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양,유다 세계사 시인선 26
이연주 지음 / 세계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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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후 사랑법



 

그가 나를 실망시킨다 나는 실망한다.

또 다른 그가 나를 모욕한다 나는 모욕당한다.

그와 또 다른 그를 나는 눈 속에 집어넣는다.


전조등 불빛을 올린 자동차 한 대가 내 눈동자

맨홀 속을 들먹거리다 간다.

그리곤 정적이 왔다, 그리곤

내가 아마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를 사랑하는 일은 쉽다.

걷어차도 배반 없는, 그러나

애정 없는 섹스.


원망에 찬 그와 또 다른 그가 내 눈 속

눈은 심장이니 내 핏덩이를 할퀸다.


어둡고 깊고 슬프다.

누군가의 잠꼬대와도 같은

최후 사랑법.


                                   - 이연주 시집 속죄양, 유다

 

 


 

 

 

사랑은 타자를 동일자로 받아들일 때 발생한다.  MBC 드라마 < 다모 > 에서 이서진이 슬픔에 빠진 하지원에게 " 아프냐 ?  나도 아프다. " 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동일자로서의 아픔을 본다.  사랑에 빠진 그는 타인인 그녀를 자신과 동일한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 그가 나를 실망시 " 키면 " 나는 실망 " 하고, " 그가 나를 모욕 " 하면 " 나는 모욕당 " 하는 아픔을 느낀다. 반대로 동일자'라 믿었던 대상이 타자로 변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두려운 대상은 동일자라 믿었던 그가 알고 보니 " 그와 또 다른 그 " 였다는 데'에서  발생하게 되는 언캐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엄마가 딸에게 "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 " 라고 물을 때 언캐니적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연주의 시 < 최후 사랑법 > 은 동일자라 믿었던 대상이 타자화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내가 사랑하던 그가 아니라 " 그와 또 다른 그 " 다. " 그와 또 다른 그 " 는 더 이상 그가 아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대상과의 타자화 과정(분리)을 견디지 못한다. 시인은 " 네 몰락이 내 가슴을 흔든다(몰락에의 사랑) " 고 고백한다.  " 타인을 이해한다 " 는 것은 " 차이를 긍정한다 " 는 마음,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차이'다. 타인 = 차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 차이를 긍정할 때 비로소 동일자가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타인의 차이를 용서하지 못했고,  그 차이 때문에 두려워했다. 사랑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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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7-07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닌 무관심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8:54   좋아요 0 | URL
사랑의 반대말은 무수히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랑의네거티브한 면들이 많거든요..

stella.K 2016-07-07 19:2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랑을 할 땐 사랑 하나만 생각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네거티브한 면을 파헤치는 건 위에 쓰신 이유 때문일까요?
참 인간은 사랑 조차 온전히 못하는 나약한 존재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사랑을 원하고...ㅠ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9 10:5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죠.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이란 것도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불완전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헤어지는 행위는 굉장히 인간적이란 생각도 듭니다..
 

 

 

 

                                       


불방망이와 물빠따 사이 :

 





메두사와 여성 혐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링 >> 에서 사다코 귀신은 메두사를 " 우라까이 " 했다흉측한 사다코 얼굴을 보는 자는 피가 얼어붙어 딱딱한 얼굴을 하고 죽는다는 설정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피가 쏠려서 딱딱하게 굳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발기 현상이다. 이상하다. 이 죽음은 타나토스일까, 에로스일까 ?  어쩌면 그들이 본 것은 얼굴이 아니라 여성 성기'가 아닐까 ? 51% 범성론자인 나는 사다코 귀신과 메두사 괴물을 " 바기나 덴타타 " 로 이해한다. 메두사에서 머리카락을 대신한 우글거리는 뱀 이미지'는 울창한 거웃이고 얼굴은 여성 성기'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메두사는 크게 벌어진 입, 길게 늘어뜨린 혓바닥, 멧돼지 어금니처럼 뾰족한 이빨을 가지고 있다. 이 이미지는 정신분석용어 중 하나인 바기나 덴타타 환상과 연결된다. 바기나 덴타타란 라틴어로 이빨이 달린 질'이란 뜻이다.



