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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송강호 외, 이창동 / 아트서비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말의 쾌락, 몸의 통증 :
눈물과 흉터는 닮았다
나는 타자이다(Je est un autre)
_ 랭보
눈물과 흉터는 서로 닮았다. 흉터가 과거에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나에게(혹은 타자에게) 증명하는 기표1 라면, 눈물은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혹은 타자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한 기표2 다. 흉터와 눈물은 모두 고통의 메시지이며 동시에 발화(發話)와 기술(記述) 없이 작성된 이야기다. 이 서사는 혀에 의한 발화(發話)가 아니라 몸에 의한 무언(無言)이라는 점에서 흉터와 눈물은 동일한 오브제'다. 그것 - 들'은 말하지 않고도 선명하게 통증을 증명할 수 있는 기표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 밀양, Secret Sunshine, 2007 >> 은 말보다 눈물과 흉터로 자신의 참회를 증명해 보일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에 대한 영화'다. 피아노 학원 강사인 이신애(전도연 분)는 속물인 여자'다. 그녀는 자신의 초라한 몰락을 견딜 수 없어서 주변인에게 < 있는 척 > 을 하며 땅을 보러 다니기도 한다. 신애가 내뱉은 허세과 위선은 결과적으로 아이의 유괴,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진다 3.

▶ 신애가 거울-이미지를 통해 보고 있는 것은 타자(학원원장)가 아니라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과 닮은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러니까 신애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에 대한 형벌로 말이 아닌 " 눈물과 흉터 " 로 묵언 수행하는 여인이다. 그것은 영화 << 올드보이, 2003 >> 에서 오대수(최민식 분)가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에 대한 징벌로 혀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다. 그 또한 눈물과 흉터라는 형벌로 죄값을 치르는 자다. 기독교가 " 말씀 " 으로 이루어진 종교라는 점을 감안하면 : " 이신애와 기독교의 접선 실패 " 는 발화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 분열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언어 체계의 해체'다. 미친 자는 언어가 분열된 자'다. 신애는 < 말씀(언어)의 세계 > 에 진입하지 못한 채 튕겨나간다. 그렇기에 조현병에 걸린 환자는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표와 기의를 분간하지 못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기도 한다.
내가 주목한 대목은 이신애가 아이 유괴 살해범인 학원 원장을 교도소 면접실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투명한 벽(유리 혹은 플라스틱)을 사이에 두고, 이신애가 유괴범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은 디오니소스가, 나르키소스가, 메두사가 거울 - 이미지'를 통해 자기 모습을 보는 것과 동일하다. 이신애 앞에 있는 유괴범은 타자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다. 유괴범이 자신은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었고 하나님은 이에 응답하여 자신을 용서했다고 말했을 때, 이신애는 유괴범의 욕망이 자신의 목적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신애는 자기가 내뱉은 거짓말이 발단이 되어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여자'다. 그녀는 피해자이면서 어느 정도는 원인을 제공한 여자이기도 하다.
이 씻을 수 없는 과오, 그녀는 자기 아이를 죽인 유괴범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한다. 둘 다 참회와는 거리가 멀다. 학원 원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것처럼 연기를 하고, 이신애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해 죄인을 용서하는 것처럼 연기한다. 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동일은 욕망을 가진 자'다. 신애는 아이를 죽인 죄인을 용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주변인에게 아이를 죽인 죄인마저 용서하는, 가련하지만 성스러운 " 피에타 " 를 연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거울에 반영된 상(象)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는 죽거나 눈이 멀게 된다.
디오니소스, 나르키소스, 메두사가 정면을 응시한 죄로 죽음을 당한다면 오르페우스, 프시케, 오이디푸스는 정면을 응시한 죄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보면 안 되는 거울 - 이미지는 알면 안되는 진실과 동일어다.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아내를 잃고, 프시케는 남편 얼굴을 보면 안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한밤중에 램프로 남편 얼굴을 봤다가 남편을 잃고(에로스는 새가 되어 날아간다), 오이디푸스는 알면 안되는 진실을 마주한 죄로 두 눈을 잃는다. 그들은 모두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한 자들이다. 이신애가 투명한 벽을 통해 본 것은 타인의 象도 자신의 象도 아닌, 자신의 욕망이었다. 정면을 응시하자, 그녀는 저 뜨거운 욕망 앞에서 미쳐버린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거울 - 이미지로 끝난다.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른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서 구원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읽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영화에 구원따위는 없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디오니소스, 나르키소스, 메두사는 모두 머리채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들은 모두 탄력 있고 윤기 나는 머리를 가진 존재'였다. 그렇기에 이신애가 스스로 머리를 자른다는 행위는 디오니소스적 운명, 나르키소스적 운명, 메두사적 운명'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1) " 흉터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거든. " 코맥 메카시, < 모두 다 예쁜 말들 > 중
2) "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나는 눈물을 흘린다. " 롤랑 바르트, < 사랑의 단상 > 중
3) 학원 원장는 돈이 많은 척하는 신애가 내뱉는 거짓말을 말 그대로 믿고 아이를 유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