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에 대한 생각(스포일러 없음)
" 뭣이 중2인줄도 모름서...... " 1)
트로트 장르는 모두 대동소이하다. 신곡이지만 왠지 원곡을 리메이크한 것 같은 멜로디. 그래서 한 번만 들어도 반주 없이 대충 따라 부를 수 있다. " 이 노래가 그 노래 " 같다면 노래 A는 노래 B를 표절한 것일까 ? 트로트 노래끼리 표절 시비가 일어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표절은 아닌 것 같다. 가족끼리 왜 이래. 뭐, 이런 느낌. 그 노래가 그 노래 같다는 지적, 즉 익숙한 리듬은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학습 효과로 인해서 친숙한 음악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장르 영화도 마찬가지'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는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다른 등장 인물을 집요하게 설명하려 한다. " 우리의 김여사는 올해 34살로 성격이 반사회적이기는 하나 맡은 바 임무에 있어서는 집요하리만큼 프로페셔널적이지. 하하하.... " 이런 대사를 날리는 영화가 있다면 십중팔구 형편없는 영화'다. 그런데 대사가 아닌 비언어적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캐릭터의 성격을 관객에게 설명한다는 게 쉬운 것이 아니다. 전자가 관객에게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트로트 멜로디'라면 후자는 퓨전 재즈'와 같다. 관객은 비언어적 메시지'를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장르 영화는 이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다. 느와르 장르를 예로 들자면 김여사에게 챙 넓은 모자, 새빨간 킬힐, 고급 담뱃갑 케이스 따위를 정성스레 마련하면 끄읏. 여기에 김여사가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연기를 괄약근으로 내품겠다는 듯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면 금상첨화요, 늘씬한 다리를 꼬며 영화 << 마더 >> 에서 말하는 허벅지 안쪽의 통점을 관객에게 보여주면 화룡점정. 관객은 김여사'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팜므파탈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관객은 알고 있다. 그녀가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나 달라. 위스키와 담배로 숙성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느와르 장르 - 코드'를 이미 학습한 결과'다. 마치, 한 번만 들어도 악보 없이 따라 부를 수 있는 트로트의 멜로디처럼 말이다.
그렇다 보니 감독은 등장 인물을 소개하느라 필름을 낭비할 필요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긍께, 김여사는 팜므파탈입니다잉 ~ 김여사가 우리의 홍박사를 함정에 빠트립니다. 아시것죠 ?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잉. 뻔한 코드 진행 방식이지만 그 진행 방식이 뻔하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관객은 없다. 그것이 < 장르의 힘 > 이다. 그렇다고 클래식한 코드 진행 방식을 무작정 고집하면 좋은 장르 영화가 될 수 없다. 양복은 일정한 양식을 갖춘 클래식한 드레스 코드이지만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형을 주듯이, 장르 영화도 시대에 따라 변주를 한다.
장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클래식 코드를 기본으로 하되 그 기본 코드를 뒤틀려고 한다. 양복 디자이너'가 양복 단추 갯수로 장난을 치듯.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홍진 감독이 연출한 << 곡성 >> 을 높게 평가하는 지점은 장르 - 비틀기'에 있다. 나홍진 감독은 미스테리 수사물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본 클리쉐들을 변주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컬트 장르를 수사물 장르'처럼 변주했다. 그러다 보니 수사물 장르'라 믿었던 관객에게는 배, 배배배배배신처럼 보이는 것이다. 현정화라 믿었는데 임춘애일 때 느끼게 되는 박탈감. 박근혜가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참 나쁜 영화. 지금 곡성은요 ?2) "
이 영화를 인상 비평하자면 : " 상의는 경찰복인데 하의는 체육복인, 모자는 경찰모인데 신발은 나막신을 신은, 애매모호하지만 혼용의 쾌감이 돋보이는 영화 " 라고 정리하고 싶다. 리얼리즘 계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관객을 속이는 일은 불경에 속하지만 장르 영화(미스테리/스릴러 따위)를 만드는 감독이 관객을 속이는 일은 성경에 속한다. 나도 속고 관객도 속았다면 결국에는 감독이 이긴 것이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를 보면서 " 영혼이 탈탈 털리는 " 경험을 했다는 점은 의아하다, 탈수기도 아니고. 장점만큼 단점도 확실한 영화'다. 영화 말미에 종구가 내뱉은 대사는 지나치게 통속적 가족 서사의 결말 같아서 닭살이 돋는다.
사족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는 녹음 기술'이다. 한국어 자체의 문제인지 기술적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대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다. 볼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 속 효진이 " 뭐이 중허냐고 ? " 라는 대사는 내 귀에는 " 뭐가 중2냐고 ? " 로 들렸다. 뒤늦게 이 아저씨가 너의 물음에 답한다. 중2(병)이 뭐냐면......
1) " 뭐이 중허냐고 " , 극중 효진의 대사. 한국 영화의 기술적 문제가 뭐냐고 물으면 녹음 기술이라고 대답하겠다. 그게 뭐이 중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만.
2) 그 유명한 박근혜 어록 < 지금 대전은요? > 의 패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