" 이빨을 가진 질에 관한 전설은 세계 여러 인류학자들에 의해 보고되었다. 랑크(Otto Rank, 1924)에 의해 처음 묘사되었고 페렌찌(Sandor F. Ferenczi, 1925)에 의해 정교화된 이 현상은 대체로 신경증과 성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이 환상은 거세 공포와 관련되어 있다. 거세 공포가 전치됨으로써, 질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기관으로 여겨진다. 질에 있다고 여겨지는 환상 속의 이빨은 종종 아버지의 성기를 상징한다. 또는 그 이빨의 이미지들은 때때로 깨무는 거대한 입을 가진 쥐나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성은 또한 남성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이빨을 가진 질을 소유하는 무의식적 환상을 간직할 수도 있다1). "



메두사 서사와 바기나 덴타타 서사가 한통속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자면  :  프로이트의 주장과는 달리 " 거세하는 주체 " 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인 셈이다.  메두사가 " 지배하는 여자 " 라는 말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다코도 마찬가지'다. 우물은 검고 축축한 구멍이라는 점에서 사다코 귀신은 메두사와 관련이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남성 주류 사회가 힘 있는 여성을 괴물로 만드는 방식이다. 힘이 여성에게 주어지는 순간 사회는 여성을 괴물(팜 느와르)로 만든다. << 판타지의 주인공들 >> 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다케루베 노부아키는 메두사가 원래는 " 그리스의 선주민족()인 페라스고이인들의 주 여신 중 한 명 " 라고 주장한다.


메두사는 괴물이 아니라  코린토스  대지의 여신으로 숭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우스가 신화의 영토를 장악하고 중심 서사에 놓이자 제우스보다 오래된 신들의 서사는 그 지위가 강등된다. 그 결과, 메두사는 여신에서 괴물로 강등된다.  여성 혐오 현상이 힘을 잃은 남성이 힘을 가진 여성에게 느끼는 박탈감에서 시작된 열등감이라는 점에서 여성 혐오 현상은 거세 공포와 연관이 있다.  즉, 경제적 지위를 힘 있는 여성(남성을 지배하는 여자)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이 만든 현상인 셈이다. 느와르 영화에 등장하는 팜므 파탈은 우글거리는 뱀과 뾰족한 맷돼지 어금니가 없다 뿐이지 메두사의 후예'다. 검은 여자(팜 느와르)는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남자는 팜 느와르에게 사로잡혀 검은 구멍 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 제거되거나 혹은 거세된다. 죽음은 곧 거세니깐 말이다. 장윤현 감독이 연출한 << 텔 미 썸딩, 1999 >> 에서 심은하는 하얀 옷을 입은 천사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검은 여자'다.  한석규는 심은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메두사에게 홀린 남자처럼 사로잡힌다. 그는 그녀에게 뜯어먹힌다. 이처럼 느와르 장르를 움직이는 기본 서사는 메두사 신화'다. 프로이트는 여성 성기를 페니스가 거세된 증후로 읽었지만 어쩌면 " 거세를 실행하는 장소 " 는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은 바기나 덴타타를 실감하게 된다. 강정호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보면 말이다. 

사건 이후, 강정호의 방망이가 식은 것을 보면 더욱 상징적인 현상이다. 이빨 달린 질,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









​                                            

 

1) [네이버 지식백과] 이빨을 가진 질 [VAGINA DENTATA]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서울대상관계정신분석연구소[한국심리치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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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7-0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0:53   좋아요 0 | URL
강정호 사건 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어쩌면 강정호에게 그 여성은 바기나 덴타타일 수가 있겠구나.. 이런 생각.. 약을 타서 성폭행했다면 강정호는 진짜 개새끼입니다. 전 쉽게 납득이 가진 않습니다.
일단 구단 모둔 선수들이 숙소로 있는 호텔에 여성을 불러들인다 ??!

cyrus 2016-07-07 12:21   좋아요 0 | URL
모든 야구 구단 선수들이 그러지 않겠지만, 어떤 모 야구선수는 숙소로 정해진 호텔에 여성을 불러들인다 ‘카더라’ 통신이 있습니다.

제 동생이 대구 모 호텔에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구에 원정경기 하는 야구팀들이 동생이 일하는 호텔에 묵습니다. 동생이 서빙을 담당했는데,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방에 서빙한 적도 있습니다. 동생 말로는 김성근 감독 음식 주문이 상당히 까다로웠고, 고집스럽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호텔 일을 하면 야구 선수들과 잠깐이라도 마주치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여기서 야구 선수 실명을 거론할 수 없지만, 동생이 모 선수가 혼자 쓰는 방에 여성이 들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충격 받았습니다. 실명을 들어보면 야구도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아는 선수거든요. 동생의 목격담이지만, 확실하지 않을 수 있기에 그냥 동생의 ‘카더라 통신’으로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선수 혼자 개인 방을 쓰고 있고, 프로 경험이 많다면 여성을 숙소에 불러들여서 만나는 일을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감독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안 생길 거라 믿고 선수 개인 활동에 터치하지 않을 듯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2:2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사생활 간섭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피해 여성이 검사를 했더군요. 만약에 수면제 성분이 나온다면 강정호는 징계 차원이 아니라 징역을 살아야 하는 상황.


