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에게 쪽을 파는 일이란 ?




                                                                                        양아치는 양심은 팔아도 쪽팔리는 일은 수치라고 여기는 부류'다.  영화 << 친구 >> 에서 준석(유오성 분)이 부하에게 죄를 씌우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 " 쪽팔려서 " 다. 쪽을 파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들은 부정문을 사용할 때마다 " 남자새끼가 쪽팔리게...... "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쪽을 파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양아치 집단만은 아닌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를 포함한 남성 대부분은 양아치처럼 쪽을 파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해서 차라리 양심을 파는 쪽을 선택한다. 한국 남성에게 < 쪽 > 은 남근이다. " 쪽을 판다는 것 " 은 거세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저잣거리 입말로 사용하는 " 쪽도 못 쓰는 주제.... " 라는 표현은 고개 숙인 남자라는 의미이지 않은가. 유하 감독이 연출한 << 말죽거리 잔혹사, 2004 >> 는 쪽생쪽사에 대한 이야기'다. 말죽거리에 사는 열여덟 살 소년들은 쪽에 살고 쪽에 죽는다. 우식(이정진 분)은 3학년 선배 10여 명과 맞짱을 뜬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쪽팔리잖아, 쪽팔리면 끝이야. " 영화 << 곡성 >> 에서 경찰관 딸을 연기한 아역 배우 김환희라면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 쪽이 뭐시 중허냐고 !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 " 하지만 수컷들에게 쪽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학 온 모범생 현수(권상우 분)는 쌍절곤을 휘두른다. 여기서 쌍절곤은 쪽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드는 남근'이다. 내가 보기엔 개,돼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나향욱 2급 공무원의 몰락은 쪽을 지키려다 망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영화 << 친구 >> 에서 유오성이 쪽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고, 이정진이 10명과 맞짱을 뜨고, 모범생 권상우가 발기한 남근을 닮은 쌍절곤을 휘둘러서 OUT 되었다면 나향욱은 여자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는 일이 쪽팔려서 오기를 부르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건을 다룬 최초 기사를 보면 기자들은 몇 차례 나향욱에게 발언을 철회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향욱은 사과를 거부했다. 이 거부의 몸짓은 혹시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는 의지 때문은 아니었을까 ?  한국 남성들에게 있어서 힘 센 남자 앞에서 쪽을 못 쓰는 상황보다 힘 쎈 여자 앞에서 쪽을 못 쓰는 상황이 더 견딜 수 없는 쪽팔림'이다. 그들은 남자가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여자가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 한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도 핵심은 여자가 나를 무시하는 것에 대한 혐오 사건이었다. 태풍이 불면 부러지는 것은 갈대가 아니라 나무라고 한다. 성별과 상관없이 고개 숙일 땐 고개 숙여야 한다. 남근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게 강하면 화를 부르게 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 남근을 간절히 원하면 진짜로 남근이 되는 수가 있다. 좆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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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의 핵심은 여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남자의 오기가 부른 대참사다. 당시 경향 일보 기자단은 주로 여성들로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향욱 씨 입장에서 자신이 한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기를 부린 것은 감히 여자들이 자기가 한 말에 대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syo 2016-07-1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신 쓰레기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병신 쓰레기 찌질이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8:14   좋아요 2 | URL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맨스플레인 현상입니다.
여자들아, 봐봐.. 이런 것이다...
막 설교를 하는데 여성 기자들이 동의를 하기는커녕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더란 것이죠.
오기가 난 향욱 씨는 더욱 자신의 주장에 강도를 높이다가 결국은...

맨스플레인이 부른 대참사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7-1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더 따박따박 말대답해야겠어요~ 쪽팔리기 싫어 하는 찌질이들 걸러내기위해서라도요~~
조용히 살까 했는데.. .요즘 자꾸 말을 하라는 군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9:11   좋아요 1 | URL
아마도 상대 기자가 중년의 남성 기자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나향육 : 아, 제가 말실수를 했나 봅니다. 사과드리죠...

yureka01 2016-07-1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면될듯하더군요.자리 내려 오면 어떤지 알게 될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07   좋아요 0 | URL
누가 봐도 이건 파면이죠.. 전 파면 안 당하길 바랍습니다.
그래야 여론이 들끓어서 새누리가 몰락할 테니깐...

yureka01 2016-07-13 10:12   좋아요 0 | URL
ㅎㅎㅎ여론을 빨리 잠재울 방법은 파면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그들은 알죠.
하나 떨궈내는 거야 쉬울테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20   좋아요 1 | URL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솔까막 청와대에서 2급 공무원은 그냥 듣보잡이죠..
이런 놈 지킬려고 목숨 걸 여사님이 아니시죠..

만화애니비평 2016-07-12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생각하니 마치 중국집 요리 같습니다. 고량주는 남자술이니 여자기자는 고량주가 어울리지 않아! 라구 말이죠. 요새 술 잘마시는 분 많은데 말이죵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06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오향장육이라도 시켜 먹어야 겠습니다..
 

 

 

 

 

 

한식은 패스트푸드다 !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김윤옥 씨가 개 돼지들1)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김치 칵테일'을 만들었을 때,  먹는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는구나 _ 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근미래에는 지구인들이 사진을 찍을 때 치즈 대신 김치 _ 라고 할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김치가 세계를 제패하는 날이 오면 가수 정광태의 유일한 메가 히트곡 <<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 이라는 노래 제목은 << 이 세상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 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미소를 지을까. 그런...... 날이 올까 ?

