가면 막상 책만 고르다가 읽지도 못하고 돌아오고는 하죠.. 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05-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씨와 구두이야기는 `여러 구두를 모으기보다 한 구두를 오래 신어라.` 즉 ˝다치바나 다카시씨 처럼 선택과 집중을 해라.˝ 라는 이야기지요ㅎ?

`구두에 익숙해지면 발이 편하다.`는 `한 분야에 익숙해지면 속독이 가능하다.` 라는 비유지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7:59   좋아요 0 | URL
캬 ~ 아니 어쩜 이리 정리를 잘하십니까..
정리의 달인이십니다.. ㅋㅋㅋㅋㅋ.
마자요. 고겁니다.. 고거예요 ~

수다맨 2016-05-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나 금정연 같은 서평가들이 도달할 수 있는 극점은 아무래도 다치바나 다카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전자는 성실하고 착한(!) 리뷰어 정도에 만족하는 듯 보이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4 12:40   좋아요 0 | URL
다카시 이 양반, 의외로 시니컬합니다.. 독설가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득 조지 오웰 생각나는군요.
직업으로써의 서평가는 지겹다고 했던...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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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  물어뜯는다고 ?!

 

 

 

family plot  우리가 남이가 ?

 

​ㅡ 스포일러 有



                                                                                                         사랑 영화는  집구석을 벗어나야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간다.  꽃 피면 꽃 핀다고 만나고 꽃 지면 꽃 진다고 만나는 게 연애질이니,  콧잔등에 꽃가루 살짝 얹어 줘야 ~    명색이 로맨스'라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밖으로 " 싸돌아댕기는 것 " 은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포 영화집구석에 갇혀야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가는 장르'이다.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 장소 > 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벗어나는 데 애를 먹는다.   심성 착한 나뭇꾼이 귀신 들린 산골을 벗어나려 하지만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공포 특급 서사'가 아니었던가.  이처럼 출발점과 도착점이 일치할 때 공포는 발생하게 된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로브 라이너 감독이 영화로 만든  << 미저리 >> 가 좋은 예'다.  이 영화에서 공포의 주체는 미치광이 host(집주인)이다.  인기 작가 폴 쉘던'은 미치광이 host에 의해 hostage(인질)가 되는데,   그가 hostage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미치광이 간호사(host)에게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 그 > 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눈을 뜨면 항상 침대'에 갇혀 있다.  즉,  이 영화는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벗어나려는 남자의 수난극인 셈이다.   애니 월크스의 직업이 전직 간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 원작자인 킹은 단어 host : 주인'과  hostel : 쉼터'와  hospital : 병원'이 모두 한 뿌리(어원)'에서 파생된 낱말이라는 사실을 적극 활용한 것 같다.  편혜영 장편소설 << 홀 >> 도  이 공식에 충실한 소설이다.      교통사고로 차에 동승한 아내를 잃은 남자(나이 사십, 그는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다)는 전신마비 신세가 되어 자신이 살던 집에 갇히게 된다. 그의 간병을 자처한 사람은 장모'다. 처음에는  불행하지만 평범한 가족 서사'처럼 보인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내를 잃고 홀홀단신이 된 남자(사위)와 딸을 잃고 홀홀단신이 된 여자(장모)는 동병상련.    하지만 가족 서사에 균열이 생기면서 둘의 관계는 이상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장모는 병문안을 온 사위의 대학 동료 앞에서 보랏듯이 사위의 아랫도리를 벗겨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닦는다.    부끄러워 말게나. 우리가 어디 남인가.  작가가 독자에게 흘린 정보에 의하면 남자는 교통사고 직전에  아내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었고,  장모는 사위를 간병하던 중에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더군다나 남자는 동료뿐만 아니라 어린 제자와도 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행복했을 것이라 믿었던 딸의 불행.  장모는 언제부터인가 사위에게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이 지점을 변곡점 삼아 동일자라 여겼던 장모를 낯선 타자로 변형시키고,  장모 또한 사위를 가족이 아닌  타자로 설정한다.  문학평론가 故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988년 7월 17일의 일기, 김현, <행복한 책읽기> 中)

