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의 끝없는 아아와 오오뿐1 :
내 곁에 네가 너무나 많다
엄기호는 << 단속사회 >> 라는 책'에서 한국 사회를 " 곁을 밀치는 사회 " 라고 말한다. 공동체의 해체를 두고 한 말이다. 곁을 밀치는 사회는 가수 임재범이 무릎 꿇고 " 내가 만약 외로울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 라고 절규하듯 노래할 때 < 바로 여러분 > 이라는 가사가 삭제된 사회'다. 한국 사회는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_ 로 끝나는 사회'다.
그런데 엄기호가 말한 곁을 밀치는 사회라는 표현이 계속 입에 겉돈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 밀치는 사회 > 가 아니라 < 밀어붙이는 사회 > 다. 전자가 " far away " 라면 후자는 " close-up " 된 사회다. 엄기호는 인간 소외 현상을 " 내 곁에 아무도 없다 " 에서 찾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닐 수 있다. 핵심은 < 아무도 없다 > 가 아니라 < 너무나 많다 > 가 아닐까. 즉, 한국 사회의 소외 현상은 " 내 곁에 너무나 많다 " 에서 찾아야 한다. 나향욱 씨가 민중을 개·돼지라고 말했을 때 그가 본 것은 " 다닥다닥 붙어사는 " 서민의 꼬라지였을 것이다. 꼬라지 하고는..... 인간을 짐짝 취급하거나 개·돼지 취급하게 될 때 제일 먼저 박탈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영토권'이다.
인간에게는 < 사회적 거리 > 와 < 개인적 거리 > 가 존재한다. 일상을 관찰하다 보면 사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회 생활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신사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거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신사는 대화를 할 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개인적 거리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팔을 뻗어 악수를 할 때 발생하는 거리가 " 개인적 거리 " 이다. 그 거리보다 더 가까이 다가서면 상대방은 불편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꼰대들은 종종 이 거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위계를 이용해서 너무 가까이 붙는다. 성추행이 대표적인 경우다. 성추행은 개인의 영토권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 새끼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붙을 때가 성추행이다.

▶ 제국의 배가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본국으로 싣고 가는 이미지. 이 폐소공포증적 상황은 타인이 내 곁을 침범할 때 발생한다. 이 장면에서 개인적 거리(개인의 영토)는 파괴된다.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은 클로즈업된 타인의 신체'다. 그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인식한다. 포르노도 마찬가지'다. 포르노는 집요하게 부분을 탐색한다. 나치에 의해 가스실에 갇힌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미지와 겹친다. " 옷은 곁을 만드는 상품 " 이다. 발터 벤야민은 << 아케이드 프로젝트 1,2 >> 에서 옷은 계급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발달했다고 지적했는데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일수록 사회적 거리는 확장된다. 백성은 먼 발치에서나마 그를 볼 뿐이다. 반면 헐벗은 자에게는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헐벗었다는 것은 영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의 상인이나 나치 부역자들이 노예와 유대인에게서 옷을 벗기는 행위는 " 인간 부정 " 에 있다.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에게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개인적 거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권리를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노예선에 갇혀 짐짝 취급을 받던 아프리카 흑인이나 가스실에 갇힌 홀로코스트 유대인은 개인적 거리가 파괴된다. 나향욱이 99%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얻는다는 것은 " 거리의 확장 " 을 의미한다. 최고 권력자는 가장 넓은 영토권을 확보한 자이다. 그가 보기에 아침 출근길 2호선 지옥철 풍경은 개인적 거리를 잃은 개, 돼지나 다름없다. 고양이에게 쫒기던 쥐가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르면 도주를 포기하고 태도가 돌변하여 고양이와 싸우는 이유도 개인적 거리의 붕괴에 있다. 개인적 거리는 도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간격이기 때문이다.

▶ 악수 행위는 상대의 돌발 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다. 상대가 주먹을 휘둘렀을 때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 두기'인 셈이다. 이 거리 두기에 실패하게 되면 상대가 휘두른 주먹(혹은 무기)에 상처를 입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묻지 마 범죄는 개인 일탈이라기보다는 다닥다닥 붙게 되는, 곁을 타인에게 침범당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데에서 찾아야 한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에서 유독 묻지 마 범죄가 빈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클로즈업된 초밀접 근경사회'이다. 보드리야르가 “ 클로즈업된 얼굴은 가까이에서 관찰한 성기와 똑같이 외설적이다. ” 라고 말한 이유도 개인의 영토권과 관계가 깊다. 이미지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 클로즈업된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은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할 때(혹은 얼굴을 들이밀며 싸움을 할 때)가 전부다.
섹스를 하는 관계란 다른 말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개인적 거리를 허용한 관계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보드리야르가 클로즈업된 얼굴은 포르노라고 말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포르노 사회인가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그렇다 ! " 먹방이 포르노인 이유는 식욕이 성욕의 은유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클로즈업된 이미지를 집요하게 사용한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는 너무 다닥다닥 붙었다. 옆집에 사는 이웃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아는 사회가 미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더덕더덕 붙어살다 보니 옆집의 섹스라이프는 꿰뚫고 산다.
이웃집 아내가 흥분하면 아, 라고 하는지 아니면 오, 라고 하는지도 말이다. 이게 무슨 미더덕 같은 삶인가. 내 곁엔 네가 너무도 많아 내가 쉴 곳이 없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태도는 곁을 밀치는 것이다 ■
우리 청춘의 끝없는 < 아아 ! > 와 < 오오 > 뿐 ㅣ 니체, 즐거운 지식 中