한식 세계화가 국격을 높이는 짓이라면 인도와 베트남은 카레와 쌀국수로 초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한식과 관련된 전문가 집단이 늘상 하는 말은 " 한식은 웰빙 푸드이며 슬로우 푸드 " 라는 소리'다. 여기에는 한식 요리가 손이 많이 간다( = 정성이 담긴)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는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사랑으로 만든 음식, 정성이 담긴 음식은 웰빙 푸드이며 슬로우 푸드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과 정성이 많이 담긴 요리가 반드시 웰빙 푸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채소나 과일을 갈아서 마시는 생과일 주스나 즙을 내서 먹는 액기스는 대표적인 패스트푸드'다.

하루야채 광고 따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루야채 한 병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를 얻기 위해서는 야채를 산더미처럼 쌓고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산더미처럼 많은 분량을 날씬한 병으로 축소해 놓은 것이 하루야채라는 음료인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하루야채 한 병으로 과식을 실천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생과일 주스도 다르지 않다. 한 번의 " 드링킹 " 은 과일을 " 백 번 " 씹을 때와 동일한 것이니, 이 얼마나 패스트한 풍경인가 !   실제로 건강한 재료(로 만든 요리)라고 해서 맘 놓고 먹는 생과일 주스나 액기스'가 과잉 열량을 유발하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건강한 재료로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 비만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될 악당이 있다. " 햄버거, 너 나와 !! "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할 때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과 함께 상징적인 음식이 되었다. 누군가는 패스트푸드가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정크푸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즉석 주문 요리(=패스트푸드)란 손쉽게 만들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뜻한다. 이 정의가 맞다면 김밥도 패스트푸드'다. 이 정의에 대한 반론은 분명하다. 집에서 김밥을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밥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 햄버거를 위한 변명 " 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집에서 햄버거를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햄버거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햄버거 패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기를 다져서 밑간을 해서 잠시 숙성을 시켜야 하고,  머스터드 소스도 만들어야 하며, 다양한 속 재료도 준비해야 한다. 집에서 김밥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이나 집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엇비슷하지 않을까. 햄버거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있다. 비만의 친구이자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욕은 다 먹었으니 말이다. 내 기준에 의하면 주문 즉시 음식이 나온다는 점에서 점심 시간에 직장인이 몰려 있는 번화가 식당에서 파는 모든 한식은 패스트푸드다.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고, 나온 음식은 " 패스트 " 하게 먹어치워야 한다.

 

프랑스 식 음식 문화를 흉내 낸다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식당 주인으로부터 욕 먹기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패스트푸드인가, 아닌가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김밥이 좋은 음식이라면 햄버거도 좋은 음식이며, 한식이 웰빙이라면 양식도 웰빙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점은 " 슬로우 푸드 " 를 " 패스트 " 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인은 천성이 < 빨리빨리 유전자 > 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인의 DNA가 만든 현상이 아니다. 서울 토박이였던 내가 지방에 내려가 살면서 겪게 되는 곤경 가운데 하나는 < 걷는 속도 > 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걷는 속도에 익숙하다 보니 옆사람과 보조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출근 시간에 느림보 걸음으로 수다를 떨며 걷는 모습은 나에게는 진풍경이었다. 반대로 느림보 걸음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서울로 상경했을 때는 서울 사람들의 총알 걸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것은 걷는 속도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만든다는 점이었다. 국가가 패스트푸드를 불량식품 취급한다면, 국가야말로 패스트푸드의 주범이다. 왜냐하면 국가 시스템이 " 슬로우푸드를 패스트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는 맘 놓고 점심을 즐길 시간이 없다.

 

어느 노동자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연장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출근했다가 사고로 죽기도 했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대한민국이라는 컨베이어 밸트 속도를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높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속도에 맞춰 뛰어야 한다.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노동과 근로는 같은 말이 아니다. 노동은 < 일하다 > 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고 근로는 < 땀이 나도록 열심히 일하다 > 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슬로우 푸드를 패스트하게 섭취한다. 슬픈 풍경이다.

 

이처럼 패스트푸드의 주범은 햄버거도 아니고 김밥도 아니다. 10분이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대표하는 컵라면마저 먹을 시간이 없는 사회2)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  대한민국이야말로 모든 음식을 패스트푸드로 만드는 주범이다 ■


​                                                

 

 

※ 각주 1,2 가 길어서 하나로 통합

 

