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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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의 첫 번째 마니아입니다 :  




 



재미없고 멍청한 애들 


 



  

                                                                                                     

 

​                                                                                  내가 좋아하는 청감(聽感)에 대해 말해볼까.   먼저 당부의 말씀.  " 취존1), 알지요 ? "  ( 라이너 릴케라는 이름보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풀-네임의 어감이 더 좋듯이 )

 

찰스 부코스키'라는 표기보다는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표기'가 더 근사하게 들린다.  좀더 귀족적 이미지'랄까 ?  전자가 서유럽풍 이미지라면 후자는 동유럽적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내 귀에 부코스키는 가볍게 들리고 부카우스키는 무겁게 들린다.  " 고딕 " 스럽고 " 고집 " 스러운,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적인, 몰락한,      아......  고성(古城)에서 사는 폐족 같은 느낌.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작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 이야기를 듣고는 찰스 부카우스키를 연상할 때 창백한 드라큘라 백작 이미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열 ~   책날개에 박힌 작가 프로필 사진을 보면 지적인 면모라고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촌스럽기 거지없는 아저씨 얼굴 하나가 뙇. " 누구세여 ? "    

그가 누구냐 하면   :   노동자 정서를 대변하면서 동시에 반(反)노동'을 찬양했고,  문학은 거들 뿐 문학을 핑계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술고래2) 가 되어 반인반어(半人半漁) 를 연기했으며, 승률 좋은 경마광'을 꿈꿨던 이가 바로 찰스 부카우스키 님'이시다.  또한 님포마니아(nymphomania)이면서 예쁜 여자만 보면 두렵다고 고백하는 소심한 남자이기도 했으니 고고하고 도도한 귀족 이미지보다는 미미하고 시시한 뱃놈 이미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내가 < 찰스 부카우스키 월드 > 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문학이 아니라 바벳 슈로더 감독이 연출한 << 술고래, barfly 1987 >> 영화'였다. 부코스키는 이 영화의 각본3)을 썼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찰스 부카우스키의 자전적 요소가 담긴 영화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첫 번째는 이 영화를 볼 당시에는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두 번째는 찰스 부카우스키를 연기한 배우가 미키 루크'라는 데 있었다.  지금이야 망가진 얼굴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가 젊었을 때는 알랑 드롱에 견줄 만한 외모를 자랑하던 배우였다(이 사실을 당신이 알랑가 몰랑).  딱 잘라 말해서,  코미디언 故 이주일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에서 송중기가 이주일 연기를 하는 꼴이다.  << 호밀빵 햄 샌드위치 Ham on Rye, 1982 >> 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 술고래 >> 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소설 후반부(챕터 54 ~ 58)는 핸리 치나스키가 성인이 되어 술집 2층에 있는 숙소를 얻는 에피소드가 영화 내용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는 핸리 치나스키가 술 마시고 싸우고, 술 마시고 싸우고, 술 마시고 싸우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소설은 성인이 된 핸리 치나스키가 어린 꼬마아이와 함께 기계식 권투 오락 게임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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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센트를 더 넣자 파란색 트렁크 팬티가 튀어 올랐다. 아이는 한쪽 방아쇠를 쥐어짜기 시작했고, 빨간색 트렁크 팬티의 오른팔이 펌프질하고 펌프질했다. 나는 파란색 트렁크 팬티를 잠시 동안 뒤에 서 있도록 놔두면서 생각했다. 그런 후에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파란색 트렁크 팬티가 두 팔을 마구 휘두르며 파고들도록 움직였다. 이겨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굉장히 중요한 일 같았다. 그 일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왜 이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 그러자 또 다른 나의 일부가 대답했다. 그냥 중요하니까. 그때 파란색 트렁크 팬티가 다시 주저앉았다. 털썩. 똑같이 철이 쩔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작은 녹색 벨벳 매트 위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있는 내 선수를 보았다

ㅡ 413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불현듯 영화 << 술고래 >> 에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 연기를 해야 했던 미키 루크'가  떠올렸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었지만,  그는 배우 생활을 접고 권투 선수가 된다.   권투 선수로서의 실력은 할리우드 생활'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소설 속 문장처럼 파란색 트렁크 팬티를 입은(혹은 빨간색 팬티 트렁크를 입은)  그는 " 작은 녹색 벨벳 매트 위에 등을 대고 드러누워 있기 " 일쑤였다.       수많은 펀치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하나둘 망가뜨렸다.  그는 점점 미남에서 추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킬에서 하이드가 되어갔던 것이다.  그는 왜 화려한 할리우드 생활을 버리고 권투를 선택했을까 ?   추남이 된 미키 루크 얼굴을 보면 얼핏 설핏 찰스 부카우스키가 엿보인다. 