지나가는이 2016-07-0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이야말로 감각적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0:53   좋아요 0 | URL
두 분이 모두 감각적이라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마립간 2016-07-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렌 식수 Helene Cixous의 ≪메두사의 웃음≫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vagina dentata (그리고 penis dentata도) 잘 공감하지 못합니다.

모계 사회는 있었어도, 모권 사회는 없다고 (있었어도 희박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성이 성대립에 있어 권력 박탈의 공포가 있었을까 싶네요. Penis dentata야 제가 남성이 아니니,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겠지만요.

성선택의 패자 敗者의 공포를 거세 공포라고 한다면 일리는 있겠습니다만.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1:39   좋아요 0 | URL
바기나 덴타타 현상은 그렇게 생각하는 환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성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 중에 말이죠. 잘릴 것 같다는 상상 때문에 성관계를 거부하게 된다네요..


제가 보기엔 여성 혐오는 지배하는 여자(메두사)에 대한 불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인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원주민처럼..

마립간 2016-07-07 11:56   좋아요 0 | URL
제 사견이기 때문에 심리학자나 신화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결론을 반박할 근거는 없습니다.

저는 vagina dentata와 penis dentata 두 가지 모두, 첨단 공포증이나 조류 공포증의 부류로 봐야 하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여성 혐오, 역시 성의 대립보다 장애인 혐오와 같은 약자 혐오의 subtype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2:28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왜 약자를 혐오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약자 혐오라긴 보다는 약자 경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립간 2016-07-07 14:05   좋아요 0 | URL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추천합니다. 재미도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4:17   좋아요 0 | URL
읽었습니다.. ㅎㅎ

마립간 2016-07-07 14:37   좋아요 0 | URL
저는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를 읽기 전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읽었읍니다. 저는 결국 같은 것을 이야기한 것이고 제가 실제 사회에서 느끼는 것을 설명했기 때문에 이 두 책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기회의 평등, 노력이 강조되는 사회(, 이것을 가장했더라도)에서는 여성 혐오를 포함한 약자 혐오를 강화시켰다고 봅니다.

경멸은 혐오와 질적 차이보다 약화된 양적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숙고없는 즉각적인 생각이라 바뀔지 모르겠지만.)

시이소오 2016-07-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사키아타루는 베이컨 편에서 이빨 이야기를 하다 바기나 덴타타를 언급합니다. 근데 페니스 덴타타도 있다네요. 상상이 안가던데 메두사가 그 예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바기나일까요, 페니스일까요. 아무튼 기관없는 신체네요. 이빨달린 페니스도 문제라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1:35   좋아요 0 | URL
바기나 덴타타 신화는 전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신화입니다. 아마도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페니스 덴타타도 있다 던데..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cyrus 2016-07-0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사람들은 월경혈도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월경혈을 이빨 달린 괴물의 입(질)에 나오는 침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2:29   좋아요 0 | URL
왜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협박하는 여자를 꽃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메두사를 상징하는 동물도 뱀인 걸 보면 꽃뱀이란 작명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6-07-07 12:34   좋아요 0 | URL
부정적인 여자를 짐승과 연관지어서 보는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하와를 유혹한 존재도 뱀이잖아요. 그래서 옛날 그림을 보면 뱀과 악녀는 세트로 등장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3:47   좋아요 0 | URL
성경에서 못된 짓 해서 죽을 때까지 대중으로부터 린치를 당하는 캐릭터가 뱀이죠.
가끔 보면 불쌍하기도 합니다.
성경 보면 어느 땐 뱀을 지혜를 상징하더군요..

syo 2016-07-0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어마어마한 댓글들이 달리는군요...... 다들 멋지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2:30   좋아요 0 | URL
이 댓글도 어마어마하네요..

yureka01 2016-07-0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글이 아주 재미나게 쫄깃쫄깃 합니다.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3: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재미있으면 장땡이죠.

재는재로 2016-07-0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있었보이는 글이네요 웬지 옛날부터 그런 의도가 있었나 보내요 마녀는 있어도 마남은 없는걸 보면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4:00   좋아요 0 | URL
마남.. ㅎㅎㅎ.. 진짜 그렇군요. 마녀는 있어도 마남은 없고. 오히려 마남인 드라큘라는 백작이잖습니까. 불공평하군요..

보빠 2016-07-1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두사가 여자였군요...좋은 것 알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3: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미모의 여자였다네요..
 