                                                                                                                                                                       나향욱 교육 정책 기획관이 " 민중은 개 돼지...... " 라며 대한민국은 신분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원래 교육의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향욱이라는 사람이 교육 정책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나는 그가 교육 정책 기획관이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푸코는 << 감시와 처벌 >> 에서 교육은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반 일리히는 << 학교 없는 사회 >> 에서 학교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제 서울대라는 브랜드는 기회의 평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서울대는 현대판 음서제'다. 자크 랑시에르는 << 무지한 스승 >> 에서 < 자코토의 실험 > 을 예로 들어 학생은 설명하는 스승 없이도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은 오히려 "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인간 " 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다.  경제학을 배운 인간은 경제에 대한 지식만 쌓고, 간호학을 배운 인간은 간호에 대한 지식만 얻게 된다. 대학이 본래 지식을 확장하고자 하는 장치라고 한다면,  현대 교육은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확장은커녕 축소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올인하는 교육 정책은 인간을 똑똑한 바보로 만든다. 똑똑한 바보라는 표현은 자크 랑시에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나향욱이라는 인간의 탄생은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인간을 찍어내는 엘리트 교육 정책이 낳은 참사'다. 개, 돼지 발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 (구의역 사고로 사망한 청년에 대해)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향욱의 자식이 걱정된다. 비록 당신이 위선이라며 핏대를 세울지라도 말이다. 배울 만큼 배운 그가 정작 교육 기관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한국 식 교육은 측은지심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가 인간을 짐승으로 비유했으니 어느 짐승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한다. 실험실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다. 바나나가 있다. 맛있는 바나나다. 실험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짚으면 옆 칸의 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 한다. <<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 에서 실험 대상자를 인간 대신 원숭이로 대체한 것이다. 그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  원숭이는 15일 동안 굶었다.  15일 동안의 측은지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으로 사는 게 웰빙이란 생각이 든다. 민중이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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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7-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달았는데 없어져 버려 다시…
블랙 코메디 한 편 보았다고 생각해야 하겠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 교육이 측은지심을 가르치지 않음을 알지만 같은 교육을 받은 99%은 어떻게 측은지심을 발현하는 것일까요. 사람 됨됨이가 배우지 않아도 깨치는 능력이 함양되고 서서히 개인차를 만든다고 봐야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37   좋아요 1 | URL
저 인간은 그냥 소시오패스죠.. 아니 스무살 청년이 일에 쫓겨서 죽은 사건을 두고 내 자식처럼 슬퍼하는 건 위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소시오패스죠..

오거서 2016-07-12 09:39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기사를 보고 댓글에 남겼지만, 저 역시 공감하는 바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46   좋아요 1 | URL
제가 독재자라면 민중을 ˝ 발등에 떨어진 불 - 상태 ˝ 로 만들겠습니다.
생각할 틈을 안 주는 거죠. 학생에게는 공부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졸업생에게는 취업 준비를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비정규직은 콧등에 땀이 맺힐 때까지 일해야 하니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이게 모이면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재자의 적은 민중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오거서 2016-07-12 09:55   좋아요 0 | URL
앗!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시는군요.

yureka01 2016-07-1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자중에 조련사인지 교육자인지 분간 못하는 경우..사육인지 교육인지 구분 안되는 경우....아닐까요...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52   좋아요 1 | URL
비서울대는 서울대 때문에 차별을 받습니다. 모든 주요 관직은 모두 서울대가 장악했으니 말입니다. 이제 교육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역설이죠. 교육이 바로 서야 되는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평등한 교육법이라고나 할까요.

보빠 2016-07-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몇년전에 이책 읽었지만 곰곰발님같은 생각못했는데...멋지십니다 썰전에 출연해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0:17   좋아요 0 | URL
썰전에서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가겠습니다..

2016-07-12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7-1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으로 사는 게 웰빙!
멋진 말이군요!
곰발님을 썰전으로!!!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3:47   좋아요 0 | URL
말만 하지 마시고 썰전 제작진에게 제보를 ㅂ부탁ㄹ 드립니다..
 
[블루레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마야 모르겐스턴 외, 멜 깁슨 / 20세기폭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아픔이란 고통 뒤에 오는 것이다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그동안 수많은 폭력 영화를 보았지만 이 영화만큼 많은 상처가 난 육체 이미지'를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면 그로테스크를 초월해서 스팩타클의 장'이라 할 만하다. 이 상처 이미지는 당대 최고였던 분장 전문가인 케이트 반델란과 특수 분장 전문가인 그레그 켄놈이 만들었다. 내가 맬 깁슨의 << 패션 오프 크라이스크 >> 를 비난하는 대목은 " 상처의 리얼리티 " 에 있다.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는 영화 장르들(스플래터, 고어, 호러, 폭력)은 상처를 재현할 때 리얼리티를 회피한다. 왜냐하면 상처가 진짜처럼 보일 때 관객이 느끼게 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관객은 스플래터, 고어, 호러 영화 속 육체에 거부감이 없다. 그것이 " 가짜 "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재현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리얼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 리얼 " 하다는 게 반드시 좋은 요소는 아니다.

 

 


                                                                                                    맬 깁슨이 배우가 아닌 감독이 되어 연출한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 >> 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다룬 영화'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전주 영화제와 맞물리면서 이 영화를 그곳에서 본 것 같다(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   이때,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관객 대부분은 교회에서 단체 관람을 온 모양이었다.  서로 알음알음 아는 사이이다 보니 영화 상영 전부터 영화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나는 영화관 안에서 타관살이에서 오는 외로움에 덧대어 소외감마저 들어 울쩍했다. " 집에 가면 술이나 한 잔 해야겠구나. "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예수가 피범벅이가 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나를 제외한 사람들 대부분이 울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이 부끄러워서 훌쩍이는 것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작은 울음이 모여서 통곡이 되었다.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종교 수난극이 아니라 스플래터-고어 장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륙 당하는 십 대 역을 예수가 맡았을 뿐이었다.  혼자 소시오패스가 된 느낌.  

