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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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두구두구두구




 

       구두 이야기



 

동화 속에서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하여 계급 장벽을 무너뜨린 입지전적인 여성이 되었다.     그녀의 인생 역전 로또는 < 구두 > 였다.  그녀가 무도회장을 떠나면서 남긴 것은 발에서 벗겨진 구두 한 쪽.  왕자님은 방을 붙여 잃어버린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1).  자고이래로 자기 발에 딱 맞는 구두는 찾기 힘든 모양이다.   인생 역전을 위해 수많은 아가씨들이 유리 구두를 신어보지만 크거나 작거나.  뭐, 다들 아시는 동화이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하자.   신데렐라 10자평은 이렇다   :   새 구두는 불편하다.            오늘은 구두에 대한 썰(舌)을 풀어 볼까 한다. 기대하시라.  두구두구두구두구.......   아니,  구두구두구두구두.



읽는 기계,                  다독의 대명사인 독(讀)한 다치바나 다카시 달인이 쓴 <<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라는 책은  제목 그대로 책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보유한 책이 수만 권이니 일일 독서량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터.  책 깨나 읽었다는 사람들이 예외없이 정독을 모범 답안으로 내놓을 때,  독한 다치바나 다카시 선생은 속독을 권유한다.   그가 말하는 독서론은 간단하다. "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으니,  후딱 ~ 읽으셔 ! "   그가 내놓은 << 후딱 읽기 ㅡ 요령 >> 中  하나는 동종 테마의 책을 몰아서 읽는 것이다.  특정 분야를 공부하고 싶으면 우선 가벼운 개설서를 먼저 읽고 나서 바로 입문서를 읽는다. 그리고 나서 그와 관련된 동종 테마의 책들을 연속적으로 읽는다. 그가 이 방법을 권유하는 까닭은 속독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동종 테마(의 책)이니 첫 번째 책보다는 두 번째 책이 읽기에 수월하고,  세 번째 책보다는 네 번째 책이 읽기에 수월하다. 내용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동종 지식이 축적되다 보면 속독이 가능하게 된다. 경기를 펼칠수록 더욱 강해지는 인공지능 알파고 시스템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를 읽고 나서 프로이트를 읽는 것보다는 마르크스를 읽고 나서 알뛰세르를 읽거나 프로이트를 읽고 나서 바로 라캉을 읽는 것이 속독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 입문서 한 권을 정독하기보다는 입문서 다섯 권을 가볍게 읽어치우는 편이 낫습니다2) "   쉽게 말해서 이 분야 저 분야 두서없이 읽지 말고  한 분야'에 몰빵하라는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이런 분이야.   


< 몰빵 > 이라는 속된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 몰빵 " 하면 한 몰빵 했던 사람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 그것 " 만 한다.  하지만 몰빵의 미덕이 독서 영역이 아닌 소비 영역으로 뻗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때 " 니트 넥타이 " 에 꽂힌 적이 있어서 니트 넥타이'를 열심히 사서 모은 적이 있다.  안다,   나도 알고 있다.  명품을 모으면 콜랙터(collecter)가 되지만, 싸구려 가품을 모으면 호더(hoarder)가 된다는 것. 그래서 의미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구려 니트 넥타이를 열심히 모았다.  하나둘 모으다 보니 넥타이 공장을 차려도 될 만큼 모았다. 문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실증이 난다는 점이다. 발품 팔아서 모은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날 갑자기 한갓 천조각으로 보이는 거라. 

이깟,   천조각 따위나 모으려고 사나이로 태어났단 말인가 !   희귀 비디오를 모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택까지 가서 웃돈을 주고 사왔던 그  수많은 희귀 비디오 테이프들이 어느 순간 폴리에스테르 플라스틱 쓰레기로 보이는 거라.   열정이 식을 때 내가 선택한 방식은 가혹하게도,  가혹하게도, 아아. 가혹하게도 쥐도새도 모르게 한방에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신경쇠약 직전의 조울증적 소비 습관'이라 할 만하다. 구두도 마찬가지였다.   금강제화 랜드로버에 꽂혀서 랜드로버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한달에 두세 켤레를 산 적도 있다. 그렇게 모으다 보니 1년에 4,50켤레를 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새 구두는 불편하다는 점이다.  새 구두가 50켤레에 육박했지만,   정작 내가 신고 다니는 구두는 뒷굽이 닳을 대로 닳은 낡은 신발이었다. 

단순한 이유.   새 구두는 불편하고 낡은 구두는 편하니까.  새 구두를 신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하는 것은 악몽이니까.  신발과 신발 주인의 관계는 야생마와 카우보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새 신발과 날뛰는 야생마는 길들여야지 편해지는 법.  신발은 뒷굽이 닳아서 보기 싫어질 때 가장 편한 상태가 된다.  애인도 그렇다.  좋은 애인은 낡은 구두와 같다.  내가 사 모았던 50켤레의 구두는 그렇게 방치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구두는 먼지가 쌓이고 공기 접촉으로 인해 가죽이 굳게 되었다.   새 구두는 한번도 신지 않은 채 낡은 구두가 되었으니 신지도 않을 신을 사 모으는 것(가지고 싶다는 욕망)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새 구두이지만 편한 구두는 드물지. 발에 물집이 잡혀야 나중에 편한 구두가 되는 법...... "   

