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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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  물어뜯는다고 ?!

 

 

 

family plot  우리가 남이가 ?

 

​ㅡ 스포일러 有



                                                                                                         사랑 영화는  집구석을 벗어나야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간다.  꽃 피면 꽃 핀다고 만나고 꽃 지면 꽃 진다고 만나는 게 연애질이니,  콧잔등에 꽃가루 살짝 얹어 줘야 ~    명색이 로맨스'라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밖으로 " 싸돌아댕기는 것 " 은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공포 영화집구석에 갇혀야 이야기가 제대로 굴러가는 장르'이다.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 장소 > 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벗어나는 데 애를 먹는다.   심성 착한 나뭇꾼이 귀신 들린 산골을 벗어나려 하지만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한 공포 특급 서사'가 아니었던가.  이처럼 출발점과 도착점이 일치할 때 공포는 발생하게 된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로브 라이너 감독이 영화로 만든  << 미저리 >> 가 좋은 예'다.  이 영화에서 공포의 주체는 미치광이 host(집주인)이다.  인기 작가 폴 쉘던'은 미치광이 host에 의해 hostage(인질)가 되는데,   그가 hostage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미치광이 간호사(host)에게서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 

< 그 > 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눈을 뜨면 항상 침대'에 갇혀 있다.  즉,  이 영화는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벗어나려는 남자의 수난극인 셈이다.   애니 월크스의 직업이 전직 간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 원작자인 킹은 단어 host : 주인'과  hostel : 쉼터'와  hospital : 병원'이 모두 한 뿌리(어원)'에서 파생된 낱말이라는 사실을 적극 활용한 것 같다.  편혜영 장편소설 << 홀 >> 도  이 공식에 충실한 소설이다.      교통사고로 차에 동승한 아내를 잃은 남자(나이 사십, 그는 정년이 보장된 대학교수'다)는 전신마비 신세가 되어 자신이 살던 집에 갇히게 된다. 그의 간병을 자처한 사람은 장모'다. 처음에는  불행하지만 평범한 가족 서사'처럼 보인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내를 잃고 홀홀단신이 된 남자(사위)와 딸을 잃고 홀홀단신이 된 여자(장모)는 동병상련.    하지만 가족 서사에 균열이 생기면서 둘의 관계는 이상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장모는 병문안을 온 사위의 대학 동료 앞에서 보랏듯이 사위의 아랫도리를 벗겨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닦는다.    부끄러워 말게나. 우리가 어디 남인가.  작가가 독자에게 흘린 정보에 의하면 남자는 교통사고 직전에  아내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었고,  장모는 사위를 간병하던 중에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더군다나 남자는 동료뿐만 아니라 어린 제자와도 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행복했을 것이라 믿었던 딸의 불행.  장모는 언제부터인가 사위에게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소설은 이 지점을 변곡점 삼아 동일자라 여겼던 장모를 낯선 타자로 변형시키고,  장모 또한 사위를 가족이 아닌  타자로 설정한다.  문학평론가 故 김현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988년 7월 17일의 일기, 김현, <행복한 책읽기> 中)

 


불구가 된 남자가 장모에게 느끼는 공포'도 이와 유사하다.    가족이라 믿었던 장모2)는 어느 순간 낯선 타자로 돌변한다.               그 순간,   장모의 간병 행위는 < 간호 > 인지 간호를 빙자한 < 방치 > 인지가 애매모호하다.  이 모호성이 극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만든다.  " 내가......    자네 장모로 보이나 ? "     장모는 죽은 딸이 머물던 곳에서 생활하며,  죽은 딸이 입던 옷을 입고, 죽기 전에 딸이 정성스레 가꾸었던 정원을 손질한다.  남자는 장모의 모습에서 얼핏 설핏  죽은 아내를 겹쳐 읽는다.  상황이 급변하자 안전한 집은 죽음의 집으로 변한다.  남자는 탈출을 결심하지만 아시다시피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퇴행적 존재로 장모가 튜브로 음식을 넣어주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다. 