동방불패 [dts] - [할인행사]
정소동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동  방  불  패   :




목마와 숙녀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 오디세이아 1,2,3 >> 의 분량이 방대하여 책을 읽기에 앞서 신화 속 인물 관계도를 작성하려고 트로이 전쟁 약사(略史)를 정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트로이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 명분이 된 < 파리스의 심판 - 서사 > 를 이해해야 한다. 신들의 결혼식 피로연. 평소 신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여신 에리스1)는 복수를 위해 피로연이 벌어지는 정원에 황금사과 한 개를 떨어뜨린다. 사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 " 그러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세 여신은 제우스에게 판결을 부탁한다. 일종의 미인 선발 대회 심사위원장으로 제우스를 선택한 것이다. " 제우스여, 우리 셋 중 누가 제일 예쁩디까 ? "  제우스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왜냐하면 선택에서 탈락한 두 여신으로부터 원한을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심사위원장 자리는 인간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인 목동 파리스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미스유니버스 월계관을 차지하기 위해 세 여신이 각자 그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는 데 있다. 헤라 여신은 파리스에게 아시아를 통치한 권력과 부를, 아테네는 싸움(전쟁)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힘을,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 왕녀인 헬레나를 뇌물로 내놓는다.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 - 서사인 셈이다. 헤라가 내놓은 뇌물은 동방 통치권이고, 아테네가 던진 미끼는 불패(불사) 권능이며, 아프로디테가 선보인 것은 사랑의 묘약이었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인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 준다.  " 허어, 이 사람 야망이 없는 남자네. 절대 반지(권력,불사) 대신 은가락지(사랑) 따위를 선택하다니...... "  이 선택은 결국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파리스와 사랑에 빠진 헬레나가 트로이로 도망치면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미인 선발 대회에서 탈락한 헤라와 아테네가 트로이 전쟁에서 누구 편을 들지는 뻔한 예측. 그 유명한 목마가 성 안으로 유입되면서 트로이는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파리스와는 정반대로 헤라와 아테나에게 공동 수상을 준 미인 대회 심사위원장이 있다.  그가 바로 동방불패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내'다2). 서극이 제작하고 정소동 감독이 연출한 무협 판타지 영화 << 동방불패 >> 에서 임청하가 연기한 동방불패는 " 규화보전 " 을 익혀서 강호를 " 제패한다. " 나중에는 재팬(japan)까지 규합하여 아시아 전체를 " 제패하는 " ,  말 그대로 욕망의 도가니 같은 사내다. 그는 헤라와 아테나 모두에게 손을 들어주어 동방 통치권과 불패 권능을 얻은 악당이니 사랑 따위를 선택한 파리스와는 정반대에 놓인 인물인 셈이다.

미있는 사실은 규화보전을 익히기 위해서는 거세를 해야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임청하가 연기하는 동방불패라는 인물은 사랑 대신 권력과 불사를 선택한 인물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 역설 " 이 존재한다. 거세로 인해 여성이 된 임청하(동방불패)는 그만 이연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임청하는 이연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랑 때문에 머뭇거린다. 이 머뭇거림은 임청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권력과 불사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랑 따윈 필요없다3)고 다짐했던 동방불패는 하찮은 " 사랑 따위 " 에 죽는다. 생각해 보면 파리스보다 불행한 쪽은 동방불패'다. 파리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고 동방불패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의해 죽으니까.

 

성공을 위해서는 사랑 따윈 개라 주라지_ 라고 말하는 남자보다는 사랑밖에 난 몰라_ 라고 말하는 남자가 더 행복하다는 결론으로 이 글을 끝맺기로 하자 ■







​                                                


1) 에리스 : 밤의 여신 닉스가 혼자 낳은 딸로 주로 고통, 전쟁, 살인, 싸움, 거짓 등을 불러일으켰다.

2) 유재원인 << 신화로 읽는 영화 >> 에서 동방불패를 파리스의 신화를 우라까이했다고 말한다.

3) 자발적 거세 행위야말로 사랑 따윈 필요없다는 선언이 아닐까 ?  술 마시고 노래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이연걸은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인물이다.  그는 권력을 덧없이 바라보는 인물로 도가를 대표한다.  니체, 스피노자, 노자, 장자의 공통점은 " 몸-철학 " 에 있다. 몸의 쾌락이 정신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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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6-07-05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청하.. 묘한 배우였죠. 우리에겐 이런 배우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데요.
그러고보면 이런 배우가 있으니 홍콩이 `동방불패`(또 그 변주의) 같은 영화들도 척척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뭐, 동방불패같은 류는 대륙의 흔한(ㅎㅎ) 서사일 수도 있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12:20   좋아요 0 | URL
아주 독특한 배우입니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동방불패 재밌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전에는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다시보니깐 이 영화는 b급 영화더군요. 머리 갈라지고, 터지가, 잘리고... 제 취향이었습니다.


