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고애고(ego-ego) :



哭聲

:   哭婢(곡비))의 애곡(哀哭(애곡))이 온 밤 내내 구슬픈 물굽이를 이루며 집안을 젖게 하더니 날이 어슴푸레 새면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ㅡ 혼불, 최명희

 


                                                                                                       

옛날에는 곡비(哭婢)라는 직업군이 존재했다고 한다. 곡(哭)을 하는 노비(婢)라는 뜻이다. 상례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영전 앞에서 " 애고애고 ~ " 라고 우는 사람인데,  양반이 눈물 콧물 쏟아내며 통곡한다는 게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 양반 상주가 상례 때 곡성(哭聲)이 끊어지지 않도록 품삯을 주고 고용했다고 한다.  양반들은 돈을 주고 곡비를 사고 곡비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 앞에서 목놓아 운다.  가장 슬프게 우는 노비'가 품삯도 당연히 높다.  소리를 구슬프게 낼 줄 아는 곡비는 이 마을 저 마을 출장을 다닌다고.  양반 입장에서 보면 곡이 끊이지 않아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소리내어 우는 게 일(직업)이라서 흥미롭게 생각하며 한자 곡(哭)를 보다가 < 곡비 > 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口 가 두 개'가 되면 吅 : 부르짖을 훤'이 된다. 입(口)이 두 개인 이유는 강조를 위한 표현 방식이다. 평소 발성보다 두 배 크게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 吅 밑에는 犬(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양반의 영전에 엎드려 개처럼 울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감정 소비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울면 허기가 지는 < 것 > 도 哭-행위가 정신 노동이자 육체 노동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 씨발놈들,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석에 앉은 놈들은 힘들고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은 모두 아랫것들에게 시키는구나. " < 울다 > 는 동사가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감정이라면 < 웃다 > 는 동사 또한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감정적 결과'다. 실제로 << 웃음 - 다이어트 >> 가 존재한다1). 문득, 곡비(哭婢)와 광대(pierrot)는 정반대에 위치한 직업군이 아니라 동일한 직업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개처럼 울어야 하는 것이 고된 일이듯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웃어야 하는 일도 고된 일이라는. 찰리 채플린이라는 광대를 볼 때마다 곡비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 라임라이트 >> 에서 광대 분장을 지운 찰리 채플린의 웃음기 없는 얼굴을 보았을 때, 그때 느끼게 되는 연민(의 감정)은 < 울다 > 와 < 웃다 > 가 한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혹은, 사소한 차이. < 울-> 과 < 웃-> 은 리을(ㄹ)이냐 시옷(ㅅ)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곡(曲)을 돈 주고 사는 것은 봤어도, 곡(哭)을 돈 주고 사는 문화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 같다. 곡성을 거래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처럼 재난(혹은 장례) 앞에서 목 놓아 우는 나라는 흔치 않다. 눈물이 많다는 것을 정(情)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진정한 슬픔과 애도가 곡(哭)의 데시벨 수치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오히려 재난 앞에서 우리가 목 놓아 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난을 극복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사회적 보험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 복지 선진국처럼 개인의 불행을 국가가 적극 나서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었다면 가라앉은 배를 보며, 불 타 없어진 체육관을 보며, 홍수로 떠내려간 집터에 털썩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보험 설계사'가 재난 이후의 삶을 설계해 줄 테니깐 말이다. 눈물은 기본적으로 자기연민'이다. 그 옛날 곡비는 일면식도 없는 양반의 영전 앞에서 목 놓아 울었지만 사실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곡성이었을 것이다.

귀곡성(鬼哭聲)의 본질은 억울하게 죽은 자'가 산 사람에게 하소연하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산 자는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불통은 귀곡성으로 귀결된다.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처럼 짐승처럼 울어야 쌀 한 줌 얻을 수 있는 사회와 짐승처럼 울어야 억울한 자에게 비로소 관심을 보이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

 
 

 




​                            

1)    sbs 방송국과 비만 클리닉 김형준 웃음치료사가 공동으로 10명의 주부를 선정하여 각각 대조군 5명과 실험군 5명으로 나누어 < 주 1회 8주 웃음 다이어트 > 를 실험군에게만 적용한 결과 대조군에 비해 3kg의 감량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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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9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15:07   좋아요 0 | URL
결혼 문화도 싹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냥 가족 몇몇 모여서 치르면 될 것을..
이건 사돈에 팔촌에 이웃집 이웃과 직장 동료들... 미친 짓 같습니다..

경조사비 내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큰 달도 있습니다.

stella.K 2016-05-2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곡성이 곡비에 관한 내용인가요?
그 영화가 곰발님께 굉장한 인상을 남겼나 봅니다.
이렇게 몇번에 걸쳐 글을 쓰시는 걸 보면...