내가 이 영화에 공감하지 못한 데에는 기독교에 대한 개인적 반감 탓은 아니었다, 예수라는 사내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니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맬 깁슨이 이 영화를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에 집중한 의도는 명백했다.   예수의 고통 앞에서 " 너희는...... 흘러라, 눈물이여. " 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불편과 불쾌가 변덕스러운 애인처럼 마음 속에서 오락가락했다. 이 느낌은 불편한 것인가, 불쾌한 것인가 ?  내 기준에 의하면 영화가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었다면 좋은 영화인 것이고  불쾌(한 마음)했다면 나쁜 영화에 속했는데,  이 영화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애매모호했다.    하는 수 없이 판단중지(epochē)를 내렸다. 아, 몰라 ~ 

2년 후,    맬 깁슨이 연출한 << 아포칼립토 >> 가 상영되길래 이 영화와 함께 << 브레이브하트 >> 를 연속으로 보았다.  세 영화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  << 아포칼립토 >>  ,  << 브레이브하트 >> 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제는 " 고통을 견디는 몸 " 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을 극복하는 남성 몸'이다.  쇠꼬챙이가 살을 찌를 때 느끼게 되는 고통 따위를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 리얼 " 하게 만든다. 이 통각에는 " 판타스틱 " 이 없다.  맬 깁슨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는 < 상처의 리얼리즘 > 을 위해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분장 전문가인 케이트 반델란과 특수 분장 전문가인 그레그 켄놈을 고용한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상처가 가짜처럼 보여서 (관객이 느끼는) 통각 지수가 떨어지는 것이다. 목적은 명백하다. 그가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를 만들기로 마음 먹은 데에는 예수의 정신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몸에 있었던 것이다.  자고이래로 예수보다 극한 고통을 견딘 사내가 있었던가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스스로 내린 에포케는 해제되었다. 영화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는 불편한 영화가 아니라 불쾌한 영화'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끔찍하게 도륙당하는 하드 바디 예수 >> 라는 글에서 " 멜 깁슨은 실은 해석하지 않는다.  

목회 장면들이 가끔 삽입되지만 끔찍한 고문 장면들이 거의 전부인 이 영화의 서사는 어떤 종교적 질문도 시도하지 않는다 1) " 고 비판한다. 예리한 지적이다. 이 영화를 해석할 수 없는 이유는 서사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이상하게도 성서에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크게 다루지 않는다. 몇 줄(혹은 몇 장?!)이 고작이다. 채찍질을 당했다더라_ 가 전부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도 말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성령에 있라는 것. 맬 깁슨은 성서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재현했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 고통을 받는 육체의 감각 " 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서사는 없고 감각만 남았다 2).   맬 깁슨이 보기에 예수는 영적 성웅이 아니라  육체적 영웅이다.   그는 육체적 영웅인 예수를 << 리셀웨폰 >> 시리즈 영화에서 주인공 릭스 형사와 동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    서사보다는 감각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둘 다 갈라진 < 틈 > 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포르노 영화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포르노는 여성 - 성기에 집착하고 이 영화는 도륙당한 남성 - 상처에 집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고통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가 심리적 통각이라면 후자는 육체적 통각이다.  아픔이란 고통 뒤에 오는 것이다. 못이 손을 뚫었을 때 느끼는 통각은 고통이지 아픔이 아니며 고통에는 서사가 없지만 아픔에는 서사'가 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보는 한국 사회의 반응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 사회는 피해 여성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항상 실패한다.

내가 맬 깁슨의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를 형편없는 영화로 취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맬 깁슨은 예수의 고통에 집착한다. 고통에는 서사가 없다. 내가 예수에 공감하는 부분은 예수의 고통이 아니라 예수의 아픔이다






​                                            

1) 허문영,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471쪽

2) 한국 문학도 서사는 없고 감각만 난무한다. 신경숙 소설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감각을 웅성거리는데 막상 서사는 부재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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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b급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 가짜 티 ˝ 가 너무 많이 난다는 데 있다. 가짜 티가 많이 난다는 것은 리얼리티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바로 그것 때문에 거부감이 없다. 우리는 두동강이 난 시체를 보며 웃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짜 마네킹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친절하게 이 영화 가짜입니다, 아셨죠 ? 라고 친절하게 가짜 티로 증명한다. 반면 저런 영화를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학대한다.

마립간 2016-07-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피해 여성의 고통에는 공감 못하지만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항상?) 성공한다. ; 라고 할 만하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1:44   좋아요 0 | URL
글세요.. ㅎㅎ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먼저 선행되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립간 님은 고통도 이해하고 아픔도 이해하는 축입니다.

마립간 2016-07-11 12:04   좋아요 1 | URL
그것은 이해와 공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다르겠죠. (제가 독후감을 안 올린 책) ≪나, 소시오패스 ≫를 추천합니다.

직장 동료 A가 모친 상을 당했는데,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료 B는 조문을 하지만 자신이 이해하고 느끼는 바가 전부인가 생각합니다. 동료 C는 20년 전에 모친상이 있어 그 때 일을 떠올리며 동료 A를 위로하지만 그리 슬프지는 않습니다. 직장 동료 D는 A와 친구이며 돌아가신 어머니와 생전에 교류가 있어 A와 함께 울음을 터뜨립니다.

