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고애고(ego-ego) :



哭聲

:   哭婢(곡비))의 애곡(哀哭(애곡))이 온 밤 내내 구슬픈 물굽이를 이루며 집안을 젖게 하더니 날이 어슴푸레 새면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ㅡ 혼불, 최명희

 


                                                                                                       

옛날에는 곡비(哭婢)라는 직업군이 존재했다고 한다. 곡(哭)을 하는 노비(婢)라는 뜻이다. 상례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영전 앞에서 " 애고애고 ~ " 라고 우는 사람인데,  양반이 눈물 콧물 쏟아내며 통곡한다는 게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 양반 상주가 상례 때 곡성(哭聲)이 끊어지지 않도록 품삯을 주고 고용했다고 한다.  양반들은 돈을 주고 곡비를 사고 곡비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사람 앞에서 목놓아 운다.  가장 슬프게 우는 노비'가 품삯도 당연히 높다.  소리를 구슬프게 낼 줄 아는 곡비는 이 마을 저 마을 출장을 다닌다고.  양반 입장에서 보면 곡이 끊이지 않아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소리내어 우는 게 일(직업)이라서 흥미롭게 생각하며 한자 곡(哭)를 보다가 < 곡비 > 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口 가 두 개'가 되면 吅 : 부르짖을 훤'이 된다. 입(口)이 두 개인 이유는 강조를 위한 표현 방식이다. 평소 발성보다 두 배 크게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 吅 밑에는 犬(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양반의 영전에 엎드려 개처럼 울어서 돈을 버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감정 소비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울면 허기가 지는 < 것 > 도 哭-행위가 정신 노동이자 육체 노동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 씨발놈들, 옛날이나 지금이나 상석에 앉은 놈들은 힘들고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은 모두 아랫것들에게 시키는구나. " < 울다 > 는 동사가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감정이라면 < 웃다 > 는 동사 또한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감정적 결과'다. 실제로 << 웃음 - 다이어트 >> 가 존재한다1). 문득, 곡비(哭婢)와 광대(pierrot)는 정반대에 위치한 직업군이 아니라 동일한 직업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개처럼 울어야 하는 것이 고된 일이듯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웃어야 하는 일도 고된 일이라는. 찰리 채플린이라는 광대를 볼 때마다 곡비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 << 라임라이트 >> 에서 광대 분장을 지운 찰리 채플린의 웃음기 없는 얼굴을 보았을 때, 그때 느끼게 되는 연민(의 감정)은 < 울다 > 와 < 웃다 > 가 한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혹은, 사소한 차이. < 울-> 과 < 웃-> 은 리을(ㄹ)이냐 시옷(ㅅ)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곡(曲)을 돈 주고 사는 것은 봤어도, 곡(哭)을 돈 주고 사는 문화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 같다. 곡성을 거래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처럼 재난(혹은 장례) 앞에서 목 놓아 우는 나라는 흔치 않다. 눈물이 많다는 것을 정(情)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진정한 슬픔과 애도가 곡(哭)의 데시벨 수치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오히려 재난 앞에서 우리가 목 놓아 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재난을 극복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사회적 보험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이 복지 선진국처럼 개인의 불행을 국가가 적극 나서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었다면 가라앉은 배를 보며, 불 타 없어진 체육관을 보며, 홍수로 떠내려간 집터에 털썩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보험 설계사'가 재난 이후의 삶을 설계해 줄 테니깐 말이다. 눈물은 기본적으로 자기연민'이다. 그 옛날 곡비는 일면식도 없는 양반의 영전 앞에서 목 놓아 울었지만 사실은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곡성이었을 것이다.

귀곡성(鬼哭聲)의 본질은 억울하게 죽은 자'가 산 사람에게 하소연하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산 자는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불통은 귀곡성으로 귀결된다. 좋은 징조가 아니다. 이처럼 짐승처럼 울어야 쌀 한 줌 얻을 수 있는 사회와 짐승처럼 울어야 억울한 자에게 비로소 관심을 보이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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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bs 방송국과 비만 클리닉 김형준 웃음치료사가 공동으로 10명의 주부를 선정하여 각각 대조군 5명과 실험군 5명으로 나누어 < 주 1회 8주 웃음 다이어트 > 를 실험군에게만 적용한 결과 대조군에 비해 3kg의 감량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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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9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15:07   좋아요 0 | URL
결혼 문화도 싹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냥 가족 몇몇 모여서 치르면 될 것을..
이건 사돈에 팔촌에 이웃집 이웃과 직장 동료들... 미친 짓 같습니다..

경조사비 내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큰 달도 있습니다.

stella.K 2016-05-2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곡성이 곡비에 관한 내용인가요?
그 영화가 곰발님께 굉장한 인상을 남겼나 봅니다.
이렇게 몇번에 걸쳐 글을 쓰시는 걸 보면...

그러고 보니 예전에 육 여사가 돌아갔을 때 일주일 내내 TV 정규 방송을 끊고
그 양반 추모 방송을 내 보낸 적이 있었죠.
그땐 국가장을 치르려면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슴다.
하지만 그후 어떤 국가적 인물이 돌아가도 그 정도로는 하지 않았거든요. (박정희 때 했나...?)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그때 박정희가 국민을 아예 곡비로 만들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15:49   좋아요 0 | URL
돈을 투자했으니 글감을 뽑아야지요. ㅎㅎㅎ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그냥 국가가 아니라 조선시대처럼 군주국가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니 그 딸이 오늘날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아니겠습니다.



마태우스 2016-05-2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리뷰인 줄 알고 들어왔지만, 더 큰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재해석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소리높여 우는 문화가 재난해결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29 20:53   좋아요 0 | URL
늘 궁금했던 게 집 떠내려가면 한국 사람은 땅바닥에 드러우워 통곡하는데 왜 똑같은 상황인데도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까 ? 답은 하나더라고요. 한국인은 모든 것 본인이 해결해야 됩니다. 그 차이였던 거죠.. 대안이 없는 사회가 통곡을 만드는 것이지 한국인이 특별히 통곡을 잘하는 민족은 아니라는 거.....

푸른희망 2016-05-30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치네요....
전 때때로 곡비처럼 목놓아 울고 싶을 때가 가끔 있어요.. 이건 뭘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31 11:49   좋아요 0 | URL
그만큼 한국 여성이 쌓인 게 많다는 증거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