그러고 보니 예전에 육 여사가 돌아갔을 때 일주일 내내 TV 정규 방송을 끊고
그 양반 추모 방송을 내 보낸 적이 있었죠.
그땐 국가장을 치르려면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슴다.
하지만 그후 어떤 국가적 인물이 돌아가도 그 정도로는 하지 않았거든요. (박정희 때 했나...?)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그때 박정희가 국민을 아예 곡비로 만들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15:49   좋아요 0 | URL
돈을 투자했으니 글감을 뽑아야지요. ㅎㅎㅎ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그냥 국가가 아니라 조선시대처럼 군주국가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니 그 딸이 오늘날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5-2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리뷰인 줄 알고 들어왔지만, 더 큰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재해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소리높여 우는 문화가 재난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20:53   좋아요 0 | URL
늘 궁금했던 게 집 떠내려가면 한국 사람은 땅바닥에 드러우워 통곡하는데 왜 똑같은 상황인데도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 ? 답은 하나더라고요. 한국인은 모든 것 본인이 해결해야 됩니다. 그 차이였던 거죠.. 대안이 없는 사회가 통곡을 만드는 것이지 한국인이 특별히 통곡을 잘하는 민족은 아니라는 거.....

푸른희망 2016-05-3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치네요....
전 때때로 곡비처럼 목놓아 울고 싶을 때가 가끔 있어요.. 이건 뭘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31 11:49   좋아요 0 | URL
그만큼 한국 여성이 쌓인 게 많다는 증거일 겁니다.
 

 

 



                                                   

영화 곡성에 대한 생각(스포일러 없음)

 

 


 



 

" 뭣이 중2인줄도 모름서...... " 1)


                                                                                                                                                                                                                                  


​                                                                                        트로트 장르는 모두 대동소이하다.  신곡이지만 왠지 원곡을 리메이크한 것 같은 멜로디.   그래서 한 번만 들어도 반주 없이 대충 따라 부를 수 있다.  " 이 노래가 그 노래 " 같다면 노래 A는 노래 B를 표절한 것일까 ?  트로트 노래끼리 표절 시비가 일어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표절은 아닌 것 같다.  가족끼리 왜 이래. 뭐, 이런 느낌. 그 노래가 그 노래 같다는 지적,   즉 익숙한 리듬은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학습 효과로 인해서 친숙한 음악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장르 영화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는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다른 등장 인물을 집요하게 설명하려 한다.  " 우리의 김여사는 올해 34살로 성격이 반사회적이기는 하나 맡은 바 임무에 있어서는 집요하리만큼 프로페셔널적이지. 하하하.... "    이런 대사를 날리는 영화가 있다면 십중팔구 형편없는 영화'다. 그런데 대사가 아닌 비언어적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캐릭터의 성격을 관객에게 설명한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니다. 전자가 관객에게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트로트 멜로디'라면 후자는 퓨전 재즈'와 같다. 관객은 비언어적 메시지'를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장르 영화는 이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다.  느와르 장르를 예로 들자면 김여사에게 챙 넓은 모자, 새빨간 킬힐, 고급 담뱃갑 케이스 따위를 정성스레 마련하면 끄읏.   여기에 김여사가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연기를 괄약근으로 내품겠다는 듯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면 금상첨화요, 늘씬한 다리를 꼬며 영화 << 마더 >> 에서 말하는 허벅지 안쪽의 통점을 관객에게 보여주면 화룡점정.   관객은 김여사'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팜므파탈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관객은 알고 있다. 그녀가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나 달라. 위스키와 담배로 숙성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느와르 장르 - 코드'를 이미 학습한 결과'다.  마치, 한 번만 들어도 악보 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트로트의 멜로디처럼 말이다.

그렇다 보니 감독은 등장 인물을 소개하느라 필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긍께, 김여사는 팜므파탈입니다잉 ~   김여사가 우리의 홍박사를 함정에 빠트립니다. 아시것죠 ?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잉.  뻔한 코드 진행 방식이지만 그 진행 방식이 뻔하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은 없다.    그것이 < 장르의 힘 > 이다. 그렇다고 클래식한 코드 진행 방식을 무작정 고집하면 좋은 장르 영화가 될 수 없다. 양복은 일정한 양식을 갖춘 클래식한 드레스 코드이지만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형을 주듯이,  장르 영화도 시대에 따라 변주를 한다.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클래식 코드를 기본으로 하되 그 기본 코드를 뒤틀려고 한다. 양복 디자이너'가 양복 단추 갯수로 장난을 치듯.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 곡성 >> 을 높게 평가하는 지점은 장르 - 비틀기'에 있다.  나홍진 감독은 미스테리 수사물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본 클리쉐들을 변주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컬트 장르를 수사물 장르'처럼 변주했다.  그러다 보니 수사물 장르'라 믿었던 관객에게는 배, 배배배배배신처럼 보이는 것이다.  현정화라 믿었는데 임춘애일 때 느끼게 되는 박탈감.  박근혜가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참 나쁜 영화. 지금 곡성은요 ?2) " 

