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은 김밥이다

별별 김밥을 다 먹어 봤지만 제일 맛있는 김밥은 " 꼬마김밥 " 이다. 신기하게도 속 재료'라고는 단무지와 당근이 전부이지만 강남에서 파는 프리미엄 김밥'보다 맛이 좋다. 고급 재료를 듬뿍 사용해서 맛을 낸 프리미엄 김밥은 먹을 때마다 형용사와 부사가 과도하게 사용된 문장을 읽는 맛이어서 속이 더부룩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꼬마 김밥은 한번 먹으면 계속 먹게 된다. 비유를 들자면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라고 할까 ?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자면 꼬마 김밥은 훌륭한 단문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맛과 비슷하다.
그 중독성 때문에 꼬마 김밥은 마약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한다. 시각적으로도 꼬마 김밥은 침샘을 자극한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건강한 맛을 위해서라면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만 원짜리 프리미엄 김밥 재료에서 유독 인색하게 구는 구석이 있다. < 깨 > 다. 꼬마 김밥은 깨를 아낌없이 뿌리는 반면에 고급 김밥은 깨를 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그때 깨달았다, 꼬마 김밥에 잔뜩 뿌려진 깨는 내부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점을 ! 꼬마 김밥을 만들어 파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속 재료가 초라하다 보니 겉이 화려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미테이션 제품(혹은 키치 상품)일수록 디자인이 화려한 것(과잉)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프리미엄 김밥이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구사했다면 꼬마 김밥은 저렴한 가격과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렇기에 꼬마 김밥은 지나치게 기름이 번지르르하거나 깨투성이'가 되었다. 이 과잉은 명백하게 " 키치적 ㅡ " 이다. 결국, 꼬마 김밥은 결핍(속 재료)과 그 결핍을 숨기기 위한 과잉(참기름,깨)이 만들어낸 미학인 셈이다. 아, 감탄하게 된다. " 깨 " 는 비록 작고 볼품없으며 싼 재료이지만 깨가 음식의 맛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가성비가 좋은 재료다.
김훈의 문장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꼬마 김밥을 닮았다. 그 문장 속에는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단무지와 당근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결핍은 외려 화려하게 작동한다. 김훈의 << 칼의 노래 >> 는 건조체처럼 단순 명료'하지만 뛰어난 만연체에서 느끼게 되는 외양도 갖췄다는 점에서 훌륭한 미문이다. 반면, 신경숙은 문장을 화려한 속 재료로 채운다. 신경숙의 미문도 김훈의 것을 닮았지만 속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김훈이 결핍으로 미문에 도달한다면 신경숙은 과잉으로 문장을 채운다. 신경숙 문장을 읽다 보면 아름답긴 하지만 이상하게 더부룩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아름답지 않은 세계에서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 현혹 " 에 가깝다. 김훈과 신경숙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문에 도달하지만, 두 작가는 미문이라는 수렁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자고이래로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미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문학의 본질은 꿰뚫는 것이지 치장이 아니다. 비빔밥은 농번기 때 밥 먹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바가지에 여러 음식을 섞어 먹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점에서 비빔밥은 패스트푸드'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김밥은 비빔밥을 김으로 둥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러 재료를 빵 속에 담은 햄버거와 다르지 않다.
속 재료를 아무리 고급스럽게 꾸민다 해도 김밥은 김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