 


불구가 된 남자가 장모에게 느끼는 공포'도 이와 유사하다.    가족이라 믿었던 장모2)는 어느 순간 낯선 타자로 돌변한다.               그 순간,   장모의 간병 행위는 < 간호 > 인지 간호를 빙자한 < 방치 > 인지가 애매모호하다.  이 모호성이 극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만든다.  " 내가......    자네 장모로 보이나 ? "     장모는 죽은 딸이 머물던 곳에서 생활하며,  죽은 딸이 입던 옷을 입고, 죽기 전에 딸이 정성스레 가꾸었던 정원을 손질한다.  남자는 장모의 모습에서 얼핏 설핏  죽은 아내를 겹쳐 읽는다.  상황이 급변하자 안전한 집은 죽음의 집으로 변한다.  남자는 탈출을 결심하지만 아시다시피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퇴행적 존재로 장모가 튜브로 음식을 넣어주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다. 

즉, 이 의료용 튜브는 탯줄(생명줄)인 셈이다.    또한 타운하우스'는 거대한 자궁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 홀(구멍), hole >> 이라는 소설 제목이 그 사실을 견고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지배하는 그로테스크한 정서는 " 모성적 남근 " 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그는 자신의 탯줄이 무시무시한 바기나 덴타타3)에게  물어뜯길까 봐 겁을 내는 꼬마 한스에 가깝다.  가 살 수 있는 길은  이 집을 벗어나는 일'이다.   과연,  그는 벗어날 수 있을까 ?    소설 << 홀 hole >> 은 << 미저리 >> 의 설정을 그대로 빌려 와  " 우라까이 " 했지만  크게 흠 잡을 만한 곳은 없다.  압축된 문장은 밀도가 높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다만,  지나치게 우아하다.

내가 편혜영(소설들)의 우아한 문체에 반감을 가지는 이유는 절실함에 대한 결여'에 있다. 반복하지만 편혜영은 지나치게 우아하고 과도하게 고상하다(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 선데이서울 > 을 < 킨포크 > 스타일로 " 우라까이 " 할 때 느끼게 되는 엇박자 ■ 






​                           


1)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988년 7월 17일의 일기, 김현, <행복한 책읽기> 中)

2)  가족 이데올로기는 명백하다.  우리가 남이가 ?

3) 바기나 덴타타  :  이빨 달린 여성 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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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우아하다굽쇼? 그럼 이건 내꽌데...ㅋ
편혜영을 읽어 본적이 없는데 함 읽어보고 싶긴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1 19:22   좋아요 0 | URL
그로테스크하지만 우아합니다. 전 그게 편혜영의 단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작품을 좀 피비린내가 나야지 제맛이죠..ㅎㅎ 재미있어요. 편혜영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며 난해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서사가 좀 두리뭉실했거든요..

yamoo 2016-05-1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혜영의 소설이 읽은 만하다는 소문은 계속 듣고 있습니다만...한국 소설들에는 거의 손이 가지 않아요..세계문학만 하더라도 읽기 벅차요. 그냥 줄줄이 대기작들이 넘쳐납니다. 요즘 슈니츨러 작품들과 한트케 작품 땜시 다른 소설은 읽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편혜영 <홀>에 대한 곰발님의 고견 잘 봤습니다. 일단 중고서점에 편혜영 저작들은 컬렉션 해 두어야 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5   좋아요 0 | URL
전 편혜영 소설 별로 안 좋아합니다. 리뷰 당선되면 50만 원 준다기에 책 샀는데 기한을 훌쩍 넘기고 지금에야 읽었네요. 이게 뭔 지랄인지.. 근데, 이 소설 재미있어요.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쫀뜩쫀뜩한 밀당 좋아하거든요... ㅎㅎ

yamoo 2016-05-12 10:4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리뷰 대회를 위한 글이었군요! ㅎㅎ
그런 지럴도 있어야 재미 아닙니까..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10:54   좋아요 0 | URL
마감 지나고 리뷰를 썼으니 해당 사항은 없는 리뷰입니다.. ㅎㅎㅎㅎ. 이 리뷰 쓰기 전에 이미 벌써 당선자 발표가... 이런 지랄도 해야 한국소설도 읽고 그러는 거 아니것습니까..ㅎㅎ