이 영화를 인상 비평하자면  :  " 상의는 경찰복인데 하의는 체육복인, 모자는 경찰모인데 신발은 나막신을 신은,  애매모호하지만 혼용의 쾌감이 돋보이는 영화 " 라고 정리하고 싶다.  리얼리즘 계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관객을 속이는 일은 불경에 속하지만 장르 영화(미스테리/스릴러 따위)를 만드는 감독이 관객을 속이는 일은 성경에 속한다. 나도 속고 관객도 속았다면 결국에는 감독이 이긴 것이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를 보면서 " 영혼이 탈탈 털리는 " 경험을 했다는 점은 의아하다, 탈수기도 아니고. 장점만큼 단점도 확실한 영화'다. 영화 말미에 종구가 내뱉은 대사는 지나치게 통속적 가족 서사의 결말 같아서 닭살이 돋는다.

사족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는 녹음 기술'이다.  한국어 자체의 문제인지 기술적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대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볼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 속 효진이 " 뭐이 중허냐고 ? " 라는 대사는 내 귀에는 " 뭐가 중2냐고 ? " 로 들렸다.  뒤늦게 이 아저씨가 너의 물음에 답한다. 중2(병)이 뭐냐면......







​                                        


1)    " 뭐이 중허냐고 " ,   극중 효진의 대사.  한국 영화의 기술적 문제가 뭐냐고 물으면 녹음 기술이라고 대답하겠다. 그게 뭐이 중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2)     그 유명한 박근혜 어록 < 지금 대전은요? > 의 패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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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 2016-05-28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 뭐가 중2냐고? .... 대한민국 다 족구하라 구래! 2탄이로군요.
넘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국어 더빙 음질 문제는 저도 늘 통감합니다. 극장에서도 그렇고 VOD나 DVD로 볼 땐 더 심각한 듯..
정말 기술 탓인지 한국말 탓인지. 따로 밑에 한국어 자막 넣어줬으면 싶을 때가 다 있다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8 13:41   좋아요 0 | URL
속삭여도 잘 안들려. 고함쳐도 잘 안 들려... 볼륨을 높여도 잘 안 들려..
정말 녹음 기술이 낙후되어서 그런 거지.. 아니면 한국어가 생래적으로 불선명한 것지 궁금합니디ㅏ..

한국 영화 볼 때마다 느끼게 되는 의문입니다..

나와같다면 2016-05-28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성 보고왔어요.. 퍼즐 맞추는 중
전 영화가 끝나고서야 비로서 생각이 시작되는 영화.. 좋아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12:53   좋아요 1 | URL
곡성에 대한 페이퍼 좀 부탁합니다..
 

 

 

 

 

 

 



영화 곡성에 대한 잡소리 ( 스포일러 전무 )

 

 




 

 

 


                                                                    대한민국에 유입된 20세기 히트 상품 中 하나는 " 프로(페셔널) 정신" 이다.  < 프로 > 라는 상품이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물꼬를 든 계기는 < 한국 프로야구 > 의 출범이었다. 프로야구 선수가 실수를 하게 되면 해설자는 항상 똑같은 지적을 하고는 했다. 아, 프로답지 않은 플레입니다. 프로라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 아마(츄어) > 였다. 아마츄어 정신을 10자평으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 " 괜찮여어 ↗ (사람이니께 실수도 하고 그러는겨). "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세계가 바로 아마의 세계였고, 아마츄어 사회였다.

하지만 프로'가 한국 사회에서 빠르게 정착되면서 아마추어 정신은 구시대 정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프로 정신을 10자평으로 요약하자면 : "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 한때, 이 말은 " 실땅님1) " 이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으로 등장한 이후, 실땅님이 아랫것들에게 자주 내뱉은 대사'였다. 그때부터 한국인은 원하는 < 결과(실적) > 를 얻기 위해서는 인정사정없이 채찍으로 < 과정 > 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프로야구 한화 프로야구팀을 보고 있으면 프로 정신이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다.