영화 마직막에 임청하 떨어질 때 눈빛 묘하네요.. 임청하 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 같습니다.
감동했습니다.

붉은돼지 2016-07-05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봐도 역시나 감동적이군요....눈물이 나려고 ...... 흐흐흐흑
규화보전을 연마하면서 불알이 떨어져 나가는 바로 그 순간
동방불패의 필패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봐야지요.....

불알이 떨어져나가고 여성이 되어 처음 접한 남자가 영호충같은 영웅호걸이었으니....
어찌 어린 숫처녀의 순정이 감당할 수 있었으리오,,,,하는 생각도 드는구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20:19   좋아요 0 | URL
성기를 거세한다는 것은 디오니스소적 성향을 제거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몸 쾌락을 버리면 대신 권력이 생기죠. 동방불패는 반디오니소스적 인간입니다.
반면 영호충은 아주 술주정뱅이잖습니까.
술과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는 호걸... 그리고 항상 술 마시고 흥청거리고 노래하는 게 영호충 무리들..
그들은 돈과 명예보다는 사랑을 택하는 무리죠. 도가적 인물이라고나 할까요.

결론은 다 가질 수 없다 이놈들아.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놓거라...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곰돌이 발 곰순이 손 2016-07-0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크. 기가 막히군요. 파리스의 재판과 동방불패라니.
권력과 불사를 원하면 사랑 섹스를 내려놔라. 그것이 규화보전의 비기였군요.
그러고보니 동방불패2,에선 임청하가 깃발에 아예 `동서방불패`라 써붙이고 강호를 휘젓던 기억도 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20:15   좋아요 0 | URL
선택의 딜레마를 다룬 서사는 항상 모든 것을 주지는 않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금상자, 은상자, 그냥 상자`가 나오죠. 가장 저렴한 걸 택하는 사람이 청혼에 성공하게 되고.. 사랑이 좋냐. 돈이 좋냐... 이 딜레마는 항상 불변하는 이야기 소재잖습니까.

samadhi(眞我) 2016-07-0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이 매우 훌륭합니다. ㅋㅋㅋ
한번 사는 인생, 죽도록 사랑이라도 하고 살아야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7 10:17   좋아요 0 | URL
쓰다 만 느낌이 들어서... 저는 별로.. ㅎㅎ
다음에 시간 나면 고쳐야겠습니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문학동네 시집 43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못 이야기


흉터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거든 

_ 모두 다 예쁜 말들 

 

어릴 때 사람들이 인형이나 로보트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어린 나는 망치를 들고 놀았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사리손으로 나무조각에 잔못을 박던 기억. 하루 이틀이면 그려려니 했을 텐데 날마다 가게 구석에서 나무에 못을 박고 있으니 어머니는 걱정이 크셨다. " 커서 뭐가 되려고 ! " 가게를 오고가는 사람들도 망치질 하는 꼬마를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곤 했다(혹은 묻곤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궁금할 것이다. 왜..... 그러셨어요, 네에 ? 사람들은 모른다. 못이 반듯하게 나무를 파고 들어갈 때 느끼게 되는 감동. 아버지는 아들이 못질을 할 때 손을 다칠까 봐서 푸석푸석한 나무와 목통(木桶)에서 잔못을 골라 내게 주셨다. 나는 그 나무토막이 못투성이가 될 때까지 못질을 했다. 사람들은 못질하는 꼬마의 행동을 목적 없는 유희'라고 생각했지만 내게는 분명하며 은밀한 목적이 있었다. 못투성이가 된 나무를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넣자  못투성이 나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와아 ~  철의 무게가 나무의 부력을 이긴 것이다.

비가 오는 밤이면 종종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 길, La Strada, 1954 >> 이라는 영화를 본다, 그 옛날 습관적으로 << 아비정전 >> 을 보았듯이.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여자 마음에 못질을 한 남자와 못이 박힌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 옛날 물 속으로 가라앉은 못투성이 나무를 기억하며 회한에 젖는다.  못투성이가 된 마음은 얼마나 무거울까 ?