공감의 정의에 따라 C와D가 나뉘며, 이해의 정의에 따라 B와 C가 나뉘죠. ; 마립간의 분류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2:07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마립간 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예로 든 예시가 딱이군요..

stella.K 2016-07-11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곰발님과 같은 생각에서 이 영화가 불쾌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맬 깁슨이 신앙심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런 의혹은 남죠.
너무 잔인해서 보다 말았습니다.
누군가 너는 기독교인으로 이런 것도 끝까지 안 보냐고 한다면 그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전 이건 기독교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기독교를 희롱하기 위해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인 거죠.
이런 불쾌한 영화를 그저 예수님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기독교 영회라고 생각하고
홍보까지 해 주니. 기독교가 문화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수준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는 게
전 오히려 통탄하게 되더군요.
기독교가 문화를 비판한다는 게 고작 20년 전 뉴에이지 비판이었습니다.
정말 예수님 고난 당하신 건 성경에서 얼마 다루어지지 않죠.
그것을 크게 확대해석하고 싶어 하는 게 교횐데
그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저러다 기독교인을 메저키스트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3:43   좋아요 1 | URL
100% 동의.
종교 영화를 빙자한 고어 영화죠. 자상이 저렇게 많은 육체 이미지는 처음 봤습니다.
맬 깁슨은 자극적인 설정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죠.
예수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고 서사를 해석하는 힘도 0%에 가깝습니다.
영화에서 서사에 대한 해석과 질문이 빠지면 그건 영화가 아니죠..

고어 영화입니다. 고어 영화는 그래도 양심은 있씁니다.
상처가 가짜라는 것을 보여주거든요. 일급 분장사를 쓰지 않죠.
고어가 워낙 제작비가 저렴하다 보니..
분장이 대체로 형편없거든요..
근데 이 팍품은 정말 상처처럼 보여서 고통스럽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3:45   좋아요 2 | URL
제가 한국 영화 최악의 영화로 자주 언급하는 영화가
<< 악마를 보았다 >> 인데..
영화 보면 가해자인 최민식을 체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놓아줍니다. 이병헌이...
그럴 수록 희생자는 늘어나죠.
관객은 늘어난 희생자만큼 끔찍한 고통을 계속 훔쳐보게 됩니다.
보면서.. 김지운 이 개새끼네 했습니다.
고통을 눈요깃감으로 전락시키다니....

clavis 2016-07-1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저의 판단중지에ㅡ지난 선거때부터해서..강한 설득력으로 득세하시는 곰곰발님 만셉니다.저도 예수 곁에 살다가 조용히 먼 길 떠나고 싶은,일인으로써 고통 이전의 아픔을 성찰해주신 발님께 깊게 감사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05   좋아요 1 | URL
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손으로 먹고 살고 있으니... ㅎㅎ.
이 리뷰를 쓰게 된 동기가 맬 깁슨이 < 패션 오프 크라이스트 2 > 를 찍는다고 하더군요.
흥행 영화 속편을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종교 영화 속편을 만드는 경우는 살다살다 처음입니다.
종교적 영감보다는 말 그대로 흥행을 노린 거죠. 그는 예수를 판 겁니다..
 

 

 

 

 

 

 

 

김밥은 김밥이다

 

 

                                                                                                                                                               별별 김밥을 다 먹어 봤지만 제일 맛있는 김밥은 " 꼬마김밥 " 이다.  신기하게도 속 재료'라고는 단무지와 당근이 전부이지만 강남에서 파는 프리미엄 김밥'보다 맛이 좋다.  고급 재료를 듬뿍 사용해서 맛을 낸 프리미엄 김밥은 먹을 때마다 형용사와 부사가 과도하게 사용된 문장을 읽는 맛이어서 속이 더부룩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꼬마 김밥은 한번 먹으면 계속 먹게 된다.  비유를 들자면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고 할까 ?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자면 꼬마 김밥은 훌륭한 단문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맛과 비슷하다. 

 

그 중독성 때문에 꼬마 김밥은 마약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한다. 시각적으로도 꼬마 김밥은 침샘을 자극한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건강한 맛을 위해서라면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만 원짜리 프리미엄 김밥 재료에서 유독 인색하게 구는 구석이 있다. <  깨 > 다.  꼬마 김밥은 깨를 아낌없이 뿌리는 반면에 고급 김밥은 깨를 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그때 깨달았다,  꼬마 김밥에 잔뜩 뿌려진 깨는 내부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점을 !    꼬마 김밥을 만들어 파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속 재료가 초라하다 보니 겉이 화려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테이션 제품(혹은 키치 상품)일수록 디자인이 화려한 것(과잉)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프리미엄 김밥이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구사했다면 꼬마 김밥은 저렴한 가격과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렇기에 꼬마 김밥은 지나치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거나 깨투성이'가 되었다.  이 과잉은 명백하게 " 키치적 ㅡ " 이다.  결국, 꼬마 김밥은 결핍(속 재료)과 그 결핍을 숨기기 위한 과잉(참기름,깨)이 만들어낸 미학인 셈이다.  아, 감탄하게 된다.  " 깨 " 는 비록 작고 볼품없으며 싼 재료이지만 깨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가성비가 좋은 재료다.