타 구단들이 10월 가을 야구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화는 4월 봄'부터 <<  나홀로 한국시리즈 >> 를 펼치고 있으니 봄부터 독수리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김성근의 근성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매 경기 불펜 필승조가 투입된다. 결과는 ?  정말로 내일이 없는 팀이 되어버렸다. 그 어느 팀보다도 프로다운 근성으로 싸웠지만 결과는 리그 전체 꼴찌'다. 반면,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서 오늘의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고 내일을 위해 신인을 발굴하고 팀을 " 리빌딩 " 한 구단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 오늘에 집착하고 않고 내일을 위해 신인을 발굴하고 팀을 재정비한 구단이 지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김성근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체계적인 과정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펑고 신화는 허구다.  << 곡성 >> 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들이 떠돈다. 폭군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전작들을 함께 한 배우와 스텝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소리이기도 했다. 깊은 산골짜기짜기짜기~  골짜기에서도 크레인-샷'이 동원된 것을 보면 영화 노동자들에 겪었을 노동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무거운 장비를 들고 산을 올랐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홍진은 < 완벽 > 에 집착하는 감독이다.

예술가라면 갖추어야 할 욕심이기는 하나 한국 영화판만큼 스탭의 노동 환경이 엉망인 곳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감독의 갑질이 보인다. 영화 << 곡성 >> 을 20세기폭스코리아가 투자 배급한 것을 두고 할리우드 진출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나홍진은 << 곡성 >> 의 성공을 발판삼아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그는 할리우드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한국과 미국의 영화판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충무로처럼 감독과 스탭이 주종 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 스탭은 노동법에 의해 근로 환경이 정해지며 자체적으로 노조가 형성되어서 노동자 권익을 보호받는다. 어쩌면 나홍진이 영화 현장에서 갖는 장악력은 감독의 지휘력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횡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감독이라면 무조건 스탭들의 열정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다그치기 전에 그들이 처한 노동 환경에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김성근 감독과 나홍진 감독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                              


1)    최지우는 항상 실장님을 실땅님으로 발음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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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7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5-27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저 곡성 감독이 그런 스타일이란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타입인데...
이 영화가 언론에서도 잘 됐다고 난리라서, 이걸 봐줘야 하나 고민 중에 있습니다.
곰발님의 감독 평을 보니, 갑자기 보기 싫어지네요..

아~~~~ 이걸 어쩐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7 14:48   좋아요 0 | URL
곡성 제작팀이 공고를 낸 적 있습니다.

스탭을 모집합니다. 조낸 힘드니 각오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이런 모집 공고를 냈죠. 촬영 도중 힘들어서
스탭이 다 도망갔다고....


황해였던가? 그 영화에 스탭으로 참여한 사람이 남긴 글이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황해 망해라.. 이런 논조였던 걸 얼핏 본 것 같기도 합니다.
(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만 아마황해스탭이었던 것으로 희미하게 기억)

stella.K 2016-05-2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나홍진이 이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런 말을 들었다면
누가 그와 일을하고 싶어할지 모르겠네요.
오늘 뉴스 보니 500만 넘었다고 하던데 그 정도라면 얼추 허리우드를 노려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허리우드 욕해도 그런 시스템은 확실히 우리가 쫓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본에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니라 좋은 시스템에서 나오는 거겠죠.

감독의 갑질이라고 하시니 예전에 저 제작자겸 연출가한테 당한 게 생각나네요.
그 인간도 얼마나 갑질을 해 대던지 하긴 그 사람은 멘탈에 문제가 많긴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7 14:50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에게 갑질한 감독 누굽니까 ? 저에게 귀뜸을....




나홍진 헐리우드 진출 하기 위해 20세기폭스사가 투자 배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는 정말 떼깔 좋게 만들었습니다.
확실히 나홍진은 재능 충만한 감독임은 분명입니다...


하지만.... 이동진의 극단적 칭찬은 의아합니다.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확실히 보입니다...

stella.K 2016-05-27 15:31   좋아요 0 | URL
말씀 드려도 모르실텐데요 뭐.
암튼 그런 사람 있었어요.
완전 자신이 무슨 하나님 다음 가는 사람마냥.
한마디로 혐오였죠.
그런데 이 사람 가지고 소설을 쓰고 싶어 안달난 적이 있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사람 가지고는 안 나오잖아요.ㅋㅋ
 

 

 

 

                         

 

고성에서 왔시요 :

 

 

 

 

 

 


고성에서 온 남자  

 

 

 


ㅡ  스포일러 有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관객 절반은 < 욕 > 을 하고 나오는 것 같다.  두 시간 반 동안 목 졸린 느낌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닌 것 같긴 한데 왠지 속았다는 느낌이거나, 괄약근의 신호가 당신을 화장실로 호명했으나 헛방귀만 뀌게 될 때 느끼는 허탈감이거나,