 

 

변두리 다방에 가서 앉는다. 종업원 아가씨는

두 잔의 커피를 가지고 와서 옆에 앉는다. 그 무렵부터

여자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내게는 쉽게 벗는 것

처럼 보인다. 벗은 몸에는 여러 개의 못들이 박혀

있다. 들여다보면 못의 머리에는 남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반쯤 덜 박힌 못이

있다. 때로는 속옷이 걸려서 찢어진다고

그런다.

           ㅡ 시집 <<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 ,  '못 이야기'  전문


변두리 다방에서 티켓을 파는 종업원 아가씨도 한때는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생생한 부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를 읽다가 경찰의 성매매 단속을 피해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죽은 여자를 생각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부자가 된다는 것은 부력을 가지고 가난뱅이가 된다는 것은 중력을 얻는다는 사실. 울컥 내려앉은 마음으로,     통영으로 내려갔다. 계획에 없는 여행이었다. 그녀가 뛰어내린 모텔 6층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부력을 잃은 여자를 생각했다. 17살에 딸을 낳고 24살에 죽은, 못투성이가 되어 가라앉은 한 여자. 그날 내 노트에 남긴 메모. 


 

 

그녀에게

 

형사들이 들이닥쳤을 때 부끄럽지는 않았아요 어차피 내 生은 벌거벗겨진 몸이었으니까요 또래 친구들이 화사한 옷을 몸에 걸치고 사내를 만나러 갈 때 나는 낯선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어요 내 새까만 거웃이 가난의 얼룩처럼 보여서 서러워서,   사내 앞에서 거웃을 가리던 때도 있었지요  16살에 집을 나왔어요 거리에서 생강처럼 작고 독한 남자를 만나 17살에 딸을 낳았지요 너무 어린 나이에 씨앗 품어 도사리 같던,  내 딸 그래요 형사 아저씨  돌이켜보면 내 生은 늦겨울 묵정밭에 핀 하얀 무꽃처럼 근근히 버티는, 삶이었어요  늙은 아비는,  허리를 다쳐 바닥에 눕고 딸아이는 저렇게,  해맑게 피어나고 나는 점점 웃음을 잃었습니다 통영 앞바다 새파란 남해가,  참 아름답네요 다, 내려놓겠습니다.

 

나는,         영화 << 길 >> 에서 짐승처럼 목 놓아 우는 짐파노를 이해한다.   깊은 밤 雨中.  내 못질 때문에 가라앉은 사람을 생각하며 목 놓아 운 적이 있다 

 

 

 

 

 

 

 

 

 

 

 

 

 

 

 

 

덧대기 ㅣ 정인의 뜨거운 안녕,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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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7-0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무렵 곰발님 올렸던 희곡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납니다.
이 리뷰를 읽으니 또 생각이 나는군요.
오늘 리뷰는 정말...!!!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15:04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말씀에 문득 저도 다시 읽고 싶어 뒤졌는데
보이질 않네요.
참... 안타까운 죽음이었죠.
티켓 팔아 병든 아버지 병원비 대고 딸을 키웠다는데....

stella.K 2016-07-04 16:07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 봤는데 못 찾겠네요.
그때 별찜했어야 했는데...ㅠ

대신 찾다가 예전에 `실크 보다 부드러운`이 발견이 됐어요.
그때 정말 제가 곰발님 시각장애자인 줄 알았다 깜빡 속아서
분개해서 쓴 댓글이 보이더군요. 다시 보니 얼마나 웃기던지...ㅋㅋㅋ
그때 이후로 퇴폐를 안 쓰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읽는 `세속도시의 시인들`에서 김요일을 두고
고은 시인이 퇴폐시를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하더군요. 여기 또 한 사람 있는데...물론 시는 아니지만.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16:30   좋아요 0 | URL
좋군요. 제가 쓴 글이지만.
제 나름대로는 페이퍼소설이라는 식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김요일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요. 댓글 달고 나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은 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나와같다면 2016-07-0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소리와 함께 듣는 정인의 `뜨거운 안녕` 뭉클하네요.. 잘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11:20   좋아요 0 | URL
정인이란 가수 노래를 아주 잘합니다..
유희열이 불렀을 때는 그지같았는데 말입니다.

samadhi(眞我) 2016-07-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가슴이 찡합니다. 비와 어울리는 글이네요. 곰발님 못(멋)째이~^^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11:19   좋아요 0 | URL
비는 오고.. 술은 한 잔 걸쳤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금이야 옥이야 :

 

 

 