 

김훈의 문장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꼬마 김밥을 닮았다. 그 문장 속에는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단무지와 당근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결핍은 외려 화려하게 작동한다.  김훈의 << 칼의 노래 >> 는 건조체처럼 단순 명료'하지만 뛰어난 만연체에서 느끼게 되는 외양도 갖췄다는 점에서 훌륭한 미문이다.    반면, 신경숙은 문장을 화려한 속 재료로 채운다. 신경숙의 미문도 김훈의 것을 닮았지만 속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김훈이 결핍으로 미문에 도달한다면 신경숙은 과잉으로 문장을 채운다. 신경숙 문장을 읽다 보면 아름답긴 하지만 이상하게 더부룩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름답지 않은 세계에서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 현혹 " 에 가깝다.   김훈과 신경숙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문에 도달하지만,   두 작가는 미문이라는 수렁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자고이래로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미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문학의 본질은 꿰뚫는 것이지 치장이 아니다. 비빔밥은 농번기 때 밥 먹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바가지에 여러 음식을 섞어 먹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점에서 비빔밥은 패스트푸드'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김밥은 비빔밥을 김으로 둥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러 재료를 빵 속에 담은 햄버거와 다르지 않다.

속 재료를 아무리 고급스럽게 꾸민다 해도 김밥은 김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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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과 밥.이 주축이었으니 김밥의 본질이 김과 밥...이 두개만으로도 딱입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0 11:34   좋아요 1 | URL
전 웰빙 김밥 운운할 때 좀 웃겼습니다. 꼬마 김밥이나 프리미엄 김밥이나 다 같은 김밥이지 무슨 웰빙 김밥?
김밥도 보면 패스트푸드예요. 음식재료 섞어서 동그랗게 말았으니 비빔밥을 김에 싼 것과 다르지 않는 것.

syo 2016-07-1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너무 잘나왔습니다....점심으로 김밥먹어야 될 판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0 11:59   좋아요 0 | URL
꼬마김밥 사서 겨자 소스에 찍어먹어보십시오.. 별미입니다.

사진 이미지는 구글에서 그냥 막 긁어왔습니다...


재는재로 2016-07-1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작가가한끼라면의기쁨을말했다면 곰곰님은김밥이네요 김밥요즘안먹어본지좀됐는데간만에사진보니먹고싶어지네요군대휴가나오면꼭먹던게참지김밥인데 충무김밥제육김밥 잉먹고싶넹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09:10   좋아요 0 | URL
전 충무김밥 먹고 싶네요. 전 김밥 안에 재료가 많으면 뭔가 좀 거북하더군요..

samadhi(眞我) 2016-07-1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막상 김밥 싸는 건 쉽지 않답니다. 먹는 건 아주 간단하고 금방인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입니다. 그래도 김밥을 워낙 좋아해 자주 말다보니 김밥 선수가 되었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09:10   좋아요 0 | URL
손이 많이 가죠. 집에서 하면 다 손이 많이 갑니다.
왜 남편이 이런 말 하면 아내는 화가 난다고 하더군요.

날도 더운데 그냥 간편하게 잔치국수나 해서 먹자 !



ㅎㅎ 잔치국수가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 ㅎㅎ

stella.K 2016-07-1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김밥을 좋아했는데 최근 1, 2년 사이에 김밥을 못 먹겠더군요.
제가 웬만해서 싫어하는 음식이 없었는데.
그런데 우스운 건 엄마표 김밥은 먹겠더란 말이죠.
올봄 엄마가 김밥을 마셨는데 내가 이것도 못 먹을까 싶었는데 다행으로...
김밥에 겨자소스라. 궁금하긴 하군요.

마지막 문단이 참...!!!

언젠가 프리미엄 김밥을 먹으러 강남에 출몰하셨었나 봐요.ㅎㅎ
별뜻은 없고 강남은 오래 전부터 제 아지트라.ㅋ
아, 언제고 별로 좋아하시진 않겠지만 프리미엄 김밥 드시러 강남 오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09:09   좋아요 0 | URL
김밥 천국이 번성하고 나서 김밥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김밥은 추억의 음식이었는데 말입니다.
일종의 기념일 음식이잖아요.
행사 있을 때나 먹던 게 김밥인데
이젠 아무 때나.. 아니 오히려 돈 없으면 먹게 되는 음식이 되었으니
통탄할 뿐입니다...


스텔라 님 강남 사는 분이시군요.. ㅎㅎㅎ.
프리미엄 김밥을 좋아하지 않아서.. 강남 갈 일이.. ㅎㅎ-_-

지금행복하자 2016-07-11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밥은 패스트푸드가 아닙니다... 정말 주부가 하기 싫은 음식중 하나지요.. 노동집약적인 대표적 한국음식 ㅎㅎㅎ
화려한 외양보다 유려한 말 솜씨보다 담백하고 간결함에 더 맘이 머무는걸보면 나이가 들어가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09:0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어머니 말씀이 김밥은 손이 많이 간다... ㅎㅎ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햄버거와 김밥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햄버거를 집에서 만든다고 해 보세요. 고기를 다지고, 양념을 하고..
이런 과정이 김밥 만드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햄버거는 패스트`라고 할까요. 그런 생각...
요즘 김밥 재료는 거의 다 기계화가 되어서
재료들은 다 공장에서 손질이 된 상태에서 나온다고 하더군요..
계란 지단도 전부 다 말이죠. 그렇다면 햄버거와 다를 게 뭐지 ?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ㅎㅎ