< 매운 닭발 >  뜯고 싶어 들어갔다가 < 우롱차 한 잔 > 만 마시고 나온 듯한 밍밍한 기분. 그런 느낌.   " 이게 말이 돼 ? "  상당수 관객들은 < 스릴러 장르 > 인 줄 알았는데  < 오컬트 ㅡ 흡혈 - 좀비 장르 > 여서 당황한 것 같다. 관객들은 대부분 장르를 숙지한 후 영화를 관람하기 마련인데 영화사는 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제공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숨겼다)에 모를 수밖에 없었다.  두 영역의 차이는 분명하다. 스릴러는 어느 정도 현실성(사실성)에 바탕을 두지만 오컬트, 흡혈, 좀비 장르는 상상력(비현실성/비사실성)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대다수 관객들이 실망한 지점에서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는 하위 장르 요소'를 적절하게 배분했다는 데 있다.

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정보 공개에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영화에서는 장르 규정이 곧 스포일러'이니까.  관객들이 이 영화를 스릴러'라고 철썩같인 믿는 < 데 > 에는  오컬트 - 흡혈 - 좀비 장르가 한국 영화에서는 생소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는 틈틈이 이 영화가 유사 - 좀비물일수도,  유사 - 오컬트일수도,  유사 - 흡혈귀 영화일수도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1) 관객은 끝끝내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국 영화로서는 낯선 장르'이기에 그렇다.  나홍진 감독이 영리한 점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는 데 있다. 영화 << 곡성 >> 은 사실성에 바탕을 둔 영화라기보다는 장르적 상상에 충실한 영화로 장르를 혼용하는 기술이 탁월하고 관객을 속이는 능변이 현란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내놓은 것이 관객을 상대로 감독이 사기를 쳤다는 말인데 이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나홍진 감독이 관객을 속인 부분은 서술 트릭이 아니라 장르 트릭'이었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관객을 가지고 놀면 안되지만,  오컬트, 흡혈, 좀비 장르를 만드는 감독은 관객을 손바닥 안에 놓고 가지고 놀지 못하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장르 관객들의 성적 취향은 감독이 자신들을 희롱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조히스트 성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 쎄에에에게 " 맞을 수록 장르 영화 관객들은 고추선(곧추선)다.  야메떼 구다사이.

이런 말을 하면 돌을 던지겠지만               :               영화 << 곡성 >> 은 " 드라큘라 - 서사 " 를 각색한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트란실바니아의 고성(古城)에서 온 블라드 백작처럼 보인다. 드라큘라 서사를 작동시키는 첫 번째 설정은 외부인(外部人)의 유입'이고,  두 번째 설정은 내부인(內部人)이 힘이 모아 외부인을 물리친다는 점이다.  드라큘라 서사는 " 타지인에 대한 내지인의 공포 " 를 다루면서 동시에 " 타지인에 대한 내지인의 폭력 " 을 다룬다.  공포와 폭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된다.  영화 << 곡성 >> 은 이 설정에 충실하다.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타지인은 트란실베니아 고성(古城)에서 영국으로 유입된 드라큘라 백작'이다.

그 또한 드라큘라 백작처럼 흉흉한 소문의 당사자'이다.  그뿐이 아니다. 드라큘라는 항상 하수인을 곁에 두는 것이 특징(하수인이 없다면 드라큘라 백작이라 할 수 없다. 대표적 인물이 렌필드'다)인데 황정민은 쿠니무라 준의 충실한 하수인이자 도플갱어처럼 보이고,  영화에서는 박쥐 대신 까마귀가 역할을 수행한다. 까마귀의 출현은 드라큘라인 쿠니무라 준이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메시지'다.  " 무식한 촌놈들, 그러다가 피똥 싼다 ! "     또한 황정민이 쇠말뚝을 박는 장면은 얼마나 드라큘라적인가 !   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외딴 고성의 은둔자,  블라드 백작이 전라도 곡성 움막에서 살아갈 줄이야.  나홍진'은 포도주, 치즈, 파슬리, 아티쵸크, 발사믹드레싱 따위의 생경한 서양 식재료로 먹음직스러운 한정식을 만들 줄 아는 감독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드라큘라, 흡혈귀, 좀비 따위는 생경스러운 식재료'였다.  몇몇 영화에서 차용하기는 했으나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 캐릭터여서 대부분 실패했다. 동양을 지배하는 악귀는 귀신'이다. 귀신은 말이 없고 움직임도 없다(귀신이 제일 무서울 때는 말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때이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보기에 드라큘라, 흡혈귀, 좀비의 동선은 ADHD 환자'처럼 보인다. 한국 영화에서 흡혈귀 영화나 좀비 영화가 실패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생경한 서양 식재료로 한상차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의 연기가 기막히게 좋다. 반대로 황정민과 천우희의 연기가 생각보다 뛰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가 좋은 옥석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나 세공 기술에서 아쉬운 점이 노출되었다. 황정민과 쿠니무라 준의 굿 대결'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트릭(감독과 관객 간 두뇌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감독은 반칙을 사용했다)이나 무명(천우희)의 캐릭터가 선명하지 못하다. 또한 주인공의 어린 딸은 노골적으로 << 엑소시스트 >> 란 12살 리건을 우라까이했다.



