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패스트푸드다 !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김윤옥 씨가 개 돼지들1)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김치 칵테일'을 만들었을 때,  먹는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는구나 _ 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근미래에는 지구인들이 사진을 찍을 때 치즈 대신 김치 _ 라고 할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김치가 세계를 제패하는 날이 오면 가수 정광태의 유일한 메가 히트곡 <<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 이라는 노래 제목은 << 이 세상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 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미소를 지을까. 그런...... 날이 올까 ?

한식 세계화가 국격을 높이는 짓이라면 인도와 베트남은 카레와 쌀국수로 초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한식과 관련된 전문가 집단이 늘상 하는 말은 " 한식은 웰빙 푸드이며 슬로우 푸드 " 라는 소리'다. 여기에는 한식 요리가 손이 많이 간다( = 정성이 담긴)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는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사랑으로 만든 음식, 정성이 담긴 음식은 웰빙 푸드이며 슬로우 푸드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과 정성이 많이 담긴 요리가 반드시 웰빙 푸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채소나 과일을 갈아서 마시는 생과일 주스나 즙을 내서 먹는 액기스는 대표적인 패스트푸드'다.

하루야채 광고 따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루야채 한 병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를 얻기 위해서는 야채를 산더미처럼 쌓고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산더미처럼 많은 분량을 날씬한 병으로 축소해 놓은 것이 하루야채라는 음료인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하루야채 한 병으로 과식을 실천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생과일 주스도 다르지 않다. 한 번의 " 드링킹 " 은 과일을 " 백 번 " 씹을 때와 동일한 것이니, 이 얼마나 패스트한 풍경인가 !   실제로 건강한 재료(로 만든 요리)라고 해서 맘 놓고 먹는 생과일 주스나 액기스'가 과잉 열량을 유발하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건강한 재료로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 비만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될 악당이 있다. " 햄버거, 너 나와 !! "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할 때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과 함께 상징적인 음식이 되었다. 누군가는 패스트푸드가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정크푸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즉석 주문 요리(=패스트푸드)란 손쉽게 만들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뜻한다. 이 정의가 맞다면 김밥도 패스트푸드'다. 이 정의에 대한 반론은 분명하다. 집에서 김밥을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밥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 햄버거를 위한 변명 " 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집에서 햄버거를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햄버거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햄버거 패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기를 다져서 밑간을 해서 잠시 숙성을 시켜야 하고,  머스터드 소스도 만들어야 하며, 다양한 속 재료도 준비해야 한다. 집에서 김밥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이나 집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엇비슷하지 않을까. 햄버거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있다. 비만의 친구이자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욕은 다 먹었으니 말이다. 내 기준에 의하면 주문 즉시 음식이 나온다는 점에서 점심 시간에 직장인이 몰려 있는 번화가 식당에서 파는 모든 한식은 패스트푸드다.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고, 나온 음식은 " 패스트 " 하게 먹어치워야 한다.

 

프랑스 식 음식 문화를 흉내 낸다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식당 주인으로부터 욕 먹기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패스트푸드인가, 아닌가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김밥이 좋은 음식이라면 햄버거도 좋은 음식이며, 한식이 웰빙이라면 양식도 웰빙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점은 " 슬로우 푸드 " 를 " 패스트 " 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인은 천성이 < 빨리빨리 유전자 > 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인의 DNA가 만든 현상이 아니다. 서울 토박이였던 내가 지방에 내려가 살면서 겪게 되는 곤경 가운데 하나는 < 걷는 속도 > 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걷는 속도에 익숙하다 보니 옆사람과 보조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출근 시간에 느림보 걸음으로 수다를 떨며 걷는 모습은 나에게는 진풍경이었다. 반대로 느림보 걸음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서울로 상경했을 때는 서울 사람들의 총알 걸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것은 걷는 속도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만든다는 점이었다. 국가가 패스트푸드를 불량식품 취급한다면, 국가야말로 패스트푸드의 주범이다. 왜냐하면 국가 시스템이 " 슬로우푸드를 패스트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는 맘 놓고 점심을 즐길 시간이 없다.

 

어느 노동자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연장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출근했다가 사고로 죽기도 했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대한민국이라는 컨베이어 밸트 속도를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높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속도에 맞춰 뛰어야 한다.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노동과 근로는 같은 말이 아니다. 노동은 < 일하다 > 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고 근로는 < 땀이 나도록 열심히 일하다 > 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슬로우 푸드를 패스트하게 섭취한다. 슬픈 풍경이다.