지금행복하자 2016-07-11 21:15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보면 거의 대부분의 식당음식은 패스트푸트화 되는듯 해요. 분식집은 물론 반찬들을 공장에서 받아 쓰는곳이 제법 되는것을 보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할 때 상징적인 음식이 되었다. 누군가는 패스트푸드가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정크푸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좋은 엄마인가 나쁜 엄마인가는 아이에게 패스트푸드를 먹일 것인가 아니면 웰빙 음식을 먹일 것인가로 좌우된다. 그런데 나는 이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에 1%도 동의하지 않는다. 빠른 시간 안에 요리가 되어 나오는 음식이 패스트푸드라면 김밥이야말로 패스트푸드`이다. 왜냐하면 미리 준비된 재료를 김에 밥과 함께 말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즉석 요리인 셈이다. 누군가는 김밥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므로 패스트푸드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반론은 똑같은 논리도 햄버거도 손이 많은 음식일 수가 있다. 집에서 손수 수제 햄버거를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대목이다. 햄버거 패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기를 다져야 하고 머스터드 소스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패티를 제외한 속 재료도 준비해야 한다. 김밥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이나 햄버거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엇비슷하지 않을까. 내 기준에 의하면 식당에서 파는 모든 한식은 패스트푸드다. 주문 즉시 음식이 나오니깐 말이다. 그렇기에 햄버거는 억울하다. 패스트푸드란 이름으로 온갖 욕은 다 먹으니까. 정작 패스트푸드한 음식인 생과일 주스는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생과일 주스야말로 패스트푸드`이다. 빨리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이 패스트푸드라는 점에서 말이다. 생과일 주스는 과일을 씹어서 과즙을 섭취하는 과정이 생략된 음료이다. 각종 즙`도 마찬가지다. 비만의 주범은 과잉 섭취인데 생과일 주스와 각종 즙은 씹어서 과즙을 내고 삼키는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고열량이 섭취되도록 만든다. 정크푸드는 햄버거가 아니라 생과일 주스와 각종 즙이다. 주스를 많이 마시는 사람일수록 비만일 확률이 매우 높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식하는 사람치고 뚱뚱한 사람은 없는데 왜냐하면 생식은 필연적으로 오래 씹을 수밖에 없다. 섭취 시간에 오래 걸리다 보니 적은 양을 먹어도 배가 부르다. 반면, 빨리 먹는 사람은 뚱뚱하다. 빨리 먹으니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수다맨 2016-07-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신변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자주 못 들르네요.
김훈이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집에서 김밥 얘기를 하더군요. (정확한 리딩은 아니나) 김훈도 김밥을 좋아하긴 하는데 비교적 간소한 재료로 만든 김밥을 좋아하더군요. 이것저것 채워넣은 김밥보다 담백하게 만든 김밥이 본인의 입맛에 맞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김훈의 저 단문은, 김훈 본인의 식성을 얼마만큼 닮은 듯합니다.
김훈의 문장도 한때는 지나치게 길고, 필요 이상으로 화려했던 적이 있습니다. 첫 소설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한자어의 잦은 사용, 중문과 복문의 남발, 과장적이고 자극적인 수식어들, 의미 파악이 불분명한 문장이 많았지요. 제가 보기에 김훈은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에 이르러서야 비교적 담백하고 명료한 문장을 쓰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3:39   좋아요 0 | URL
오 그렇습니까 ? 전 그 책 안 읽었습니다.
모든 음식이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아니고...
제가 지리 탕을 좋아합니다. 복 지리, 대구 지리탕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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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빗살.. 그 거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문체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

신변에 이런저런 일`이 좋은 뉴스이기 바랍니다. 문제 해결되면 술 한잔 합시다..
 

 

 

 

 

 

 

 

 

 

 

 

사소한 당신

 


 





 

                                                                                                          기독교 서사가 " 거시적(大) ㅡ "  영역을 다룬다면 불교 서사는 " 미시적(小) ㅡ " 영역을 다룬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 스펙터클 " 에 방점을 찍고 불교는 " 미니멀리즘 " 에 방점을 찍는다.

예수와 부처,    두 성인의 죽음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예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웅장하다면 부처는 사소하다.  팔순 노인이 된 부처는 제자가 공양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데,  그는 설사를 심하게 하다 결국에는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부처는 예수에 비하면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죽음이며 동시에 " 하찮은 죽음 " 이다.  두 종교를 한 글자로 표현하자면 기독교는 < 有 > 에 대한 종교이고,  불교는 < 無 > 에 대한 종교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핵심은 " (죽은 예수가 사람들) 눈 앞에 나타나는 행위 " 다.   < 있음(有) > 를 증명하는 것이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본질로,  예수는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 < 현존재 > 를 증명한다.

반면,        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유(有)와 상(象)이 아니라 무(無)와 멸(滅)이다.  무상,  무념,  무소유를 넘어 < 적멸 > 에 이르는 단계가 목표다.   예수가 현시(顯視)를 통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면  부처는 무아(無我)를 통한 < 세계 - 없음 > 을 권유한다.  無我,  그것은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는 세계이다. 작은 것에 대한 연민도 불교적 특징이다.  스님들이 겨울에 뜨거운 물을 식힌 후 하수구에 버리는 행위는 그곳에 사는 수많은 미물을 염려한 탓이라고 한다.  그들은 큰것의 죽음과 미물의 죽음을 같은 연민으로 바라본다. 이 또한 미니멀한 태도'다.  버리는 삶과 사소한 것에 대한 연민,  그것이 불교가 지향하는 축소주의적 삶이다. 