​                            

1) 분장 자체만 보더라도 좀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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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26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홍진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하나는 잘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 영화 보고 밤에 불 끄고 잠 못 자겠다는 사람이 제법 있던데,
저는 말만 그러지 무서운 영화 보고 잠만 잘 잡니다.
과연 이 영화가 나의 이런 성향을 뒤집어 줄지 흥미가 가긴 갑니다만 글쎄요...
요즘엔 개봉관 출입이 전무한 상황이라 몇 개월 뒤 영화 전문 채널에서 혹시해 주면
보게될 것 같습니다.

제가 요즘 보는 책에서 그런 말이 있더군요. 우리나라 문학은 퇴폐를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유교권 문화라 그럴 수 밖에 없다고.
그런 것처럼 좀비나 흡혈귀가 나오는 그런 것도 익숙치가 못하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참 시야가 좁죠.

암튼 퇴폐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말에 곰발님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퇴폐미가 느껴지는 단편 소설도 곧잘 올리시더만
왜 요즘엔 상의는 정장, 하의는 캐주얼에 가까운 글만 쓰시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퇴폐도 쓰십시오. 뭐라 안 그럴테니...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6 13:3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댓글 웃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의는 정장 하의는 캐주얼에 가까운 글... 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습니다. 종종 아방가르드하고 아스트랄한 페어퍼를 작성해서 에로틱 번뇌 보이로 되돌아오겠습니다..


아 진짜 저 표현 좋군요...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6 13:36   좋아요 0 | URL
참고로.. 전 이 영화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그냥 낄낄 웃으면서 봤어요.
나홍진 코미디에도 재능이있습니다. 묘하게 웃긴 장면이 많아서 낄낄거리며 보았습니다.

stella.K 2016-05-26 14:03   좋아요 0 | URL
헉, 이렇게도 좋아하실 수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대하겠슴다. 아방가르드하고 아스트랄한 에로틱 번뇌 보이!!!
ㅎㅎㅎㅎㅎ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6-06-1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성>에 드라큘라 서사가 있었군요.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6 14:05   좋아요 0 | URL
저만의 생각입니다. 아무도 드라큘라를 생각하지 않음.. -_- 눙물이..
 

 

 

 

 









잠재적 가해자



                                                           이십대 초입이었으니 오래 전 일'이다. 나는 영화 써클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그렇다고 친목 모임이라고 하기에는  결속력이 단단하지는 않은 모임의 회원이었다.  남성 두 명과 여성 두 명으로 이루어진 구성이었는데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을 핑계로 술을 마시는)을 하는 모임이었다. 그리고는 감상한 영화에 대한 리뷰를 취합하고 각자 맡은 꼭지 글'을 모아서 팜플렛(신문도 아니고 잡지도 아닌 회지라 해 두자)을 발행했다. 이 모든 일은 인쇄소 직원으로 일하는 회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또한 모임 장소를 제공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이 모임의 창립자이자 든든한 스폰서였다.   매달 우편으로 발송되는 팜플렛을 받아보는 재미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다 같이 모여 영화1)를 보는데 평소 활발하고 씩씩했던 여성 회원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면서 모니터를 내동댕이치는 일이 발생했다.  쓰러진 모니터 옆에서 여자는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때 그 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화 속 장면 하나가 그녀가 그토록 지우고 감추려고 했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영화 속 장소가, 공교롭게도 영화 속 악당의 얼굴이, 공교롭게도 영화적 설정이, 공교롭게도. 피해자가 입은 옷이,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녀의 악몽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레짐작으로 알 수는 있었다.  폭력은 공소 시효가 있지만 악몽은 공소 시효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일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모임도 흐지부지 끝났다. 팜플렛은 폐간 소식을 알리지도 못한 채 폐간되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하나의 일이 생각난다. 내 옛 애인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낯선 남자에게 머리를 잡힌 채 따귀를 몇 차례 맞았다.   늦은 밤도 아니었고 으슥한 골목길도 아니었다. 대낮 도서관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옛 연인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마음이 돌아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가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자 나는 나도 모르게 여자의 뺨을 때렸다2). 당혹감. 어쩌면 도서관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여자를 때리는 못난 놈이 나였다는 사실은 괴롭고 힘들었다. 이별을 이유로 여자를 때리는 못난 놈이었으니까. "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해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 " 라는 말은 내 블로그를 자주 왕래했던 사람이라면 이미 익숙한 표현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있어서 남성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모르겠다. 그날 그때,  나는 왜 그 여자의 뺨을 때렸을까 ?  " 남성은 여성 대상 폭력에 있어서 잠재적 가해자 " 라는 프레임 설정이 남성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지만,  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먼 훗날 애인의 뺨을 때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독일 브란트 전 총리가 바르샤바에서 무릎 꿇고 사죄'를 했던 일이 있다.  전쟁 책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죄였다. 하지만 그는 가해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해자가 아니면서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책임을 통감한 것이다.