그때 깨달았다  :    ㉠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모으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사실,  ㉡  새 책이지만 읽지 않은 책은 낡은 책이라는 사실,  ㉢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결국에는 좋은 책이었다는 사실,  ㉣  낡은 구두와 읽은 책과 오래 사귄 애인은 서로 닮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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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딸 2016-05-1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와 구두가 도대체 뭔 상관이냐고 투덜투덜.. 논점 흐리기는 역시 곰곰 님 특기라며 돌아서다가 오래된 애인에서 그만 발목이 콱..
오래된 애인은 좋은 애인이라기 보다는 그냥 낡은 구두같은 사람 아닐까요? 애인이 아니라 그 뭐랄까... 의형제 같은... ㅡ..ㅡ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0:50   좋아요 0 | URL
제가 워낙 짬뽕 스타일이라... ㅎㅎ..
맞습니다. 애인과 낡은 구두는 동일어`죠..


아무래도 전 사기꾼 ㅇ 아니... 삐끼적 운명을 가진 놈인 거 같습니다.. ㅎㅎㅎ 제 글이야 거의 다 삼천포죠..
영양가는 업씀..

비의딸 2016-05-13 11:10   좋아요 0 | URL
영양가가 없었다면 골방에 처박혀있길 좋아하는(알라딘 블로그를 소통의 장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제가 이렇게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안할 것 같은데요. 곰곰 님의 논점 흐리기는 특기이며, 매력이기도 하다고 뒤늦게 말씀 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18   좋아요 0 | URL
이런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 일부러 제가 삼천포 운운한 거죠.. ㅋㅋ
제가 곰 같아도 여우 같은 구석이 있죠... 흐흐....

붉은돼지 2016-05-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글을 읽다가 아아아!!! 문득 생각났습니다.
장농 서랍 안에 혹은 옷장 안쪽 구석에 소복하게 쌓아놓은 비디오테잎들....
뭐 이제는 볼려고 해도 플레이어가 없어서 못봐요..ㅜㅜ
dvd도 곧 그 꼴 날것 같은 예감이...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4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 말이죠. 이제는 뭘 수집하려 해도...
하드웨어가 단종될까 봐 그러지도 못하겠습니다.
누가 비디오테잎이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마 디븨디도 사라질 거입니다...
이젠 수집의 의미가 사라졌어요... 아쉽기도 합니다...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테입이길래 은밀하게 비됴테입을 숨겨노셨슴까?

peepingtom 2016-05-13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야 저 분야 다치바나 다카시 이런 분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임의 황태자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55   좋아요 0 | URL
이 분야 저 분야 다 같은 분이죠.. ㅋㅋㅋㅋ
라임에 살고 라임에 죽습니다... 라임왕이라 불러주십시오.

yureka01 2016-05-1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ㅋㅋㅋㅋ맞습니다..세상에 나온책 나올책 나올 예정인 책..다 못보고 죽습니다.그렇다면 방법은 선택과 집중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선택은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난 분야를 선택하다보면 이게 쌓이다보면 선택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니 빨리 읽을 수 있게 될 것이고...집중도 마찬가지로 파고 드니까 더 빨리 속독되는 이치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57   좋아요 0 | URL
다카시 독서법을 저는선호합니다. 문학이나 철학을 빼면 나머지는 발췌독이 정답인 거 같습니다.
사실... 팔 할은 잔소리고 이 할만이 핵심이잖아요. 쓸데없는 군소리는 건너뛰는 것이 정답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문학과 철학 빼면 나머지 분야는 거의 다 발췌독입니다..

stella.K 2016-05-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능력있는 남자들에겐 조강지처와 조강지첩이 있다더니
님의 글에서 또 한 번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난 또 뭐라구...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4:24   좋아요 0 | URL
저강지첩은 무슨 뜻입ㄴ까 ?

stella.K 2016-05-13 14:55   좋아요 0 | URL
오타입니다. 아시면서...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8:00   좋아요 0 | URL
저강지첩이라길래 내가 모르는 사자성이인 줄 알았습니다..

cyrus 2016-05-1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책을 다 못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속전속결로 읽어야 할 책을 고르고, 후딱 읽어야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7:59   좋아요 0 | URL
도서관 가면 막상 책만 고르다가 읽지도 못하고 돌아오고는 하죠.. 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05-1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씨와 구두이야기는 `여러 구두를 모으기보다 한 구두를 오래 신어라.` 즉 ˝다치바나 다카시씨 처럼 선택과 집중을 해라.˝ 라는 이야기지요ㅎ?

`구두에 익숙해지면 발이 편하다.`는 `한 분야에 익숙해지면 속독이 가능하다.` 라는 비유지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7:59   좋아요 0 | URL
캬 ~ 아니 어쩜 이리 정리를 잘하십니까..
정리의 달인이십니다.. ㅋㅋㅋㅋㅋ.
마자요. 고겁니다.. 고거예요 ~

수다맨 2016-05-1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나 금정연 같은 서평가들이 도달할 수 있는 극점은 아무래도 다치바나 다카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전자는 성실하고 착한(!) 리뷰어 정도에 만족하는 듯 보이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4 12:40   좋아요 0 | URL
다카시 이 양반, 의외로 시니컬합니다.. 독설가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득 조지 오웰 생각나는군요.
직업으로써의 서평가는 지겹다고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