수다맨 2016-05-1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댓글을 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약간은 반감이 들었는데, 왜 반감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곰곰발님이 말씀하신 `지나치게 우아함` 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이런 내용과 소재의 글은 스티븐 킹이나 러브크래프트의 문체로 쓰여야 한결 재미와 박진감이 살아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편혜영의 소설들 중에선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편혜영은 근래에 오면서 (과거처럼 단순 하드고어의 세계를 그리기보다는) 일상에 잠복된 공포와 불안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듯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는 아닙니다만 이 작가도 갈수록 내공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네요.
역시 짬밥은 허투루 먹는게 아닌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7   좋아요 0 | URL
네에. 조경란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좀 지나치게 고상하다는 느낌. 고상하게 되면 절실함이 보이지 않잖습니까. 편혜영의 잘빠진 그로테스크를 볼 때마다 선데이서울을 킨포크 스타일로 레이아웃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느낌......

아니 왜 이리 격조하셨습니까. 자주 봅시다 ~

peepingtom 2016-05-1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상단에 있는 것은 부제목쯤 되려나요? 소제목? 저는 저 소제목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보기엔 곰님의 정수는 소제목 짓기인 것 같습니다. 크크크. 홀, 뜯어먹겠다고
요거 정말 절묘합니다 크크크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8   좋아요 0 | URL
캬. 저데 나름 소제목에 공을 들입니다. 은근 소제목 짓기가 재미었습니다..
 


 

 

 

 

 

 

 

 

 

 

 

 

 

 

 

 

 

 

                                       

 


 

 



 



우리가     악몽(惡夢)을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





                    - 영화 << 기담 >> 에서 그 유명한 엄마 귀신




                                                                            무릎과 무릎 사이,  치골과 둔골 사이, 그 사이에 거뭇거뭇 거웃이 자랄 무렵,  우리는  많은 < 꿈 > 을 꾸게 된다.   이야기도 가지각색이고 판타자도 스물네 가지 총천연색이어서 지난 꿈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 무서운 꿈 " 은 세월이 흘러도 비교적 生生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사춘기 때 꿈속에서 수많은 악귀(惡鬼)를 경험하게 되지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낯선 자'가 아니라  낯익은 자'다.  그 대상이 낯익은 얼굴일수록,               유대 관계가 친밀한 존재일수록 두려움은 비례한다.  그러니까,  달빛 어스름 비치는 거실 한구석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성이는 귀신은 주로 어머니'인 것이다. 낯익은 대상이 나에게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고 낯설게 말할 때의 공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악귀 가운데 사랑하는 엄마'가 주인공이 되었을까. 대상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그 대상으로부터의 분리 공포 불안'도 강화된다.  아침만 되면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나 주인이 집을 비우면 이상 증세를 보이는 반려견도 분리 불안 장애'에 해당된다.

우리는 모두 모체(母體)에서 분리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 탄생 > 은 곧 익숙한 것(모체)의 결별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원형적 분리 불안 공포가 엄마 귀신에게 투사되는 것'은 아닐까 ?   이처럼 두려움을 작동시키는 서사의 원형은 < 낯익은 것의 낯선 배신 > 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악몽을 통해서 배운 교훈은 사람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측면'이었다.  낯익은 얼굴과 낯설은 얼굴은 동일하다는 사실. 얼굴과 탈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얼굴은 기본적으로 (낯) 설은 것과 (낯) 익은 것이 엉켜 있는 부위다.   즉, < 낯 > 은 " 설익은 " 것이다.  김현은 << 행복한 책읽기 >> 에서 모체(母體)에서 분리된 불쾌한 경험을 동일자와 타자로 설명한다.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 


- 1988년 7월 17일의 일기, 김현, <행복한 책읽기>


김현의 말대로라면  :   악몽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 엄마 귀신 ㅡ 꿈 > 은 동일자라 믿었던 대상이 타자화될 때 느끼게 되는 불안이 반영된 결과'다.     여기서 동일자는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 자상한 엄마 > 이고,   타자'는 나에게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고 되묻는 < 기이한 엄마 > 다.