 

뒤늦게 티븨엔 16부작 드라마 << 시그널 >> 을 몰아서 보다가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 서사는 불교 서사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괴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1,2화)에서는 미제 사건 전담반은 중요한 단서에 의지해서 수사를 진행하다가 낭패를 보게 된다.  그것은 중요한 단서가 아니라 관객/독자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미끼였던 것이다. 이 장르는 독자에게 하찮은 것처럼 보여서 흘려보낸 사소한 단서를 주의 깊게 보라고 요구한다. 추리물에서 중요한 단서처럼 보이는 것은 맥거핀으로 작동한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사소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인간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지만 뒤돌아보면 그것은 쓸모없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집착하는 것은 추리물에서 관객의 눈을 흐리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 중요한 단서(라고 믿게 만드는 맥거핀) " 이다.  그 사이,  우리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단서)한 것을 놓치고 산다. 나 또한 그렇다. 돌이켜보면 사소했던 당신, 내가 사랑했던 당신. 내 몰락이 네 가슴을 흔들었을,  그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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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0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만에 보는 명품 드라마`다. ost도 훌륭하다.

stella.K 2016-07-0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그널은 저도 정신없이 빠져서 본 드라만데 캬~! 이런 통찰을 얻으셨다니...!
이런 깨달음이면 교회 안 다니셔도 될 것 같습니다.ㅋ
그래도 전 내일 교회를 가야합니다. 지은 죄가 많기도 하고,
저의 깨달음이란 게 워낙 미물 수준이라...ㅠㅋ

저의 놋북이 이제 거의 수명을 다하여 음악을 다 들어 볼 수는 없지만
그런 음악이 나있었나요? 못 들어 본 것 같습니다. ost 정말 좋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뭔가 수상한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 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네요.
저 세 배우 정말 연기 잘 했는데. 특히 조진웅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죠.
극본을 장항준 감독 와이프가 썼다는데 정말 잘 쓰더군요.^^

근데 위의 도표는 곰발님이 직접 만드신 건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9 14:32   좋아요 0 | URL
아. 김은희 작가가 장항준 부인되십니까 ? 몰랐네요. 시나리오가 워낙 깔끔하게 나와서
드라마는 안 보는 편이지만 꽤 높은 완성도에 놀랐었는데...
장항준 부인이시로군요.

음악이 참 좋습니다. 참여한 뮤지션들도 다들 훌륭하고
배우들도 일급인데 문든 드라마 제작비를 생각하면
이 드라마 제작비가 꽤 높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위 도표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긁어왔습니다..

stella.K 2016-07-09 20:27   좋아요 0 | URL
아, 근데요...이거 곰발님한테 말할까 말까 하다가 물어보는 건데요,
혹시 <나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란 영화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는데 정말 독특한 영화더군요.
근데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보셨다면 곰발님은 어떻게 보셨는지 고견을 듣고 싶은데...
싫으면 말구요...-_-;;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0 11:20   좋아요 0 | URL
아뇨. 안봤습니다. 이거 그 핀란드 감독 영화죠 ?
레닌그라우드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뭐 이런 영화 만든 감독..
이 감독 영화는 워낙에 독특해요.
아쉽게도 전 못 보았네요..

stella.K 2016-07-10 20:3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정말 독특해요.
제가 독특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은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더군요. 그 독특함 때문에.
혹시 곰발님은 보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궁금했는데
나중에라도 보시면 리뷰 한 번 올려주세요.^^

재는재로 2016-07-0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ost네요 방송에서 김윤아의 노래만 들었는데 다른노래들도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9 14:50   좋아요 0 | URL
ost의 백미는 첫 번째 곡입니다. 드라마 시작하면 이 노래 나오는데 기대 만빵하게 됩니다..

피오나 2016-07-0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편인데도, 시그널은 뒤늦게 푹 빠져서 한동안 홀릭했어요! 시그널 너무 좋아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0 11:18   좋아요 0 | URL
몰입도좋았습니다. 특히 1,2화에서 왜.. 그 간호사 악녀 있잖습니까. 연기 갑이었습니다. 좋은 배우더군요..
빨간 립스틱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배우는 처음 봅니다..

samadhi(眞我) 2016-07-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은희 작가의 ˝싸인˝ 도 괜찮아요. 첫회에 가수 듀스였던 김성재의 죽음을 다루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0 11:18   좋아요 0 | URL
김은희 작가가 이쪽 장르에 장점을 가지고 있나 보군요..
싸인도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전 아직 안 보았네요.
제가 드라마를 거의 안 보긴 합니다. 사실.. 시그널도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뤄서 그거 보려다가 다 보게 된 경우.

clavis 2016-07-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몰락이 네 가슴을 흔들었을, 그럴 당신..저는 언제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5 10:02   좋아요 1 | URL
네에 저도 이 문장 읽고 심쿵했습니다.. 시인이니까 가능하지 않았나 싶네요..

clavis 2016-07-1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연주 시인..저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발님의 문장인 줄 알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5 10:03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이 시집에 마음에 안 와닿는데 몇 번 읽다 보니 애착이 가더군요..
기회되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39의 나이로 자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