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금이야 옥이야 :
부, 동산 노다지 활극
산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중노동에 가깝다. 촬영 장비 무게가 만만치 않은 데다 이동이 간편한 스테디캠으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뛰다가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자빠지기 일쑤다. 하다 못해 바닥에 레일을 깔 때도 삽질은 필 수다. " 삽질의 추억 " 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 << 피츠카랄도, 1982 >> 에서 클라우스 킨스키가 연기 포기 선언을 하자 감독이 총탄이 장전된 총을 머리에 겨눈 채 배우를 협박했을까. " 찍을겨, 아니면 죽을겨 ? " 피츠카랄도 촬영장은 전쟁터'였다. 클라우스 킨스키는 촬영 내내 화가 나서 감독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고, 원주민들은 킨스키를 (실제로) 죽여주겠다고 감독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광기 어린 클라우스 킨스키의 얼굴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던 셈이다. 산에서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이 정도라면 제작진이 이 영화에 쏟아부은 노동 강도는 말해서 무엇하랴.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이 영화는 거대한 증기선을 산으로 옮긴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 << 곡성 >> 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촬영 스텝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둔 까닭이다(제작 스텝을 구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체력이었다). 영화 << 사냥 >> 도 주요 무대가 " 산 " 으로 금을 차지하기 위한 엽사 무리와 원주민의 한판 대결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도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다, 나쁜 의미로 !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제작자인 김한민 표 영화'다. 피천득 수필 << 인연 >> 을 흉내 내자면 " 나는 김한민(영화) 과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 최종 병기 활 >> 에서, 두 번째는 << 명랑 >> 에서, 그리고 마지막 만남(사냥)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 걸 그랬다. 영화는 개연성이 부족하고 통일성도 없다. 영화를 만드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영화'다. " 이렇게 만들면...... 좆되는 겁니다, 아셨죠 ? " 몇 가지만 나열하기로 하자. ㉠ 아버지(안성기)가 전화를 받지 않자 딸이 아버지 집을 찾는다. 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막말을 쏟아낸다. " 차라리 죽어버리던지 !!! " 부녀 관계가 심상치 않다. 감동적인 결말을 위해 설정된 불협화음인가 ?
마지막에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 뭐, 그런 구도 말이다. 하지만 웬걸 ! 다음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 희희낙락하며 사이 좋은 부녀 관계를 연출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 캐릭터 같다. 딸을 연기하는 배우는 신동미 씨로 실제 나이는 1977년생이다. 40대 중년 여성이다. 젊게 봐준다고 해도 삼 십대 중반. 아들로 나오는 이해영이라는 배우는 1970년생으로 40대 중년 남성이다. 내가 배우 나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영화 속 사냥꾼으로 나오는 주인공(안성기) 나이를 추론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이 중년인 것으로 보아 그가 젊었을 때 결혼했다고 해도 60대 중반인 셈이다.
백발이 성성한 외양만 봐도 짐작이 간다. 영락없이 << 반지의 제왕 >> 에 나오는 간달프'다. 그런데 활동량은 람보 못지 않다. 무진 계곡에 나타난 칠순 람보 같다. 물 속에 숨어 있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물 밖으로 나와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 람보 >> 를 패로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민망하다. 이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관객이 있을까 ? 이 영화 주제가 " 인생은 60부터 " 라고 한다는 할 말은 없지만, 아로나민 골드 광고 보려고 극장을 찾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 금을 좇는 외지인들은 엽사 무리로 묘사되는데 왜 꼭 엽사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엽사는 짐승을 쫓는 사람들이지 금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 이 영화는 기획자가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기를 활용해서 쏠쏠한 재미를 본 탓일까 ? 이 영화는 김한민의 무기 3부작'처럼 보인다. ㉢ 정말 황당한 것은 쌍둥이 형제로 나오는 조진웅 캐릭터'다. 쌍둥이로 나온다는 것은 어떤 트릭을 위한 묘수일 터인데 영화 내내 도플갱어 트릭 장면은 한 컷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가 멍청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보기엔 그 시나리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제작진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할 것 같다. ㉢ 개연성은 제로에 가깝고 통일성도 전무하다.
안성기는 서울 표준어를 쓰고, 조진웅이 1인 2역을 하는 쌍둥이 형제는 경상도 사투리의 흔적이 묻어나고, 한예리는 아예 대놓고 << 웰 컴 투 동막골 >> 에서 강원도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한 강혜정을 심하게 우리까이한다. 이 정도면 한예리가 강혜정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는 수준이다. 이 영화가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 로컬리티의 재현 " 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어이없게도 실종되었다. 감독에게 묻고 싶다. 영화적 배경인 장소는 서울 외각입니까, 경상도 산골입니까, 강원도 광산 마을입니까 ? 배경에 맞는 말씨와 환경 설정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제일 먼저 체크해야 될 가장 기초적인 항목인데 감독은 그 사실을 놓쳤다.
한국 영화가 늘상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느닷없이 핏줄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기승전부(父)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이 영화에 대한 기자들의 평점이다. 영화판에서 논다고 너무 후한 점수를 주셨다. 아마, 20자평을 쓰면서도 스스로 민망했을 것이다. 이게 이 영화를 제작한 김한민 파워인가 싶다. 이런 영화를 두고 액션 영화라고 한다면 민망하다. 이 영화는 액션 장르가 아니라 노다지를 노리는 자의 탐욕을 다룬 " 부동산 활극1) " 이다. 이 영화를 요약하자면 람보를 연상시키는 조선 하드-바디인 노인이 애타게 반지를 찾아 떠나는 모험 ? 혹은 반지 전쟁 ??! 나라면 10점 만점에 0.5점 준다. 1점도 후하다 ■
1) 부동산 활극은 평론가 김소영이 영화 << 짝패 >> 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