력은 공소 시효가 있지만 악몽은 공소 시효가 없다는 사실이 뼈 아프게 다가온다.  때린 남자는 쉽게 잊지만 맞은 여자는 쉽게 잊지 못한다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4922.html


 

 

 

​                     

1)    신기하게도 그때 보았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2)      전언에 의하면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이런 데서 빠니깐 좋냐, 쌍년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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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오는이 2016-05-23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처음에는 반감이 들었는데 이 글 읽으니 이제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여자가 담배 핀다고 따귀 때린 놈이 했다는 말을 들으니
어디선가 어느 알라디너가 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난 좋아 쌍년아. 였나?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5:23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헤어지자고 말하면 뺨 때리는 남자를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런 짓을 하고 있더군요.

peepingtom 2016-05-2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팜플렛 아이디어 여기서 착안하신 거군요? 우리도 진행합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5:25   좋아요 0 | URL
이게 되려면 인쇄소에서 일하시는분 한 명 포섭해야 합니다.
그때 그 모임에서 나온 팜플렛은 신문하고 똑같이 나와서 묘하게 재미있었는데... 아 그때 생각나네요..
그분 출판사 하나 차리고 싶다고 해서 출판 편집.. 이런 거 배우고 그랬었는데.. 어쩌면
출판사 하나 차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순간 드네요..

형님 ! 혹시 보시면 쪽지 주십시오. 폐간된 회지 복간합시다.

자주오는이 2016-05-25 06: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방가방가. 곰곰발님 블로그에서 진행되는 논란보면 정말 웃기는 짬뽕 같아요. 킬리만자로 하이에나 같아요. 소름 돋아요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빠니깐 좋냐라고 말한 게 곰님이라는 말인가요 그 도서관 남자라는 말인가요 각주가 잘못 달린 거 같아요. 전에도 그때 일에 대한 글을 쓰신 걸 본 적 있는데 그때 남자가 했던 말이라 기억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5 09:33   좋아요 0 | URL
??!! 아. 각주2가 엉뚱한 곳에 달렸네요. 저 말이 마치 내가 한 말처럼... 아.. 엉뚱한 곳에 각주를 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웃들이 뭐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큰 실수를....

자주오는이 2016-05-25 12: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나중에야 이상한 점을 알았어요. 이상하다 했죠. ^^
해명글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5 13:45   좋아요 0 | URL
시발.. 뭐 업보죠. 쓰레기라고 욕해도 싼 놈입니다. 저는...

yureka01 2016-05-2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말이 기억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5:26   좋아요 0 | URL
네에. 그런 것 같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는 말아야죠..

stella.K 2016-05-2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히 좋아요만 누르고 가려고 했는데
2번 각주가 좇같이 웃겨서 그만...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7:47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격한 댓글.. ㅎㅎ

마립간 2016-05-2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6876&ref=nav_mynews

제 경우 `남성 혐오의 비난의 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래의 `악순환`을 걱정하는 것인데, 글의 내용들이 ... 그래서 해결책이 뭐가 되죠?

`탱고를 춰 주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 하지만 누가 그에게 손을 내밀까요. 특히 여성과 춤을 추기를 원했다면. 이 사건으로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는 상황이 강화되다면, 사회의 연결 고리가 끊어짐으로 만들어지는 제2, 제 3의 살인자들이 나오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7:47   좋아요 0 | URL
태도의 변화( 위에 링크 건 한겨레 기사 읽어보십시오)가 아무런 해결책도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
문제 제기는 반드시 해결책을 전제로 하는 것인가요 ?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마립간 2016-05-23 19:56   좋아요 1 | URL
weekly 님과 이야기했던 것인데,

`메갈리안`이 미러링을 통해 `일베`를 돌아 볼 효과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일베`의 행위의 당위성을 주면서 서로 강화할 가능성도 있죠.