이례적으로 조성호(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 범인)의 얼굴과 신상(身上)이 공개되었다.  경찰은 시민의 알 권리와 범죄 예방 차원에서 얼굴을 공개했다지만 흥미진진한 싸구려 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1).  범인 얼굴을 본 대중은 대동소이한 한 줄 논평을 내놓는다.  생긴 건 멀쩡하게 생긴 놈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는 장탄식'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모든 범죄의 팔 할은 멀쩡하게 생긴 놈이 저지른다. 오히려 괴물 같이 생긴 얼굴(놈)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느냐 > 는 질문에는 < 인간의 탈을 썼기 때문에 가능하다 > 는 답변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모든 패륜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범죄'다.

익숙한 얼굴,                다시 말해서 멀쩡한 얼굴은 항상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경계'다. 믿음이 선을 넘으면 맹신이 되고, 맹신이 과도하게 되면 파시즘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평범한 얼굴은 믿을 것이 못된다.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은 얼굴이다.  파리는 죽은 사체의 눈, 귀, 입, 귓구멍 속으로 들어가 구더기를 낳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얼굴은 구멍의 총합이다.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은 설익은 얼굴이다 ■





​                                          


1) 누가 봐도 어버이연합 게이트라는 대형 이슈를 덮기 위한 이벤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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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바.보 #47 - 내가 화가로 보이니?
    from 冊性愛子 2016-05-11 17:31 
    가면이 가지는 의미는 긍정적 요소보다 부정적 요소가 많다.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이 주장했듯이,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성격만을 일관되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상황에서 다른 역할을 연기한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을 대할 때, 일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여 ‘cyrus’가 되어 회원의 글을 읽을 때 각각 다른 사회적 가면을 사용한다. 만약 이 가면들을 모두 강제로 벗겨버린다면, 남는 것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방어능력을
 
 
cyrus 2016-05-1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먼저 부패하는 곳이 얼굴, 그리고 인간의 탈. 곰발님의 글을 읽으니까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이 생각났어요. 자세한 감상은 따로 먼댓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저에게 영감을 주는 글, 참 좋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0 21:23   좋아요 0 | URL
dk, dkd아, 앙소르 그림 인상 깊게 본 1인입니다. 맞아요. 이 글에 알맞은이미지는 앙소리 그림인 것 같습니다. 먼댓글 남기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정독하겠습니다..

5DOKU 2016-05-1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면 너무 무섭게 봤던 기억이 나는데
무심코 스크롤 내리다가 심장 떨어질 뻔 했네요. ㅎㅎ
<행복한 책읽기>를 읽어봐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1 17:23   좋아요 0 | URL
행책은 왠지 구판 디자인으로 읽어야 제맛인 것 같습니다.
새판 나왔던데 영 책 디자인이 마음에 안들더군요.. 행책은 구판이 정답입니다..


글구.... 저 장면, 저도 진짜 깜놀했습니다. 정말 꿈속에서 막 뭐라 하는데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귀신을 꾼 적이 있거든요...

yamoo 2016-05-11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영화 <기담>은 못봤지만, 귀신 사진은 정말 섬뜩하군요! 정말 <기담>을 보면 무시무시 할 거 같습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9   좋아요 0 | URL
이 장면만 무섭습니다.. ㅎㅎ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만한 공포영화였습니다. 한번 보세요...

채송 2016-05-1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에 대한 해부학적(정신이든 육체든)글이 인간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7 13:56   좋아요 0 | URL
해부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능력이 열등합니다. 머리만 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