 

이처럼 패스트푸드의 주범은 햄버거도 아니고 김밥도 아니다. 10분이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대표하는 컵라면마저 먹을 시간이 없는 사회2)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  대한민국이야말로 모든 음식을 패스트푸드로 만드는 주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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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2 가 길어서 하나로 통합

 

                                                                                                                                                                       나향욱 교육 정책 기획관이 " 민중은 개 돼지...... " 라며 대한민국은 신분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원래 교육의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향욱이라는 사람이 교육 정책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나는 그가 교육 정책 기획관이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푸코는 << 감시와 처벌 >> 에서 교육은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반 일리히는 << 학교 없는 사회 >> 에서 학교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제 서울대라는 브랜드는 기회의 평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서울대는 현대판 음서제'다. 자크 랑시에르는 << 무지한 스승 >> 에서 < 자코토의 실험 > 을 예로 들어 학생은 설명하는 스승 없이도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은 오히려 "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인간 " 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다.  경제학을 배운 인간은 경제에 대한 지식만 쌓고, 간호학을 배운 인간은 간호에 대한 지식만 얻게 된다. 대학이 본래 지식을 확장하고자 하는 장치라고 한다면,  현대 교육은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확장은커녕 축소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올인하는 교육 정책은 인간을 똑똑한 바보로 만든다. 똑똑한 바보라는 표현은 자크 랑시에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나향욱이라는 인간의 탄생은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인간을 찍어내는 엘리트 교육 정책이 낳은 참사'다. 개, 돼지 발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 (구의역 사고로 사망한 청년에 대해)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향욱의 자식이 걱정된다. 비록 당신이 위선이라며 핏대를 세울지라도 말이다. 배울 만큼 배운 그가 정작 교육 기관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한국 식 교육은 측은지심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가 인간을 짐승으로 비유했으니 어느 짐승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한다. 실험실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다. 바나나가 있다. 맛있는 바나나다. 실험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짚으면 옆 칸의 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 한다. <<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 에서 실험 대상자를 인간 대신 원숭이로 대체한 것이다. 그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  원숭이는 15일 동안 굶었다.  15일 동안의 측은지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으로 사는 게 웰빙이란 생각이 든다. 민중이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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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7-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달았는데 없어져 버려 다시…
블랙 코메디 한 편 보았다고 생각해야 하겠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 교육이 측은지심을 가르치지 않음을 알지만 같은 교육을 받은 99%은 어떻게 측은지심을 발현하는 것일까요. 사람 됨됨이가 배우지 않아도 깨치는 능력이 함양되고 서서히 개인차를 만든다고 봐야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37   좋아요 1 | URL
저 인간은 그냥 소시오패스죠.. 아니 스무살 청년이 일에 쫓겨서 죽은 사건을 두고 내 자식처럼 슬퍼하는 건 위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소시오패스죠..

오거서 2016-07-12 09:39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기사를 보고 댓글에 남겼지만, 저 역시 공감하는 바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46   좋아요 1 | URL
제가 독재자라면 민중을 ˝ 발등에 떨어진 불 - 상태 ˝ 로 만들겠습니다.
생각할 틈을 안 주는 거죠. 학생에게는 공부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졸업생에게는 취업 준비를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비정규직은 콧등에 땀이 맺힐 때까지 일해야 하니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이게 모이면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재자의 적은 민중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오거서 2016-07-12 09:55   좋아요 0 | URL
앗!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시는군요.

yureka01 2016-07-1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자중에 조련사인지 교육자인지 분간 못하는 경우..사육인지 교육인지 구분 안되는 경우....아닐까요...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52   좋아요 1 | URL
비서울대는 서울대 때문에 차별을 받습니다. 모든 주요 관직은 모두 서울대가 장악했으니 말입니다. 이제 교육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역설이죠. 교육이 바로 서야 되는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평등한 교육법이라고나 할까요.

보빠 2016-07-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몇년전에 이책 읽었지만 곰곰발님같은 생각못했는데...멋지십니다 썰전에 출연해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0:17   좋아요 0 | URL
썰전에서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가겠습니다..

2016-07-12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7-1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으로 사는 게 웰빙!
멋진 말이군요!
곰발님을 썰전으로!!!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3:47   좋아요 0 | URL
말만 하지 마시고 썰전 제작진에게 제보를 ㅂ부탁ㄹ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