부, 동산 노다지 활극



                                                                                        산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중노동에 가깝다. 촬영 장비 무게가 만만치 않은 데다 이동이 간편한 스테디캠으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뛰다가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자빠지기 일쑤다. 하다 못해 바닥에 레일을 깔 때도 삽질은 필 수다. " 삽질의 추억 " 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 << 피츠카랄도, 1982 >> 에서 클라우스 킨스키가 연기 포기 선언을 하자 감독이 총탄이 장전된 총을 머리에 겨눈 채 배우를 협박했을까. " 찍을겨, 아니면 죽을겨 ? "  피츠카랄도  촬영장은 전쟁터'였다. 클라우스 킨스키는 촬영 내내 화가 나서 감독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고, 원주민들은 킨스키를 (실제로) 죽여주겠다고 감독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광기 어린 클라우스 킨스키의 얼굴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던 셈이다. 산에서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이 정도라면 제작진이 이 영화에 쏟아부은 노동 강도는 말해서 무엇하랴.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이 영화는 거대한 증기선을 산으로 옮긴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 << 곡성 >> 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촬영 스텝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둔 까닭이다(제작 스텝을 구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체력이었다). 영화 << 사냥 >> 도 주요 무대가 " 산 " 으로 금을 차지하기 위한 엽사 무리와 원주민의 한판 대결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도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다, 나쁜 의미로 !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제작자인 김한민 표 영화'다. 피천득 수필 << 인연 >> 을 흉내 내자면 " 나는 김한민(영화) 과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 최종 병기 활 >> 에서, 두 번째는 << 명랑 >> 에서, 그리고 마지막 만남(사냥)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 걸 그랬다.   영화는 개연성이 부족하고 통일성도 없다. 영화를 만드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영화'다. " 이렇게 만들면...... 좆되는 겁니다, 아셨죠 ? "  몇 가지만 나열하기로 하자.   ㉠ 아버지(안성기)가 전화를 받지 않자 딸이 아버지 집을 찾는다. 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막말을 쏟아낸다. " 차라리 죽어버리던지 !!! " 부녀 관계가 심상치 않다. 감동적인 결말을 위해 설정된 불협화음인가 ? 

마지막에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 뭐, 그런 구도 말이다.  하지만 웬걸 !  다음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 희희낙락하며 사이 좋은 부녀 관계를 연출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 캐릭터 같다.  딸을 연기하는 배우는 신동미 씨로 실제 나이는 1977년생이다. 40대 중년 여성이다. 젊게 봐준다고 해도 삼 십대 중반. 아들로 나오는 이해영이라는 배우는 1970년생으로 40대 중년 남성이다.  내가 배우 나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영화 속 사냥꾼으로 나오는 주인공(안성기) 나이를 추론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이 중년인 것으로 보아 그가 젊었을 때 결혼했다고 해도 60대 중반인 셈이다.

백발이 성성한 외양만 봐도 짐작이 간다.  영락없이 << 반지의 제왕 >> 에 나오는 간달프'다. 그런데 활동량은 람보 못지 않다. 무진 계곡에 나타난 칠순 람보 같다.  물 속에 숨어 있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물 밖으로 나와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 람보 >> 를 패로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민망하다. 이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관객이 있을까 ?   이 영화 주제가 " 인생은 60부터 " 라고 한다는 할 말은 없지만,  아로나민 골드 광고 보려고 극장을 찾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 금을 좇는 외지인들은 엽사 무리로 묘사되는데 왜 꼭 엽사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엽사는 짐승을 쫓는 사람들이지 금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 이 영화는 기획자가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기를 활용해서 쏠쏠한 재미를 본 탓일까 ? 이 영화는 김한민의 무기 3부작'처럼 보인다.   ㉢ 정말 황당한 것은 쌍둥이 형제로 나오는 조진웅 캐릭터'다. 쌍둥이로 나온다는 것은 어떤 트릭을 위한 묘수일 터인데 영화 내내 도플갱어 트릭 장면은 한 컷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가 멍청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보기엔 그 시나리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제작진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할 것 같다. ㉢ 개연성은 제로에 가깝고 통일성도 전무하다. 

안성기는 서울 표준어를 쓰고, 조진웅이 1인 2역을 하는 쌍둥이 형제는 경상도 사투리의 흔적이 묻어나고, 한예리는 아예 대놓고 << 웰 컴 투 동막골 >> 에서 강원도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한 강혜정을 심하게 우리까이한다. 이 정도면 한예리가 강혜정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는 수준이다. 이 영화가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 로컬리티의 재현 " 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어이없게도 실종되었다. 감독에게 묻고 싶다. 영화적 배경인 장소는 서울 외각입니까, 경상도 산골입니까, 강원도 광산 마을입니까 ? 배경에 맞는 말씨와 환경 설정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제일 먼저 체크해야 될 가장 기초적인 항목인데 감독은 그 사실을 놓쳤다.  

