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서 왔시요 :
고성에서 온 남자
ㅡ 스포일러 有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관객 절반은 < 욕 > 을 하고 나오는 것 같다. 두 시간 반 동안 목 졸린 느낌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닌 것 같긴 한데 왠지 속았다는 느낌이거나, 괄약근의 신호가 당신을 화장실로 호명했으나 헛방귀만 뀌게 될 때 느끼는 허탈감이거나,
< 매운 닭발 > 뜯고 싶어 들어갔다가 < 우롱차 한 잔 > 만 마시고 나온 듯한 밍밍한 기분. 그런 느낌. " 이게 말이 돼 ? " 상당수 관객들은 < 스릴러 장르 > 인 줄 알았는데 < 오컬트 ㅡ 흡혈 - 좀비 장르 > 여서 당황한 것 같다. 관객들은 대부분 장르를 숙지한 후 영화를 관람하기 마련인데 영화사는 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제공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숨겼다)에 모를 수밖에 없었다. 두 영역의 차이는 분명하다. 스릴러는 어느 정도 현실성(사실성)에 바탕을 두지만 오컬트, 흡혈, 좀비 장르는 상상력(비현실성/비사실성)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대다수 관객들이 실망한 지점에서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는 하위 장르 요소'를 적절하게 배분했다는 데 있다.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정보 공개에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영화에서는 장르 규정이 곧 스포일러'이니까. 관객들이 이 영화를 스릴러'라고 철썩같인 믿는 < 데 > 에는 오컬트 - 흡혈 - 좀비 장르가 한국 영화에서는 생소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는 틈틈이 이 영화가 유사 - 좀비물일수도, 유사 - 오컬트일수도, 유사 - 흡혈귀 영화일수도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1) 관객은 끝끝내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국 영화로서는 낯선 장르'이기에 그렇다. 나홍진 감독이 영리한 점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는 데 있다. 영화 << 곡성 >> 은 사실성에 바탕을 둔 영화라기보다는 장르적 상상에 충실한 영화로 장르를 혼용하는 기술이 탁월하고 관객을 속이는 능변이 현란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내놓은 것이 관객을 상대로 감독이 사기를 쳤다는 말인데 이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나홍진 감독이 관객을 속인 부분은 서술 트릭이 아니라 장르 트릭'이었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관객을 가지고 놀면 안되지만, 오컬트, 흡혈, 좀비 장르를 만드는 감독은 관객을 손바닥 안에 놓고 가지고 놀지 못하면 좋은 감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장르 관객들의 성적 취향은 감독이 자신들을 희롱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조히스트 성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 쎄에에에게 " 맞을 수록 장르 영화 관객들은 고추선(곧추선)다. 야메떼 구다사이.
이런 말을 하면 돌을 던지겠지만 : 영화 << 곡성 >> 은 " 드라큘라 - 서사 " 를 각색한 것처럼 보인다. 내 눈에는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은 트란실바니아의 고성(古城)에서 온 블라드 백작처럼 보인다. 드라큘라 서사를 작동시키는 첫 번째 설정은 외부인(外部人)의 유입'이고, 두 번째 설정은 내부인(內部人)이 힘이 모아 외부인을 물리친다는 점이다. 드라큘라 서사는 " 타지인에 대한 내지인의 공포 " 를 다루면서 동시에 " 타지인에 대한 내지인의 폭력 " 을 다룬다. 공포와 폭력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된다. 영화 << 곡성 >> 은 이 설정에 충실하다.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타지인은 트란실베니아 고성(古城)에서 영국으로 유입된 드라큘라 백작'이다.
그 또한 드라큘라 백작처럼 흉흉한 소문의 당사자'이다. 그뿐이 아니다. 드라큘라는 항상 하수인을 곁에 두는 것이 특징(하수인이 없다면 드라큘라 백작이라 할 수 없다. 대표적 인물이 렌필드'다)인데 황정민은 쿠니무라 준의 충실한 하수인이자 도플갱어처럼 보이고, 영화에서는 박쥐 대신 까마귀가 역할을 수행한다. 까마귀의 출현은 드라큘라인 쿠니무라 준이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메시지'다. " 무식한 촌놈들, 그러다가 피똥 싼다 ! " 또한 황정민이 쇠말뚝을 박는 장면은 얼마나 드라큘라적인가 ! 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외딴 고성의 은둔자, 블라드 백작이 전라도 곡성 움막에서 살아갈 줄이야. 나홍진'은 포도주, 치즈, 파슬리, 아티쵸크, 발사믹드레싱 따위의 생경한 서양 식재료로 먹음직스러운 한정식을 만들 줄 아는 감독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드라큘라, 흡혈귀, 좀비 따위는 생경스러운 식재료'였다. 몇몇 영화에서 차용하기는 했으나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는 캐릭터여서 대부분 실패했다. 동양을 지배하는 악귀는 귀신'이다. 귀신은 말이 없고 움직임도 없다(귀신이 제일 무서울 때는 말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때이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보기에 드라큘라, 흡혈귀, 좀비의 동선은 ADHD 환자'처럼 보인다. 한국 영화에서 흡혈귀 영화나 좀비 영화가 실패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은 생경한 서양 식재료로 한상차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의 연기가 기막히게 좋다. 반대로 황정민과 천우희의 연기가 생각보다 뛰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가 좋은 옥석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나 세공 기술에서 아쉬운 점이 노출되었다. 황정민과 쿠니무라 준의 굿 대결'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는 트릭(감독과 관객 간 두뇌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감독은 반칙을 사용했다)이나 무명(천우희)의 캐릭터가 선명하지 못하다. 또한 주인공의 어린 딸은 노골적으로 << 엑소시스트 >> 란 12살 리건을 우라까이했다.
1) 분장 자체만 보더라도 좀비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