강고하지만 둥근 어깨,  얽은 얼굴,  굽은 등.  영화 << 레슬러 >> 에서 미키 루크는 별다른 분장 없이도 찰스 부카우스키의 분신처럼 보였다.  피부 곰보였던 젊은날의 핸리 치나스키를 연기했던 그가 늙어서 핸리 치나스키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울컥해지는 대목이다.  찰스 부카우스키는 분신인 핸리 치나스키의 고백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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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가난한 애들과 지질한 애들, 멍청한 애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내 주위에는 강한 애들 대신 약한 애들이, 잘생긴 애들 대신 못생긴 애들이, 승자 대신 패배자들이 꼬였다. 평생 이런 애들을 일행 삼아 여행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인 듯싶었다. 그것 자체는 내가 이런 재미없고 멍청한 애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는 사실만큼 거슬리지 않았다

ㅡ 219

 

이 문장을 읽고 나자, 나는 요실금 환자처럼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며칠 전  내 알라딘 북플에 이런 메시지가 떴었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은 찰스 부코스키의 첫 번째 마니아입니다. "  그렇다,   나는 " 가난하고 지질하며 못생긴, 이런 재미없고 멍청한 애들 " 중 한 명이다 ■ 




​                 

1)    취존 :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

2)    찰스 부카우스키는 고래 연기의 달인이면서 동시에 파리(fly)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파리도 아니면서 파리 연기를 멋들어지게 연기했던 술집죽돌이(barfly)였다.

3)    바벳 슈로더 감독과 찰스 부카우스키의 인연은 바벳 슈로더 감독이 1982년에 << 더 찰스 부코스키 테이프 >> 라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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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6-05-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서 여지껏 구매를 잊고 있었네요. 오늘 곰곰발님께서 리뷰를 써주신 덕택에 이제야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찰스 부코스키는 정말이지 독특하고도 보석 같은 작가입니다. 예전에도 말했던 바지만 그는 어느 글에서건 사실상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합니다. 도박, 섹스, 음주, 반노동, 고독, 자유, 개인 등을 선호하고 역설하는 얘기가 작품 세계의 주종을 이루지요. 부코스키는 어떻게 보자면 동어 반복이 아주 심한 작가인데, 그럼에도 작가와 작품이 조금도 밉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자기 삶과 생각을 이렇게만치 가감 없이, 망설임 없이 글로 옮기는 작가가 흔치 않아서일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6 11:08   좋아요 0 | URL
실증이 안 나는 이유가 핸리 치나스키가 나오는 소설이 일종의 한 편의 소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체국, 패토텀, 여자들, 햄.. 이렇게 4편은 소설 네 편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소설을 4권으로 분리했다고나 할까요. 그가 죽기 전에 완성했다는 장편 소설 펄프`가 출간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표맥(漂麥) 2016-05-1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짜몬 글을 이렇게 찰지게 쓸 수 있을까? (부럽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7 12:26   좋아요 0 | URL
부럽긴요. 허접한 글일 뿐입니다. 허허허허..
(이런 댓글 좋아합니다 ㅎㅎ)

cyrus 2016-05-1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민 교수님의 책에 관한 글을 세 편(서평 두 편)이나 썼는데도 ‘서민 마니아’라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알라딘 시스템은 믿을 게 못 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7 12:27   좋아요 1 | URL
서민 님 인기도에 비하면세 편은 좀 부족합니다.. ㅎㅎ

cyrus 2016-05-17 12:49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가요? 좀 더 분발하겠습니다. ^^

yamoo 2016-05-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코우스키 전집을 꼭 장만해서 곰발 님에게 자랑질하는 페이퍼를 쓰도록 해 보이것습니다요~~ 불끈~!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9 11:22   좋아요 0 | URL
부코우스키 전집이 과연 마련될까요? ㅎㅎㅎㅎ 이 양반 소설보다는 시집이 많을 겝니다..

시시프 2016-05-22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반갑습니다. 저도 부코스키를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barfly에 부코스키가 잠시 출연하기도 했었죠? 부코스키 테입이 바벳 슈로더 감독인 줄은 몰랐는데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팩토텀은 `삶의 가장자리에서`라고 타이틀이 바뀌어 나왔던가요. 삶의 가장자린지 생의 가장자린지 헷갈리긴 합니다만, 맷 딜런이 그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메리사 토메이가 역시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미친 시인의 사랑`은 어떤 책과 내용이 상당히 겹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번역을 잘못한 문장들이 왕왕 보였습니다. 역시 부코스키에 목마른 분들이라면 절판된 책들을 갖고 싶어 찾아나서겠죠? 이번에 민음사에서 그의 시를 출판해줘서 처음으로 그의 시를 읽게 되었네요. 아, 아무튼 부코스키를 사랑하는 분을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길 기대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2 11:59   좋아요 0 | URL
아. 이토록 놀라운 박학다식.... 제 일 마니아는 제가 아니라 시시프 님이신 것 같습니다. 이야,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근데 술고래에서 부코 할베 나오셨나요 ? 옛날에 멋모르고 보아서 나온 줄도 몰랐습니다. 함 찾아봐야겠습니다...이렇게 부코 마니아를 만나니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시시프 님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