즉, 이 의료용 튜브는 탯줄(생명줄)인 셈이다.    또한 타운하우스'는 거대한 자궁에 대한 은유'로 작동한다.  << 홀(구멍), hole >> 이라는 소설 제목이 그 사실을 견고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지배하는 그로테스크한 정서는 " 모성적 남근 " 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그는 자신의 탯줄이 무시무시한 바기나 덴타타3)에게  물어뜯길까 봐 겁을 내는 꼬마 한스에 가깝다.  가 살 수 있는 길은  이 집을 벗어나는 일'이다.   과연,  그는 벗어날 수 있을까 ?    소설 << 홀 hole >> 은 << 미저리 >> 의 설정을 그대로 빌려 와  " 우라까이 " 했지만  크게 흠 잡을 만한 곳은 없다.  압축된 문장은 밀도가 높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다만,  지나치게 우아하다.

내가 편혜영(소설들)의 우아한 문체에 반감을 가지는 이유는 절실함에 대한 결여'에 있다. 반복하지만 편혜영은 지나치게 우아하고 과도하게 고상하다(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 선데이서울 > 을 < 킨포크 > 스타일로 " 우라까이 " 할 때 느끼게 되는 엇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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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풀과 같다(1988년 7월 17일의 일기, 김현, <행복한 책읽기> 中)

2)  가족 이데올로기는 명백하다.  우리가 남이가 ?

3) 바기나 덴타타  :  이빨 달린 여성 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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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우아하다굽쇼? 그럼 이건 내꽌데...ㅋ
편혜영을 읽어 본적이 없는데 함 읽어보고 싶긴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1 19:22   좋아요 0 | URL
그로테스크하지만 우아합니다. 전 그게 편혜영의 단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작품을 좀 피비린내가 나야지 제맛이죠..ㅎㅎ 재미있어요. 편혜영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며 난해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서사가 좀 두리뭉실했거든요..

yamoo 2016-05-1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혜영의 소설이 읽은 만하다는 소문은 계속 듣고 있습니다만...한국 소설들에는 거의 손이 가지 않아요..세계문학만 하더라도 읽기 벅차요. 그냥 줄줄이 대기작들이 넘쳐납니다. 요즘 슈니츨러 작품들과 한트케 작품 땜시 다른 소설은 읽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편혜영 <홀>에 대한 곰발님의 고견 잘 봤습니다. 일단 중고서점에 편혜영 저작들은 컬렉션 해 두어야 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5   좋아요 0 | URL
전 편혜영 소설 별로 안 좋아합니다. 리뷰 당선되면 50만 원 준다기에 책 샀는데 기한을 훌쩍 넘기고 지금에야 읽었네요. 이게 뭔 지랄인지.. 근데, 이 소설 재미있어요.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쫀뜩쫀뜩한 밀당 좋아하거든요... ㅎㅎ

yamoo 2016-05-12 10:4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리뷰 대회를 위한 글이었군요! ㅎㅎ
그런 지럴도 있어야 재미 아닙니까..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10:54   좋아요 0 | URL
마감 지나고 리뷰를 썼으니 해당 사항은 없는 리뷰입니다.. ㅎㅎㅎㅎ. 이 리뷰 쓰기 전에 이미 벌써 당선자 발표가... 이런 지랄도 해야 한국소설도 읽고 그러는 거 아니것습니까..ㅎㅎ

수다맨 2016-05-1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댓글을 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약간은 반감이 들었는데, 왜 반감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곰곰발님이 말씀하신 `지나치게 우아함` 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이런 내용과 소재의 글은 스티븐 킹이나 러브크래프트의 문체로 쓰여야 한결 재미와 박진감이 살아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편혜영의 소설들 중에선 비교적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편혜영은 근래에 오면서 (과거처럼 단순 하드고어의 세계를 그리기보다는) 일상에 잠복된 공포와 불안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듯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는 아닙니다만 이 작가도 갈수록 내공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네요.
역시 짬밥은 허투루 먹는게 아닌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7   좋아요 0 | URL
네에. 조경란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좀 지나치게 고상하다는 느낌. 고상하게 되면 절실함이 보이지 않잖습니까. 편혜영의 잘빠진 그로테스크를 볼 때마다 선데이서울을 킨포크 스타일로 레이아웃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느낌......

아니 왜 이리 격조하셨습니까. 자주 봅시다 ~

peepingtom 2016-05-1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상단에 있는 것은 부제목쯤 되려나요? 소제목? 저는 저 소제목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보기엔 곰님의 정수는 소제목 짓기인 것 같습니다. 크크크. 홀, 뜯어먹겠다고
요거 정말 절묘합니다 크크크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8   좋아요 0 | URL
캬. 저데 나름 소제목에 공을 들입니다. 은근 소제목 짓기가 재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