한국 영화가 늘상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느닷없이 핏줄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기승전부(父)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이 영화에 대한 기자들의 평점이다. 영화판에서 논다고 너무 후한 점수를 주셨다.  아마, 20자평을 쓰면서도 스스로 민망했을 것이다. 이게 이 영화를 제작한 김한민 파워인가 싶다.  이런 영화를 두고 액션 영화라고 한다면 민망하다.  이 영화는 액션 장르가 아니라 노다지를 노리는 자의 탐욕을 다룬 " 부동산 활극1) " 이다. 이 영화를 요약하자면 람보를 연상시키는 조선 하드-바디인 노인이 애타게 반지를 찾아 떠나는 모험 ? 혹은 반지 전쟁 ??!  나라면 10점 만점에 0.5점 준다. 1점도 후하다 ■

 

 

 

 

 

                                  

 

1) 부동산 활극은 평론가 김소영이 영화 << 짝패 >> 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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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7-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성기 올해 59년차라고 하더군요. 내년이면 60년.
아역부터 했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대 후반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전 김한민 감독에게 점수가 후한 편인데...
그냥 남자다운 근육질을 보여줘서 장면에도 공을 많이 들이잖아요.
스토리야 어땠던 지간에.ㅋ
조진웅과 안성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되던데
곰발님은 아니셨나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9:19   좋아요 0 | URL
나이가 59세가 아니라 연기 경력 59년차라는 거죠 ?
근데... 왜 연기는 늘지 않는지..
전 안성기가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뭔가 다 어색합니다, 안성기는...

부러진 화살에서는 좋았습니다만.. 나머지 영화는 영..


stella.K 2016-07-02 19:38   좋아요 0 | URL
ㅎㅎ 뭔지 알아요.
별로 연기한다는 느낌 안 들죠?
뭔가 엉성한 것 같고. 그런데 그게 또 먹어주는 배우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대표적인 게 안성기고.
그래서 주연은 안 맞잖아요.
그냥 아무 영화나 끼어도 물 흐르는 것 같고 있는 듯 없는 듯.
연기를 잘해서라기 보단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질 보다 양으로 승부해서 그 자리까지 간 것 아니겠습니까?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1:59   좋아요 0 | URL
안성기란 배우가 워낙 성실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니
모자란 연기도 다 커버가 된 듯합니다.
한국에서 배우 한다는 것은 정말
도 닦아야 하는 직업..
한번 실수하면 끝이잖습니까..

samadhi(眞我) 2016-07-0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성기 연기 못 한다 생각해요. 중년이상 배우들, 몇 십년 연기한 유명배우들 연기도 진짜 엉망이더라구요. 최불암, 송재호 등등
저도 이 영화 안 보고 싶었는데 확실히 안 봐도 되네요. 평점은 현저히 낮던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1:58   좋아요 0 | URL
최불암은 잘하지 않나요 ? ㅎㅎ. 하여튼 저는 안성기와 설경구 연기가 그렇게 거슬릴 수 없습니다.
위의 스텔라 님이 지적했듯이 안성기는 이제 조연으로 주연으로 끼면 뭔가 좀 안 맞아요..
성실성 하나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6-07-03 12:00   좋아요 0 | URL
저도 여태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식객 드라마에서 놀랐습니다. 중견배우가 무조건 연기 잘 한다는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됐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2:05   좋아요 0 | URL
드라마 연기에 익숙하다 보면 만날 똑같은 패턴의 연기만 하죠.
개인적으로 정보석 연기는 못 봐주겠습니다. 정보석은 연기를 하면 안 되는 배우..

samadhi(眞我) 2016-07-03 12:09   좋아요 0 | URL
정보석같은 사람이 넘쳐난다는 게 문제예요. 끊임없이 굵직한 역할을 하고 연기 변화 없이 화내고 소리지르고 어색하게 노려보기만 하는 배우들이 몸값을 어마어마하게 가져가는 바람에 정작 조연이거나 엑스트라 배우들 몫이 줄어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15:38   좋아요 0 | URL
정보석 그래도 하이킥에서는 제대로 웃기셨습니다. 이젠 연륜이 쌓이면
폭발하는 순간이 있겠죠.
김민희 보십시오. 전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배우가 되어 돌아왔더라고요..

가넷 2016-07-0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음이 뭉게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인 건지.;;;; 여튼 저도 개인적으로 안성기 연기는 별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1:56   좋아요 0 | URL
배우로서 발성이 좋지 않죠. 사실 배우에게 목소리는 매우 중요한데 안성기는 목소리가 좋질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