이 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살인자가 될 확률이 극히 낮았던 사람들이고, 그 위험 선상에 있던 사람의 경우라면 당위성이나 논리적면을 떠나 `남성 혐오`로 받아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 제기를 반드시 해결책을 전제로 해야 한다면 제가 쓴 글의 대부분은 소용이 없는 것이죠.

저는 반대로 악순환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20:07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얘기였군요. 제가 엉뚱하게 해석했습니다. 용서를 ...
마립간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마립간 2016-05-23 20:14   좋아요 0 | URL
그 사이에 댓글을 다셨네요. 저는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사건이라고 봅니다.

다른 여초 사이트와 달리 (여초 사이트인) 알라딘 서재가 상대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 이유는 문제의 인식이 없다기보다 해결책 마땅하지 않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20:21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항상 조용했죠. 사실 알라딘도 여초 사이트 비스무리하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하면 확실히 이번 사건에 대한 지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긴 합니다

cyrus 2016-05-2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제일 무서운 사실은 과거에는 ‘난 저 사람처럼 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내가 ‘저 사람’이 되고 있거나 이미 되었을 때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17:46   좋아요 0 | URL
이 댓글 구구절절 와닿는 말이어서 정곡을 찌르네요..

cyrus 2016-05-23 17:49   좋아요 0 | URL
저도 과거의 제 자신을 배신하는 경험을 많이 겪었습니다.

비로그인 2016-05-23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민감한 주제를 끊임없이 마주하시고 글써주시는거 정말 감사합니다. 게다가 커밍아웃하는 용기까지...
동의하지 않는 주제의 글 마저도 생각을 깨워주는 좋은 자양분이 되네요.

peepingtom 2016-05-23 18:09   좋아요 0 | URL
곰님 네이버블로그에서 이 글 썼다고 남성들이 집중공격하고 있습니다. 경찰서 가서 자수하고 피해 보상해야 한다. 제가 곰님에게 남자가 여성을 옹호하는 글을 쓰면 남성들에게 공격 당할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20:05   좋아요 0 | URL
제가 네이버 비로그인 댓글 쓰기 기능을 허용하는 이유는 네이버 블로그가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네이버가 보수적이어서 다음이나 다른 쪽으로 망명한 이웃이 많거든요. 아시겠지만 피핑톰님과 지나가는이 님은 알라딘에 자주 오시는 분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비로그인으로 글을 쓰신 거겠죠. 하여튼 논란이 뜨거워서 비로그인 쓰기 비허용했으니 무명 님께서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명 2016-05-2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해당 댓글은 지웠습니다. 페루애님에게 악의는 절대 없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3 20:12   좋아요 0 | URL
악의 없음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이웃끼리 싸우니 난처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수다맨 2016-05-2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력은 공소 시효가 있지만 악몽은 공소 시효가 없다는 사실이 뼈 아프게 다가온다.˝ 이 문장이 인상 깊습니다.
저번주 스승의날에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가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조만간 정년을 눈앞에 두신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나는 오래전, 박정희/전두환 같은 인간들 치하에서 사는 게 끔찍했다. 물론 내가 경찰에 끌려가거나, 고문을 받거나, 가택수색을 당하거나, 도청을 당한 것은 아니다. 그런 모욕을 당했던 이들은 운동하던 내 친한 친구들이었고, 나는 주어진 일이나 하고 살아가는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이런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나라에서 산다는 게 토악질나게 느껴졌다. 몇 번은 조울증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에 다닌 적도 있다.˝

곰곰발님 말씀처럼 때린 사람들은 쉽게 잊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 이`가 누군가를 때린 이유의 의미(묻지마 살인을 한 범인은 조현증 환자였어, 또는 박정희/전두환은 애시당초 인간 백정이야)를 개인적 범주에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견도 물론 타당합니다만 좀 더 문제를 구조적/사회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어쨌거나 아직도 대한민국은 남근적 질서가 견고한 가부장제 사회, `아버지`가 정점에 위치한 세계에 다름아니라는 것. 여자는 `아버지`가 될 수 없기에 배척을 받으며, 남자는 `아버지` 기준에 미달해서 좌절하는 경우에 그 혐오를 (모순적인 사회 구조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돌린다는 것, 어떻게 보자면 맞아서 악몽을 꾸거나, 맞지 않더라도 악몽을 꾸게끔 만드는 현실이 바로 과거와 오늘의 대한민국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5 13:46   좋아요 0 | URL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십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남자가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순간 남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